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657
제657화
-저 영감이 나딘빵만 먹다가 노망이 났나!
라스가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조용히 좀 해.’
라온은 라스의 입을 막은 채 글렌을 바라보았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글렌에게 말해준 오마의 정보가 특별하다고는 해도 그가 아예 예측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갑자기 무학서를 내어준 건 정상적인 보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바보 엘프 또 무슨 짓을 한 거야….’
대체 무슨 술수를 부렸기에 자그마한 정보에 무학서를 다섯 권이나 건네주는 건지 모르겠다.
“정말 이 무학서들을 제게 주시는 겁니까?”
“그리 당황할 필요 없다.”
글렌은 구름에 가려진 달빛처럼 은은한 눈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폐기할 무학서를 주었을 뿐이니까.”
그는 본래 버리려고 했던 무학서를 꺼냈을 뿐이라며 손을 저었다.
“음….”
라온이 신음을 삼키며 무학서의 이름을 차례로 훑어내렸다.
‘멸성검법, 추혈보, 잔풍검결, 강류체술….’
무학서는 전부 다섯 권이었는데, 이름이 범상치 않았다. 실제 수준은 어떨지 몰라도 제목만 보면 모두 상승 무학 같았다.
“전부 나사가 하나씩 빠져 있는 무학들이다. 다만 네가 창안한 휘광류를 보니, 버리는 것보다는 넘겨주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고마워할 필요 없다.”
글렌은 정말 아무 의미도 없다는 듯 담담하게 눈을 내리감았다. 다만 그의 말은 평소보다 길었고, 음성은 미세하게 떨렸다.
“다시 말하지만, 대단한 무학서도 아니고. 네가 준 정보에 대한 대가일 뿐이니, 고마워할 필요 없다.”
감사 인사를 하기 위해서 고개를 숙이려 할 때 글렌이 먼저 선수를 쳤다.
“그렇다고 해도 감사드립니다.”
라온은 옅게 웃으며 글렌에게 고개를 숙였다. 정말 버리기 위해서 모아둔 무학이라고 해도 분명 배울 점은 있다.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크흠!”
글렌이 헛기침을 하면서 다시 호수 쪽으로 등을 돌렸다. 하늘이 어둑했기에 얼굴이 어떤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귓불은 불에 덴 것처럼 빨갛게 달아오른 것 같았다.
“그런데….”
글렌의 시선이 슬쩍 돌아갔다.
“혹시 그 녀석이. 아니, 광풍부대주가 네게 무학을 알려주었나?”
그는 이미 리메르에 관해서도 알고 있는 듯 질문을 던졌다.
“그렇습니다.”
“어떤 무학이었지?”
“음….”
라온이 떨리는 손끝을 감췄다.
‘이걸 말해야 하나?’
리메르가 주었던 무학은 평범한 연공법이 아니라, 엘프. 그것도 세이피아의 가디언이 익히는 가루누아였다. 그걸 말하게 되면 그냥 넘어갈 것 같지 않았다.
다만 리메르는 성격상 본인이 먼저 말하고 다닐 가능성이 굉장히 높았고, 글렌이라면 이미 알아차렸을 수도 있다. 거짓말을 하면 바로 들킬 것이다.
“가루누아라는 무학입니다.”
라온은 한숨을 내쉰 후 가루누아를 익히게 된 사실을 밝혔다.
“…바람의 노래인가.”
글렌은 가루누아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눈을 부릅떴다.
“그렇습니다.”
“으음.”
그는 예상대로 가루누아에 대해서 알고 있었는지 입술을 씹었다.
“가주님. 광풍부대주는… 음?”
라온이 리메르를 옹호하기 위해서 말을 지어내려는데, 글렌의 표정이 심각하리만큼 굳어졌다.
다만 그건 협상에 실패한 외교관이 아니라, 전투에 패배한 검사를 보는 것 같았다.
“끄응….”
글렌은 본인이 내려놓은 무학서를 보면서 어딘가 아픈 듯한 신음을 흘렸다.
“가, 가주님?”
“아니다!”
그는 어금니를 지그시 씹고서는 고개를 돌렸다.
“이만 가보겠다.”
글렌은 그 말을 남기고서 어둠 속으로 훌쩍 사라졌다. 어찌나 빠르게 움직였는지 등이 보이지도 않았다.
-저 영감 정말 왜 저러는 것이냐?
라스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모르겠어.’
라온은 한숨을 푹 내쉬고서 바닥에 떨어진 무학서 중 가장 위에 있는 멸성검법을 주워서 펼쳐보았다.
‘이건….’
최근에 여러 무학을 듣고 보았기에 전부 읽지 않아도 확신이 들었다.
이 무학서는 버릴 만한 물건이 아니다. 분명한 상승 무학. 그것도 새로운 무학을 만들기 편하도록 초식이 잘게 쪼개져 있었다.
‘날 위해 준비해 주신 건가?’
그러고 보니 글렌은 휘광류의 이름을 꺼내며 내게 주는 게 낫다는 말을 했었다. 미리 준비해놓고 계셨던 것 같았다.
‘그래. 그게 맞지.’
이 수준의 무학서를 버린다는 건 말이 되질 않는다. 어머니를 챙겨준 내게 나름의 상을 내리시려고 한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라온은 글렌이 떠난 방향으로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무학서에 묻은 흙을 손으로 털어내며 옅은 미소를 그렸다.
‘다시 연공실에 들어갈 때가 됐네.’
-잘 생각했느니라.
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놈 같은 애송이는 할 때 확실히 집중해야지. 이거 하다 저거 하다 하면 아무것도 못 하느니라!
‘아, 걱정했는데, 받아들여 줘서 고마워.’
라온이 방긋 웃으며 라스의 머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응? 무슨 말이냐?
‘연공실에 들어가면 나딘빵만 먹게 되잖아. 네가 참아준다니 다행이야.’
-어….
라스는 이제야 나딘빵이 생각난 듯 눈을 부릅떴다.
-아, 안 돼! 취소이니라! 절대 들어가지마! 고무빵 싫다고!
‘잼 발라줄게.’
-아아악! 고무는 잼을 발라도 고무이니라!
* * *
“끄으으으윽!”
리메르는 호수를 떠나는 글렌을 보며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저 영감탱이 진짜 왜 저래!”
참고 참았지만, 이제는 정말 인내심이 끊어지기 직전이었다.
“버리려는 무학서니까 준다니! 오다 주웠다만 못하잖아!”
빵을 굽고, 고기를 익히고, 야채까지 썰어서 거하게 상을 차려 주었다.
포크로 음식을 찍어 먹기만 하면 되는데, 글렌은 그 상을 발로 걷어차다 못해 아예 뒤집어엎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허허허.”
로엔이 인자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가주님께서는 저희 생각 이상으로 부끄러움이 많으시군요.”
“저건 부끄러움이 많은 게 아니라, 앞뒤가 꽉꽉 막힌 거예요! 어휴, 답답해!”
리메르는 새가 집을 지은 듯한 머리를 뒤로 넘기며 이를 갈았다.
“할 걸 다 해줬는데, 어떻게 저러는 거야.”
글렌을 대놓고 자극하고, 라온에게는 가루누아와 글렌에게 무학을 얻을 수 있는 힌트를 넘겨주었다.
라온 녀석은 예상대로 움직여주었지만, 글렌은 바로 앞에 있는 꽃길을 무시하고, 진흙탕에 들어가 버렸다. 정말 이해가 되질 않는 사람이다.
“나도 좀 답답하기는 하네.”
셰릴이 바위에서 등을 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밤새 무학서를 고르셔놓고 버리려고 했다니, 어이가 없어.”
그녀는 질린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밤새? 그럼 계속 무학서를 뒤진 거였어?”
“그래. 광풍대와 궁합이 맞을 무학서를 찾으시느라 보고에도 드나드셨지.”
셰릴이 라온에게 준 무학서는 전부 귀한 것들이라며 짧게 혀를 찼다.
“아! 그 말을 들으니까 더 속이 아려와! 이거 내상이다! 내상!”
리메르가 본인의 가슴을 두드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나도 이제 몰라! 도박까지 쉬면서 도와줬는데! 다시는 안 해! 중매 서는 것보다 더 힘들어!”
그는 도박이나 하러 가야겠다며 손을 탁탁 털었다.
“도박장은 휴일인 거 아니었습니까.”
로엔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박장에 휴일이 어디 있어요.”
“그럼 내부 수리는?”
“당연히 뻥이죠. 도박꾼들은 도박장이 수리 중이면 화장실에서도 카드를 돌릴 놈들이에요.”
리메르는 도박꾼들을 우습게 보지 말라며 콧잔등을 긁었다.
“그런데 너는 갑자기 왜 나선 거야?”
셰릴이 리메르를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사람이 안 하던 일을 하면 죽는다고 하는데, 무슨 병이라도 걸렸어?”
“난 엘픈데?”
리메르는 무슨 소리를 하냐며 콧방귀를 뀌었다.
“원래 엘프는 변덕이 심하거든.”
그는 인간 취급하지 말라며 도박장이 있는 방향으로 사라졌다.
“저게 인간이 아니면 누가 인간인데.”
셰릴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바람을 흘렸다.
“허허허.”
로엔은 리메르가 아니라, 호수에서 무학서를 읽는 라온을 보며 기꺼운 듯한 미소를 그렸다.
“정말 많이도 강해지셨군요. 조금만 더 지나면 저희도 못 닿을 듯합니다.”
“그러게요.”
셰릴이 시선을 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봤을 때는 달리기도 제대로 못 하는 꼬마였는데.”
그녀는 옛 생각이 떠오른 듯 옅게 웃었다.
“최근에 부왕을 보고 오셨을 테니, 대충 감이 잡히시겠군요. 라온 도련님이 이기실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은 3:7 정도겠네요. 다만….”
셰릴은 라온이 읽고 있는 무학서를 훑으며 옆머리를 매만졌다.
“저 녀석이 새로운 무학을 만들어온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죠.”
* * *
“이상해….”
비연회주 채드는 책상에 이마를 댄 채로 이상하다는 말을 계속 중얼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왜 안 찾아오시는 거지?
라온이 자신을 찾아올 거라고 예상하고 준비를 해놓은 지 한참 지났는데, 그는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유를 모르겠네.’
라온에게 도검존의 무덤에 들어갈 수 있는 힌트를 주었고, 그가 위험해질까 봐 무덤의 위치를 찾아서 아리스를 보내기도 했으며, 빠르게 움직여서 지그하르트와 도검존의 무덤을 잇는 선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부원주의 상세 정보와 그가 별관을 괴롭히는 내용까지 자세히 적어서 도괴에게 넘겨주었다.
다른 정보원을 쓰지 않고, 직접 움직여서 시간까지 최소화했는데, 라온은 비연회를 찾아오기는커녕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왜지?’
진무전주 발데르면 이해라도 한다. 그는 성심성의를 다해서 도와주어도 ‘어. 그래. 수고했다.’ 하고 말 사람이니까.
하지만 라온은 다르다. 그의 성향은 할아버지인 글렌과 비슷하여 은과 원을 확실히 한다.
이번에 자신의 도움이 크다는 것을 알 텐데, 대체 왜 가만히 있는 건지 모르겠다.
“후우….”
채드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일어섰다.
‘이건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야.’
오랜 기간 눈칫밥을 먹고 살아온 자신의 감이 말한다. 라온은 아무리 못 커도 전주고, 운만 잘 따라주면 가주에도 오를 수 있다고.
그런 사람과의 관계를 그냥 놔둘 수는 없었다.
‘그래. 모르겠으면 내가 알아보면 되지.’
채드는 직접 이유를 알아보기로 마음먹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비연회 건물을 나가서 바로 아리스를 찾아갔다. 그녀는 가문을 떠날 생각인지 짐을 챙기고 있었다.
“채드. 웬일이야?”
아리스가 싱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나 배웅해주려고?”
“아뇨. 그게 아니라….”
채드가 마른침을 삼키고 아리스에게 다가갔다.
“아리스 님. 광풍대주를 보호하기 위해서 도검존의 무덤에 가시지 않았습니까?”
“그래. 덕분에 라온을 구할 수 있었지. 진짜 위험한 상황이었어.”
아리스는 좋은 판단이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혹시 그 이야기를 라온 님께도 하셨나요?”
“음? 그러고 보니 안 했네. 상황이 급박했거든.”
그녀는 헤헤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
채드가 아리스의 순박한 눈을 보며 손을 떨었다.
‘설마 이거….’
다 입 다문 거 아니야?
라온을 구한 아리스도, 부원주의 정보를 알려준 도괴도 라온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최악의 가정이 떠올랐다.
아리스나, 도괴는 타인을 거의 신경 쓰지 않는 강자들이었기에 가능성이 충분했다.
“나 조금 전에 라온이랑 인사하고 왔거든. 또 가기는 민망하니까. 네가 직접 말해.”
아리스는 어깨를 두드려주고서 숙소를 나섰다.
“아….”
채드는 떠나는 아리스의 등을 보며 입을 떡 벌렸다.
‘제발 아니어라! 제발!’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가정을 억지로 내리누르고 도괴를 찾아갔다.
그는 별관에서 삽질하는 전 부원주 킬루안을 보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크으! 안주가 필요 없어! 술이 들어간다! 쑥! 쑥! 쑥쑥!”
“저, 저기 도괴 님.”
채드가 마른침을 삼키며 도괴의 옆으로 다가갔다.
“어? 채드잖아.”
도괴가 술병을 옆으로 내리며 고개를 까딱였다.
“마침 잘 왔어. 저놈들이 삽질을 하게 된 건 자네 덕이기도 하잖아. 같이 즐기자고.”
그는 빈잔에 술을 따라서 건네주었다.
“가, 감사합니다. 그런데 도괴 님.”
채드는 떨리는 손으로 술을 받고서 도괴를 불렀다.
“혹시 제가 부원주와 그의 패악에 대한 정보를 정리해서 드렸다는 이야기를 라온 님께 하셨는지….”
“음?”
도괴가 술병으로 관자놀이를 슬슬 문지르다가 고개를 저었다.
“술에 취해서 잘 기억이 안 나네. 아마 했겠지?”
그는 쿠헬헬 웃으며 다시 술을 마셨다.
“끄윽….”
채드가 언젠가 본 라온처럼 눈을 질끈 감았다.
‘이 망할!’
이제야 라온이 자신을 찾아오지 않은 답이 풀렸다.
이곳에 오며 생각했던 최악의 가정대로 아리스도, 도괴도 그리고 다른 인간들도 라온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은 게 맞았다.
‘이대로는 안 돼.’
좀 추하더라도 직접 밝히자.
스스로 한 일을 밝히는 건 분명 민망한 일이지만, 가만히 있기에는 이번에 한 고생이 너무 많았다.
‘가자!’
채드는 주먹을 불끈 말아쥐고서 라온이 있을 5 연무장으로 향했다.
* * *
“내가 나올 때까지. 광풍대와 별관을 부탁할게.”
라온이 5연무장의 연공실에 들어가며 버렌과 마르타, 루난과 눈을 마주쳤다.
“알겠으니까. 마음 놓고 들어가셔.”
마르타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루난은 나올 때 아이스크림을 준비해놓겠다며 눈을 끔벅였다.
“저기….”
버렌이 라온에게 다가가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어깨에 있는 바다의 정령. 지금 화가 많이 것 같은데?”
라온이 얻었다는 바다의 정령은 지금 그의 어깨 위에서 미쳐 날뛰고 있었다.
“아, 지금 춤추는 중이야. 기뻐하고 있잖아.”
라온은 별일 아니라는 듯 정령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정령은 광기를 두른 것처럼 더욱 팔짝거렸다.
“그, 그런가?”
그렇게 들으니, 또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했다. 물론 정령의 눈알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건 무서웠지만.
“그럼.”
라온은 가볍게 손을 젓고서 연공실로 들어갔다.
“새로운 무학이라니!”
크레인이 씩 웃으며 손으로 깍지를 꼈다.
“엄청 기대되지 않아요? 휘광류보다 더 뛰어난 무학일 테니까!”
“나는 광풍대 전체가 익힌다는 게 가장 마음에 들어. 잘 써먹을 수 있을 테니까.”
마르타가 연공실 벽에 등을 기대며 입맛을 다셨다.
“더 좋은 건 아닐 거야. 휘광류를 별관의 시녀들에게 맞췄듯이, 이번에 라온이 만들 무학은 우리에게 맞는 형태일 테니까. 높고 낮고는 없어.”
버렌이 담담히 답하고서 연공실에서 물러났다.
“오늘은 1조가 지키는 거지?”
“그래. 빨리 가보셔.”
마르타는 가라며 손을 휘휘 저었다.
“난 안 가.”
루난은 여기에 있겠다며 품에서 구슬 아이스크림 박스를 꺼냈다.
“넌 제발 좀 가라.”
“안 가.”
버렌은 두 사람이 실랑이를 벌이는 것을 구경하다가 등을 돌렸다.
연무장을 나가서 본관으로 가려는데, 비연회주 채드가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비연회주님?”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보니, 굉장히 중요한 일이 있는 것 같았다.
“아, 3조장님. 호, 혹시 광풍대주께서는….”
라온을 찾는 것을 보니 정말 급한일인 것 같았다.
“폐관에 들어갔습니다.”
“아….”
채드의 안색이 병에 걸린 것처럼 노래졌다. 꼭 귀중한 보물을 잃어버린 듯한 표정이었다.
“중요한 일이라면 제가 가서 전하겠습니다. 지금 막 폐관에 들어가서 아직은 괜찮을 겁니다.”
“아, 아닙니다.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라….”
그는 고개를 젓고서 등을 돌렸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모습은 패잔병 같았고, 기이한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뭐지?’
버렌은 채드의 등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본관의 의무대로 향했다.
의무대를 지키는 검사에게 인사를 건넨 후 가장 안쪽에 있는 병실 앞에 섰다.
“후….”
머리와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천천히 숨을 고른 뒤 병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은은한 햇살이 부서지는 병실에는 하나의 침상만이 놓여있었고, 그 위에는 창백한 안색의 카룬이 앉아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버렌은 병실 안으로 들어가 카룬에게 고개를 숙였다.
“…앉거라.”
키룬이 천천히 손을 들어 침상 옆에 있는 의자를 가리켰다.
“서 있는 게 편합니다.”
버렌은 의자에 앉지 않은 채 한 발만 앞으로 다가갔다.
“그래.”
카룬이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고서 시선을 돌렸다. 그의 눈빛은 고요히 타오르고 있었다.
심각한 부상을 앓고 있음에도 오연한 기세는 조금도 가라앉지 않았다.
“버렌.”
“예.”
카룬의 눈빛이 뇌광처럼 번뜩였다.
“중무전으로 돌아올 생각은 없느냐.”
“…….”
버렌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눈을 부릅떴다.
“네게 새로 창안할 무력대의 단주 자리를 주마. 그리고….”
카룬은 미리 준비라도 한 듯 평온하게 말을 이었다.
“내가 직접 너를 가르치겠다.”
“음….”
버렌은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렸다.
아버지의 가르침 그리고 전 소속의 단주. 모두 꿈에서 그리던 일이다.
아니, 무엇보다도 아버지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미친 듯이 뛰었다.
버렌이 눈을 감았다. 그는 숙고 끝에 차분히 입술을 뗐다.
“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