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59
61화〉
겨울이 끝나고
차가운 눈송이 하나가 뺨에 닿았다.
생소한 감각에 입술이 떨린다.
“아···.”
순식간에 녹아내린 눈송이는
이윽고 한 방울의 물이 되어 볼을 타고 흘렀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강여화는 혀와 입술을 움직였다.
하지만 그녀에게서 나온 소리는 작은 숨소리뿐.
있을 수 없는 존재가 은은한 미소로 그녀를 내려보고 있었다.
정말 바라고 바라던 상황이건만, 강여화는 기쁨보단 불안함이 먼저 들었다.
내가 지금 미쳤나.
아니면 환각 상태에 빠졌나.
혹은 죽어서 저승에 왔나.
절체절명의 순간 시우가 나타났던 적은 수없이 많았다.
지금과 같은 위기가 닥치면 늘 마법처럼 등장해 구해 주곤 했던 영웅.
하지만, 지금은 시우가 나타나길 기대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기대할 수 없었다.
십 년간 머리카락 한 올조차 볼 수 없었던 사람인데.
느닷없이 자신을 구해 주러 모습을 드러낸다?
너무 만화책 같은 내용이다.
그렇기에 지금 그녀의 머릿속은 혼란 그 자체였다.
‘갑자기 지금··· 말이 안 되잖아···.’
여러 의문이 뒤엉켜 그 어떤 말도 나오지 못했다.
진심으로 간절히 원하던 소망이 이뤄지면, 사람은 바보가 되는 걸까.
아니면 이 달콤한 꿈에서 깨버릴까 두려워 입을 열지 않은 걸까.
의심과 불안, 걱정, 아주 작은 기쁨과 희망이 섞인 그녀의 머릿속.
그때 시우의 따스한 손이 여화의 볼에 닿았다.
그 손길을 중심으로, 그녀의 몸을 싸고 있던 두려움이란 껍질이 하나씩 벗겨지기 시작했다.
“스승···님?”
떨리는 입술과 목소리.
마치 꿈만 같은 장면이다.
꿈속에서 보았던 시우는 늘 이랬으니까 말이다.
선 짙은 얼굴, 장난스러운 미소, 따뜻한 눈빛.
“얼굴이 조금 말랐네? 젖살 빠졌나.”
스승님 얼굴은 그대로인데요. 10년 전 그대로요.
그녀는 입 밖에 내지 못한 말을 눈물과 함께 삼켰다.
점차 차오르는 감정에 입술이 파르르 떨려 꽉 깨물어야 했다.
스승님이다.
정말 스승님이다.
“방향치라 길 찾는 데 조금 걸렸다. 오래 기다렸지?”
여화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갯짓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시우는 피식 웃었다.
그녀는 두 팔을 시우의 목에 감고 그를 꽉 껴안았다.
다시는 가지 말라는 듯.
이제는 두 번 다시 혼자 보내지 않겠다는 듯.
시우는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뭐가 그렇게 서러워서 우냐.”
장난 섞인 그의 말에 여화는 흐느끼며 더욱 꽉 매달렸다.
오랜 시간 쌓이고 쌓였던 설움이, 늘 감춰 두고 내보이지 않았던 쓰라림이, 기나긴 어둠을 뚫고 흘러내렸다.
“끅··· 끄윽··· 흐윽··· 으으윽···.”
그녀의 눈물이 꽉 움켜쥔 손톱처럼 시우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차마 지켜보기가 너무 애처롭고 미안해서,
시우는 그저 가만히 안아 주었다.
몇 년 같은 몇 초가 흘렀다.
시우는 여화의 몸을 바닥에 조심히 내려놨다.
두 눈과 코끝이 빨갛게 물든 그녀는 시우의 소매를 움켜쥐고 훌쩍였다.
“이제 어디 안 갈게. 2분만 기다려 줄래.”
시우는 그녀의 흐르는 눈물을 닦아 준 뒤에 몸을 돌렸다.
“기다려 줘서 고마운데.”
귀살단은 그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기다려 준 게 아니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4호를 한 방에 죽인 저력과 시우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서슬이 그들을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4호를 죽이셨네요.”
1호가 나자빠진 4호의 주검을 보고 먼저 입을 열었다.
“죽이면 안 돼?”
“제 사람이니까요.”
“너희가 먼저 죽이려 했잖아.”
“어떻게 확신하죠.”
“너네 귀살단이라며.”
1호는 고개를 뒤로 젖혔다가 다시 내렸다.
“제가 말했었나요.”
“네가 말하진 않았지.”
“그러면 누가 말했죠.”
“글쎄. 지옥에 가서 물어봐라.”
1호는 이제껏 보인 적 없는 분노를 노출했다.
아주 미약한 감정의 분출이었지만, 이제껏 그와 함께 다닌 3호에게는 무척이나 놀라운 일이었다.
“1호··· 아니, 천슈에! 不行!(안 돼!)”
3호가 다급히 외친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1 호가 폭주하면 제지할 수 없으니까?
아니다.
분노에 반응한 ‘저 남자’ 때문이다.
“멈추기엔 늦었지.”
시우는 비릿한 웃음을 흘리고는 목을 두둑 꺾었다.
“시작한다.”
【알았다 식량. 놀아 보자.】
쿠ㅡㅡㅡㅡㅡㅡ웅
밑바닥 끝까지 집어삼키는 거대한 압박감.
그저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전신이 칼로 난자당하는 듯한 살기.
“끄허억··· 허억···.”
3호는 커다란 무언가에 짓눌린 것처럼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다른 이들보다 마력을 잘 감지하는 능력 탓에, 시우의 광활한 마력을 읽어 내다 과부하가 걸린 것이다.
그는 코에서 피를 줄줄 흘렸다.
이기든 지든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다.
“끄으윽··· 시간을 끌어!”
3호는 온 힘을 쥐어짜 2호에게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크··· 크르르르!”
2호는 자신을 압도하는 살기에 저항하다가 3호의 명대로 시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희한하군.”
시우는 나른하면서 서늘한 눈빛으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
2호의 날카로운 수갑구가 시우를 갈가리 찢기 위해 들이닥치는 순간,
“각성자가 아니네.”
시우는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그녀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힘껏 내갈겼다.
우두두둑!
콰ㅡㅡㅡㅡㅡ과가가!
갈비뼈가 바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땅을 헤집는 굉음이 산자락을 뒤흔들었다.
그 흔들림이 채 가시기도 전,
시우의 발밑으로 칙칙한 술식이 새겨지며 널따란 마법진이 기이하게 움직이더니 새까만 그림자가 되었다.
[크레이지 드로잉 : 판타지아]1호, 천슈에의 가장 강력한 공격기.
스킬 시전자가 상상한, 가장 끔찍하고 괴상망측한 것들이 60초 동안 무차별적으로 튀어나오는 기술.
– 크어어어어
– 쿠르르 쿠르르
– 히, 히, 히
언뜻 보기에도 징그럽기 그지없는 존재들이 그림자를 매개로 튀어나왔다.
“이만 죽으시죠.”
1호의 감정 없는 목소리가 건조한 바람처럼 전해지자, 새까만 그림자들이 시우를 향해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몸을 날렸다.
일그러진 형체들을 마주한 시우는 안색을 찌푸렸다.
저 기술은 정상적인 능력의 범주를 넘어섰다.
게다가 느껴지는 마력의 흐름 또한 자연적이지 못하다.
“뭔가 했더니 [이능계] 흑마법사였네.”
시우가 던진 말에 1호는 잠시 멈칫했다.
일반적인 마법과 달리 흑마법은 위력이 강대하고 마력 운용 자체가 자연의 이치를 거슬러 현현된다.
다만 그런 능력을 아무렇게나 사용할 수 있다면 그건 인간이 아닌 드래곤이나 마왕에 해당될 터.
따라서 흑마법사들은 대가를 지불하여 어긋난 순환 고리를 억지로 만들어 낸다.
‘흑천락’의 두령들처럼 말이다.
‘왜 공격하지 않으시지···?!’
멀리 있던 강여화는 시우가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수십여 마리나 소환된 끔찍한 것들이 시우에게 들이닥치려는 급박한 상황인데 대체 왜.
“스승니이이임!!”
강여화의 시우를 향해 외치는 순간,
칙칙한 마법진을 다 씹어 먹고도 남을 거대한 크기의 술식이 눈밭을 불태우며 화르르 타올랐다.
콰아ㅡㅡㅡㅡ앙!!
괴물보다 더 높이 치솟는 화염.
그 뜨거운 아가리에 새까만 그림자를 집어삼킨 불길은 모든 걸 불태울 기세로 광풍처럼 주변을 휘몰아쳤다.
쿠와아ㅡㅡㅡㅡㅡ 과아ㅡㅡㅡㅡ!!!
– 끄에엑!
– 끄이이이···.
괴물들은 시우 곁에 다다르지도 못하고 화마의 불쏘시개가 되어 녹아내렸다.
그럴수록 불꽃은 더 커지고 더 뜨겁게 타올랐다.
1호는 자신의 스킬이 녹아내리는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능력에 죽지 않은 자는··· 없었는데 말이죠.”
단 한 번도 실패한 적 없는 스킬이다.
이걸 깨는 건 물론이거니와 공격에서 빠져나간 상대도 없었다.
문자 그대로 파훼 불가능한 이능.
“60초를 전부 다 써야겠군요.”
1 호는 ‘대가’를 더 지불하여 마법의 강도를 높였다.
잠시 몸이 휘청였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크와아아아악!
히, 히, 히
괴물들은 더욱 혐오스러운 모습으로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왔다.
화염으로 불살라 놓으면 다른 한 마리가,
그 괴물을 없애면 또 다른 한 마리가.
놈들은 계속해서 끈적이는 몸을 일으켰고, 그때마다 시우는 그것들을 다시 태워 소멸시켰다.
1호는 남은 마력을 때려 박아 60초의 시간을 소환에 전부 할애했다.
그러나 마지막 남은 괴물마저 불길에 타들어 사라지자 [크레이지 드로잉]은 자동으로 해제됐다.
“···시간이 지났군요.”
거저 배운 기술이 아니다.
단순한 마법도 아닌 대가를 바쳐야만 사용할 수 있는 흑마법이다.
이걸 익히느라 걸린 시간이 얼마이며 그간 낸 ‘대가’가 얼마인데.
“고작 화 속성 마법으로 내 그림자를 없앴군요.”
시우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고작이라니. 듣는 사람 섭섭하게.”
“흑마법이란 건 어떻게 바로 아셨죠.”
1호는 사위를 둘러보았다.
반경 수십여 미터.
화마가 휩쓸고 간 자리엔 풀조차 남지 않고 모조리 재가 되어 있었다.
이렇게 무력하게 상대에게 제압당한 적은 그로서 처음이었다.
콰득!
그때 시우가 1호의 목덜미를 잡아 들어 올렸다.
1호는 이 상황에서 벗어날 만큼의 체력과 마력이 남아 있지 않아 그저 버둥거리기만 했다.
“크윽··· 컥!”
아귀힘 한 번이면 부러질 것 같은데, 목울대를 틀어쥔 손가락은 더 깊이 파고들지 않았다.
1호는 무감각한 눈빛으로 입에서 피를 흘렸다.
죽음에 대한 공포마저도 없었다.
지금 드는 감정이란 임무 실패의 아쉬움과 가문에서 벗어난··· 약간의 후련함뿐.
“너 흑마법 대가로 뭘 내놨냐.”
“그게 뭐가··· 궁금··· 컥!”
시우는 놈의 마스크를 강제로 벗겼다.
“더럽게도 먹혔군.”
1호의 얼굴은 이미 알아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눈과 귀, 형체도 없는 코와 입술.
그야말로 누군가 한입씩 뜯어먹은 것처럼 거칠게 찢긴 흉터였다.
“흔하디흔한 능력 중독자의 얼굴이네. 거울 볼 때마다 쪽팔리지도 않냐.”
1호는 분노하고 싶었다.
모든 마력을 강제로 긁어모아 시우의 면상을 그림자로 씹어 먹게 하면 그 분노가 사그라들 것 같았다.
하지만ㅡ
1호는 마력을 모으지 못했다.
순간 솟구쳤던 분노도 다시 사라졌다.
“얼굴은 그만큼 뜯어먹혔는데 다른 곳이 멀쩡한 걸 보면ㅡ.”
시우는 놈의 몸을 슬쩍 관찰하더니 대강의 사실을 추측했다.
“내장이나 근육, 아니면 감정, 기억 같은 걸 줬나 보지?”
1호는 무덤덤한 얼굴로 시우를 바라봤다.
그는 감정을 잃어 가고 있었다.
아니, 거의 모든 감정이 없어졌다.
분노라는 감정도 그에게 있어선 잠깐 스쳐 지나가는 희미한 잔향 같은 것일 뿐.
시우에 대한 살의 역시도 순간순간 짧게 피어나는 불꽃에 불과했다.
“네가 아는 거에 대해서 불어라.”
“아는 게 없어요.”
시우는 혀를 쯧, 찼다.
너무도 뻔한 대답에 짜증이 난 것이다.
그래서 질문을 달리했다.
“你们到底谁是龙头?(너희 두목이 누구냐?)”
1호는 살짝 놀란 눈으로 시우를 쳐다봤다.
조금 전 3호가 부른 이름 때문에 안 것인가.
“我…不知道···。(나는 모른다.)”
1호는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없이 다시금 뻔한 대답을 했다.
이제 와 살겠다 발버둥 치고 싶지 않았다.
“혹시 살아야 할 이유가 있나?”
시우의 질문에 1호, 천슈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好, 我就烧死你!(그래, 널 태워 죽여 주지!)”
시우의 손끝에서 뻗친 마력이 술식을 따라 샛노란 섬광을 일궈냈다.
1호의 하나밖에 없는 눈이 빛을 파악하기도 전,
꽈과과과ㅡㅡㅡㅡㅡ!!
하늘에서 쏟아진 낙뢰가 천슈에의 몸을 갈가리 찢어발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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