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52
52화 삐약 (1)
당장이라도 돌아보고 싶은 충동을 참는 건 쉽지 않았다. 마치 등 뒤로 다가오는 끼익거리는 발소리를 끝까지 못 들은 척해야만 하는 공포 영화 속 등장인물이 된 기분이었다.
‘벽에 붙은 도마뱀은 계속 쓰고 있었고.’
혹시나 싶어 세성 길드에 도착하기 전부터 약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평소의 나를 알고 있는 유현이도 희미하게 느끼는 정도였으니 성현제가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쉽게 눈치채지 못하겠지. 설마 동생 놈처럼 내 몸에 코 박고 냄새 맡기야 하겠냐.
“아, 길드장님!”
강소영이 드디어 눈치채고 돌아서고 나서야 나도 뒤를 돌아볼 수가 있었다. 마흔을 코앞에 둔 주제에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퍽 가벼운 차림새로 소매 단추를 푼 셔츠를 반쯤 걷어 올리고 넥타이 같은 것도 없었다. 정말 한가해 보여서 아이고 바쁘신 와중에 여기까지 운운은 차마 못 할 모습이었다.
“건강해 보이니 다행이로군. 걱정 많이 했다네.”
와, 소름 돋게 상냥한 표정이며 어조구만. 내가 조금만 더 순진했다면 덥석 믿어 버리곤 감격했을지도.
“굳이 나오셔서 안부를 살펴봐 주시다니, 죄송스러울 정도입니다.”
부담되니까 좀 꺼져 줬으면, 이란 속마음을 순화시켜 말했다. 내 말에 성현제가 미소를 머금었다. S급이 다 그렇긴 하지만 잘생기긴 참 잘생겼어. 다가진 놈들 같으니라고.
“여기까지 왔는데 안 나와 볼 수가 있나. 무엇보다 한유진 군은 내 아이를—”
“신경 써 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시발, 문현아 진짜, 진짜! 내가 이딴 소리 들으며 살아야겠냐! 앙갚음 한번 톡톡히 한다. 젠장, 두고 봐라. 내가 이거 안 갚아 주면 사람이 아니야.
그때 내가 소리친 것을 들은 피스가 급히 뛰어왔다. 그리곤 새로 나타난 사람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 끄우웅.
무언가 불안함을 느꼈는지 피스가 내 다리에 바싹 몸을 붙였다. 그 모습을 보고 강소영이 괜찮다며 성현제를 가리켰다.
“걱정하지 마, 피스야. 우리 길드장님이셔. 위험하지 않… 어, 무섭지, 음, 그러니까… 착한… 도 아니고…….”
…이 아가씨, 거짓말 못하는구나.
“아무튼 좋은 분이야!”
길드장으로서는 좋은 사람이긴 한가 보다. 피스가 사람 말을 완전히 알아들을 수 있었더라면 저만치 뒷걸음질 치지 않았을까. 하지만 못 알아들으니 무슨 소린가 하고 고개만 갸웃거리고 있었다.
“괜찮아. 지금은 같은 편이야. 그러니 가서 놀아도 돼.”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네만.”
내 말에 성현제가 웃음기를 담아 말했다. 뭘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래. 물론 세성 길드와 척지는 일은 없어야 하지만. 예, 오래오래 좋은 고객으로 남아 주십시오.
“말씀만으로도 안심되네요.”
“믿지 못하겠다는 투로군.”
“나름 팍팍하게 살아와서 말입니다.”
회귀 전 5년을 제외하더라도 평화로운 인생은 아니었지. 애들한테 남겨진 얼마 안 되는 재산까지 노리려 드는 인간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세상 참 팍팍하다니까.
“해연 길드장도, 보호하는 것도 좋지만 정보는 제대로 줘야지.”
성현제가 혀를 쯧 차며 고개를 저었다. 이 아저씨도 유현이 험담하려나 싶어 살짝 울컥하긴 했지만, 정보라는 말에 참았다.
확실히 유현이 놈이 내게 너무 아무것도 안 알려 주긴 했다. 심지어 납치 당사자인데도 이후 처리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지 하나도 몰랐다. 물어보면 그냥 형이 신경 쓸 필요 없어, 잘 처리되고 있어, 하고 적당히 넘겨 버렸지.
만약 내가 회귀한 게 아니라 진짜 마수 사육 스킬만 얻은 거였다면, 협상이고 뭐고 동생 놈이 다 알아서 하고 나는 돌아가는 상황을 조금도 파악하지 못한 채 멍하니 갇혀만 있었을지도. 그렇게 생각하니 살짝 소름 돋네.
“제 동생이 조금, 답답한 면이 있긴 하죠.”
“원래는 없네만.”
…동생 놈하고 술 한번 더 마셔야 하나. 허구한 날 태클이 들어와. 그놈이나 나나 허심탄회한 대화의 장이 필요하긴 하다 싶었다.
“괜찮다면 잠시 앉아 이야기라도 나누겠나.”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를 보고 성현제가 말했다.
어쩔까.
나도 계속 아무것도 모르는 척 있을 생각은 없었다. 평화로운 건물주가 목적이지만 가진 걸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은 해야 하니까.
다만 지금은 동생의 눈과 귀가 사방에 깔려 있는 해연 길드 내에 머무는 중이니 허튼짓할 순 없었다. 안 그래도 동생이 나를 살짝 의심하는 눈치였으니까. 미래의 정보상인 도하민을 낚아 오는 건 어렵지 않지만, 내 둥지는 짓고 나서 할 일이지.
아직 건물 짓기는커녕 철거도 전이니 세성 길드장님 입으로 조금은 들어 둘까.
“네, 좋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공원 한쪽에 세워진 파고라의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강소영은 다과를 가져오겠다며 떠나갔다. 피스는 성현제가 영 신뢰가 안 가는지 더 놀지 않고 내 무릎 위로 올라와 앉았다. 그래도 전처럼 과하게 달라붙는 기색은 없어 보였다. 산책 나온 게 효과가 있는 모양이었다.
“한유현의 근래 행동은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부분이 많기는 해.”
성현제가 특유의 느긋한 어조로 말했다. 키워드 효과 때문에 애가 살짝 맛이 가긴 했는데, 많이 심한 건가. 그래도 오늘은 밖에 나가게도 해주고, 좀 괜찮아진 거 같은데.
“마수 사육 스킬을 얻기 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한유진 군에게는 얼마든지 자기 세력을 갖추고 키워 나갈 힘이 있지. 자리만 제대로 잡으면 웬만한 거대 길드보다도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네. 심지어 이미 저번 협상을 통해 기반은 갖추었어.”
워어, 나를 과대평가해 주시네. 마음만 먹으면 못 할 것도 없긴 하지만.
“하지만 저는 그렇게까지 큰 욕심은 없습니다. 일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기승수의 수요야 점차 줄어들기도 할 것이고요.”
내 말에 성현제가 작게 웃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나?”
“…당연히 그렇게 되지 않을까요? 상급 기승수를 일회용으로 쓰는 미친 짓을 하지 않는 이상은 말입니다.”
“물론 그런 짓은 아무도 안 하겠지. 하나 상급, 최상급 기승수는 A급, S급 헌터와 비슷한 전력이야. 기승수가 아닌, 팀원으로서, 혹은 아예 몬스터 부대로서도 운용이 가능하지.”
뭐, 그야 그렇지만.
“몬스터 사육은 제압 가능한 범위 이내서만 허용이 될 텐데요. 세성이라 해도 최상급 기승수는 너덧 마리 이상 보유하기 힘들 겁니다.”
테이밍은 몬스터를 무슨 꼭두각시나 로봇처럼 완벽하게 제어하는 스킬이 아니었다. 피스만 봐도 주인의 증표를 내가 가지고 있음에도 투정도 부리고 돌발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테이밍된 몬스터는 주인을 해치지 않으며 무리의 리더 정도로 여기고 따른다. 딱 그 정도였다. 만약 완벽하게 통제하고 부릴 수 있었더라면 테이머가 몬스터 무리 이끌고 던전 공략하는 헌터로 여겨졌겠지. 지금처럼 몬스터 길들여다 분양하는 특수직이 아니라.
그래서 일반 몬스터든 테이밍된 몬스터든 만일의 사태 때 해당 길드 또는 단체가 제압 가능한 정도로만 보유할 수 있었다.
“지금은 그렇지. 하나 앞으로는 어떨까.”
성현제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한유진 군, 법이란 건 말이야, 나라와 사회가 있어야 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네.”
“그야, 그렇겠죠.”
“처음 던전이 등장하고 오늘날까지, 던전의 수와 난이도는 점점 올라가고 있다네. 아직은 모든 던전을 충분히 관리하고도 여유가 남을 정도지. 얼마 뒤 각성센터가 생기면 좀 더 수월해질 것이고. 하지만 지금 이 여유가 얼마나 더 지속될까. 개인적으로는 길어야 5년. 그 즈음이면, 상당히 많은 것이 변화하게 될 거야.”
…정확한 예상이었다. 물론 내가 아는 5년 후에도 몬스터 사육 제한법은 그대로였다. 하나 생각해 보면 사실 그때는, 법이 바뀔 이유 자체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최상급 기승수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가장 등급 높은 테이머 스킬이 A급이라 상급 기승수조차 드물었다. 능력치 B급 이하 몬스터를 길들인 뒤 성장시켜야 상급 기승수로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몬스터가 등급을 넘어서는 성장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반쯤은 운이었고.
“…그럼 향후, 몬스터만으로 던전 공략을 시도하게 될 수도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 정도는 아니고 섞이게는 되겠지. 기승수가 아닌 일종의 이종족 헌터로서. 그리고 자네는 S급과 A급 헌터를 계속해서 안정적으로 키워 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될 테고.”
이러다 평생 은퇴 못 하게 되는 게 아닐까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법이 바뀔 수도 있다는 생각을 왜 못했지. 아니, 그래도 던전 밖에까지 몬스터가 드글거리는 건 불안하지 않냐. 물론 상급 던전이 터져 나가는 것보다야 낫지만…….
“뭐랄까, 부담스러워지는군요.”
“아직 시간은 있으니 천천히 자리 잡아 가면 되네. 무엇보다 비슷한 스킬 소유자가 나타나지 않는 한 자네의 가치는 S급 헌터들보다 더 높으니까. 지금처럼 웅크리고 있을 필요도 없어. 더 멋대로 굴어도 괜찮아.”
“멋대로 굴어도 된다고요?”
“그래. 횡포 좀 부려도 어쩔 텐가. 대체 불가능한 능력인데.”
성현제가 짓궂음을 담아 눈가를 휘었다.
“하고 싶은 건 뭐든지 해도 돼. 협상한 길드가 아니더라도, 상급 기승수를 보유할 능력이 되는 길드라면 어디든 연락해서 이것저것 요구해도 끽소리 못 할걸?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도. 이미 자네에게 말이라도 한번 걸어 보고 싶어 하는 해외 길드들이 줄을 서 있지. 연락처 하나 줄까? 전화해 보겠나?”
“…아뇨, 그건 좀.”
어느 길드든 연락해서 뭐든 요구하라고? 뭐야, 그게. 내가 상상치 못한 수준의 갑질이다. 역시 갑질도 해본 놈이 잘한다는 건가. 난 그냥 건물 하나 생기는 걸로도 충분히 만족하는데.
“지금 자네의 위치가 그 정도라네. 최상급 몬스터 새끼 받아 놓고 ‘아, 피곤해서 성장 못 시키겠다.’라고 티라도 조금 내 보게. 당장에 길드장 선에서 뭐 필요한 거 없으십니까, 하고 연락 오겠지.”
아니, 그건 상도덕적으로 좀……. 이 아저씨, 역시 성격 안 좋네. 왜 사람 앉혀 놓고 다양한 지랄갑질 하라고 부추기고 있냐. 협상안에 성실한 사육 운운도 들어가 있어서 자기는 남 일이라 이건가.
“이걸 한유현도 모르는 건 절대 아닐 텐데, 그럼에도 새끼 새 품은 어미 새처럼 꽁꽁 감싸고돌려고만 하고 있지.그 녀석답지 않은 태도야.”
성현제가 이것만큼은 자신도 잘 모르겠다는 투로 말했다. 그게 키워드가… 양육자가 동일인이다 보니 배로 적용된 거 같아서 말입니다.
“제 스탯 등급이 워낙 낮아서 그런 것도 있겠죠. 대대적으로 갑질할 위치에 있다 해도 어떤 미친놈이 덤벼들면 언제든 목이 날아갈 수도 있잖습니까.”
“그거야 최상급 몬스터 한 마리만 곁에 두면 해결될 일이지 않나. 그렇잖아도 해연의 두 번째 최상급 몬스터 새끼는 자네 보호용으로 쓰는 게 어떨까 하는 의견도 오가는 중이라네.”
“그렇습니까?”
“이것도 말 안 해준 건가. 납치 건으로 책임이 있는 MKC에서 부담할 예정이지.”
나한테 좋은 조건이긴 한데 유현이 이 자식, 당사자를 아주 쏙 빼놓는구나. 확정되면 말해 주긴 했겠지만 그래도 미리 귀띔이라도 해주면 어디가 덧나냐.
“이거 문현아와 비슷한 짓을 하게 된 거 아닌가 모르겠군.”
내 표정을 본 성현제가 어깨를 으쓱했다. 스킬로 소리 막아 놨었는데 성현제가 알고 있다는 건 문현아가 직접 말한 건가.
“아뇨, 그것과는 좀 다르죠. 제 동생의 행동이 과하다는 건 저도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도 저를 걱정해서고, 또 해연을 나오게 되면 간섭 못 하게 될 테니 눈감고 있었지만요.”
“한번 제대로 이야기해 보는 걸 추천하지.”
“예. 반드시 그러겠습니다.”
그 밖의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는 사이, 강소영이 다과를 들고 돌아왔다. 겉보기에도 고급스럽고 맛도 훌륭한 과자들이었지만 명우가 만들어 준 것에 비하면 약간 뒤떨어졌다. 대장간 스킬 얻고 바빠질 거 생각하니 또 우울해지네.
“이건 약소한 성의라네.”
성현제가 보증서 딸린 작은 액세서리함을 내밀었다.
“소영이로부터 들었겠지만 조만간 신세 지게 될 테니, 잘 부탁한다는 의미로 생각하게나.”
뇌물인가. 보증서를 보니 무려 S급 아이템이었다. 마력 정수 증가에 B급 방어막 스킬 효과가 붙어 있었다. 와, 스킬 효과 아이템이라니. 특히나 이런 방어막 스킬이면 인기가 높다 못해 돈이 있어도 사기 힘들 정도였다.
액세서리함을 열어 보자 빼앗긴 검은 요정의 이어링과 비슷한 모양의 귀걸이었다. 보석 색만 붉은색으로 다르다.
“좀 부담스럽네요.”
“부담스러워야 효과가 있지. 그리고 이건.”
이어 그가 인벤토리에서 꺼내든 건, 웬 커다란 날개 뼈였다. 살점이 약간 붙은 채 잘 말린 날개 뼈의 등장에 피스가 귀를 쫑긋 세운다.
“대부분의 상급 육식형 몬스터는 드래곤 뼈를 좋아하더군.”
처음 듣는 소리였다. 내밀어 오는 드래곤 날개 뼈를 피스가 머뭇거림 하나 없이 덥석 깨물었다. 앞발로 당겨 끌어안다시피 하는 걸 보니 무척이나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성현제 이 아저씨, 생각보다 좋은 사람인지도.
“감사합니다.”
솔직하게 고마워하자 성현제가 흥미로워하는 미소를 머금었다.
“한유진 군은.”
“예?”
“앞으로 오래 가까이 지낼 수 있다면 좋겠군.”
몬스터 키워 줘야 하니까 싫어도 자주 보긴 해야 하는데 뭘 새삼. 저도 뭐 잘 부탁드립니다.
* * *
아침 일찍, 해연 길드 건물에서 택시로 20분 거리에 있는 F급 던전의 독점 출입증 구매에 성공했다는 메시지가 날아왔다.
이틀 전 밤에 신청해 놓았던 던전이었다. 가치가 낮은 F급 던전을 굳이 웃돈 더 주고 독점 입찰하는 경우는 드물었기에 경쟁자는 없었다.
독점 출입증 구매 완료 메시지를 받자마자 유현이에게 연락해 오늘은 나가지 않고 집에서 쉴 거라고 말해 두었다. 감기 기운이 약간 있어 약 먹고 잠이나 잘 거라는 말에 찾아오겠다고 하는 걸 말리느라 혼났다. 다른 사람들이 알면 귀찮아질 테니 비밀 지켜 달라는 당부도 해두었다.
“이런 걸 언제 사 뒀었지.”
얼굴 가릴 거 뭐 없나 하고 반쯤 풀다 만 짐을 뒤지자 자외선 차단 모자가 나왔다. 눈만 빼고 천으로 다 가려 주는 게, 절대 얼굴 들킬 일 없어 보였다. 왜 샀지. …아, 1인 시위하고 다닐 때 썼던 건가 보다. 이게 아직 남아 있었네. 씁쓸한 기억을 밀어내며 모자를 챙겼다.
조금 이르긴 해도 여름 초입이니 쓰고 다녀도 아주 이상해 보이진 않을 것 같았다.
게이트석은 인벤토리에 잘 넣어 두었고 장비도 충분하다. 비록 정수 증가뿐이지만. 포션도 넉넉하고 비상식량은 안 가져가도 되겠지. 도중에 안 나오고 공략한다 해도 지금 내 등급이면 한 시간 안팎으로 끝날 것이다.
‘숲 환경이었지.’
던전 입찰 페이지의 설명으로는 던전 내부는 작은 숲이며 나오는 몬스터는 이끼원숭이였다. 원거리 공격 스킬이 없으면 좀 까다롭긴 하나 4미터짜리 촉수가 있으니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보스 몬스터는 숲 끝에 자리 잡은 연못 속의 거대 거북이었다.
나무를 타고 다니는 날렵한 원숭이도 그렇고 방어력이 뛰어난 거북이도 그렇고, F급치고는 난이도가 높았다. 그래서인지 E급 이상 포함 팀에게 공략을 권한다는 주의 사항도 덧붙어 있었다.
여유 되면 공략하고 나올까. 독식하면 독점 출입증 산 돈 메꾸고도 남으니.
– 그르르릉.
모자 챙겨서 거실로 나오자 어제 받은 용의 날개 뼈를 갉작거리던 피스가 목을 울리며 총총 뛰어왔다. 외뿔 주위를 긁듯이 쓰다듬어 주곤 달래듯 말했다.
“아빠 잠깐 나갔다 올 테니까 집 잘 보고 있어. 오래 안 걸릴 거야.”
– 끼웅.
“가구는 적당히 부수고.”
명우는 저녁에나 돌아오겠지만 혹 모르니 피스를 거실에 풀어놓고 낮잠 잘 거라고 말해 두었다. 만약 내가 자느라 연락 못 받으면 집에 바로 들어오지 말고 기다려 달라고. 피스가 착하긴 해도 스탯 F급과 함께 두기는 불안하니까.
“다녀올게.”
따라오려 들면 어쩌나 걱정되었지만 다행히 피스는 중문을 넘지 않고 얌전히 앉아 나를 바라보았다. 착하기도 하지.
자, 그럼 이제 무사히 빠져나가기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