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internation Students makes good money RAW novel - Chapter 24
24화 음식에도 철학이 필요한 법이다
기말시험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정해진 시간에 가서 치면 된다.
내가 듣는 수업은 영문학 수업 세 개와 대학교에서 졸업하기 위해서 꼭 들어야 하는 필수교양 과목 두 개였다.
영문학 수업에서 기말시험은 객관식이나 주관식을 시간 안에 푸는 방법이 아닌 주제를 가지고 에세이를 쓰는 것이었다.
외국인 학생들에게는 사실 에세이 시험이 통곡의 벽이자 가장 괴로운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안 그래도 영어를 잘 못 하는데 수준 높은 영어를 사용해 워드 프로그램 기준으로 15장에서 20장 정도 되는 분량의 간이 논문을 써야 하니까.
이게 다 논문을 쓰는 연습이고 대학교에서 과제물을 제출하기 위한 연습이라고는 하지만, 일반 미국 대학생들에게도 도전적인 이 과제를 외국인이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보통 대학교에서도 이런 상황을 알고 Writing Center(작문 센터)를 만들어 놓았다.
여기서 상주하는 라이팅 전공 학생 혹은 석,박사생이 여기서 파트타임으로 일할 수 있는 곳이다.
물론 회귀 전의 나에게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어쨌든 시간을 정해서 약속을 잡고 Writing Center에 가면 약속된 시간 동안 가져온 에세이의 문법부터 시작해서 어색한 어구 등을 함께 고쳐주고, 필요하면 작문도 같이 해주는 굉장히 유용한 곳이다.
아마 유학을 한다면, 필수적으로 한 학기에 여러 번은 들려야 할 친근한 곳이기도 하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무리 10년 동안 미국에 살았고, 영문학 학사를 딴 사람이라고 해도 영어를 완벽하게 하지는 못한다.
아마 재능이 흘러넘치는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유학생이나 이민자들은 평생 미국인처럼 글을 쓰지는 못할 것이다.
심지어 20년 혹은 30년 산 사람도 많이 틀리고 박사학위가 있는 미국인 대학교수들도 종종 논문 검수를 받으니 우리 같은 일반인은 Writing Center는 필수.
하지만 Writing Center보다 훨씬 유용한 곳이 있다.
그건 바로 그 과목을 가르치는 교수와 약속을 잡아 검수를 받는 것이다.
일단 채점 자체를 그 교수가 하기 때문에 약속만 잡아도 내가 열심히 하고 있으니 잘 봐달라는 어필이 될 뿐만 아니라 교수의 채점 기준에 따라서 피드백을 받기 때문에 훨씬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횬식?”
“네, 접니다.”
“들어와요.”
“네.”
내가 약속을 잡은 교수의 이름은 린다 교수.
영미문학과 교수이자 ‘인종과 문학’을 가르치는 교수였다.
“안녕? 네가 차현식이니?”
“네, 안녕하세요.”
“기말 에세이 때문에 온 거지?”
“네. 문법이랑 어색한 문장을 좀 고치고 싶어서요.”
“오케이. 그럼 같이 한 번 볼까?”
프린트한 에세이를 책상 위에 올려놓자 린다 교수는 첫 장을 따로 빼서 펜으로 줄을 그으며 읽기 시작했다.
“음. 여기 보면··· 이런 문장은 조금 어색하거든? 그러니까 the가 아니라···.”
“네네. 그렇네요. 아하.”
한참을 그렇게 에세이 검수를 끝내고 약속 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음~ 이 정도면 괜찮은 거 같은데? 네 생각은 어때?”
“저도 충분한 거 같은데요?”
“좋아. 그런데··· 영문학과야?”
“예.”
린다 교수는 책상 위에 어질러진 에세이를 가지런히 정리하며 나를 보며 흐뭇하게 웃기 시작했다.
“네 에세이. 정말 인상적이더라.”
“예? 그, 그런가요?”
생각지도 않은 일이었다.
보통은 이렇게 피드백을 받으러 오면 신랄한 비판과 함께 잠깐의 다독임을 받는 게 전부였었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기본기가 갖춰진 상태로 에세이를 써서인지 그렇게 큰 지적이나 고칠 점은 없었다.
“아~ 너무 당황스러워하지는 말고. 진짜 읽는데 흥미로워서 그랬어.”
“하하, 감사합니다.”
“음~ 네가 읽은 소설이 꽤 흥미롭던데.”
내가 적은 에세이의 주제는 어떤 한 소설에 대한 해석이었다.
개인적으로 꽤 좋아하는 소설이라서 기말시험 리스트에 이 책이 있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코리안 아메리칸 가족에 관한 이야기예요. 이민자 아버지와 재미교포 딸이 서로 다른 정체성과 문화 때문에 갈등하지만 그걸 해결하는 열쇠가 바로 음식인 거죠.”
“그래, 맞아. 나도 몇 년 전에 읽은 기억이 나. 지난번에는 내셔널 북 어워즈 상도 받은 책이지 아마?”
“교수님도 잘 알고 계시네요? 네, 맞아요. 특히 이 소설에서 음식이 곧 의사소통의 방법이라고 묘사하고 있어요. 한국인 이민자인 아버지는 영어를 잘 못 했거든요. 재미교포인 딸은 한국어를 배울 기회가 잘 없었고요. 그래서 항상 오해하고 사이가 틀어지곤 했는데··· 어느 날부터 한식을 접하고 같이 한식을 만들면서 오해도 풀고 진정한 가족이라는 의미를 찾아가는 그런 내용이에요.”
린다는 가만히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인자한 미소와 함께 내 에세이를 건네주었다.
“그래. 그리고 네 에세이에는 음식에는 철학과 신념이 있어야 한다고 했지. 음식은 곧 언어 그 자체라고. 만국 공통어. 그게 꽤 인상적이었어. 음식은 상호 간의 소통이며 간극을 매울 중요한 수단이다. 꽤 멋진 주제야.”
동식이와 K-푸드 사업을 시작하면서 우리 기업만의 철학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런 내 생각과는 달리 동식이는 그런 쓸데없는 생각보다는 실질적인 경영이나 투자가 훨씬 중요하다고 못 박고는 내 말을 잘 들어주지 않았었다.
그러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투자자와의 미팅 때 그 투자자의 질문이 ‘당신들이 추구하는 음식에 대한 철학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동식이도 그리고 나도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었다.
지금도 사실 내가 앞으로 만들 K-푸드 프랜차이즈 사업이 추구하는 철학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중심이 잡혀야 앞으로 나아갈 때 갈팡질팡하지 않는 법이다.
그러니 다시금 K-푸드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할 때는 내 중심이 무엇인지는 정도는 정확하게 알고 가고 싶었다.
“그래서 말인데. 이 에세이를 조금 더 빌드업해서 내년에 열리는 시그마 타우 델타(Sigma Tau Delta)에서 주최하는 학회에 내보는 게 어때?”
“시그마 타우 델타에요?”
내가 이리 놀라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었다.
대학교에서 학회에 에세이를 발표하는 건 흔한 일이긴 하지만, 그런 학회는 대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주최하거나 지역에서 주최하는 학회를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방금 린다 교수가 말한 학회는 쉽게 말해 전국구 학회를 의미한다.
석박사 몇 교수를 위한 학회가 따로 있듯이 학부생을 위한 학회도 있기 마련인데, 특히 이 시그마 타우 델타의 경우는 대학교마다 대표로 1~2명 정도가 선발되어 나갈 정도로 엘리트들만 발표할 수 있는 학회.
거기다 보통 3, 4학년이 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지금 이 교수는 나에게 그런 학회에 내가 기말시험을 위해 쓴 에세이를 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한 것이었다.
어쩌면 나 천재 유학생일지도?
“주제가 참 흥미롭고 글도 잘 쓴 거 같아서 말이야. 그냥··· 어디까지나 제안이야. 너무 부담가질 필요는 없어.”
“저야 영광이죠.”
“그래? 그럼 나중에 시간 될 때 더 얘기 나누도록 하자.”
“좋아요, 교수님.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린다 교수의 제안은 영문학과 학생이라면 절대로 거절할 수 없는 기회였다.
물론 내가 영문학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싶다는 건 아니었지만, 이런 기회를 통해서 견식을 넓힌다면 내가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구나. 다음 타임을 기다리는 학생이 또 있어서. 다음에 또 얘기해.”
“예. 감사했습니다, 린다 교수님. 그럼 다음 학기에 제가 직접 에세이 들고 찾아뵙겠습니다.”
“좋아. 그럼 기다리고 있을게.”
*
기쁜 마음으로 린다 교수의 방을 나와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복도 끝 화장실에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음료 자판기가 있어 그곳에서 에너지 드링크를 하나 뽑아서는 반가운 얼굴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기말시험이라 힘드시죠? 힘내세요.”
“여전히 친절하시네요.”
5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흑인 청소부 아저씨.
회귀 전에 신세를 진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많이 피곤하시죠? 이거 드세요.”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에너지 드링크를 모건에게 건넸다.
“어··· 우리가 혹시 어디서 만난 적이 있나요?”
눈썹을 치켜올리며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에너지 드링크와 내 얼굴을 번갈아 보는 모건.
난데없이 처음 보는 외국인 학생이 친근하게 다가오니 그럴 법도 했다.
“이번 생에서는 아닐 거예요.”
“이번 생? 하하. 재밌는 얘기군요.”
내가 처음으로 유학을 와서 돈도 없고 인맥도 없던 시절.
어떻게든 돈을 벌어보겠다고 학교에서 제공하는 일자리에 여러 군데 지원했었다.
하지만 편하고 좋은 자리는 대부분 사교성이 좋고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 차지였고.
나는 그중에서 다들 꺼리는 청소 알바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스럽게도 청소 알바에서 만난 이 모건이라는 사람 덕분에 나는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사람이 내가 장학금은 요구 조건에 맞게 내는 게 아니라 낼 수 있는 모든 걸 다 내는 게 좋다는 조언을 해준 사람이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이 DMU에서 이미 15년 이상 일한 베테랑 청소부였기 때문에 많은 직원과 친분이 있었으며, 오가며 들은 정보가 상당했었다.
무협에도 보면 그렇지 않은가.
길거리에 부랑하는 거지들이 가장 많은 정보를 수집한다고 해서 최대 정보 조직 개방이 있듯이.
학교 어디든지 가서 청소하는 청소부 또한 개방처럼 온갖 종류의 소문과 정보를 듣기 마련이었다.
“항상 감사했어요.”
“예? 그게 무슨···?”
“아. 청소해주셔서요.”
“하하. 제 업무인걸요.”
모건은 항상 정직하고 성실했다.
다른 청소부는 땡땡이도 피우고 대충 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전역한 군인이라 후유증으로 허리 수술을 7번이나 받고 다리까지 저는데도 불구하고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었다.
또 학생이나 교수할 것 없이 모두에게 밝은 미소로 인사하던 모건 아저씨.
몇몇 사람들은 청소할 때 쓰는 독한 화학약품 냄새가 난다며 꺼리긴 했지만, 그만큼 누구보다 충실히 일하고 있다는 증거기도 했다.
“아니요. 특히 모건 아저씨가 더 열심히 일한다는 걸 저는 알고 있어요.”
“허허. 이상한 말만 하는군요. 어쨌든 학생에게 이런 말을 들으니 힘이 납니다. 고마워요.”
“네. 항상 건강하시고. 성실하고 정직하신 만큼 언젠가는 축복받으실 거예요.”
“그래요. 저도 하나님을 믿어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항상 축복하실 겁니다. God Bless You.”
개인적으로는 신을 믿지 않는 편이었지만.
모건 아저씨는 신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항상 틈만 나면 기도하시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
하지만 애석하게도 모건 아저씨는 그렇게 성실하게 살고 있음에도 하나님의 축복은 덜 받고 살았다.
아마 신이 너무 바빠서 깜빡하셨거나, 경기가 안 좋아 파업이라도 하신 모양이다.
그러니 그런 신을 대신해 나라도 모건 아저씨를 위해 기적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직은 아니지만, 모건 아저씨를 위한 계획도 이미 생각해 두었다.
갑자기 돈을 건네거나 경제적인 도움을 준다면 이상하게 생각할 테니 차근차근 조금씩 다가갈 예정.
“네. 그럼 다음에 또 봬요.”
“그래요. 정말 고마웠어요.”
오랜만에 고마운 얼굴을 봐서인지 기분이 좋았다.
그래, 회귀 전에 힘겨운 유학 생활을 이겨낼 수 있게 도와준 고마운 사람들이 있다.
텍스멕스 음식점도 그랬고, 모건 아저씨도 그랬다.
또 기억나는 몇몇 고마운 사람들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돈 더 많이 벌어야겠네. 은혜 갚는 까치가 되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