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190
190화 제작자 (3)
인간이 맞다면, 이라니.
“인간이 아니라면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건가?”
[꼭 그런 건 아니고요. 허니가 키우는 마석에 파편만으로 영향을 미치는 건 인간의 존재감으론 불가능하다는 거죠. 아, 관련된 특수한 스킬을 가지고 있다면 인간이라도 영향을 줄 수 있을지도요? 최소 SSS급 수준은 되어야겠지만요. 하지만 제가 알기로 체인은 그런 스킬 없…….]신입이 말을 하다가 화들짝 입을 다물었다. 잠깐만.
“성현제 스킬을 알고 있어? 하긴 내 스킬도 다 알고 있지. 명우도 그렇고.”
[아뇨, 그건요.]“말해.”
배구공을 잡고 흔들었다. 뱉어내라. 떡잎 스킬 써 봤자 초기 스킬 몇 개밖에 안 나올 텐데, 이놈은 다 알고 있을 거잖아.
[허니, 허니! 우리라고 다 아는 거 아니에요! 특정 몇몇 사람이나 스킬만 신경 써서 살피는 거죠! 거기에도 대가가 들어가고요. 시스템 정보는 스쳐 지나갈 뿐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일일이 기억하기엔 너무 많아요. 동명다인도 얼마나 많은데요. 그걸 다 인식할 수 있었다면 다른 태생 S급의 정보도 알려 줬을 거예요!]“걔들도 누군지 사실 다 알고 있는 거 아니냐. 너네들은 원래 수상쩍잖아. 숨기는 것도 많고.”
[그건요…….]“성현제에 대해서 만이라도 다 털어놔 봐. 체인이 인간이 맞다면이라니, 쓸데없이 의미심장한 소리잖아. 설마 인간 아니냐?”
[인간이에요! 여기까지 왔었는데 모를 리가 없잖아요. 회귀했다더라도 초승달과 엮여 있는 흔적은 남아 있어서 좀 묘하긴 한데, 인간인 건 확실해요.]인간이긴 하구나. …믿어도 되나. 만나 본 패륜아 중에서는 그나마 신입이 솔직한 것 같지만 그렇다고 모든 말을 신뢰할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왜 자꾸 성현제의 마력을 마석이 빨아들이는 거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제 전공이 아니라서요. 애초에 정상적인 마석도 아니었으니 변수가 있을 순 있겠죠?]“아는 게 뭐냐.”
내 핀잔에 배구공이 시무룩한 얼굴을 했다.
[알려 드리고 싶지만, 체인은 초승달하고만 만났었다고요. 다만 체인은 초승달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고 들었어요.]“자세히 말해 봐.”
[그게 다인데요.]“아는 게 뭐냐고, 진짜.”
배구공을 다시금 탈탈 흔들어 주었다. 성현제 성격에 패륜아 같은 초월자를 좋아할 가능성은 낮으니 새로울 것 없는 정보다.
“초승달과 인어여왕은 아직 잠들어 있어? 체인 스킬 정보는 진짜 말 못 해 주는 거냐.”
[네. 아직 자요. 그리고 프라이버시는 중요해요! 허니도 다른 사람이 허니의 스킬 정보를 알길 원하진 않잖아요. 남의 정보를 쉽게 알게 되면 허니의 정보도 쉽게 알려질 각오를 해야 하는 법이라고요.]그건 그렇지만, 아쉽다. 초승달은 언제 깨어나려나. 이러다 성현제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게 더 빠른 거 아니야?
[허니를 위한 던전은 열심히 만들고 있답니다~ 원하는 아이템을 무조건 1인당 하나씩! 최소 S급에서 최대 L급까지도! 얻을 수 있도록 설계 중이지요.]“진짜? L급까지도?”
[쉽지는 않겠지만요. 하지만 SS급 정도는 무난히 얻을 수 있을 거예요.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서요!]“몇 명까지 들어갈 수 있는데?”
기특하기도 해라. 이러니저러니 해도 역시 신입이 제일 착하다. 손을 뻗어 배구공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대단하네. 그런 던전을 만들 수 있다니.”
[제 전공이거든요~]“신경 써 줘서 고마워.”
배구공이 얼굴을 붉혔다. 마치 크레파스로 칠한 것 같은 모양새다.
[천만에요, 허니. 근데 사람 수 늘리려면 시간이 쪼끔 더 필요할 거 같은데, 이 주만 더 주실래요?]“그래, 이왕이면 많이 들어갈 수 있으면 좋지.”
배구공이 활짝 웃으며 빙글빙글 돌았다. 가만 보면 귀엽긴 해. 실물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런데 네가 던전을 만들 수 있다는 건, 혹시 다른 던전들도…….”
[저는 아니에요.]신입이 돌연 어투를 바꾸어 차가울 정도로 딱 잘라 말했다.
[저희는 시스템 관리자예요. 여기까지예요, 허니.]이어 내 주위를 감싸고 있던 막이 사라지고 배구공이 통통통 튀었다. 눈밭에 웅크리고 있던 블루가 같이 폴짝폴짝 뛴다. 이번에도 배구공은 잡지 못하고 튕겨 나가 버렸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덤벼들었다.
[3분 뒤에 원래 던전으로 돌아갑니다!]어린 그리폰을 놀리듯 빙그르르 크게 돈 배구공이 홀연히 사라졌다. 블루가 부리를 크게 벌리며 아쉬운 듯 꺅꺅거렸다.
“무슨 이야기를 한 건지 묻고 싶지만 내가 들어선 안 되겠지?”
명우가 피스와 함께 다가오며 물었다.
“오늘은 별 내용 없긴 했는데… 일단은.”
게다가 던전에 대해서는 얼버무리고 말았다.
“명우 넌 여길 누가 만들었다는 걸 어떻게 눈치챈 거야? 내가 보기엔 그냥 숲일 뿐인데.”
“음, 뭐라고 해야 할까. 아이템을 계속 만들다 보니까 그 구조에 대해서 좀 더 잘 파악하게 되었거든. 아이템이 겉보기엔 우리 세상의 일반적인 물건과 다를 바가 없잖아. 하지만 내게는 대략적인 구조가 느껴져.”
명우가 걸음을 옮겨 눈이 쌓여 늘어진 나뭇가지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하얀 눈과 대비되어 더욱 색 짙어 보이는 손가락이 천천히, 섬세하게 나뭇가지를 쓸어내린다.
“정확히는 이걸 이루고 있는 근원적인 힘? 마력이라고 하던가? 그 짜임을 알 수가 있어. 이건 나는 흉내 내지 못할 수준이긴 하지만, 살짝 끼어드는 건 가능해. 이렇게 구성된 방식을 살짝 바꾸면.”
차르르, 나뭇가지가 떨리며 눈 덮인 가는 잎새 사이에서 분홍빛 작은 꽃망울이 피어났다. 계절과 어긋난 그 광경에 말문이 막힐 정도로 놀라, 잠시간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였다. 겨울나무에서 꽃을 피워 내다니.
“그런 것도 가능해?!”
“아니, 이건 원래 만든 사람이 대단해서야. 나는 아직 따라 할 엄두도 못 낼─”
[이러시면 안 되죠! 매너 없는 행동이에요! 직업윤리를 지키세요!]갑자기 배구공이 튀어나와서 화를 내기 시작했다. 잔뜩 성난 얼굴 그림을 한 채 펄펄 날뛴다. 명우가 당황하며 머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아직 잘 몰라서요.”
[다른 제작자의 작업물을 멋대로 수정하면 안 되는 거라고요! 싸움 거는 거 아니면 허락받고 건드리셔야 해요!]“정말 죄송합니다. 제 생각이 얕았어요.”
[직업적 후배 같으신 분이시니까 특별히 봐드리는 거예요! 앞으로는 조심해 주세요.]씩씩거리던 신입이 다시금 사라지고 주위 풍경이 바뀌었다. 후덥지근한 황무지가 펼쳐져 얼른 겉옷을 벗었다. 나뭇가지의 눈발을 신나게 털어내던 블루가 어리둥절해하며 꺄우거렸다.
“던전 부산물을 분해하고 재조합하는 게 일이다 보니 별생각 없이 건드리고 말았어.”
명우가 민망해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난 아직도 누군가의 작업물이라기보단 그냥 숲으로 느껴지는걸. 하긴 남의 숲에서 나뭇가지 멋대로 꺾는 것도 안 되는 일이지.”
– 크르르.
그때 피스가 앞으로 몸을 훌쩍 날렸다. 황무지의 바위 틈새로 앞발을 집어넣더니 둥그런 털뭉치를 쑥 빼낸다. 이어 콰드득, 단숨에 목줄기를 물어뜯었다. 피스가 잡은 것은 중형견만 한 크기였다. 하지만 새끼의 비명을 듣고 튀어나온 성체는.
– 캬아악!
송아지만 한 큰 덩치의 괴물이었다. 황무지 흙과 같은 보호색을 갖춘 짐승이 송곳니를 드러내었다. 늑대와 멧돼지를 뒤섞은 듯한 모양새였다.
땅굴 오플로. 땅속에 굴을 파고 입구를 교묘하게 가리고 있다가 먹이가 방심하고 접근하면 덮치는 몬스터였다. 꽤 흔한 몬스터로 나도 몇 번 상대해 본 적 있었다.
– 크흥.
피스는 덤벼드는 몬스터를 가소롭다는 듯 쳐다만 보고 있었다. 꿈쩍도 안 하는 화염 뿔사자를 향해 몬스터가 콧김을 내뿜으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피스에게 닿기도 전에.
– 쿠엑!
하늘에서 내리꽂힌 발톱이 흙모래색 가죽을 꿰뚫었다. 흙먼지가 휘날리고 날갯짓 소리와 함께 거대한 덩치가 단숨에 공중으로 들어 올려졌다.
– 꺄아 꺅!
발버둥 치는 몬스터를 움켜쥔 채 블루가 공중제비를 돌았다. 사냥이라기보단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듯하다. 몬스터를 허공으로 던졌다가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낚아채는 묘기까지 선보였다.
그러는 사이 주위에서 슬금슬금 몬스터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숨어서 기다리는 놈들이 왜 갑자기…….
‘아.’
내 마석. 앞에 버티고 있는 피스가 무서워서인지 쉽게 접근하진 못했지만 나를 흘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서로 신호라도 보내는지 점점 그 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이 던전에 있는 몬스터가 죄다 몰려나올 기세다.
“피스랑 블루에게 맡겨도 되지만 너 레벨 좀 올려야 할 텐데. 잡을 수 있겠어?”
명우는 몬스터 사냥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신인 헌터 훈련 때도 잘 못 죽였고 처음 던전 갔을 때도 많이 주저했으니까. 피스와 블루에게 반만 죽여서 데려와, 하기는 힘들고. 나라도 나서야 할까. E급 던전이니까 장비빨로 잡을 수 있긴 할 텐데.
“잠깐 은혜 좀 빌려줄래?”
명우가 내 옆으로 바싹 붙어서며 말했다. 은혜를 풀어 건네자 받지 않고 대신 내 손을 감싸듯 잡았다.
“피해무효화 등급 A급 이상으로 두고 활로 바꿔 봐.”
“활?”
명우의 말대로 은혜의 형태를 바꾸었다. 사파이어를 갈아 넣은 듯 푸른 무늬가 아름답게 들어간 수정의 활이 내 손 위에 나타났다. 활대 양 끝에 매달린 장식이 청량한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은혜 취향은 변하질 않는구나.
“이스무아르.”
명우가 활을 잡고 나직이 불렀다. 공간의 틈이 열리고 한 줄기 불길이 흘러나와 활 위에 내려앉았다. 불꽃은 이내 화살로 변하였다.
“피스는 괜찮겠지만 블루는 물러나게 해.”
“응.”
블루에게 손짓하고 피스도 그냥 돌아오게끔 하였다. 블루가 우리 뒤쪽으로 가자마자 명우가 시위를 당겼다. 불타오르는 화살이 쏘아지고 가장 앞에 있는 몬스터를 꿰뚫었다.
화르륵, 단말마의 비명을 낼 틈도 없이 순식간에 몬스터가 재로 변하고 그 기세를 고스란히 유지한 채 불길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뜨거운 파도가 몬스터 떼를 덮치고 휘감았다. 불의 냄새, 재의 냄새.
끄트머리의 몇 마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몬스터가 검게 무너져 내렸다.
“…이스무아르를 밖으로 꺼낼 수 있는 거야?”
놀라 묻자 명우가 고개를 저었다.
“힘의 일부일 뿐이야. 그간 이스무아르의 불길을 많이 다루다 보니 약간이나마 끌어낼 수 있게 되었거든. 그리 강하지도 않고 기껏해야 B급에서 A급 사이의 스킬 수준일걸? E급 몬스터 상대니 대단해 보이는 거지.”
“그래도 대단해. 공격 스킬도 생긴 셈 아니냐.”
“사실 그런 것도 아니야.”
명우가 조금 멋쩍어하며 말했다.
“무기를 통해야만 힘을 구체화할 수 있는데, 이게 일반 무기에는 사용할 수가 없거든. 이스무아르는 아이템을 녹이고 분해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어서 SSS급은 되어야 무기의 손상 없이 깃들 수가 있어.”
“아… 그럼 평소엔 쓰기 힘들겠네. 아깝다. 내 동생 정령인 이린도 이것저것 잘 녹여 삼키긴 하더라. 불의 정령은 다 그런가?”
“조금 다를걸. 이린은 자연에서 태어난 정령이고 이스무아르는 특정 용도로 만들어진 정령이니까. 어? 새 스킬 생겼다.”
명우가 스킬창을 확인해 보는 듯 허공을 바라보았다. 5레벨 이상 올랐나 보구나. 드디어 얻었네.
“뭔데?”
“망치질의 대가. 이건 응용하면 공격 스킬로도 쓸 수 있겠는데. 생명체 대상에도 통한다고 되어 있어.”
“좋아 보여? 괜찮은 거 같아?”
내가 잘 골랐는지 모르겠네. 명우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작업하기 한결 편해지겠어.”
마음에 드는 것 같아 다행이다. 내가 손짓하자 블루가 도망치는 몬스터들을 향해 사냥개처럼 뛰쳐나갔다. 이미 한참 거리가 벌어졌음에도 날갯짓 두어 번 만에 순식간에 뒤를 잡는다. 어찌나 빠른지 내 눈으로 쫓아가기 힘들 정도였다.
노아로도 충분히 벅찬데 블루는 절대 못 타겠다 싶어졌다. 완전히 자라면 더 빨라지겠지. 심지어 스킬 중에 황금화살은 비행 관련 스킬인 듯했다. 지금도 이미 쏜살같은데 스킬까지 더해지면 보이지도 않겠는걸.
명우 스킬도 얻었겠다 남아 있는 몬스터도 몇 없어 보여 애들한테 맡기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혹시 이 던전도 만든 것처럼 보여?”
“음, 여긴 아까 그곳보다 훨씬 복잡하게 느껴져. 나는 감히 손댈 수도 없겠는걸.”
예전에 던전에서 메시지창이 뜨던 것들이 기억났다. 그 메시지들, 아무리 봐도 신입이 보낸 것 같았는데. 맨 처음 찾았다고 한 것도 신입이었지.
‘전공에 명우보고 직업적 후배라고도 했고.’
신입의 특성은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쪽인 건가. 장난감 병정이며 기사들도 신입의 작품이었나. 그래서 던전 개입도 신입이 주로 한 것이고?
이 던전이 훨씬 복잡하다면, 세상에 나타나는 던전들을 만든 제작자는 신입보다 윗줄의 능력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누굴까. 근원? 패륜아의 한참 윗대 선배라거나?
“명우 너도 언젠가는 이런 던전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내 중얼거림에 명우가 쑥스러운 듯 웃었다.
“유진이 넌 종종 나를 너무 대단하게 본다니까. 여기 말고 아까 그 던전도 백 년을 꼬박 수련해도 될까 말까 한 수준이라고.”
“안 되는 건 아니네.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거 맞잖아.”
“아냐, 백 년 뒤에도 될 거란 보장은 없어.”
“모르지. 꽃망울 피우는 거 보고 내가 얼마나 놀랐는데.”
보면 볼수록 패륜아들이 명우를 빼돌리려 할 법하다 느껴졌다. 굳이 묻지 않아도 명우의 안전은 확실히 보장되지 않을까. 나 같아도 안 놓치지.
한참을 걷다 보니 저만치서 보스 몬스터처럼 보이는 괴물이 나타났다. 다른 놈들보다 더 큰 몬스터의 등장에 블루가 더더욱 신나 하며 방정맞게 지그재그 비행을 했다. 피스에게 나서지 말아 달라는 듯 꺄우꺄우 울기도 한다.
그리곤 생쥐 잡은 고양이처럼 보스 몬스터를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역시 블루 짝이 될 헌터를 찾아 주든가 해야지 사냥 정말 좋아하네.
“혹시 말이야… 이런 거 묻기 좀 그런가.”
명우를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뭔데?”
“그게, 왜. 처음 직장 월급 타거나 하면 가족한테 선물 사 주는 거. 그런 거.”
명우한테 묻긴 좀 그러네. 하지만 명우는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너한테 뭐 사 줄 걸 그랬나.”
“은혜 받았는데 뭘 더 바라냐. 이미 과분하거든?”
“그런데 그게 왜? 너는, 음.”
명우가 말을 하다 말았다. 부모님께서 일찍 돌아가신 거 난 별로 신경 안 쓰는데.
“그걸 좀 늦게 주게 되었다고 치면, 보통 어떤 방식으로 선물하려고 할까? 사정상 가족과 멀어졌다가 가까워진 뒤에 말이야.”
길었지. 지금은 3년이지만 내 체감으론 무려 8년이다. 하지만 별일 없었더라면 첫 월급 선물은 딱 내 체감 시간이 맞다. 유현이가 일찍 직장을 가진다 해도 지금이 아니라 회귀 전 시점이었을 테니까.
“…보통은 집에서 주겠지. 거실이라든가. 신경 쓰면 괜찮은 식당에 가서 줄 테고.”
“역시 식당인가.”
그런데 왜 안 줬지.
“…혹시 네 동생 말하는 거야?”
“어? 아니, 어. 응. 그게, 준비한 게 있는 거 같더라고.”
사이좋아지자마자 용돈도 받았고 이것저것 많이 챙겨 주긴 했지만, 유현이가 따로 직접 준비한 선물은 시계가 처음이니까. 던전 부산물로 만들었다고 해도 평소에도 쓸 수 있는 일반적인 용품이다.
“그런데 그… 자꾸 미루는 거 같아서.”
“물어보는 건 어때?”
“그건 좀 아니지 않냐. 선물인데 먼저 안 주냐고 묻는 건…….”
그것도 처음이자 마지막이랄 수 있는 건데. 내가 먼저 외식하자고 한 게 문제였나. 좀 더 얌전히 기다려 볼까.
“…내가 대신 살짝 말해 봐?”
“음… 조금만 더 기다려 보고.”
저번에 두고 갔다고 예림이가 토라지다 못해 죽어도 쫓아오려 들 테니 평소에는 둘이서만 외식하기 힘들 거고. 예림이가 던전 공략 가길 기다려야 하나. 그때 저녁에 할 일 없다고 티를 내 두면……..
“언제든지 이야기해. 대신 말해 줄 테니.”
“응, 고맙다.”
오래 걸리진 않겠지. 그사이 블루가 놀던 것을 끝내고 보스 몬스터를 처리했다. 이내 게이트가 나타나고 밖으로 빠져나갔다.
도하민으로부터 연락이 온 건 바로 다음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