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214
214화 일본행 (2)
“아르테미스 길드 말이에요.”
비행기에서 내려서기 전 흐트러진 머리를 손질받고 있던 예림이가 말했다.
“아마테라스야.”
“아무튼 거기요. 왜 외국 신 이름을 붙인 걸까요? 그것도 잘 못 들어 본 신인데. 유명한 신 많잖아요. 제우스나 아테나나 아폴론, 오딘, 토르 같은.”
“그런 유명한 신은 이미 다 있지 않을까. 괜히 말 꺼내진 마. 잘 모르면 가만히 있는 게 최고더라.”
길드 이름 짓는 거야 길드장 마음이지. 해외 교류를 위해서는 저런 영어식 이름도 괜찮긴 하고.
“아마테라스는 일본의 신입니다.”
근처에 서 있던 가이드가 말했다. 일본 신이라고? 그런데 이름이 왜 저래. 그리스 신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림이 또한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일본 왕가의 시조라고 하는 태양신이죠. 그래서 한때는 아마테라스 길드의 오만함을 지탄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가이드가 목소리를 슬쩍 낮추었다.
“지금은 아마테라스 길드가 실질적인 일본의 왕이나 마찬가지라서요. 대외적으로는 일본과 일본 왕가를 수호하는 역할이라고는 합니다만, 일왕이든 총리든 아마테라스 길드장 앞에서 입도 벙긋 못 합니다.”
저런. 역시 단체로 오길 잘했다. 그래도 일본은 아직 국가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긴 하지만 혹 모르니. S급 헌터의 수가 이렇게나 많으면 허튼짓은 함부로 못 하겠지.
“덧붙여 아마테라스 길드장의 본명은 숨겨져 있습니다. 자칭 시시오, 라고 합니다만, 크흠.”
가이드가 어째서인지 민망해하며 말했다. 뜻이 뭐기에. 통역 아이템 성능이 워낙 좋아서 이름이나 지명 같은 건 번역을 안 해 준다니까. 가끔 원리가 뭔지 궁금해진다.
“형, 잠시만.”
유현이가 나를 불러 수면실 쪽으로 향했다. 문을 닫으면 사방이 막히고 방음도 잘되는 곳이었다.
“형을 믿지 못하는 건 절대 아니야. 하지만 여긴 해외니까 더 조심해야 해.”
“걱정 마. 벌써 몇 번이나 말했잖아. 절대 혼자선 안 다녀. 피스와 벨라레는 가능한 한 항상 데리고 다닐 거고.”
명우의 안경처럼 모습을 변화시킬 수 있는 아이템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피스와 벨라레를 곁에 두기로 했다. S급 몬스터에 A급 독 스킬이니 S급 헌터가 두엇 동시에 덤벼들지 않는 한 문제없을 것이다.
“스킬도 절대 들키면 안 돼. 특히 공유해 주는, 그건. 전에도 말했지만 정말로 위험해.”
공격 스킬 효과 두 배를 말하는 것일 터였다.
“나도 알아. 말하긴커녕 믿을 만한 사람 아니고서야 쓰지도 않을 거야.”
“나와 세성 길드장은 그래도 괜찮아. 노아 헌터도 보조계라 실감이 나지 않았을 테니 괜찮았고. 송태원 실장님은, 특이 케이스고. 하지만 다른 헌터들은 아니야.”
유현이가 진지하게 말했다.
“이미 손꼽히는 강자라면 그래도 자제할 수 있어.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특히나 어중간한 전투계 헌터라면, 그 무엇보다 유혹적일 수밖에 없는 스킬이야. 단숨에 최고가 될 수 있으니까.”
천재보다는 그에 약간 못 미치는 이들에게 더 매력적일 거라는 건가. 하긴 금메달리스트보다는 은메달이나 아슬아슬하게 순위권 밖인 사람들이 실력 향상에 더욱 간절하겠지.
“단순하게 생각해 봐도 눈 뒤집힐 만한 스킬인 거 알고는 있어.”
어디다 대입해 봐도 대단하긴 하지. 예를 들어 내 스킬을 공유받으면 성적이 두 배, 하면… 어, 좀 무서워지는데. 수능 간신히 중간층 찍던 학생이 갑자기 만점 받고. 나만 해도 예림이한테 적용해 주고 싶다. S급 헌터인데 수능도 만점. 유현아, 안 늦었으니 수능 치자.
“조심할게. 진짜로.”
어떻게 스킬만 빼서 아이템으로 만들 방법 진짜 없나. 새삼스럽게 또 아쉬워진다.
“준비 다 됐습니다!”
일본 헌터 협회에서 나온 사람이 무전기로 연락을 받고 말했다. 나름 신경을 썼는지 한국어다. 피스를 안아 들고 삐약이를 머리 대신 피스의 몸 위에 내려놓았다.
‘무슨 S급 헌터 퍼레이드도 아니고.’
한국에서 출발할 때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더욱 창피했다. 정말 하나같이 눈이 부셔서 내가 끼어 있어도 되나 싶고, …선글라스라도 쓸까.
“아저씨, 이쪽으로 오세요!”
예림이가 제 옆을 향해 손짓했다. 아니 네가 주인공이라서, 너무 앞이잖냐. 그래도 차라리 예림이와 문현아 사이에 서는 게 나을 것도 같고.
‘일단 성현제 근처는 안 돼.’
키 차이만 해도 심각하다. 괜히 쳐다보았다가 성현제와 눈이 마주쳤다. 또 반사적으로 피할 뻔한 걸 이번에는 마주 보았다.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관심 끄시든지. 잠깐 그렇게 시선을 마주했다가 자연스럽게 옮겼다.
명우와 노아 쪽도 역시 만만치 않다. 둘 다 훤칠하네, 하하. 나는 그냥 수행원인 척 뒤쪽에 있으면 안 되나. 잘 가려질 거 같은데.
“아저씨, 뭐 해요?”
기다리다 못한 예림이가 직접 와서 나를 끌고 갔다. 어쩔 수 없이 문현아를 부르려는데 유현이가 먼저 내 옆에 섰다. 응, 뭐. 그럴 거라고 예상은 했다만.
비행기 문이 열리고 붉게 천을 깐 계단이 나타났다. 예림이가 앞장서고 나도 그 뒤를 따랐다.
‘…저게 뭐야.’
비행기 밖으로 나오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길게 사열해 있는 제복 차림의 사람들이었다. 흰색과 붉은색이 섞인 제복에 가슴 한쪽에는 웬 문양 같은 것도 박혀 있었다. 서양 쪽 가문 문장 비슷한데, 사자인가 저거.
그보다 뭐야, 이게. 도로 비행기로 들어가고 싶다.
“환영 행사도 해 주네요?”
예림이는 마냥 재미있다는 눈치였다. 계단을 가볍게 통통 내려가며 손을 흔들어 준다. 방송국 카메라가 이쪽을 비추는 것에 절로 얼굴이 굳어졌다. 한일 양쪽 다 생방송으로 나간다고 했었지.
비행기 계단에서 조금 떨어진 앞쪽에 덩치 큰 남자가 수행원을 거느린 채 서 있었다. 아마테라스의 길드장이다.
TV로 봤을 때보다 실물이 더 크게 느껴졌다. 뚜렷하게 각진 얼굴에 산발에 가까운 금발이 일본인은커녕 동양인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머리칼은 염색이겠지만. 랭킹전에서는 적발을 하고 나왔지.
아마테라스 길드장 또한 제복 차림이었다. 양옆으로 늘어선 사람들 것과 기본적인 디자인은 비슷하지만 훨씬 화려한… 설마 길드 제복이냐. 길드 제복 맞추는 거 드문 일은 아니지만, 음. 한국에선 잘 없는 일이다 보니. 특히 저런, 의장용 같은 건…….
한국에서 제일 흔한 건 단체 야잠이었다. 소형 길드도 쉽게 맞출 수 있고 예산 되면 던전 부산물로 만들어서 보관 편하고 실용성 뛰어나고.
“일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박예림 헌터님, 일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가려 뽑은 듯 외모가 뛰어난 십대 중반쯤의 애들이 활짝 웃으며 환영 인사를 해 왔다. 한 명 한 명 반겨 주긴 했지만, S급 각성자들이 모여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기죽은, 약간 겁먹은 티가 났다.
비각성자 애들을 이렇게 가까이 보내면 어떡하냐. 할 거면 거리 좀 띄운 채 박수나 치게 하지. 관련 스킬이나 아이템이라도 쓰지 않는 한 기세를 최대한 죽인다 해도 어느 정도 영향이 갈 수밖에 없는데.
애들이 물러나고 아마테라스 길드장이 다가왔다. 일본에서 왕이나 마찬가지라더니 거만한 기색이 전신에서 흘러넘치는 듯했다. 예림이가 목을 빳빳이 세우고 그를 마주 보았다.
“일본을 대표하는 아마테라스 길드의 길드장, 시시오다. 박예림 헌터,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군.”
“네, 안녕하세요.”
예림이가 동네 아저씨라도 마주친 듯 인사했다. 예림아, 자기소개.
“…소개해야지.”
작게 속삭이자 아차 하고 다시 말한다.
“한국의 해연 길드 소속 S급 헌터 박예림입니다.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마테라스 길드장이 이번에는 나를 바라보았다. 이를 드러내며 환한 미소를 짓더니 유독 내 품의 피스에게 시선을 길게 두었다.
“한국 기승수 사육소 소장 한유진입니다.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한 소장님의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 이거 정말 반갑군. 안고 있는 짐승이 그 유명한 화염뿔사자인가.”
“네, 피스입니다.”
아마테라스 길드장이 대뜸 손을 뻗어왔다. 그러자 피스가 송곳니를 드러냈다.
– 크르르.
위협하는 목울림에 그가 언짢은 기색 하나 없이 더욱 활짝 웃었다.
“충성스러운 사자라니, 아주 좋아. 해연 길드에서는 아직 두 번째 화염뿔사자 새끼를 구하지 못한 모양이던데.”
“새끼 몬스터는 드무니까요.”
화염뿔사자가 보스로 나오는 던전은 그사이 두 번 더 공략되었다. 하지만 새끼 몬스터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쉽게 나온다면 S급 새끼 몬스터 국내 의뢰만으로도 사육소가 넘쳐나겠지.
한국에선 피스 이후로 코메트가 유일한 최상급 새끼 몬스터였다. 상급조차 아직 사로잡힌 적 없었다. 하급은 비교적 흔한 편이지만 그 정도 등급이야 새끼를 키울 필요 없이 성체를 바로 길들이면 되니까.
“화염뿔사자를 얻기 위해 해연 길드에게 몇 번 협력 요청을 했었지만 긍정적인 대답은 해 주지 않더군. 섭섭하게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아마테라스 길드장이 유현이를 쳐다보았다.
“실제로 보니 더 어리게 느껴지는군, 해연 길드장님.”
“제대로 된 조건을 내놓아야 받아들이지.”
둘 사이에 싸늘한 공기가 맴돌았다. 입국하자마자 싸움 나는 건 아니겠지. 예림아, 좋아하지 마라. 현아 씨도 웃지 마요. 다행히 아마테라스 길드장이 먼저 물러났다.
“선물까지 갖다 바쳤는데도 까다롭게 구는군. 성의 표시는 충분히 한 것 같은데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보라고.”
예장을 준 게 그런 이유까지 섞여 있었던 건가. 살짝 기분 나쁘네. 슬라임 던전 공으로 먹을 속셈인 주제에 최상급 몬스터까지 노리고 드냐. 그럴 거면 하나 더 내놓든지.
이어 문현아와 노아도 아마테라스 길드장과 인사를 나누었다. 문현아와는 전에 한 번 만난 적 있는 모양이었다. 그녀가 일본에 방문을 했었다고 했다. 그리고 노아는.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최고의 대우를 약속하지.”
아마테라스 길드장이 번쩍거리는 명함을 내밀었다. 노아는 떨떠름해하면서도 명함을 받아 들었다. 명우에게도 비슷한 말이 오갔다. 명함을 건네며 필요한 재료 같은 게 있다면 뭐든 말하라며 친근하게 굴었다.
“SS급 무기도 머잖아 제작하실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심지어 유독 공손하기까지 하였다. 저런 놈까지 머리 숙이고 들어오다니 명우가 대단하긴 하구나. SS급 무기가 완성되면 전 세계의 S급 헌터들이 안달을 내겠지. 심지어 그 이상의 가능성도 있다고 하였으니 미리 굽히는 게 현명하긴 했다.
마지막으로 성현제 차례였다. 두 사람 사이에 짧은 침묵이 흘렀다. 아마테라스 길드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오랜만입니다, 세성 길드장님.”
“그간 마음 편히 잘 지낸 모양이로군요, 아마테라스 길드장님.”
긴말 없이 그걸로 끝이었다. 아마테라스 길드장이 호텔로 안내해 드리겠다면서 돌아섰다. 바닥에 깔린 길을 따라 얼마쯤 걸어가자, 펜스 너머로 우글우글 모인 사람들이 나타났다.
동시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한유현 헌터!”
“박예림 헌터!”
“세성 길드장님!”
주로 그 셋이었지만 노아와 문현아의 이름도 간간이 들려왔다. 심지어 피스까지도. 소리치는 건 물론이고 심지어 우는 사람까지 보였다. 뭐지, 뭐야. 인기 많다고 듣기는 했지만 진짜 연예인도 아니고. 아마테라스 길드에서 돈 주고 사람 모았나? 그렇다기엔 또 진심인 거 같았다.
플래카드가 흔들리고 피스 짝퉁 인형도 높이 들렸다. 온갖 소리가 뒤섞여 제대로 알아듣기 힘든 와중에.
‘…저건 또 뭐야.’
사진이었다. 얼굴만 들어간 것도 있고 실물 크기 반신까지, 아, 진짜. 길거리 광고에 연예인 실물 크기 사진 보긴 했지만 아는 사람이, 악, 얼굴만이지만 나도 있어. 잠깐만. 게다가 저, 인형 뭔데. 몬스터 아니잖아, 사람이잖아. 유, 유현인가? 교복……? 예림이도 있었다. 역시나 교복에, 두 개 같이 흔들고 있는데…….
…저건 조금 가지고 싶기도 하고.
많이 쪽팔린 가운데 차를 타고 호텔로 이동했다. 일본 도쿄에서도 초기 던전 브레이크가 여러 차례 일어나 피해가 컸다고 하였다. 지금 가는 호텔은 던전 쇼크 이후 만들어져 완공한 지 얼마 안 된 것으로 아마테라스 길드 소유였다.
호텔 근처에는 사람이 통제되어 공항과 여기까지 오는 길과 달리 한산했다. 한산한 건 좋은데.
“아저씨, 사진 찍어 주세요!”
예림이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실물 크기 내 사진 옆에 서서. 미친, 저런 걸 왜 세워 둬. 집에 가고 싶다. 쪽팔림 저항 스킬이 필요하다. 심지어 다른 사람들도 있어서 더 죽을 것 같았다.
“…예림아.”
“돌아갈 때 달라고 해 볼까요?”
아냐, 그러지 말자, 제발. 땅 파고 들어가고 싶은 나를 대신해 문현아가 예림이를 찍어 주었다. 방송국 카메라 아직 있잖아. 너무 쪽팔리다. 나 혼자 부끄러운 건가, 왜 다들 아무렇지 않게 사진 찍고 있는 거지. 유현아, 너는 또 왜. 문현아가 세성 길드장 사진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활짝 웃었다. 노아와 명우에 이어 성현제까지 기념촬영 하고 앉았다.
…피스 건 나도 촬영해 두고 싶긴 한데. 유현이도, 예림이도. 노아랑 명우도 잘 나왔고. 문현아는 물론 성현제도 뭐. 내 것만 빼고 싶다.
“호텔의 모든 시설은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룸 또한 원하시는 대로 고르십시오.”
호텔 직원이 친절하게 말했다. 로비로 들어서기 전 아마테라스 길드장이 나를 붙잡았다.
“화염뿔사자의 성체 모습을 구경시켜 주면 좋겠군. 일본 국민들을 위해서라도 말이야. 다들 기대가 크거든.”
그가 카메라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국민이 아니라 니가 보고 싶어 하는 거 같은데. 별거 아닌 부탁이라 거절하기 뭣해서 망설이는데 내 옆에 붙어 선 유현이가 나직이 말했다.
“피스.”
그 부름에 피스가 내 품에서 뛰어내렸다. 작던 몸집이 순식간에 부풀어 오르고 붉은 털이 화려하게 흩날렸다. 날카롭게 선 외뿔과 끝으로 갈수록 점점 짙은 금빛을 띠는 풍성한 갈기. 처음 성체화했을 때보다 좀 더 커지고 털의 빛깔도 윤기가 흘렀다.
불길을 형상화한 듯한 거대한 맹수가 나직이 으르렁거렸다. 그 모습을 본 아마테라스 길드장이 입이 찢어져라 웃었다.
“멋지군! 정말 최고야!”
그의 얼굴 가득 짙은 탐욕이 넘쳐났다. 당장이라도 피스를 빼앗으려 들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노골적인 눈빛이었다. 우리 쪽 쪽수가 많으니 별문제는 없겠지만, 신경 쓰이네.
한차례 가볍게 몸을 턴 피스가 다시 작게 변해 내 품에 안겼다. 피스로부터 시선을 떼지 못하던 아마테라스 길드장이 유현이에게로 눈길을 옮겼다.
“주인의 증표 소유자를 따르는 거였지, 분명. 슬라임 던전도 좋지만 몬스터를 걸어도 괜찮을 뻔했어.”
“싸움을 걸겠다면 거절은 안 해.”
유현이가 냉랭하게 말하곤 나를 데리고 호텔 쪽으로 몸을 돌렸다.
“피스를 내기에 거는 건 형이 싫어하겠지만, 마음 같아선 짓밟아 버리고 싶어.”
동생이 나직하게 말했다. 아마테라스 길드장의 노골적인 태도가 심히 거슬렸던 모양이었다. 검게 가라앉은 눈빛이 서늘하면서도, 동시에 열기 같은 것을 품고 있었다.
제 영역을 침범하려 드는 적의 목줄기를 당장에라도 뜯어 버리고 싶은 그런 난폭한 충동. 그것을 느꼈는지 로비에 먼저 들어와 있던 예림이와 문현아가 유현이를 바라보았다.
내 앞에서 요즘 애처럼 굴었다 해도, S급 헌터지.
“피스를 거는 건 보기 안 좋고 나쁜 선례가 될 수도 있으니까, 할 거면 화염뿔사자 던전이나 언젠가 나올 새끼 몬스터를 미끼로 내놔.”
유현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방긋 웃었다. 네가 고작 저런 놈한테 지겠냐, 하고 싶은 대로 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