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285
285화
알딘은 황망한듯,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뭔가, 무슨…”
“못 들었나? 게임을 끝내지 않을 거라고.”
성운이 어깨를 으쓱인 다음 과장스럽게 고개를 들고 심드렁한 태도를 취했다.
“나는 이미 신이니, 여기 아바르틴에 남아 다른 신들과 함께 만신전을 이루고 제국을 통치하며 영원히 남아 있겠다.”
“영원…히요.”
“뭐 어떻냐 싶은데. 내가 어떤 진정한 보상, 그러니까…”
“진정한 신이요…”
“그래. 진정한 신. 하지만 그게… 그렇게까지 추구해야하는 목표인지는 잘 모르겠어. 솔직히 그게 뭔지도 모르겠고.”
“되고 나면 알겁니다.”
“되고 나면이라.”
알딘이 가볍게 고개를 흔든다.
“당신이 정말로 신이 되었다고 생각합니까? 아뇨. 지금까지 당신은 그저 게임을 한 겁니다. 물론, 아주아주 현실에 가깝다고 말할 수는 있겠습니다. 그래요. 솔직하게 말해서 아바르틴은 허상이 아닙니다. 여기 실존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진정한 아바르틴의 주인이며 이들 모두의 정당한 통치자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미 아바르틴의 최고신이고, 아무도 거부할 수 없다. 그 누구도.”
성운이 살짝 고개를 숙인다.
눈으로 알딘을 본다.
“옛신이라고 해도.”
알딘은 어색한 미소를 흘린다.
‘옛신’이라는 단어에 분명 반응했지만, 내색하지는 않는다.
그 모든 것을 성운은 알아보았다.
“뭐가 마음에 안 드는 겁니까? 승리했지 않습니까?”
“그 반대지. 승리했기 때문에, 마음에 든 것이다.”
“…아, 그겁니까?”
알딘이 제안하듯 말했다.
“다른 플레이어들이 걱정 되는 거군요?”
성운은 거짓말을 하지는 않는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걱정할 건 없습니다.”
알딘은 잠시 주저한다.
“어떻게 되길 바라죠?”
성운이 예리하게 알딘의 맥락을 잡아냈다.
“생각해두지 않았군.”
“…제가 지금 여기 시스템의 결정권자입니다. 원하는대로 해드릴 수 있죠.”
성운의 태도는 바뀌지 않는다.
“이제는 제안을 하는군.”
“싫습니까?”
“싫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야. 왜 제안을 하냐는 문제지.”
“당신을 위해…”
성운은 말을 끊었다.
“아니, 내 생각엔 이런 것 같은데. 이 게임은 나 스스로 끝내지 않는다면, 끝낼 수 없다는 거지.”
알딘이 가로젓는다.
“제가 시스템의 주인입니다. 끝내고자 한다면 그냥 끝낼 수 있습니다. 그냥, 당신에게 기회를 주는 거죠.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으니까.”
“그럼 그렇게 해봐.”
잠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알딘은 침묵한 상태로 성운을 그대로 바라본다.
알딘이 말한다.
“왜 이러는 겁니까? 저는 모든 걸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저항한다면, 그냥 승리를 무위로 돌리고 다른 사람을 뽑아도 상관 없어요. 단지 당신을 위해서, 당신이 정당한 게임의 승리자이기 때문에 참고 있을 뿐이죠.”
“이제는 협박인가.”
성운이 턱에 손을 가져간다.
“널 괴롭히려는 건 아니다.”
“그러셔야 할 겁니다.”
성운이 말했다.
“두 번째 달에 대해 알고 있었나?”
“…게임이 불공정했다는 겁니까?”
“그 사실에 대해서 부정할 건가?”
“아뇨.”
알딘이 가볍게 손을 내젓는다.
“화가 났던 거군요?”
“조금은.”
“좋습니다. 모두 인정하죠. 게임은 불공정 했습니다. 제가 짐작하지 못한, 약삭빠른 쥐새끼같은 과거의 적들이, 여러분의 게임에 끼어들었습니다. 그 부분은 죄송합니다.”
성운이 더 지적한다.
“네 번째 대륙도.”
“아, 그렇죠. 망할 드래곤 자식들이.”
알딘이 주먹을 가볍게 움켜쥔다.
“뭔가 되었다고 믿는 거들먹거리는 그 잡종들이, 예. 게임을 어지럽혔군요. 놈들도 제 적이긴 합니다. 드래곤들은 여러분이… *로스트 월드*라고 부르는 그 게임의 기반 데이터에 조작을 가했습니다. 언젠가의 진짜 싸움, 두 번째 전쟁, 아니 아무튼, 여러분이 이번에 한 그 게임에서 당황하도록 만든 거죠. 저는 전혀 몰랐습니다. 그에 대해서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성운은 드래곤들을 기억했다.
무언가 악에 받친, 그래서 더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도록 두겠다고 했던 드래곤들을 떠올렸다.
드래곤들은 문명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었다.
드래곤들은 문명이 성장했을 때 다가올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근본적으로는 악신들과 비슷한 목표가 있었던 거지. 다만 악신은 자신들이 *승리*를 쟁취할 생각이었고, 드래곤들은 게임 자체를 훼방 놓고 싶었던 거고.’
성운은 그 둘이 제대로 협력했다면 더 좋은 성과를 보였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승리한 것은 새로운 신, 플레이어들이었다.
알딘이 말했다.
“설명이 좀 된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니 설명을 구할 것도 없었다.”
“제 사과는요?”
성운은 알바인가 싶어 그 물음은 무시했다.
성운이 말했다.
“미리 말하지 않은 이유는 인과율 때문이겠군.”
“예. 게임이 시작되면 제가 개입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지만 미리 알려줄 수는 있었지.”
“몰랐습니다.”
성운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두 번째 달을 만든 건 옛신이고, 그게 달 뒤에 있다는 걸 모를 리는 없다. 시스템 권역은 재조정 되어 있었다. 너는 ‘일부러’ 그런 거다.”
알딘은 잠시 아무말도 하지 못한다.
성운은 알딘이 알기 쉬운 존재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심계에 대해서 한 번도 고민해본적 없는듯, 반응 하나하나가 솔직하다.
‘알 것 같기도 해. 순진한 사람이 되려면, 순진해도 괜찮은 환경에 있어야겠지.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
성운이 계속 말했다.
“편법을 찾아내지 않았더라면, 패배했을지도 모른다.”
알딘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 그렇죠. 편법. …하지만 저는 그 편법에 대해 눈감아줬습니다. 그걸로 적당히 퉁치면 어떨까요? 제 호의를 입은 거 아닙니까?”
“편법을 찾아내지 못했더라면?”
성운이 이어말했다.
“게임이 흘러가는 방향은 명확했다. 악신들이 나타나고, 네 번째 대륙과 드래곤들이 나타난다. 어찌어찌해서 플레이어 하나가 우세를 보인다. 하지만 그때 두 번째 달이 나타난다. 시스템 권역의 한계 때문에 플레이어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겠지만, 두 번째 달도 그렇게 쉽사리 아바르틴을 점령할 수는 없을 거다. 결국 누군가 상처뿐인 승리를 따낸다.”
성운이 생각에 잠기며, 양손의 손가락 끝을 가볍게 맞붙인다.
“그래. 최후의 승자가 피폐한 모습을 보였으면 했을 것이다. 승리했지만 그 승리 위에는 폐허만이 남아있기를 바랐겠지. 그게 네가 원한 그림 아닌가?”
알딘은 그 말을 듣고 웃었다.
그렇게 잠시 웃고 난다음, 알딘이 말했다.
“네. 그렇다고 한다면 어쩔 겁니까?”
“유감이군.”
“유감이겠죠. 하지만 당신은 이 게임에서 나가기만 하면 됩니다. 아직 늦은 게 아닙니다. 창을 띄우고 ‘나가기’를 누르세요.”
“아니.”
성운이 말했다.
“너에게 있어 유감스러울 거란 말이었다. 문명은 보존 되었다. 승리는 압도적이었다. 두 번째 달에 대한 피해는 거의 없다. 자원을 다소 소모하긴 했지만, 이 또한 모두 다음 기술 단계를 위한 밑바탕이 되겠지. 반면 네가, 세상이 폐허가 되길 바랐던 이유는 선명하다.”
성운이 답을 말한다.
“너의 적들이 취약한 상태이길 바랄테니까.”
알딘이 서 있는 몸의 중심점이 성운을 향해 기울었다.
알딘은 이제 더 진지한 태도를 취한다.
“당신은 약속된 승리의 보상만 받아가면 됩니다. 뒷일을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 약속 조차도 의심스럽군.”
성운이 말한다.
“너 조차도 ‘진정한 신’이 아닌데, 어떻게 진정한 신이 될 수 있다고 논하는 거지?”
그 말이 알딘의 신경을 끝내 긁고 말았다.
“감히!”
분기로 가득찬 알딘이 목소리를 떨며 말했다.
“감히 내가 신이 아니라고?”
알딘이 발을 구른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백색의 심상 세계에선 별 의미가 없지만, 로브 자락이 크게 펄럭이는 것만으로 박력이 있다.
성운은 신경쓰지 않는다.
“나는! 우리는 아바르틴의 진정한 신이다!”
성운은 새로 모습을 드러낸 단어 ‘우리’에 관심을 기울인다.
“우리, 라고?”
“그래! 우리! 우리 옛신들은 아바르틴의 진정한 주인이다.”
여기 다시 하나의 문이 열렸다고, 성운은 생각한다.
대화 또한 일종의 해킹이다.
상대의 보안 프로토콜에 대비해 암호화된 정보로 접근해 상대의 취약점을 공략한다.
순서와 절차를 지키면 마음의 비밀이 드러나는 것이다.
성운이 말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악신들과 너희는 무엇이 다르지?”
“악신! 그 잡종들을 언급하는 연유가 뭐냐? 우리는 ‘처음부터’ 이곳 아바르틴에서 태어났다. 우리가 바로 아바르틴의 선주민이다. 이 땅에서 태어나는 모든 존재의 진정한 어버이다.”
성운이 추론했다.
“다른 누군가로부터 태어났다면, 진정한 신은 아니라는 말이군. 너희 또한 생명으로서 태어났어. 하나하나의 개체로 존재할 뿐이고.”
“처음엔 그랬지.”
“처음엔?”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손으로 직접 힘에 도달했다.”
“힘.”
알딘이 말한다.
“그래, ‘마법’을 말하는 거다.”
성운은 의문을 가졌다.
“마법은 처음부터 존재한 건가?”
“그래.”
알딘이 중얼거리듯 말한다.
“너희는 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
“왜?”
“너희 세계에는 마법이 희박하니까. 거의 힘을 잃었고, 소멸해갔지. 그리고 너희가 살고 있을 때는 그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고.”
“어째서 그렇지?”
알딘이 대단하지 않은 질문이라는듯 쉬이 대꾸했다.
“저 너머에, 가능한 무한한 세계가 존재한다. 이 ‘가능세계’는 서로 다른 무수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지. 너희는 그 중 하나일 뿐이다. 마법이 약한 땅인 거지. 이따금 그런 장소들이 존재한다. 물론 다른 조건을 좀더 맞춰야 했지. 무한한 세계들을 돌아다녀야했으므로 애를 써야 했지만… 결국 너희를 찾아냈지.”
“마법이 없어서 우리를 선택했다고?”
“그것만은 아니지만, 그래. 가능세계에 마법은 일상적으로 존재하니까. 너희를 찾는데는 애를 먹었지.”
성운이 알딘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마법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해야만 했던 거군. 너희가 마법을 힘으로 쓰기 때문에?”
알딘은 이제 부정하지 않는다.
“그래.”
성운은 가면 아래에서 쓰게 웃는다.
‘자신감을 허위로 보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군. 그렇지 않다면 저렇게 당당할 수는 없어.’
알딘이 덧붙여 말한다.
“만약, ‘지금처럼’ 일이 잘못되었을 경우에, 우리가 그 모든 것을 뒤집어야 하니까.”
성운은 알딘을 경계하지만, 알딘은 곧장 움직이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지위에 도취되고, 가지고 있는 힘에 경도되어있다.
‘다행이군. 시간을 더 벌 수 있을테니. 들어야할 질문의 답도 좀더 있고.’
성운이 말한다.
“그런데 그렇게 큰 힘이 있다면, 굳이 마법으로 시스템을, 신과 신성이라는 개념을 만들 필요가 있나?”
“하, 역시 마법에 대해서 잘 모르는군.”
“설명해.”
알딘이 말했다.
“알고 있나? 세상은 두 가지 세계가 중첩된 모양이다.”
“두 가지?”
“하나는 물리적 세계다. 너희의 말로는 외우주, *아우터 스페이스*라고 할 수도 있겠지. 만져지는 세계, 우주를 말한다. 중력과 광속에 발이 묶인 채 절뚝이며 걸어가야 하는 세계지. 너희가 만든 우주선을 봐라. 고작… 고작 달을 향해 가는데도 아바르틴 전체가 모든 걸 걸어야 했다.”
“두 번째 달은?”
“우리 기술의 결정체지. …하지만 결국 무엇에게 패배했나?”
성운이 답이 없자, 알딘이 계속 말한다.
“두 번째 세계는 바로, 내우주, *이너 스페이스*다. 심상 세계라고도 한다. 눈을 감으면 보이는, 의식을 가진 모든 존재들이 공유하는 꿈의 공간. 아, 물론 너희의 꿈은 그저 단편적이고 조각났으며 지리멸렬하겠지. 너희에겐 유감이군.”
“내우주?”
알딘은 느리게 말한다.
그것을 쉽게 상상해낼 수 없는 존재에게 설명하는 것을 버거워하듯.
“너는 상상해내기 어려울 것이다. 마법이 일상적인 다른 가능세계의 존재들이라고 해도 훈련을 거쳐야만 내우주에 제대로 들어갈 수 있다. 그곳에는 거듭되는 상징과 비의, 다른 세계의 진실, 거대한 혼란과 파국, 그리고 치유와 안정이 존재한다. 외우주에서의 모험처럼 내우주에서의 모험도 위험하지만, 결국 누군가 비밀을 가져와 발설하곤 하지. 우리는 그들을 마법사라고 하고, 그렇게 가져온 힘을 마법이라고 부른다.”
알딘이 계속 말한다.
“마법이 가진 힘은 외우주에서 그 힘이 발현될만큼 강력하지만, 단편적이고 불안정하기 때문에 그것을 유지하기 어렵다. 그래서 고대의 마법사들, 즉 우리는 그 힘을 어떻게든 안정적으로 유지시킬 필요를 느꼈다. 체계를 만들고 규칙을 짜넣었다. 그것이 시스템이다. 시스템 안에서 우리는 그제야 마법이 가져다주는 불안정의 공포를 극복해냈지. 그래, 혁명적이었다. 너희 외우주에 목을 매달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 기술혁명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딴 건 혁명이라고 부르기 우스울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