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262)
262 화 거래?
거래?
“마르낙, 일단 더 큰 일이 생기기 전에 뒤부터 쫓는 게 나아 보인다. 움직이자.”
괴물이 저 안으로 들어가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이상, 카디쇼의 말이 골백번 옳았다.
“그러죠. 어서 갑시다.”
괴물이 지나갔던 입구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처음 보는 낯선 통로들이 우리를 반겼다. 눈으로 핏덩어리처럼 생긴 괴물의 흔적을 찾아보려 했지만, 핏자국을 뚝뚝 흘리며 다닐 거 같던 외형과는 달리 그 괴물이 지나간 길은 너무나 깨끗했다.
냄새로 그 뒤를 쫓으려 해도 이 도시 전역을 뒤덮은 진한 혈향 탓에 특별한 향은 맡아지지 않았다. 카디쇼는 빠르게 주변을 훑더니 벽에 얼굴을 가져다 댔다.
“이상하군.”
“뭐가 말입니까?”
“릴리라는 그 수인족 여자 말로는 여기 생존자들을 모아뒀다고 하지 않았나? 분명 그런 괴물이 들이닥쳤다면 보자마자 비명이라도 지를 법한데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다. 그나마 작게 수군대는 소리가 들리긴 하는데, 아무래도 그곳으로 가보긴 해야 할 것 같군.”
당장에라도 날뛸 듯이 들어가더니 일단 어디론가 숨은 건가?
앞뒤 안 가리고 날뛰는 편이 오히려 죽이기는 쉬운데, 역시 조금 귀찮은 타입의 괴물인 듯했다.
“그럼 일단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서 릴리랑 데스페라시오를 찾아보도록 하죠.”
그 데스페라시오라면 뭔가 더 아는 게 있겠지.
이제 굳이 급하게 달릴 이유가 없어진 우리는 뛰지 않고 걸어 복도를 가로질렀다. 널찍한 복도는 그리 사치스럽지 않은 수수한 장식들로 꾸며져 있었으나 제법 정갈한 모습에 신전다운 분위기가 넘쳤다. 다만, 이곳은 예배를 주로 받는 장소는 아닌지 거대한 예배당 같은 장소는 아직 눈에 띄지 않았다.
1층엔 딱히 돌아다니는 사람이 눈에 띄진 않았고, 우리가 처음으로 사람과 맞닥뜨린 것은 2층에 올라오고 나서야였다.
“으아아아악! 치, 침입자다!!!”
먼발치에서 우리를 발견한 중년 사내는 우리를 보자마자 비명을 지르더니 어딘가로 뛰어 사라졌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곤 그제야 지금 나랑 카디쇼의 모습이 리베라티오의 사제들마저 자기들 동료로 오해할 만큼 수상하단 사실을 되새겼다.
촉수들 때문에 카디쇼의 가면과 로브는 벗길 수 없는 상태니, 불필요한 소동을 만들지 않기 위해 나는 일단 내 사제복이 잘 보이도록 로브를 벗어 팔에 걸쳐놓고 사내가 사라졌던 방향으로 향했다.
카디쇼는 로브를 벗은 날 힐긋 보더니 조금 처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조금 우울하군.”
카디쇼의 나지막한 한마디에 나는 쓰게 웃었다.
“분명 몸을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이 있을 겁니다.”
“…그래.”
통로를 따라 조금 걸음을 옮기자 발걸음 소리 여럿이 우리를 향해 바쁘게 다가왔다.
다가온 소리 끝에 나타난 것은 나름 열심히 무장한 것으로 보이는 사내 여럿.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의 무장 수준은 솔직히 너무나 조악했다.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몽둥이 몇 개와 어딘가에서 뜯어온 듯한 나무판자들. 제대로 된 무장은 누군가 이미 다 들고 나가버린 듯한 그 모습에 나는 최대한 무해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려 노력했다.
“저희는 침입자가 아닙니다. 릴리라고 아시지 않습니까? 검은 토끼 귀가 있는 여자분요. 그분의 안내를 받아 우리는 이곳으로 왔습니다.”
내 소개에 중년 사내들은 저들끼리 나와 카디쇼를 번갈아 보며 수군대더니 가장 나이가 들어 보이는 사내가 입을 열었다.
“뭘 보고 너희를 믿어야 하지? 네 옆에 있는 자는 딱 봐도 수상해 보이는 옷차림을 하고 있다만.”
내 사제복을 보고도 별다른 반응이 없는 걸 보니 아무래도 카디쇼의 수상함이 내 사제복이 주는 신뢰를 넘어선 것 같았다.
저들은 내가 운 좋게 이 사제복을 어디서 주워입기라도 했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굳이 저희를 믿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저희는 이곳에 가만히 서 있을 테니 그쪽분들 중 한 분이 올라가셔서 릴리나 데스페라시오를 불러와 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럼 알아서 그분들이 저희의 신원을 보증해줄 겁니다.”
“흐음…”
다행히 말이 제법 통하는 사람이었는지, 그게 아니라면 굳이 싸우고 싶지 않았던 건지는 몰라도 사내들끼리 무어라 수군대더니 한 명이 빠르게 걸음을 옮겨 통로를 따라 떠나갔다.
그렇게 무척이나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고, 나는 정보나 수집할 겸 내려앉은 침묵을 깨뜨렸다.
“몇 명이나 살아있습니까?”
내 질문에 아까 대표로 말했던 사내가 잠깐 고민하더니 먼저 입을 열었다.
“정확한 수는 아직 파악 못 했다. 애초에 도망치느라 그럴 여유가 없었기도 한데다 거기다 두 분이 생존자들을 계속해서 구해서 데려오신 덕에 수가 계속 늘어나서 말이지.”
둘 다 제법 열심히 사람을 구하고 다닌 건가.
“혹시 핏덩어리가 살아서 움직이는 듯한 괴물은 본 적이 없으십니까?”
“…처음 듣는 이야기다만.”
아직 여기까지 오지 않은 건가.
내가 굳이 말을 더 잇지 않자, 다시금 침묵이 내려앉았다. 사내들은 사제복을 입은 나보다 수상한 복장인 카디쇼를 무척이나 경계하는 듯했다.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나고 어디론가 달려나갔던 사내가 돌아왔다.
“이야, 오랜만이네요.”
“마지막으로 본 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습니다만.”
사내의 뒤를 따라 언제나처럼 푸른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데스페라시오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며 등장했다. 그의 옆에는 우리보다 먼저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갔던 릴리도 데스페라시오의 옆에 있었고.
“그냥 제 기분이 그렇다는 겁니다. 자자, 레보튼씨. 저분들은 굳이 경계 안 해도 되는 분들이시니 가서 다시 쉬셔도 좋아요.”
사내들은 데스페라시오의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왔던 길을 따라 사라졌다. 사내들이 사라지자 데스페라시오는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향해 손짓했다.
“자자, 제 임시 사무실로 가서 이야기하도록 하죠. 아무래도 제가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도 하고, 그쪽에서 제게 듣고 싶으신 이야기도 있으실 테니까요.”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었기에 나는 데스페라시오의 말대로 그를 따라 그의 임시 사무실이란 곳으로 향했다. 데스페라시오의 사무실이란 곳은 방금 우리가 있던 복도에서 한 층 더 올라온 3층에 있었다.
여기저기 어질러진 물건들과 두툼하게 싸놓은 보따리 몇 개. 누가 봐도 업무를 보기 위한 사무실이라 보기 힘든 상태였지만 데스페라시오는 여유가 넘치는 동작으로 자리에 앉더니 맞은편 의자를 가리켰다. 릴리는 굳이 자리에 앉지 않고 그를 지키듯 데스페라시오의 등 뒤로 가서 섰다.
“두 분도 얼른 앉으시죠. 차라도 내드리고 싶은데 아쉽게도 딱히 내드릴만한 게 없네요.”
“필요 없습니다. 근데 왜 이리 어질러져…”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나는 지저분한 주변을 한 번 더 살펴보다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노려보자 데스페라시오는 당최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왜 그렇게 보시나요? 무섭게요.”
“너, 도망칠 생각이지?”
기본적으로 본디 사무실이란 것은 이렇게 어질러져 있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사내들이 데스페라시오를 따르는 모습을 보면 데스페라시오가 쓰는 사무실이 아무리 어질러져 있더라도 다들 자발적으로 청소를 하겠다고 나서고도 남았을 터.
처음부터 더러웠다면 애초에 굳이 사무실로 고르지도 않았겠지.
결국, 물건이 어질러진 것도 짐으로 보이는 보따리가 싸진 것도 모두 방금 막 일어난 일이고 그 말은 곧 데스페라시오가 저 보따리들을 들고 나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하하.”
데스페라시오는 멋쩍은 웃음을 터뜨렸다.
“맞아요. 그릇이 망가지고 신의 강림도 저지됐겠다. 이곳에 온 목적도 달성된 김에 슬슬 이 지긋지긋한 북제국의 수도를 뜨려던 참이었거든요! 돌아가면 그간 고생했으니 휴가도 한 번 길게 갈까 고민중이고요!”
“당신이 구한 사람들은 어쩌고 말입니까?”
“어쩌긴요. 다들 알아서 잘 사시겠죠!”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저들이 여태 살아있을 수 있었던 건 전부 데스페라시오와 릴리의 덕. 저 둘이 떠나면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깊게 생각해보지 않아도 뻔한 이야기였다.
당장 이 건물로 들이닥친 정체 모를 붉은 핏덩이 괴물의 행방조차 묘연했고.
“그런데 굳이 따지자면 오히려 저분들이 이미 한 번 목숨을 살려준 제게 더 매달리는 게 염치없는 일이 아닐까 싶은데요? 비유하자면 죽을 뻔한 걸 물에서 건져줬더니 보따리까지 내놓으라는 이야기나 다름이 없죠!”
무척이나 얄밉지만, 정론이기도 했다. 데스페라시오가 저들의 목숨을 이 사태가 끝날 때까지 책임질 이유는 정말이지 단 하나도 없었다.
다만 저 생글거리는 목소리는 마주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사람 속을 긁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렇게 걱정되면 지금부터 저랑 바톤 터치해서 마르낙 사제님이 직접 길 잃은 저들을 지켜주시면 어떨까 싶네요. 물론, 그간의 저랑 마르낙 사제님 사이의 정을 생각해서 특별히 인수인계는 제대로 해드리고 떠날게요.”
아직 스승님께서 하바스랑 전투 중이신 데다, 다키아네의 행방도 확인되지 않은 시점에서 이곳에 죽치고 앉아 사람들을 지킬 수는 없었다.
이 자식 다 알고 긁어대는 건가?
“아니면 저 나갈 때 결계 밖으로 같이 나가실래요? 마르낙 사제님이라면 특별히 일행분들하고 같이 데리고 나가드리도록 할게요.”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결계 밖으로 나갈 수 있으면 그냥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다 데리고 나가면 안 됩니까?”
“열댓 명이 빠져나가는 틈을 만드는 거랑 수백, 수천 명이 빠져나가는 구멍을 만드는 게 같을까요? 아니, 애초에 수천 명이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이면 결계를 깨버린 거나 다름이 없지 않나요? 아무리 저라도 혼자서 이 정도 규모의 결계를 깨는 건 사실 쉽지 않거든요. 제법 시간과 예산을 요구한다고요!”
“그래서 몰래 둘만 내빼겠다는 겁니까?”
갑자기 말을 멈춘 데스페라시오는 나와 카디쇼의 눈치를 보더니 어색하게 웃었다.
“…이거 말 한마디라도 더 했다간 저부터 족치실 기세네요. 근데 진짜 억울한 게 제가 여기에 모인 사람들만 살린 게 아니라 수도 곳곳에 미리 점 찍어둔 거점을 중심으로 사람을 제법 많이 살렸거든요? 허풍 조금 보태자면 최소 수천 명은 넘게 살렸을 거예요! 아무리 제가 지금 내빼려고 한다고 하지만 공이랑 과를 계산해보면 분명 공이 과를 한참 추월했을 거란 이야기예요!”
그는 푸른 가면을 살짝 들추더니 입가만을 보이며 슬쩍 미소지었다.
“과연 마르낙 사제님은 몇이나 되는 사람을 살리시고 열심히 일한 제게 이렇게나 과한 요구를 하시는 건가요?”
“…”
다 맞는 말이었다. 지금 따지자면 떼를 쓰고 있는 것은 부끄럽게도 데스페라시오가 아니라 나였다.
“저는 마르낙 사제님처럼 착한 사람이 아니라, 아시다시피 신의 강림을 막기 위해 사람들을 살렸거든요?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시겠어요?”
“무슨 뜻입니까?”
가면을 다시 내려쓴 데스페라시오는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 이해와 합치만 된다면 얼마든지 사람을 계속 구할 수도 있단 이야기지요! 서비스로 마르낙 사제님이 하는 일도 제가 도와드리고요!”
‘살해살해.’
그냥 상관없는 애들 다 냅두고 우리 일이나 하러 가자는 한마디.
어머니의 말이 일단은 맞았지만, 데스페라시오의 조건이 뭔지나 들어보고 정해도 안 늦었다. 저 능글맞은 자식이 나 오기 전에 충분히 도망칠 수 있었음에도 저렇게 나오는 걸 보면 분명 생각보다 쉬운 조건을 내밀게 분명했기에.
“…바라는 게 뭡니까?”
“일단은 정보네요. 정확하게 신의 그릇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그 과정을 알고 싶어요.”
“그건…”
펄리가 썼다고 말하자니 옆에 있는 카디쇼가 펄리의 정체를 모르는 것이 걸렸다. 거기에 펄 리가 신의 그릇을 썼다고 하면 카디쇼가 과연 가만히 있을까? 절대 아니었다.
“그런데 그전에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또 뭐가 궁금합니까?”
데스페라시오는 잠깐 뜸을 들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왜 몰래 잘 오시다가 2층에서 걸리신 거예요? 1층에 있던 사람들한테는 안 걸리셨으면서?”
“1층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예? 1층에 적어도 돌아다니는 사람이 수십 명은 있었을텐…”
그는 말하다 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여태까지와 달리 조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당장 밑층으로 가봐야 할 것 같군요. 이거 까딱 잘못하다간 마르낙 사제님이랑 거래할 사람이 하나도 안 남아날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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