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546
544화 델로우즈 (2)
“…아저씨 찾아갔나? 아저씬 또 어떻게 사라지신 거지? 아, 혹시 서랍으로 숨으신 걸까?”
박예림이 누가 들을세라 작게 말했다. 그 말에 한유현이 짧게 고개 저었다.
“형이라면 숨기보다는 혼자 섬으로 향했을 거다. 무사히 도착했을 시의 보상이 있을 가능성도 높아.”
“도와드릴 수 있는데! 우릴 못 믿으신 건 아니겠지?”
한유현이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무시했다. 한유진이 한유현을 믿지 못할 리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이기에 도움을 받지 않으려고 몰래 빠져나간 것일 터였다. 박예림이 다시 목소리를 확 낮췄다.
“은신 스킬 버프 받아도 우리를 완전히 속이긴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된 걸까.”
한유진의 은신 스킬은 A급이지만 살쾡이 재킷의 버프를 받으면 S급도 쉽게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S급 중에서도 마력 감지 능력이 뛰어난 한유현과 마법사형으로 역시나 마력적 능력이 뛰어난 박예림까지 완벽히 피하긴 어려웠다. 한유현 또한 이것만큼은 짐작 가는 것이 없었다.
메시지를 받은 헌터들이 이쪽을 슬금슬금 쳐다보기 시작했다. 박예림이 더더욱 목소리를 작게, 바로 앞의 한유현이 겨우 들을 수 있을 만큼 줄였다.
“피스가 따라간 거 같은데, 주인의 증표로 부를 순 없어?”
“없어. 너도 알 텐데.”
주인의 증표 효과는 리더로서 따르게 하는 정도지 강력한 강제성까지는 없었다.
“그리고 피스는 내가 원하는 것을 알고 있어.”
한유진을 보호할 것. 한유현에게도 피스에게도 그것이 가장 우선시되었다. 둘이 원하는 목적이 같았기에 피스는 더더욱 자유롭게 행동하곤 했다.
쾅!
그때 계단으로 통하는 문이 부서질 듯 거칠게 열렸다. 송태원이 주위를 살피며 빠른 걸음으로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한유진 씨는 어디 있습니까.”
“사라졌어요.”
박예림이 작게 대답했다. 송태원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너무 걱정 마세요. 아저씨잖아요. 우리랑 같이 가면 더 좋았겠지만…….”
“함께 움직인다면 파티에 참석한 모든 헌터들이 덤벼들었겠지요. 그래서 혼자 사라진 걸 겁니다. 방송까지 되는 상황에서 상급 헌터가 개인의 이득을 위해 도시를 파괴하는 모습은, 보여서 좋을 게 없습니다.”
주최자가 책임진다고 해도 사람들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S급 헌터들의 폭거다. 자칫했다간 그 중심이 되는 한유진에게도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었다.
“그럼 아저씨가- 어, 현아 언니랑 노아 오빠는 섬에 도착했대요. 메시지 뜨자마자 출발했는데, 들어가면 못 나온다네요. 1등이라고 금화 하나씩 받았고요.”
박예림이 휴대폰을 확인하며 말했다.
“소영 언니도 리에트 언니랑 같이 바이크 타고 바로 출발했대요. 도와줄 일 있냐는데요.”
“리에트 헌터는 섬에 가 있는 편이 나을 듯합니다. 성현제 헌터는-”
말을 하다 말고 송태원이 고개를 돌렸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방향에서 성현제가 걸어오고 있었다. 어깨에 은색 요정용을 얹은 채 여유로운 시선으로 모여 있는 사람들을 살피고는 호텔 입구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와 동시에.
카가각!
군림자의 검이 길게 휘둘러졌다. 선을 긋듯 바닥이 검게 갈라지고 성현제의 구두 끝에 파편과 불티가 튀었다. 파헤쳐진 바닥을 힐끗 내려다본 성현제가 아무렇지 않게 그어진 선을 넘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짜자자작, 서늘한 안개가 흩뿌려지고 회전문이 얼어붙었다.
“어딜 그렇게 급히 가시려고요?”
“열정적으로 붙잡는 마음은 고맙지만 두 사람은 내 취향이 아니라네. 이래 봬도 사회적인 선을 지키는 편이기도 하고.”
어린애들은 사양이라는 말에 박예림이 눈썹을 삐죽 치켜올렸다.
“저도 취향 아니거든요? 얼굴은 차라리 한유현, 은 취소! 노아 오빠도 있고요! 암튼 그냥 이야기 좀 하자고요.”
“한유진 군과의 데이트가 우선이니 양해해 주었으면 싶군.”
“아저씨랑도 민증상으론 양심 없는 수준인데! 약속은 하셨고요?”
“뉴욕에도 수족관은 있지.”
그러곤 다시 걸음을 옮기려는 성현제를 이번에는 송태원이 붙잡았다.
“기다려 주십시오.”
“더 공손히 유혹해 보게나. 자네라면 넘어가 줄 수 있으니까.”
말은 그렇게 하면서 성현제의 손끝에서 빛이 튀어 올랐다. 길게 얼어붙은 바닥을 따라 전류가 요동치고, 콰장창! 유리 회전문이 산산조각 났다. 그대로 밖으로 나가려는 성현제의 귀를 한결이 잡아당겼다.
-아빠 잡으러 가지 말라고!
귀에 머리를 파묻다시피 한 채 속삭였지만 성현제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밖에 모여 있던 기자들이 플래시를 마구 터뜨렸다.
“한유진 헌터!”
“SF!”
이미 1위를 잡으라는 메시지가 퍼졌는지 한유진은 어디 있느냐는 질문이 쏟아졌다. 그때 사람들 사이로 놀란 외침이 터져 나왔다.
“당장 피해!”
“비켜!”
“실드 쳐!”
기자들 사이에서 대기 중이던 헌터 서넛이 방어 스킬을 사용했다. 사람들이 익숙하게 헌터들, 실드 뒤로 대피하고 부우웅-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바이크가 호텔 입구로 들이닥쳤다.
“한국 헌터들! F급은 어디에 숨겼나!”
헌터가 바이크에서 뛰어내리며 달려오던 힘에 더해 바이크를 밀듯이 걷어찼다. 육중한 대형 바이크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성현제를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성현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앞을 막아선 것은 송태원이었다.
송태원의 다리가 높이 치켜 들리고, 그대로 바이크를 내리찍었다. 마치 거대한 절단기로 잘라 낸 것처럼 바이크가 두 동강 나며 바닥에 처박혔다. 동시에 박예림이 바이크에 불이 붙지 않도록 단숨에 얼려 붙였다.
“착착 맞네요! 예!”
“…….”
“송 하기로 했잖아요. 기자들도 많은데!”
이게 바로 미국 스타일이다, 공부 많이 했다며 투덜거리는 박예림을 송태원이 못 본 척했다. 그사이 버들잎을 밟고 뛰어오른 한유현이 공격해 온 헌터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헌터가 재빨리 몸을 피했지만 가슴께에 긴 상흔이 생겨났다. 한유현은 그 자리에 우뚝 선 채 손목만 휙, 움직였다.
차라락- 연검으로 변한 흑검이 크게 굽어지며 헌터의 발 바로 앞을 콱! 내리찍었다. 얼마든지 상대를 반으로 갈라 버릴 수 있음에도 봐줬다는 태도였다. 연검이 거두어지고 한유현이 말 한마디 없이 냉랭하게 돌아섰다.
“형이 일이 커지길 원치 않는 듯하니, 협조하겠습니다.”
“저도요. 우선 세성 아저씨부터 얼려 놓을까요?”
“꼬마 아가씨는 내 편인 줄 알았는데.”
“감사합니다, 한유현 헌터, 박예림 헌터. 성현제 헌터,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우선은.”
송태원이 목소리를 낮췄다.
“한유진 씨가 아직 호텔에 남아 있는 척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그러다가 제가 살짝 빠질게요. 가짜 인형 하나 안고서요. 요 앞 공원 호수로 유인해서 죄다 얼려 놓고 섬으로 가요.”
거기라면 싸움 좀 커져도 괜찮을 거라는 박예림의 말에 송태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박예림이 방어막 너머에서 열심히 카메라를 들이대는 기자들을 돌아봤다가 호텔 안으로 몸을 돌렸다.
“입구 막을게요!”
박예림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향해 한유현의 검이 날아들었다. 물이 터져 나오고 호텔 주위로 거대한 얼음벽이 만들어졌다.
* * *
살쾡이 세트. 세트 아이템을 다 모으려면 포인트가 제법 많이 들었기에 남은 두 개는 그간 인벤토리에서 꺼내지 않고 묵혀 두고 있었다. 어차피 나만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이니까 포인트 쓰기가 아까운 게 컸었는데, 채터박스의 파티에 혼자 참가하게 되면서 신입에게 물어보았다. 이 아이템 쓸 만하겠냐고.
신입은 확인해 보겠다면서 총과 재킷, 신발을 가지고 갔고 이내 대답을 해 주었다.
[초월자와 관련된 아이템이에요!]흰 꼬리 델로우즈. 평범한 고양이었지만 용을 잡아먹고 성장한 초월자. 살쾡이 시리즈는 다름 아닌 일본 던전에서 성현제가 들어간 초월자의 아이템이었다. …살쾡이라더니 결국 고양이였다. 재킷 스킬 이름이 고양이라서 의심스럽긴 했지만. 어쩐지 그때 나머지 살쾡이 세트가 뜬금없이 인벤토리에 들어 있다 싶더니 성현제, 델로우즈를 잡은 보상 같은 거였던 모양이었다.
[장갑과 허리띠의 자세한 성능은 알 수 없지만요. 어, 원래 있던 게 아니라 허니가 제가 준 아이템을 가지고 델로우즈와 관련된 세계에 들어가서, 그곳에 맞게 바뀌면서 나타난 일종의 상징, 초월자 같은 이름 있는 존재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그런 아이템 같은 건데…….]신입이 뭐라뭐라 설명을 길게 했지만 결론은 시스템에 제대로 등록되기 전이라 확인을 못 해 준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초월자의 아이템이라면 포인트 쓸 만하지 싶었다. 대여 귀속이라서인지 등급 대비 필요 포인트가 낮기도 했다.
그렇게 살쾡이 시리즈의 남은 아이템 두 개도 마저 갖추었다.
[얼룩 살쾡이의 장갑 – S급하얀 끝부분이 잘려 나간 반장갑. 사나운 척하는 동물의 힘이 깃들어있다.
뾰족 발톱(A) – 손톱이 날카로워지며 공격 속도 상승
※한유진 대여 귀속]
끝에 희미하게 흰 칠이 된 검은 반장갑으로 전투계 스킬이 붙어 있었다. 다만 A급에 공속 상승이란 보조 효과도 붙어 있는 탓에 손톱의 공격력은 효과 두 배를 받아도 그리 높지 않았다. 손톱 쓰느니 그냥 A급 단검 휘두르는 게 나을 정도라 사실상 공속 보조 스킬에 가까웠다.
상급 헌터에겐 대박이겠지만 나한텐 꽝인가 싶었는데 공격 속도 상승이 무기에도 적용이 되었다. 즉, 마력총 충전이 빨라진다는 소리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들고 있는 무기 대상 적용이라면.
‘다른 사람 무기를 같이 들어도 된다는 뜻이지.’
공격 스킬 효과 두 배 적용해 주면서 동시에 무기 공속까지 높여 줄 수 있게 되었다.
[점박이 살쾡이의 허리띠 – S급부드럽고 가느다란 허리띠. 가볍고 유연하게 움직이는 동물의 힘이 깃들어 있다.
흐물흐물(A) – 신체가 유연해지며 점프와 착지 능력 상승
※한유진 대여 귀속]
검은색에 버클 부분만 하얀 허리띠에 붙은 스킬은 신체 능력 향상이었다. 이런 종류의 보조 스킬은 보통 착용자 신체 대비라 A급 수준으로 능력이 상승합니다~ 는 아니었지만 S급에 비하면 나무토막인 내게는 이 정도만 되어도 감지덕지였다.
각각의 아이템 성능은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섯 개 시리즈를 모두 착용하자 세트 효과가 나타났다.
[어린 흰 꼬리 델로우즈의 장비를 모두 착용하였습니다.] [‘용을 삼킨 고양이’가 ‘드래곤 슬레이어’에 반응합니다!] [세트 스킬 – 흰 꼬리 델로우즈(A), 드래곤 전문가(F)] [‘드래곤 전문가’가 착용자 소속 드래곤을 감지합니다!] [드래곤 전문가 스킬의 등급이 C로 상승합니다!]같은 용을 사냥한 존재라서인지 드래곤 슬레이어 칭호에 영향을 받아 새로운 세트 스킬이 나타났다. 그에 더해 드래곤 전문가 스킬의 등급이 올라갔다. 소속 드래곤은 아마도 키워드에 등록된 노아와 코메트, 마르를 뜻하는 듯했다. 어쩌면 이린과 한결이까지도.
[드래곤 전문가(C) – 잡거나 먹거나 키우거나 등등등! 용종과 용종에 관련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흰 꼬리 델로우즈(A) – 어린 델로우즈부터 초월자 델로우즈까지. 델로우즈로 완벽하게 변신 가능. 단, 스탯은 변동 없음. 스킬 등급에 따라 델로우즈의 스킬 사용 가능.]둘 다 뭔가 참 애매했다. 드래곤 전문가는 용종 몬스터를 상대할 때 유용하지 싶지만 내가 던전 공략 따라갈 일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델로우즈 변신 스킬은.
‘…스탯이 그대로면 무슨 소용이야.’
초월자 모습으로 변해 봤자 F급이면 종이호랑이 아니냐. 심지어 어린 델로우즈는.
‘그냥 고양이였지.’
미국으로 출발하기 전의 일을 떠올리며 높다란 건물들을 올려다보았다. 빌딩 사이로 새파란 하늘이 조각조각 비춰졌다. 고개를 숙여 시선을 내리자 조그만 두 앞발이 눈에 들어왔다. 얼룩장갑이라더니 발만 하얬다. 검은 재킷이라 몸은 까맣고, 하얀 총은 꼬리 끝이었고, 그리고 신발은.
고양이 발바닥을 들여다보았다. 지금은 평범하게 분홍색이었지만 날렵한 흡착 스킬을 쓰면.
‘…….’
금빛으로 반짝거렸다. 부츠와는 반대였다. 점박이 허리띠는 검은색 바탕이라선지 티가 나지 않는 듯했지만 버클 부분, 배에 흰 점처럼 털이 희었다. 전에 집에서 변신해 봤을 땐 기겁해 바로 원래대로 돌아왔기에 자세히 살펴보진 못했었는데.
‘성현제 꼬리는 완전 하얬으니까 초월자는 거대 흰 고양이가 되는 걸까.’
아무튼 지금은 덕분에 무사히 호텔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예림이가 나를 발견했을 땐 들키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완벽한 변신이라더니 역시 S급들도 알아보지 못했다.
‘이건 애들에게 말해 주지도 않았고.’
그러니까 그게… 세트 스킬 효과를 밝히는 게 쪽팔렸다. 특히 예림이가 알까 봐 무서웠다. 집에서는 내내 고양이로 있어 달라고 매달려 올지도 모르니까. 분명 목에 리본도 달 테고 옷도 입힐 테고 얼마 안 지나 사람 옷보다 고양이 옷이 더 많아지겠지. 색색깔로. 레이스에 프릴도 백 퍼센트 달릴 게 틀림없었다.
그러니 가능한 끝까지 감춰야지. 들키면 안 돼.
미리 확인해 둔 맨해튼 지도를 떠올리며 골목으로 들어갔다. 델로우즈로 변신하자 내가 지니고 있는 액티브 스킬들은 제대로 쓸 수가 없었다. 완벽 변신이라더니 몸의 마력 흐름까지 달라진 탓이었다. 독 저항이나 공포 저항 같은 패시브 스킬과 착용 아이템 스킬은 별문제 없어서 다행이지만.
‘은신을 못 쓰는 게 아깝네.’
그래도 별일 있겠냐, 그냥 고양이인데. 은혜는 그대로기도 하고. 살쾡이 세트는 몸의 일부처럼 되었고 다른 옷가지나 폰 같은 건… 잘은 모르겠지만 어떻게 잘 보관되는 모양이었다. 집에서도 원래대로 돌아왔을 때 멀쩡히 옷 입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은혜는 목걸이화되었다. 그 밖의 다른 아이템은 착용 불가로 인벤토리행이었다.
다시 말해.
‘…생각하지 말자.’
동물은 옷 안 입는 게 보통이고. 털이 옷이고. 음, 그렇지, 자세한 상상은 하지 말자.
이대로 호텔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뒤 사람으로 돌아가 얼굴 가리고 택시 잡아타면 된다. 그리고 섬 근처에 도착해서 배 몰래 타서… 시간 내에 도착할 수 있을진 모르겠네. 하지만 지각하지 말란 소리는 없었으니까.
아무튼 잡히지만 않으면-.
-우으으웅, 우웅.
그때 나직한 고양이 소리가 들려왔다. 뉴욕에도 길고양이들이 있겠지, 당연히. 근데 왜 화가 났을까. 고양이들끼리 싸움이라도 났나.
-우우우웅, 냐아악!
휙, 하고 거뭇한 게 내 앞으로 튀어나왔다. 덩치가 제법 큰 얼룩고양이였다. 안녕, 이라기엔 귀도 젖혔고 꼬리도 부풀고……. 앗, 잠깐만.
‘이거 그… 영역 침입인 건가?’
생각해 보니 지금의 나는 낯선 고양이였다. 얼룩고양이가 매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나를 노려보았다. 갑자기 나타난 침입자가 경고를 해도 아무 반응 없이 빤히 마주보고 있다, 라는 상황이구나. 지금 내 귀랑 꼬리 어떻게 되어 있지? 아니 저기요, 제가 고양이 말을 잘 몰라서…….
-냐, 먁…….
내가 어설프게 소리를 내자 얼룩고양이가 귀를 파닥거렸다. 그러곤 입을 벌리며.
-하악!
성질을 냈다. 이, 이건 예상 못했는데. 소리를 듣고 온 건지 다른 고양이 한 마리도 건물 틈새에서 머리를 빼꼼 내밀었다. 아니, 야. 싸울 생각 없는데. 그냥 지나가기만 할 거야, 라고 마음으로 호소하며 무심코 한쪽 손을, 앞발을 들었다.
-햑! 우우웅!
그러자 얼룩고양이가 머리를 뒤로 훅 빼며 자기도 앞발을 휘둘렀다. 아차, 잠깐, 잠깐. 항복합니다, 항복. 얼른 발라당 몸을 뒤집어 배를 드러냈다. 그리고 열심히 시선도 피했다. 이것 봐, 안 싸워. 잡아 잡수세요, 하고 배를 내놨잖아. 봐줘라.
얼룩고양이가 여전히 사납게 우웅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고양이랑 싸워야 하나. 그건 좀……. 도망칠까 고민하는 그때.
……!
얼룩고양이는 물론 구경하던 고양이들도 돌연 기겁하며 도망쳤다. 뭔가 싶어 벌떡 몸을 일으키려는 내 배를 붉은 털의 발이 내리눌렀다.
-앵!
뭐, 피스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