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284)
284 화 코렌틴 최강의 주먹.
코렌틴 최강의 주먹.
– 오늘은 여기까지.
절그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임페트로가 자신의 대검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제야 나는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들을 훔쳐낼 수 있었다.
이곳은 현실이 아닐 터인데도 언제나 잠깐 방심하면 현실로 착각할 정도로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들고 있던 검을 대충 바닥에 떨어뜨리자 임페트로가 다가오더니 차가운 물을 내밀었다.
– 한잔해.
“뭐, 물을 술처럼 줍니까.”
대충 물을 받아든 나는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잔뜩 달궈진 식도를 차가운 물이 식혀나간다. 비록 맛을 못 느낄지언정 이 시원한 감각만은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맛까지 느껴지면 더 좋을 텐데 말이지.
– 그런데 쟤는 왜 저러냐.
임페트로가 가리킨 방향에는 ‘상투스’를 자칭하는 사기꾼이 언덕 위에 주저앉아 있었다. 멍하니 어딘가를 바라보면서.
물론, 얼굴을 온통 붕대로 칭칭 감아둔 탓에 대체 어딜 보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미세레에서의 일을 이제 알았거든요.”
둘 다 내 심상 공간에 거주하고 있었지만, 저 상투스는 임페트로와는 어딘가 달랐다. 내가 한 일을 대부분 알고 있는 임페트로와는 다르게 저 상투스는 생각보다 아는 것이 적었다.
그래서 그 간극을 이용해 내가 미세레의 일을 이미 결정한 걸 그에게 숨겼고, 이제야 상투스를 자칭하는 사기꾼이 미세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된 것이었다.
덕분에 제대로 삐지기라도 한 건지 저렇게 혼자 멍하니 있는 듯하고.
그런데 의외인 점은 내 앞에서 뭐든지 아는 것처럼 굴던 임페트로지만, 저 자칭 상투스에 대해서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듯했다.
솔직히 다행인 점은 저 가짜 상투스가 내 눈에만 보이고 대화할 수 있었던 탓에 임페트로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진 내가 진짜로 미쳐버린 건 아닌가 하고 혼자 고민을 꽤 했었다.
내 머릿속에 벌써 나 말고도 둘이나 산다니. 몇 명까지 늘어날까 조금 걱정됐다.
– 쯧. 사람 몇 죽는 게 뭐 별일이라고. 굳이 우리가 안 죽여도 매일 사람은 죽어. 시체가 둘이나 셋이나 뭐 크게 차이도 없지. 암.
“슬슬 일어나보겠습니다.”
– 그래. 나도 좀 쉬자 이제. 가봐.
시야가 암전되고 나는 다시 눈을 떴다.
눈을 뜨자 보이는 다 죽어가는 불씨. 나는 굳이 불씨를 살리지 않고 발로 밟아 끈 뒤, 곤히 자고 있는 둘을 깨웠다.
부스스한 눈으로 몸을 일으킨 레페와 페르카를 보며 말했다.
“움직이자. 슬슬.”
둘은 꾸벅꾸벅 졸면서도 잠자리를 대충 정리하고는 하품을 쩍쩍하며 떠날 준비를 끝마쳤다. 약간은 쌀쌀한 새벽바람을 맞으며 우리는 다시 걸음을 옮겨나갔다.
짐을 모두 실은 리어카는 내가 혼자서 끄니까 저 둘은 그냥 맨몸으로 걷기만 하면 됐다. 눈을 비비며 내 옆으로 걸어온 레페가 작게 하품을 했다.
“하암. 이 속도로 계속 이동하면 아마 오늘 저녁때쯤이면 제일 가까운 도시인 코렌틴에 도착할 거 같아요.”
“도시에 들르려고?”
“당연하죠.”
레페는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보고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저도 그렇고 페르카도 그렇고 제대로 몸을 못 씻은 지 꽤 됐단 말이에요. 뜨거운 물에 제대로 몸 좀 씻어서 이 찝찝함을 날리고 싶어요.”
나는 눈짓으로 리어카에 실은 커다란 가방 두 개를 가리켰다.
“저만큼 많은 황금을 들고 도시에 들르려고? 어차피 식량도 충분한데 그냥 고향까지 쭉 가지? 씻는 건 중간에 강이나 개울을 찾아내면 하고.”
“가는 길에 강이 없어요. 개울은 잘 모르겠지만. 굳이 강을 가려면 길에서 한참 벗어나야 할 텐데 괜한 수고일 거예요. 거기다 어차피 황금이 가득 있어도 굳이 저희가 저 가방을 안 열면 가방 안에 든 게 황금인 걸 모르겠죠. 안 그래요?”
맞는 말이었지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또박또박 말대꾸하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꿀밤을 한 방 먹여주면 싶은 욕망을 자극했다.
정말 간신히 꿀밤에 대한 욕망을 참아냈다.
우리의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있던 페르카가 대화에 끼어 들어왔다.
“그리고 혹시 황금을 조금 도둑맞더라도 크게 상관없지 않아요? 어차피 저희한테 ‘열쇠’가 있으니까 유적에 다시 가서 황금을 좀 더 가져오면 되죠.”
아직 뭘 모르는 게 많긴 하네. 얘네.
나는 페르카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너희가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게 있는데, 생각해봐. 유적으로 향하는 열쇠가 그렇게 만능이면 어째서 황제나 왕같이 높으신 분들이 고대제국의 유적에 있는 시설들을 거점으로 삼지 않았을까? 열쇠를 가지고 안으로 들어가서 숨으면 그 누구도 침입할 수 없는 완벽한 요새가 되는데 말이지.”
레페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내 눈을 끔벅이며 말했다.
“그렇네요? 왜 안 쓴데요?”
“왜냐하면 ‘열쇠’의 내구도가 한정적이어서 그래. 열쇠마다 내구도가 제각각이긴 하지만 결국 ‘열쇠’ 자체가 소모품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아. 먼 옛날 고대제국 시절이라면 열쇠를 다시 만들 기술이 있었으니 별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그 기술이 실전된 이상 열쇠가 망가지는 그 순간부터 그 열쇠로 연결된 고대제국의 유적은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장소가 되는 거야.”
유적엔 자체적으로 출구가 있으니 열쇠가 부서졌다고 갇혀서 영영 못 나오게 될 일은 없지만 말이지.
페르카가 주머니에 챙겨둔 열쇠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럼 언제 부서질지 모르니까 다음에 황금을 가지러 갈 땐 최대한 많은 사람을 데리고 가야겠네요?”
“뭐, 그렇지. 그때 웬만하면 너희 가문 사람들 좀 많이 데려가. 너희 가문의 피가 안 이어져 있으면 발동하는 함정이 좀 많더라.”
“네? 그때는 그냥 복도 따라서 왔다고 했잖아요.”
“사실 그냥 복도 벽을 부수고 나온 거야.”
케니랑 포사 두 놈이 살짝 수상해서 일부러 함정의 존재를 숨겼었고.
“레페! 저 말 진짜야?”
페르카의 물음에 레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좀 위험하긴 했어.”
“아니, 왜 말 안 해줬어? 위험했다고?”
“연 씨가 말하지 말래서.”
레페는 자연스럽게 나한테 책임을 떠넘겼다. 페르카가 왜 그랬냐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주절주절 설명하는 대신 짧게 답했다.
“꼬우면 덤벼.”
지난 며칠 동안 나랑 같이 지내면서 익숙해진 건지 페르카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날 향해 대꾸했다.
“그냥 말해주기 귀찮으면 맨날 덤비라고 하시는 거죠?”
“잘 아네.”
페르카는 무어라 궁시렁거리더니 한숨을 폭 내쉬었다. 그렇게 두런두런 떠들며 걷고 또 걸어 해가 조금씩 져갈 때쯤 저 멀리 도시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랜만의 침대랑 목욕을 잔뜩 기대한 건지 레페는 볼을 살짝 붉히며 잔뜩 신난 목소리로 눈앞에 나타난 도시, 코렌틴을 가리켰다.
“코렌틴이에요! 이야!”
당장에라도 뛰어서 도시로 향할 기세에 나는 레페의 어깨를 꾹 눌러 진정시켰다.
“둘 다 눈에 안 띄게 따라와. 도시를 크게 반 바퀴 빙 돌 생각이니까.”
페르카와 레페는 왜 그래야 하냐는 듯이 의문 가득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우리가 미세레에서 왔다고 동네방네 광고할래? 미세레 방향에서 도시로 진입하면 온갖 귀찮은 일이 생길 게 분명하잖아. 거기다 그 조사과정에서 너희 가방에 가득 황금이 담긴 걸 발견하면 그건 또 어떻게 설명할래? 황금 가득한 고대유적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래? 그럼 잘도 사람들이 너희를 가만히 놔두겠다. 잘 알아들었으면 조용히 몰래 따라와.”
다행히 내 말을 잘 알아들은 것인지 둘은 과하게 몸을 숨기며 살금살금 따라왔다.
굳이 저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크게 우회한 우리는 미세레가 있는 곳에서 정반대 방향의 문으로 코렌틴에 진입했다. 복작대는 인파와 사람들의 활기로 가득한 도시는 며칠 거리에 있는 옆도시에서 일어난 비극을 전혀 모르는 듯 무척 평화로웠다.
굳이 알려서 위화감을 조성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건가. 아니면 아직 정보가 여기까지 전달이 안 된 건가.
나랑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였기에 신경을 껐다.
레페는 발 빠르게 주변 사람에게 물어 가장 괜찮은 숙소를 수소문하더니 빠르게 결정을 마치고는 그대로 곧장 숙소로 우리를 이끌었다.
아무래도 몸을 정말 많이 씻고 싶었던 듯했다.
3층에 개인실로 방을 3개 잡은 우리는 몸을 씻고 다시 1층에 모이기로 했다. 적당히 따뜻한 물을 즐기며 목욕을 끝마치고 1층으로 내려오니 아직 둘은 내려오지 않은 상태였다.
내가 1등으로 내려온 건가.
왁자지껄한 1층에 대충 자리를 잡고 앉은 나는 지나가던 여급을 불러 적당히 식사메뉴를 주문했다. 페르카가랑 레페가 내려오면 바로 먹을 수 있도록.
잠시 후, 페르카가 계단을 따라 숙소 1층으로 내려오더니 나나 레페를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먼저 앉아 있던 나랑 눈이 마주친 페르카는 주변에 레페가 없는 걸 확인하고는 조금 어색한 표정으로 다가와 내 맞은편에 앉았다.
그러고보니 이렇게 레페 없이 단둘이 있는 건 처음인가.
“식사는 대충 주문해놨어. 나오면 먹으면 될 거야.”
“네.”
짧게 대답한 페르카는 할 말이라도 있는지 연신 내 눈치를 힐끔힐끔 보았다.
“왜? 할 말 있으면 해.”
“…그쪽 정도면 대체 얼마나 강한 거죠?”
“1:1로?”
“네.”
흠. 얼마나 강한가라. 솔직히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대충 겸손 좀 보태자면 이 나라에서 열 손가락 안에는 들지 않을까 싶은데.”
“그 정도로 강해요?”
“실제 결과는 붙어 봐야 알겠지만, 아마도?”
날 바라보는 페르카의 눈이 조금씩 더 반짝였다.
“검은 누구한테 배웠어요?”
“두 명한테 배웠어. 근데 말해줘도 넌 모를걸?”
“그럼 혹시…”
잠깐 뜸을 들인 페르카가 내게 물었다.
“…저희 고향 갈 때까지만이라도 제 검 좀 봐주실 수 있어요?”
며칠 동안 가끔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날 쳐다보더라니, 결국 목적이 따로 있었네.
나는 피식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봐준다고 내 실력이 닳는 것도 아니고. 시간 남는 대로 틈틈이 봐줄게. 대신 나중에 딴말하기 없다?”
“정말요?!”
내가 딱 배운 대로만 가르쳐줘야지. 아주 무자비하게.
말을 꺼내 보긴 했지만 내가 설마 승낙할 줄은 몰랐던 듯 페르카는 유례없이 기뻐했다. 앞으로 자기한테 무슨 일이 닥칠지도 전혀 모르고서.
잠시 후, 레페까지 내려오자 딱 맞춰서 내가 주문한 음식들이 차례로 나오기 시작했다.
먹을 복 하나는 제대로 있네. 딱 맞춰 오다니.
페르카는 갓 만들어져 맛 좋은 냄새들을 모락모락 뿜어대는 음식을 보더니 나와 레페에게 물었다.
“맥주 한 잔 시킬까요?”
“마음대로.”
“나도 한 잔!”
레페가 주문하기 위해 여급을 부르려던 그때, 저 멀리서 자그마한 소란이 일어났다. 1층이 제법 넓었던 탓에 사람들에 가려 잘 안 보였지만 대충 보니 여급을 만취한 취객이 붙잡고 안 놓아줘서 문제가 생긴듯했다.
저런 광경이야 제법 자주 있는 일이라 어차피 놔두면 알아서 잘 해결할 게 뻔했다. 여기가 외진 곳도 아니고 도시인데 누가 경비대에 신고라도 하겠지.
다만, 페르카는 나와 생각이 달랐던 듯 자리에서 일어나 취객들이 있는 테이블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레페는 그 광경을 보곤 아무렇지 않게 음식들을 한 점 두 점 집어서 먹기 시작했다.
“안 말려?”
“취객 말리는 것쯤이야 고향에서 페르카가 자주 하던 일인걸요. 알아서 잘 진정시키고 해결할 거예요.”
“나는 생각이 다른데.”
고향에서야 페르카의 집안도 제법 유명하고, 페르카 자신도 제법 유명할 테니 말로 잘 타이를 수 있었겠지만, 이곳 코렌틴은 안락한 녀석들의 고향이 아니었다.
고기를 한두 점 입으로 밀어 넣으며 구경하고 있자, 역시나 일이 잘 안 풀린 건지 취객이 말리던 페르카의 멱살을 틀어쥐고 무어라 고함을 쳐대기 시작했다.
더 나쁜 점은 취객의 일행이 제법 많았는지 취객이 흥분해서 고함을 쳐대자 뒤이어 여러 테이블에서 남성들이 일어나 페르카를 향해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어?”
당장 폭발해도 안 이상할 상황에 레페가 당황한 사이, 결국 취객이 페르카를 향해 먼저 주먹을 휘둘렀다.
페르카는 예상했다는 듯 취객의 주먹을 피하곤 그의 몸을 밀쳤다. 그러자 생겨난 공간으로 취객의 동료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성대한 싸움의 서막.
막 입으로 집어넣으려던 고기를 내려놓고는 주변의 비어있는 의자를 하나 들었다.
“뭐, 뭐하시게요?”
“싸움이면 나도 껴야지!”
이 절호의 스트레스 해소 기회를 놓칠 이유가 없었다.
나는 주저 없이 의자를 가장 가까운 놈에게 던지고는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날아 다른 놈을 걷어찼다.
걷어차인 녀석이 바닥을 구르며 처박히고, 나는 곧장 다른 놈에게 달려들었다.
“하하하! 다 죽어!”
치고받고, 적당히 맞아주고.
싸우느라 주변의 탁자를 대충 다 부숴 먹었을 때쯤, 두들겨 맞아 널브러졌던 취객들이 하나둘씩 몸을 일으키고는 내빼기 시작했다.
“두, 두고 보자!!!”
나는 내빼는 녀석들을 탁자 위에 서서 주먹을 붕붕 휘두르며 배웅했다.
“가서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오라고! 애송이 녀석들아! 흐하하하하!”
내가 승리의 포효를 내지르는 사이, 페르카는 곤경에 처했던 여급을 챙기고 있었다.
이제 진짜 곤경에 처한 건 그 여급이 아니라 장사할 탁자랑 의자가 잔뜩 부서진 여기 주인인데 말이지.
나는 주변을 둘러보곤 제일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는 중년 사내를 찾아냈다.
“여기 주인이야?”
“예? 예…”
딱 봐도 나한테 부서진 탁자와 의자들을 변상해달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대충 허리춤에서 돈주머니 하나를 잡아 그에게 던졌다.
“수리하는 데 써.”
잽싸게 주머니에 든 금액을 확인한 주인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가, 감사합니다. 혹시 따로 뭐 주문하실 건 없으십니까?”
나는 주변에서 그나마 멀쩡한 의자 하나를 찾아 바로 세워 앉은 다음 답했다.
“음료 아무거나 한 잔. 얼음 있으면 동동 띄워서.”
“옙.”
주인은 주방으로 잽싸게 들어가서 얼음을 동동 띄운 정체불명의 술을 가져왔다. 나는 내가 그 잔을 받아 한 모금 마시려던 그때. 여관의 문이 벌컥 열리며 성인 남성보다 족히 머리 세 개는 더 큰 사내가 들어왔다.
“우리 애들을 흠씬 주물러 준 게 누구냐! 당장 튀어나와!!!”
나는 손에 든 술을 원샷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나다! 승리의 여운에 취해있던 날 찾는 넌 누구냐!”
“나는 검은 멧돼지 칼라게인이다!”
당연히 모르는 이름. 하지만 이렇게 행패를 부린 게 하루 이틀이 아닌지 녀석을 보자 가게 주인이 가련한 토끼처럼 바들바들 몸을 떠는 게 보였다.
나는 빈 잔을 한창의 중년인 여관주인에게 건네며 미소지었다.
“걱정하지 마. 내가 모두를 구할게.”
“저, 정말입니까? 하지만 칼라게인은 엄청나게 강…”
“너는 술이나 한잔 더 가져와. 얼음 또 동동 띄워서.”
“네, 네. 부, 부탁드립니다.”
여관주인이 빈 잔을 들고 주방으로 다시 사라지자 검은 멧돼지 칼라게인이 나를 향해 소리쳤다.
“내가 이름을 말했으니 정체를 밝혀라! 너는 누구냐! 이방인!”
“나? 나로 말할 거 같으면… 하압!”
빠각!
녀석이 내 말에 녀석이 집중한 사이, 나는 그대로 내가 앉고 있던 의자를 들어 녀석에게 던졌다. 제법 실력이 있긴 한지, 칼라게인이 날아온 의자를 주먹으로 쳐냈다.
하지만 그 또한 내 예상 내.
나는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날아 녀석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최대한 힘 조절해서.
거대한 동체가 그대로 바닥을 굴러 여관 밖으로 튕겨 나갔다. 잠시 후, 더욱 붉어진 얼굴로 돌아온 칼라게인이 나를 향해 외쳤다.
“비겁한 자식! 자기소개하는 척하면서 공격하다니!”
“애송이 녀석! 그건 방심한 네 잘못이다! 알아서 잘 피했어야지!”
“최소한의 도리도 모르는 개자식이!!! 제대로 쓴맛을 보여주마! 으아아아아!!!”
녀석은 거침없이 여관 식탁을 부수며 나를 향해 돌진해왔다. 나는 녀석의 맹공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마주 보며 달려나갔다.
쾅!
나와 맞부딪힌 녀석의 거대한 몸이 그대로 여관 밖으로 튕겨 나갔다. 나는 여관을 박차고 튀어 나가 바닥에 쓰러진 녀석 위에 올라타서 주먹을 치켜들었다.
“감히 주제도 모르고 코렌틴 최강의 주먹 앞에서 까불다니!”
“아니, 코렌틴에 처음 온 이방인놈이 무슨 코렌틴 최강의 주…”
빡!
내 주먹이 정확하게 녀석의 턱에 틀어박히고 피와 함께 이빨 대여섯 개가 튀어나왔다. 나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어떠냐! 코렌틴에서 제일 매콤한 내 주먹맛이!”
“쿠, 쿨럭. 무슨 주먹이 이리도 맵…”
빡!
아쉽게도 이번엔 이빨이 세 개밖에 안 튀어나왔다. 나는 다시 한번 주먹을 치켜들며 외쳤다.
“내일부턴 부드럽고 몸에 좋은 음식만 듬뿍 먹게 해주마!”
“그, 그만! 내, 내가 졌다!”
“치사한 자식. 비겁하게 여기서 항복하다니. 그럼 이제 그만둘 수밖에 없잖아!”
내가 녀석의 몸 위에서 내려오자, 녀석은 내가 순순히 내려올줄은 꿈에도 몰랐는지 당황한 표정으로 날 올려다보았다.
“뭐해? 안 일어나고.”
“어, 어…”
칼라게인은 아까보다 좀 더 멍청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나는 바닥을 뒹구느라 녀석의 몸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주며 말했다.
“한 번 서로 치고박고 싸웠으니 이제 우린 친군가?”
참다못한 녀석이 말했다.
“…방금은 치고박은 게 아니라 내가 일방적으로 맞은 거 아닌가?”
“너, 몸은 커다란게 의외로 사소한 거에 집착하는구나? 어디가서 덩칫값 못한다는 소리 자주 듣지 않아?”
“이건 사소한 문제가 아니…”
“전부 멈춰라!!!”
잘 무장한 일련의 무리가 나와 칼라게인을 둘러쌌다. 그냥 봐도 경비대였다. 그중 가장 직급이 높아 보이는 인원이 나와 칼라게인을 번갈아 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신고를 받고 왔다. 너희가 소란을 피운 장본인들인가?”
녀석이 칼라게인과 하는 눈빛교환으로 보건대, 아무래도 둘 사이에 어떤 커넥션이 있어보였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친구끼리 잠깐 아주 사소한 다툼이 있었…”
“자, 잠시만요!”
다급하게 뛰어나온 중년 여관주인이 우리를 둘러싼 경비대를 헤쳐나와 내 앞을 막고 섰다.
“이분은 아닙니다. 이분은 저희 가게를 도와주신 분입니다!”
의리 넘치는 여관주인의 변호에도 경비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일단은 둘 다 따라와라. 자초지종을 듣고 나서 그 죄는 우리가 판단하겠…”
빛.
하늘에서 수십 갈래의 빛이 떨어졌다. 불길한 신성의 파동과 함께. 밤하늘을 가르며 제멋대로 떨어지던 궤적 중 하나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그대로 이곳으로 떨어져 내렸다.
충돌음은 없었다. 떨어진 빛 속에서 걸어 나온 것은 붉은 갑옷을 입은 사내였다. 어깨 위에 거대한 할버드를 대충 걸쳐 올린 그는 주변을 둘러보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드디어 빌어먹을 ‘연옥’에서 해방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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