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503
501화 표면층 (1)
“그럼 한유진 헌터에게 맡기겠습니다.”
채터박스의 초대장이 내게 내밀어졌다. 어제 채터박스의 표식을 드러내고 그와 친분이 깊다는 언급을 한 뒤 조용히 말을 퍼뜨렸다. 내가 채터박스의 파티에 깊게 관련되어 있으며 그 파티가 그다지 안전하지 않다는 소문을. 또한 어차피 우승 상품은 한유진의 S급 헌터들이 차지하고 나머지는 이것저것 뜯기지나 않으면 다행일 거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흘리자 몇몇 헌터가 나를 찾아왔다. 파티의 안전성을 의심하는 자들이었다.
“제가 감당할 수 없을 듯합니다.”
초대장만으로도 수상쩍은데 증폭된 표식의 힘은 S급 헌터라도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S급이라고 해서 전부 간이 배 밖에 나온 것은 아니었다. 설사 자기 목숨은 아끼지 않는다더라도 지켜야 할 사람들이 걸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꺼림칙한 초대장을 안전하게 처리하고자 내게 찾아왔다. 무사히 돌려보내 준다고 해도 솔직히 어떻게 믿겠어. 나처럼 속사정 아는 것도, 다른 초월자가 보장해 준 것도 아닌데.
“걱정 마세요. 주인에게 잘 돌려주도록 하겠습니다.”
만면에 온화한 미소를 띠며 초대장을 잘 받아 챙겼다. 이걸로 세 개째. 내가 가지고 있던 것까지 포함하면 네 개였다. 한 개당 두 명 등록 가능하니 총 여덟 명.
‘넉넉하게 한두 개 더 얻고 싶은데.’
파티 참석자가 적으면 적을수록 더 유리하기도 하고. 특히 유능한 헌터는 안 갔으면 좋겠다. 손님을 보내고 유현이와 예림이에게 각각 초대장을 하나씩 건네주었다.
“일단 등록은 하지 말고 가지고 있어. 한 명씩 더 데리고 갈 수 있는데.”
“형이 안 가겠다면 아무나 상관없어.”
뒷말은 하지 않았지만 내가 간다면 당연히 나와 동행하겠다는 눈빛이다. 반면에 예림이는 고민에 빠져들었다.
“저도 아저씨랑 같이 가고 싶긴 하지만요, 제가 한유현보다 약한 건 사실이니까요. 물이 많은 곳이라면 자신 있는데.”
“난 성현제를 추천해 주고 싶어.”
속성도 잘 맞고 무엇보다 예림이가 안전할 테니까.
“아니면 노아 씨나. 중국 던전에서 잘 맞았다고 했었지?”
“네. 노아 오빠도 저도 비행이 가능하기도 하고요. 버프 쌓아서 멀리서 공격할 수도 있고, 물에 독을 섞을 수도 있겠죠. 다만 저 독 저항 템 등급이 낮아서요.”
“참, 이번에 얻은 A급 해독제야. 이거면 독 저항 아이템에 더해 충분히 막을 수 있을걸. 아니면 현아 씨도 괜찮지.”
사실 예림이는 웬만한 헌터와 다 궁합이 잘 맞았다. 유현이 빼고. 이 둘은 속성이 너무 상극이라.
“결이와 피스도 1인으로 취급되면 둘은 안 가는 게 나을까.”
내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결이가 날개를 쫘악 펼쳤다가 이내 힘없이 늘어뜨렸다. 웬일이지.
– 응, 아빠.
“…한결아? 혹시 어디 아프니?”
요정용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아니. 하지만 두 명씩 같이 들어가는 거면, 삼촌이 결이보다 더 나아. 만약에 결이도 가도 된다면…….
결이가 전신을 부르르 떨고는 입을 열었다.
– 그거랑 같이 갈래.
“어… 성현제와?”
– 응. 들어가자마자 아빠 찾아가면 되니까.
그것도 괜찮은 방법인 듯했다. 성현제가 받아들인다면 말이다. 결이는 아무런 도움도 못 될 테니 성현제는 혼자 들어가는 거나 마찬가지라 불리해지겠지. 이왕이면 거절해서 결이는 안전하게 남아 있었으면 싶지만.
아래로 내려가 식당 쪽으로 향했다. 거북이를 잡은 후 헌터들의 절반쯤은 육지로 나갔다. 다들 길드장이다 보니 복작한 작은 섬을 벗어나 조용히 연락을 주고받을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여기 저택으로는 그 인원을 다 수용하기 힘들었기에 오후 다섯 시까지 돌아와 주세요, 하고 보내주었다.
그래도 아직 제법 많은 수의 헌터가 남아 있었다. 박하율은 여전히 소식이 없었고. 오긴 온 건가.
식당에 있던 헌터 몇이 나를 보고 아는 척을 해왔다. 확실히 여태까지와는 태도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납치당하고 납치당하고 납치당하고……. 음, 아무튼 그동안 대부분의 상급 헌터는 물론 중급 헌터들까지 나를 가볍게 대했었지. 하지만 지금은 같은 사람으로 봐주는 기색이었다.
그렇다고 S급 수준이라는 건 아니고, 공략 팀원 정도쯤은 될까.
“뭔가 만들까? 먹고 싶은 거 있어?”
유현이의 말에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그냥 있는 거 먹으면 된다니까. 실력 있는 요리사들에게 부탁했다고.”
인건비도 만만찮게 들었다. 그래도 동생은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무척이나 너른 식당에는 여러 사람이 저마다 입에 맞는 음식을 가져다 점심을 먹고 있는 중이었다. 그중에는.
‘성현제도 있네.’
창가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었다. 잘나신 S급들이 득시글거리는 가운데에서도 그 혼자 유독 눈에 띈다. …혼자 앉아 있는 게 좀 청승맞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러니까 내 눈에는 말이다. 실제로야 감히 쉽게 접근을 못 하는 거겠지. 그래도 밥 혼자 먹으면 맛없지 않나.
그리고 송 실장님은 입구 부근의 벽에 서 있었다.
“식사 안 하세요?”
“했습니다.”
“앉아라도 계시지.”
“괜찮습니다.”
모임 주최자로서 마음이 아팠다. 쉬셔도 되는데.
“여기 앉아, 형. 뭐 먹을래?”
유현이가 의자를 빼주고 예림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스테이크 좀 구워 오시죠, 길드장님.”
유현이는 들은 척도 안 했다. 예림이가 불 놔뒀다 어디다 쓰나~ 하고 툴툴댔다. 그리곤 피스 앞에 쪼그리고 앉아 피스의 앞발을 붙잡는다.
“피스야, 너도 고기 정돈 구울 수 있지 않을까?”
– 크흥.
“같이 TV 출연하는 거야! 고양이, 아니 사자가 구워 주는 투플러스 한우 스테이크!”
피스가 탁 소리 나게 앞발을 빼곤 내가 앉은 자리 옆에 엎드렸다.
“내가 구워 줄까?”
“에이, 아저씨보다야 제가 더 잘 굽는걸요. 경력이 몇 년인데! 근데 스킬이랑 일반 불이랑은 맛이 달라요.”
“그래?”
“저도 전엔 잘 몰랐는데 마력 쓰고 마나 들어간 게 더 맛있더라고요. 그래서 요샌 물 따라 마실 때도 스킬 쓰잖아요. 연습도 할 겸.”
그런가. 마력에 더 민감해질수록 뭔가 다르게 느껴지는 걸지도 모른다. 아니면 예림이 입맛이 좀 특별하다든가. 유현이가 음식을 가지고 오겠다며 주방 쪽으로 들어간 직후였다. 돌연 식당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혹시나 싶어 성현제를 돌아보자 역시나였다.
“세성 길드장.”
S급 헌터 하나가 성현제가 앉아 있는 테이블 옆에 다가가 섰다. 성현제는 대답 대신 식빵 테두리를 길게 잘라내고 있었다. 서양인들이 많은 만큼 빵도 다양하게 준비해 놓았는데 저 식빵 특히 맛있었지.
“팝콘은 없어요? 팝콘용 옥수수라도요.”
예림이가 흥미진진해하며 말했다. 내 일일 때는 곤란했는데 남일 되니까 재밌네. 단순히 시비 거는 놈이냐 아니면 일방적으로 관계 끊긴 놈이냐.
“어차피 같은 S급 헌터인데 혼자 얼마나 잘났─”
성현제가 식빵 껍데기를 내밀었다. 금색 눈이 당황해하는 헌터를 물끄러미 올려다본다. 왜 받지 않느냐고 묻는 듯한 시선이었다. 그걸 받을 이유야 당연히 없었지만, 헌터의 손이 무심코 뻗어졌다. 뭐랄까, 받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성현제의 시선은.
그리고 이어 또 한 조각, 두 조각. 깔끔하게 떨어져 나간 식빵 테두리가 연이어 내밀어지고 헌터는 머뭇거리면서도 그걸 얌전히 받았다. 성현제는 그렇게 속살만 남은 식빵에 나이프로 잼을 발라 한입 베어 물었다.
정오의 햇살이 창으로 비쳐들고 색 옅은 머리칼이 반짝거린다. 거참, 저쪽만 딴 세상 같구만. 빵 껍데기를 들고 멍하니 선 헌터와 성현제 사이에 투명한 벽이라도 쳐진 것 같았다. 빵을 다시 한입 더 베어 먹고는 커피인지 차인지 잔을 들어 올린다. 상대방을 무시하는 모범적인 태도 베스트 사례집에 넣을 만한 모습이었다.
“국도 데웠어. 반찬 더 가져다줄까?”
그리고 우리 유현이도 옆에서 꽹과리를 치든 굿을 하든 깔끔하게 무시하는 데에 일가견이 있긴 하지. 리에트도 그런 면이 없잖아 있던데 태생 S급의 특징인가.
밥은 즉석밥을 데워 그릇에 옮긴 것이었다. 대부분의 음식은 1회용 진공포장 되어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음식에 허튼짓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유현이가 식탁을 차리는 사이 빵 껍데기 헌터의 표정이 서서히 일그러져 갔다.
“성현제!”
식당 입구 부근에 서 있던 송태원이 몸을 약간 긴장시켰다. 싸우려는 건가. 그래봤자 바로 깨질 텐데. 저 헌터가 먼저 시비를 걸었으니 손해배상 청구는 저쪽으로 해야지. 얼른 수첩을 꺼내어 헌터 이름을 적었다. 하지만 헌터는 쉽게 덤벼들지 못하고 이만 갈았다. 자기가 더 약하다는 사실을 잘 알다 못해 경험이라도 해본 모양이었다.
으드득, 하는 소리에 성현제가 고개를 약간 들어 헌터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곤 태연스럽게 입을 열었다.
“왜 들고만 있지.”
의아한 듯 말하고는 남은 빵을 마저 먹는다. 저거 설마, 먹으라고 준 거였냐. 자기는 안 먹을 빵 껍데기를? 내가 버리는 걸 네가 먹어라, 라니. 심지어 그게 당연하다는 듯, 비꼬는 기색 하나 없는 태도라 더욱 상대방을 낮춰보는 느낌이 들었다. 차라리 대놓고 욕을 하는 게 덜 기분 나쁘겠다.
송태원이 두 사람을 향해 조용히 걸음을 옮겨갔다. 그보다 앞서, 열이 받다 못해 부들부들 떨던 헌터가 빵 껍데기를 바닥에 내팽개치고 다른 테이블의 나이프를 집어 들었다. 저 망할, 청소는 누가 하라고.
그래도 무기는 꺼내지 않고 평범한 나이프를 성현제를 향해 내던진다. 저 정도야.
“…어?”
내 입에서 무심코 당황한 소리가 새어나왔다. 나 외에도 몇몇 사람이 헛숨을 삼켰다. 캉! 나이프가 벽에 반쯤 들이박히고 성현제의 뺨에 길게 붉은 선이 그어졌다.
‘…일부러, 안 피한 건가?’
당연히 그렇겠지? 저걸 못 피할 리가 없잖아. 나이프를 던전 헌터 또한 제풀에 놀라 뒷걸음질 쳤다. 그런 그의 어깨를 송태원이 붙잡았다.
“이 정도로 물러나 주십시오.”
“아니, 나는.”
“항의가 필요한 문제가 있다면 한국 각성자 관리실 또는 헌터협회로 정식으로 연락 부탁드리겠습니다.”
성현제를 힐끗 쳐다본 헌터가 송태원의 손을 떨쳐내곤 물러났다. 성현제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차를 마저 마시고 있었다.
“왜 안 피한 걸까요?”
예림이가 작게 말했다. 지금처럼 조용히 떨쳐내려고 그런 걸까. 하지만 일부러 상처를 입는 건 성현제답지가 않았다. 결국 송태원이 성현제를 지키듯 서고 성현제는 찻잔을 비운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리도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섰다.
“성현제에게 잠깐 갔다 올 테니까 망 좀 봐줘.”
유현이와 예림이에게 말하며 결이도 맡겼다. 초대장도 줘야 하고 또 표식에 대한 답도 들어야 했다. 휴대폰은 왜 부숴서. 다행히 성현제에게 주어진 객실이 있는 층은 조용했다. 혹여 누가 공격해 와도 건물이 덜 부서지게끔 가장 끝에 위치한 방으로 가 문을 두드렸다.
“성현제 씨.”
작게 불러 보았지만 대답이 없었다. 분명 방으로 올라간 거 같았는데. 다시 노크를 한 뒤 들어가서 기다리자 싶어 문을 열었다. 문은 잠겨 있지도 않았다. 안으로 들어…….
“……!”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내 눈으로 직접 본 장면인데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성현제가 쓰러져 있다.
아니, 그도 사람은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래도. 멍청히 섰다가 얼른 달려갔다.
“성현제 씨!”
살아는 있는 거지? 뺨에 난 상처를 제외하곤 부상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숨도 쉬고 있다. 누가 차에 독을 탔나? 일단 그의 몸을 당겨 끌어안았다. 힐러를 부르기 위해 휴대폰을 꺼내 드는데 성현제가 눈을 떴다. 아프다기보다는 무척이나 졸린 듯한 눈빛이었다.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말없이 눈을 깜박이던 그가 눈동자를 굴려 자신의 팔과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천천히.”
“예?”
“움직이는, 방법을. 되새기는 중이야.”
무, 무슨 소리야. 움직이는 방법이라니? 성현제가 느릿히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그리곤 나를 올려다보았다.
“걱정할 건 없다네.”
“사람이 쓰러졌는데 어떻게 걱정을 안 합니까.”
“그저.”
성현제의 무릎이 굽혀지고 마치 처음 두 다리로 일어서는 어린아이처럼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킨다.
“어르신이 알려 준 방법을 시험해 보았을 뿐이니.”
“…어린 혼돈이요? 대체 뭘 한 겁니까?”
비밀이라네, 하고 완전히 일어난 성현제가 미소 지었다. 크리스마스 던전의 그날 밤에 어르신이 뭔가 가르쳐 주기라도 한 걸까. 유현이와 예림이를 가르칠 때도 마나 다 소모시키고 탈진하게 만들었으니 그 비슷한 훈련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쓰러질 만하지만.
“댁네 길드에서 하지, 위험하잖습니까.”
“위험할 수 있다면 그것도 좋겠지.”
조심성 없는 듯 가벼운 대답이었지만 절로 입이 씁쓸해졌다. 그는 죽지 못한다. 그래도 굳이 여기서 이럴 건 없잖아. 죽지는 않아도 다치기는 하니까.
“제가 모임 주최자라서요. 안전 보장은 안 해주지만 그래도 조심은 하십쇼.”
“명심하겠네.”
찝찝한 기분을 밀어 넣고 채터박스의 초대장을 꺼내들었다. 성현제의 시선이 내 손에 들린 보석에 가 닿았다.
수능 외전 (1)
“마르야! 바다 간다!”
– 뀨르르!
“바다는 물이 짜! 그리고 엄청 커! 중국 호수도 크긴 컸지만.”
예림이가 물방울 속에 몸을 반쯤 담고 둥둥 떠 있는 마르의 앞 지느러미를 잡고는 악수하듯 흔들었다. 춤이라도 추듯 둘이서 신나게 빙글빙글 돈다.
“더 챙길 건 없어?”
유현이가 짐 가방을 들어 올리며 내게 물었다.
“응. 어차피 호텔에 웬만한 건 다 있으니까. 옷이랑 애들 물건만 챙겨 가면 돼.”
돈이 좋긴 좋지. 필요한 거 있으면 여행지에서 바로 사도 되고. 하지만 몬스터 용품은 파는 곳은 없기에 애들 짐이 제일 많았다. 애들이 여럿이라 오늘은 SUV 차량이 대기하고 있었다. 차 옆으로 노아의 모습이 보였다.
“노아 씨는 제주도였죠.”
“네. 시험 끝나면 부산으로 가도 될까요? 그리 멀진 않은 거 같아서요.”
“물론 괜찮죠. 호텔 주소 알려 드릴게요.”
노아 씨야 전용화해 날아오면 금방일 터였다. 다 같이 차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당일 오전 5시까지 해당 지역에 도착하면 된다고 했지만 전날 오후에 미리 출발하기로 했다. 모임 준비로 바쁘지만 않았으면 스케줄 맞춰서 한 이삼 일 전에 갔을 텐데.
‘또 놀러갈 수 있겠지.’
언젠가는 여유롭게.
공항에서는 송 실장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최근엔 잠도 잘 못 주무신다더니 많이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안 나오셔도 된다니까요.”
“아닙니다. 제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자요, 이것 좀 드세요.”
송 실장님에게 다가가 슬쩍 뿌리열매를 찔러주었다. 다름 아닌 스태미너 포션의 재료였다.
“안 됩니다.”
“에이, 아직 상품 나오지도 않았고 가격도 없는 건데. 내일을 위해서라도 보충 좀 하셔야죠.”
“하루 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습니다.”
“저 은혜 껐어요, 껐습니다?”
거절하는 송 실장님의 주머니에 뿌리열매를 억지로 밀어 넣었다. 힘주면 손목 뚝 부러질 거라는 소리에 송 실장님은 제대로 반항하지 못했다. 지금처럼 피곤해서야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F급을 세심하게 다루기도 힘들겠지.
“저희 집에 수능 칠 사람도 없거든요. 그러니 이 정도야 괜찮잖아요. 기운 차리셔서 내일 완벽하게 끝마쳐야죠. 그냥 간식거리 쥐어주는 거다~ 라고 생각하세요. 캔 커피라거나.”
거듭된 설득에 송 실장님이 작게 감사합니다, 하고 말했다. 어휴, 스태미너 포션은 어떻게 쥐어드린담. 어린 기승수 보호자를 위한 특별 케어 프로그램이라고 우겨볼까.
“미리 전달해 드린 주의사항을 반드시 지켜 주시고 해당 지역 담당자의 지시에 따라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송 실장님의 배웅을 받으며 비행기에 올라탔다. 이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해공항에 곧 도착한다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진짜 금방이네.”
“아저씬 부산 가본 적 있어요?”
마르에게 간식을 먹이면서 예림이가 물었다.
“아니. 국내선도 처음 타 봐. 고등학교 땐 수학여행을 안 갔고 중학교 땐 전세버스 탔지. 유현이 넌 일 때문에 간 적 있었지?”
“응. 던전 공략 때문에.”
S급 헌터들은 서울에 모여 있지만 다른 지역에도 당연히 상급 던전이 등장했다. 때문에 해당 지역 헌터들이 처리하기 힘든 등급의 던전은 S급 헌터들이 대신 맡아 주었다.
“수도권 외 던전 공략은 보통 헬기로 이동해서 공략 직후 바로 돌아와. 항속거리 밖이면 전용기를 쓰기도 하고.”
“피곤하겠다.”
“그래도 대부분의 헌터는 타 지역에서 휴식하는 것보단 길드로 돌아오는 걸 선호하니까.”
하기야 해외 출장이나 미국, 중국처럼 땅덩어리가 더럽게 넓지 않고서야 길드에서 쉬는 게 몸도 마음도 편할 것이다. 전투 직후에는 더더욱 말이다. 유현이는 집 밖에선 잘 못 자기도 하고.
그사이 비행기가 착륙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준비된 차량이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헌터 협회 부산지부 대학수학능력시험 담당 정우민입니다.”
“조병찬입니다.”
협회 직원들이 고개를 꾸벅 숙여왔다. 유현이와 예림이 앞에서 긴장하고 위축된 티가 팍팍 났지만 호기심이 더 짙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내 발치에 선 피스와 호랑이를 연신 힐끔거리고 물방울 속의 마르와 내 품의 삐약이, 벨라레, 어깨의 한결이도 틈틈이 훔쳐보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한유현 헌터와 박예림 헌터께서는 내일 오전 6시 30분까지 헌터 협회 부산지부로 와주시면 됩니다. 혹시 한유진 소장님께 경호 인력이 필요할까요?”
“아뇨, 피스가 있으니 괜찮습니다.”
여차 싶으면 애들 데리고 서랍 속으로 피신해도 된다.
“예, 알겠습니다.”
“저기, 혹시 괜찮으시다면 개인적인 질문을 한 가지 해도 되겠습니까?”
정우민이 물어왔다.
“네, 괜찮아요.”
“부산에도 기승수 샵이 들어오겠지요? 언제쯤으로 예정하고 계신가요.”
어… 생각 안 해봤는데. 하지만 기대에 찬 눈빛을 실망시키고 싶진 않았다. 지점 낼 예정이 있기야 있었고.
“아직 확정은 되지 않았습니다만 올해 안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빨리 나왔으면 좋겠네요! 온라인 주문이 되긴 하지만 직접 보고 사는 건 또 다르니까요.”
그러면서 피스 인형이 너무 귀엽다며 더 다양한 상품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싱글거린다. 우리 피스, 인기가 많구나.
차를 타고 해운대 쪽 호텔로 향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지 싶었는데 호텔 하나를 통으로 빌렸다. 공무라서 길드 비용처리 된다나. 세금이 없는 건 S급 헌터 한정이라 해연 길드 자체야 물론 세금 납부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런 걸 비용으로 넣기엔 좀… 싶지만 S급 헌터 둘을 부려먹는 셈이니까.
“지금 바다 가도 돼요?”
“짐은 내려놓고. 저녁도 먹어야지.”
흥분한 예림이를 달래면서 객실로 올라갔다. 벽 가득한 유리창 너머로 밤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마르야, 저게 바다야!”
– 뀨우.
“시커멓게만 보이지만.”
삐약이가 소파에 앉고 벨라레가 리모컨을 가져다 바쳤다. TV가 켜지자마자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요즘 TV에서 자주 보이시네.
[던전 브레이커 시 긴급 신고 번호는─]송 실장님이 각 지역별 배치되는 S급 헌터 안내와 비상시 대피 요령 등을 차분하게 말해 주었다.
“송 실장님 연달아 방송 출연을 해서인가 그래도 조금 능숙해지신 듯하네.”
“저것도 잠시래요. 작년 수능 때도 저러셨는데, 올해 추석은 엄청 딱딱했었잖아요. 설 때도 그랬고요.”
“매번 봤어?”
“그야 잘생기긴 했잖아요. 반에 송 실장님 팬인 애들 있어서 영상 보여 주고 다니기도 해요. 개인 촬영 사진도 돌리고. 다른 반엔 송 실장님 쫓아다니다가 혼난 애도 있어요. 위험하다고. 엄청 무서웠었다는데 지금은 딱 한 번만 더 혼나 보고 싶다나요.”
송 실장님 인기 많네. 저녁 먹고 해변으로 나갔다. 예림이와 마르는 곧장 바다를 향해 달려갔다.
“너무 멀리 가진 말고!”
“네!”
– 뀨르!
첨벙, 첨벙. 둘 다 거침없이 물에 뛰어들었다. 날이 쌀쌀한 만큼 수영하는 사람은 당연히 없었다. 그래도 해변을 따라 산책하는 사람은 제법 눈에 띄었다.
– 컁, 크앙!
모래사장을 겅중겅중 달리던 호랑이가 피스 앞에 납죽 엎드렸다. 엉덩이는 치켜든 채로 신나게 꼬리를 흔들다가 데굴, 굴러 배를 보여 주며 등을 비비적거린다. 또 발딱 일어서 같이 놀자고 폴짝폴짝 엎드렸다 섰다 반복한다.
– 갸르르르.
– 크흥.
피스가 조금 귀찮다는 듯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러지 말고 가서 같이 놀아.”
그래도 랑이가 영 싫은 건 아니었던지 피스도 잠깐 머뭇했다가 앞으로 달려 나갔다. 랑이가 신나하며 그 옆으로 같이 뛰면서 피스에게 툭툭 머리를 부딪쳤다. 앞발을 들어 엉기고 아프지 않게 무는 척하며 달라붙는 호랑이를 받아 주는 피스의 몸짓이 좀 어색했다.
‘생각해 보니 피스는 자기와 비슷한 친구와 놀아 본 적이 없구나.’
삐약이와 벨라레는 물론이요 꽤 오래 함께 지냈던 코메트도 종이 전혀 달랐다. 몸뚱이는 같은 사자인 블루도 날아다니는 걸 더 좋아했지. 머리는 새였고. 그나마 늑대들이 있었지만 그 녀석들은 피스를 꺼렸었다. 저렇게 어색하게나마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보니 랑이가 와줘서 잘됐다 싶어졌다.
– 뀨르륵!
“어딜! 윽, 짜다!”
예림이와 마르는 신나게 물놀이하는 중이었다. 삐약이와 벨라레는 모래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삐약이가 날개로 토닥토닥 모래를 쌓으려 했지만.
– 캬앙!
신나게 뛰던 호랑이의 뒷발에 조금 쌓인 모래가 콱 밟혀 무너졌다.
– 삐약!
랑이는 삐약이의 항의를 듣지 못하고 피스를 쫓아 저만치 달려 나갔다. 삐약이가 다시 모래를 모으자 벨라레가 몸으로 둥글게 감싸 아랫부분을 지탱해 주었다.
다들 잘 노는구나. 보고 있자니 하루라도 빨리 무해의 왕의 서랍 장악력을 높이고 싶어졌다. …하지만 명우의 말을 반은, 아니 한 90퍼센트는 알아듣기 힘들었다. 몸으로 때우는 게 최고라고 해서 틈틈이 연습은 하고 있는데 말이야. 요샌 바쁘기도 해서.
“춥지는 않아?”
나와 나란히 선 동생이 말했다. 결이도 내 목덜미에 앞발을 대었다.
“이 정도야 괜찮아. 우리도 좀 걸을까.”
너무 멀리는 못 가지만. 혹 랑이가 사고 치려 하면 피스가 잘 막아 주겠지만 그래도 가까이 있는 편이 안심되었다. 근처에 사람도 있… 많아서. 어느새 우리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한가득 모여들고 있었다. 그, 음. 새끼 몬스터들이 신기하긴 하겠지.
“가까이 가시면 안 됩니다.”
호텔에 먼저 와서 대기하고 있던 해연 헌터들과 협회 부산지부 직원들 몇이 나와서 접근하려 드는 사람들을 막아 주었다. 여러 번 겪은 일이지만 매번 좀 부끄러웠다.
“이거 너무 오래 나와 있으면 민폐겠는데.”
“괜찮아. 도와주러 온 거기도 하고.”
그건 그렇지만. 여름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피스야아!”
누군가 피스를 크게 외쳐 불렀다. 사랑해! 하는 소리도 들려왔다. 우리 피스가 많이 귀엽긴 하죠. 유현이와 예림이는 물론, 내 이름도 조금, 귀에 들어왔다. 역시 쪽팔려. 이런 건 영원히 익숙해질 것 같지가 않아.
“거대 마르!”
촤아아-! 아까부터 물로 이것저것 만들어 보던 예림이가 거의 10미터 가까이 커다랗게 마르의 형상을 만들어 냈다. 그리곤 쩌저저적- 그대로 얼린다. 와아, 하는 탄성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좀 찌그러지고 단순화되었긴 하지만 제법 잘 만들어졌다.
“어때요, 아저씨!”
“멋있어!”
그리고 거대 하트와 거대 피스와 거대 삐약이, 거대 바니베어 등등이 해변을 따라 줄줄이 늘어서기 시작했다. 아니, 나는 안 돼. 나는 만들지 마!
“아, 정말요? TV에 나왔어요?”
[네, HBS에서 내내 수능 관련 방송 하고 있거든요.]헌터 전문 채널인데 수능으로 S급 헌터들이 출장 나갔다 보니 관련 내용을 중점으로 방송 중인 모양이었다. 언제 카메라도 왔었지.
“거긴 어때요? 노아 씨 제주도는 처음이랬죠?”
[여기도 바다가 잘 보이는 호텔이에요. …민의 형이 조금 시끄럽기는 해요.]노아가 작게 말했다. 노아 씨는 한국이 낯설었고 또 김민의가 제한적이나마 S급이었기에 두 사람이 같이 제주도로 향했다. 예림이 무기 업그레이드 마무리 작업만 아니었으면 명우도 이쪽이든 저쪽이든 함께 왔을 텐데.
“귀찮으면 수능 끝나자마자 버리고 와요.”
민의 녀석, 많이 시끄러웠나 보다. 착한 노아 씨가 단칼에 버리겠다고 하다니.
“맥주 맛있어요?”
예림이가 물을 참방거리며 물었다.
“맛없어.”
“에에이. 근데 왜 마셔요.”
야외 온천도 온천의 바도 원래는 문 닫았을 시간이지만 특별히 열어 주었다. 예림이가 저 팥빙수요, 하고 주문했다.
“일하러 온 거지만 좋긴 좋다. 역시 맥주는 별로야?”
유현이 잔이 거의 비질 않았다. 동생이 고개를 약간 기울였다.
“사실 다른 술도 맛은 잘 모르겠어.”
“그다지 맛있진 않지. 소주는 좀 달긴 한데.”
“그래도 형이랑 마시는 건 좋아.”
“나도 당연히 좋다.”
맨날 이러고 살면 얼마나 좋겠냐. 예전에는 그럴 돈이 없었고 지금은 돈은 있는데 여유가 없었다.
“래쉬가드 새로 샀어야 했는데. 역시 작잖아, 그거.”
“괜찮아.”
“내년에는 맞는 걸로 사자.”
또 바다에 놀러 갈 날이 있겠지. 이왕이면 매년, 계속해서 쭉. 다음번엔 여기 없는 사람들도 다 같이 가면 더 즐겁지 않을까. …송 실장님 빼고 말이다. 송 실장님은 피곤하시겠지. 그래도 조금쯤은 즐거우실지도 모른다. 그때쯤에는.
성현제에게도 전화를 걸어 볼까 하다가 관뒀다. 뭐, 잘 있겠지. 클로이 씨와 같이 있어서 받기 곤란할 수도 있고.
“조심해서 다녀와라.”
“네, 다녀오겠습니다!”
“응, 갔다 올게. 형은 좀 더 자.”
– 끼앙!
예림이와 유현이, 그리고 피스까지. 아침 일찍 호텔을 나섰다. 같이 나가겠다고 했지만 말리는 바람에 문 앞까지만 애들을 배웅하곤 다시 침대 위에 늘어졌다. 커다란 창 너머로 보이는 바다가 불그레하게 물들어 있다. 예쁘네.
“하늘도 바다도 정말 예쁘다.”
– 맛있을 거 같아.
“배고파? 룸서비스 시켜 줄까?”
결이가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삐약이와 벨라레는 아직 꿈나라였고 호랑이는 졸린 눈으로 피스가 나간 문 앞에 앉아 있다가 결국 거기서 몸을 말고 다시 잠들었다. 나도 한 시간쯤 더 깜박 잠들었다가 깨어나 TV를 켰다.
– 으으.
TV가 켜지자마자 결이가 못 볼 꼴을 봤다는 듯 진저리쳤다. 헌터 채널에서 성현제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저 인간은 왜 화면 빨도 잘 받냐.”
– 아침부터 짜증 나.
온화하게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선 헌터 협회 광주 지부 직원들과 인사를 나눈다. 지금 몇 시지, 일곱 시 좀 넘었나. 아직 수능까지 한 시간쯤 남았네.
[수험생 여러분, 그동안의 노력이 좋은 결실을 맺길 바랍니다.]평범한 응원 메시지였지만 너무 멀쩡해 보여서 살짝 소름이 돋았다. 일반인들에게는 저게 세성 길드장의 평소 이미지겠지만. 이어 문현아의 모습도 나왔다. 어느 학교 앞에 서 있는 그녀를 향해 일찍 도착한 수험생들이 환호를 보내었다.
원래 상급 헌터들은 수험생의 컨디션을 우려해 던전이 터지지 않는 한 수험장 근처에 접근해선 안 되지만, 응원 신청을 할 경우는 예외였다. 혹여 항의가 들어올 것을 대비해 해당 수험장에 배정된 학생이나 학부모 중 단 한 명이라도 거부할 경우 신청할 수 없다는 까다로운 조건이었지만 경쟁률은 높았다.
이유야 당연히 안전이었다. S급 헌터가 근처에서 무료로 지켜 주겠다는데 싫어할 사람은 거의 없지.
[그래, 시험 잘 보렴.]현아 씨가 평소보다 훨씬 다정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사랑해요!] [저 진짜 시험 잘 쳐서요, 언니 길드 사무직으로라도 들어가고 싶어요!]현아 씨 보려고 일부러 일찍 나오기라도 했는지 수험장에 들어가지 않고 머물러 있는 학생들이 여럿이었다. 현아 씨가 웃으며 들어가라 말했다.
[날 추워요. 얼른 들어가야지. 손 좀 봐, 벌써 빨갛네.]네! 하고 대답은 잘했지만 움직이는 애들은 별로 없었다. 애들아, 들어가야지. 다른 수험장 광경이 몇 차례 스쳐 지나가고 예림이도 TV에 나왔다.
[언니 오빠들, 힘내세요!]귀엽기도 하지. 박민규도 짤막한 응원 메시지를 보냈지만 유현이는 나오지 않았다. 내 동생이, 나한테는 말을 정말 예쁘게 잘 하는데… 안 나올 만하기는 하지. 노아 씨도 촬영은 거절한 모양이었다. 대신 김민의가 응원합니다! 하고 까불거렸다.
[한국의 헌터들은 최선을 다해 수험생 여러분의 안전을 지켜 드릴 것입니다. 그러니 안심하시고 원하시는 결과를 얻어 가시기를 바랍니다.]송 실장님 이번에는 좀 딱딱하셨다. 서울의 헌터 협회를 배경으로 한 송태원의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S급 헌터들의 수능 응원이 끝이 났다. 송 실장님 부분은 전날 저녁에 방송된 거 다시 틀어 준 것이지만. 사실 당일 아침에 응원해 봐야 몇 명이나 보겠어.
이제 수능 시작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룸서비스를 시켜 아침을 먹으면서 TV에 간간히 비춰 주는 아는 얼굴들을 지켜보았다.
“어, 유현이다.”
유현이는 예림이와 달리 수험장에 가지 않고 헌터협회 부산 지부에서 대기 중이었다. 정말 조각상 같구나. 잘생겨서이기도 했지만 앉은 자세에서 미동 하나 없다. 아래 자막으론 모 수험장으로 향하던 수험생, 경찰의 도움을 받아 등의 해프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항상 있지, 저런 일.
유현이 모습이 사라지고, 노아 씨, 앗!
[사고로 인해 길이 막히자 노아 루히르 헌터가 수험장으로 향하는 버스를 들어 옮겨 주고 있습니다.]화면에 와어이로 휘감긴 버스를 금색 용이 들어 올리는 모습이 비쳐졌다. 가볍게 버스를 들고 날아 오른 노아 씨가 막힌 차들과 사고 현장을 지나쳐 다시 버스를 내려놓았다. 이어 인간 모습으로 돌아가 사고 현장을 정리하는 것을 도와준다.
상급 헌터들 몸값이 워낙 비싸서 문제지 나서기만 하면 견인차 불러오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정리가 가능했다. 특히 S급쯤 되면 대형 트럭이 쓰러져 있다고 해도 가볍게 일으켜 세워 옆으로 치울 수 있으니까.
‘그래서 벌금 대신 봉사활동도 많이 시키지.’
헌터들은 싫어했지만. 그 밖의 자잘한 사고가 있었지만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은 채 드디어 수능이 시작되었다. 부디 무사히 잘 끝나기를.
수능 외전 (2)
수능의 마지막 종소리가 교정 너머까지 울려 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험생들이 각양각색의 표정들을 하고서 우르르 몰려나온다. 미련이 남기도 하고 홀가분해지기도 하겠지만 큰 짐 하나 내려놓았다는 점은 다들 비슷할 것이었다.
송태원 또한 내내 굳어 있던 얼굴이 조금쯤이나마 부드럽게 풀어졌다. 각 지역에 나가 있는 S급 헌터들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이제 다들 무사히 귀환하기만 하면 한시름 덜 수 있었다.
“식사하러 가시죠. 아침부터 커피 한잔 외엔 아무것도 드시지 않았잖습니까.”
각성자 관리실 헌터가 말했다. 송태원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먼저 가봐야 할 곳이 있습니다.”
송태원은 각관실 차량을 몰고 기승수 사육소로 향했다. 사육소장은 자리를 비웠지만 남아 있던 직원이 그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걱정 마세요. 소록이와 잘 놀고 있었어요.”
새끼 양이 그동안 잘 지냈냐는 송태원의 물음에 직원이 웃으며 대답했다.
“역시 사육소가 더 편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친구도 있고요.”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송 실장님, 양은 의외로 고집이 센 동물이랍니다. 몬스터니 다를 수도 있겠지만 송이도 싫은 건 안 해요.”
“조금, 그런 편이긴 했습니다만.”
“거기에 송이는 겁도 없어서요, 송 실장님과 함께 가기 싫었다면 가출이라도 했을걸요.”
“…다행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송태원은 새끼 양이 왜 자신을 따라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직원은 송이 우리의 열쇠를 꺼내 주곤 늑대들을 들여보내 놓겠다며 자리를 떠났다. 송태원은 이제는 꽤 익숙해진 길을 따라 사육실로 들어섰다. 우리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자신의 기척을 눈치챘는지 타닥타닥 바닥을 딛는 작은 발굽소리가 울려 퍼졌다.
잠금장치에 키를 대고 비밀번호를 눌러 문을 열자, 문 바로 앞에 서 있던 까맣고 작은 양이 짤막한 꼬리를 흔들었다.
– 매앵.
폴짝폴짝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고는 앞발을 들어 송태원의 바지자락을 긁는다. 송태원은 새끼 양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잘 지냈습니까.”
– 매애.
“앞으로도 또 이런 경우가 있을 겁니다.”
사람 말을 알아들을 리 만무했지만, 그래도 말했다.
“저는 일이 우선입니다. 갑자기 나가야 할 때도 있고, 며칠씩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더 오래, 영영.”
새끼 양이 쓰다듬어 달라는 듯 머리를 들이밀었다. 송태원은 그사이 능숙해진 손놀림으로 송이의 머리와 목을 쓰다듬고 간지러울 부분을 긁어 주었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기분을, 소중한 무언가가 생겨나는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알기에 거부하는 것이고 거부할 수가 있었다.
“…저는 강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강하게 스스로를 묶어 놓아야만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는 묵묵히 송태원을 지켜왔다.
하지만 그의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정체 모를 불안감과 위화감이 점점 선명해지는 지금은. 도리어 더 흔들리고 있었다. 만약 그가 더는 스스로를 억누르지 못하고 가장 강한 헌터마저 삼키는 괴물이 된다면.
“어린 동물은 쉽게 잊는다고 들었습니다.”
송태원은 새끼 양을 품에 안고 일어섰다. 기다렸다는 듯이 송이가 넥타이를 잘근잘근 씹기 시작했다.
“그러니 다행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미련은 있었다. 어린 시절의 희미한 기억이 남게 되지는 않을까. 아주 가끔 흐릿하게 떠올리는 작은 파편 정도로. 잊히는 편이 낫다고,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품 안의 작은 온기를 느끼며 송태원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갔다.
“며칠 뒤에 다시 잠시 자리를 비우게 될 겁니다.”
일본에서 S급 헌터들이 모이게 된다. 다녀오고 나면 슬슬 새 차를 구해야 하지 싶었다. 송이를 데리곤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었으니까. 그리고 또… 별다른 일 없이 무사히 시간이 흐르게 되면 이사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정말로 만에 하나 한국이 이대로 계속 안정화되면 좀 더 외곽으로, 집은 작아도 마당이 큰 곳으로. 송태원은 무심코 그 풍경을 떠올리다가 급히 머릿속에서 밀어냈다. 죄책감이라도 느낀 듯 그의 입매가 딱딱하게 굳어졌다.
* * *
“이럴 땐 내가 길드장 아니라서 다행이다!”
박예림이 회전의자에 앉아 빙그르 돌며 말했다. 그 옆 책상에서 한유현이 각성자 관리실에 보낼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길드장이 아니더라도 단독으로 왔다면 작성해야 해.”
“아, 그럼 미성년자라 다행이다~ 참, 한유현은 작년에도 보고서 썼겠구나.”
박예림이 떠들거나 말거나 한유현은 키보드 위로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였다. 박예림은 다시 빙그르 돌았다가 의자를 당겨 기다란 책상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괴었다. 그다지 좋지 못한 자세로 한유현을 빤히 쳐다보다가 다시 입을 연다.
“야, 한유현.”
대답도 돌아보는 시선도 없었다.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만 리듬감 있게 이어졌다. 하지만 듣고 있다는 걸 알기에 박예림은 아랑곳없이 계속 말했다.
“난 사실 네가 얼마나 많이 다른지 모르겠어. 아저씨 없으면 무뚝뚝하긴 한데 그냥 그뿐이잖아. 그러니까, 나도 좀 더 자세히 알아야 할 거 같거든. 아저씨가 아예 없는? 한유현에 대해서.”
한유현은 여느 사람과는 다르다고 했다. 태생 S급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하지만 박예림은 한유현은 물론이요, 성현제와 리에트도 크게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없었다. 리에트는 노아에게는 나쁜 보호자긴 했지만 시원시원하고 강한 언니였다. 성현제는 좀 이상하고 위험한 느낌이 들긴 했어도 아저씨에겐 잘해 주었다. 나름 재미있기도 했고.
“형이 없으면, 나는.”
한유현은 말을 고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게 있어 사람은, 능력이나 외모, 나이, 성별, 성격, 인종이나 사회적 위치도 전부 무의미해. 사람과 사람이 아무런 차이가 없어. 사람과 동물도, 사람과 나무나 바위도 마찬가지야.”
한유진을 통하지 않는다면 구분 자체가 불가능했다. 형태야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가 동그랗든 각이 지든 지나치는 이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과 비슷했다.
“굳이 구분을 한다면 쉽게 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정도겠지. 그 외의 무언가는 내게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어.”
키보드를 누르는 소리가 멈추었다. 한유현은 펜을 들어 화면에 사인을 했다.
“형이 없었다면 아마도 사람과 대화조차 하지 않았겠지. 굳이 말을 해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
대화라는 건 상대방을 타인과 구별되는 독립적인 개체로 인정해야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기껏해야 혼잣말이 될 뿐이다. 박예림이 눈썹을 기우뚱하게 찌푸렸다.
“어, 아저씨가 없었으면. 한유현은 그냥, 아무하고도 교류 안 하고, 그랬을 거란 거야?”
“각성 전까지 살아 있었다면. 보통은 꺼림칙하게 여기다 못해 누군가가 나를 죽이려 들었을 거야. 더 자라기 전에. 위험하니까. 무사히 각성했다면 그때부터는 태웠겠지. 뭐든지.”
남의 일을 대하듯 한유현이 담담히 말했다. 타인에게, 주위에 해를 입히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러한 의도 같은 것조차 없이, 숨을 쉬듯 당연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조건이 갖추어지면 불은 타오른다. 단지 그뿐이었다. 그저 당연한 현상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은 아니잖아.”
“형이 있으니까. 나는 형을 통해서 세상을 접하고 있어. 사람으로 느껴지는 한유현은 온전히 형이 만들어 낸 존재야. 형이 없는 나는 지금과 전혀 다른 존재가 되었겠지.”
“잘은 모르겠지만, 결국 뭐야. 한유현 넌 아저씨를 통해서만 날 본다는 이 말이지? 그냥 박예림이 아니라?”
어쩐지 서운하다며 입술을 툭 내미는 박예림을 한유현이 돌아보았다.
“맞아.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냥 박예림은 없어.”
“…뭐?”
“순수한 박예림은 갓 태어났을 때만 존재했을 테니까. 그 후엔 수많은 사람과 환경이 지금의 박예림을 만들어 냈겠지. 그리고 나 외의 사람들도 저마다 다양한 색안경을 끼고서 널 바라볼 거고.”
“어… 뭔가 철학적인 이야기 같은데?”
“단순한 사실이야. 단지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형에게만 영향을 받았을 뿐이지. 하지만 형은 수많은 외부 영향을 받은 존재이기에 나도 그럭저럭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고. 동시에 사람들이 자기 잣대로 나를 판단하기도 하지.”
사람의 형상을 하고 흉내를 내고 있으니. 평범한 사람처럼 마음을 주고받을 수도 있을 거라고 멋대로 착각하고서 접근해 온 자들도 있었다. 어린 나이만 보고 자신들이 익숙한 방식으로 대해 오기도 하였다. 자신들의 편견과 상식에 맞게 한유현을 만들어 내어 방송에서 떠들어 대고 기사를 내고.
박예림이 머리를 쥐어뜯었다. 방송 출연을 위해 다듬었던 머리스타일이 순식간에 헝클어졌다.
“…모르겠고 어쨌든! 나는 지금의 한유현이 마음에 들어. 그러니까, 좋다는 거지. 가족으로서. 다른 의미는 저얼대! 없이.”
“나도 형이 만들어 준 내가 좋아.”
한유현의 입술 위로 부드러운 미소가 맺혔다. 저런 모습을 보면 한유현이 여느 인간과 다르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울고 웃고 화내고, 전부 다 하는데. 지금처럼 무언가 가르쳐 주거나 설명해 줄 때의 한유현에게는 한유진의 모습도 분명 보였다. 평범하게 상냥한 사람의 모습이.
“그리고 한유진의 한유현은, 박예림이 귀찮고 거슬리고 이따금 짜증 나지만 믿을 수 있고 도움도 되고 대체로 무해하다고 생각해. 내 집에 있어도 괜찮아. 종합해 보면 호감이 있다는 거겠지.”
“…뭐?!”
아 네네, 하고 대충 듣고 있던 박예림이 마지막 말에 눈을 번쩍 떴다. 어느새 나타난 이린이 조금 불만스럽게 한유현의 손등을 앞발로 탁탁 쳤다.
“한유현 너……! 아저씨 말고 다른 사람을 좋아할 수도 있는 거였어?”
“형과는 완전히 달라. 나는 형이 만들어 준 음식도 좋아해.”
“어… 응. 사람 취급은 안 하는 건가? 그래도, 그래도! 어쨌든 아저씨 외의 사람 중에선 내가 처음 아니야?”
한유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좋은 감정이라는 게 있다고 할 만한 상대는.
“형 외에는 유일하게.”
“좋아해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기분은 괜찮네~ 참, 피스는?”
“형이 아이템 취급하지 말라고 해서 노력하는 중이야. 나름 나와 비슷하기는 하고.”
“…아저씨에겐 비밀로 해주마. 아무튼 한유현 너 좀 이상하긴 하다. 솔직히 잘 이해는 안 가. 사람이 그냥 다 똑같이 느껴진다는 것도 모르겠고.”
“이해가 안 가는 게 보통이겠지. 형도 나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했으니까.”
“가끔은 말이야, 내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도 된 기분이 들어.”
박예림이 책상 위에 길게 엎드리며 말했다. 던전과 각성자에 좀 적응이 되었다 싶었더니 더 이상한 것들이 줄줄이 튀어나왔다. 배구공이 시스템을 관리하고 한유진은 회귀를 했고 이 세계 사람이 아닌 다른 종족들도 득시글거리고.
“이런 거 없이 한유현은 평범한 인간이 아니야, 불 그 자체야 하면 응, 애도 아니고 다 커서까지 쯧쯧 싶었을 텐데.”
한유현 저거 만화책을 너무 많이 읽었네, 하고.
“아저씨는 분명 엄청 걱정하다 못해 날 안전하게 떼놓으려 들지도 모르니까 말한 적 없는데, 가끔 불안하기도 해.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적어도 박예림 넌 마지막까지 살아남겠지. 형이 어떻게든 널 지켜 주려 할 테니까.”
“…혼자 남기 싫은데, 그렇다고 죽기도 싫어. 아저씨한테는 절대로 비밀이다.”
박예림이 커다랗게 한숨을 내뱉었다. 지금의 세계가, 던전에 들어가는 일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각성하고 튼튼해지고 웬만한 위험은 아무렇지 않았으니까 괜찮았는데.
“요즘은 쪼-끔 걱정되긴 하거든. 만약에 말이야, 내가 도망쳐 버리면 어쩌지? 한유현 넌 아저씨 곁에 끝까지 남아 있을 거잖아. 나도 아저씨를 많이 좋아하긴 하는데, 근데 너처럼은, 안 될 거 같거든.”
무슨 일이 있더라도, 목숨조차 아끼지 않고. 정말로 많이 좋아하면 그게 되는 걸까. 박예림도 느끼고는 있었다. 한유진 없이 한유현이 살아갈 수조차 없을 거라는 사실을.
“나는 달라. 형을 좋아하는 것 이전에, 자연스럽고 당연한 결과야.”
한유현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저 태울 것을 잃은 불이 꺼질 뿐. 만약 한유진이 살아가라 했다면 그 말을 삼키고 태우며 버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짧은 유예일 뿐 결국은 사그라질 수밖에 없었다. 한유현은 그런 존재이기에.
“하지만 박예림 너는 도망쳐도 돼.”
“…아저씨를 버리고라도? 그런 거 싫어하지 않았어?”
“네가 쉽게 도망칠 거라곤 생각지 않아. 그때는 마지막의 마지막일 테니, 형도 그걸 원할 거야. 너는 계속 살아가.”
침묵이 내려앉았다. 박예림은 손가락 끝으로 책상을 조금 긁었다.
“혼자 남아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순 없을 거라고 생각한 적도 있어. 그러니까 또 혼자 남아도, 나는 다시 잘 살게 될지도 몰라.”
그럴지도 모른다. 많이 아파하고도 또다시 새롭게. 그래도.
“그래도 계속 이대로였으면 좋겠다아.”
일부러 밝게 띄워 올린 목소리에 한유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것이 다른 두 사람이었지만, 정반대의 속성에 타고난 본질조차도 달랐지만, 그래도 지금의 마음만큼은 똑같았다.
“나도 그래. 형이 건강에 좀 더 신경 쓴다면.”
“할아버지도 원래 등급 낮으셨다잖아. 아저씨 어떻게 S급 못 만드나?”
박예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보고서 다 쓴 거 맞지? 빨리 가자! 아저씨 보고 싶어졌어.”
한유현 또한 마찬가지였다. 둘은 서둘러 걸음을 옮겨갔다.
* * *
차가 호텔 입구 앞에 멈추어 섰다. 한유현과 박예림이 내리기가 무섭게 유리문 너머로 반가운 얼굴이 나타났다. 로비에서 내내 둘을 기다리고 있던 한유진이 더없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박예림이 먼저 문을 부술 듯 튀어나갔다.
“다녀왔습니다!”
한유현 또한 얼른 형에게로 다가갔다.
“별일 없었어?”
“응, 푹 쉬고 있었지. 어서 와, 둘 다!”
고생했다며 한유진이 두 사람을 향해 팔을 벌렸다. 박예림이 늘 그렇듯 한쪽 팔에 매달리고 한유현 또한 반대쪽에 바싹 붙었다. 둘을 양옆에 둔 한유진의 얼굴은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보는 사람조차 무심코 미소가 지어질 정도로.
“점심은 잘 챙겨 먹었고?”
“전 잘 먹었는데요, 한유현은 또 간편식 먹었대요.”
“유현아.”
“하지만 배달 도시락이었어. 형도 없고. 내가 만든 간편식이 영양적인 면에서도 더 나아.”
“아니 사람 공짜로 불러 놓고 왜 그딴 걸 주냐.”
“속지 마세요, 아저씨. 완전 고급 도시락이었는데.”
“박예림이 아무거나 잘 먹는 거야.”
한유진이 얼른 두 사람의 손을 각각 잡았다.
“유현아,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예림아, 한 번만 봐주자. 여기까지 와서 싸우면 안 돼.”
잡은 손을 크게 흔들며 한유진이 둘을 달랬다.
“노아 씨도 출발했대. 현아 씨도 여기 올 거라더라.”
내일 오전 비행기니까 저녁에 다 같이 놀자면서 활짝 웃는다. 한유현과 박예림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가득 피었다.
수능 외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