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95
095화
가루다는 희귀 종족으로 제3 대륙의 북서쪽 끝에 살았다.
높지 않은 산들로 이루어진 북해안과 달리 하늘 산맥이라고 불리는 제3 대륙에서 가장 높은 산맥에 살고 있던 가루다들은 플레이어들이 등장하고 나서도 꽤 오래 발견되지 않았다.
가루다를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하늘 산맥을 자신의 땅으로 삼은 트롤 돌가면 부족과 위즈덤이었다.
이 시점에서 위즈덤은 희귀 종족인 가루다를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했다.
가루다는 새를 닮은 종족이었다.
얼굴은 틀림없이 매를 닮아서 부리가 날카로웠고 두 팔과 두 다리를 제외하고도 커다란 날개가 달려 있었다.
신체 능력과 지능 둘 다 여타의 종족과 비교해 높은 종족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희귀 종족인 만큼 대륙 내에 다른 부족이 존재할 확률은 적었으므로 위즈덤이 가루다를 독점할 기회도 있었다.
하지만 위즈덤은 가루다를 자신의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 종족으로 삼지도 않았다.
“새 종족이지만, 날지 못하는 날개를 달고 있어서야 낭비 아닌가?”
이것이 위즈덤의 생각이었다.
실제로 가루다는 제 몸을 덮을 만큼 커다란 날개를 달고 있었지만 그 날개로 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로스트 월드에서 가루다의 별명은 ‘닭’이었다.
날개는 달렸지만 날 수 없어서 붙은 별명이었다.
물론 가루다에 대한 성운의 견해는 조금 달랐다.
“날지 못하긴 해도 날개 자체는 쓸모가 많아. 초기에 의복 수준이 낮을 때 보온을 해 주기도 하고 전투에서 타격을 하거나 공격을 쳐 낼 수도 있지.”
하지만 성운이 북서쪽에서 스타팅을 했어도 위즈덤의 선택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었다.
“희귀 종족을 굳이 선택할 필요성은 없지 않나?”
가루다의 문제는 종족 자체가 유능하긴 하나 희귀 종족이 가진 일반적인 단점, 즉 아이를 가질 확률이 낮다는 것에 있었다.
성운이 데이터를 통해 보았을 때 능력 자체는 가루다와 인간이 그다지 차이가 없었다.
인간은 아이를 가질 확률이 훨씬 더 높기 때문에 종족이 늘어나는 속도도 훨씬 빨랐다.
초기 부족 수준에서는 가루다가 평균적인 역량에서 우위를 보이지만, 인간은 인구 숫자가 늘어나면서 가루다만큼 전투에 유능하거나 가루다만큼 똑똑한 사람의 숫자도 늘어났다.
그리고 집단을 이루는 데는 단순 머릿수도 중요했다.
무능한 인간이라고 해도 적당한 훈련만 받으면 셋이서 가루다를 하나쯤 상대할 수 있었다.
애초에 모두 유능하고 똑똑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물론 이런 점은 단순히 위즈덤이 낭비로 본 날개라는 요소를 제외하고도 가루다를 선택하지 않을 이유로 충분했다.
당시 돌가면 부족은 신의 힘을 이용하지 않고도 가루다 부족 전체를 압도할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
가루다 부족은 돌가면 부족과 항복하고 원하는 요구가 있으면 들어주고 보호를 받자는 쪽과 마지막 가루다가 죽을 때까지 결사 항전해야 한다는 쪽으로 나뉘었다.
위즈덤은 전투에 나서게 되면 어느 정도 피해가 예상되는 바, 보호를 받자고 주장하는 이들을 신의 힘으로 잘 꼬드겼다.
그러자 가루다 내부의 배신자들이 결사 항전을 다진 부족장 아후란을 비롯한 그의 혈족 모두를 붙잡아 죽이고 돌가면 부족에 투항했다.
가루다 부족장 아후란은 최후를 맞기 전 슬퍼하며 말했다.
“우리는 또 신들에게서 버림받았구나.”
가루다들은 이후 돌가면 부족에 협력했다.
돌가면 부족이 요구하는 것은 전투에서 가장 위험한 자리를 맡을 가루다 전사들이었고, 가루다들은 이것을 명예로운 자리로 받아들였다.
돌가면 부족이 영역을 확장하는 동안 젊은 가루다들이 죽거나 불구가 되어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대부분의 젊은 가루다들이 소진될 무렵에서야 돌가면 부족은 왕을 세우고 석면이라고 나라를 공표했다.
하지만 트롤들은 가루다들에게 어떠한 대우도 해 주지 않았다.
이후에 가루다들은 이것이 돌가면 부족 트롤에게 속았음을 알았지만 이미 후회하기엔 뒤늦은 때였다.
가루다들은 명예를 중시했지만 이미 석면에 적대하기엔 가루다 부족은 너무 약해져 있었고, 석면에게서 명예를 구하기엔 너무 구차해져 있었다.
많은 가루다들이 ‘또 버림받았다’는 부족장 아후란의 말을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로스트 월드의 많은 종족들에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그것은 대체로 고대의 악에 대한 것이었다.
그 이야기마저도 분절되어 있거나 가치 있는 정보를 담고 있지 않았기에 플레이어들은 별 관심이 없었는데, 특정 종족은 자신들의 종족에 대한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기도 했다.
가루다들은 과거에 자신들이 ‘황제의 종족’으로 불렸으며 지금은 거추장스러울 때가 더 많은 두 날개 또한 하늘을 날 만큼 강인했다고 한다.
고대의 악이 나타났을 때 가루다들은 고귀로운 혈통임에도 최전선에서 맞서 싸웠다.
하지만 싸움이 점차 패색이 짙어지자 신들은 도망가 버렸고 신의 힘을 잃어버린 탓인지, 아니면 고대의 악의 저주 때문인지 가루다들은 하늘을 날지 못하게 되었다.
아직까지 그 결과를 아무도 알지 못하는 ‘세계의 끝’을 맞이한 뒤 가루다들은 날지 못하는 날개를 등에 지고서 정처 없이 떠돌게 된다.
이것이 가루다들의 종족 전승으로, 아후란의 말은 가루다들이 새롭게 나타난 신들에게도 선택받지 못하고 버려졌다는 의미였다.
물론 가루다들이 그대로 사라져 버린 건 아니었다.
흑린이 그러했듯이, 석면 또한 국가가 안정적인 체제를 갖춰 가자 통합 시기에 이용하거나 내버렸던 수많은 종족들을 자신의 체계 안에 편입시키려고 들었다.
이미 약해져 있던 가루다들은 집종촌을 이루고 석면이 지배하는 대륙의 북서부, 하늘 아래 산맥에서 이어 나가고 있었다.
위즈덤은 가루다 같은 문제가 될 수도 있었던 희귀 종족을 잘 다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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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이제 신들을 믿지 않으리.”
가루다 ‘썩은 손’ 마즈다리는 눈 덮인 산을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썩은 손은 마즈다리의 별명으로, 그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그를 보자마자 그 이름을 떠올릴 수 있는 별명이었다.
마즈다리의 왼팔은 검었다.
가루다라면 깃털로 뒤덮여 있어야 하는 손이지만 왼손과 왼손으로 이어지는 팔뚝까지 마즈다리의 왼팔은 털이 모두 빠졌고 야위었으며, 까맸다.
태어날 때부터 새카만 왼팔이었기에 부족 사람들은 마즈다리가 저주받았다며 두려워했다.
그의 부모조차도 마즈다리를 집종촌에서 키우지 않고, 마을에서 추방되어 혼자 지내는 늙은 가루다에게 자식을 맡겼다. 문명이 조금만 덜 발달했더라도 마즈다리는 산속에 버려져 죽었을 것이다.
마즈다리는 그러한 부모를 원망하지 않았다.
자신이 저주받은 것은 명백했기 때문이었다.
-오, 하지만 그 불쌍한 운명도 이제 끝을 맞이하는가.
‘닥쳐라, 마물아.’
-마즈다리, 난 마물이 아니다. 정령이지.
‘내 공부에 따르면 고대의 악을 섬기던 하수인이라면 정령이거나 마물은 별 차이가 없다.’
-뭐, 그렇게 생각해도 좋다.
마즈다리는 자신의 내면, 정확히는 왼팔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서 관심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놈은 더 시끄럽게 떠들어 댔다.
-하지만 추적대를 따돌리긴 힘들걸. 가루다는 자신의 신체 능력을 과신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던데, 아무리 그래도 눈길 속에서 엘크보다 빠를 수는 없어.
‘그 정도는 나도 알아.’
마즈다리는 쫓기고 있었다.
가루다의 평균 키는 2미터 50센티. 마즈다리는 그보다도 큰 2미터 70가량으로 어지간한 오우거와도 맞설 만한 자연재해나 다름없는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마즈다리의 뒤를 쫓는 엘크 기사는 석면이 자랑하는 최정예 전투원들이었다.
모두가 고도의 전투 기술을 배운 트롤에다가 트롤을 태울 수 있는 전쟁 엘크들은 사실상 괴수나 다름없었다.
‘이 숲만 빠져나가면 강이 나온다. 얼마 안 남았어.’
-얼어붙은 강? 강은 엘크 기사들도 건널 수 있어.
‘강을 녹일 거다.’
-너의 힘만으론 부족할 텐데.
‘……’
마즈다리는 생각을 멈추고 걷는데 집중했다.
하지만 강을 지척에 앞두었을 때, 거대한 짐승이 나무를 가르며 머리를 디밀었다.
가루다의 얼굴을 덮을 만큼 크고 두꺼운 뿔, 길쭉한 주둥이에 커다란 코를 가진 엘크였다.
엘크의 등 위에는 흉갑을 입고 투구를 쓴 트롤이 앉아 있었다.
숫자는 두 명이었다.
엘크 기사가 외쳤다.
“거기, 가루다! 멈춰라.”
“기사님, 그 가루다가 맞습니다. 왼손이 썩었습니다.”
“그래? 그럼 그대의 이름이 ‘썩은 손’ 마즈다리인가?”
내면의 목소리가 큭큭대며 웃었다.
-뒤가 아니라 앞에도 있었군.
‘하지만 추적자가 아니다. 놈들은 내가 아직 누군지 정확히 몰라.’
-그럼 너의 허리춤에 있는 약병들이 뭘 의미하는지도 알지 못하겠지.
마즈다리는 두 손을 펼쳐 보여 주며 말했다.
“마즈다리? 저는 그런 이름이 아닙니다. 제 이름은 아후란이고 가루다 집종촌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왼팔은?”
“어렸을 때 화상을 입고 검게 그슬렸습니다.”
“화상 입은 자리 같지는 않은데.”
“트롤과 가루다가 생긴 것만큼 화상의 모양도 다른 거지요.”
“흠.”
“마즈다리라는 이름의 가루다를 찾으시는 겁니까?”
엘크 기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연금술사의 탑은 알고 있겠지?”
“네? 네. 저 하늘 산맥 뒤에 있다는 탑 말이지요? 연금술사라는 괴짜들이 모여 산다는.”
“있다는 탑? 이제는 ‘있었던 탑’이겠지. 아무튼 석면의 기사들이 탑을 완전히 점령했다. 하지만 그 안에 있던 연금술사들 중 일부가 도망쳤지. 우리는 폐하의 명을 받고 도망친 연금술사들이 금지된 지식을 퍼트리지 못하도록 그들을 추적하고 있다.”
“연금술사 가루다? 하하. 가루다들은 수가 많지 않으니 어렵지 않게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저도 그 이름을 가진 가루다를 찾으면…”
엘크 기사는 마즈다리의 말을 끊었다.
“너의 말을 믿지 못하겠으니 이리 다가와라.”
“전 연금술사가 아닙니다. 약초꾼이지요. 옆 마을에 폐병 걸린 환자가 있다기에…”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게 밝혀지면 보내 줄 테니 걱정 말고.”
“…알겠습니다.”
마즈다리는 두 손을 들고 천천히 걸어갔다.
“우선 가방을 내게…”
충분히 가까워졌을 때 마즈다리가 움직였다.
마즈다리는 과거의 조상들이 하늘을 날 때처럼, 두 날개를 번쩍 펼쳤다.
그러자 마즈다리를 덮고 있던 망토가 허공으로 떠오르며 기사들의 시야를 가렸다.
“이놈!”
망토를 꿰뚫고 막무가내로 칼이 내질러졌지만 마즈다리는 이미 한 발 물러난 상황이었다.
마즈다리는 허리춤에서 유리 약병 하나를 뽑아내고, 망토가 떨어지며 시야가 드러난 순간 기사의 얼굴로 그 약병을 던졌다.
“아악!”
기사가 얼굴을 부여잡자 흰 연기가 솟았다.
유리 약병에 든 것은 황산.
트롤의 얼굴이 녹아들고 있었다.
“연금술사, 이놈!’
두 번째 기사가 엘크의 고삐를 당기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가루다의 신체 능력은 충분히 재빨랐다.
몸을 구르며 공격을 피해 낸 마즈다리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았다.
엘크의 뿔과 앞발을 피하며 엘크 기사의 칼날을 쳐 내기를 반복하는 사이, 시간은 마즈다리의 편이 아니었다.
“저기다!”
“썩은 손이 저기 있습니다!”
이번에는 추적자들이었다.
그들도 당장 맞서 싸운 엘크 기사들과 다름없었지만, 이미 마즈다리와 싸워 충분히 경계하고 있는 적들이었다. 마즈다리에겐 더 까다로울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숫자도 다섯.
-허리춤에 뭐가 남았지?
‘황산 하나, 연막 하나, 기름 둘.’
-슬슬 내 힘을 빌려야지 않나?
‘…젠장.’
-어차피 강을 녹일 때 내 힘을 빌릴 생각이었지 않나?
‘어쩔 수 없지.’
마즈다리는 품에서 두 개의 약병을 꺼냈다.
“놈이 약병을 꺼냈다! 방패로 막아라!”
우수한 신체 능력에서 발휘된 뛰어난 구속의 약병이 순서대로 기사들의 방패를 때렸다.
방패를 확인한 기사들은 냄새를 통해 약병의 내용물이 뭔지 알아차렸다.
“…기름?”
마즈다리가 왼손을 들어 기사들에게 향했다.
어딜 봐도 빈손이었기에, 기사들은 경계심 없이 접근했다.
또한, 손바닥에 집중되는 열기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화르르르륵!
마즈다리의 손바닥을 꼭짓점으로 하는 원뿔 모양의 불기둥이 기사들에게 쏟아졌다.
트롤 기사들의 폐가 팽창하는 공기를 내뱉으며 삐익 하고 맥 빠진 비명을 내질렀다.
‘그만!’
마즈다리가 손을 거두자 새카맣게 타오른 엘크와 기사들이 시커멓게 그을린 바닥 위에 쓰러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마즈다리와 방금까지 검을 다투던 살아남은 엘크 기사가 강 쪽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죽여야 하는데.’
-유감스럽지만 내 화염은 저기까지 닿긴 힘들어. 좀 더 내게 의지했더라면 내가 성장했었겠지만…
하지만 마즈다리는 자신의 후회도 강변에 닿자 쓸모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강변에는 이미 마즈다리를 잡기 위해 삼백이 넘는 병사들이 모여 있었다.
가장 선두에 선 엘크 기사가 외쳤다.
“마즈다리! 궁수들이 널 겨누고 있다! 허리띠를 풀고 짐을 내려놓아라!”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