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layer who hides his past RAW novel - Chapter 24
◈ 24화. 이의를 제기하지 (2)
마르셀로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군더더기라고?’
마탑의 실세, 수석 마법사.
그 자리는 결코 쉽게 오를 수도.
지킬 수도 있는 자리가 아니다.
능력은 물론.
수석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선.
끊임없는 성과를 내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탐색 과정에 문제가 있단 말인가?’
당연하게도.
마르셀로는 수석 마법사란 자신의 위치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뭐?
탐색 과정에서의 군더더기가 존재해?
‘심지어 모험가……?’
게다가 그런 지적을 해온 건 모험가였다.
수석 자리를 탐내는 선임 마법사들조차 입을 다물고 있거늘.
마법에 관해 무지한 모험가가.
어찌 저런 의문을 제시할 수 있단 말인가?
크리스탈 홀.
“일 났군.”
“마르셀로 성격에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걸세.”
“그나저나 저 사내는 대체 누군가? 처음 보는 얼굴인데……?”
청중이 웅성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훌륭한 발표에 난데없이 찬물을 끼얹은 꼴이나 다름없었으니.
곧 마르셀로가 폭발하리라.
선임, 숙련 마법사 가리지 않고 독설을 내뱉는 독사로 변해서는…….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잠깐, 저 대답은 무엇인가?
청중이 동요했다.
헛소리라고 생각했다.
그저 쓸데없는 트집을 잡는다고 생각했단 말이다.
마르셀로가 틀림없이 폭발할 것으로 생각했건만.
저런 반응을 보인다는 건…….
“……혹시 뭔가 일리가 있는 질문이었나?”
문득, 작게 들려온 목소리.
마르셀로는 속으로 대답했다.
‘인정할 수밖에 없다. 군더더기는 존재한다.’
그건 괴리 때문이었다.
마법과는 전혀 다른 개념의 과학.
그 두 가지 개념을 융합해 새로운 마법을 발현했다.
그 과정은 심히 비효율적이었다.
마르셀로만 하더라도 이 보잘것없는 화염의 구체를 발현하기 위해 수개월을 매달린 참이었으니까.
사실 되물은 지금도 마르셀로는 납득할 수 없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한계란 말이다.’
허나 드높은 프라이드를 가진 마르셀로라고 한들.
언제까지나 그도 마탑의 마법사였다.
학회에서 지적을 받는 것?
그따위 수치보다.
마법, 본질에 관한 탐구가 최우선이란 소리였다.
그래서 사내에게 물어본 것이었다.
마르셀로의 질문.
그에 청중의 시선이 사내에게 집중됐다.
잠자코 지켜보던 플레이어들이 수군거렸다.
“……야야, 잠깐 저거 이호열 아니야?”
“이제야 눈치챘어? 저런 은발 컨셉충이 또 있겠냐?”
“봤지? 내가 우리 과라고 했잖아. 근데 무슨 연금술사 이 지랄. 딱 봐도 우리 마법사 클래스처럼 고귀함이 몸에서 묻어나오는 게…….”
“거, 학회 중에 예절 좀 지킵시다.”
예절.
그것도 호열의 앞이 아니던가.
그 소리에 플레이어들은 얼른 입을 다물었다.
물론, 제시는 아까부터 말을 걸어오는 고깔모자의 말도 무시한 채 허리를 곧게 편 상태.
배꼽에 양손까지 모은 아주 공손한 자세였다.
쏟아지는 관심.
“……와씨. 없던 울렁증도 생기겠다.”
“나였으면 말 더듬었다. 진짜.”
“그냥 혀 깨물었지.”
게다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들은 하나같이 대단한 마탑의 마법사들이었다.
위축될 법도 하건만.
호열에게선 긴장의 ‘ㄱ’ 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호열은 여전히 크리스탈 의자에 착석한 채였다.
그 곧은 자세에도 변화는 없다.
그런 호열이 대답했다.
“나 또한 그 괴리를 경험했다. 마르셀로 수석 마법사.”
……경험했다고?
아니, 그전에 자신이 괴리를 느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아차린 것인가?
당황한 마르셀로.
이내, 그를 위로하는 듯한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괜찮다.”
“……?”
화륵─
이내, 호열의 손바닥에서 화염이 피어올랐다.
그 화염이 회전하며 화염의 구체로 변해갔다.
마르셀로의 것과 똑같이 생긴.
“……!!!”
그 광경에 크리스탈 홀은 충격에 빠졌다.
물론, 당사자인 호열은 태연하게 말을 끝마쳤지만.
“간섭 과정에서 원심력을 이용한다라. 과정은 미숙했으나 그 결과는 나쁘지 않군. 훌륭한 발표였다. 마르셀로 수석 마법사.”
*
화르륵─
손바닥 위에서 회전하는 화염 구체.
나는 탄식을 삼켰다.
……이렇게 활용할 수도 있었구나.
그저 마력 효율이 좋지 않아 사용을 꺼렸던 발화.
그런데 원심력이란, 초등학교 수준의 과학을 더했더니 그 마력 효율이 대폭 상승했다.
보다시피 적은 마력으로도 오랫동안 발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
‘역시 오길 잘했다.’
수석 마법사, 마르셀로의 화염 구체뿐만이 아니었다.
학회에서 발표된 마법들은 하나같이 대단했다.
물론, 내 형편없는 마력으로는 발현할 수 없는 수준의 마법이 즐비했다만.
‘머릿속에 다 남겨뒀으니.’
마력만 뒷받침된다면 곧바로 발현할 수 있으리란 확신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엔 극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훌륭한 발표였다.”
무엇보다 마르셀로에게선 동지애가 느껴졌다.
나도 괴리감에 고생 꽤나 했었지.
과학과 마법처럼.
서로 완벽히 다른 두 개념.
며칠 밤을 꼬박 새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 아무리 대단한 마탑의 수석 마법사라고 해도 며칠은 고생했을 거야?
저 피골이 상접한 얼굴만 봐도 알 수 있다고.
“자, 잠시 휴식을 가지고 학회를 재개하겠습니다!”
벌써 쉬는 시간인가.
나는 여전히 손바닥 위의 화염 구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보다 크게 발현했을 때도 이 마력 효율이 유지될까.’
그럼, 조금은 덜 구질구질하게 싸우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내게 누군가 다가왔다.
해골…….
아니, 마르셀로 수석 마법사였다.
‘……뭔데.’
나는 속으로 흠칫했다.
내심 신경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내가 그의 연구 결과를 지적한 꼴이었으니까.
그것도 정기 학회란 대단한 행사에서 말이다.
“내게 용건이 있나. 마르셀로 수석 마법사?”
물론, 내색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이 몸뚱아리가.
주둥이가 이렇게 거만하게 생겨버린 걸 어쩌겠는가?
그런데 이어지는 마르셀로의 말이 생각 외였다.
“모험가, 이호열 님.”
마르셀로는 격식을 갖춰 나를 불렀다.
그러고는 정중하게 부탁했다.
“제 연구에 함께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 순간, 내 시야가 점멸했다.
[퀘스트 : 마르셀로의 연구]마법사의 탑, 수석 마법사 마르셀로.
그가 한 차원 진보한 마법에 도달하기 위해.
당신과 함께하기를 원합니다.
─마르셀로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진행 중)
……마법도 모자라서 퀘스트까지?
나는 다시금 생각했다.
역시 학회에 참석하길 잘했다고.
*
유스라 제도.
태평양 한가운데.
쾌청한 하늘.
푸른 바다.
적당히 산들거리는 바람까지.
그것만으로도 휴양지에 온 것처럼 설레는데.
“언니, 뭔가 좀 아르카나 시절 느낌 나지 않아?”
“꿈과 희망이 가득하던 그때. 생각난다~”
“이럴 줄 알았으면 비키니라도 챙겨올걸.”
전설 속의 섬.
유스라 제도는 그 풍경도 가히 전설적이었다.
유스라 제도의 하나하나, 모든 것이 세간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고 했던가.
과연, 그 자연경관부터 어지간한 휴양지보다 아름다웠다.
“비키니 같은 소리 하네. 정신 사나우니까. 닥쳐봐.”
물론, 싸움밖에 모르는 광전사.
레오니에게 그런 감성을 바라는 건 무리였지만.
찬란하게 빛나는 모래사장 위.
레오니는 짝다리를 짚고선 삐딱하게 포탈을 바라봤다.
“존나 많네. 리얼로다가.”
플레이어들?
몰리는 게 당연하다.
유스라 제도가 어떤 곳인가?
과거, 아르카나가 게임에 불과하던 시절부터 모두가 찾던 보물섬이었다.
그 진상이야 까봐야 알겠지만.
기대감만으로 이만한 길드, 플레이어가 몰려드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네, 저는 지금 유스라 제도에 나와 있습니다.”
그런 유스라 제도와 플레이어들을 촬영하기 위한 취재진들도 뭐, 당연한 것이었다.
“저건 예상 못 했네.”
그런데 NPC들까지 몰려올 줄이야.
‘아니지, 이젠 아르카나인이라고 불러야 하나?’
어쨌든, 아르카나에서 소환된 이들까지 유스라 제도에 몰려든 것이었다.
몬스터나 균열엔 관심이 없어도 보물엔 관심이 있다는 거겠지.
“아, 대가리 쑤셔.”
또 경쟁자가 한 트럭 추가됐다……!
레오니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대충 둘러봐도 대단한 NPC들이 행차하셨다.
“라이언 하트 기사단에. 그림자 용병단에. 어쭈? 탐험가 연맹도? 아주 그냥 다들 보물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구만.”
불행 중 다행이라면.
마탑의 마법사들이 이번에도 한결같다는 것이었다.
마탑이 어떤 집단인가?
마법사, 하나하나의 무력이 상상을 초월하는 집단.
과거, 마탑이 움직이면 아르카나의 질서가 바뀐다는 말도 있었을 정도였다.
마탑의 마법사들이 연구에만 집중하는 게.
밸런스를 위한 것이란 우스갯소리도 있었단 말이다.
“후우─”
게다가 일당백의 괴물도 빼놓을 수 없겠지.
무엇보다 이번 유스라 제도엔 스칼이 모습을 드러낼 확률이 높았으니까.
랭킹 1위, 스칼.
그의 비상식적인 강함을.
레오니는 같은 랭커로서 잘 알고 있었다.
‘……아, 스칼에다 한 명 더 추가.’
이호열까지.
막막하구만.
레오니는 또 한 번 한숨을 뱉었다.
“그래도 뭐 하나 건져야지.”
그래, 자신만 경쟁을 걱정하는 게 아닐 것이다.
포탈 주변.
플레이어, 길드 간에 흐르는 미묘한 기류를 보면 알 수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고 있다는 것을.
뒤질 수야 없지.
“……언니, 왜 눈을 그렇게 떠?”
“저 새끼들이 띠껍게 꼬나보잖아.”
“그냥 언니가 귀여워서 쳐다본 거 아닐까?”
“귀엽긴 씹.”
레오니가 가뜩이나 삐딱하게 뜬 눈을 더욱 치켜뜬 순간이었다.
위잉─
새하얀 손목 위.
스마트 워치가 진동했다.
레오니는 통화를 연결했다.
“엉. 학회 벌써 끝났냐? 바로 오게?”
길드 랭킹.
21위에서 한 단계 상승한 20위.
버서커 길드에 마탑 정기 학회에 초청받은 길드원이 있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랬다.
이상한 건 길드원이 전해오는 말이었다.
“……뭐? 이호열이 수석 마법사를 꼽줬다고?!”
-아, 언니! 진짜 언어 순화 좀! 꼽준 게 아니라 지.적.
“그게 그거지 이씨. 그래서 깨졌어? 욕먹었어?”
그러게 아무리 잘났어도 말이야.
사람 봐가면서 뻗대야지 말이야.
마탑, 그것도 수석 마법사한테 개겼단다.
레오니는 킥킥 웃음을 삼켰다.
“먹을 걸로 치사하게 굴 때부터 알아봤다. 내가.”
……뒤끝 쩐다, 이 언니.
길드원들이 혀를 내두르기도 잠깐.
레오니가 경악했다.
“뭐, 뭐?! 인정해? 그 마탑 수석 마법사가?”
그 싸가지들이 지적을 받아들였다고?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놀랄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것도 모자라서 퀘, 퀘스트까지 받았어……?”
그 순간, 레오니는 상상하고 말았다.
괴물.
그 괴물이 마탑을 등에 업은 채.
유스라 제도에 등장하는 끔찍한 상상을……!
부르르─
레오니는 오한이 들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녀가 얼른 통화를 끊어버리고 말했다.
“우린 속전속결로 간다. 다들 준비해!”
그리고 그런 호열의 소식은.
레오니에게만 전해진 게 아니었다.
“응. 듣고 있어.”
“……이호열?”
“역시 마법사였구나, 그 새끼.”
마찬가지로 정기 학회에 참여했던 길드원들.
그들에게 속보를 전해 받은 이들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기 시작했다.
“……뭐라고? 마탑한테 퀘스트를 받아?”
“착각한 거 아닌가? 확실한 정보인가!”
“코앞에서 고개를 숙여? 그게 말이나 되는……?”
“형……. 우리 어떡하냐?”
서울의 이호열.
그가 태평양 한가운데.
유스라 제도의 분위기를 완전히 뒤바꿔놓고 있었다.
*
당연하게도 나는 마로셀로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뭔지는 몰라도 퀘스트였다.
누구는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는 퀘스트 말이다.
그것도 연계 퀘스트!
게다가 마탑의 퀘스트면 그 보상도 쓸만하겠단 생각이 들었거든.
왜, 마력 재생력 관련 아이템 하나라도 얻을 수 있다면 이득이었으니까.
‘그나저나…….’
나 지금 어디로 끌려가는 거지?
‘보상은 또 어딨고?’
나는 마르셀로의 뒤를 쫓아 마탑의 상층으로 향했다.
그 계단부터 범상치가 않았다.
두둥실─
내가 허공에 발을 내디디면 그곳에서 부유하던 대리석이 내 발을 떠받치는 구조였다.
놀이기구야, 뭐야.
와씨, 예전 같았으면 한 걸음도 못 걸었을 거다.
정말로.
“다시 한번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마찬가지로 허공을 부유하는 나무문.
그 고풍스러운 문짝 앞에서.
마르셀로가 내게 말을 이었다.
“이곳이 모험가, 이호열 님께서 사용하실 연구실입니다.”
설마, 이 연구실이 퀘스트의 첫 번째 보상인가?
그런 내게 마르셀로가 덧붙였다.
“연구에 필요한 게 있다면 무엇이든 말씀해 주시길.”
……그야말로 파격적인 대우.
감히 예상해 보건대.
마탑에 연구실을 배정받은 플레이어는 내가 최초 아닐까.
하지만 태연하게도.
나는 그 과잉 대접을 지극히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나는 대답했다.
“그럼 지금 바로 필요한 물품을 요청하지.”
책상 위.
양피지에 펜을 휘갈겨 나갔다.
──────
1. 마력 재생력 관련 마도구…….
──────
아주 당당하게도.
25화. 낙하산
『그랑펠에게 겸손이란 감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과소평가에는 증명을. 과대평가는 기어코 현실로 만들어 내고야 말았으니까.』
그것은 변하지 않는 천성.
그 사실을 알기에.
나는 망설임 없이 양피지에 목록을 추가해 나갔다.
──────
1. 마력 재생력 관련 마도구
2. 초급 마법 관련 서적
3. 중급 마법 관련 서적…….
──────
뻔뻔하게도.
많은 것을 요구해 미안한 마음이 들진 않느냐고?
유감스럽게도 들지 않는다.
말했다시피 나는 이 과한 대접에 반드시 보답해 내고야 말 테니까.
그러니까 결국 고생하는 건 나라는 거지.
뭐, 대충 가불이라고 생각하자.
나는 요구사항으로 가득 채운 양피지를 마르셀로에게 건넸다.
“곧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정말? 그게 전부야?
그렇게 뻔뻔하게 마음은 먹었어도.
마르셀로의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고 나니 이제야 마음이 놓인다.
그는 다시 한번 내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모험가, 이호열 님.”
그러고는 솔직하게 덧붙였다.
“그러나 당장으로선 제대로 된 연구를 진행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지적하신 대로 제 탐구 과정에 군더더기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쓴웃음을 짓는 마르셀로.
살점 하나 없는 얼굴이라 그런가.
애처로운 표정을 지으니 동정심이 싹튼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다.
‘그냥 보이는 걸 어떻게 설명하겠어.’
타고난 재능.
이건 노오오오력으로 되는 게 아니라고.
물론, 그런 속내를 뱉을 정도의 인성은 아니다. 내가.
“기다리지. 그대가 괴리를 극복할 때까지.”
말은 거창하게 했다만.
실상은 간단한 말이었다.
다음 퀘스트가 떠오를 때까지.
그냥 기다리겠단 뜻이었거든.
마르셀로가 조금은 밝아진 얼굴로 말했다.
“양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연구가 진행되는 동안 이 연구실과 연구에 필요한 모든 것은 요청 후 자유롭게 사용하시면 됩니다. 그럼…….”
탁─
마르셀로가 연구실을 떠나고.
나는 연구실에 홀로 남아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 풀렸다!
급발진하던 주둥이를 원망했던 게 무색하게도 말이다.
나는 내심 생각했다.
‘……설마, 이것도 행운 덕분인가?’
[이름 : 그랑펠 클라우디 아르페우스 로미오] [클래스 : 악마 사냥꾼] [레벨: 134] [능력치]근력 : 27 / 민첩 : 33 / 마력 : 84 / 행운 : 3
[보유 포인트 : 0]34레벨 상승.
나는 보유 포인트 33개를 마력에.
나머지 하나를 행운에 투자했었다.
‘사실 더한 행운은 바라지 않았는데, 진짜.’
왜, 클래스 퀘스트만 하더라도.
행운에 투자한 대가로는 충분하지 않았던가?
근데, 또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랬다.
‘이게 행운의 영향이란 법은 없지만.’
어째 행운에 포인트를 투자할 때마다 일이 잘 풀리는 것 같지 않나?
어쨌든, 좋은 징크스라고 생각하자.
생각을 정리하자 그제야 연구실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연구실치고는 엄청나게 호화스럽네.’
연구용 책상, 책장, 하다못해 깃털 펜까지.
무엇하나 심기를 거스르는 것이 없었다.
그랑펠의 심미안으로도 흠잡을 곳이 없다는 건.
대단한 수준이라는 거겠지.
‘플레이어들의 돈이 다 여기 있구나.’
과거, 악랄하게 골드를 빨아들이던 마탑.
지금이야 포탈의 사용료도 받지 않고 있지만.
게임이던 시절엔 정말 악명이 높았었지.
‘한마디로.’
플레이어들의 피와 땀으로 쌓아 올린 연구실이란 것.
나는 그에 대한 감상평을 내뱉었다.
“녹차가 없는 건 아쉽군.”
그래, 요구사항에 녹차 티백도 적을 걸 그랬…….
‘아니, 그게 아니라.’
날이 갈수록 뻔뻔해지고 있다, 나란 놈……!
무려 마탑이다, 마탑.
아르카나에서 최고로 꼽히는 세력 중 하나란 말이다.
그런 마탑에 수석 마법사 덕분에 연구실 하나를 꿰찬 지금.
내 처지는 영락없이 낙하산과 다를 게 없단 소리였다.
‘마냥 좋아할 상황이 아니란 거야.’
왜, 낙하산이라는 것도 기준치는 갖춰야 한다.
적어도 낙하산 기능은 할 수 있어야.
땅으로 곤두박질치지 않고 오랫동안 구름 위에 머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내가 할 일은 간단했다.
뭐, 여태까지와 별반 다를 게 없었거든.
가라앉지 않기 위해서였다면.
이번엔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발버둥 쳐야겠지, 또다시.
그런 의미에서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스스슥─
“!”
문득, 책상 위의 양피지에 글씨가 새겨지기 시작했다.
……과연, 마탑 마법사들의 메신저 같은 건가.
마법사답군.
생각하기도 잠깐, 나는 흠칫했다.
-요청하신 마도구가 가넷 홀에 준비되었습니다.
내가 요청한 마도구라는 건…….
‘마력 재생력 관련 아이템.’
최소 수억에서 수십, 백까지.
마탑의 수준을 고려한다면 그보다 더한 아이템이 존재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그런 아이템을 연구 목적으로 요청.
대여하여 사용할 권리를 얻은 것이었다.
내가 뭐라고.
낙하산한테 그런 걸 선뜻 내어줘도 되는 거냐고.
부담스러워하는 게 정상이건만.
나는 당당하게도 깃털 펜을 집어 들어 휘갈겼다.
-마탑의 안목을 기대하지.
*
마탑의 최상층.
천장을 수놓은 발광체 탓에 역광이 드리웠다.
마르셀로는 다섯 개의 그림자와 마주했다.
저들이 바로 마탑의 원로 마법사들이었다.
“자네의 판단을 존중하겠네. 마르셀로 수석 마법사.”
마르셀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원로들의 호출은 예상했던 것이었으니까.
‘모험가에게 공동 연구를 제안했으니.’
그것도 그 연구가 어디 보통 연구란 말인가?
어쩌면 지금의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될지도 모르는 연구였다.
그렇기에.
마르셀로는 마탑의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던 일을 벌였다.
‘그 지식이, 재능이 꼭 필요하다.’
보는 것만으로 곧장 마법을 따라 발현한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그런데 따라 발현한 마법이 어디 보통 마법이란 말인가?
마르셀로에겐 확신이 있었다.
‘게다가 그는 괴리에 대해 알고 있다.’
정확히는 그 괴리를 극복한 것처럼 말했다.
신기한 일이었다.
‘모험가가 어떻게 마법의 개념을 이해한 거지?’
자신만 하더라도 과학이란 개념에 고전하고 있거늘.
그러나 확실한 건 이번 연구에 그가 큰 도움이 되리란 것이었다.
침묵하는 마르셀로에게 그림자들이 말을 덧붙였다.
“그러나 그 판단에 관한 책임은 확실히 져야겠지.”
책임?
마르셀로는 터져 나오려던 비웃음을 삼켰다.
‘그대들이 책임을 언급할 자격이 있는가?’
이상에 빠져 현실을 외면하는 머저리들.
마르셀로는 원로 마법사를 증오했다.
마음 같아선 당장에라도 따져 묻고 싶었다.
이 마탑의 수많은 모순을.
그러나 그럴 순 없었다.
“물러가 보게, 마르셀로 수석 마법사.”
이내, 그림자들이 돌아섰다.
그들의 뒤로 거대한 마력 구체가 보였다.
그 마력 구체 안에서 부유하는 사람의 형체도.
“더 이상의 소란은 방해가 되지 않겠나?”
그 물음에 마르셀로는 고개를 숙였다.
빠득─
그가 작게 이를 갈았다.
‘언제까지 침묵하실 생각이십니까? 탑주님……!’
*
가넷 홀.
석류에 물든 것처럼 붉은 공간.
그곳엔 로브를 뒤집어쓴 마법사가 있었다.
“요청하신 마력 재생력 관련 마도구들입니다.”
……그나저나 뭐가 이렇게 많아?
그래도 마탑이기에.
기대하긴 했다.
하지만 이건 물량에서부터 기대 이상이었다.
나는 하나씩 마도구, 아이템을 살폈다.
[빙결된 지식] [등급 : 유니크] [제한 : Lv.550] [효과 : 빙결계 마법 사용 시, 소모한 마력 50퍼센트 회복.] [설명 : 위대한 빙결계 마법사의 유품이다. 생전 그가 이룩했던 마법적 지식이 목걸이에 그대로 빙결되어 보존되어 있다.]……잠깐, 시작부터 미쳤다.
무려 550레벨 제한 유니크 아이템이라니.
플레이어들 수준에서는 구경조차 할 수 없는 아이템이었다, 이건.
게다가 그 효과부터 장난이 아니다.
빙결계 마법 한정이라지만 소모한 마력을 50퍼센트나 되돌려준다니.
‘……레벨이 오를수록 효율이 말도 안 되겠네.’
왜, 고위 마법들은 그 마력 소모량이 상당했으니까.
정말 부르는 게 값이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한테는 그림의 떡이었다.
‘550레벨이라니. 400레벨도 넘게 부족하잖아.’
사소한 것에서도.
내가 낙하산이라는 게 실감이 난다.
허나, 당연하게도 속마음을 내비치는 일은 없다.
“훌륭하군.”
나는 태연하게 말하곤 다음 아이템을 살폈다.
……그런데, 어째?
[제한 : Lv.500] [제한 : Lv.600] [제한 : Lv.450]다 레벨 제한이 너무 높았다.
나는 발끈할 수밖에 없었다.
‘내 수준을 뭐로 보고……!’
과대평가도 이런 과대평가라니.
다른 마도구를 보여달라고.
당장이라도 말을 바꾸고 싶었지만.
양피지로 전달한 메시지가 있지 않던가?
‘마탑의 안목을 기대하긴 뭘 기대해!’
진짜, 입이 방정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런 내게 문득, 유달리 작은 아이템 하나가 눈에 띄었다.
이건 목걸이나 반지도 아니고…….
설마, 브로치인가?
내 관심을 알아차린 것인지 마법사가 말했다.
“그건 불완전한 마도구지만, 혹시나 하여 준비해 뒀습니다.”
불완전한 마도구라.
일단, 확인해 보자.
……어라?
일단, 레벨 제한은 합격이다.
[육망성 브로치 1/6] [등급 : 유니크] [제한 : Lv.100] [효과 : 마법 사용 시, 소모한 마력 10퍼센트 회복.] [설명 : 여섯이 모여 하나가 되는 브로치 중 일부이다. 극히 일부에 불과하기에 그 효과가 상당히 손실되었다.]지금까지 대단한 아이템만 구경해서 그런가.
효과가 밋밋한가, 싶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빙결계, 화염계, 다 제약이 있었어.’
소모된 마력을 50퍼센트, 40퍼센트씩 돌려준다고 한들.
까다로운 조건이 덧붙었었다.
하지만 브로치엔 보다시피 조건이 없었다.
‘게다가 내 전투 스타일을 생각하면…….’
내 전투 스타일이라고 해봤자, 뭐.
대단한 게 있는 게 아니었다.
마법이든, 과학이든.
그냥 있는 거 없는 거.
전부 끌어다가 처절하게 싸우는 게 내 방식이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선 여기 놓인 그 어떤 아이템보다 나에게 맞는다고 할 수 있었다.
“이걸 대여하지.”
무엇보다 까다로운 그랑펠의 심미안에도 합격.
내 선택에 마법사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다른 마도구는 필요 없으십니까?”
필요해도 쓸 수가 없다……!
그 사실을 죽어도 말할 순 없었기에.
나는 대답했다.
“나에겐 이걸로 충분하다.”
“그러시군요! 그 뜻 잘 알겠습니다.”
뭐지, 저 감탄한 듯한 표정은.
어째 내 말뜻을 오해한 듯싶었지만.
내게 더 이상 볼일이 없었다.
그래, 당장 오르지 못할 나무를 쳐다 봤자 뭐하겠는가?
그럴 시간에.
어떤 거목이라도 오를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니까 다시 발버둥 칠 시간이군.
나는 곧바로 가넷 홀을 빠져나왔다.
그런 나의 행선지는.
발아래로 보이는 플레이어들과 마찬가지로.
유스라 제도…….
가 아니라 그냥 평범한 균열이었다.
‘주제 파악해야지.’
보물섬, 유스라 제도.
그 별명부터 구미가 당기긴 했지만.
최소 적정 레벨이 350레벨이었다.
430레벨.
그 레벨보다도 강한 아스큐라 백작도 쓰러트렸으면서.
무엇을 겁내느냐고 묻는다면.
‘악마족이 없다……!’
그야 유스라 제도엔 악마족 몬스터가 등장하지 않았으니까.
내가 아스큐라 백작 영지에서 활약할 수 있었던 건 [천적관계]의 효과가 컸다.
효율이 뛰어난 『마법』이 있긴 했지만.
그 마법조차 향상된 마력이 없었다면 몇 번 발현하지도 못했겠지.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뭐, 다짐했던 바였다.
무엇보다 지금 나는 기반을 다지고 있었으니까.
그 기반을 다지기에 적합한.
마탑이란 뒷배도 얻은 참이고.
‘조급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까 유스라 제도는 나와는 거리가 먼…….
“!”
그때였다.
잠잠하던 클래스 퀘스트창이 점멸한 것은.
[클래스 퀘스트 : 태동]서막이 오르고 봉화가 피어올랐다.
최후의 악마 사냥꾼이여.
악으로 뒤덮인 세상을 밝혀나가라.
─나약해진 육체를 단련하라. (반복)
─유스라 제도의 거악을 조사하라. (진행 중)
……잠깐만, 이러면 말을 바꿀 수밖에 없잖아?
나는 지체하지 않았다.
곧바로 브로치를 정장 라펠에 꽂았다.
전장에 나서는 것치곤.
너무나도 고상한 전투 준비.
그러나 나는 더없이 진지하게 말했다.
“실전만큼 효율적인 훈련도 없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