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staurant where the fox waits RAW novel - Chapter 105
제107화
107화
“뭐…… 그렇게 된 거라는 거지. 솔직히 나도 아직까지 잘 모르겠어. 염라대왕님이 왜 그런 기회를 주셨는지. 아니, 애초에 그 높은 존재라는 게 누구인지 감도 안 잡히고.”
캬하- 하고 소주를 시원하게 들이켠 저승사자가 기분 좋게 탄성을 내뱉었다.
“그래도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다시 보니까 너무 좋다. 시원한 소주랑 맛있는 닭발도 좋은데, 보고 싶었던 사람이 내 앞에 앉아 있다는 게 제일 좋네. 태규 사장은 안 그래?”
“어떻게 안 그러겠어요. 많이 보고 싶었어요. 두 분 모두 다.”
저승사자와 마찬가지로, 태규도 아직 꿈을 꾸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저 막막히 기다리기만 했다. 저승사자와 삼신이 언젠가 돌아올 거라고 굳게 믿으면서, 저승사자가 없는 금요일 밤을 소주 한잔으로 달랬었다.
그리고 그들은 돌아왔다. 동시에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네 덕분이야. 진심으로 고마워, 태규 사장.”
“현무가 그러더구나. 아가들이 내 생각을 많이 해 주지 않았으면, 다시 돌아올 때까지 3년은 더 걸렸을 거라고. 말로도 다 못 할 큰 빚을 져 버렸네. 고마워, 아가.”
전부 네 덕이라고. 내가 돌아오고 싶었던 이유,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 그 모든 것들이, 그저 김태규, 널 다시 만나기 위함이었다면서.
“감사해요. 진심으로요. 너무 좋네요, 이렇게 다시 보니까.”
가슴 한구석이 뜨거웠다. 눈가가 시큰해져서, 애써 참아 냈다. 하지만 미호는 그렇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저승 삼촌…… 삼신 할무니…….”
아까부터 꾹 참고 있던 녀석이 결국 의자에서 점프해 내려와서는 삼신과 저승사자에게 우다다 달려가 안겼다.
삼신의 가슴팍에 고개를 파묻고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표정으로 울면서 꼬물거렸다.
“으아아앙…… 보고 시퍼써요. 진짜 보고 시퍼써요.”
“나도 우리 아가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걱정 많이 했단다. 밥은 잘 챙겨 먹을까, 어디 아픈 곳은 없을까, 하고.”
“삼촌은? 삼촌은 안 보고 싶었어?”
“꺄아아! 삼촌도 엄청 엄청 보고 시퍼써요!”
저승사자에게까지 안겨 주는 미호.
미호도 태규가 걱정할까 봐 티를 안 내서 그렇지, 항상 소반에 올 때마다 태규가 올려놓은 두부 한 모를 아련하게 바라보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미호도 많이 기다리고 있던 거겠지. 태규 못지않게 보고 싶었던 거겠지.
“그건 그렇고, 못 본 사이에 태규 사장 손맛이 더 좋아진 것 같은데? 닭발 진짜 미친 듯이 맛있다. 내가 이게 얼마나 먹고 싶었는지 알아?!”
마침 당신을 생각하면서 오늘의 야식을 만들었으니까.
저승사자가 제일 좋아하는 요리인 매운 닭발.
태규가 직접 삶고, 소스까지 만들어서 불맛 나게 구워 주었기에. 일반적으로 술집에서 사 먹는 제품형 냉동 닭발과는 맛이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훨씬 더 신선하고 쫄깃한 건 말할 것도 없고. 태규의 손맛이 잔뜩 들어갔기에 매콤한 감칠맛이 어마어마했으니까.
태규는 장담할 수 있었다. 매운 음식 좋아하는 사람이면, 이 닭발 한 입 먹는 순간 소주를 찾지 않을 수가 없을 거라고.
“그러고 보니 저승 아가가 마지막에 나한테 그랬던 것 같은데. 뭐라더라? 이제야 알았습니다. 진짜 어머니는 예전부터 내 옆에…….”
푸흡–!!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는 삼신의 기습 공격.
마침 소주를 들이켜고 있던 저승사자가 저항 없이 입 안에 있던 것을 죄다 뿜어 버렸다.
콜록, 콜록. 술 때문인지, 아니면 부끄러워서인지. 연신 죽어라 기침을 하며, 저승사자가 삼신을 원망스럽다는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아니, 진짜 이러기 있어요? 할매, 그건 말이죠. 뭐랄까. 상황이 상황인 만큼, 나도 모르는 그…… 있잖아. 아무튼 그거! 몰라 나는, 다 잊어버렸어!”
“그래. 우리 아가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럼 아가가 해 줬던 말은 사실 다 거짓말이었다고 생각하면 되려나?”
“그건 또 아니긴 한데…… 그냥, 으으.”
홀짝. 소주 한 잔을 더 들이켠 저승사자가 고개를 작게 숙이고는 삼신의 시선을 피하며 작게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다고요, 할매.”
부끄러워 죽겠다는 저승사자. 그리고 그를 귀엽다는 듯 바라보는 삼신.
태규가 보기에도, 이 두 사람은 영락없는 아들과 어머니 같았다.
구태여 피가 이어지지 않았어도, 직접 배 아파 낳지 않더라도. 이렇게 마음을 나누고 상대를 위해 희생할 수 있다면, 우린 그런 관계를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었으니까.
잠시간, 밀려 있던 여러 이야기들을 나눴다.
정말로 친한 사람이나 친구라면 한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음에도 다시 만났을 때 어색하지 않다고 했던가. 지금 태규가 느끼는 감각이 딱 그랬다.
“그건 그렇고, 저승사자님은 그럼 지금 되게 애매한 상태이신 거네요?”
“사실 그렇다고 봐야지. 이제 어쨌든 사자 직에서는 파면됐으니까. 예전처럼 잠도 못 자고 하루에 20시간씩 일을 하지는 않아도 되지만, 동시에 먹고살 걱정을 해야 한달까.”
문 너머 ‘저편’에서 되돌아온 저승사자는 말 그대로 귀신과 사람에 반반 걸쳐 있었다.
투명해져서 모습을 숨긴다든가, 순간이동을 한다든가 하는 기묘한 능력들은 비록 조금 열화된 상태일지언정 남아 있었으나, 몸 자체는 귀신이 아니라 인간에 가까운 상황.
당장 잠도 자야 하고, 밥도 먹어야 하고, 예전과는 달리 자동차에 치이면 정말로 죽어 버릴 수도 있었다.
“생각해 둔 건 따로 있으세요? 집도 필요하실 거고. 밥이니, 옷이니 하면 돈도 필요하실 텐데. 혼자 먹고살려면 돈 엄청나게 깨지는 거 아시죠?”
“에이, 태규 사장! 그걸 말이라고 해? 나 저승사자야. 서울에서 가장 새까만 저승사자!”
혹시나 계획했던 게 있으려나 싶어서 물어보자, 저승사자가 세상에서 가장 당당한 몸짓으로 가슴팍을 주먹으로 팡, 치며 소리쳤다.
“당연히 없지!!”
그래, 이 사람 내가 이럴 줄 알았다.
“하하, 그러세요?”
“압빠, 저번에 민규가 그래써요. 동물의 왕은 백수인 사쟈인데, 백수인 사람드른 제일 나쁘고 게으른 사람이라고 해써요. 저승사자 삼춘, 그렇게 살면 안 대요.”
“아니, 미호야. 너까지 그렇게 말할 것까지는…….”
이제는 하다 하다 다섯 살짜리 아이에게까지 진심으로 걱정된다는 소리를 들어 버린 저승사자가 머쓱한 듯 흠흠, 헛기침을 했다.
사실 대충 이렇게 될 거라고 아까부터 예상하고 있던 태규였다.
당장 주민등록 같은 현실적인 문제는 삼신이 어떻게든 해결해 준다고 치자. 실제로 태규와 미호의 입양이라든가 호적, 국적 문제도 삼신이 손을 써 주었었으니까.
“솔직히, 오히려 잘됐어요.”
“응? 잘됐다니?”
태규가 씩 웃으며 저승사자를 바라보았다.
척 보기에도 무언가 꿍꿍이가 가득해 보이는 눈빛에, 저승사자가 살짝 움츠러들었다.
“마침 제가 준비 중인 게 하나 있거든요. 예전부터 생각해 뒀던 거고, 이번에 돈도 크게 썼고요.”
악귀 김창녕을 처리한 건 그 자체만으로도 좋은 일이었다.
계속해서 태규와 미호를 노리던 악이 없어진 것도 굉장히 컸지만, 500년이라는 시간을 넘어 얽히고설켰던 과거사를 드디어 끊어 낼 수 있었다는 점이 결정적이었으니까.
하지만 태규가 얻은 이득은 비단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저기 보이시죠. 비어 있는 상가 건물.”
예전에는 노부부가 운영하던 식당이었고, 몇 달간 공실이었던 것을 유영석이 사들였다.
빙의했던 악귀 김창녕의 명령에 따라 태규의 소반을 무너뜨리기 위한 한식 백반집을 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김창녕이 소멸하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유영석의 ‘더 라이스’는 준비하고 있던 백반 사업을 포기했다.
애초에 태규와 소반을 공격하기 위해 시작했던 사업이었으니까. 수익률이나 투자의 합리성 등등을 따져본다면 진행해야 할 이유가 없었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리하여, 결론적으로 소반 바로 앞의 상가 1층은 거의 거저나 다름없을 정도로 아주 싸고 파격적인 가격에 매물로 나오게 되었으니.
“저 상가 1층, 제가 샀거든요. 소반 2호점 하려고요.”
“뭐어? 저, 저걸 샀다고? 태규 사장이?!”
문을 열기 전부터 식당이 마감하는 그 순간까지. 한순간도 테이블이 비는 시간이 없을 정도로 손님들로 미친 듯이 붐비던 소반이다.
아무리 태규가 싼 가격에 박리다매를 실천한다 할지라도 장사가 이 정도로 잘되었으니, 그동안 모아 두었던 돈에 대출을 살짝 보태면 헐값에 나온 상가 정도야 아주 여유롭게 살 수 있었다.
“태규 사장……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사람이었구나. 건물주라니. 그것도 상가 건물주라니!”
“1층만 산 거예요. 애초에 큰 상가도 아니고요. 어쨌든, 그래서 소반 2호점을 열 생각인데.”
사실 말이 좋아서 2호점이지, 실상은 그냥 소반을 확장하는 것과 똑같았다.
애초에 두 가게 모두에서 매일 똑같은 메뉴를 똑같은 가격에 팔 거고. 심지어 요리도 똑같은 재료로 똑같이 해서 나눠 사용할 예정이었으니까.
당장 오픈 몇 시간 전부터 몰려든 손님들이 줄을 서 버리는 통에 기껏 소반을 찾아왔음에도 밥을 먹지 못하고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았으니까, 어쩌면 식당 확장은 예정된 수순이었던 거다.
하지만 2호점을 열면서 생긴 중요한 문제가 하나 있었다.
“직원이 없단 말이죠. 아무리 생각해도, 가게 하나당 직원이 둘은 필요하니까.”
“자, 잠깐만. 태규 사장. 너 설마…… 아니지? 응? 아니라고 해 주라. 제발.”
“저승사자님, 이제 먹고살 걱정 해야 한다면서요. 배도 고프고, 돈도 없고, 당장 잘 곳도 없잖아요. 요새 취업 힘든 거 알죠? 편의점 알바 경쟁률이 3 대 1이 넘는다는데.”
“야아…… 태, 태규 사장…….”
“소반 직원 하세요. 당장 내일부터.”
“커헉!”
하실래요? 하는 권유가 아니었다. 하세요. 너, 이제부터 내 직원이 되어라.
물론 일개 사람이 저승사자에게 이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웃긴 상황이었지만, 지금 저승사자가 땡전 한 푼 없는 거지 백수 신세인 것도 사실이었으니.
“저승사자한테 식당 일을 하라고? 진짜?”
하지만 저승사자도 만만하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지금, 사람 목숨 거둬 가는 그 무서운 저승사자가. 손님들한테 굽신굽신 안녕하세요! 맛있게 드세요! 하면서 식당에서 서빙하고 양파나 깎아라. 이런 소리지 지금?”
“초봉으로 월 380에다가 4대보험 적용, 월 1회 월차랑 각종 연차 챙겨 드릴게요. 휴가는 눈치 보지 말고 쓰시고, 아침 점심 저녁 세끼 챙겨 드릴 예정입니다. 아! 그리고 첫 달 월급은 가불해 드릴 테니까 급한 집부터 구하시고요.”
“태규 사장, 아주 그냥 자존심 높고 고귀한 저승사자가 자본주의에 굴복한 개로 보이나 본데.”
저승사자가 어이없다는 듯 허! 하고 탄성을 내뱉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개 맞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사장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러고는 태규에게 깊숙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것도 아주 세상천지 공손하게.
태규가 손! 하면 넵! 하고 바로 손을 줄 것같이 감명 깊은 울림이었다.
“허허…… 잘 부탁드려요.”
다시 한번 깨달았다.
역시, 한국에서는 돈이 최고라는 것을.
적당한 돈이 있다면 저승사자도 식당 직원으로 굴릴 수 있는 것이었다. 역시 한국은 정글보다 험난한 생태계였다.
“압빠…… 무서운 사람이어써…….”
이 모든 광경을 오렌지 주스를 마시며 지켜보던 미호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김미호, 다섯 살 인생 처음으로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