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352)
간보기
간보기
튕겨오른 두 자루의 검이 바닥에 채 처박히기도 전에 빛살같이 두 인영이 뒤로 물러난다. 마르낙은 다급하게 얼음 사도와의 거리를 벌리면서 짧게 혀를 찼다.
기습할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또 기습 쪽으로 마음이 빠른 속도로 기울어가고 있던 것도 맞았지만 방금의 기습은 온전히 자신의 뜻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시스테르나가 너무나 좋은 기회를 만들어주는 바람에 기습을 준비하고 있던 몸이 저도 모르게 반응한 것에 가까웠지.
추격하는 공격에 대비하며 언제든지 다시 바닥을 박차고 뒤로 물러날 준비를 끝마친 채 바닥을 디뎠다.
그러나 이어지는 공격은 없었다. 네마드는 그저 처음과 같이 어딘가 초탈한 눈빛으로 자신을 기습한 두 사도를 쳐다보고 있었을 뿐.
다만, 그 모습에 아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두 사도의 기습을 방어해낸 커다랗고 우둘투둘한 얼음 몽둥이 하나.
건장한 사내의 몸집보다도 더 커다란 얼음 몽둥이는 고고하고 초탈한 분위기와는 네마드와는 그리 어울리지 않았다. 어딘지 모르게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분위기를 내뿜어대는 얼음 몽둥이는 그저 조용히 네마드의 곁을 지키며 부유했다.
가라앉은 하늘빛 눈이 마르낙과 시스테르나에게 한 번씩 시선을 주었다. 네마드는 그저 조용히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되는 대로 급하게 주워섬기는 거짓말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적어도 내 앞에서 거짓을 내뱉으려면 좀 더 제대로 골똘히 고민한 다음 내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철저히 준비해서 내뱉어라.”
방금의 기습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한 말투. 아니, 마르낙이 느끼기에 저 사내는 정말 순수하게 방금의 기습 따윈 ‘전혀’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 마치 벌레 몇 마리가 눈앞에서 왱왱거리며 날아다닌 걸 쳐내기라도 한 듯이.
그것은 자신의 힘에 대한 자신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저자가 한 사람의 행동이 무슨 뜻을 은유하는지 눈치도 못 채는 머저리이기 때문일까.
마르낙과 네마드가 조용히 아무런 말 없이 눈빛만 교환하던 그때. 시스테르나는 이때다라는 듯이 잽싸게 바닥을 굴러다니는 자신의 검과 마르낙의 푸른 검을 주워 왔다.
“자.”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마르낙의 옆에 서서 그에게 검을 내민다. 시스테르나는 작금의 상황에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그녀가 가장 걱정했던 건 혹시나 자신이 네마드에게 기습했을 때, 이 새카만 눈을 한 남자가 아무런 반응을 해주지 않는 것이었지 이미 한 번 같이 기습까지 한 사이가 된 이상 지금 자신이 처한 이 상황은 조금 전보단 훨씬 나았다.
만약 네마드와 이 새카만 눈을 한 남자가 같이 손을 잡고 자신부터 죽이려 들었다면 승산은 거의 영에 수렴했었으니.
마르낙이 그녀가 내민 검을 받아 들자, 시스테르나는 침착하게 잔뜩 긴장한 채로 마르낙과의 거리를 슬쩍 벌렸다. 일단은 같은 편인 것 같지만, 그렇다고 마냥 등을 보이기엔 저 검은 눈을 한 사내가 그리 믿음직스럽진 않았다.
어찌 그리도 기습을 좋아하는지, 그녀가 처음 저 남자를 만난 뒤로 계속 지켜보자니, 저 남자는 살짝이라도 한눈을 팔면 슬금슬금 거리를 좁혀서 검부터 휘두를 생각이 한가득했다.
‘뭐, 멍청하게 방심하다가 뒤통수 맞는 자들보다는 훨씬 낫긴 하지만.’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이지?”
단조로운 목소리로 툭 던져진 네마드의 질문. 마르낙은 그 질문을 듣는 순간, 저 사내가 정말 아직도 순수하게 자신과의 거래가 진행 중이라 생각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마르낙은 슬쩍 옆으로 한 걸음 걸어 시스테르나와의 거리를 좁혔다. 시스테르나는 그에 화답하듯 한 걸음 마르낙과 멀어졌고.
마르낙은 조용히 고개를 돌려 시스테르나에게 눈빛을 보냈다. 자신을 못 믿겠냐는 듯이. 시스테르나는 그 눈빛을 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서야 시스테르나를 기습하는 걸 완전히 포기한 마르낙이 네마드를 쳐다보며 답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들어주나?”
“들어는 주지.”
마르낙은 슬쩍 시선을 옮겨 아직도 시끄러운 전장을 쳐다보았다. 음침한 여자가 사라진 탓에 추가적인 지원이 없어진 괴물들과 켄티페스의 지원을 받고 있는 남제국군의 교전. 새롭게 나타나는 괴물들이 없는 데다 수도 전역에 흩어졌던 남제국군은 계속해서 이곳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덕분에 엇비슷하던 전선은 어느새 조금씩 괴물들이 밀려나기 시작하는 모양새였다.
전장에서 시선을 뗀 마르낙은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저쪽에 남제국 출신 내 동료가 몇 있거든. 그 녀석들의 안전만 보장한다면 네 제안은 진지하게 고려해볼게. 어때?”
“거절하지.”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 네마드는 무심한 눈으로 전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오늘, 이곳에 있는 남제국의 인간들은 단 한 사람도 살아 나갈 수 없다.”
“왜?”
하늘빛 맑은 눈동자가 천천히 움직여 마르낙을 쳐다본다. 지독하리만큼 아무 감정이 담기지 않은 눈동자는 고요히 가라앉아 있었다.
“내가 그리 정했으니.”
“내가 물은 ‘왜?’는 그런 뜻이 아닌데. 뭐, 됐어. 그렇다면 그냥 시스테르나보다 먼저 죽어. 콰르트!!!”
– 예!
마르낙의 부름에 화답하듯 거대한 콰르트의 금속질 전신 곳곳이 갈라지며 거대한 포구들을 드러냈다. 그렇게 제 모습을 드러낸 포구들이 그 부름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밝은 초록색 광선을 내뱉었다.
대기를 불사르며 쏟아지는 광선의 세례. 수십에 달하는 초거대 마력포가 네마드가 있던 대지를 유린했다.
– 그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앗 ! ! !
이에 질 수 없다는 듯이 부패의 거인이 황금빛 갑옷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몸뚱이를 내던지며 한 쌍의 황금 식칼을 내려찍었다.
콰아앙!!!
거대한 폭발을 가르며 나아가는 거대한 식칼. 마르낙은 충격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뒤로 살짝 물러났다.
쩌엉!!!
묵직한 것들끼리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공기룰 울리는 충격파가 중심에서부터 퍼져나갔다. 튕겨 나간 황금식칼들이 하늘로 치솟고 부패의 거인이 입은 황금갑옷이 겉에서부터 얼어붙기 시작했다.
쩌저적.
– 그 아 아 아 아 아 앗 ! ! !
부패의 거인이 다급하게 자리를 박차고 물러났지만, 의지를 가진 냉기가 그를 붙잡았다. 으드득거리는 이가는 소리와 함께 부패의 거인은 냉기가 붙잡은 자신의 팔을 뜯어내서 바닥에 버렸다.
억지로 뜯긴 절단면을 타고 거인의 피가 뚝뚝 떨어진다. 냉기에 붙잡혔던 거인의 오른팔이 순식간에 얼어붙고는 그대로 바스러지듯 자그마한 얼음 조각들로 깨져서 무너져내렸다.
투두둑.
피해는 거기에 멈추지 않았다. 냉기에 노출되었던 거인의 황금빛 갑옷이 바스러져 그대로 깨져버린다. 자그마한 황금빛 얼음들이 마치 눈처럼 쏟아져 내렸다.
– 그 아 아 아 아 아 앗 ? ! !
거인의 당황한 포효가 울려 퍼지고, 마르낙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부패의 거인을 쳐다보았다.
애초에 저 황금빛 갑옷은 진짜 부패의 거인에 깃든 권능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냥 순수하게 디스펜스가 제작해준 의장용 갑옷에 가까웠다. 실제로 별다른 보호 능력도 없는 황금 갑옷이 사도의 권능에 노출됐는데 권능을 버틴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
“갑옷 같은 거야 나중에 새로 한 벌 더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진정하시죠!”
– 후계자님.
마르낙은 옆에서 들려오는 기계음에 덜덜 떨면서 한 손으로 바닥에 바스러진 황금 갑옷 조각을 그러모으고 있는 부패의 거인에게서 시선을 떼고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원래 크기로 돌아온 콰르트가 그의 귓가에 대고 말을 이어 나갔다.
– 분석 결과, 현재 제가 가지고 넘어온 무장으로는 저 얼음을 다루는 사도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입힐 수 없습니다.
그 잔잔한 한마디에 마르낙은 시선을 옮겨 네마드가 있던 곳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대기를 뒤덮은 얇은 얼음 파편들이 네마드의 주변을 공전하듯 빙글빙글 돌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나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은 네마드는 아까와 같은 모습 그대로였다. 단 하나의 피해도 없이.
“시선을 끄는 건?”
– 한순간의 시선을 끄는 것조차 불가능합니다. 아마 제가 이곳에 있든 없든 큰 차이는 없겠지요.
콰르트는 지극히 냉정해서 어떻게 보면 보는 사람이 김이 빠질 정도로 전투에 대한 열정이란 것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가 지금 내뱉는 말들의 뜻은 무척이나 간단했다.
“후퇴하고 싶다는 거지?”
– 예. 제가 유의미한 전력이 아닌 이상, 저는 후계자님의 동료들을 챙겨 전장을 이탈하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해.”
마르낙의 대답이 떨어졌음에도 콰르트는 곧장 자리를 뜨지 않고서 말을 덧붙였다.
– 혹 후계자님의 동료분들이 순순히 응하지 않는다면 후유증이 남지 않을 정도 선에서 무력을 행사해도 괜찮겠습니까?
“좋아. 그렇게 해.”
– 예.
애국청년 페르카가 절대 이곳을 제 발로 떠날 리 없었으니 마르낙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콰르트는 그 대답을 듣자마자 빠르게 자신의 다리들을 움직여 시끄러운 전장 속으로 사라졌다.
– 그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앗 ! ! !
그와 동시에 소중한 것을 잃어 분노한 거인의 포효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바닥에 떨어진 황금 도금이 벗겨진 식칼을 쥐어든 부패의 거인이 거침없이 네마드를 향해 돌진했다.
– 그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앗 ! ! !
남은 한 팔로 식칼을 치켜든 부패의 거인이 자신의 적을 향해 식칼을 내려찍었다.
까아아아아앙!!!
허공을 떠다니는 얼음몽둥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거대한 식칼을 후려쳤다. 몽둥이 깃든 강렬한 힘을 못 버틴 식칼이 튕겨 나가 허공으로 떠오르고, 그 식칼이 채 바닥에 처박히기도 전에 거인의 몸뚱이가 발끝에서부터 얼어붙어 부서져내리기 시작했다.
– 그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앗 ? !
“흐음.”
마르낙은 그에 빠르게 권능을 강제로 해제했다. 일그러진 차원의 문이 부패의 거인의 상체를 뜯어내듯 집어삼키고 덩그러니 남겨진 거대한 하체가 얼음 파편이 되어 부서져 내렸다.
‘역시, 권능을 따로 더 강화하기 전까진 부패의 거인도 사도를 상대론 유의미한 전력이 되긴 어렵겠네.’
어차피 부패의 거인이 상대적으로 약한 건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어머니만 되찾는다면 신성을 쌓아 권능을 다시 강화할 수 있었다. 강화하고 또 강화하면 언젠가 부패의 거인도 사도 하나쯤은 때려잡는 괴물로 자랄 수 있겠지.
“생각보다 더 까다로운데.”
슬쩍 콰르트와 부패의 거인으로 간을 봤지만, 네마드의 진짜 힘을 다 본 건 아닌 것 같았다.
일단 지금 파악한 것만 보자면 가까이 가면 발동하는 냉기의 권능, 허공에 떠다니는 거슬리는 얼음 몽둥이와 콰르트의 광선을 막아낸 얇은 얼음막들.
‘좀 더 다른 수를 미리 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
네마드가 급하게 움직이지 않는 덕에 생긴 여유를 이용해 절망을 매만지며 고민하고 있자니, 시스테르나가 잔뜩 경계한 채 마르낙에게 다가와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
“한 번만 말할 테니 빠르게 기억해. 네마드의 권능은 주로 그 발현의 형태가 네 가지인데 우선 첫 번째는…”
‘아, 맞다. 얘가 있었지?’
마르낙은 그제야 깨달았다. 그에겐 조금 전까지 저쪽 편이었던 든든한 임시동맹이 있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