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304
302화 댁네 로비입니다
나는 석시명에 대해 알면서도 동시에 잘 모른다. 내 기억 속에 짙게 남은 그는 적에 가까웠으니까. 첫인상은 어린애에게 길드라는 무거운 짐을 얹히고 휘두르려 드는 흔한 악질 어른이었다. 해연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실세가 석시명이라는 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었다. 어린 S급 헌터를 뒤에서 조종한다는 설이 대세였다.
나중에는 해연길드에는 충실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유현이와 나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었다. 유현이가 저렇게 매정하게 구는 건 석시명의 조언 때문이라고 믿은 적도 있었다. 내가 유현이에게 방해만 된다는, 냉정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목소리를 듣다 보면 유현이도 저 말에 쉽게 넘어갔겠구나 싶어졌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같은 편이다. 같은 편이지만, 회귀 전의 기억들이 자꾸만 속을 뒤흔들어 놓았다.
“석 팀장님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그래서 김하연에게 물었다. 내가 직접 석시명에게 찾아간다면 무슨 말을 듣든 기억의 거름망을 거칠 수밖에 없을 테니까. 반면에 김하연 팀장님은 믿음직스럽고 애들 가르친 선생님이라 호감도 있으니 그녀로부터 듣는다면 편견을 벗어나기 쉬울 것이다. 해연길드 초기 멤버라 석시명과 오래 일해 온 사람이기도 하고.
“한 소장님께서는 동생인 길드장님을 무척 아끼시죠.”
잠깐 침묵하던 김하연이 입을 열었다.
“네.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해연길드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석시명 인사팀장입니다.”
강조할 필요도 없는 진실을 말하듯 담담한 목소리였다.
“석 팀장에게 있어 해연길드와 한유현 길드장님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의 자부심입니다. 석 팀장은 인맥도 넓고 능력도 뛰어난 사람이죠. 어느 길드든 그를 환영했을 겁니다. 하지만 석 팀장은 여러 S급 각성자 중 길드장님을 직접 고르고 선택했습니다. 자기 자신의 판단을 믿고 도전했죠.”
어린 S급 각성자가 길드를 만들기 위해 사람을 모으려 할 때, 유일하게 석시명은 먼저 한유현에게 가 직접 선택했다고 김하연이 말했다. 석시명에게도 들었던 이야기였다.
“취기 오르면 항상 하는 소리예요. 내가 직접 내 길을 골랐고 완벽한 선택이었다고.”
“완벽한 선택이라고요……. 그런데 석 팀장님 B급 아니셨어요? 취해요?”
“B급치곤 체력 스탯이 많이 낮거든요.”
그래서 사무직만 맡는 건가. 나한테 말할 때는 겸손했는데 사실은 유현이를 선택했단 자부심이 대단했구나.
“심지어 초기엔 다들 해연길드가 오래 못 갈 거라고 보았으니까요. 철없는 어린 S급 헌터의 소꿉장난 정도로 취급되었죠. 당연히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세성 길드장은 도와줬다고 하던데요.”
“어느 정도 자리 잡은 뒤의 일입니다. 처음엔 부정적이었어요. 한유현 헌터는 머잖아 한국을 떠날 거라고 대놓고 말하기도 했으니까요.”
하긴 성현제는 유현이의 본성을 눈치챘다고 했으니까. 길드 같은 거 세워 봤자 오래 못 가고 리에트처럼 떠돌 거라고 짐작한 거겠지. 그런데 계속 유지하는 거 보고 흥미가 생긴 걸 테고.
“굳이 도움을 준 사람을 꼽자면 브레이커 길드장이겠죠. 제게 도련님한테 투자해 볼 생각 없냐고 말해 왔었습니다. 어린 길드장이 홀로서기 성공해서 나쁠 거 없다고요. 경험 삼아서, 라고 했으니 기대는 크지 않았던 모양이지만요.”
현아 씨도 독립적인 길드를 만들고 싶어서였을까. 성공 케이스가 하나라도 더 늘면 유리할 거고.
“그래도 성공을 점치는 사람이 없다 보니 방해가 오히려 적었습니다. 기틀 잡은 후가 더 힘들었죠. 초창기 땐 길드 해체하면 끌어들여야 할 귀한 S급 헌터니 대놓고 밉보이려 들진 않았거든요. 길드장님을 직접 공격해 오는 경우는 있었지만요.”
“유현이를요? …독에 당한 적도 있다고 듣긴 했습니다만.”
“어리다고 만만하게 보고 헛짓거리해 오는 인간들이 꽤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A~B급 헌터 몇이 길드장님을 독으로 약화시킨 뒤 싸워서 S급 헌터를 이겼다는 이름표를 달려고 든 적도 있었죠. 당시엔 아직 강한 독이 나오기 전이라 큰 피해는 없었습니다만.”
“…망할 놈들이네요.”
그 새끼들 다 목 따였겠지? 안 따였으면 지금이라도 내가 딴다.
“하지만 해연길드는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해연길드의, 한유현 길드장님의 성공은 석 팀장 그 자신의 성공이며 업적이기도 합니다. 해연길드를 배신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배신하는 것과 다름없죠. 차라리 목숨을 내어놓으면 내어놓았지, 절대 해연길드와 길드장님께 해를 입힐 짓은 하지 않을 사람입니다.”
석시명이 해연길드에 충실하다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이 정도였을 줄은 몰랐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성스럽게 하나하나 공들여 키워 온 작품, 혹은 자식 같은 것일까.
“그리고 석 팀장 앞에서 세성 길드장이 도와줬다느니 하는 소리, 하시면 안 돼요.”
김하연이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겉으론 태연한 척해도 속으론 이 갈거든요.”
“네? 왜요?”
“일방적인 도움이라는 것을 해연길드에 흠집 내는 걸로 생각해요. 스스로의 힘으로 서야만 완벽하다는 거죠. 그래서 갚긴 다 갚았는데, 세성 길드장이 그걸 재미있게 여긴 모양입니다. 처음에는 길드장님에게 호의를 보이며 도움을 줬었는데 두어 달 지나니 석 팀장과의 게임 같은 걸로 변해 버렸죠. 세성 길드장은 몰래 도와주고 석 팀장은 아득바득 그걸 찾아내서 되갚아 주고.”
유현이한테 도움 줬다는 이야기할 때 눈치챈 건, 이라고 말하던 성현제가 떠올랐다. 어쩐지 모르는 게 남았냐는 물음에 애매하게 대답하더라. 그런 약점을 묻어 둘 인간이 절대 아닌데 말이야! 석시명이 눈치채고 해결했으니 유현이는 몰랐던 게 맞긴 하네. 해연에 한국을 넘겨주기로 했다, 라는 오만한 선언까지 들으면 석시명 속 아주 뒤집어지겠구만. 혹시 이미 들었나?
덕분에 석시명에게 손톱만큼의 동질감과 호감이 생겨났다. 그와 마주칠 때마다 은근슬쩍 긁어대는 성현제의 모습이 눈앞에 훤하다, 훤해. 역시 성격 나쁘다. 내가 파트너로서 성현제 만나러 갈 때 해줬던 조언은 경험에서 우러난 거였나.
“차라리 무시했으면 금방 끝났을 텐데 석 팀장으로선 절대 참을 수 없는 부분을 건드려 댔으니까요. 게다가 부족한 점을 정확히 짚어오다 보니 갚아 줬다 해도 도움이 되었다는 건 부정할 수가 없어 자존심도 많이 상해했습니다. 덕분에 겉으론 아닌 척해도 속으론 세성 길드장 아주 지긋지긋해하죠.”
“그래도 세성 길드장 상대인데, 담이 크네요.”
“크긴요. 겁 많아요. 허세를 잘 부릴 뿐입니다. 그래서… 이건 제가 말하긴 그렇군요. 아무튼 그때 일은 석 팀장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버렸으니 가능하면 앞에서 말씀하진 말아 주십시오.”
성현제의 피해자들 중 하나였구나. 호되게 당했단 소릴 들으니까 안됐다 싶으면서도 괜히 기분이 풀렸다. …솔직히 나도 한 번쯤은 석시명 속 긁어 보고 싶지만 그러면 안 되겠지. 다른 것도 아니고 해연 일이니 더더욱 말이다.
“해연을, 길드장님을 지금 이 자리까지 이끌어 온 건 누가 뭐라 해도 석 팀장의 공이 가장 큽니다. 한유현 헌터는 각성 순간부터 완성된 S급 헌터라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한유현 길드장은 석 팀장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었겠지요. 당시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말입니다.”
유현이가 타고난 헌터라고 해도 사회생활은 제대로 해본 적 없는 어린 나이였으니. 길드 운영 전반은 물론 길드장으로서 갖출 태도까지 석시명의 손길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김하연 팀장님께서도 제 동생에게 여러 가지 가르쳐 주셨다면서요. 예림이에게도요.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연한 의무입니다. 길드장님께서는 좋은 학생이었죠. 배우는 것도 빠르셨고요. 박예림 헌터는 아직 공부할 게 더 남았습니다만, 처벌 적게 받고 사고 치는 일에는 관심이 많아서 다행입니다. 생각보다 더 열심이에요.”
…예림아. 그래도 가급적 법은 지켜 주렴.
“석 팀장이 충실하긴 하지만 속마음 잘 숨기는 능구렁이라 한 소장님도 조금쯤 조심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워낙 길드장님을 아끼시니 석 팀장도 고마워하고 있지만 수틀리면 가차 없이 돌아설 사람이기도 합니다. 해연에 득이 된다면 팔아먹는 것도 서슴지 않을걸요. 길드장님의 친형이라 해도 말입니다. 길드장님만 제외하면 뭐든 장기짝으로 써먹을 수 있는 사람이죠.”
아주 잘 알죠, 그건.
“만약 한 소장님께서 사육소가 아닌 길드를 세우셨더라면 웃는 낯 아래로 의심과 경계를 했을 겁니다. 해연길드를 먹어치우려 드는 게 아닐까 하고요. 아마 지금도 완전히 마음 놓은 건 아닐걸요. 혹여 합병할 생각 없느냐고 떠보거든 거절하세요.”
“합병이요?”
“네. 합병도 싫어해요. 수담길드가 그런 제안을 했다가 밉보였죠. 아래로 들어온다면 환영하겠지만요. 해연은 오롯하게 해연이어야만 만족하는 사람입니다.”
그건 나도 동의하지만. 내 동생이 어떤 마음으로 세우고 키워온 길드인데 흠나게 해선 안 된다. …마지막까지, 해연은 해연이었으니까. 사라져서도, 변해서도 안 되지, 절대로. 나 또한 그 두 글자를 온전히 지키고 싶다.
“믿음직스럽군요.”
“그렇죠.”
그런 사람을 꺼린다는 게 미안해질 정도였다. 동생을 생각하면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사람인데. 하지만 나는…….
“…하나만 더 여쭤봐도 될까요?”
“네, 말씀하세요.”
“어떤 사람이 꿈에서 절 괴롭혔습니다. 절대 잊을 수 없을 만큼 심하게요. 하지만 실제로는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었어요. 제게 나쁜 짓 한 적도 없고요. 그러니 싫어해선 안 되는데… 꿈이 너무 선명해서, 현실처럼 똑똑히 남아 있어서, 자꾸만 꺼려집니다.”
지금의 석시명은 내게 잘못한 적이 없다. 오히려 친절하다.
“이건… 역시 제가 잘못하는 거겠죠.”
“아뇨.”
김하연이 가볍게 대답했다.
“꺼려지지 않으면 좋겠지만 사람 마음이 어디 그리 쉽나요. 게다가 생생한 꿈 때문이라면 오히려 양반입니다. 세상엔 온갖 별것 아닌 이유로 타인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널리고 널렸어요. 단순히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이 생기기도 합니다. 한 소장님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겠지요. 실제로 한번 만나 보지도 않았으면서요.”
…그야 그럴 것이다. 동생이 S급 헌터라서, 운 좋게 등급 높은 스킬을 얻어서, 유명해져서 등등. 광고 제안 계속 거절하는 거 두고 비싸게 군다고 욕하는 사람도 한 명쯤은 있겠지. 생긴 게 마음에 안 든다는 사람도 있을 거고.
“그런 마음까지는 어쩌겠습니까. 부정적인 감정이든 긍정적인 감정이든 마음대로 조절이 불가능한 게 감정이죠. 그저 참으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득도라도 하지 않고서는 말입니다.”
“그렇, 겠죠.”
“다만 겉으로 드러내는 순간부터는 잘못입니다.”
김하연이 단호하게 말했다.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은, 타인을 직접적으로 해치겠다는 뜻이니까요. 그때는 법정에서 만나게 되겠지요. 한 소장님께서도 눈에 띄면 바로 연락 주십시오. 빠르게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뚜렷한 미소가 살짝 살벌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한 소장님의 꿈에서 나왔다는 사람, 뒤통수 한 대 정도는 후려갈기세요.”
“…네? 방금은 잘못이라고 하셨잖아요.”
“그 정도는 별문제 없을 거고 문제 생긴다면 합의하면 됩니다. 윤리적으로는 잘못된 일입니다만 해연길드로서는 한 소장님의 정신건강이 더 중요합니다.”
“아… 그, 감사합니다.”
무심코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하긴 석시명도 내가 끙끙 앓느니 속 시원하게 자기를 패라고 말하겠지. 그게 해연길드에 더 도움이 되니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김 팀장님께 말하길 잘했다.’
그래, 싫은 걸 어쩌겠어. 나한테는 있었던 일이기도 하고. 석시명 잘못은 아니지만 나도 잘못한 건 아니잖아. 그래도 앞으로는 나아질 것이다. 이미 마음이 약간 풀리기도 했고. 석시명 씨 당한 이야기 자세히 듣고 나면 좀 더 호감이 생길 거 같은데. 최소한 동정심이라도 말이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설마 싶었지만 역시 아니었다. 동생이다.
“어, 유현아.”
[사육소 응접실이지? 지금 갈게.]“아니 내가 알아서 챙겨먹는다니까.”
하여간 애들도 참. 통화를 끊으며 괜히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동생이 약 먹이러 온다네요.”
“예? 약이요?”
“보약이요. 그럴 나이는 아닌데 하도 성화라…….”
김성한 헌터에게 잘한다는데 물어보고 지어 왔다나. 시간 맞춰서 먹어야 효과가 더 좋다며 유현이랑 예림이 둘이서 확실하게 챙기기로 했단다. 둘 다 자리를 비우면 명우와 노아가 찾아올 예정이었다.
“그제 밤엔 둘이 머리 맞대고 뭐 하나 했더니 영양제 찾고 있더라고요. 정말이지 그럴 거까지 없댔는데도. 그래도 이래서 애들 키우지 싶기도 하고요. 진짜 기특하죠? 둘 다 어떻게 이렇게나 착한지.”
현아 씨 추천대로 칼슘과 비타민D 뒤지다가 마그네슘도 필요한 거 같다며 진지하게 의논하고 있었지. 흐뭇하게 말하는데 김 팀장님이 나를 묘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한 소장님 스물다섯 살이셨죠. 분명.”
“아, 좀 나이 들게 느껴지나요? 한 30대?”
“솔직히 방금은 제 연배로 생각되었습니다.”
…사십대는 너무했다. 내가 사오십대 분들과 자주 어울리긴 했다만 그래도.
김하연 팀장님이 돌아가고 이내 유현이가 약그릇을 들고 나타났다. 쓴 내 풍기는 약그릇이 내밀어지자 피스가 콧등에 주름을 잔뜩 잡았다. 냄새가 영 위험하게 느껴지긴 하지. 그래도 얌전한 게 유현이를 믿는 걸까. 전에 성한 씨가 보낸 보약 먹을 땐 처음엔 덤벼들었는데.
“아침에 운동했어? 옥상정원엔 안 나온 거 같던데.”
“아니, 애들 돌보다 보면 운동 되고…….”
“역시 트레이너 붙이는 게 낫겠다. 다리는 괜찮아? 어제저녁부터는 안 저는 거 같던데.”
“티 안 났어? 그럼 괜찮은 거 같아. 의식 안 하고 있거든.”
일부나마 털어놓아서 마음이 편해진 덕분일까. 어제저녁도 즐거웠고. 역시 애들 잘 먹이는 게 최고다.
“마지막으로 치과 간 건 언제야? 기억나?”
…갑자기 웬 치과. 당연히 기억날 리가 없었다. 5년 전이잖아.
“충치 같은 거 없었어. …아마.”
“예비 부길드장이 나이 들수록 치아 관리도 철저히 해야 한댔어. 잡곡밥으로 바꿀까? 당수치가─”
“형 스물다섯 살이다.”
성한 씨 아직도 내가 노인으로 느껴지는 건가. 얘들아, 상담 상대를 잘못 선택한 듯하구나. 요즘 젊은 사람들도 당뇨가 늘어난다곤 하지만… 잡곡밥이 몸에 좋긴 하겠지. 건강을 챙기긴 해야… 그래도 트레이너 붙는 건 싫은데. 내일은 꼭 잊지 말고 운동하자.
“한창 쌩쌩할 이십대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멀쩡하단다. 다리도 진짜 다친 건 아니니 걱정하지 마. 이러다 목발까지 짚고 다니라 하겠다.”
“던전 부산물로 만들어서 인벤토리 보관도 가능한 건데.”
“…벌써 샀어?”
“아니, 주문만 했어. 좋은 생각이라고 그러더라.”
“나중엔 온갖 게 다 던전 부산물로 만들어진다. 특히 우산 편했지.”
헌터 인정 못 받는 FF급이라 해도 인벤토리는 있으니까 그에 맞춰 많은 게 바뀌어 갔다. 던전 부산물 용품은 비싸다 보니 빈부격차 문제도 생겼고. 젖은 우산 들고 다니는 거 노매너 아니냐 인벤에 넣어라, 라는 글이 인터넷에 올라왔다가 대판 싸움 나기도 했다.
그때 알람이 울렸다. 습관적으로 문자를 보냈다.
“진짜 갈 거야?”
내가 문자 보내는 걸 보고 유현이가 못마땅하게 말했다.
“계속 기다릴 순 없잖냐. 그리고 정말로 내가 오는 게 싫다면 오지 말라고 하겠지.”
“상태 별로라며. 위험할지도 몰라. 나도 따라갈 거지만, 그래도. 은혜만으론 안심할 수 없어.”
“그래서 대비를 하려고.”
은혜를 풀며 왼쪽 바지를 무릎 위까지 걷어 올렸다. 그리곤 무릎 위에 은혜를 찼다.
“여기면 바로 못 찾을 테니까. 그리고 폭탄도 있지.”
미리 사 둔 B급 폭탄을 꺼냈다. 선풍기 리모컨처럼 작고 납작한 폭탄으로 범위가 좁은 대신 위력은 S급에 가깝다고 했다.
“은혜야.”
– 삑!
파랑새가 포르르 나와 바닥에 앉았다.
“이 폭탄 끼울 수 있게 변형해 줘. 그리고 여기 이 옆면의 빨간 버튼 보이지? 내가 은혜 널 부르거나 말을 못 하는 상황이 되면 눌러서 터뜨려. 할 수 있겠어?”
– 삐이, 빨간 버튼!
“그래, 연습해 보자. 안전장치 잠근 채니까 눌러도 돼.”
은혜가 별 힘은 없지만 버튼 정도는 누를 수 있다. 다리에 폭탄을 차고 은혜를 부르자 얼른 부리로 버튼을 꾹 누른다.
“잘했어! 이 폭탄이면 세성 길드장도 잠깐은 물러설걸.”
내 말에 유현이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송 실장님에게도 연락해.”
“…해야겠지. 진짜 죄송스럽다.”
모르고 당하는 것보다는 알고 대비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미안한 마음을 담아 송 실장님에게 연락했다. 반드시 성현제를 만나야겠다는 내 말에 그가 한숨을 담아 동행하겠노라고 대답했다.
틈내서 집에 온 예림이와 함께 점심을 먹고 시간 맞춰 출발했다. 그때까지도 성현제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차에 탔습니다.] [세성길드 도착 10분 전입니다.] [세성길드 주차장입니다.]위로 올라가자 약간 곤란한 표정의 강소영과 피곤한 얼굴의 송태원이 보였다.
[댁네 로비입니다.]연락 없으면 진짜 뚫고 들어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