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24)
24 화 다키아 이르멜.
다키아 이르멜.
“그렇습니까? 그거 참으로 비극적인 이야기로군요.”
나는 내 몫의 말고기를 익히는 데 집중하며 추임새를 넣었다. 맛은 못 느끼지만, 타서 퍽퍽한 것보다는 적당히 익어서 쫄깃한 게 나았다.
고기를 굽던 다키아가 황금빛 눈동자를 천천히 움직여 나를 바라보았다.
“조금 더 성의를 담아서 추임새를 넣어주시는 게 어때요? 당신이 전혀 관심이 없다는 걸 제가 눈치 못 채게끔.”
나는 굽고 있던 말고기를 입으로 가져가 한 입 깨물어보았다. 뜨겁고 촉촉했다. 맛은 안 느껴졌지만. 내가 말고기를 단검으로 잘라서 조금씩 떼어먹자 다키아가 물었다.
“그거 덜 익은 거 아니에요?”
“저는 조금 덜 익더라도 부드러운 편을 좋아합니다. 공녀님.”
카르멘은 자기 몫의 고기를 굽는 데 집중하며 말을 꺼냈다.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제 결혼을 빌미로 자신을 용왕국(龍王國)에 팔아버리려고 한 게 분명하다는 추측이 나올 부분이었죠?”
다키아는 카르멘을 한 번 째려보곤 입을 열었다.
“맞아요. 그런데 둘 다 제 이야기에 너무 관심이 없는 거 아니에요?”
나는 고기를 한 점 더 집어먹으며 답했다.
“처음 들을 땐, 저희도 열심히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이번이 벌써 세 번째로 말씀하시는 거니, 저희가 이야기에 집중 못 하는 부분에 대해선 다키아 공녀님께서도 어느 정도 이해해주셔야 하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다키아 공녀의 주장은 간단했다. 자신을 눈엣가시로 여기는 오빠가 이르멜 가의 가주 자리에 권리를 가지고 있는 자신을 아예 치워버리기 위해서 얼마 전 들어온 용왕국의 혼담을 빌미로 자신을 거기에 떠넘겨 버리려고 했다는 것이 이야기의 주요 골자였다.
나는 고기를 한 점 더 베어서 입안에 집어먹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비단결처럼 고운 은발과 황금이 담긴 두 눈. 우리가 대신 구워주겠다고 했지만, 공녀는 굳이 고집을 부려서 잘 굽지도 못하는 고기를 이리저리 뒤적거렸다. 결국, 고기의 겉부분이 새카맣게 타버려서 어쩔 줄 몰라했지만.
“이걸 드시고 그건 저한테 주시지요.”
나는 내 몫으로 잘라둔 고기 중 잘 익은 것들을 골라서 그녀에게 넘겨주고 탄 고기를 받아 타버린 부위들을 잘라내고 적당히 익은 부분만 골라 먹었다.
‘살해!’
그냥 탄 거 먹게 내버려두라며 꿈틀대는 어머니를 꾹꾹 눌렀다. 다키아는 내가 내민 접시를 받아들고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잘 먹을게요···.”
“다음에는 더 잘 구우실 겁니다. 굽는 와중에 이야기하는 걸 조금만 줄이신다면 말이죠.”
공녀는 나를 가볍게 흘겨보곤 내가 구운 고기를 한 점씩 입 안에 넣고 오물오물 씹어먹었다.
‘마법사’ 공녀라.
그녀는 개인적으로 이르멜 가의 가주 자리에 관심이 많아 보였지만, 그녀가 마법사인 이상 그 자리를 차지하는 건 쉽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녀가 그녀의 오빠를 직접 죽이기라도 하지 않는 이상.
귀족들은 ‘마법사’를 꺼렸다. 정확히는 자신의 가문에서 ‘마법사’가 태어나는 걸 꺼렸다.
거기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첫째론 당연히 마법사의 일반적인 성향 덕분에 그들에게 기본적인 예절을 가르치기 힘든 데다, 특유의 자기중심적인 태도와 귀족의 지위가 결합되어서 치는 사고들을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마법사’들은 권력을 가져선 안 된다는 오랜 미신 때문이었다. 이 미신은 고대 제국 이전, ‘비뚤어진 마법사들의 시대’에서부터 내려온 믿음으로 대부분의 종족들은 마법사가 권력의 중추에 앉는 것을 굉장히 꺼렸다.
마법사들의 평균적인 인성 수준을 보면 영 틀린 믿음도 아니긴 했지만.
물론, 영주의 자리에 오른 마법사들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녀가 노리는 것은 북부 왕국의 네 명밖에 없는 대영주 자리니만큼 더 큰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열심히 고기를 주워 먹던 다키아가 나와 카르멘을 보곤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혹시 제안 하나 해도 괜찮을까요?”
여기서 나올 제안이라면 뻔하지. 그녀가 꺼낸 제안은 역시 내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저를 이르멜 가의 영지인 ‘베아투스’까지 데려다주세요.”
하지만 그녀가 내건 보상은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당신들 몸무게만큼의 금으로 보상할게요.”
역시 대영주의 가문. 통이 컸다. 그것도 아주 컸다. 내 몸무게와 맞먹는 무게의 금이라. 이거 약간 혹하는데.
‘살해!!!’
오늘부터 당장 살을 찌워서 몸을 무겁게 하자는 어머니의 조언을 새겨들으며 카르멘의 눈치를 보았다.
내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이번 여행의 의뢰주는 카르멘이었고, 그의 어머니는 서쪽에 있었다. 반면 이르멜 가의 영지인 베아투스는 서남쪽에 있었기에 공녀를 데려다주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어머니를 찾는 여정이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카르멘이 계속 서쪽으로 간다는 선택을 한다면 나는 당연히 내 몸무게만큼의 금을 포기할 생각이었다. 나한텐 그의 의뢰가 먼저였기도 하고, 카르멘은 어머니의 손이 화장당할 뻔한 걸 한 번 구해주기까지 했으니까.
카르멘은 가슴에 맨 유물 목걸이를 한 번 쥐고서 눈을 감았다. 잠시 후 그는 빙그레 웃으며 공녀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이왕 관여하기로 정한 일. 끝까지 책임을 지는 게 발타스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길이겠지요.”
공녀, 다키아 이르멜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기를 한 점 집어먹었다.
“좋네요.”
***
우리는 그칠 줄 모르는 눈을 맞으며 걸어나갔다. 일행에 다키아가 합류한 지 벌써 닷새. 그사이 벌써 한 번의 습격이 있었다. 물론, 불행히도 내가 불침번을 설 때 기습한 그들은 한줌의 신성이 되어서 내게 수확 당했지만.
[신성 : 1741]카르멘이 두 눈을 가늘게 뜨고서 소리쳤다.
“지도가 맞다면 아마 머지않아 마을이 나올 겁니다!”
다키아가 어깨 위에 잔뜩 쌓인 눈을 털어내며 큰소리로 외쳤다.
“그거 진짜죠! 진짜 뜨거운 물에 몸 한 번 푹 담글 수 있는 거 맞죠?!”
나는 가장 앞장서서 눈길을 나아가며 답했다. 얼굴 위로 닿는 눈들이 차가웠다.
“저기 불이 보입니다!”
우리는 환호를 내지르며 눈보라 속을 내달려 마을로 들어섰다. 도착한 곳은 나름 꽤 큰 마을이었기에 다행히 여행자들을 위한 여관이 있었다.
우리가 여관으로 들어서자, 왁자지껄하게 떠들던 이들이 대화를 멈추고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게 나는 지금 습격자들의 무기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어서 여행 가방 옆에 매달려 있는 검만 해도 열 자루가 넘었다. 뒤이어 따라 들어온 다키아가 로브 위에 내려앉은 눈을 털어내며 내게 말했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그거 안 무거워요?”
“그냥저냥 들만 합니다.”
“진짜 힘이 장사시네요.”
빠르게 여관주인에게 다가가 방을 잡고 온 카르멘이 들뜬 얼굴로 말했다.
“3층 복도 끝 방 세 개를 잡았습니다. 목욕물도 부탁해놓았고요. 얼른 올라가서 씻고 같이 저녁 먹죠.”
우리는 말없이 3층으로 올라가 뜨끈한 물에 몸을 녹이고 저녁을 먹기 위해 다시 모였다. 검은 로브를 푹 눌러쓴 다키아가 노곤한 얼굴로 말했다.
“눈 맞으면서 걷는 건 생각보다 엄청 피곤하네요.”
대충 주문을 끝마친 카르멘이 가볍게 대답했다.
“그래도 공녀님 체력이 좋아서 참 다행입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마을에 도착하지도 못하고 뻗으실 줄 알았으니까요.”
카르멘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공녀는 진짜로 웬만한 성인 남성보다 체력이 훨씬 좋았다. 다키아는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단련을 빼먹지 않았거든요. 게다가 마르낙 사제님이 무거운 걸 대부분 다 들어주시기도 했고요. 진짜 대단한 건 마르낙 사제님이죠. 그 무거운 걸 혼자서 다 든 채로 저 눈밭을 걸어왔으니까요.”
카르멘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마르낙이 진짜 힘이 장사긴 하죠.”
나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별거 아닙니다.”
잠시 그렇게 두런두런 떠들고 있자, 잘 구워진 소시지와 빵을 비롯한 음식들이 푸짐하게 나왔다.
역시 여행은 돈주머니가 두둑해야만 했다. 음식들의 맛을 못 느끼는 나는 그냥 냄새만을 음미하며 천천히 식사를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떠드는 소리를 배경으로 수저를 달그락거리며 식사를 하던 와중, 새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꺅! 이러지 마세요.”
“흐흐흐. 거 탱글탱글한 게 손맛이 아주 좋네.”
얼큰하게 취한 사내 넷 중 하나가 종업원 아가씨의 엉덩이를 주물럭거렸다. 사내들은 용병들로 보였는데, 나름 무장이라고 할만한 것들을 충분히 갖춘 채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나와 카르멘은 여느 여관에서나 흔히 벌어지는 일에 신경을 끄고 식사를 하는 데 집중했다.
어차피 곧 여관 주인이 나와 알아서 저들을 어르고 달래서 잘 대처할 테니까.
“저는 이만 다른 분들 주문받으러 가봐야 해요.”
“잠시만 앉아보라니까. 응? 잠시만 딱 그 예쁜 궁둥이 좀 붙이고 앉아 있다가.”
“아빠!”
종업원 처녀의 새된 목소리에 주방에서 중년 남성이 튀어나왔다. 여관 주인으로 추정되는 남자는 그 두꺼운 팔뚝으로 최대한 부드럽게 종업원과 남자 사이를 떼어내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저희 여관은 창관이 아닙니다. 혹시 매춘부가 필요하신 거라면 따로 연락해서 불러드릴 테니 잠시만 참아주십시오.”
무척이나 정중한 말이었지만, 불행히도 얼큰하게 취한 네 남자에겐 그 정중한 한마디가 매우 고깝게 들렸는지, 얼굴이 터질듯이 붉게 달아올랐다. 한 사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여관주인에게 소리쳤다.
“시발! 내가 뭐 자자고 했나? 응? 그냥 옆에 앉아서 술이나 조금 따르고 이야기나 좀 들어달라고 한 건데 겨우 그거 가지고 유세를 떨어? 네 딸년 궁둥이짝은 황금으로 만들어 졌냐?”
다른 사내 하나가 벌떡 일어나서 여관주인을 향해 소리쳤다.
“크하하하! 오늘 그 잘난 딸년의 황금 궁둥이짝을 한 번 구경해보자고!”
분위기가 과열되자, 카르멘이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무래도 싸움이 날 거 같은데 도와주는 게 좋겠지?”
나는 아무 맛도 안 느껴지는 소시지를 우물우물 씹으며 앞을 가리켰다. 내 앞자리는 이미 비어있었다.
“벌써 한 명 갔습니다. 얼른 도우러 가죠.”
제비처럼 뛰쳐나간 공녀의 주먹이 가장 맨 앞에 서 있던 남자의 턱을 파고들었다. 턱을 얻어맞은 남자가 훨훨 날아서 벽에 처박혔다.
“이, 이건 대체 또 무···.”
퍽.
다키아는 말없이 검집째로 검을 휘둘러 당황하고 있는 남자의 관자놀이를 후려쳤다. 그녀는 또 한 사내가 쓰러지는 걸 확인하지도 않고 주먹을 휘둘러 자리에 앉아있던 남자의 얼굴에 박아넣었다.
“개시발!!! 이년은 또 뭐야!”
재빨리 검을 뽑아든 남자가 다키아의 등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나는 대체 비겁하게 기습하려는 건지, 아니면 정중하게 공격을 예고하는 건지 구분이 안 가는 사내의 머리통을 붙잡고 그대로 바닥에 처박았다. 나무 바닥이 부서지며 피가 튀었다.
평온한 얼굴로 검집을 허리춤에 맨 다키아가 내게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요.”
“별거 아닙니다.”
뒤이어 천천히 걸어온 카르멘이 다키아를 향해 부드럽게 말했다.
“적어도 상의는 하고 뛰쳐나가셔야죠. 저희는 일행이 아닙니까.”
다키아는 우물쭈물거리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옛날부터 정의롭지 못한 일들을 보면 저도 모르게 열이 받아버려서···.”
공녀는 자신에게 분노조절장애(憤怒調節障礙)가 아니라 정의조절장애(正義調節障礙)가 있다고 수줍게 고백해왔다.
이거 안 좋은데. 진짜 안 좋은데.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여관주인이 딸과 함께 깊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나는 심란한 속을 감추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도와야지요.”
“마르낙, 받아.”
어느새 기절한 사내들의 몸에서 돈주머니를 찾아낸 카르멘이 내게 돈주머니를 던졌다. 나는 가볍게 그 주머니를 받아서 여관주인에게 넘기며 말했다.
“이걸로 부서진 물건들이랑 가게를 수리하시면 될 겁니다. 그럼 뒤처리를 부탁해도 괜찮겠습니까?”
얼굴이 험악한 여관주인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예, 예! 마을 자경대를 불러서 뒷얘기가 안 나오도록 깔끔하게 처리해두겠습니다.”
나는 여관주인에게 고개를 끄덕여주곤 카르멘과 다키아를 향해 말했다.
“그럼 저희는 식사나 마저 하도록 하죠.”
***
똑똑.
어두운 밤. 나는 방을 나와 다키아의 방문을 두드렸다.
“누구···?”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에 나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공녀님. 접니다.”
“아, 네.”
그녀가 무방비하게 문을 여는 그 순간. 나는 거침없이 안으로 파고들어 그녀의 입을 막아 주문을 외는 걸 봉쇄했다. 다키아의 황금빛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읍?! 읍읍읍읍!”
문을 걷어차서 닫고는 버둥대는 그녀의 머리 옆에 서리강철 검을 쑤셔 넣었다. 공녀는 귀옆을 스쳐 지나간 검날을 보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고 침묵했다. 그녀의 두 눈에는 ‘대체 왜?’라는 의문이 한가득 들어있었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공녀님께선 조용히 제 말을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괜히 카르멘이 깨지 않게요. 아시겠습니까?”
내가 천천히 서리강철 검을 들이밀자, 다키아가 침을 꼴깍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들을 준비가 된 걸 확인한 나는 부드럽게 말을 꺼냈다.
“공녀님께서는 명석한 분이시니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만, 저희는 지금 쫓기는 신세입니다. 그런데 방금 전처럼 상의도 없이 남의 일에 끼어들면 저랑 카르멘이 무척이나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아, 혹시나 착각하실까 봐 미리 말씀드리자면 공녀님이 끼어든 것 자체를 탓하는 게 아닙니다. 사전에 상의도 없이 뛰쳐나간 게 잘못됐다는 거죠. 여기까지 이해하셨습니까?”
다키아가 두 눈을 빠르게 깜빡이며 이해했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아까 공녀님께서 정의롭지 못한 일을 보면 열이 받아서 도저히 못 참으신다고 하셨죠? 하지만 다음번에는 정말 열심히 참아보셔야 할 겁니다.”
천천히 서리강철 검을 움직여 공녀의 목에 가져다 대고 속삭였다.
“한 번만 더 이런 식으로 상의 없이 주의를 끄시면, 저는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공녀님의 힘줄을 끊어버린 다음, 추적자들에게 공녀님을 넘길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그건 너무나 비극적이고 슬픈 이야기지 않습니까?”
내 속삭임을 듣던 다키아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나는 서리강철 검을 허리춤에 집어넣고 희게 미소 지었다.
“저는 공녀님이 다음부터는 저희랑 잘 상의하고 현명하게 행동하실 거라 믿습니다. 제 이야기를 잘 알아들으셨으면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주세요.”
공녀의 고개가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였다. 나는 주문을 외면 그대로 목을 날려버릴 만반의 준비를 끝마친 채로 그녀의 입에서 손을 떼었다. 다행히 다키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럼 편안한 밤 되시길.”
멍하니 서 있는 다키아를 뒤로 한 채, 문을 닫고 그녀의 방을 빠져나와 내 방으로 돌아왔다.
‘살해!’
“너무 성급한 행동이 아니었냐는 어머니의 의문은 지극히 타당하십니다. 하지만 이 건은 어차피 더 큰 문제가 생기기 전에 언제고 한번 말해야만 하는 문제였습니다.”
나는 어머니의 손을 두드리며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이젠 다키아가 진짜 ‘정의조절장애’가 있는지 알 수 있겠지요.”
과연 그녀는 생명의 위협을 느꼈음에도 한순간의 정의감에 휩쓸려서 멋대로 행동할 수 있을까?
‘살해!’
‘다음부턴 쉽게 못 뛰쳐나간다.’에 걸겠다는 어머니의 말씀에 나는 키득키득 웃었다.
“저도 어머니랑 같은 곳에 걸 생각이니, 아쉽게도 이번 내기는 성립하지 않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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