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51
51화 일단은 데이트 (2)
“저 하나 때문에 인원까지 보충하는 건 너무 부담스럽습니다. 괜한 폐를 끼치고 싶진 않아요.”
그보다는 세성 길드장인 성현제와 마주치기 싫은 마음이 더 크지만. 그 인간 자체도 꺼림칙하지만 무엇보다 지금 내 상태가 문제였다. 유현이도 형 좀 이상한데 소릴 했으니 성현제도 무언가 다른 점을 느낄 가능성이 컸다.
벽도마뱀 좀 쓰고 잡아떼면 그만이라지만 그래도 제 발로 위험한 놈 앞에 걸어갈 이유는 없잖은가.
“부담이라니요! 전혀 아니에요.”
강소영이 두 눈에 진심을 가득 담아 나를 똑바로 바라봐 왔다. 커다란 눈망울도 정말 예쁘다. 그야말로 사랑스러움이라는 단어를 형상화시킨 듯한 얼굴이었다. 이어 역시나 진심 어린 목소리로 외친다.
“제 아이를 키워 주실 분을 위한 일인걸요!”
…저 헛소리 얼마 전에도 들은 적이 있어. 또 듣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는 건 좀 아니죠. 다른 사람이 들으면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괜찮아요. 다들 그렇게 말하는걸요.”
와 씨, 뭐라고…….
“다들, 이요……?”
강소영이 귀엽게 고개를 끄덕인다.
“네. 현아 언니, 그러니까 브레이커 길드장님께서 몇 번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어느새 다 퍼져 버렸어요.”
젠장, 문현아! 다 퍼졌다니,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 동생 뒷말 하지 말랬더니 내 뒷말 하고 다녔냐!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는 게 더 뒷목 당겼다.
“그래도, 아이보다는 기승수라거나 몬스터, 마수 같은 말이 낫지 않습니까.”
“그건 너무 애정 없게 들리잖아요. 무엇보다 최상급 기승수라면 다시 구하기 힘든, 평생을 함께하게 될 파트너예요. 전 진짜 사랑을 담아 제 자식처럼 잘 돌봐줄 거예요.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리는걸요. 제 어린 드래곤은 얼마나 사랑스러울까요.”
그러면서 뺨까지 살짝 붉혔다. 그 심정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닌데, 그래도… 그래도…….
“그러니 부담 가질 필요 전혀 없으세요! 오히려 더 요구하셔도 괜찮습니다! 혹시 뭐 필요한 거 있으세요? 이래 봬도 저 모아 둔 돈 꽤 많거든요.”
거대 길드 소속 A급 헌터니까 당연히 많긴 많을 텐데, 진짜로 요구했다간 뭔가 어린애 삥 뜯는 나쁜 놈이 되어 버릴 것만 같다고. 열한 살이나 어린 애, 아니 여섯 살 어리구나. 아무튼 스물도 채 못 된 애잖아. 딱히 필요한 것도 없지만.
“아뇨, 괜찮아요. 필요한 거 없습니다.”
“그럼 일단은 정원 산책만 도와드릴게요.”
“아니, 그렇지만 이런 걸로 귀찮게 할 수는 없죠.”
“걱정 마세요. 다들 귀찮기는커녕 오히려 환영할 거예요. 그래도 신경 쓰이신다면 길드장님께 확실히 허락받겠습니다.”
하고는 바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끄응… 뭐, 어차피 유현이가 허락 안 할 테니 상관없나.
‘…피스랑 공원에 가고 싶기는 한데.’
어쩌지. 성현제가 길드에 없다면 괜찮을 것도 같은데.
“네, 길드장님! 네, 네.”
그사이 강소영은 성현제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길드장님께서 언제든지 와도 좋대요! 사람도 바로 보내 주시겠대요.”
“음, 지금 세성 길드장님께서 길드에 계신다고 하셨잖습니까. 혹시 마주칠 확률이 높을까요?”
“바쁘시지 싶은데, 원하시면 잠깐 나와 달라고-!”
“아뇨, 아니에요! 사실 세성 길드장님이 조금, 뭐랄까 무서워서 말입니다.”
내 말에 강소영이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보통 많이들 꺼리세요. 길드장님께선 옥상정원에는 잘 나오지 않는 편이에요.”
그런가. 그럼 갈까? 물론 유현이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게 문제였지만. 나는 강소영에게 미소 지어 보이며 휴대폰을 꺼내었다.
“제 동생에게 허락을 구해 보겠습니다. 제가 가고 싶다고 해서 멋대로 여길 벗어날 수는 없으니까요.”
“네, 물론 그러셔야지요.”
동생이 허락을 해줄까 모르겠네. 전화를 걸자 이내 유현이가 받았다. 나는 자초지종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물었다.
“안전하다고 하는데, 괜찮지 않을까?”
역시나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하긴 지금 이 시점에서 밖에 내보내는 걸 쉽게 허락해 줄 리가 없었다. 괜찮아, 라고 대뜸 말해 주는 게 이상한 거지.
“하지만 피스가 많이 우울해해. 네 기승수잖냐. 나도 산책 좀 하고 싶고.”
짧은 침묵이 흘렀다. 휴대폰 너머에서 유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많이 갑갑해?]“아무래도 집안은 피스에게 좁기도 하니까.”
[말고, 형이.]피스 생각도 좀 해줘라, 이 녀석아.
“바깥 공기 좀 마시고 싶긴 하지. 옥상정원 잘 꾸며 놓았다더라. 그렇죠?”
“네! 해연 길드장님, 진짜 좋아요! 안전도 확실하게 보장해 드릴게요. 맹세합니다!”
강소영이 휴대폰에 닿을 정도로 목소리 높여 말했다.
“제가, 세성 길드의 A급 이상 헌터들이 절대!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고 있을 거예요. 한 번만 믿어 주세요!”
[…형, 정말로 꼭 가고 싶어?]“나보다는 피스가 눈에 밟혀서 그래. 기운 없어 하니까 나도 힘이 빠지고, 미안하기도 하고.”
“당연하죠! 걱정 마세요.”
강소영의 부추김 속에 유현이가 결국 외출 허락을 했다.
[도중에 절대 다른 길로 빠져선 안 돼. 오가는 길에는 우리 쪽 헌터들도 동행할 거야. 반드시 해 지기 전에 돌아오고.]“알았어. 고맙다.”
그래도 생각보다 쉽게 허락이 떨어졌다. 혹시 소영 씨 덕도 있는 걸까? 이 녀석, 벌써 강소영에게 호감이라도 가진 건 아니겠지.
“허락받으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바로 출발 준비를 하겠습니다.”
순수하게 기뻐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자 동생 놈이 반할 만하다 싶었다. 역시 소영 씨 영향이 있긴 했겠지?
둘이 잘 어울릴 거 같긴 하네. 안 그래도 그 넓은 집에서 혼자 지내는 게 적적해 보였다. 이렇게 된 거 그냥 빨리 사귀고 결혼도 해 버려라. 조카는 귀엽겠지. 혼혈 2세면 귀엽고 예쁜 경우 많다던데. 유현이랑 닮았으면 좋겠다.
“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제 동생도요.
* * *
“도착했습니다~”
강소영이 발랄하게 말했다. 세성의 옥상정원은 본관 건물과 이어진 15층 높이의 신관 제2건물 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었다. 강소영이 유리문을 열자 풀 냄새 섞인 바람이 흘러들어온다.
이런 공원에 오는 게 얼마 만이더라.
‘…기억도 잘 안 나네.’
던전 환경이 숲이나 초원인 적은 있었지만, 그런 것과는 달랐다. 가벼운 마음의 산책이라. 그럴 여유는 확실히 없었지.
…아니, 핑계일 뿐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근처 공원에 한번 나가는 게 뭐 얼마나 많은 시간이 든다고. 게다가 굳이 공원을 찾아가지 않더라도 산책이야 집만 벗어나면 할 수 있었다.
느린 걸음으로 새삼스럽게 주위를 둘러보며, 이따금 고개 꺾어 하늘도 한번 바라보고 오늘 구름은 어떤 모양인지, 여름을 맞은 가로수가 얼마나 무성해졌는지, 벽에 붙은 전단지를 읽어 볼 수도 있고 보도블록 사이로 기어가는 개미에게 눈길을 줄 수도 있다.
‘뭐, 이젠 하고 싶어도 못 하겠지만.’
혼자 가볍게 돌아다니는 건 꿈도 못 꾸게 되었으니. 그냥 내 건물에도 이런 거나 하나 만들어야지.
옥상정원은 넓었다. 탁 트여 있었지만 가장자리를 따라 키 큰 나무를 빽빽이 둘러 심어 옥상 위라는 느낌을 최대한 감추었다. 산책로도 잘 만들어져 있고 정돈된 화단에 각종 조형물, 분수며 작은 온실 등 갖출 건 다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없네요.”
“편하게 이용하실 수 있도록 출입을 통제해 놓았답니다. 아예 없는 건 아니고요, 감시하는 사람은 몇 명 있어요. 공중에서 누가 침입해 올 수도 있잖아요?”
집중 사격용 표적도 아니고 대낮에 그럴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철저하네.
“피스야, 여기 봐라. 잔디밭이다.”
– 끄웅.
잔디 위에 피스를 내려놓았지만 어린 화염 뿔사자는 뛰어놀기는커녕 곧장 내 다리에 달라붙었다. 날씨도 좋고 햇볕도 좋고 풍경도 좋은데, 왜 관심을 안 보이는 거지.
“왜 그래. 마음에 안 들어?”
– 끼잉.
“저기 나비가 날아가네.”
팔랑팔랑 춤추는 노랑나비도 본체만체였다. 이쯤 되다 보니 슬슬 걱정이 들었다. 트라우마가 생각보다 심각한 걸까. 동물 전문 심리상담사도 있나.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피스.”
쪼그려 앉으며 손을 뻗어 목덜미를 쓰다듬어 주자 앞발로 팔을 꽉 붙잡아 온다. 유난히 달라붙는 느낌인데, 나와 떨어지기 싫은 건가.
‘혹시 납치당한 것 때문이 아니라 나와 갑자기 떨어지게 된 것 때문에 이러는 건가?’
난데없이 잡혀가 혼자 우리에 한참을 갇혀 있었다. 감정 스킬을 감지할 정도로 예민하니 잠들었다고 해도 주위 상황을 어느 정도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젠 그럴 일 없어.”
내 말을 얼마나 알아들을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달래 보았다.
“봐봐, 옆의 누나 보이지? 얼마나 강한지도 알 수 있지? 이 누나가 지켜 주고 있거든.”
“그래, 피스야. 내가 있으니까 괜찮아.”
강소영이 때맞추어 맞장구를 쳐 주었다. 이어 몸을 굽혀 나를 살짝 끌어안는다. 동시에 피스가 긴장하며 털을 세웠다.
– 크흥!
“괜찮아, 피스야. 이 누나는 착한 사람이야. 해치려는 거 아니야.”
“맞아, 우리 사이 좋아. 이것 봐라.”
그리곤 쪽, 내 뺨에 입 맞추었다. 아니, 이런 건 좀 곤란한데……. 외국인이라서 그런가 스킨십이 과하네.
– 그릉?
피스가 딱 달라붙어 있는 우리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누나가 지켜 줄 테니까 걱정 말고 놀아도 돼. 괜찮아.”
붉은 터럭의 귀 끝이 까닥거리고, 드디어 내게서 떨어진 피스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화염 뿔사자가 나오는 던전은 화산지대라고 했으니 이런 푸르른 풍경은 난생 처음 보는 것일 터였다.
파악.
아직은 작은 앞발이 잔디를 긁었다. 잘려나간 풀이파리가 사방으로 흩어진다. 코끝을 움찔거려 풀냄새를 조금 맡다가 빙그르 한 바퀴 돌아 다시 나를 올려다봐왔다.
“마음에 들어?”
– 끼앙!
폴짝 제자리에서 뛴 피스가 본격적으로 주위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아직 멀리까지 갈 생각은 없어 보였지만 저 정도면 이내 멀쩡해지지 싶었다.
“이제 그만 떨어지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만.”
아직도 나를 끌어안고 있는 강소영에게 말했다. 감시자도 있다는데 적정거리를 유지해 줬으면 좋겠는데.
“일으켜 드릴까요?”
“괜찮습니다.”
내 몸 하나 못 가눌 거 같냐. 상대적으로는 곧 죽을 듯 비실거리는 병아리쯤으로 보이긴 하겠지만.
피스가 가고 싶어 하는 방향을 따라 산책로를 걸어갔다. 수국이 한가득 피어 있는 화단에 붉은 몸뚱이가 풀쩍 뛰어들더니 이내 연보라색 꽃잎들이 마구 흩날리기 시작한다. 화단 하나 폐허 되는 게 순식간이었다.
“저건—”
“괜찮아요!”
입을 떼자마자 강소영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여기 다 갈아엎어도 문제없으니까요. 조경이야 다시 하면 돼요.”
역시 거대 길드답게 통이 크구나. 피스도 저렇게 신나 하고, 보은 스킬 효과만 끝나면 자주 놀러와야겠다.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최상급 기승수의 성장에 걸리는 시간이 얼마쯤 되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자세한 이야기는 못 들었거든요.”
강소영이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몬스터에 따라 달라서 저도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 종이나 급수에 따라 다르지 싶거든요. 거기에 훈련을 잘 따라주냐에도 차이가 날 것이고요. S급 던전의 드래곤 무리라면 2급이나 3급쯤 되겠지요?”
한 마리만 나온다면 2급일 텐데 둥지가 등장하기도 한다면 십중팔구 무리일 것이다. 내 말에 강소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정확히는 3급 비룡종이에요. 비룡종치고는 체력도 방어력도 좋고 전체적인 능력치도 뛰어난 가시날개암룡이죠.”
비룡종은 용종 중에서는 비교적 약한 편이었다. 하지만 비행 능력이 뛰어난 만큼 기승수로서는 더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날개에 요렇게 커다란 가시가 세 개나 돋아나 있는데, 이게 정말 귀여워요.”
“…네?”
방금 귀엽다고 했어? 양팔 잔뜩 벌린 크기의 가시가?
“꼬리 끝에도 비늘 같은 가시가 있는데, 이건 쏘아 낼 수도 있어요! 제 팔뚝보다 약간 작은 크기인데, 마비 독까지 발려 있다니까요. 비룡종이지만 앞발 뒷발 네 개 다 있어서 더더욱 귀엽죠. 튼튼하고, 비늘도 단단하고. 비늘 색도 까맣고 반지르르한 게 마치 검은 보석을 줄지어 이어 놓은 것같이 진짜 이쁘다니까요.”
음, 솔직히 귀엽긴커녕 무시무시하게 생긴 날개 달린 거대 도마뱀 괴물밖에 안 떠오르는데. 심지어 가시까지 삐죽삐죽 돋은 험상궂은 시커먼 드래곤이. 취향이 살짝 특이하시네.
“처음 공략 들어갔을 때부터 어떻게든 길들이고 싶었는데, 이렇게 소원 성취하게 될 줄이야. 마수 사육 스킬을 알게 된 뒤부터 하루하루가 구름 위를 걷는 것만 같아요. 아, 진짜— 한번 더 끌어안아도 돼요?”
“안 됩니다.”
어쩐지 처음 만날 때부터 분위기가 통통 튄다 했더니 진짜로 들떠 있었구나. 지금도 이 정도인데 기승수까지 키워 주면 사랑한다고 대충 한 마디만 해도 키워드 바로 적용되겠다.
그래도 키워드 효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알 수 없으니 안 하는 편이 낫겠지. 제수씨한테 아빠나 엄마 취급받는 막장이 벌어져서는 안 될 일이니까. 입조심하자.
슬쩍 유현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볼까 고민하는데,
여기까지 오면서 참 여러 번 떴던 예감 스킬이 또다시 발동했다. 이번에는 또 누구… 시발, S급이네. 바쁘실 텐데 왜 여기까지 나오시고 그러냐. 잘 안 나온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