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68)
68 화 1번 작품.
1번 작품.
– 안녕!
탐스러운 검은 단발.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누가 딸이 아니랄까 봐 홀로그램 여인의 얼굴은 버둥대는 호기심의 얼굴을 무척이나 빼닮아 있었다.
다만, 버둥대는 호기심은 어딘가 퇴폐적이면서 요염한 분위기가 감돌았지만 눈앞의 홀로그램 여인의 반짝이는 두 눈과 미소에는 발랄한 장난기가 한가득 담겨 있었다.
다키아는 눈살을 살짝 찌푸리고서 내게 물었다.
“한 대 치면 안 되겠죠…?”
나는 그녀의 기분에 십분 공감했다.
“아마 쳐봤자 아무 소용 없을 겁니다.”
우리가 무어라 떠들든 홀로그램 여인은 장난스러운 어투로 제 할 말만을 내뱉었다.
– 나는 제국 제일 장인 ‘실론’이라고 해! 정확히는 ‘실론’이 만들어둔 홀로그램이지만! 그건 사소하니까 그냥 넘어갈게! 거기 서 있지 말고 얼른 들어와!
개틀링 건에 이어 인공지능 홀로그램인가. 대체 옛날 고대제국은 어떻게 되어 먹은 국가였던 거지.
다키아는 내 몸에 기댄 채 홀로그램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왜 전 저 여자가 왜 이리도 얄밉게 느껴질까요?”
“충분히 이해 갑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여기 서 있을 수도 없으니 얼른 들어가 보도록 하죠. 혹시 혼자 걸으실 수 있겠습니까?”
“잠깐만요.”
내 물음에 다키아는 다리에 힘을 주고 홀로 서 보려다 다시 비틀댔다. 나는 재빨리 그녀를 다시 부축하고서 빙그레 웃었다.
“무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주 살짝 달아오르는 볼. 다키아는 감히 내 눈을 마주 보지 못하고서 시선을 피한 채로 자그맣게 대답했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살해살해…’
내 옆에 서 있던 어머니가 입술을 삐죽이며 다키아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하고는 불만가득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물론, 다키아의 상태를 아는 어머니는 굳이 내게 당장 다키아를 놓아버리라고 떼를 쓰지는 않았다. 나는 한층 성장한 어머니의 머리를 부드럽게 토닥여드렸다.
그리고 그때.
– 안녕! 나는 제국 제일 장인 ‘실론’이라고 해! 정확히는 ‘실론’이 만들어둔 홀로그램이지만! 그건 사소하니까 그냥 넘어갈게! 거기 서 있지 말고 얼른 들어와!
홀로그램이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나는 그 말에서 한가지 가능성을 깨달았다. 이 홀로그램이 인공지능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가능성을.
“잠시만.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보죠.”
“네?”
“확인해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가만히 서서 홀로그램 여인을 지그시 바라보자 조금 뒤에 홀로그램 실론이 다시금 재잘재잘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 안녕! 나는 제국 제일 장인 ‘실론’이라고 해! 정확히는…
아까와 한치도 다르지 않은 그 말에 나는 이 홀로그램이 진정한 의미의 인공지능이 아니라 그저 실론이 녹화해둔 영상을 알고리즘에 맞춰 틀어대고 있을 뿐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이거 대화는 무리겠네.
다키아는 홀로그램 실론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뭔가 고장 난 거 같네요.”
“저희가 안으로 진입하지 않아서 그런 걸 겁니다. 슬슬 들어가 보죠.”
“네!”
우리가 문 안으로 들어서자, 홀로그램 실론이 드디어 다음 대화를 내뱉었다.
– 내가 만들어둔 수호자를 뚫고 여기까지 온 걸 정말 환영해!
그래도 혹시 알고리즘에 맞춰 말하고 있는 거라면 간단한 질문에 대해 대답도 해주려나?
나는 내 의문을 바로 확인했다.
“마지막 질문은 대체 왜 물어본 겁니까? ‘엘리샤’라는 이름이 정답인 그 질문요.”
홀로그램 실론은 무어라 환영의 말을 하다말고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실론이 히죽 웃었다.
– 우리 엄마 이름! 내가 왜 그걸 물어봤는지 궁금한가 보구나! 그거야 아주 간단하지! 나는 마지막 ‘열쇠’를 우리 엄마한테 맡겼는걸! 생각해봐! 누군가 ‘열쇠’로 이곳에 진입했는데 우리 엄마 이름을 모른다?
잠깐 말을 멈췄던 실론이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여태까지의 장난스러움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미소를.
– 내가 그들을 살려둬야 할 이유가 있을까?
이름을 못 맞혔으면 진짜 큰일 날 뻔했네. 나는 안도의 한숨을 폭 내쉬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홀로그램을 따라 아늑한 복도를 걸어나갔다.
그 끝에 우리가 도착한 장소는 아늑한 저택이었다. 홀로그램 실론이 가볍게 손짓하자 문이 저절로 열렸다. 그녀의 뒤를 따라 집안에 들어서자 실론이 우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 여기까지 오느라 힘들었을 텐데! 따뜻한 물에 몸이라도 담그고 나서 이야기 해!
실론이 손바닥을 맞부딪히는 시늉을 하자 벽이 갈라지며 금속으로 된 손이 바구니를 가지고서 튀어나왔다.
바구니 안에 든 건 지극히 현대적인 디자인의 수건과 샤워용품이었다.
– 남녀 욕탕은 따로 있어! 그런데 혹시 혼욕이 하고 싶거든 같이 들어가던지! 마음대로 해! 아, 맞다. 탈의실 안 바구니에 옷을 넣어두면 급속 세탁해서 돌려줄게!
‘살해!’
그 말에 어머니는 재빨리 손으로 돌아와 내 손바닥 위에 내려앉았다. 나는 어머니의 손을 가슴주머니 속에 챙기며 다키아에게 물었다.
“어쩌시겠습니까?”
다키아는 땀으로 한 번 푹 젖은 데다 흙먼지투성이인 자신의 옷을 보고는 쓰게 웃었다.
“저는 한번 씻고 싶어요. 지금 진짜 찝찝해서요.”
“혼자 걸으실 수 있겠습니까?”
“이젠 아까보다 훨씬 괜찮아요.”
그녀는 어찌저찌 비틀거리며 제자리에 겨우 섰다. 나는 진짜 괜찮을까 살짝 걱정됐지만, 내가 직접 씻겨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바구니를 받아들며 내가 쓸 샤워용품을 챙기고서 바구니를 다키아에게 건넸다.
“이거 쓰시는 방법은 아시겠습니까?”
다키아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샤워용품 겉면에 적힌 고대어를 찬찬히 훑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이 잘 적혀있어서 문제없을 거 같아요.”
“다행이군요.”
욕탕이 어딘지 묻자, 실론의 홀로그램이 둘로 갈라져서 우리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욕탕은 지극히 거대하고 갓 채운 따뜻한 물로 가득했다. 나는 오랜만에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그고는 뜨끈한 물이 주는 안락함을 즐겼다.
‘ㅅ…ㅏ…ㄹ…ㅎ…ㅐ…’
손 형태로 뜨거운 욕탕 바닥에 푹 가라앉아 있는 어머니도 무척이나 노곤한 목소리로 뜨거운 물을 한껏 만끽했다.
나는 두 눈을 꼭 감고 뜨거운 욕탕 안에서 반드시 해야만 하는 한마디를 내뱉었다.
“아, 진짜 시원하네.”
***
채 식지 않아 발갛게 달아오른 볼과 덜 마른 머리. 가벼운 옷차림을 한 다키아가 전신에서 모락모락 김을 뿜어내며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녀는 활짝 웃으며 내 옆에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일찍 나오셨네요. 그나저나 여기 욕탕 진짜 좋던데요. 피로가 완전 싹 가시는 기분이었어요!”
“저도 그렇습니다. 아, 이거 드시죠. 홀로그램이 챙겨준 겁니다.”
나는 금속 팔들이 건네준 바나나 우유를 다키아에게 건넸다. 컵에 든 바나나 우유를 한 모금 마신 다키아가 헤실헤실 웃었다.
“이거 진짜 좋네요!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는데, 벌써 이 유적을 만든 실론에 대한 원망이 반쯤 날아가 버린 거 같아요.”
솔직히 나도 마찬가지였다.
푹신한 의자에 앉아서 노곤함을 만끽하고 있던 우리 앞에 실론이 불쑥 튀어나왔다.
– 푹 쉬었어? 여기까지 오면서 너희가 떨어뜨렸던 물건을 모아왔으니까 한 번 볼래? 망가진 건 대충 수리도 했어!
떨어뜨린 것? 그런 건 따로 없었는데.
나는 벽에서 튀어나온 기계 팔이 내미는 물건을 보곤 내가 무엇을 떨어뜨렸는지 바로 알아챘다.
새하얀 고대 유물 반지. 기계 팔이 내민 건 스승님이 내 왼손에 끼워주었던 유물이었다.
‘부패의 검’의 반동으로 완전히 사라졌던 게 아니었구나. 아니면 거의 망가졌던 걸 저 홀로그램이 수리해서 건네준 건가.
나는 반지를 받아 다시 왼손 검지에 끼웠다. 덕분에 다행히 나중에 반지를 망가뜨렸다고 혼날 일은 없겠네.
– 적당히 쉬었으면 잠깐만 나 좀 따라올래? 일단 물건부터 받고 마저 쉬어!
보상. 듣기만 해도 가슴설레는 이야기에 나는 고개를 돌려 다키아를 바라보았다.
“일단 물건부터 받고 마저 쉬는 게 어떻겠습니까?”
두 눈을 끔벅이며 졸던 다키아가 나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솔직히 지금 기분은 푹신한 침대에서 한숨 자고 나서 움직이고 싶지만, 아무래도 안 따라가면 하루종일 저기서 같은 말을 하겠죠?”
그녀는 두 눈을 부비적 대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얼른 끝내고 와서 푹 자요!”
나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내해주시죠.”
– 응! 따라와!
홀로그램 실론의 뒤를 따라가자 홀로그램이 우리를 지하로 안내했다. 계단을 걸어 한 층을 내려오자 거대한 공간이 우리를 반겼다. 여기저기 온갖 작업 도구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공간은 보상이 준비된 방이라기보다는 ‘보상을 만들어내는 장소’처럼 보였다.
실론은 나와 다키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 그래서 내 ‘1번’ 작품을 가질 사람은 너희 둘…
‘살해!’
잽싸게 내 품에서 어머니가 사람의 형태로 화해 튀어나오자 실론이 말을 바꾸었다.
– … 셋 중 누구야?
다키아는 싱긋 웃으며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내가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한 점 욕심 없이 순수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장난스레 말했다.
“얼른 말하세요. ‘그 물건의 주인은 바로 나다!’하고요.”
나는 가볍게 고개를 꾸벅 숙여 감사를 표시하고는 실론에게 말했다.
“제가 1번 작품을 가질 겁니다.”
– 그래! 알겠어! 그런데 나머지 ‘둘’도 빈손으로 가면 섭섭하겠지? 너희 둘한테는 따로 맞춤 제작으로 보상을 해줄 테니까 ‘나’를 따라와!
실론이 세 명으로 갈라지며 어머니와 다키아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내 품에서 튀어나온 건 진짜 ‘신’의 한 수였다.
‘살해!’
어머니는 활짝 웃으며 홀로그램 실론을 따라갔다. 어머니가 내게서 멀어져서 조금 불안해지긴 했지만, 벽으로 가려진 공간이 아니라 통으로 거대한 공간이어서 고개를 돌리면 어머니의 모습을 눈으로 담을 수 있었기에 나름 견딜만했다.
– 얼른 따라와!
나는 내게 배정된 홀로그램 실론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얼마 걷지 않아 실론이 손가락을 뻗어 무언갈 가리키며 말했다.
– 짜잔! 이게 바로 내가 만들어낸 마지막 작품인 ‘1번’ 작품이야!
그녀가 가리킨 곳에는 새카만 팔찌 하나가 놓여있었다.
마지막 작품이라 칭하기에는 무척이나 소박한 금속 팔찌 하나가.
실론의 홀로그램은 나를 향해 활짝 웃었다.
– 얼른 껴봐! 분명 아주 재밌을 테니까! 아, 낄 때 자주 쓰는 손 쪽에 끼는 게 좋을 거야!
나는 그녀가 말하는 대로 검은 팔찌를 오른 팔목에 꼈다. 팔찌를 착용하자 팔찌는 기다렸다는 듯이 크기를 조절해 내 오른 팔목에 착 달라붙었다.
푹.
내가 통증을 느낄 새도 없이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내 팔목을 파고들었다. 귓가에 실론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놀라지 마! 사용자 등록 중이니까! 살짝 따끔할 거야!
잠시 후 내 팔목을 찔렀던 바늘의 감촉이 사라졌다. 실론의 홀로그램이 싱글벙글 웃으며 내게 말했다.
– ‘가동!’이라고 큰소리로 외치면서 팔찌 위의 버튼을 꾹 눌러볼래? 무조건 큰소리로!
굉장히 부끄러운 걸 시키네. 진짜.
“가동…”
나는 자그맣게 중얼거리며 팔찌의 버튼을 눌렀다.
철컥철컥.
변화는 순식간이었다. 버튼을 누르는 순간, 검은 팔찌에서 어디서 생성됐는지 모를 금속들이 튀어나와 내 오른팔을 감싸 올라 갑옷의 형태를 취했다. 검은 금속의 확장은 정확하게 내 오른 어깨를 덮는 견갑까지 구성하고 나서야 멈췄다.
나는 갑옷을 입은 손을 가볍게 움직여보았다. 부드럽게 움직이는 검은 금속 갑옷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무척이나 가볍고 부드럽게 움직였다.
이거 진짜 마음에 드는데.
내가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하는 도중 까르르 거리는 웃음소리가 튀어나왔다.
– 꺄하하하! 진짜 내가 시킨다고 ‘가동!’이라고 외치면서 버튼을 꾹 누른 건 아니겠지? 응? 사실, 1번의 가동은 그냥 버튼만 꾹 누르면 돼!
나는 불퉁한 목소리로 키득거리는 홀로그램에게 대답했다.
“큰소리로는 안 했습니다.”
물론, 미리 입력된 동작만 수행하는 홀로그램이 내 대답을 이해하고 웃음을 멈추는 일은 없었다. 그녀는 한참을 더 웃고 나서야 눈물을 닦는 시늉을 하며 입을 열었다.
– 미안해! 내가 너무 웃었지? 혹시 삐졌다면 사과할 테니까 한 번 봐줘!
그녀는 다시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다.
– 사실, 어찌 됐건 너는 나한테 ‘1번’ 작품의 기능에 대한 설명을 들어야 하니까 날 용서해줄 수밖에 없겠지만! 기왕 힘들게 얻은 거 제대로 써야 하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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