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213
213화 일본행 (1)
‘어, 답장 왔다.’
송태원으로부터 문자가 들어왔다.
[별일 없었습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무사히 공략 끝낸 것을 축하하며 던전 안에서 이상한 일 없었냐며 몸은 괜찮으시냐는 물음에 대한 답장이었다. 송태원은 시선을 느끼지 못한 걸까.
‘그럼 정말로 나와 관련 있는 건가.’
유현이와 예림이, 성현제는 나와 여러 번 던전에 들어갔었다. 반면에 송태원은 아니었고. 확실한 건 아니지만 조심하는 편이 좋겠다.
[언제 한번 사육소에 들러 주세요. 아주 귀엽고 폭신한 새끼 양을 데리고 왔는데 송 실장님 생각이 나서요. 아니면 제가 가도 괜찮고요. 진짜 귀엽습니다.]만져 보면 송 실장님도 반하지 않을까. 중독성 있는 촉감이었어. 피스가 없었다면 집에까지 데리고 왔을지도 모른다. 정말로 포근했지. 하지만 집에서 내 무릎 위는 피스 지정석이라. …피스 던전 들어가면 살짝 데리고 올까.
“진짜 안 돼요?”
문자 보내는 사이 예림이가 재차 졸라왔다. 나를 대신해 유현이가 딱 잘라 말했다.
“안 돼.”
“한유현 너한테 물은 거 아니거든? 여기 아저씨 집이야!”
“털 날리는 건 피스와 박예림 둘만으로도 충분해.”
“뭐? 털? 야! 넌 머리털 안 빠지는 줄 아냐! 니 머리털이 제일 튀거든?”
예림이가 양팔에 강아지들을 껴안고서 소리쳤다. 예림이에게 붙들린 새끼 늑대들이 작게 끙끙거렸다.
집에 온 예림이에게 블루에 대해 말해 주면서 사육장에 새끼 몬스터들을 더 데려왔다고 했다. 해연에 있을 땐 미처 못 봤다며 구경하고 오겠다더니 새끼 늑대들을 양옆에 끼고 온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강아지 키우고 싶었다나.
“예림아, 바로 아래층에 있으니 언제든 보러 갈 수 있잖아.”
“하지만 벌써 절 이렇게 좋아하는데요. 제 방에 데려가면 안 돼요?”
예림이의 말대로 하얀 털뭉치 둘은 예림이에게 바싹 달라붙어 있었다. 하지만 그게 예림이를 좋아해서라기보다는…….
‘겁먹은 거 같은데.’
조금 떨어진 곳에서 피스가 꼬리로 탁, 탁 느리게 바닥을 치며 강아지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새끼 늑대들이 집에까지 들어온 게 마음에 안 든다는 눈치였다. 몬스터지만 일단은 고양잇과와 개과이니 사이가 쉽게 좋아질 것 같지도 않고.
피스가 간간히 송곳니를 드러낼 때마다 새끼 늑대들이 바싹 굳어 버리는 게 보였다. 애들이 불쌍해서라도 역시 안 되겠다.
“미안하지만 예림아, 역시 집 안은 안 돼. 그리고 예림이 너한테도 언젠가 전용 기승수가 생길 거잖니. 그땐 새끼 때부터 같이 지낼 수 있게 해 줄게.”
예림이가 서운해하면서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착하기도 하지.
“누나가 자주 보러 갈게, 밀키, 블랑.”
이름은 또 언제 붙였대. 예림이 인형들 중에 저 이름 있었던 거 같은데. 돌아서는 예림이를 보자 미안해졌다. 강아지 키우고 싶었다는데. 바로 아래층에 있을 거긴 하지만.
– 갸르릉.
예림이와 새끼 늑대들이 나가자 피스가 다가와 내 다리에 몸을 비볐다. 기분 좋아 보이는구나, 피스야.
“일본에 피스도 데리고 간다면서?”
유현이가 돌아서며 말했다. 동생을 따라 걸음을 옮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에서 먼저 데리고 와 달라고 요청했다더라. 일본도 참 특이해. S급들 여럿이 간다고 하면 거부감 느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좋아하다니.”
예림이만 입국을 받아들이지 싶어 안전을 핑계로 S급 헌터 둘 이상 동행 가능하게 해 달라고 조율할 생각이었는데. 일본 측에서 먼저 한유현 헌터도 왔으면 좋겠다고 말해 왔다. 그 밖의 다른 헌터들도 얼마든지 환영이라나.
“노아와 리에트는 타국 출신이니 일본으로 끌어들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겠지만.”
특히 둘 다 현재로선 프리헌터니 탐날 만도 했다. 리에트는 안 간다고 했지만. 피스를 안아 들며 소파에 앉았다. TV를 틀자 또 한일전 관련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예림이와 상대인 일본 헌터에 대해 나름 분석도 하고 있다.
[박예림 헌터의 경험 부족이 가장 큰 약점이라고 하나 대신 지형적 조건의 유리함이…….]그러면서 슬라임 던전을 걸었다는 것에 대한 비판도 나오고 있었다. 찬물 끼얹는 짓은 자제하기로 되어 있었기에 잠깐 언급만 되고 말았지만. 언론을 휘두르는 게 이래서 무섭다니까. 문제점을 감쪽같이 숨기거나 축소해 전달해 버리면 대부분의 사람은 쉽게 받아들이고 만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
“예림이나 성한 씨라면 모를까, 유현이 넌 길드장이니 빼낼 수도 없을 텐데. 무슨 엄청난 조건이라도 제시하려나? 혹시 천둥새의 예장이 밑밥 같은 거였나.”
“뭘 내놓든 난 관심 없어.”
내 옆에 앉은 유현이가 말했다.
“이미 충분하니까. 난 지금의 일상을 지킬 수만 있다면 그걸로 만족해.”
“…다른 건 필요 없고?”
“우리 집에 돌아왔잖아. 집에. 일본에서 형을 확실하게 지킬 수 있을 만한 아이템이라도 준다면 모를까, 그럴 리는 없으니까.”
세상 구할 만한 아이템이 갑자기 일본에서 튀어나오면 웃기기는 하겠다.
“그래, 나도 지금처럼만… 계속 이렇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
집에 강아지 데리고 들어오면 안 돼! 가 큰 사건이고. 저녁에 뭐 먹을까 고민이나 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애들이 던전에 들어가면 나는 또 불안해지겠지. 쌓인 일은 잔뜩이고 앞으로 또 무슨 문제가 생길지 알 수도 없고. 내 인생 왜 이렇게 팍팍하냐.
“…있잖아, 형.”
유현이가 조심스럽게 말머리를 꺼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돌아보자 얼굴 가득 풀 죽은 기색이 짙었다. 뭐지. 나 모르게 사고라도 쳤나.
“내가 각성하고 나서, 각성한 지 얼마 안 지났을 때. 형 많이 힘들게, 했었잖아.”
머뭇거리며 하는 말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때가, 그러니까.
“아니야.”
“형.”
“난 기억도 잘 안 나.”
8년 전이니까. 그러니까 잘 생각도 안 난다. 가물가물해질 만큼 오래된 일이다.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마. 괜찮아. 지나간 일이야.”
괜찮다며 웃었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그렇게까지 나쁘진 않았으니까. 지금의 유현이는 그 뒤의 일은 모르니까. 관계없는 일이다. 그냥 나만 조금, 이따금 신경 쓰일 뿐이다.
“그냥 잠깐 틀어졌을 뿐이잖냐. 가족끼리 그럴 수도 있지. 살다 보면 심하게 다퉜다가, 화해하기도 하고. 지금은 다 괜찮으니까, 괜찮아.”
이제와서 굳이 끄집어낼 필요 없는 기억이다. TV로 시선을 돌렸다. 예림이의 인터뷰가 재방송되고 있었다. 자신만만하게,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야, 일본에서 혹시 너 빼내려 들거든 혹하는 척하면서 이것저것 받아먹어. 준다는 건 거절할 필요 전혀 없지. 챙길 거 다 챙기고 입 닦고 귀국하면 그만이잖아.”
특히 명우와 노아에게 선물 공세 같은 거 해오지 않을까. 미리 받은 게 다 마음에 들다 보니 은근 기대되네. 그때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예림아, 털 떼고 들어와라.”
“네!”
늑대들 새끼라서인지 풍성한 것치곤 털이 덜 빠지긴 했지만 안 빠지진 않았다. 예림이가 뛰어와 내 옆자리에 풀썩 앉았다.
“밤에 미리 짐 챙겨 놔.”
“오늘 아침에 다 싸 놨어요~”
빠르기도 하다. 어차피 챙길 게 그리 많지는 않지만. 만일을 대비해 휴대폰 공기계를 세 개 더 사 놓았다. 혹시 음식이 애들 입에 안 맞을 수도 있으니 아침에 반찬 따로 챙기는 거 잊지 말아야지.
별일 없이 잘 다녀왔으면 좋겠다.
공항에 사람들이 득시글거렸다. 기자는 물론이고 단순한 구경꾼들도 가득했다. 예림이는 단체로 응원 나온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또 인터뷰도 하고 사진 찍을 수 있도록 포즈도 취해 주느라 바빴다.
“이기고 올게요!”
예림이가 손을 흔들자 와아아, 하는 함성이 일었다. 유명 연예인 뺨칠 인기였다. 사실 연예인 앞에 둬도 꿀릴 거 전혀 없지만. 평소에도 광고 제의가 많이 들어왔지만, 이번 일까지 더해 광고는 물론 협찬이라도 제발 받아 달라며 매달리는 브랜드들이 엄청났다. 지금 쓰고 있는 저 모자도 예림이가 직접 고른 협찬품이었다.
연이어지는 응원 속에서 수속을 마치고 라운지로 향했다. 너른 라운지에는 문현아가 먼저 와 있었다. 헌터 협회에서 나온 사람들도 보였다.
“한 소장님, 예쁘게 차려입었네.”
예쁘게는 또 뭐야.
“리에트 헌터와 가까운 사이인 줄은 몰랐습니다, 브레이커 길드장님.”
S급 헌터들이 우르르 해외로 나가게 되면서 자연히 국내 안전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 제각기 던전 공략은 해 놓은 뒤지만 혹시라도 던전이 터지면 수습해 줄 헌터들이 필요하니까.
그래서 해연은 S급 헌터인 김성한이 자리에 남고 S급 기승수인 블루의 증표까지 그에게 맡겼다. 세성에도 S급 헌터인 에블린이 있으니 별문제 없었다.
문제는 브레이커였는데 리에트를 임시 고용하여 해결한 것이었다.
“뒤끝 없고 털털하잖아. 우리 꽤 잘 맞아. 애초에 나랑 사이 나쁜 여성 헌터는 거의 없거든. 내가 좀 인기가 많지.”
“에블린 헌터만 빼고 말입니까.”
“아, 걔는 지인짜 성격이 안 맞고. 능력 되면서도 뒤에서 헛수작 부리기 좋아하는 인간이랑은 껄끄러워서라도 가까이 지내겠냐.”
그러면서 나한테도 조심하라고 충고해 주었다.
“기내에서는 몬스터들이 돌아다니지 않도록 주의해 주십시오.”
라운지를 동동 떠다니는 삐약이를 보며 협회 직원이 말했다. 당연히 그래야겠지만 삐약이 녀석 갑자기 공간이동 하진 않겠지. 벨라레도 돌아다니고 싶어 했지만, 안전을 위해 내 손목에서 떨어지지 못하게 했다.
피스는 의자 위에 얌전히 앉아 있었고 예림이는 노아와 함께 간식거리를 고르고 있었다. 명우는 휴가 간다고 일을 몰아 했다더니 피곤한 표정이었다. 아이템 제작이 아니라 대장간 사람들 수련을 도와주느라 바빴다나.
바로 이틀 전, 명우 대장간 소속 서동백과 이민석이 하급 아이템 제작에 성공했다고 들었다. 완성된 아이템의 가치는 낮았지만 제작 스킬 없이도 아이템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중급 아이템까지 제작 가능해지면 대대적으로 발표할 예정이었다.
“형도 뭔가 먹을래? 아침 식사 제대로 못 했잖아.”
“그럴까. 공항 라운지에 뷔페가 차려져 있을 줄은 몰랐는데.”
홍콩 갈 땐 라운지를 들리지 않았다 보니까. 사실 이런 곳이 있는 줄도 몰랐다. 비행기 탈 일이 있었어야지. 음식 종류는 꽤 많았다. 와인도 있고. 간단하게 샌드위치라도 먹을까 하는데 문이 열리며 송태원이 들어섰다. 무슨 일이지.
“바쁘실 텐데 여기까지 배웅 오신 거예요?”
S급들 드글거리는데 괜찮은 걸까. 일반인도 많긴 하지만. 내 말에 송태원이 나직이 대답했다.
“사고 대비차입니다. 해외에서의 일까지 제가 참견할 수는 없지만…….”
라운지 풍경을 바라본 그가 한숨을 삼키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무사히 다녀오시길 바랍니다.”
표정은 부디 사고 치지 마세요, 인 거 같은데.
“이번 일본행에서 저는 얌전한 구경꾼이니 걱정 마세요. 송 실장님께서도 잘 지내시고 시간 나시면 사육소에 들러 주세요. 미리 말은 해 놓았으니까요.”
새끼 양 한 번만 만져 보시죠. 진짜 귀여운데, 라는 내 말에 송태원은 대답 없이 한쪽으로 가 섰다. 식사는 제대로 하셨으려나. 샌드위치 드시지 않겠냐고 물어볼까.
샌드위치를 접시에 담는 사이 유현이가 음료를 따라 주었다. 예림이가 이 쿠키 맛있다며 내 접시에 얹어 주고는 아이스크림을 가지러 뛰어갔다. 저 케이크도 맛있었어요, 하고 말한 노아가 명우에게 커피 마시지 않겠냐고 물었다. 문현아는 아예 식사를 따로 주문했다. 라운지에 왜 요리사도 있냐. 여기가 식당이야 공항이야.
벌써부터 놀러 온 분위기가 나서 좋기는 했다. 스테이크 굽는 냄새가 퍼져 나갔다. 예림이가 저도요, 하고 외쳤다.
“유현이 너도 먹지 그래?”
“난 배 별로 안 고파.”
은근 입이 짧다니까. 집에선 음식 투정하는 일 거의 없었지만. 간식이라도 먹으라고 쿠키를 내밀었다. 그래도 주는 건 잘 받아먹긴 했다.
– 삐약!
문이 다시 열리고 삐약이가 소리를 냈다. 부딪힌 건가 싶어 돌아보자 바랜 듯 색 옅은 머리카락 위에 올라앉아 있다. 성현제가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 들어왔다. 평소처럼 적당한 인사말을 던지려다가, 그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아무 말도 못 하고 시선을 피해 버렸다.
“이제 다 모인 건가. 출발 시간은?”
문현아의 물음에 비행기 준비는 이미 끝났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거 다 먹고 바로 가자며 포크가 접시에 닿는 소리가 들려왔다. 예림이가 아이스크림 챙겨가도 되냐고도 물었다. 숨 한 번 삼키고 다시 성현제를 바라보았다. 삐약이를 손에 들고 있던 그가 나를 향해 미소 지었다. 평소와 별다를 바 없는 표정이다.
“삐약이가 실례를 저질렀네요. 이리 주세요.”
말없이 다가온 성현제가 삐약이를 건네주었다. 삑삑거리는 새끼 새를 품에 안아들었다. …뭐라고 먼저 말 좀 해라. 머뭇거리는 내 팔을 유현이가 붙잡았다.
“슬슬 가자.”
“어, 응.”
라운지를 나가 한 번 더 단체로 카메라 세례를 받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비행기는 이내 출발하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일본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