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sword demon changed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205
205. 협객이 될 거예요!
근 백년간 천하무림에서 가장 큰 피 바람을 불러온 사건.
패왕성의 천하행진[天下行進].
“그들에게 누구보다 먼저 맞서고 누구보다 큰 피해를 입은 건 아시다시피 당시 천하제일세가라 불리던 남궁세가였지.”
현진은 그리 운을 띄었다.
“그렇다면 두 번째로 큰 피해를 입은 곳은 어디일 것 같은가?”
딱히 대답을 기대하는 것 같진 않은 현진의 질문에 정무선과 장백서는 침묵했다.
“후후, 세상사 참 야속한 법이네, 좋은 곳에서든 나쁜 곳에서든 일등은 기억하지만 이등에게는 관심이 없지 않은가?”
현진은 그리 말하며 씁쓸한 듯 미소 지었다.
“내 입으로 말하는 게 좀 우습지만, 천하행진으로 두 번째로 큰 피해를 입은 곳이 바로 소림이었네.”
그리 말한 현진은 당시를 회상하는 듯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네, 나의 스승과 사숙, 그리고 사조까지…… 소림의 수많은 승려들이 패왕성을 막기 위해 초개처럼 몸을 던지셨지.”
무림의 역사를 되새겨보면 소림은 항상 그러했다.
천하의 명운을 가를 커다란 싸움에 언제나 대가 없이 모습을 드러내 도의를 위해 싸웠고 아무리 불리한 싸움일지라도 올바른 일을 위해 망설이지 않았다.
그 대가로 소림은 몇 번이나 멸문의 위기를 겪었다.
“그렇게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소림에게 많은 사람들이 손을 보태주었다네, 당시 불문의 가르침에 회의감을 느끼던 나였지만 그런 이들의 선의를 통해 사바세계에도 부처는 있구나 믿게 되었지…….”
하지만 그들의 그런 올바름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런 이들의 마음에 힘입어 소림은 언제나 위기에서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그렇게 손을 보태준 이들 중에 금룡장, 정확히는 당대의 금룡장주가 있었다네…….”
당시 막 가문을 승계받은 정금호는 가신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장의 기둥뿌리를 반 가까이 뽑아 소림에 지원해 주었고 그의 아낌없는, 아니 뼈를 깎는 후원 덕분에 소림은 막심한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제기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도움에 감동하신 당대의 방장께서는 소림은 결코 금룡장이 베푼 은혜를 잊지 않을 것이며 향후 오십년간 금룡장에 어떤 상황에 처해도 소림은 그들의 편이 될 것임을 천명했다네.”
“막인 즉슨… 소림이 금룡장에 어마어마한 빚이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끄덕
현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면으로 문서를 작성한 것은 아니나 천하 무림에 이리 천명한 이상 소림 입장에서는 쉬이 금룡장의 행사에 제동을 걸 수가 없네.”
“……하, 그래서야 마치 면죄부를 판 것과 다름이 없지 않습니까?”
“할 말이 없군, 설마 소림이 비단길 너머 색목인들의 종교와 같은 짓을 하게 될 것이라고는… 나도 상상조차 못했다네…….”
현진은 어떤 반박이나 반론도 없이 장백서의 말을 긍정했고 그 모습에 장백서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소림이 다른 구파일방에 비하면 속세의 때가 덜 묻은 이들이라 해도.
사바세계에 얽힌 이상 이러한 문제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내심 소림만은 다를 거라 생각하던 장백서는 씁쓸한 현실에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그래서 결국 뭘 어떻게 해 주기를 바라고 이곳을 찾은 것이오?”
“……서부인을 ……그분을 구해주시오…….”
장백서의 물음에 정무선은 간절한 심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 간절함은 여인에 대한 사랑에서 기인한 것일까?
그도 아니면 아비가 죄를 더하지 않기를 바라는 자식의 바램에서 기인한 것일까?
장백서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
정무선이 방을 떠나고 장백서 역시 그의 방을 떠났다.
좀 더 캐묻고 싶은 일들이 있었으나…… 도저히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후우…… 갑갑하군.”
답답한 것을 풀기위해 옮긴 발걸음이었으나……
오히려 속이 더 갑갑해진 장백서였다.
의문은 풀리기는커녕 더욱 깊어졌고 서궁정의 일도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자연히 생각은 많아지고 그럴수록 갑갑함은 더해만갔다.
그런 답답한 속내가 반영된 것일까?
걸어가는 발걸음도 힘 없이 느릿느릿했다.
그렇게 느릿한 걸음으로 숙소에 도착한 장백서는 근처 연무장에서 바삐 움직이는 두 개의 그림자를 발견했다.
“저 녀석들…….”
두 그림자는 장백서에게 익숙한 인물들이었다.
“한 밤에 안 자고 뭐하고들 있느냐?”
장백서가 일부러 큰 목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자.
“아! 사부님! 밤 중에 고생이 많으십니다!!”
“사부……!”
백소화와 소소가 하는 일을 멈추고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
장백서는 두 아이가 연무장을 내려오기 전에 신법을 사용해 연무장으로 날 듯이 올라갔다.
단 일보로 몇 장이나 되는 거리를 단숨에 좁히는 모습에 백소화와 소소는 입을 크게 벌리고 감탄했다.
그런 두 아이의 모습이 귀여워 장백서는 평소보다 좀 더 멋을 부리며 내려섰다.
짝짝짝!
“멋있어요 사부님!”
“멋져……!”
두 사람은 그런 장백서의 모습에 박수까지 치며 환호했고 그런 열렬한 환호가 부끄러운 듯 장백서는 볼을 긁적였다.
“커흠, 너희들도 열심히 수련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이리 할 수 있을 거다.”
그 말에 두 아이의 눈이 반짝 반짝 빛났고 그런 순박한 모습에 장백서는 사문에 남겨두고 온 소현이를 떠올렸다.
‘빨리 돌아가겠다 했건만…….’
결국 소현이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단 생각에 씁쓸한 미소를 지은 장백서는 이내 두 아이가 자신만을 보고 있단 걸 깨닫고 입가를 끌어올렸다.
“그래, 미래의 두 고수님들께서는 이 밤중에 무얼 하고 계셨는가?”
짐짓 장난스럽게 물어보자 두 아이는 빠릿하게 서서는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대답했다.
“사부님처럼 되기 위해 수련 중입니다!”
“저도……!”
“하하! 장하구나.”
씩씩하게 대답하는 두 아이의 모습에 장백서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장백서는 ‘소림에 온 이후로 이리 크게 웃는 건 처음이군’ 따위의 생각을 하면서 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장래가 기대되는 아이들이다.’
어쩌다 보니 거두게 된 아이들이었지만, 우연인지 그도 아니면 운명인지 두 아이의 무재는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끔찍한 일을 겪었던 만큼 강함에 대한 열망이 강했고 그를 실현하기 위해 이를 악무는 독기도 있었다.
그렇기에 이런 야밤에도 밤잠을 아끼며 수련을 하고 있었던 것이겠지.
“그래, 서씨백화수는 좀 손에 익었느냐?”
“그, 열심히는 하고 있습니다만…… 일장과 이장까지는 어찌 하겠는데 삼장과 사장은 버벅대며 흉내만 내는 수준입니다.”
“저도…….”
부족한 성취가 부끄럽기라도 한 듯 두 아이는 그리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부끄러워할 것 없다, 오히려 생각보다 진도가 빠르니 기분이 좋구나.”
장백서는 두 사람에게 단야개벽수를 가르치기 전의 기초 과정으로 서씨백화수에 기록된 수공과 장법, 그리고 두 가지 보법을 각각 대입시킨 총 네 개의 투로를 가르쳤다.
단야개벽수 자체가 그 네 무공의 교차점에서 완성된 무공인만큼 입문 무공으로서는 제격이었다.
“스승님!! 바쁘지 않으시다면 불초제자가 수련하는 모습을 조금만 봐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래, 어디 해 보거라.”
“으…….”
소소 역시 말은 안 해도 장백서가 봐주기를 원하는지 그리 소리를 내며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그래, 너도 봐주마.”
장백서는 두 아이가 펼치는 무공을 살펴주었다.
잘한 곳은 크게 칭찬해주고 잘못된 곳은 차분한 어조로 지적한 뒤 올바른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장백서 역시 작지만 얻는 것이 있었고 이 두 아이를 제자로 들인 것이 틀리지 않은 선택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두 아이의 수련을 봐주던 장백서는, 무든 생각이 난 것이 있어 두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그러고 보니 아까 나처럼 되고 싶다는 건 무슨 말이었느냐?”
“스승님처럼 강하고 멋진, 그리고 약한 사람을 도와주는 협객이 되고 싶다는 말이었습니다!”
“……!”
백소화는 활짝 웃으며 그리 말했고 소소 역시 말은 안 해도 자신도 그렇다 주장하듯 밝게 미소 지었다.
한점 그늘조차 느껴지지 않는 두 아이의 대답에……
“하,하하하하하하하!!”
장백서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오고 말았다.
“사부님?”
“으응……?”
뜬금없이 혼자 폭소를 터뜨리는 장백서의 모습에 두 아이가 고개를 갸웃거렸고 그런 두 아이를 보며 장백서는 손을 내저으며 겨우 입을 열었다.
“아니, 아니다 그냥 좀 고민하고 있던 것이 해결돼서 말이다…….”
스승의 고민이 해결되었다는 말에 두 아이는 밝은 얼굴로 ‘축하드립니다!’ 라고 말했다.
그런 아이들에게 밤바람이 추우니 이만 들어가라 명한 장백서는 후련한 얼굴로 몸을 돌려 숙소와는 반대방향으로 걸어갔다.
아이들의 말 덕분에 혼란스럽던 머릿속이 단박에 정리되었다.
소림과 현진이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는 모른다.
다만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명확했다.
“강하고 멋진 협객다운 일이나 하러 가야겠군.”
그리고 협객의 행사에는 밤낮 구분이 없다.
복잡하게 생각하는 걸 때려치워버린 장백서였다.
***
금룡장의 깊은 곳.
외따로 떨어진 전각, 자신의 방 침대위에 서궁정은 홀로 누워 있었다.
스윽
그러다 살짝 몸을 움직인 서궁정은 이제까지의 피로가 거짓말 같이 가벼워진 몸에 서글픈 미소를 지어보였다.
‘내일부터는 더한 지옥이 펼쳐지겠구나.’
이제까지는 서궁정의 몸 상태가 악화된 걸 감안해 서류작업을 줄여준 정태산이었다.
하지만 장백서의 활약으로 서궁정의 몸은 요술처럼 회복되었고 하물며 그 치료법을 전수해 주기까지 했다.
그게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서궁정의 눈에는 뻔히 보였다.
하지만.
그렇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악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서궁정은 장백서가 밉지는 않았다.
“…….”
몸은 크지만 아직 앳된 티가 남아있던 장백서의 얼굴에서 서궁정은 이제는 볼 수 없는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남자의 얼굴을 겹쳐보았다.
사실 생긴 게 별로 닮지는 않은 두 사람이었지만……어째선지 두 사람이 닮은 것 같다 느끼는 서궁정이었다.
간만에 정혼자의 얼굴을 떠올리니 서궁정의 눈가가 붉어져 갔다.
‘……차라리…….’
한없이 마음이 가라앉는 가운데, 그녀의 머리속에는 침상의 틈새에 몰래 숨겨두었던 단검의 존재가 떠올랐다.
그때.
똑똑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서 부인”
문 밖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서궁정은 극단적인 생각을 접어두고 급히 문을 열었다.
“도련님……! 이곳에 이리 찾아오시면 안됩니다! 이 곳을 감시하는 무사들 눈에 들면 어쩌려고…….”
“괜찮습니다, 부인의 치료를 위해 물렸던 무사들은 가주가 벌인 술판에서 음주가무를 즐기는 중이니까요.”
문 밖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건 간밤에 소림에 다녀온 정무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