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internation Students makes good money RAW novel - Chapter 89
89화 뉴멕시코(4)
“올 줄 알았어요.”
다음 날 새벽에 다시 지역 장터로 가서 안드레의 정육점에 들렸다.
그곳에는 역시 프리실라가 당연하다는 듯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참 조숙하다니까.”
“대신 울 엄마가 철이 없어요.”
“하하.”
“계약하러 오신 거죠?”
“계약까지는 아니고. 여기서 장사하는 동안에는 여기랑 거래할까 해.”
“뭐 점점 더 맘에 드실 거예요.”
“그러지 말고 너 그냥 나랑 사업해 보지 않을래?”
“의리가 있어서요.”
탐이 날 정도의 인재였다.
프리실라의 저 말빨과 능청스러운 손님 접대 능력까지.
“그럼 오늘은 얼마나 필요하세요?”
“한 이틀 치 살까 하거든.”
“그럼 40파운드 정도면 될까요?”
“아니. 한… 100파운드 정도?”
“예?”
20파운드로는 6시간 만에 장사가 끝나 버렸다.
그러니 넉넉하게 하루에 50파운드씩 총 100파운드 정도는 돼야 그나마 장사가 될 거 같았다.
사실 오늘부터는 대충하지 않고 본격적으로 장사를 할 생각이니까.
점심, 저녁, 야간 장사까지 할 생각이니 솔직히 말해서 50파운드도 간당간당했다.
“그, 그렇게나 많이요?”
“오올. 나 프리실라 놀라게 했네.”
“차현식. 폼 좋은데?”
“아, 아니. 잠깐만요. 남으면 어쩌시려고 그렇게 많이 사요?”
“이젠 남의 사업까지 걱정해 주는 거야?”
“그, 그건 아니지만….”
사실 나도 솔직히 20파운드면 어제 온종일 장사해도 남을 거로 생각했다.
그래서 아침으로 고기나 좀 구워 먹으려고 했던 건데.
그럴 고기조차 남지 않을 정도로 장사가 잘되어 버린 것이다.
“걱정 마. 그냥 100파운드 얘기해 줘.”
“알겠어요.”
프리실라는 안드레에게 가서 통역을 시작했다.
그의 표정을 보니 100파운드라는 숫자를 듣고 꽤 놀란 눈치였다.
하지만 장사치가 많이 팔 수 있으면 그걸로 행복한 거 아니겠는가.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우리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아빠가 그만큼의 고기는 여기 말고 고기 창고에서 끊어 줘야 한 대요.”
“그래? 그럼 어떡하면 되는데?”
“아빠가 영수증을 줄 거예요. 거기 일하는 사람한테 주면 그만큼 끊어 줄 거예요.”
“그래. 그럼.”
안드레에게 영수증을 받고 장터 뒤쪽에 자리 잡은 고기 창고로 향했다.
허름한 창고에 도착하자 인부들로 보이는 남미계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수다를 떨고 있었다.
“크흠.”
손님이 왔다는 인기척을 느끼면 빠릿빠릿하게 움직일 거로 생각해 헛기침을 한 번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안 그래도 남미계 사람들의 일하는 방식이 열심히 일하기보다는 그 순간을 즐기는 부류가 꽤 많았다.
솔직히 인종차별이라 말해도 할 수 없지만, 내가 고용했던 남미계 애들도 다 이런 문제가 있었다.
아무래도 종특이라기보다는 남미 특유의 여유롭고 즐기는 문화에 젖어 있어서 특히 우리 한국 문화와 맞지 않은 거 같았다.
한국 같은 경우는 손님이 오는 기척만 들려도 벌떡 일어나서 손님을 맞지 않는가.
조금이라도 더 벌고, 조금이라도 더 일해서 나중에 호사를 누리기 위해서.
하지만 남미계는 생각 자체가 우리와 달랐다.
즐길 수 있다면 돈을 벌지 못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지 놀 때는 손님이 와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이거 곤란한데.”
“왜 안 오지?”
“원래 이런 건 알고는 있었지만.”
“역시. 도움이 필요하시네요?”
그때 뒤에서 들리는 프리실라의 목소리.
그녀는 한숨을 내뱉고는 옹기종기 땡땡이를 치고 있는 인부들에게 스페인어로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어쩔 줄 몰라 하며 쩔쩔매는 인부들.
아무리 안드레의 딸이고 자칭 매니저라고 하더라도 저렇게까지 태도가 달라진다고?
신기할 노릇이었다.
“자, 이제 됐죠?”
“너 혹시 환생했니?”
“환생이요?”
“아, 아니다.”
“너무 소설을 많이 보시는 거 아니에요?”
“조숙해서. 인생 2회차쯤 되는 줄 알았지.”
“그런 얘기 많이 들어요. 그냥 똑똑해서 그래요. 인생에 그런 게 어딨어요. 다들 인생 도피하려고 회귀니, 환생이니 하는 거죠. 그럴 시간에 자기 계발이나 더 하지.”
이렇게 어린애한테 뼈 때리는 훈계를 들을 줄은 몰랐다.
특히 회귀한 내 처지로는 그 어떤 반박이나 긍정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럼. 다음에 또 뵙죠.”
“그래, 조숙한 아이.”
*
장사 준비를 하고 예고한 대로 이번에는 산타페로 향했다.
오늘은 앨버커키가 아닌 근처 도시인 산타페에서 장사를 하기로 했다.
그래서 이틀 치 고기를 준비한 거다.
“오늘은 장사 좀 빡세게 하고. 내일부터 관광 좀 하자.”
“그래.”
시아를 설득하고.
자리를 잡고 푸드트럭 오픈 준비에 한창이었다.
“시아야. 저것 좀 썰어 주고.”
“응.”
아직 초반이라 서로 안 맞는 것도 좀 있었지만, 잘 조율하며 진행하고 있었다.
시아도 장사 초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잘 적응 중이었고.
“시아야. 파랑 양파.”
“응.”
무엇보다 온종일 시아와 붙어 있다 보니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그녀와 동거까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시아와 붙어 지냈던 적은 없었다.
24시간을 내내 붙어있으니 동거했을 때와도 또 다른 느낌이 들었다.
“시아야. 고명 리스트 확인 좀.”
“응….”
불고기 양념은 팔기 전에 최소 2시간 정도는 재워둬야 한다.
그래야 고기가 양념을 흡수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너무 오래 재우면 구울 때 물이 너무 나와서 샌드위치용 불고기를 만들 때 난감하다.
국물이 자작하지 않게 바싹 익혀야 하는 샌드위치 불고기는 그때그때 재워서 최대 30분만 재운다.
자칫 너무 물이 많이 나오면 다 쫄 때까지 익혀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소고기가 너무 푸석하고 질겨져 버리니까.
“시아야….”
“….”
“시아… 야?”
“….”
그래서 고기가 사실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전적으로 내가 담당하고 있었던 거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머지 잡일을 모두 시아가 맡아버렸고.
“저기… 시아야?”
“뒤진다. 진짜.”
“아. 하하. 미안해. 내가 너무 많이 시켰지?”
시아가 뭐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냥 막 시켰던 모양이었다.
바쁘게 움직인 흔적이 역력한 시아의 모습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고기 다 재웠으니까 이제 내가 도와줄게.”
“다음엔 바꿔. 내가 고개 재울래.”
“그럴까?”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시아에게는 고기 재우는 일을 맡기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내가 먼저 제안해서 함께 푸드트럭으로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했는데.
먼저 시아를 못 믿어버리면 그건 너무 모순이라 생각했다.
“응. 내가 할겨.”
“그려.”
“이제 오픈해?”
“그럴까? 일단 트랜스포머부터 좀 하고.”
“하여간.”
“아이~ 엠~ 메가트론!”
이 순간이 가장 두근두근하고 설렌다.
트럭이 식당으로 변하는 이 순간.
웅장한 노래가 흘러나오고 마치 로봇처럼 변하는 푸드트럭을 보고 있자니 역시 돈 지랄이 좋긴 좋구나 싶었다.
이래저래 타협하고 돈 때문에 줄였다면 이런 퀄리티는 나오지 않았겠지.
그리고 시야에 들어오는 손님들을 보면 흐뭇한 미소가 쏟아진다.
오늘도 역시 손님이 꽤 많았다.
“불고기 프라이데이입니다! 한국말을 하시면 할인해 드려요!”
“안뇽하쎄요?”
“킴치 주쎄요.”
“싸람해요!”
삼삼오오 모여 길거리에서 맛보는 사람들도 있었고.
간이 테이블에 앉아 컵밥을 먹는 사람도 보였다.
그렇게 손님들에게 양질의 불고기를 팔고 있을 때.
어떤 남미계 손님들이 찾아왔다.
“여긴 매운 거 없어.”
“그래? 아쉽네.”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손님들.
근데 바로 주인장을 앞에 두고 나에게는 묻지 않고 마치 자기가 다 아는 사람처럼 말하는 남미 사람을 신뢰하는 손님들.
“멕시칸 음식처럼 매운 건 세상에 없어. 훗.”
순간 도발하나? 싶었다.
하지만 순수하게 잘 몰라서 그러는 것으로 생각했다.
한국이란 나라가 유명할 때는 아니었으니까.
“여기 제일 매운 게 뭐죠?”
“맵게 커스터마이징 해드려요?”
현지화를 했기 때문에 김치도 고춧가루를 좀 뺀 달달한 김치였다.
그러므로 좀 맵게 만든다고 한다면, 시중에 살 수 있는 세라노 고추나 할라피뇨를 넣는 것밖에는 현재 방법이 없었다.
이렇게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 이런 손님을 위해서 매운 양념을 따로 만들 수는 없는 법이니까.
“최대한.”
거만하게 말하는 남미계 손님.
마음 같아서는 한국의 매운맛 ‘핫비프’ 라면을 선보여주고 싶었지만, 애석하게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렇게 약간 맵게 커스터마이징된 컵밥을 받아서 손님들과 함께 자리를 잡고 앉은 남미계 손님.
솔직히 컵밥을 팔면서도 눈길이 계속 갔다.
“에이~ 안 맵네. 그냥 우리 멕시칸에서는 애기들도 먹는 수준이야.”
“하하. 정말?”
“그렇다니까? 진짜 안 매워.”
“난 좀 매운 듯?”
“그건 네가 애기 입맛이라서 그렇지.”
“역시 멕시칸 음식이 칼칼~ 하니 맛있지?”
사실 그냥 무시해도 되는 일이었다.
근데 이놈의 대한민국 맵부심은 못 참지 않겠는가.
멕시코 음식도 매운 건 정말 맵긴 하다.
하지만 멕시코의 매움은 약간 다른 매움에 가까웠다.
확- 매웠다가 금방 식어버리는 매움.
하지만 한국의 매움은 끈질기게 혀를 괴롭히는 질척이는 매움이었다.
솔직히 고통으로 따지자면 한국의 매움이 멕시칸 음식의 매움보다 훨씬 고통스럽다고 생각한다.
“근데 맛은 있네.”
“그러니까. 여기 진짜 맛있다.”
“이게 한국 음식이라는 거지?”
“나는 내일 또 올 듯.”
“나도 그래.”
손님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와중에 다음 날에도 또 오겠다는 얘기를 들었다.
물론 다시 온다는 건 그만큼 맛있다는 뜻이었기에 기분은 좋았다.
“시아야. 내일 우리 핫비프 라면 출시하자.”
“핫비프 라면?”
“어.”
“갑자기?”
“어. 매운맛 좀 보여줘야 할 거 같아.”
“하여간. 이럴 땐 애 같다니까.”
그렇게 저녁 8시가 되어서야 겨우 장사를 마감할 수 있었다.
50파운드 전체를 다 써버렸을 정도로 불고기는 동이 나 버렸고.
내일을 기약하며 아쉬워하는 사람들에게 번호표를 주며 이걸 건네주면 가장 먼저 음식을 받을 수 있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해주었다.
손님 한 명이 주는 매출이 그리 크진 않지만, 이런 소소한 관리가 나중에 브랜드 이미지와 가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니까.
“후아. 힘들었다.”
“고생했어. 시아야.”
“우리도 저녁 좀 먹을까?”
“그래야지. 오늘은 뭐 먹을래?”
“음. 아! 먹고 싶은 게 있는데.”
“뭔데?”
“너.”
“어?”
“이리 와.”
“자, 잠깐만. 이, 이것만 좀 내리고!”
*
다음 날.
“꼭 이렇게 해야 할까?”
즉흥적이었기 때문에 메뉴도 즉흥적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내가 대충 손글씨로 핫비프 라면이라며 단돈 사딸라라고 썼었다.
하지만 이걸 보다 못한 시아가 그나마 그림으로 여백의 미로 가득했던 핫비프 라면 메뉴판을 채워주자 그나마 볼만해진 것이다.
“시아야. 한국의 매운맛을 알려야지.”
“그냥 그 사람한테 인정받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 해.”
“뭐. 알아서 하겠지. 난 몰라.”
애초에 핫비프 라면 같은 국물류도 메뉴에 넣을까 해서 설비도 미리 갖춰놨었다.
그래서 핫비프 라면을 제조한다고 장사에 지장이 되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모든 건 계획대로.
이제 어제 왔던 그 멕시칸에게 한국의 매운맛을 알려줄 차례였다.
그리고.
역시 장사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얼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컵밥 제일 맵게요.”
“어? 손님! 어제도 오지 않았나요?”
“기억하시네요?”
“그럼요. 매운 거 좋아하시는 손님이시죠?”
“아, 하하. 멕시칸이니까요.”
멕시칸 부심이 심한 손님은 피식- 웃었다.
어제 먹었던 매운 건 그저 장난에 불과하다는 듯이.
하지만 어제랑은 다르다.
오늘은 진정한 매움을 일깨워 줄 핫비프 라면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럼 혹시 핫비프 라면 체험해 보실래요? 아, 어쩌죠? 근데 이거 엄~ 청 맵거든요.”
“훗. 멕시칸에게 매운 건 없습니다.”
“그럼 콜?”
“당연히. 콜!”
첫 핫비프 라면 개시가 벼르고 있던 남미계 손님에게로 돌아갔다.
드디어 내가 준비한 초특급 특제 핫소스를 듬뿍 넣은 핫비프 라면을 맛보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어디 이것 먹고도 그리 자신만만한지 보자.’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웃음이 주체가 되지 않았다.
“흐흐흐.”
“왜 저래?”
드디어 한국의 진정한 매운맛을 선보일 수 있다는 생각에.
그리고 혹시나 해 순수 청양고추로 만든 소스만을 넣었다.
오로지 국내산으로만 승부하고 싶었으니까.
청양고추의 몇천 배 스코빌지수 따위는 무시한 채.
그저 청양고추와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매운맛으로만 만든 핫비프 라면.
한국의 얼이 담긴 핫비프 라면.
출격 준비 완료.
“손님! 핫비프 라면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