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sword demon changed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6
016. 치료
그것은 금현아의 십 사 년 인생을 통틀어 생전 처음 느껴 보는 종류의 감각이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나타나 머리 속 뇌를 우악스럽게 붙잡고는 그대로 바닥으로 내팽개친 것만 같은 고통!
뇌가 고통이라는 통각을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서 도를 넘은 자극에 순간 퍼져 버린 것이다.
그 여파는 당장 육체에 나타났다.
대략 삼에서 사 초 정도 금현아는 의식을 잃었다.
기계적으로 재갈을 악문 입 틈새에서는 침이 흘러내렸고, 전신의 근육이 기절과 동시에 풀리다 보니 다리사이로 액체가 졸졸 흘러내렸다.
금현아에게는 천운인 게 오랜 기간 몸이 아프다 보니 소화기계가 허약해져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했고 덕분에 고형물이 세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
찰나의 순간이 지나가고 금현아가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그제야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맞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마 손바닥으로 등을 ‘짝-‘소리가 나게 맞은 것 같았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 즘은 겪어 봤을 종류의 통증이었다.
다만 그로 인한 통증이 정상이 아니었다.
자신의 등을 볼 수 없는 금현아는 모르고 있지만 현재 그녀의 등에는 시뻘건 멍이 들어 있었다.
강력한 손바닥에 맞은 금현아의 피부는 이전까지의 백옥같이 새하얗고 매끄럽던 자태가 거짓말로 느껴질 정도로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리고 그 붉게 달아오른 피부에…….
콕!
“……히익!? 뭐, 뭘 하신 건가요 은인!?”
“기다려 봐라 자 나온다, 나온다…… 좋아 됐다!”
잠시 부산스럽게 금현아의 등 뒤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던 장백서가 한 손에 작은 옥병을 들고 금현아의 앞으로 나왔다.
“……그건?”
“네 피다”
그렇게 말하고 장백서는 피가 담긴 옥병을 금현아의 코 앞에 내밀었다.
“냄새 한 번 맡아 봐라.”
“네? 갑자기 왜…….”
반문하려던 금현아는 옥병에서 흘러나오는 청아한 냄새에 깜짝 놀랐다.
“어, 어째서 이런 냄새가?”
피라고 하면 무릇 비릿한 쇠의 향이 나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지금 옥병의 안에서 나는 냄새는 그런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청아하고 산뜻한, 냄새를 맞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냄새!
금현아는 문득 이런 냄새를 맡아 본 적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뭔가 곰곰이 생각하던 금현아는 이것이 삼 년 전 자신이 먹었던 청양단의 냄새와 흡사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 어째서 제 피에서 청양단의 냄새가……?”
작은 옥병을 손 안에서 굴리던 장백서는 자신도 한 번 냄새를 맡아 보고는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마 너는 갑자기 네 등을 때린 것에 깜짝 놀랐을 것이다.”
“그거야…… 뭐…….”
그렇게 말하면서 금현아는 자신의 다리를 타고 흘러내린 노란빛의 물을 보고 얼굴을 붉혔다.
놀라는 것을 넘어서 한 순간 기절까지 했고 그 탓에 소피까지 지려 버리고 말았다.
얼굴을 붉히는 금현아를 뒤로 하고 장백서는 말을 이었다.
“물론 그냥 손바닥으로 힘껏 때린 것이 아니란다, 나는 너를 때리면서 특별한 경을 담았다”
“경이라면……?”
“흔히 무림에서 쓰이는 경의 기술로는 내가중수법이나 침투경, 그리고 암경 같은 것들이 있지, 물론 이런 것들 외에도 각 문파마다 특유의 경법이 있기 마련이란다. 각설하고 말하자면 나는 경이 담긴 따귀를 통해 네 몸 사지 육신에 깃들어서 너의 몸을 갉아먹고 있는 영약의 기운들이 반응하게 한 거란다.”
“그럼 아까 따끔 했던 것은……?”
“바늘로 찔러서 피가 나게 한 거란다, 경을 동반한 따귀로 영약의 기운이 너의 몸을 지키기 위해서 절로 일어나 반응했고 그 결과로 생긴 피멍에는 몸을 지키기 위해 움직인 영약의 기운들이 모여 있었단다, 그렇게 영약의 기운들이 모여서 생긴 피 멍에 바늘로 작은 상처를 내고 거기서 흘러나온 피가 바로 이것이란다.”
치료의 원리를 들은 금현아는 놀란 눈 빛으로 장백서가 가진 옥병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방금 전까지는 너무나도 막대한 고통에 정신이 팔려 눈치를 채지 못했지만…… 몸이 이전보다 분명하게 가벼워져 있었다.
머리의 두통도 전보다 가라앉아 있었고 열도 확실히 조금 내려 있었다…… 등이 무서울 정도로 화끈 거리기는 하지만…….
잠시 멍한 얼굴을 하던 금현아의 눈에서 한 방울 두 방울 눈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왜, 왜 그러느냐? 역시 너무 아팠구나!”
‘씨앙 오줌까지 지렸는데 그럼 안 아팠겠냐…….’
말해 놓고도 뭘 당연한 소리를 해서 애를 민망하게 만드는가 싶은 장백서는 자신을 자책했다.
아직 열 네 살 밖에 되지 않았다 해도 여자는 여자다, 그런데 오늘 처음 보는 외간 남자 앞에서 나체가 된 것도 모자라 지리기까지 했으니…….
“감사해요…… 감사해요 은인!”
그런데 장백서의 생각과는 다르게 금현아는 눈물을 흘리면서 감사를 표하고 있었다.
이에 어리둥절해하던 장백서였으나 이내 손이 묶여 있는 금현아를 대신해서 그 눈물을 닦아 주었다.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는 금현아를 품에 안고 달래 주었다.
금현아가 얼굴을 묻은 가슴팍이 축축하게 젖어 가고 있었지만 장백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 정도 진정이 된 금현아가 눈물을 흘리느라 붉게 달아오른 눈가와 코 먹는 소리를 내면서 장백서를 바라보았다.
“은인 팔을 묶은 천을 풀어 주시겠어요? 꼼짝없이 죽을 운명이던 소녀의 목숨을 구해 주신 은인에게 제대로 절을 올리고 싶습니다”
기쁨에 달뜬 목소리로 팔을 풀어달라 청하던 금현아는 검은 천으로 가려진 장백서의 얼굴에 ‘응? 왜?’ 라는 느낌의 의문이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분명 검은 천에 가려져 보이지는 않았지만 금현아는 확실히 느껴졌다.
그리고 순간 등줄기를 따라 소름이 타고 올라왔다.
불길한 예감이 전신을 감싸고 돌았다.
결코 장백서가 자신을 묶어 두고 음험하고 더러운 욕망을 채우려고 무언가를 할 거라는 생각이 들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가 갑자기 자신을 이유 없이 죽이거나 괴롭힐 것이라는 생각 또한 들지 않았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미친듯이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왜?”
“네? 왜, 왜라니……? 그게 예의 아니겠습니까 은인?”
“그래, 뭐 그게 예의이기는 하겠구나”
“그러니까…… 네?”
“응?”
잠시 그렇게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하던 두 사람, 장백서는 이내 무언가 말의 아귀가 맞물려 돌아가지 않고 있음을 깨닫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도 깨달았다.
“아! 아아, 그래 그럴 수 있지, 암 그게 도리지 하지만 그건 치료가 다 끝난 다음에 하도록 하자구나.”
“다…… 끝나…… 고…… 라는 건?”
“아직 치료가 다 안 끝났다는 뜻이지.”
“…….”
“어디 영약의 기운이 등 한 부분에만 깃들어 있겠느냐? 전신에 골고루 퍼져 있겠지”
“그 말씀은…….”
“뭐, 그런 뜻이지…….”
금현아는 눈 앞이 새카매지는 것을 느꼈다.
***
“하아…… 하아…….”
얼마나의 시간이 지난 걸까?
“이제 다 끝났다…… 정말 고생했구나.”
그렇게 말하면서 장백서는 이미 전신에 힘이 풀려 제대로 서 있지 못하던 금현아를 지탱하고 있던 천을 풀었다.
휘청~
천이 풀리자마자 쓰러지려는 금현아를 장백서가 받아 들었다.
금현아의 전신은 말 그대로 엉망 진창이었다.
얼굴을 제외하고 전신이 피멍으로 물들어 있었고 거기에 비라도 맞은 듯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고통을 견디려고 몸에 본능적으로 힘을 주느라 땀을 비 오듯 흘린 것이다.
물론 흘린 것은 땀만이 아니었다, 사람이란 평범하게 살아 있는 한 깨어 있든 자고 있든 어느 정도는 몸에 힘을 주고 있다, 그런데 너무나도 극심한 고통을 받으면 그 당연히 유지되던 힘이 고통을 견디는 것에 집중된다, 그리고 그 한 순간의 고통을 견디고 나면 전신에 모든 힘이 완전히 풀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침은 물론 오줌도 줄줄 새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금현아가 현재 그런 상태였다, 침과 눈물 콧물에 땀과 오줌까지…… 갖가지 분비물로 축축하게 적은 금현아를 장백서는 거리낌 없이 안아 들었다.
그리고 치료 시작 전에 미리 준비시켜 놓은 물을 이용해서 금현아를 깔끔하게 씻겼다.
금현아는 마음 같아서는 자신이 혼자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런 말을 서푼도 꺼낼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을 견디는 데 모든 힘을 사용한 상태였다.
하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금현아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몸에 힘이 없다, 그리고 전신 피부는 모두 붉은 피멍으로 물들어 미친 듯이 쓰리고 따끔거린다……하지만 그뿐이었다.
몇 년간 자신을 괴롭히던 고열과 몽롱함은 모두 사라지고 정신은 명료하고 뚜렷했다.
여태까지 아파 왔던 것이 마치 거짓말인 것 같았다.
장백서는 깔끔하게 씻긴 금현아의 피부 전신에 연고를 발라 주었다.
“피 멍은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길어도 일주야 정도 지나면 깔끔히 사라질 거니까.”
그렇게 말하며 장백서는 연고를 바름과 동시에 자신의 공력을 불어넣어 여태껏 영약의 기운 때문에 흐트러진 내기의 흐름도 조정해 주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금현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장백서는 그러려니 했다.
천형이라 생각했던 중병이 단 하루 만에 사라졌으니 기분이 오죽하겠는가?
그렇게 금현아의 피멍이 든 모든 부위에 연고를 꼼꼼히 발라 주는 것과 공력으로 기운을 복 돋아 주는 것을 끝낸 장백서는 한 개의 옥병을 건넸다.
“이건…….”
“그래 네 피다.”
물론 그냥 피는 아니다, 오만가지 영약의 기운들이 응축된, 사실상 영약이나 다름없는 피였다.
“건강이 회복되면 수준이 낮은 것이라도 좋으니 무공을 배우도록 하거라”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은인?”
고개를 끄덕인 장백서는 말을 이어 갔다.
“오늘 한 치료를 통해 너의 육체 내 기운의 균형이 다시 잡혔단다, 하지만 앞으로 그 체질이 어떻게 작용할지는 모르는 일, 스스로의 힘으로 육신의 기운을 다룰 수 있도록 무공을 배우면 몸을 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거기에 더해 몇 년에 걸쳐 강한 영약의 기운에 영향을 받아 온 금현아의 몸은 일종의 연단술을 익힌 것과도 같은 상태가 되어 있었다, 이 상태로 무공을 배우면 분명 빠른 진전을 얻을 수 있을 터였다.
그리 생각하기는 했지만 장백서는 입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쓸데없는 소리로 자신감을 심어 줘서 난데없이 무림의 여류고수가 되겠다 나서면 금가동이 상당히 골치 아파질 테니까.
“내가기공에 좀 익숙해지면 조금씩 이 옥병의 피를 마시거라.”
“이, 이걸 말입니까?”
금현아는 매우 싫어하는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게 이 옥병에 담긴 내용물이야 말로 몇 년간 그녀를 괴롭힌 중병의 원인이었으니까…….
물론 장백서도 그런 금현아의 기분을 이해했다, 그래서 설명을 조금 덧붙였다.
“오랜 기간 네 몸 안에 축적된 영약의 기운이 가득 담긴 게 이 옥병에 담겨 있는 피란다, 내가기공을 익히지 않고 이 피를 다시 마시게 되면 영약의 기운이 고통을 주겠지만 내가기공을 익혀 체내의 기운을 다룰 수 있게 되면 그때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진단다.”
즉, 내가기공을 익혀 체내의 기운을 다룰 수 있게 되면 피에 깃든 영약의 기운을 내공으로 흡수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거기다 원래는 영약의 기운을 흡수하는 것은 큰 기회임과 동시에 큰 위험을 동반한 행위였다.
운이 나쁘면 내상을 입거나 심하면 주화입마를 입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금현아가 옥병의 피를 마시는 것은 그것과는 이야기가 달랐다, 여러 영약의 기운이 긴 시간 금현아의 체내에서 합쳐져 만들어진 것이 옥병의 피다. 원래부터가 자신의 체내에 있던 기운인 만큼 내상이나 주화입마의 위험이 전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이 옥병에 깃든 영약의 기운은 가히 소림의 대환단에 버금갈 수준이기까지 하니…….
당장 선양단이 소환단에 버금 갈 정도의 기운을 가지고 있었고 거기에 삼 년여에 걸쳐 금가동은 금조상단의 그 어마어마한 재력으로 천하의 병에 좋다는 영약이란 영약은 쓸어 담아 먹였으니…… 체내에 모여 있던 영약의 기운은 이미 대환단을 넘어설 정도였다.
물론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럼 돈만 있으면 약재를 쓸어 모아 먹어서 대환단 이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건가?’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었다.
한 성에서 최고를 논할 정도의 상단이 그 재력을 아낌없이 쏟아부어 먹이면 분명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금현아처럼 대환단 이상의 기운을 모으기는 힘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공을 키우는 무림인이 그런 하급의 영약을 먹는다 해도 혈도로 들어간 영약의 기운들을 자신의 내공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워낙 그 기운이 약하다 보니 상당부분이 유실되고 그런 식으로 남은 기운만을 모은다 해도 그렇게 모인 기운은 대환단은 커녕 소환단에 겨우 미칠까 말까 일 것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금가동의 딸을 향한 과도한 사랑과 금현아의 타고난 체질이 합쳐져서 생긴 우연적 결말의 산물인 것이다.
여기서, ‘그러면 어딘가의 사악한 집단이 금현아를 납치에서 옥병의 피를 양산해서 만들려고 할 수 있지 않냐?’ 는 걱정을 할 수도 있지만…….
“은인, 이 옥병을 받아 주세요, 은인의 말에 따르면 이 병에 든 제 피는 영약이나 다름없다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이 옥병을 은인께서 받아 주시면 기쁠 것입니다”
그리 말했지만 장백서는 금현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이런 장백서의 반응에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금현아는 급히 말을 이었다.
“아, 오,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은인! 결코 이런 피로 은인께서 베풀어 준 은혜를 갚은 셈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은혜를 갚는다고 해도 그것은 저의 힘이 아닌 아버지와 금조상단의 힘에 의한 것, 저는 그저 은인이 베풀어 준 하늘과도 같은 은혜를 조금일지라도 제가 가진 것으로 보답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입니다!”
장백서의 침묵을 다른 의미로 이해한 금현아가 필사적으로 항변을 하니 그제야 장백서는 입을 열었다.
“아, 아이야 그런 뜻으로 입을 다문 게 아니란다, 다만 그 옥병의 피는 분명 너에게는 천고의 영약과 같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아니라는 말을 해 주려는 거란다.”
“네?”
옥병의 피에 깃든 기운은 분명 대환단에 버금갈 정도로 농밀했다, 다만 문제는 그 기운이 완전히 금현아 전용의 기운이라는 것이었다.
금현아가 먹으면 빠르게 내공 증진과 동시에 내상과 주화입마의 위험도 없겠지만 금현아가 아닌 다른 인물이 먹는다면 그 효과는 큰 폭으로 반감될 것이다, 소환단 정도의 내공도 얻지 못할 가능성이 크고 내상과 주화입마의 위험도 보통 영약보다 훨씬 크다.
사실 장백서도 이 옥병의 피를 포기하는 것이 정말로 아까웠다.
앞으로 오 년 뒤 중병을 앓을 소현이를 구하기 위해서는 대환단급의 영약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렇게 절묘하게 대환단급의 기운을 가진 물건이 손에 들어오니 마음이 달뜨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물건의 특성이 완전히 금현아 전용인 만큼 아무리 아쉬워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설명을 다 들은 금현아는 갑자기 시무룩해져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금현아의 모습을 보면서 장백서는 참 감정 변화가 극심한 아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좀 그러면 어떻겠는가?
아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사소한 일로 기뻐하고, 사소한 일로 화내고, 사소한 일로 슬퍼하고, 그리고 사소한 일로 즐거워한다.
그것이면 된 것이다.
장백서는 여전히 푹 숙여져 있는 금현아의 머리칼을 상냥하게 쓰다듬어 주었다.
장백서는 앞으로도 미래를 바꾸어 갈 것이다, 그리고 그 첫걸음이 되는 것이 이 소녀의 생명이었다.
그가 아는 무림에는 정이 없다.
비겁하고 비열하고 추악하다.
그리고 더해서 협조차도 없다.
후안 무치하며 위선적이며 이기적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중원무림을 살아가는 모든 평범한 이들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삼류 무사이든 천하제일인이든…….
하지만 장백서는 그 숙명을 거스르는 삶을 살아 보기로 했다.
흘러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세상의 천기조차 거스르고 과거로 돌아온 장백서가 아니던가?
세상속의 세상인 무림의 숙명 따위는 무시하기로 장백서는 결심한 것이다.
‘나의 정과 나의 협에 따라 살겠다.’
그리고 그 각오를 다지게 해 준 것이 바로 이 소녀였다.
“은인?”
한 참 고개를 숙이고 있던 금현아는 그저 말없이 자신의 머리를 계속 쓰다듬는 장백서의 행동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찰나.
“고맙구나.”
희미하게 그런 말이 들린 것만 같았다.
그리고 금현아가 고개를 들었을 때에는……
금현아의 방에는 그녀만이 홀로 남겨져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