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253
251화 메드상의 뮤 (1)
작은 달이라니. 어릴 적의 애칭 같은 건가? 진짜 이름은 기억 안 난다고도 했고.
“어릴 때 말이죠? 부모님께서요?”
귀여운 애칭이잖아. 잘 어울렸을 것도 같고. 솔직히 어릴 때 진짜 엄청 귀엽기는 했겠지. 지금보다 동글동글한 얼굴에 통통한 볼, 피부가 하야니 뺨도 유독 도드라지게 붉었을 것이다. 거기에 커다랗고 예쁜 금안이니 우리 작은 달님, 할 만했다.
“…어릴 적 사진 같은 거 없나요.”
“없어.”
없구나. 아쉽다. 우리 유현이도 유치원 단체사진 같은 것밖에 없었는데. 그나마도 지금은 가지고 있질 않고. 한번 보상금 같은 거라도 걸어 볼까. 같은 유치원생 중에서 앨범 아직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그럼 달아, 애칭 말곤 기억나는 거 없니?”
“…….”
“달님.”
“원래대로 불러라.”
“그래, 형. 어울리지도 않아.”
웬일로 둘이 의견이 일치하는구나. 시그마가 뚱한 표정으로 말했다.
“각성하기 전의 기억은 흐릿하다. 어렴풋한 몇 가지밖에 없어.”
“어릴 적 기억이 전부?”
시그마가 고개를 끄덕였다가 약간 갸웃 기울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군.”
“여태까지는 이상하다고 생각지 않았던 거야?”
“…아마도.”
그가 석연찮아 하며 말했다. 혹시 이 세계가 진짜가 아니었던 것과 관계가 있는 걸까. 어릴 적 기억까지 다 가지고 오기에는 정보량이 너무 많아서 삭제되었다거나. 다른 사람들에게도 물어보면 알 수 있겠지.
짧은 침묵이 흘렀다. 시그마도 마음이 복잡한 모양이었고 나도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졌다. 메인퀘스트 스토리 설명이 너무 부실한 거 아닙니까. 이게 게임 같은 거라면 욕 좀 하고 끝이지, 나한테 있어서 쟤는 진짜 살아 있는 사람과 별다른 바 없이 느껴지고 있다. 그러니 대충 넘어가자 할 수가 없었다.
성현제 씨, 면담 한 번만 더 해줘요. 어차피 □투성이긴 하겠지만.
“앞으로의 일을 물어봐도 대답은 들을 수 없겠군.”
“어, 음… 예. 우리는, 결국 이곳에서 나가게 될 겁니다. 그 후에 이 세계가 어떻게 되는지는 알 수 없어요. 시그마 씨가 정말로 진짜가 되었다면 어쩌면 같이 나가게 될 수도 있겠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면…….”
“남겨지는 건가.”
시그마는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내 귀에는 무겁게 두들겨 왔다. 그가 이곳에 남겨진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그를 배척하는 세상에서. 어쩌면 던전처럼 리셋될 수도 있다. 이 세계에서는 진짜인 새로운 시그마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그럼 결국, 지금의 시그마는 가짜에 어디에도 섞이지 못하고 계속…….
그건 진짜 아니지. 아무리 혼자 잘난 사람이라고 해도 역시 아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부정당하는 거나 마찬가지일 텐데. 지금처럼 나나 영향을 덜 받는 빙의한 사람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걱정 말라고까진 장담할 수 없겠지만, 내가 어떻게든 책임지겠습니다. 그냥 두고 갈 생각 없어요.”
“형이 책임을 왜 져!”
유현이가 버럭 소리쳤다. 싫은 기색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아니…….
“…근데 인형은?”
“인벤토리에.”
어, 들어가는구나. 하긴 아이템이니까 당연한가. 그래도 그걸 굳이 챙길 필요까지야.
“…돌아가면 도플갱어 인형 아이템 구해 줄까? 그건 가져갈 수 있을지 모르니까, 새로 만들어 줄게.”
“아냐, 필요 없어. 이미 만들어져 있으니까 챙긴 것일 뿐이야. 진짜 형이 있는데 뭐 하러.”
유현이가 그렇게 말하며 내 옆에 바싹 붙어 앉았다. 시그마를 바라보는 눈길이 차갑기 그지없다.
“애도 아니고 알아서 하겠지. 애초에 형이 왜 저놈을 신경 써. 공격도 받았다면서.”
“뭐 미운 정도 정이고… 무엇보다 공략하는 데 쟤가 필요하다니까? 메인퀘스트야.”
“퀘스트 세성길드장이 보낸다며. 자기랑 비슷하게 생겼다고 거짓 퀘스트로 보호하려고 드는 걸지도.”
“그건 아닐걸. 지키라고는 했지만…….”
얼른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붉은 두 눈에는 이미 의심이 어려 있었다.
“정확한 조건이 뭔데?”
“야, 성현제가 자기랑 얼굴 똑같다고 신경 쓸 인간이냐.”
“숨기는 거 없기로 했잖아.”
그… 야 그랬지. 어쩔 수 없이 솔직하게 다 털어놓았다. 목숨만 붙어 있으면 된다는 말에 동생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형, SS급은 튼튼해.”
“그래도 자기 몸 자기가 지키는 게 낫지. 너, 내가 시그마 보호하면서 다니는 꼴 보고 싶냐? 조그맣게 만들어서 안고 다닌다?”
“그건…….”
잠깐의 고민 끝에 유현이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일으켰던 전의를 내리눌렀다.
“아무튼 기한도 없는 퀘스트입니다. 다른 이유들은 다 젖혀 두고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라는 거죠.”
내가 시그마에게 지켜 준다고 말하는 건 웃기지도 않는 소리고.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하긴 했지만 제 몸 하나 못 지킬 사람도 아니다. 그러니까.
“제가 보호하게 해주세요, 시그마 씨.”
보호받는 쪽이 도와주는 셈이다. 그러니 부탁을 했다. 시그마가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C급 주제에.”
“그래서, 싫어?”
금색 눈이 살짝 휘었다.
“어차피 내 거니까 싫을 리가. 주인을 보호해 주겠다고 나서니 이럴 땐 기특하다고, 해야 하나?”
“어른한테 말하는 꼬라지 좀 봐라.”
“네 옆에 있는 놈은 싫은 모양이지만.”
시그마의 말대로 유현이는 잔뜩 골이 나 있었다. 던전 공략만 끝나면 죽여 버릴 거라고 으르렁거리는 걸 달래느라고 애를 먹어야 했다. 시그마 녀석도 얼마든지 환영이라고 도발을 해오는 바람에 더 힘들었다.
저런 부분은 둘이 참 잘 맞아요.
“계약은 일단 유지하겠지만 각인은 절대 안 해.”
시그마가 계약 페널티 없어지면 보호받을 이유도 없다는 소리를 해대서 해주는 하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솔직히 그런 거 없어도 나 쫓아오지 않을까 싶지만, 안 그래도 있을 곳 없어진 애를 괜히 괴롭힐 필요까지야.
“각인하려고 들면 바로 해주해 버릴 거야.”
그렇게 말은 했지만 그 척추 전체 각인이라는 거, 살짝 끌리기는 했다. 남이랑 연결하지 않고 보호각인으로 새기면 도움이 많이 되지 않을까. 나는 마력 스탯이 낮은 탓인지 마력 제어능력도 변변찮았다.
마력을 섬세하게 다룰 수 있게 되면 스킬 활용도도 높아지겠지. 저항 스킬만 해도 조절이 가능해질 테고.
‘저항력을 SS정도로 낮추며 대신 범위를 넓히는 식도 가능하지 않을까.’
내 주위 일정 영역에 독이며 저주 저항이 펼쳐지도록 말이다. 그 밖의 다른 스킬들도 응용할 방법이 있겠지. 목숨 하나 버리고 마력 제어능력 얻는 거, 괜찮을 듯한데.
‘유현이를 설득하는 게 가장 큰 난관이겠지.’
나한테 딱 달라붙은 채 성난 맹수처럼 시그마를 향해 살기를 풀풀 날려대는 동생을 바라보았다. 내가 좀 더 안전해질 수 있다고 잘 설명하면 받아들이려나. 진짜로 죽는 것도 아니고 마취 잘 할 거고. 참, 유현이도 각인 수정해야 하는데. 마나흡수 스킬을 지닌 몬스터나 가드를 상대하게 될 수도 있으니.
“그럼 유현아, 솔렘니스 가드들에게 시그마를 살해한 괴물을 처리했다고 말해 줘. 도시에서 즉각 퇴거 요청도 하고.”
“응. 근데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지 않을까. 팔다리 하나 정도는 잘라 줘야 믿을 텐데.”
“…불태웠다고 하고 그냥 보내. 참, SS급 가드가 갑자기 사라진 건데 그 사람들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까.”
도시도 걱정이었다. 내 말에 시그마가 S급 가드들이라 해도 수가 많고 숙련되어 있으면 SS급 몬스터 상대로 도주하는 건 쉽다고 말해 주었다. 하긴 드라마에서도 S급 가드를 고용했다고 했었지.
“도시도 대책은 마련되어 있다. SS급 가드가 오래 부재중인 일이 없는 건 아니니까.”
SS급 가드가 없는 상태에서 SS급 몬스터가 나타나면 사냥하는 대신 대피소에서 버티며 도시 밖으로 유인한다고 하였다. 도시 경제활동이야 어쩔 수 없이 바닥으로 떨어지겠지만 몇 년간 생활할 물자는 비축되어 있었다. 동시에 타 도시들의 협조를 구하며 마나 홀의 에너지 대부분을 S급 이상 각성자를 만들어 내는 데에 투자한다고 했다.
데이터일 뿐이라 해도 신경 쓰였는데 다행이었다.
“너는 여기 얌전히 있고, 형은 같이 가.”
유현이가 나를 붙잡고 일어나자 시그마도 몸을 일으켰다.
“보호해 주겠다고 말하자마자 떠나려는 건가.”
“정말로 보호받기라도 할 심산이었던 거냐? 네놈 등급을 생각해. 양심도 없군.”
“C급이 먼저 말했다만. 그러는 너도 SS급 가드인 주제에 C급에게 달라붙어 어리광이나 부리고 있지 않나.”
“내 형이고 나는 동생이니까 당연한 일이지.”
유현이가 뻐기듯 말하고 시그마가 어째서인지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당연한 건가? 내가 본 형제는 사이가 그리 좋진 않던데.”
“형제인데 사이가 나쁜 쪽이 이상한 거다.”
…유현아, 기억도 없는 사람한테 잘못된 상식을 주입하면 안 될 거 같다만. 세상엔 사이 나쁜 가족도 많아.
결국 시그마 혼자 남고 유현이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솔렘니스 가드들은 의외로 쉽게 유현이의 말을 받아들였다. 시그마의 존재 자체가 변질되어서인가 모두들 그가 죽었다고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SS급 괴물에게 대신 복수해 주어 감사하다는 말까지 남기고서 솔렘니스 가드들이 출발 준비를 서둘렀다. 도시 방위를 위해 빨리 돌아가 대비를 해야 한다며 헬기들이 준비되는 즉시 아카테스를 떠나갔다.
“나도 좀 석연찮네. 진짜에 가짜라니.”
나로부터 대략적인 설명을 들은 문현아가 느슨히 팔짱을 꼈다.
“그런데 형님은 시스템 쪽에 대해 생각보다 더 잘 알고 있는 눈치다? 여기 공략 방법도 형님만 알고 있었고.”
“아… 그게…….”
그러고 보니 현아 씨는 신입과 만난 적이 없었던가. 이참에 그녀에게도 패륜아에 대해 말해 주었다. 세상이 멸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시스템을 다루며 각성자들을 보조해 주는 세계 밖의 강력한 존재들이 있다고.
“도와주는 건 고맙지만 엄청 수상쩍은 놈들이구만.”
“수상쩍게 느껴져요?”
자세한 설명은 하지도 않았는데. 문현아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공짜로 일해 주겠다는 놈들보다 수상한 게 어딨겠냐. 그것도 한둘이 아니라며. 한 명이면 앞날이 걱정될 만큼 착한 인격체가 드물게도 나타났구나, 하겠지만. 여럿이면 의심스럽지.”
뭔가 원하는 게 있으니 공짜 노동을 해주는 거야, 라는 말에 무심코 동감해 버렸다. 맞아, 세상에 공짜가 어딨겠냐. 단순히 세계를 구하겠다! 라는 정의감에 불탈 수도 있겠지만, 오랜 세월을 살아온 초월자들이다.
다른 목적이 정말로, 단 하나도 없을까. 진짜 순수하게 세계를 구하겠다는 이유뿐인 걸까.
“그래도 노력하면 멸망을 피할 수 있다는 건 좋네. 이거 더 열심히 포인트 모아야겠는걸?”
문현아의 기운찬 말에 입이 조금 써졌다. 영 믿을 만하지 않으면서도 쓸데없이 강한 놈들이 널리고 널려서 말입니다. 물론 나도 최선은 다하겠지만.
“내일 출발하기 전에 유현이 네 각인부터 수정하자.”
그리고 나도, 각인 상담이라도 받아 봐야지. 아카테스는 전투계 가드들 대우가 좋지 못했던 만큼 각인 시술도 발달했다고 하였다. 그러니 여기서 받고 가고 싶긴 한데. 유현이를 설득하기 위해 입을 열려는 그 순간.
– 크르르르르.
몬스터의 으르렁거림이 들려왔다. 마나 홀이 있는 곳이었다. 셋 다 급히 마나 홀 쪽의 난간 너머를 바라보았다. 두 개의 머리를 지닌 사자가 위풍당당하게 서 있고, 연이어.
– 키륵, 키륵!
사마귀와 비슷한 몬스터가 마나 홀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둘 다 SS급 몬스터였다. 우리는 잠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미친, 아카테스 망했네. 도련님 어쩌냐.”
“제가 알 바 아닙니다만. 형, 조심해.”
사자 머리 중 푸른 갈기를 지닌 놈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형형한 눈이 향하는 곳은 정확히 반대편 건물 꼭대기, 시그마가 있는 곳이었다. 두 사자 머리의 입이 쩍 벌어지고 희고 푸른빛이 뭉치다 뒤섞였다. 그리곤 그대로, 한 줄기 레이저 포처럼 시그마의 객실을 향해 발사되었다.
콰과광!! 건물 최상층이 아예 깔끔히 날아가 버렸다. 그러고도 빛이 하늘을 길게 가로지른다.
“아이고 저런. 살아 있겠지?”
“아쉽지만 저 정도론 안 죽겠죠.”
“한가하게 구경만 하시지 말고 잡아요! 유현이 너도!”
내 재촉에 문현아가 먼저 아래로 뛰어내렸다. 꺼내진 거창이 그대로 사자를 향해 치달았다.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담은 돌격에 사자가 맞설 생각은 하지 못하고 훌쩍 뛰어 피했다. 목표를 잃은 거창이 애꿎은 대지에 긴 상흔을 남긴다.
공격력은 장난 아닌데 경로가 단순하다는 게 문제다.
‘잡아 줄 수 있는 팀원이 있으면 최고인데 말이야.’
예림이는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사람 중에 고른다면 에블린도 잘 맞을 것이다. 전투 상성은 말이다. 성격은 안 맞는댔지. 원거리 견제로 발 묶어 주면 편하게 공격할 수 있을 테니까.
유현이도 따라 난간을 넘어서려는 그때,
쿠르릉!
벼락이 내리쳤다. 직격당한 사마귀가 괴성을 내며 날뛴다. 날개를 펼치며 날아오르려는 몬스터를 뻗어 나온 금빛 사슬이 휘감았다. 끝없이 길게 뻗은 사슬이 사자까지 함께 엮자마자.
콰가가각─!
기다렸다는 듯 문현아가 돌진했다. 두 몬스터의 몸뚱이에 커다란 구멍이 생기고 전격이 속살을 파 헤집으며 마무리를 지었다.
순식간에 정리가 되었지만.
“형, 저기.”
새로운 몬스터의 그림자가 마나 홀 너머에서 일렁였다. 이번에는 S급의 몬스터가 열, 아니 십수, 아니 수십 마리 이상이 줄줄이 나타났다.
“…끝이 없네. 마나 홀 주위를 전부 비우는 게 좋겠다.”
이것도 시그마 때문인가. 아무래도 그를 노리는 것 같으니. 유현이와 함께 문현아와 시그마가 있는 곳으로 내려갔다. 문현아가 눈가를 약간 찌푸리며 말했다.
“도련님 말고는 마나 때문에 곤란할 거 같은데, 형님.”
“네?”
“뮤를 부르자.”
“뮤요?”
“응. 메드상의 뮤. 내가 받은 기억도 완벽하진 않지만, 뮤가 있으면 반쯤은 해결이 돼.”
문현아가 자신 있게 장담했다.
“보조계 중에서도 특수능력, 공간을 다루는 가드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