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310
315화〉
짜 놓은 판
크라켄의 안광이 붉게 타올랐다.
갑자기 나타난 인간.
강함이라고는 절대 보이지 않는 유약한 외모에 흐느적거리는 촉감의 희한한 옷.
게다가 전장 한복판에서 기다란 담뱃대까지 물고 있다.
이상한 모자까지 쓴 채 말이다.
“고놈의 소 눈까리가 징하게 부리부리 허네잉.”
진청색 도포를 걸친 진도화가 희고 고운 연기를 내뿜으며 상대를 물끄러미 노려봤다.
아니, 노려본다기보다는 하찮은 걸 보듯이 굽어본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분명 시선 자체는 두 배는 커다란 크라켄이 훨씬 높았지만, 풍기는 느낌은 진도화가 더 높은 위치에 있는 것 같았다.
“건방지게 나를 내려다보는 것이냐!!”
금쇄봉이 달빛을 가르며 상대에게 휘둘러졌다.
묵직하고 단단한 일격.
하지만 진도화는 느긋한 얼굴로 공격을 바라보다가 담뱃대 대신 붓과 합죽선을 들었다.
그의 오른손이 일필휘지로 휘갈겨지며 합죽선에 용 한 마리가 그려졌다.
[환술사 전우치 : 기이활화(奇異活晝)]묵색으로 물든 한지에서 기다랗고 흉흉하게 생긴 동양 용이 튀어나왔다.
칠흑같이 어두운 용이 크라켄의 몸뚱이를 통째로 물더니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크아아아아아악!!”
분노에 찬 크라켄이 금쇄봉으로 용의 머리를 퍽퍽 소리 나게 후려갈겼다.
상공으로 한참 오르는 찰나 크라켄의 공격을 연달아 받은 용의 몸이 터지며 먹물로 돌아갔다.
쿠ㅡㅡㅡㅡㅡㅡ웅!
크라켄의 육중한 몸뚱이가 지상으로 착지했다.
그 높은 상공에서 떨어졌는데 조금도 부러지거나 다치지 않았다.
콧김을 힘껏 내뿜은 크라켄이 서릿발 같은 살기를 줄기줄기 흩뿌리며 놈이 있던 장소로 발을 박찼다.
그에게 맞고 떨어져 나갔던 한스와 키드, 최대수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모두 죽으려고 용을 쓰는군.”
크라켄이 으르렁대며 금쇄봉을 꽉 그러쥔다.
단지 마주하는 것뿐인데도 그에게서 솟구치는 어마어마한 마기가 피부 속까지 꿰뚫는 기분이다.
“워메. 소가죽이라 긍가, 겁나 질겨 부네잉. 뭔 놈의 까죽이 빵꾸도 안 났어야?”
“가장 먼저 네 녀석의 대가리를 으깨 주마.”
“어허이. 나가 그라도 인간인디, 짐승 새꾸헌티 죽어서야 쓰겄는가. 안 그냐, 대수야.”
“그걸 왜 나한테 묻나.”
최대수가 진도화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봤다.
“유언은 그게 다인가 보군. 죽어라.”
크라켄의 몸이 벼락처럼 달려든다.
최대수와 키드가 황급히 스킬을 구사하려 했다.
그 순간.
“에미 젖이나 더 빨구 온나.”
진도화가 한쪽 입꼬리를 싱긋 올리며 합죽선을 손바닥에 탁, 내리쳤다.
코앞까지 들이닥치던 크라켄은 자신의 등에서 뭔가가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더니 시야가 빙글 돌고 기하학적인 프랙털이 형형색색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환술이 뒤섞인 공간 이동.
처음에 용이 그의 몸통을 물 때 크라켄의 등 뒤에 부적을 붙여 놓았다.
뒤틀린 공간으로 크라켄이 빨려 들어가며 사위에 어둠이 찾아왔다.
숨 가쁜 적막이 가라앉는다.
키드와 최대수가 사위를 두리번거렸다.
“뭐야··· 형씨가 날려 버린 거야?”
마력 감지에도 크라켄의 기척이 잡히지 않자, 안심한 키드가 진도화에게 물었다.
“후ㅡ 그려, 아주 멀리 날려 버렸응께, 한숨 돌리더라고.”
“타이밍 맞춰서 왔군, 진도화.”
최대수가 한스를 들쳐 업으며 말했다.
“뭐, 의뢰인이 부탁한 대로 일을 혀야지, 별수 있냐.”
어느새 담뱃대를 문 진도화가 희게 웃으며 주위를 일별했다.
“그나저나 싸게 도망가 불자. 다시 안 온다는 보장은 없어야.”
“찬성이다. 이만큼 붙들고 있었으면 다른 쪽도 자기 역할을 했겠지.”
“어이, 야차.”
그때 키드가 최대수를 향해 터벅터벅 다가왔다.
“뭐냐, 키드.”
“뭐 하나만 물어보자. 네가 전력을 다하면 크라켄을 죽일 수 있을 것 같냐?”
“······.”
질문을 받은 최대수는 잠시 입을 닫았다.
그는 짧은 고민을 마친 뒤에 중얼거리듯이 대답했다.
“아니.”
***
프레가 구현한 마법진에서 검은 손이 튀어나오며 솔라소와 히카탄의 심장을 먹어 치웠다.
【오, 힘이 나는 것이다! 나는 이제 더 강해지는 것이다!】
“잘 먹었냐?”
정순한 마기 덩어리를 흡수한 프레는 시우 주변을 폴짝폴짝 뛰듯이 날며 강해진 힘을 만끽했다.
【말끔히 먹은 것이다! 확실히 상위 마족의 마기가 좋은 것이다!】
“그래? 먹었으면 이제 일해.”
시우가 표정을 굳히며 단호하게 말했다.
【무, 무슨 일 말인 것이냐?】
“뭐긴 뭐겠어. 도망간 마족 찌끄레기들 잡아 죽여라.”
【싫은 것이다! 그런 허접한 일은 내가 아니라 부하인 네가 하는 것이다! 나는 앞으로 대마왕이 될ㅡ 아픈 것이다! 아픈 것이다!!】
시우가 프레의 볼로 추정되는 곳을 잡아당기자 프레가 날개를 파닥거리며 눈물을 찔끔 흘렸다.
“강해졌다면서 그 힘 안 쓰고 뭐 하려고? 얼른 써.”
【우··· 너는 너무 폭력적인 것이다. 내가 나중에 네 몸 밖으로 나가면 반드시 복수하고 마는 것이다.】
“그래, 그래. 제발 부탁이니까 꼭 그래라. 하지만 그전에 오늘 치 일 하는 거 잊지 말고.”
프레는 입술을 비죽이며 투덜거리더니 시우의 마력과 자신의 마기를 뒤섞어 마법을 구현했다.
푸르고 까만 기운이 허공에서 물감처럼 뒤섞이며 바닥에 집채만 한 마법진이 펼쳐졌다.
파지지지지지직!!
날카롭고 기다란 흑색 단창 수백여 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죽이는 것이다!】
프레의 명령에 단창이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져 사방으로 쇄도했다.
퍼ㅡ억! 퍽! 콰드드득! 퍼ㅡㅡㅡ어억!!
【마기를 탐지해 찾아가는 추적형 스킬인 것이다. 도망가 봤자 어림없는 것이다.】
“호오···. 거리 제한도 없어?”
【아니, 내 마력 탐지 범위 내에서만인 것이다.】
“그러면 그 범위 벗어나면 도망갈 수 있는 거 아냐?”
【···너하고는 말 안 하는 것이다!】
프레가 볼을 부풀리며 시우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삐졌네.’
시우는 프레의 그 모습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프레가 별것 아닌 능력처럼 쉽게 설명하긴 했지만, 사실 이 기술은 엄청나게 활용 가치가 높았다.
마기를 탐지해서 공격하는 능력.
‘마력 소모가 조금 나가는 것 같긴 한데.’
시우는 프레가 보이고 있는 기술을 곱씹으며 전장이나 상위 마족과의 전투에 어떻게 써먹어야 할지 고민했다.
멀찌감치서부터 들려오는 마족 잔당의 단말마가 귓가에 아른거린다.
【아무래도 다 죽인 것 같은 것이다.】
“저것들은 안 먹어도 되지?”
【당연한 것이다. 저런 놈들의 마기는 먹어도 기별도 안 가는 것이다.】
“그래, 그럼 우리도 이동하자.”
시우가 아티팩트에 마력을 불어넣어 푸르미르를 원래 크기로 현현시켰다.
– 히이이이이잉!
“오랜만에 달려 볼까?”
【앗! 푸르미르는 내 애완동물인 것이다! 나한테 먼저 허락받는 것이다!】
프레가 날개로 시우의 이마를 찰싹찰싹 때리며 항의했다.
***
타타르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우를 직접 상대해 봤지만, 결과는 역시나였다.
오히려 현저한 실력 차를 느껴 절망감마저 들고 말았다.
“개같은 새끼···. 킬킬킬. 히카탄이나 솔라소는 멍청하지만 암살로는 최고니까 쉽지 않을 거다.”
한숨 돌린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대의 힐러를 찾아갔다.
시우에게 몇 대 맞지도 않았는데 온몸이 걸레짝이 된 것 같다.
아티팩트 발동을 10초라도 늦게 했다면 타타르는 부상으로 끝나지 않고 죽었을 것이다.
강하다 못해 괴물 같은 저력에 복수는커녕 아티팩트를 발동하는 것도 간신히 한 상황.
‘씨발, 나름대로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발끝에조차 미치지 못할 줄이야.’
그는 포션을 들이켜며 얼굴을 구겼다.
얻어맞은 상처보다 금이 간 자존심이 더욱 아프게 느껴졌다.
‘이럴 줄 알았다면 애초에 도발 같은 건 하지 말걸.’
실력의 간극이 좁혀지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더 벌어지고야 말았다.
다른 무엇보다 걱정되는 건 히카탄과 솔라소가 제대로 처리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
‘뚱보 녀석의 독과 솔라소의 [오감 탈취] 기술이 있으면 암살이 불가능하진 않을 거야. 하지만 만에 하나라는 게 있는데···.’
타타르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툭툭 두들기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때 그가 있는 치료 막사로 마족 병사 하나가 들어왔다.
“타타르 님! 민시우와 함께 쳐들어온 인간 헌터들이 아직도 날뛰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인간 헌터? ‘미스틸 테인’이냐?”
“아, 아닙니다. 그냥 오스트레일리아 소속 헌터들 같습니다.”
“그 정도는 너희들끼리 알아서 처리해라. 나는 바쁘니까.”
“예··· 알겠습니다!”
병사가 막사 밖으로 나가자 타타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후. 히카탄 놈이 질 것 같다면 보강 인원을 데려가면 되겠지.”
그는 막사에 설치된 포털을 타고 마계로 돌아갔다.
***
“어이, 바블레너.”
마계에 도착한 타타르가 바블레너의 숙소로 찾아갔다.
바블레너는 평소처럼 어두침침한 방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야! 누가 들어왔으면 아는 척이라도 좀 해라.”
“좀 해라아아···.”
타타르의 말에 바블레너가 느릿느릿 대답했다.
“어휴, 널 보면 답답해서 속이 뒤집힐 것 같다. 년 작전대로 일 수행하고 있는 거 맞아?”
“수행··· 맞아···?”
“에이 씨발, 내 말꼬리 잡아서 대꾸하지 말고. 시키는 거 잘하고 있냐고.”
“···하는 중이야아.”
앳된 소년으로 보이는 바블레너가 의자에 앉아 다리를 퉁퉁 튕기며 대답했다.
이 모습만 보자면 영락없는 장난꾸러기 소년이다.
타타르는 벽에 어깨를 기댄 채 바블레너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해 혜성 같은 속도로 권속의 자리에 오른 남자.
다른 능력이 출중해 제4계 마왕님이 직접 곁에 둔 것으로 유명한데···.
문제는 그의 실력을 가까이서 본 이가 아무도 없는 것.
권속들끼리는 서로 밝힌 것은 아니어도 상대의 능력을 대강이나마 알고 있었다.
부하들과 작전을 수행할 때가 있고, 그러다 보면 부하들의 입을 통해 능력이 전해지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바블레너의 경우는 달랐다.
오로지 혼자 처리하는 임무, 근처에 존재하지 않는 수하, 과묵한 걸 넘어서 대화가 통하지 않는 커뮤니케이션.
그 때문에 그의 제대로 된 힘이나 능력에 대한 모든 게 미지수였다.
‘전투 타입이 아니라고 들었다. 그리고 스킬이나 능력의 성향은 외모를 따라간다고 하지. 탐지형이나··· 서포트형일 게 분명해.’
타타르는 그간 옆에서 봐온 바블레너의 성격과 들리는 소문,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종합해 상대의 능력을 추측했다.
“너 지금 한가하면 나랑 같이 좀 가자.”
“가자아···?”
“히카탄과 솔라소가 지금 민시우라는 헌터와 싸우고 있거든. 민시우 알지? 이번에 권속들한테 처리 명령이 내려진 그 인간 놈.”
“인간 노오옴···.”
바블레너가 눈도 깜빡이지 않으며 타타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런데 히카탄과 솔라소가 해치우면 너나 내 입지가 곤란해지지 않겠어?”
“않겠어어···?”
“그러니 우리가 가서 민시우를 처리하자. 뭣하면 히카탄과 솔라소를 하나씩 맡아서 처리하고, 우리가 민시우를 죽인 걸로 해도 되고. 놈들은 민시우가 죽였다고 보고하면 되니까.”
자, 이제 판은 깔아 놨다.
모든 건 그가 짜 놓은 계획 위에서 움직일 것이다.
‘바블레너가 싸우는 걸 보고 누구 편에 설지 지켜봐야겠어. 그리고 마지막엔ㅡ 내가 모두를 죽인다.’
타타르가 입꼬리를 씩 올리며 상대의 대답을 기다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