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463
461화 팬입니다! (1)
[그럼 이 던전으로 할게요!]신입이 말했다. 유현이와 예림이의 훈련을 위해 나까지 포함해 셋이 다 같이 시간을 맞추기는 쉽지 않았다. 각자 일도 있고 무엇보다도 던전 공략을 시작하면 며칠씩 자리를 비워야 했다. 그래서 신입이 던전 한 곳에 한해서는 유현이와 예림이가 혼자 여기 들어올 수 있도록 해주기로 하였다.
[이 열쇠를 가지고 있으면 돼요. 허니와 달리 열쇠만 있으면 아무나 들어올 수 있으니까 잃어버리지 마세요! 또 허니와 다르게 혼자만 적용되고요.]네모 납작한 푸른 보석 같은 것이 유현이와 예림이에게 건네졌다. 그것을 받아드는 둘은 꽤 지쳐 보였다. 억제하고 있던 마력을 활성화하고 나서 다시 어린 혼돈과 한바탕했기 때문이었다.
“고마워, 신입아. 어르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뭐 필요한 건 없으세요? 뭐든 말씀만 하세요. 주전부리라도 좀 챙겨다 드릴까요?”
과외비도 안 받고 가르쳐 주시고. 그것도 스카이대생 정도도 아닌 세계 1위급 전공자시잖아. 우리 애들도 물론 잘났긴 하지만 어린 혼돈과 비교하면 전국 1등을 도맡아 하는 학생쯤 되겠지. 고등학생이면 그나마 낫고, 중학생 정도로 비칠지도 모른다.
“피곤하지는 않으시고요? 어깨라도 주물러 드릴까요.”
혼돈이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네 몸뚱이나 돌봐라. 운동해.”
“물론 해야죠. 아무렴요.”
“속도.”
“네?”
어린 혼돈의 손이 내 손목을 잡았다. 당기는 대로 상체를 숙였다. 작지만 단단한 손끝이 내 이마를 쓸어 톡톡 가볍게 두드렸다.
“첫째 너는 정이 너무 많아.”
“그렇게까지야…….”
“물론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보다는 좋아하는 것이 훨씬 낫다. 옳고 그른 것을 말하는 게 아니야. 미움이 커지면 누군가가 다치게 되니, 단순하게 봐도 손해 아니냐.”
수많은 세계를 봐오니 그렇더라, 하며 어리지만 어리지 않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러니 이상한 놈들까지 죄다 끌어안는 것은 말리지 않겠다만. 너도 챙겨라, 너도.”
“진짜로 운동할 거라니까요.”
“너를 먼저 소중히 여겨. 그게 어색하긴 하겠지. 주위 사람들이 신경 쓰지 않게 하려고, 그저 좋게만 비치고 싶어서, 나만 좀 힘들면 다 괜찮으니까. 그렇게 눌러 참는 게 습관화되어 버리는 거 흔한 일이다.”
“그게…….”
“하지만 그러다 지치고 병나고 결국 잘못된다면. 다 무슨 소용이겠냐.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더 의지해. 네가 그렇듯이 그 사람들도 널 잃고 싶진 않을 테니까. 약한 소리, 싫은 소리 좀 했다고 떠날 놈들이면 애초에 좋아해 줄 가치도 없고.”
…힘든 내색하는 거, 어렵긴 했다. 던전이고 뭐고 이런 거 없이 어릴 때부터 말이다.
“세상이요, 그렇게 만만치가 않다 보니 말입니다. 힘들단 소리 듣기 싫다, 정도면 차라리 양반이거든요. 그걸 약점으로 잡기도 해요.”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아니 그건 좀. 과격하시네.
“그런 것 때문에 누르다가 말라죽을 바엔 터뜨리고 같이 멱살 잡아. 그럼 최소한 죽지는 않을 거 아니냐.”
“말은 쉽죠.”
“행동은 의외로 더 쉬워. 안 참으란 소리가 아니다. 적당히 참으란 거지. 절반쯤 참으면 좋은 사람이지만 무조건 다 참으면, 음, 뭐냐.”
[호구요! 호구래요!]신입이 불쑥 끼어들었다.
“그래, 호랑이 입에 스스로 머리 바치는 꼴이지. 도망칠 곳이 마땅찮다고 해서 아예 머리 잘라먹으라 내줄 필요까지는 없다는 거다.”
“에이, 저도 그렇게까지 참진 않죠.”
“첫째 너만 참고 숨기면 될 일도?”
그, 어. 그게.
“홀몸이면 진짜 안 참는데요, 딸린 식구들이 많다 보니……. 그래도 제가 나름 사고도 많이 치고 한둘 망하게 만든 것도 아니고요.”
안 참고 많이 잡아다 족쳤는데. 뜯어내기도 많이 뜯어냈고. …생각해 보면 내 건 별로 없긴 했다만. 하지만 빌딩 있겠다 사육소 소장님 소리 듣겠다 충분히 가졌으니 말이다.
눈을 가느스름하게 뜬 혼돈이 결국 내 귀를 잡아 비틀었다. 아픕니다, 진짜로.
“너한테도 정을 줘.”
등짝까지 한 대 얻어맞았다. 어린 혼돈이 애들 보내라, 하고 손을 내젓고 신입이 다음에 또 봐요, 허니! 하고 인사했다. 이어 주변 환경이 바뀌었다.
“얼른 공략하고 집에 가서 쉬자. 피곤할 텐데 내가 몬스터 잡을까?”
총을 꺼내들자 유현이와 예림이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형. 형은 피스와 같이 있어.”
“그래요, 아저씨. 지금보다 두 배쯤 더 지쳐도 아저씨보단 제가 더 빠를걸요.”
– 크흥.
피스가 동의라도 하듯 몸을 키웠다. 여기 몬스터는 느린 편이라 나도 충분히 잡을 수 있는데. 은혜로 마나 보충받으며 멀리서 총만 쏘면 되니까.
예림이가 싹 정리하고 오겠다며 날아오르고 유현이가 나를 피스 등에 태웠다.
“어르신 말대로 형부터 챙겨. 우린 정말로 괜찮아.”
“알았어.”
고개를 끄덕이며 피스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나한테도 정을 주라고 해도.’
솔직히 그게, 쉽지 않았다. 나는 꽤 잘해 나가고 있다. 많은 걸 얻었고 바꾸기도 했다. 그러나 과거는 변하지 않으며 지워낼 수 없이 선명하였다.
무엇보다도 이미 한번 잃은 이상 내가 F급이 아니었더라면, 내가 약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만약 내가 없었더라면. 그런 생각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건… 역시 힘들었다. 나는 그냥 평범했고 어쩔 수 없었던 일이고 잘못이라 말해선 안 된다 해도.
‘최소한 동생을 데리고 오기 전에는…….’
어렵겠지. 그 전까지는 내가 그다지 좋아지지가 않을 것 같아서.
‘내가 새삼 부럽구만.’
던전 속의, 이제는 새로운 세계의 그 녀석은 다르겠지. 동생을 완벽하게 구해내고 화해도 하고. 거리낌 하나 없이 진짜 잘 살고 있겠다, 좋겠다, 역시 제대로 붙어서 몇 대 패고 왔어야 하는 건데.
“유현이 넌 이제 네가 싫지 않지? 어떤 너라도 말이야.”
동생이 눈을 깜박하며 나를 바라보더니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응. 형이 받아 줬으니까.”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그럴 테니까, 혹여라도 괜한 마음고생은 하지 마라.”
나는. 나도 언젠가는 마무리 지을 수 있겠지.
던전을 빠르게 공략하고 밖으로 나가자 휴대폰에 문자 몇 개가 쌓여 있었다.
[식사 중 돌연 점프를 합니다. 약 50cm에서 1m 15cm 높이입니다. 이상이 있는 행동입니까?]송 실장님 또 송이 때문에 연락하셨네. 밥 먹다가 갑자기 뛰어오르는 건 정상입니다. 맛있다고 하는 거예요. 무뚝뚝한 듯 성실한 초보 아빠였다.
“어때, 이 정도면 완벽하지? 머무실 곳 말이야.”
내 앞에 너른 방이 펼쳐져 있었다. 저걸 방이라고 해도 될까 싶지만, 일단은 방이었다.
“일단 꽃다발을 준비했는데, 역시 음식이 더 좋을까? 으으, 너무 설렌다. 가슴이 두근거려. 싫어하진 않겠지, 좋아했으면. 방이 너무 좁은 거 같아!”
“충분히 넓지 않나.”
“야생 햄스터의 행동 범위는 수 킬로미터라고! 그 작은 애들이 3km를 다니는데, 심지어 우리 금동이는 더 크잖아!”
도하민이 역시 너무 좁아, 하고 가슴을 쳤다. 우리 둘 앞의 금동이님 머무실 곳은 원래 상가용이었다. 근 스무 평짜리 탁 트인 너른 공간에 흙모래가 쫙 깔렸다. 골드 햄스터 던전 환경과 최대한 비슷하게 풀도 심고 작은 나무도 심고 바위에 인공 연못까지 만들어 놓은, 거대한 사육장을 두고 좁다니. 심지어 한쪽 벽면은 특수 유리라 채광도 훤히 잘 들었다. 냉난방 시설도 완비다.
“그 꽃도 던전 산이라며.”
“설치류 몬스터가 좋아하는 거라던데, 던전 환경이 다르니까! 역시 부족해, 너무 부족해. 왜 하필 아프리카지! 가지고 올 수 있는 게 거의 없잖아!”
금동이 던전 식물과 모래와 물을 가지고 오고 싶었는데, 하고 도하민이 울부짖었다. 하지만 다른 곳도 아닌 아프리카 던전에서 모래 퍼다 나르기는 쉽지 않았다. 그나마 식물 몇 종 정도만 금동이와 함께 들어올 예정이었다.
“걱정 마. 던전산 곤충이나 견과류에 마석가루 뿌려 주면 된대.”
“하지만 먹이 적응하기에는, 역시 원산지가, 환경이, 물이, 심지어 그 던전 평균 기온이나 계절의 변화나 밤낮 차이 등등도 모르는데─!”
누가 도하민 입 좀 막아 줬으면.
“몬스터는 튼튼해. D급 보스니 너보다도 튼튼하거든?”
“환경이 갑자기 바뀌면 스트레스 받는다고! 원거리 이동 중에 폐사하는 동물이 얼마나 많은데!”
“비행기 일등석일 거다.”
도하민이 또 기압차가 어쩌고 구시렁거렸다. D급이라니까, D급. 나보다도 튼튼하다. 템 없이 나와 싸우면 내가 진다. 우리 둘이 같이 덤벼도 우리가 진다고.
“하민 형이 햄스터를 많이 사랑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요…….”
노아도 살짝 질린 표정이었다. 햄스터가 아니라 무슨 십 년쯤 짝사랑하던 이상형이라도 만나러 가는 것 같았다.
“햄스터가 뭘 안다고 머리에 옷까지 새로 맞췄냐.”
“첫인상이 얼마나 중요한데.”
“…차라리 황금색 옷을 입지 그러냐. 같은 색이라고 좋아할지도 모르잖아.”
“헉! 그럴걸! 왜 이제 말해!”
도하민이 아차 하며 노아를 경계심 어린 눈길로 쳐다보았다.
“정말 미안하지만 금동이가 나한테 적응하기 전까진 금동이한테 접근하지 말아 줄래?”
“물론 그럴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노아가 해탈한 미소를 머금으며 끄덕거렸다. 아무렴 햄스터가 노아 씨를 동족 비슷하게 여기기라도 하겠냐. 수화한다고 해도 용이랑 쥐인데. 금동이 집을 좀 더 손보고 싶다고 징징거리는 도하민을 억지로 끌고 나왔다.
“그러는 너도 어째 얼굴이 반질반질하다?”
“나야, 뭐. 티 나냐?”
“머리도 했잖아. 옷도 쫙 빼입어 놓고 왜 나한테 남 말이야.”
“야, 나는 사람 만나러 가는 거고. 심지어 첫 해외 계약이잖아.”
햄스터랑 같냐.
“등급이 낮아도 몬스터에 해외에서 들여오는 거라서 검역 거쳐야 해.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도 알아서 올 텐데.”
“당연히 공항 가야지!”
그야 그렇겠지. 그래서 이렇게 노아 씨와 함께 데리러 온 거고.
“비행장 쪽에서 내려서 거기서 바로 검역 후 헌터협회로 가게 될 거야. 등록해야 하니까.”
노아 씨가 동행해 줄 거라는 말에 도하민이 또다시 경계 어린 눈빛을 했다.
“모자… 쓰지 않을래? 터번도 좋고.”
저놈 진짜. 하지만 착한 노아 씨는 도하민의 억지를 받아들여 주었다.
“죄송해요, 노아 씨. 사이비만 아니어도 그냥 적당한 상급 헌터 딸려 보내는 건데.”
다른 곳도 아닌 외국인의 출입이 잦은 공항이라 불안했다. 헌터 협회도 주요 테러 대상이었고.
“괜찮아요. 이곳 사람들을 지키는 게 제 일인걸요.”
노아 씨는 정말 천사라니까.
도하민에게 노아 씨를 붙여 주고 나도 공항으로 향했다. 유현이야 원래 동행하기로 했지만.
“예림이 너도 따라오게?”
예림이도 주차장에 도착해 있었다.
“네! 궁금하잖아요. 아저씨가 외모 관리할 정도로 팬이라는 헌터가.”
“…아니, 그런 거 아니라니까.”
굳이 말하려 하지 않았지만 유현이도 예림이도 내가 이상하리만치 관리에 열심인 걸 수상쩍어하다가 결국 알아내고 말았다. 차 옆에 서 있던 유현이가 부루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형은, 나 만나려고 그렇게 신경 쓴 적은 없었으면서.”
“가족이잖아, 가족! 매일 보는!”
“가족이라고 해도요. 아저씨 우리랑 외식하거나 놀러 나갈 때도 맨날 대충 다녔잖아요.”
“…가족끼린 괜찮지 않아?”
“아닌데요? 집에서면 모를까, 외출할 땐 나름 신경 쓰는데요?”
그, 그랬나? 하지만 유현이와 예림이는 뭘 걸치든 제대로 갖춰 입은 거 같아서.
“미안하다. 앞으론 나도 조심하마.”
“아니야, 형. 난 형이 편한 게 더 좋아.”
“…조금 전에 한 말과는 다르잖냐.”
“그러니까 남에게 신경 안 썼으면 좋겠어. 방송용까진 어쩔 수 없어도 개인적으로 보는데 왜 형이 관리를 해. 만약 그런 걸로 헛소리하는 놈이 있으면 내가 처리해 줄게.”
당장이라도, 하고 유현이가 덧붙였다. 어, 내가 남에게 과하게 잘 보이려 드는 게 싫다는 건가? 하긴 나도 유현이나 예림이가 그러면 좀 싫을 듯했다. 우리 애들은 원래도 잘났다고.
“개인적이라기엔 계약이 걸려 있잖아. 해외에서 오는데 좀, 음, 괜찮게 보이고 싶긴 하고.”
“형은 언제나 괜찮아. 멋있어.”
“고맙다.”
하지만 유현이는 내가 뭘 하든 다 좋다고 해서 말이야.
공항으로 향하자 그곳에는 문현아에 더해 성현제까지 버티고 있었다. 해외 상급 헌터가 특별한 계약을 위해 입국하는 것이다 보니 송 실장님의 모습까지 보였다.
“형님! 진짜 예쁘게 차려입고 왔네!”
“그렇게까진 아니고요……. 두 분은 왜 또 여기까지 오셨데요.”
“한유진 군의 첫사랑이라 하니 궁금해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뭐, 아닙니다!”
갑자기 왜 첫사랑이 되었냐고! 성현제의 말에 현아 씨가 씨익 눈매를 크게 휘며 웃었다.
“이 정도면 첫사랑 맞지. 아니면 두 번째? 응?”
“그냥 팬이라니까요, 팬. 유현아, 예림아, 아니라니까. 왜 그렇게 쳐다봐.”
그리고 설사 첫사랑이라고 해도 이렇게 몰려올 필요까지 있냐! 무슨 상관들이야,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