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307
305화 댁네 집이었는데 (2)
“괜찮은 건가?”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댁이 할 말입니까!”
송태원을 주시한 채 버럭 소리쳤다. 뒤쪽에서 느껴지는 기세가 장난이 아니다. 이게 새어 나오는 극히 일부라니. 하지만 성현제가 날 밀어내진 않는 거 보니 아직 버틸 정도는 되는 모양이었다.
이제 어쩌지. 입안이 바싹 말랐다. 머릿속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지만 지금 두 사람이 부딪치는 건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직감이 들었다. 생각해 보자, 생각.
다행히 송태원은 곧장 덤벼오지 않았다. 침착하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내 손에 들린 총을 바라보고 있다. 급히 쏘느라 풀충전은 못 했지만 그래도 최소 B급 이상 공격력이었다. 스탯 F급의 무기에서 나온 위력이라곤 믿을 수 없는 수준이니 경계하는 것이겠지. 심지어 폭탄도 그가 아는 종류가 아니었다. F급도 쓸 수 있는 화약이 아닌 마력으로 작동하는 S급 수준의 폭탄.
…나 감방 들어가는 거 아닐까 모르겠네. 독환도 소지 신고 필수에 던전 밖에서 사용하면 즉시 체폰데.
“은혜를 숨겨서 들어왔었군. 내 파트너에게 믿음을 주지 못해 안타─”
“아 좀 조용히 해봐요! 한가한 소리 할 땐가!”
나도 헛생각 중이긴 했지만.
성현제는 기억을 지워져 가며 여러 세계를 거쳐 왔다. 아니, 정확히는 기억을 덧씌워진 것일 터였다. 그 긴긴 시간과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인 채로 그 위에 너는 이 세계에서 태어난 이 세계의 사람이다, 라고 얇게 내리덮고는 새로운 세계로 들여보내진 것이겠지.
그가 어떤 방식으로 우리 세계에 심어진 것인지는 아직 모른다. 어린아이일 때였는지, 이미 성인이었을 때였는지, 혹은 원래 존재하던 성현제와 바꿔치기 당했는지.
“…혹시 어릴 적 기억납니까? 달이는 흐릿하다고 했거든요. 선명한 기억은 몇 살 때부터, 뭐 해요?”
스카프가 내 다리를, 은혜가 있는 곳을 감추듯 감겼다. 은혜의 공격 무효 효과는 내 옷에도 어느 정도 적용이 된다. 하지만 폭탄이 옷 안쪽에 있다 보니 폭탄 주위는 효과를 발휘하지 않아 바지가 둥글게 잘리듯 뜯겨나가 버렸다. 아래쪽은 그대로 흘러내리고 위쪽은 반바지처럼 되어 버리고. 꼴이 좀 웃기긴 하겠다.
“이러면 내가 혹시 미치더라도 단숨에 빼앗지는 못할 거라네.”
“…정신 나간 상태로 차분히 매듭 풀거나 천천히 잘라내긴 힘들긴 하겠죠. 공항에서 넥타이 매줬던 거 생각나네. 제가 거기 있던 사람들 다 매줬는데 성현제 씨는 없어서 좀 허전하더라고요.”
“그런 자리를 빠졌다니, 아쉽군.”
“어차피 댁은 매주는 사람 많을 텐데 아쉽기까지야.”
전담 코디 붙었을 거 아니냐. 여러 사람의 시중을 받는 게 어울리는 인간이다. 다른 세계에서는 왕이나 황제 노릇도 해보지 않았을까.
“그건 그렇지. 내가 매준 적은 없었지만. 물론 스카프도 말일세.”
“영광이옵나이다, 폐하.”
그래서 어릴 적 기억은 어떤데. 송 실장님 움직이기 시작하면 따라잡을 자신 없다. 송태원은 물론이고 성현제에게 선생님 스킬 쓰기도 뭣하니. 재차 묻자 성현제가 겨우 대답을 돌려주었다.
“있긴 하다만 애매해. 지금으로선 진짜인지 의심스러운 느낌이로군. 기억이 선명한 시점은, 스물넷 즈음인가.”
“그럼 성인일 때 옮겨졌을 가능성이 높겠군요. 정확히는 신체 성장이 끝난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린 시절은 필요 없다 이거겠지. 다른 세계의 사람을 옮겨 심는 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여러 초월자들, 자신의 조각들을 거느린 초승달이다. 거기에 그냥 심는 것도 아닌 바꿔치기였던 모양이니 뭔가 특별한 방법이 있었겠지.
“한 세계에서 못해도 10년 안팎, 길게는 20년 이상. 매번 S급 정도는 기본이었을 거고 말입니다.”
SS급이나 어쩌면 그 이상까지 성장한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SS급까지는 가볍게 올라갔겠지. 그것이 계속해서 쌓여온 것이다. 뛰어난 자질의 태생 S급이 끊임없이 성장을 반복하고 스스로를 갈고닦고 여러 세계를 경험하고.
그렇게 쌓여 온 힘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설마 초승달은 이걸 노린 거였나.’
처음에는 단순히 성현제가 세계를 삼키고 초월자가 되길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거부하고, 거부한 그를 놓지 못한 채 몇 번 반복하다가, 깨닫게 되지 않았을까.
한 인간에게 수많은 세계를 밀어 넣는다는 새로운 방법을.
성현제라는 뛰어난 그릇이 버티고 버티다 결국 가득 차고 닳아서, 육신도 영혼도 낡고 바래져 간 끝에 태어나는 무언가는.
‘단순히 근원을 막는 것만 아니라, 아예 없애버리는 일도 가능하지 않을까.’
등골이 절로 서늘해졌다. 수많은 초월자들의 요람, 초승달이, 그녀가 괜히 한 명의 인간에게 길고 긴 시간을 집착할 리가 없었다. 성현제가 여느 초월자와 별다를 바 없다면 그럴 시간에 새로운 초월자 후보를 찾아 키우는 편이 이득이다.
하지만 근원을 확실하게 소멸시킬 가능성을 지닌 존재라면.
“…저기, 성현제 씨. 만약 당신 속에 쌓여 있는 게 터져 나온다면 말입니다. 당신은, 어떻게 될 거 같습니까?”
“글쎄, 모르겠군. 하지만 지금 새어 나오는 것만으로도 이성을 유지하기 버거워지고 있으니. 완전히 터졌을 때는 스스로를 유지하기 힘들지 않을까.”
그렇겠지. 어찌 되었든 그는, 인간이다. 눌러 두었던 것이 터지고 그 모든 힘을 받아들이고 나면, 최소한 인간은 아니게 될 터였다. 지금까지의 성현제가 아닌 다른 무언가로 바뀌고 말겠지. 초월자 위의 근원에 가까운 존재가 될 수도 있지만, 어쩌면 이지를 잃은 단순한 힘의 덩어리로 전락할 수도 있다.
초승달은 성현제와 겹겹의 계약을 해놓았을 테니 어느 쪽이든 조종하여 근원을 파괴할 수 있을 것이고.
근원이 사라지는 거, 뭐 좋지. 그 전에 우리 세계도 깨끗이 사라져 버리겠지만. 그리고 성현제도. 내 뒤에 서 있는 인간은 사라질 것이다. 카페라떼도 에그타르트도 스카프도 없다.
“둘 다 일단 기다려 봐요. 괜히 위험한 방법 쓸 필요 없잖습니까. 성현제 씨도 답지 않게 목숨 가볍게 걸지 마시고.”
“죽겠다고 한 적은 없네만. 아무것도 놓치기 싫은 과욕이라 한다면 인정하겠지만. 성공 가능성이 없지는 않아.”
아닙니다, 실패합니다. 내 추측으론 말이야, 이미 한 번 망했다고!
성현제는 송태원에게 약탈 스킬을 선물 받았다. 그리고 송태원은 죽었다. 여태까지는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시도했겠지, 그때도. 약탈로 성현제의 쌓인 과거를 덜어내는 일을.
하지만 송태원은 죽었고 대신 성현제에게 약탈을 건넸으며 성현제는 잠적했다. 자세한 정황은 아직 모른다. 확실한 것은, 그 시도가 성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지금 송 실장님 스킬 숙련도는 그때보다 낮아.’
이럴 줄 알았으면 송 실장님한테 미친 척 키워드 적용하고 스킬 성장시키는 건데! 그렇다고 해도 몇 년의 시간을 따라잡긴 힘들었겠지만.
아무튼 실패할 확률이 아주, 매우, 무척 높았다.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 몸을 긴장시킨 그대로, 송태원이 말했다. 민원이라도 받듯 담담한 목소리다. 송 실장님 앞에 두고 목소리 높일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었겠지.
“…생각 중이에요. 근데, 지금 성현제 씨가 하려는 방법은 정말로 위험하거든요. 자칫하면 송 실장님까지 다칩니다. 죽을 수도 있어요!”
“괜찮습니다.”
아, 네. 그렇게 대답하실 줄 알았습니다. 자기학대 경력 8년 차가 말합니다. 스스로를 조금쯤은 사랑해 줍시다. 최소한 목숨은 챙겨 줘.
‘회귀 전에는 몇 년 더 버텼으니 역시 가장 큰 문제는 나겠지.’
나라는 특이점이 없었더라면 새로운 경험도 없었을 테니까.
“성현제 씨가 절 죽이면 안정될 거라고 했죠?”
“그렇다 해도 결국 일시적인 조치일 뿐. 언젠가는 닥쳐올 일이지.”
시간벌이 할 수 있는 게 어디냐. 살해하는 행위만으로도 도움이 될까. 그렇다면 성현제의 정신 속으로 들어가서 목 내놓는 걸로 땜질이나마 가능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지금 그의 상태를 내가 감당할 수 있느냐인데.
정신세계에서 쌓이고 쌓인 저것을 맞닥뜨리게 되면, 그럼 끝이지.
“괜한 생각은 하지 말고 이만 나가게.”
“머리 굴리는 중이니까 방해하지 마세요.”
“소중한 동생을 위해서라도 무사히 돌아가야지. 도련님이 한유진 군을, 유일하게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해선 안 되지 않나.”
“저도 죽겠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만. 아무것도 놓치기 싫어하는 과욕이라 한다면, 사돈 남 말 하시네고.”
유현이로 설득하려 들기는. 그런 말 안 해도 목숨 안 걸어. 안 걸 건데, 젠장. 초조함은 빠르게 쌓여 갔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방법이 없었다. 아냐, 있을 거야. 있어야 한다. 덜어내는 방법…….
회귀 전의 성현제는 약탈을 건네받았다. 등급도 높을 거고 사용 방법도 능숙할 거고. 그걸 지금 쓸 수 있다면, 문제는 역시나 내가 정신계로 들어가야 한다는 건데.
“한유진 씨.”
내가 약탈 스킬을 선생님 스킬로 배워서, 현실에서 쓴다면. 하지만 곧장 능숙하게 사용하는 건 내 능력으론 불가능하다. 역시 시간이…….
“비켜 주십시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속이 뜨끈해졌다. 송태원이 움직이려 한다. 그런 직감이 들었다. 눈으로 보는 것은 포기했다. 그간 쌓인 경험과 그에 따른 예측. 그것을 믿고 방아쇠를 당겼다.
피잇─!
총구에서 쏘아진 것은 가느다란 화살과 같은 마탄이었다. 하얀 살쾡이 총을 살펴본 명우가 마력으로 이루어진 탄환을 다양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고 알려 주었다. 소지자의 능력에 따라 스킬을 접목시키는 것도 가능했지만 내겐 마땅한 스킬이 없으니. 대신 탄의 모양은 바꿀 수 있었다.
화살탄을 발사하고 이어 딜레이 거의 없이 방향만 약간 바꾸어 다시 총격을 날렸다. 오른쪽 방향이었다.
송태원의 움직임을 눈으로 확인한 것은 아니다. 보고 쏘면 늦다. 예상이다.
이번 마탄은 처음과 달리 충분히 마나를 담은 S급이다. S급 검으로 막는다면 무기에 충격이 가해진다. 약탈 스킬은 무기와 상대의 공격, 양쪽 모두를 약화시키니 송태원의 성격상 막기보다는 회피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았다.
빌린 무기잖아. 유현이는 막 써도 된다고 했지만 그럴 사람이 아니거니와 무엇보다 지금은 나를 상대하고 있다. 성현제를 두고 내게 무기 내구도를 소모할 리 없다. 그렇다고 주먹 같은 걸로 쳐내기엔 낯선 무기의 공격이다. 어떤 효과가 있을지 모르니 십중팔구 피할 것이고, 그렇다면 오른쪽이다.
퍽! 첫 번째 마탄은 벽에 부딪쳤다. 처음 것이 아무 효과 없이 벽에 부딪쳤으니 안심했겠지. 그럼 두 번째는 쳐낸다. 세 번째 탄은 두 번째와 같은 방향으로 연사했다. 직후 텅, 두 번째 마탄이 쳐내졌다. 예상대로다. 맞부딪치며 직진 돌격. 하지만 세 번째는.
구우웅─!
최대 위력으로, 넓은 범위로 주위를 휩쓸며 터져 나갔다. 반발력으로 밀리는 내 몸을 성현제가 받쳐 주었다. 퍼지는 빛에 앞에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성현제의 목소리와 함께 그가 총을 든 내 손을 움직여 방향을 잡아 주었다. 동시에 방아쇠를 당겼다.
빛이 가라앉고, 말라붙은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지고 파헤쳐진 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던전 부산물로 만들었는지 용케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다. 그 너머로 송태원이 서 있었다. 그의 한쪽 다리의 옷자락이 길게 찢겼다.
‘와, 스치기라도 했네.’
성현제가 도와준 덕분이긴 하지만. 그래도 내 예상이 맞아떨어진 것이 제법 짜릿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송태원을 바라보았다.
“조금만 더 기다려 봐요. 제가 어떻게든─”
“충분히 했어.”
앞쪽이 아니라 뒤쪽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뒤로도 한 방 날려 주고 싶어지네. 그 소리 하려고 도와줬냐. 할 만큼 했으니 만족하고 꺼지라고? 송태원이 이번에는 와이어를 꺼내들었다. 나를 확실하게 제압해 두려는 모양이다. 하필 유현이가 준 거라 성능도 좋을 텐데.
“다른 방법이 없다면 순순히 물러나 주십시오.”
“아 진짜, 둘 다 좀 닥쳐 봐요! 이번에는 아무도 안 죽어!”
물론 아무것도 희생하지 않는다는 거 꿈같은 소리라는 사실 잘 안다. 뼈저리게 안다.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거다. 어쩔 수 없다고? 시발, 엿 먹으라 그래. 그 한마디로 끝낼 수 있었으면 8년간 괴롭지도 않았고 지금껏 속 끓지도 않았을 거다.
약탈 스킬을 익힌다 해도 현실에서 쓰려면 체인질링도 깨어나야 하고… 체인질링.
‘성현제의 파편을, 일부를 마석으로 옮겨서 태어난 마수.’
그럼 같은 일을 또다시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방법을 모른다는 게 문제지만. 그래도 할 수만 있다면 약탈로 성현제를 도려내는 것보단 안전할 것이다.
“체인질링! 잠깐이라도 깨어나 줘! 아니면 대화만이라도 하자!”
그래도 며칠 잤잖아. 잠시만 깨어났다가 다시 자라!
“응, 아빠.”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홍빛 도는 은발의 어린애가 어느새 내 옆에 서 있었다.
“뭡니, 까. 그 아이는.”
상당히 당황한 듯 송태원이 말하고.
“태어났었군.”
성현제가 눈치 빠르게 체인질링의 정체를 알아챘다. 그가 몸을 약간 숙이며 자신과 닮은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아, 보지 마요! 안 그래도 정보가 넘쳐서 터질 판이라며!”
“죽을 때 죽더라도 이런 건 놓칠 수 없지. 극히 일부일 뿐이라더니 모양새는 전혀 아니군.”
“다른 모습으로도 변할 수 있거든요?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체인질링, 네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 성현제의 일부를 마석에 옮길 수 있을까?”
“응.”
체인질링이 성현제를 빤히 쳐다보며 대답했다. 그리곤 인상을 찌푸린다. 주름지는 콧등이 귀엽다.
“안 하면… 위험할 거 같지만, 해도 아빠가 고생할 텐데. 짜증 나.”
“그래도 너 태어나게 손톱만큼 도움 준 사람이잖아. 한 번만 도와주자.”
내가 달래자 체인질링이 에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까지 절레절레 흔든다. 어른들 따라하는 어린애 같다. 어린애 맞지만.
어쨌든 방법이 생겨서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