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249)
249 화 일전.
일전.
쾅! 쾅! 쾅!
잘 포장된 제국의 길바닥이 부서지며 자욱한 먼지와 돌가루가 흩날렸다. 맹신(盲信)의 하바스는 자신의 등 뒤에서 뻗어 나온 두 개의 굵은 녹색 식물 줄기들로 카디쇼를 향해 거침없이 휘둘러댔다.
쾅!
또 한 번의 일격. 카디쇼는 침착하게 몸을 기울여 간발의 차이로 채찍과도 같은 줄기를 피해냈다. 그녀는 그렇게 조급해하지 않고 침착하게 눈앞의 선지자와의 거리를 좁혀나갔다.
하바스는 마치 아이와 놀아주듯 카디쇼가 두 발자국 다가오면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그녀가 거리를 좁히는 것을 허락했다.
쾅! 쾅! 쾅! 쾅!
‘온기 없는 빛’의 권능, 은색 봉에서 뻗어 나온 꺾이지 않는 밝은 주홍빛으로 카디쇼는 정확하게 자신의 머리를 노리고 다가오는 식물 줄기를 빗겨냈다. 줄기는 빛에 닿아 궤도가 엇나가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빛을 휘감아 그녀를 잡아당기려 했다.
그것은 그녀가 바라던 바.
짧은 순간, 카디쇼는 권능을 해제했다. 그 결과 무엇보다도 단단한 빛이 일순 점멸했다. 빛덩어리를 휘감으려던 하바스의 왼쪽 줄기가 빛이 사라진 허공을 감싸 안자, 자연히 두 줄기의 연계로 지켜지던 철통같은 방어에 일말의 빈틈이 생겼다.
그녀는 그 빈틈을 파고들었다.
이 순간을 기다렸다. 내디딘 발에 여태 숨겨왔던 힘을 더한다. 잔뜩 힘이 들어간 터질 듯이 허벅지와 종아리 근육이 즐거운 비명을 내질렀다.
생각이 앞서면 늦어버리는 그 찰나의 빈틈. 카디쇼는 늘상 훈련해왔던 대로 몸을 움직여 빛이 꺼진 봉을 휘두르며 기도했다.
“‘온기 없는 빛’이시여. 부디 제게 약자들을 지킬 힘을.”
환히 타오르는 주홍빛이 휘몰아치는 신성과 함께 은단 단봉의 양 끝자락에서 뻗어 나온다. 그녀는 절대 꺾이지 않는 빛으로 만들어낸 선명한 광선을 휘둘렀다.
퍽!
살점이 뭉개지는 소리. 새빨간 피와 하바스의 뭉개진 아래턱이 허공을 날아 바닥에 처박혔다.
일격을 먹였음에도 카디쇼는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두 손이 유려하게 움직이자 광선봉이 가속해 한차례 회전하며 그 끝으로 하바스의 골통을 게걸스럽게 노렸다.
빡!
하바스의 오른쪽 줄기가 두 번의 공격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이 카디쇼의 광선봉을 막아냈다. 카디쇼는 침착하게 세 번째 공격을 먹이려 했지만, 하바스의 반대편 줄기가 그녀의 빈틈을 파고들어 왔다.
찰나의 순간, 카디쇼는 저울질했다. 지금의 우세를 부여잡고 조금 더 공격을 이어나갈 것인가. 아니면 적의 공격을 일단 막아내고 다시 한번 기회를 노릴 것인가.
사실, 고민할 것도 없었다.
오늘은 꽤나 기나긴 하루가 될 예정이었으니 벌써 다치는 것은 최악의 수였다.
광선봉을 꺾어 허리를 노리고 파고드는 줄기를 빗겨냈다. 허나 광선봉 너머로 전해지는 강렬한 충격을 다 해소하지 못한 탓에 기껏 좁힌 거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자신을 밀어내는 힘에 애써 저항하지 않고 그대로 몸을 맡겨 튕겨났다. 카디쇼는 바닥을 통통 튀듯 뒤로 물러나며 남은 충격을 해소한 다음 다시 돌격할 준비를 하기 위해 자세를 낮췄다.
“그르륵…”
하바스의 뜯겨나간 아래턱의 단면을 따라 피와 침이 뒤섞여 줄줄 흘러내렸다. 그가 무어라 말을 하려 했지만, 혀까지 뭉개진 탓에 거품 끓는 소리만이 튀어나왔다.
그는 자신의 아래턱의 빈자리를 매만지고는 또 한 번 자세를 낮추고 있는 카디쇼를 바라보았다.
선명한 연둣빛 눈동자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가장 먼저 자라난 것은 혀의 근육이었다. 뒤이어 새하얀 아래턱뼈가 뭉개진 단면을 뚫고 튀어나와 턱의 뼈대를 갖추었다. 새하얀 뼈대를 타고 새빨간 근육들이 자라나자 조금 늦은 박자로 근육들 위로 새하얀 살갗이 자라나 새빨간 근육들 위를 예쁘게 덮었다.
“아아.”
턱을 매만지느라 손에 묻었던 피를 털어낸 하바스는 몇 번 목을 가다듬고는 카디쇼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나?”
카디쇼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바스는 으레 당연한 일이라는 듯이 여전히 웃는 낯으로 저 혼자 말을 이어나갔다.
“인상적인 일격이었네. 그대가 오기 전에도 열댓 명의 사제들을 죽였는데, 이 정도로 큰 상처를 입힌 건 그대가 처음이었지.”
하바스가 여유롭게 말하는 와중에도 그의 등 뒤에서 자라난 두 갈래의 식물 줄기는 뱀처럼 꿈틀댔다.
그 움직임에 아직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카디쇼는 하바스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다음 공격을 어떻게 이어나갈지 계산했다.
“…하지만 내 말에 대답해주지 않는 건 그대가 처음이 아니었지. 나는 그대 같은 사제들을 보면 가끔 참으로 안타까워. 이 기회에 그대를 스스로 돌아보게. 그대가 지금 내 앞을 막아서는 이유를 말이야.”
“너는 누구지?”
무겁게 닫혀 있던 카디쇼의 입이 열렸다.
“지금 이 수도엔 너 정도 역량을 지닌 악신의 숭배자가 몇이나 더 있는 건가?”
갑자기 대화에 응한 건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간 프리디야에게 두들겨 맞으며 배운 여러 교훈이 있었는데, 그 교훈 중 하나가 바로 사람은 말할 때 자연스럽게 빈틈이 생길 확률이 높다는 사실이었다.
프리디야는 정말이지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놓고 대답을 하면 그 틈을 타서 두들겨 패는데 도가 터 있었다.
단련을 빙자해 무참히 얻어맞던 기억이 모락모락 떠오르자 카디쇼는 재빨리 도움이 안 되는 그 기억들을 털어냈다.
“나만한 역량?”
하바스는 여전히 서글서글하게 웃었다.
“그대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것 같군. 이 기회에 소개하지. 나는 맹신(盲信)의 하바스. 부끄럽게도 리베라티오의 여섯 기둥 중 하나를 맡고 있다네.”
“맹신(盲信)의 하바스…?”
예상외의 대답에 카디쇼는 눈앞의 사내를 위아래로 훑었다.
탱탱한 피부와 채 서른이 되지 않아 보이는 앳된 얼굴. 사전에 펄리에게 그녀가 들었던 묘사와는 전혀 다른 생김새였다.
“맹신(盲信)의 하바스는 노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얼마 전까지는 그랬지.”
그는 짧게 덧붙였다.
“카디쇼.”
갑작스레 불린 이름에 카디쇼가 작게 당황한 사이, 하바스의 입가에선 미소가 자취를 감췄다. 그는 조금 언짢은 기색으로 카디쇼를 바라보았다.
“내가 그대의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나 그게 궁금한 건가?”
그의 등 뒤에서 두 개의 구멍이 쩌억 벌어지고 새로운 식물 줄기 두 개가 천천히 뻗어 나왔다.
“너는 프리디야, 그 여자의 일행인데 내가 모를 수가 없지.”
이젠 네 개로 불어난 줄기들을 보며 카디쇼는 싱긋 웃었다.
“나도 네 이야기를 듣긴 했지. 그날, 리베라티오의 선지자라는 체통도 버리고 누구보다도 구차하게 도망쳤다던데.”
으득.
하바스는 작게 이를 갈았다. 그는 짜증 어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구차하게 도망친 적이 없다. 잠깐 물러났던 것뿐이지.”
‘순환’을 빨리해 젊어진 탓에 하바스는 젊은 육체에서 터져 나오는 감정의 기류를 간신히 가라앉혔다. 마음은 몸을 따라가는 것인지. 기나긴 순환 속에서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노인의 육체였을 때보다 젊은 육체였을 때 감정의 격류가 심했다.
하바스가 미처 죽이지 못한 한마디가 그의 입에서 비집고 새어나갔다.
“프리디야가 네게 그렇게 말했나? 내가 구차하게 도망쳤다고?”
빈틈. 빈틈이 조금씩 벌어지고 있었다.
카디쇼는 지금 자신이 저 하바스를 공략할 실마리를 붙잡았단 사실을 깨달았다. 뻗어 나온 줄기 수가 늘어났음에도 그의 감정이 격해지자 오히려 빈틈은 줄기가 둘일 때보다 커졌다.
“글쎄…”
그녀는 말을 끌며 어떤 말을 해야 저 선지자가 더 격렬하게 화를 낼까 고민했다. 고르고 고른 한마디가 송곳처럼 튀어나왔다.
“솔직히 프리디야는 딱히 신경도 안 쓰던 거 같더군. 사실 잘 기억도 안 나는 듯했다. 내가 몇 번이나 되물은 다음에야 겨우 떠올릴 정도로.”
“…뭐?”
제대로 미끼를 물어버린 하바스의 모습에 카디쇼는 속으로 미소지었다.
“뭐, 어쩔 수 없지. 나도 인상적이지 못한 상대는 쉬이 기억하지 못하는데, 프리디야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
하바스의 팽팽한 이마 위로 굵은 주름이 파였다. 그는 거의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말이 전부 사실이냐?”
“내가 네게 거짓을 고할 이유가 있나?”
“인상적이지 못했기에 기억을 못했다라… 좋아.”
하바스는 언제 인상을 찡그렸냐는 듯이 빙그레 웃었다.
“그럼 네 목을 잘라내 프리디야 앞에 던져주면서 내가 나타나면 이번엔 조금 인상적일 수 있겠군.”
“꿈이 크다고 해주지.”
카디쇼는 말을 하면서도 짧게 혀를 찼다. 분명 방금 전까지 그는 제대로 흥분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찬물을 끼얹기라도 한 듯 갑자기 흥분을 가라앉혔다.
자연히 벌어지고 있던 빈틈도 자취를 감추었고.
하바스가 무어라 다시 입을 열려던 그때. 커다한 외침이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응징의 천칭이시여!!!”
새하얀 빛으로 이루어진 망치가 하바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교화교 사제의 권능, ‘징벌의 망치’. 뒤이어 일련의 무리가 카디쇼와 하바스를 향해 내달려왔다.
“쯧.”
짧게 혀를 찬 하바스가 줄기 하나를 뻗어 떨어지는 빛의 망치를 쳐냈다.
“하아아압!!!”
두터운 갑주를 입은 교화교 사제가 기다렸다는 듯이 거리를 내달려 거대한 망치를 휘둘렀다. 하바스는 또 다른 줄기를 뻗어 망치를 쳐냈다. 그 순간에도 나머지 두 개의 줄기 또한 쉬지 않았다.
하나의 줄기가 교화교 사제의 허리를 강타하자 갑옷이 우그러지며 사제가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줄기가 그대로 교화교 사제의 머리통을 뭉개버리려던 그때. 또 한 번 신성이 일렁였다.
그와 함께 줄기가 떨어지는 속도가 확연히 느려졌다. ‘틀어진 시계’의 권능으로 하바스가 감속된 틈을 타 한 사제가 뛰쳐나왔다.
푹.
피 묻은 가죽 모자를 눌러쓴 사제는 외투를 휘날리며 튀어나와 손에 든 쇠꼬챙이 하바스의 심장을 꿰뚫었다.
“쿨럭.”
하바스가 역류한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근육 거한의 사제가 바닥에 처박혔던 교화교 사제를 끌어내 짧게 기도를 올렸다.
수복교 사제의 기도를 따라 신성이 움직여 교화교 사제의 몸이 빠르게 치유되어갔다.
깔끔한 연계. ‘틀어진 시계’를 모시는 사제는 심장을 꿰뚫은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꼬챙이를 잡아당겨 빼내고는 뇌를 뭉갤 생각으로 하바스의 머리를 노리고 꼬챙이를 내질렀다.
으드득.
그러나 꼬챙이는 제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다섯 번째 줄기. 하바스의 가슴팍에서 뻗어 나온 새로운 줄기가 사제의 손목을 우그러뜨렸다. 뼈와 살점이 서로 뒤섞이며 뭉개지는 와중에도 사제는 비명 하나 내지르지 않고 그대로 꼬챙이를 놓고서 손을 빼내기 위해 힘을 주었다.
하바스는 피식 웃었다.
“그대로 뜯어 주…”
퍽!
선명한 주홍빛 광선이 그대로 하바스의 골통을 뭉개버렸다. 하바스의 정신이 사제들에게 쏠린 사이 기습한 카디쇼는 하바스의 뭉개진 머리가 완전 곤죽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두들겼다.
이윽고 하바스의 몸뚱이가 쓰러지자 새롭게 나타난 교화교 사제가 다시 한번 소리높여 외쳤다.
“응징의 천칭이시여!!!”
새하얀 빛과 함께 떨어진 빛의 망치가 하바스의 남은 몸뚱이를 그 줄기와 함께 으깼다. 카디쇼는 얼굴에 튄 피를 닦아내고는 눈앞에 나타난 다섯 사제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아직 방심하지 마십시오. 이 자는 리베라티오의 여섯 선지자 중 하…”
푹.
“그르륵…”
피 가래가 끓는 소리. 그 소리의 주인은 새롭게 나타난 사제들의 목에서 튀어나온 소리였다. 바닥에서 뻗어 나온 뾰족한 줄기의 속도는 여태까지 하바스가 휘둘렀던 줄기들과는 차원을 달리했다.
불의의 일격에 산 채로 뇌까지 꼬챙이처럼 꿰인 다섯 사제는 한마디 말도 못 하고 그대로 즉사했다.
아름다운 연록 빛 꽃봉오리가 바닥에서 맺혔다. 커다란 꽃봉오리가 갈라지고 그 안에서 나체의 남성이 몸을 일으켰다.
하바스는 목을 이리저리 풀고는 혀를 찼다.
“차라리 일격에 죽었으면 편했을 텐데 말이지.”
“쿨럭!”
간신히 반응한 카디쇼였지만, 그녀라고 그 꼬챙이 같은 줄기를 완벽히 피해내지는 못했다. 겨우 옆구리를 꿰뚫고 들어온 줄기를 뽑아냈을 땐, 이미 뚫고 들어온 줄기가 그녀의 내장을 한바탕 신나게 휘저어버린 다음이었다.
하바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연신 피를 토해내는 카디쇼를 바라보곤 가볍게 손짓했다.
쾅! 쾅! 쾅! 쾅!
바닥을 뚫고 나온 수십 가닥의 줄기가 카디쇼의 발목을 잡아채고는 무자비하게 그녀의 몸을 바닥에 내려찍고 또 찍었다. 하바스는 아까의 도발에 복수라도 하듯 잔인하고 집요하게 카디쇼를 유린했다.
“흠.”
뚝뚝 떨어지는 피. 입고 있던 일그러진 갑주와 살점이 이리저리 뒤섞여 카디쇼의 모습은 정육점에 매달린 도축된 짐승 시체를 닮아 있었다.
“이래선 기껏 머리를 잘라 가져가 봤자 알아보지도 못하겠군.”
흥미를 완전히 잃어버린 하바스는 그대로 카디쇼였던 고깃덩어리를 내던졌다. 그렇게 그녀의 몸은 바닥에 튕겨 구르고 굴러 돌무더기 속에 처박혔다.
새빨간 핏물만이 흙먼지 가득한 잔해 사이를 비집고 끊임없이 새어 나왔다.
***
“펄리.”
“왜? 왜? 왜 불러?”
“정말 카디쇼만 혼자 보내도 정말 괜찮겠습니까?”
“하아? 지금 내 완벽한 인원 배분에 감히! 감히! 이의를 제기하겠다는 거야?”
“혼자만 보내는 건 조금 걱정이 돼서 말이죠.”
“걱정은 카디쇼말고 다른 애들한테나 먼저 해야지! 적어도 카디쇼는 밝은 땅 위에 있잖아! 우리는 어둡고 음습한 리베라티오의 은신처를 향해 돌격하는 중이고!”
“그래도…”
“그만! 그만! 거기까지만 해! 너 카디쇼를 처음 만난 날을 잊었어? 솔직히 우리 일행 중에서 순수하게 제일 목숨줄이 질긴 거로 치면 카디쇼 걔는 마르낙, 너만큼이나 질기니까 걔 걱정은 진짜 그만해두라고! 어? 다 왔다! 여기가 바로 내가 말한 ‘문’이야!”
***
하바스가 카디쇼에게서 등을 돌린 그때.
“그르르르…”
성난 짐승의 그르렁거림이 그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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