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322
320화 세 배로 안전합니다 (3)
우리가 우리 알아서 살게 내버려 둬라! 하고 가운뎃손가락을 올린들 세계 밖의 존재들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을 것이다. 성현제가 자유를 되찾을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나마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멸망을 막는 것이겠지.’
그나마, 라는 말이 붙을 일은 전혀 아니다만. 어쨌든 세계가 망하지만 않으면 초승달도 쉽게 뚫고 들어오지는 못할 것이다. 체인질링 덕분에 더 튼튼하게 복구도 되었으니. 즉, 우리나라는 일단 놓아두고 해외 쪽에 신경을 쓰는 게 맞다.
“그래서 언제 나가시게요. 배웅은 해드리죠.”
설마 오늘 바로 나가는 건 아니겠지. 아직 회귀에 대한 이야기도 못 했는데.
“매정하게 혼자 보내려는 건가. 말만 파트너였군.”
성현제가 버림받은… 이하생략과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문현아가 못 볼 꼴 봤다는 듯 손바닥으로 자신의 얼굴을 덮었다. 예림이도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제가 뭐 좋을 일 있다고 해외까지 나갑니까. 일본으로 충분해요. 나가 봤자 납치 미수나 주야장천 당하겠지.”
“애초에 왜 형이 세성길드와 같이 움직입니까. 나간다면 해연과 함께여야지.”
유현이가 냉랭하게 말했다. 그것도 그렇지. 사육소는 중립이긴 해도 해연과 가깝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동시에 성현제와도 일단 파트너긴 하지만.
“아무튼 납치라도 당하면 모를까, 한국 뜰 생각 없습니다. 일본 정도나 가끔 갈까.”
일본은 시시오가 키워드 적용되었고 계약으로도 엮여 있으니 안전할 것이다.
“납치를 하라는 뜻인가.”
“아 진짜, 송 실장님께 사과하세요. 석고대죄 하십쇼.”
일을 또 얼마나 키우려고 무서운 소리를 하고 있다. 내가 끌려가면 따라붙을 사람이 몇인데. 일정이나 말하라는 타박에 성현제가 아쉬워하며 대답했다.
“국내 공략 팀 체계를 바꿔야 할 필요가 있으니 이 주 후로 예정 중이라네. 기꺼이 따라와 주겠다 할 줄 알았건만.”
“잘 가세요, 안녕히, 와 한동안 맘 편하겠네. 선물 사오시고요, 이왕이면 그 동네 특산물 S급 무기 이런 거 환영합니다.”
특히 송 실장님 앓던 이가 빠진 기분이 아닐까. 성현제가 아예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먼 나라에 있을 뿐이니까 좀 더 마음이 평온해지지 싶었다. 마침 송태원이 들어서고 있었다. 그를 향해 한쪽 손을 흔들며 외쳤다.
“송 실장님! 세성 길드장 다시 해외 나갈 거래요!”
내 말을 듣자마자 송태원이 우뚝 굳어 섰다. 전혀 반기는 기색이 아니었다. 자신의 기준점이 되는 성현제가 멀리 떠나는 게 싫은 것일까. 그 정도로 성현제에게 의지를…….
“송 실장님 성현제 사고 친 거 수습하러 해외 출장 여러 번 갔었지.”
문현아가 오랜 옛날이야기를 하듯 아련하게 말했다.
“괜히 한국의 송태원이 해외 헌터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게 아니라니까. 한국이랑 다르게 헌터는 물론이고 총화기도 튀어나오는 동네다보니 말이야. 맨손으로 상급 헌터 섞인 전차부대 날려버린 거 한 소장님은 모르지?”
당연히 모른다. 그러고 보니 해외에서는 현대화기를 상대해야 할 수도 있겠구나. 미사일 날아오고 전투기가 폭격하고. 응, 역시 안 나가. 내가 터뜨리는 건 나름 즐거웠다만 남이 터뜨리는 불꽃에 휘말리긴 싫다.
“그… 송 실장님,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예상은 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오래 잠잠했지요.”
송태원이 살짝 찌푸려졌던 표정을 펴며 내게 말했다.
“아마테라스 길드장이 도착했습니다.”
시시오는 게이트-S를 가장 처음 받아 갈 외국 헌터였다. 무턱대고 끝내주는 상품 있는데 팔아 줄게~ 하는 게 일반 소비자도 아니고 나라 대 나라로 쉽게 통할 리가 없었다. 성능 확인하고 이래저래 조율 거치고 질질 끌게 될게 분명했다. 그동안 피해 입고 불안에 떠는 거야 평범한 사람들이니, 알 바 있을까.
그래서 시시오에게 부탁했다. 직접 한국에 와서 기계를 받아가 달라고. 흔쾌히 와준 건 고맙지만.
‘…만나기 싫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질 않았다. 그래도 눈치가 없진 않을 테니 생방송 중에 그, 그 호칭을 입에 담지는 않겠지. 그랬다간 집에 처박혀서 석 달 열흘은 꿈쩍도 하지 않을 거다. 쪽팔려서 어떻게 얼굴 들고 다니냐.
“가… 죠. 가기는, 가야.”
와주는 조건 중 하나가 나와 만나는 거였으니 어쩔 수 없다. 아, 진짜 왜 하필 그거야. 시시오 아버지 뭐 했냐. 왜 애 키우는 데 손을 놨어.
“한유진 소장님!”
왕이라도 된 것처럼 화려한 길드 제복 차림의 시시오가 환한 얼굴로 나를 반겨주었다. 다행히 호칭은 멀쩡했다. 카메라가 비추는 속에서 나도 힘껏 미소 지어 주었다.
“일본 최고의 길드장님께서 이렇게 직접, 선뜻 찾아와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가치를 못 알아보는 멍청이나 망설이겠지! 요.”
시시오가 하하하 하고 커다랗게 웃었다. 그리곤 무척이나 반갑다며 나를 향해 팔을 뻗었다. 야, 잠깐만. 뭘 포옹까지, 으, 아니, 전에는 더 담백했던 거 같은데. 카메라 앞이니 나도 가볍게 안아 주려고 시도는 했다. 이 인간도 몸뚱이 장난 아니게 두꺼워.
“그럼, 석 팀장님께 설명 들으시지요.”
풀려나자마자 후다닥 뒤로 물러나며 하얀 씨에게 시시오를 넘겼다. S급 헌터 상대라 조금 걱정되었지만 다행히 석하얀 씨는 문외한이 또 하나 왔구나, 하는 자세로 쉽고 친절한 설명을 해주었다. 물론 석하얀 씨 입장에서였고 시시오는 알아듣는 척하다가 결국 굳어 버렸다. 카메라 돌려, 카메라.
“참, 세성 길드장님. 다음 주쯤에 시간 좀 내주세요. 조용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언제든지 연락하게.”
“그리고…….”
말을 꺼내려다 말았다. 지금 말고 그때 가서 이야기하자.
시시오는 약속대로 게이트-S에 대한 기대를 제법 잘 떠들어 주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내게 살짝 소름 돋는 간질간질한 시선을 보내며 일본에 다시 방문해 달라고 말한 것 외에는 별다른 일도 없었다. 무슨 생각으로 저런 촉촉한 눈을 하는 건지는 영원히 모르고 싶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시력 확인도 할 겸 안경을 맞췄다. 회복되었다곤 해도 아직 마이너스를 겨우 면한 수준이었다. 그래도 볼 수 있는 게 어디냐.
오늘 발표 관련 뉴스를 보고 있는데 피스가 달칵, 서랍을 열어 새 휴대폰을 꺼냈다. 상자째 입에 앙 물린 휴대폰이 내 발치에 놓였다.
– 끼앙.
작은 앞발이 휴대폰 상자를 툭툭 두드렸다.
“왜, 피스야. 휴대폰 꺼내 줘? 가지고 놀게?”
요즘 폰값 만만찮지만 이쯤이야 못 해줄까. 상자 속에서 휴대폰을 꺼내 피스에게 내밀었다. 피스가 휴대폰을 받아 물더니 다시 내 발 앞에 내려놓곤 앞발로 두드렸다.
– 꺄앙, 끄웅.
“피스야?”
– 끄우으웅, 꺙!
뭘 원하는 거지. 휴대폰을 켜주자 코끝으로 액정을 쿡 찌른다. 왜 갑자기 폰에 관심을 보이는 걸까. 설마.
“유현아! 피스가 폰 가지고 싶은가 봐!”
“엥? 휴대폰이요? 피스가? 설마요.”
유현이 대신 예림이가 자기 방에서 날아 내려오며 말했다.
“하지만 자꾸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낑낑대더라고. 애완동물용 휴대폰도 있나?”
별의별 애동용품이 다 있던데 폰도 있지 않을까. 유현이가 주방에서 약을 들고 나오며 피스를 쳐다보았다.
“형 때문인 거 같은데.”
“나 때문에?”
“저번처럼 형의 몸 상태가 안 좋아도 피스는 밖에 연락할 수가 없잖아. 아직 시력이 다 회복되지도 않았으니 만약을 대비해 외부 연락 수단을 가지고 싶은가 보지. 얼른 마셔.”
약을 받아들며 유현이와 피스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가끔 생각하는 건데 피스를 가장 사람 대접해 주는 건 유현이가 아닐까 싶었다. 유현이한테는 피스나 노아 씨나 성현제나 송 실장님이나 현아 씨나 다 동등하겠지. …피스가 더 우위에 있을 수도 있고. 자기 기승수니까.
“피스야, 휴대폰이 가지고 싶은 거니?”
“형, 약.”
“…이거 좀 맛없더라.”
“저 선물 받은 초콜릿 있어요.”
“그럼 하나만… 잠깐만, 초콜릿을 선물 받았다고?”
“제 팬이라는 언니가 줬어요.”
아, 언니가. 혹시나 했네. 약을 마시고 예림이에게 초콜릿도 받아먹은 뒤 다시 피스에게 말을 걸었다. 휴대폰을 들어 보이며 이거 가지고 싶다고, 하는 물음에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
“피스가 쓸 수 있는 휴대폰이 있을까?”
“특별 주문해야 하지 않을까요? 어, 다른 기능 없이 단순하게 단축키로 영상통화 되는 폰 같은 거요?”
그 정도면 피스도 사용할 수 있을 듯했다. 똑똑하잖아, 우리 피스.
“내가 알아볼게.”
“유현이 네가?”
“형의 안전에 도움이 될 테니까. 내 기승수기도 하고.”
“고맙다. 피스야, 고맙습니다 해.”
– 꺄우웅.
인사도 참 잘해요.
“삐약이 너도 휴대폰 장만해 줄까?”
– 삐약!
삐약이가 크게 대답했다. 알아듣고 삐약거린 건 아닌 듯하지만. 아냐, 우리 삐약이도 은근 똑똑하다고.
TV에서는 밤늦게까지 계속해서 던전 관련 특별방송이 흘러나왔다. 앞으로의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 화면 밖으로까지 넘쳐흘렀다. 언젠가는 일상용품까지 던전산으로 대체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새로운 산업과 직업이 계속해서 나타날 거고, 모든 사람이 헌터는 아니어도 각성은 해서 인벤토리와 스킬을 가지게 되고.
분명 예전보다 더 좋아질 수 있을 것이다. 환경문제가 다수 해결된 것만 해도 어디냐. 다만 세상이 망해가는 도중이라서 곤란한 거지.
“사육장 잠깐 살펴볼 건데 갈래?”
TV를 끄며 옆에 앉아 있던 유현이에게 말했다. 당연히 그러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야행성 몬스터들도 있어서 사육장과 연결된 운동장은 아직 열려 있었다. 하얀 늑대 새끼들이 자기들끼리 뒹굴거리며 놀다가 내게 다가왔다.
– 캬응!
– 아르르!
별생각 없이 꼬리치다가 뒤늦게 유현이를 발견하곤 이를 드러낸다. 강아지들도 몬스터랍시고 제법 사납게 캬릉거렸다.
“괜찮아, 무서운 형 아니야.”
새끼 타조와 양은 잠들어 있었다. 송 실장님 조금만 더 찌르면 넘어올 거 같은데. 이름까지 지어 줬으면 끝 아니냐. 그날 나온 이름들 중 어떤 게 마음에 드냐고 결정하게 한 뒤 떠넘겨야지.
사육장을 살펴본 뒤 옥상정원으로 올라갔다. 호수 도마뱀은 옥상정원 연못 근처에 우리가 있었다. 넓적한 바위 위에 엎어져 자고 있는 도마뱀이 보였다.
“유현이 너, 오늘 기분 좋아 보이더라.”
“한국은 안전할 거라고 하잖아.”
동생 녀석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형은 계속 한국에 있을 거고.”
그리고 성현제는 해외로 간다고도 했지. 나 때문에 그간 세성 길드장이 꽤 거슬렸던 거 같은데 덕분에 더 기분이 풀린 듯싶었다. 내 눈도 많이 회복되었고.
그래, 역시 지금이 딱이다.
“요 며칠 참 좋았지. 추석도 즐겁게 잘 쇠었잖냐. 아직도 달이 큼직하다. 유현이 넌 소원 뭐 빌었냐?”
“지금 이대로, 형이랑 계속 함께 있고 싶다고. 우리 집에서.”
“나도 꼭 한가위만 같아라, 하고 빌었지. 예림이는 뭐 빌었을까.”
“박예림도 비슷할걸.”
“그럼 좋겠다.”
유현이 녀석이 그래도 예림이는 꽤 신경 써 준단 말이야. 예림이도 어떻게 보이는지 물어볼 걸 그랬나. 아냐, 그랬다가 그냥 박예림, 하고 끝나면 괜히 예림이가 상처받을지도 모른다. 예림이가 입으로는 한유현 아저씨밖에 몰라요, 하지만 막상 대놓고 별 관심 없단 소리 들으면 아쉽긴 할 테니까. 사람 마음이 그렇잖아.
“너희들이 행복하면 나도 진짜 더 바랄 게 없거든.”
“나도 형이랑만 같이 있으면 더 바라는 거 없어. 지금 충분히 행복해. …내가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불안을 완전히 떨쳐 버리지 못한 목소리로 유현이가 말했다.
“만약에, 다시 전처럼 형과 떨어져야 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럴 일 없어. 설사 강제로 떨어지게 되더라도 말이다, 우리 집은 그대로야. 언제든 돌아갈 수 있어.”
예전에는 우리 집 자체가 사라져 버렸었다. 단순한 장소만이 아닌, 그 의미 자체가. 하지만 지금은 아무리 먼 곳으로 끌려간다 해도 우리 집은 우리 집이다. 돌아갈 곳은 변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생겨도 다시 만나고 다시 함께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뭣보다 너도 나도 서로 같이 있고 싶잖냐. 그거면 충분하지!”
“응.”
유현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생각해 보면 애들 다 컸다고 해서 나가 살 이유는 없지 않나. 옛날에는 결혼해도 한집에 살고 그랬잖아. 대가족, 좋지 뭐. 집 크고 돈 있으면 뭐가 문제냐.
“그러니까-”
어, 음. 뭐라고 말하지. 지금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네가 더 강해질 필요가 있으니 흑룡의 심장을… 젠장. 그런 식으로 말하고 싶진 않았다. 약하면 행복한 삶을 유지할 자격도 없는 건가 뭐. 아니 애초에 충분히 강한데.
이런 식 말고, 음. 마땅한 변명도 떠오르지 않거니와 환한 동생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더더욱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요즘 기분 좋은 애한테 굳이 폭탄을 떨어뜨릴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시력이 완전히 회복하고 나서니까, 지금 말고 조금만 더 미루자.
대신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유현이 네 정신계에 들어가 볼까 하거든.”
“정신계?”
“어. 이게 일종의 정신계 스킬인데, 예전에 디아르마 잡으면서 얻은 거거든.”
“…잡으면서라니. 패륜아들 도움을 받았다고 하지 않았어?”
“당연히 도움받았지! 근데 그 전에 정신계로 내가 끌려갔었어. 얼굴 펴, 얼굴! 거기선 내가 선생님 스킬로 경험한 능력치를 쓸 수 있어서 오히려 한 방 먹여 줬다니까.”
그러기 전에 좀 구르긴 했다만, 어쨌든.
“게다가 거기선 죽지도 않아. 진짜가 아니니까. 그래서 내가… 유현아?”
뭐라고 핑계를 댈까 고민하는데 유현이가 돌연 활짝 웃었다. 무척이나 설레 하는 표정이었다.
“그럼 형이랑 싸워 볼 수 있는 거야? 안전하게?”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