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820
819화 갈림길 (1)
“어떻게 된 거지.”
멍하게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또한 당황스러웠다.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은 분명 스물다섯 살의 유현이었다. 이 시점에는 목숨을 잃었던 내 동생. 그런데 두 다리로 버티고 서서 보고 듣고 말하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정원사 놈이 살려 낸, 움직이게 만든 직후의 유현이인가?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작은 눈송이 하나가 유현이의 입 근처로 떨어지다, 흘러나오는 숨결에 부드러이 밀려 나가는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뺨에 내려앉은 눈이 녹아 이내 물방울로 변한다. 숨을 쉬고 따스한 체온을 지니고 있다.
어째서.
하얀 나무를 바라보던 유현이가 상태창을 열었다. 유현이의 기억이라선지 내 눈에도 스킬이, 칭호가 비춰졌다.
[한 명의 세계(L)당신의 세계는 단 한 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당신의 세계에 다른 이가 발을 들이거나 세계, ‘한유진’의 완전한 사망 시 칭호가 사라집니다.
칭호의 소멸은 세계의 소멸입니다.
세계의 소멸은 당신의 소멸입니다.]
한 명의… 세계……? L급이라는 것도 놀라웠지만 칭호 설명은 더더욱 당황스러웠다. 내가 사망하면 칭호가 사라지고, 그럼 유현이도 죽는다니. 대체 뭐 저런 칭호가 다 있어! 심지어 사망이라는 심각한 페널티를 가지고서도 주는 스킬도 능력치도 전혀 없었다.
그 칭호를 확인하고 유현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동시에 내 가슴이 묵직하게 저려 왔다.
‘유현이에게는… 위로가 되었겠구나.’
내가 곁에 없었을 때도, 던전에 들어가 생사를 몰랐을 때도. 저 칭호로 말미암아 나의 존재를 느끼고 안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의 유현이에게는 없는 칭호였다. 내가 각성한 뒤에 가지게 된 걸까. 던전에 들어 간 형을 걱정하다 못해 얻게 된 칭호인 걸까.
‘…하지만 그렇다기엔 등급이 너무 높아.’
저것도 초월자의 수작인가. 그러나 신입 쪽은 까맣게 모르는 듯했다. 초승달이나 디아르마 놈도 아닐 듯하고.
‘하얀새?’
그 이름이 떠올랐다. 유현이와 계약한 초월자는 디아르마였다. 하지만 동생의 시신을 데리고 간 것은 별을 헤아리는 새라고 했었다. 눈이 내리는 나무를 사랑하고 지키려 한 초월자. 미래예지종. 대체 무엇을 보고 어떠한 길을 선택하여 이런 짓을 저지른 거지.
속이 불타듯 뜨거웠다. 반대로 머릿속은 차갑게 식었다.
스물다섯 살의, 스물여섯 살의 유현이는 내게 돌아왔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유현이는 그것을 보여 주려 하고 있었다. 내가 아직 모르는 사실들을.
-한유진의 불꽃.
누군가 말했다. 유현이와 내가 동시에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들었다. 새하얀 가지 사이로 새하얀 눈을 헤치며 새하얀 깃털의 새가 날개를 접는다.
별을 헤아리는 새.
-나는 미래예지종. 무수한 갈림길을 헤매는 방랑자다.
“…초월자인가.”
유현이가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하얀새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희게 쌓인 눈 위로 내려섰다. 새의 모습이 변화한다. 크기가 줄어들며 머리카락 대신 흰 깃털이 베일처럼 감싸 늘어진 아래 여성체의 형상이 나타난다. 흰자위 없는 검은 두 눈에는 긴 속눈썹이 드리우고 매끄러운 이마와 뺨에는 별과 같은 반짝임이 흐르고 있었다.
“나와 계약을 한 초월자는 저주독룡종의 주인이었을 텐데.”
-그가 계약과 함께 너를 내게 넘겼다.
하얀새는 입술을 움직여 말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의사를 전달해 왔다.
-디아르마에게는 죽어 자신의 세계에서 벗어난 시신을 이용할 능력이 없으니. 원맥자가 강하다 하나 그것은 세상 내에 속할 때의 이야기이다.
세상 밖은 초월자들의 구역이었으니. S급, SS급이라 할지라도 우리 세상의 하급 헌터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다고 유현이를 다시 우리 세상으로 돌려보낼 능력은 되지 않았던 거겠지. 가능하다고 해도 힘의 소모를 생각한다면 손해 가는 짓일 테고.
-그는 용종만을 종속자로 삼으니 더더욱 쓸모가 없는 시체일 뿐이다. 만일 한유진에 대해 알았더라면 인질로서 잡아 두었겠으나, 디아르마는 미래를 볼 수 없으니.
하얀새의 말에 순간 소름이 끼쳤다. 만약 하얀새가 유현이를 데려가지 않고 계속 디아르마의 손에 남아 있었더라면……. 그럼 디아르마는 분명 유현이를 인질 삼아 나를 협박했겠지. 나는, 심지어 그때의 나라면 디아르마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디아르마는 나를 경계할 필요 없는 평범한 F급으로 여기고 유현이를 하얀새에게 건네주었다.
“형에 대해 알았더라면, 이라니.”
유현이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하지만 동시에 태도는 좀 더 공손하게 바뀌었다.
“형에게, 한유진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겁니까.”
나에 대해서만 묻는 목소리에 유현이 너는! 하고 소리치고 싶어졌다. 야, 넌 죽었어. 죽은 직후라고. 네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는 왜 묻질 않아. 이때 살아났었던 건지 아니면 그렇게 보이기만 하는 건지. 내 속은 바싹바싹 타들어 가고 있었지만 유현이의 시선은 곧게 단 한 가지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형은 무사합니까.”
-한유진은 시간을 되돌렸다.
“…시간을.”
-5년 전 한유진이 각성하기 전의 시기로. 그 세계만이 바뀌었다. 그렇기에 네가 여기 있음에도 스무 살의 한유현이 존재하게 되었다.
“어째서!”
유현이가 소리쳤다. 동생의 주먹이 꽉 쥐인다.
“내가 있으면, 결국 또다시…….”
똑같은 일이 반복될 거라고 유현이가 이를 악물었다. 아니야 유현아. 달라졌어. 많이 달라졌어. 네가 나를 지켜 낸 덕분에.
‘맞아, 형.’
스물여섯 살의 유현이의 잔여 의식이 웃으며 대답했다.
‘이제는 알고 있어.’
‘그렇기에 형에게 보여 주고 싶었어.’
‘내 마력이, 존재가 아직 남아 있을 때. 형에게 직접 전해 주고 싶었어.’
…이제는 나를 믿어 주기에. 유현이가 내게 무언가를 말하려고 망설였던 모습이 생각났다. 지금 이 기억은 내게 부담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머뭇거렸던 거겠지. 마음을 다잡고 유현이가 보여 주는 광경에 집중했다.
-미래는 끝없는 갈림길이다. 모래알 하나의 움직임이 수십 수백 개의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나 또한 그 모든 미래를 전부 눈에 담을 수는 없기에, 미래는 무한하며 정해지지 않았다.
하얀새가 말을 이었다.
-그러하여 나는 침묵해 왔다. 미래예지종의 정점으로서 수많은 미래를 바라보나 입에 담은 예언이 틀어질 시 초월자로서의 격이 깎여 나가는 업을 짊어졌기에. 가장 가능성 높은 미래라 하여도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극히 불가능에 가까운 미래라 하여도 다다를 수 없는 것은 아니니.
“형에게 가장 가능성 높은 미래는 무엇입니까. 스무 살의 한유현은 또다시, 형을.”
유현이가 말을 하다 말고 짧게 숨을 삼켰다.
“…제게 원하는 것을 말씀하십시오.”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기에 자신을 데려왔고 미래예지종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며 유현이가 물었다.
-나는 미래를 쉬이 입에 담을 수 없다. 그러나 디아르마의 계약을 이어받아 너는 내게 일시적으로 종속되었다. 내가 본 갈림길을 네게 직접 전해 주겠다.
펄럭, 깃털로 이루어진 머리카락이 새의 날개처럼 너르게 펼쳐졌다. 눈이 춤추듯 흩날린다.
-한유진과 그의 불꽃이 갈 수 있었던 길들을.
색색의 물감을 쏟은 것처럼 주위의 풍경이 얼룩진다. 삐리릭, 새 소리가 들렸다. 어딘지 모를 숲속이었다. 그곳에 커다란 배낭을 멘 내가 앉아 있었다. 불안한 표정으로 이따금 주위를 살피며 경계한다.
‘…스물 초반?’
지금의 나보다도 앳된 티가 남아 있었다. 적어도 두어 살은 더 어리지 않을까 싶었다. 불안해하고는 있지만 의외로 얼굴에 그늘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내가 벌떡 일어났다.
“유현아!”
낮게 부르며 걸음을 옮긴다. 그쪽에서 배낭은 물론 양손에도 짐을 가득 든 유현이가 나타났다. 유현이 또한 확실히 더 어려 보였다.
“괜찮아? 들키진 않았고?”
“응. 괜찮아.”
동생을 살피며 내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 혼자면 일본이든 중국이든 쉽게 건너갈 수 있었을 텐데.”
“형을 두곤 아무데도 안 가.”
-한유현이 한유진을 떠나지 않았던 길.
하얀새의 말이 들려왔다.
-각성을 했으나 헌터가 되지도, 길드를 만들지도 않고 숨어 살기로 하였다.
…어쩌면 있었을지도 모르는 가능성이었다. 동생이 S급 헌터이기에 내가 위협받았다. 유현이는 해연을 만들어 날 보호하려 했지만 또 다른 방법,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쳐 숨는 길도 있었다.
산에 텐트가 쳐졌다. 다행히 추운 날씨는 아니었다. 나와 동생이 나란히 앉았다. 집은 물론 제대로 된 음식도 없었지만 표정은 밝았다. 함께 캠핑이라도 온 듯한 분위기였다.
“범죄자도 아닌데 누명이나 덮어씌우고. S급 각성자라도 미성년자잖아. 왜 굳이 찾으려고 하는 거람.”
내가 투덜거렸다. 아무래도 유현이에게 수배령이 떨어진 모양이었다. S급 각성자로 수배했다간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것은 물론 해외에서 빼돌리려 들 테니 적당한 죄목을 붙인 듯했다. 중급이 아닌 상급, 그것도 S급의 실종을 국가로서 내버려 둘 순 없었을 것이다.
“나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평생 숨어 산다더라도 상관없지만, 형은 정말로 괜찮겠어?”
“유현이 너 있잖냐. 괜찮아. 너야말로 걱정이지. 아니, 무슨 각성했다고 어린애더러 목숨 걸고 던전에 들어가래? 세상이 미쳤지. 한창 공부해서 대학 가야 할 애를!”
언젠가는 세상이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을까. 그러니 일단은 안전하게 숨어 있다가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며 내가 웃었다. 바싹 붙어 앉은 형제를 바라보았다. 동생과 헤어진 적 없는 한유진이라니. 무작정 도망친 게 좋은 방법이라곤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부러웠다.
나도 유현이한테 같이 도망치자고 해 볼걸 그랬나. 그랬으면.
“형!”
유현이가 소리쳤다. 그 앞에 몬스터가 쓰러져 있었다. 하급이 아니었다. 최소한 중급 이상의 몬스터다.
“대답해, 형!”
찢어진 텐트가 보였다. 흩어진 물건과 나뒹구는 배낭. 그 옆으로 누군가의 팔의 일부가 떨어져 있었다.
-패륜아들이 양육자의 처리를 위해 쓰는 방법 중 하나. 고의 던전 브레이크.
하얀새가 알려 주었다.
-양육자는 대부분 등급이 낮다. 그 홀로 있을 때 근처에 던전을 발생시키고 곧장 포화 상태로 만드는 것이지.
…S급으로 각성한 유현이가 던전을 막지 않고 숨어 버렸기에. 패륜아는 그 양육자를 살해했다. 몬스터에 의해 양육자를 잃은 태생 S급이 복수하기를 바라며. 하지만 유현이는.
“…형.”
검은 불길이 일렁인다. 몬스터를 태우고 산 전체로 퍼져 나간다. 내 시체 또한 불꽃 속으로 사라졌다. 유현이의 모습이 나를 삼킨 불길에 녹아든다. 흔적 하나 없이.
-한유현이 헌터로서 던전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한유진은 어떠한 방법으로든 패륜아의 손에 살해당하게 된다. 내가 본 모든 길에서.
다시 풍경이 바뀌었다. 대형 TV에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유현 헌터의 형 한유진이 살해당한 후 뒤늦게 던전을 나온 한유현 헌터가 형의 뒤를 따랐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습니다.]의지할 가족이라곤 형 하나뿐인 미성년자 S급과 헌터계의 알력 다툼, 해외 헌터계의 견제 등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한유진을 곁에 둔 채 헌터가 된다 하여도 한유진의 사망 가능성은 높다. 그러나 이 경우 살아남는 길 또한 다수였다.
유현이가 무조건 헌터가 되어야만 내가 살 길이 생겼다는 건가.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으아악!”
“도망쳐!”
비명과 몬스터의 괴성이 뒤섞였다. 던전 속이었다. 달아나던 내가 몬스터에게 물어뜯긴다. 내팽개쳐진 몸뚱이가 몇 번 꿈틀거리다가 이내 움직임을 멈추었다.
-네가 선택하고 걸어온 길에도 수많은 갈림길이 존재했다. 한유진이 던전 안에서 사망하고 네가 뒤를 따르는 길들이.
…그래. 사실 나도 언제든 잘못될 수 있었지. 그래서 유현이가 내가 헌터 일 하는 것을 그 토록이나 싫어했었고.
-그러나 사망 가능성은 비교적 낮은 편이었다. 한유진은 등급과 적성에 비해 헌터로서의 발전이 빠른 편이었으니.
위험에 뛰어드는 것이 도리어 안전 했었다 이건가. 또 다른 가능성이 눈앞에 나타났다.
“이젠 지긋지긋해.”
차디찬 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발을 짚은 내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형이 유일하게 날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이야. 그런데 가지 않겠다고?”
“…나는.”
“그 알량한 양육자 칭호에 과분할 정도로 비싼 값을 치러 주겠다잖아.”
“나는, 유현이 네가─!”
내 목소리가 순간 높아졌다. 분노가 깃들어 있던 두 눈이 이내 허물어진다. 유현이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내가 얼른 눈을 피했다.
“세성 길드장이 형을 데리고 떠나면 국내 1위 길드는 해연이야. 형을 대가로 주요 던전 권리도 일부 넘겨받기로 했고.”
…그럴 리가 없지. 저건 다 나를 설득하기 위한 말일 것이다. 나를 성현제에게 보내기로 결정한 유현이. 이런 선택지도 분명 있었지.
“나를 동생이라고 생각한다면 형으로서, 날 키운 양육자로서 한 번쯤은 제대로 된 도움을 줘 보지 그래. 아니면 계속 그렇게─.”
“알겠어! 알겠다고…….”
거의 울먹이듯이 내가 가겠다고 말했다. 돌아서서 밖으로 나간다. 문이 닫히고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바라보던 유현이의 눈매가 괴롭게 일그러졌다.
“납치라도 하는 기분이로군.”
공항 라운지에 멍하니 앉아 있는 내게 성현제가 말했다. 짐은 거의 없었다. 나는 성현제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가방을 끌어안고 있었다.
-한유진을 안전한 곳으로 떠나보낸다더라도 길어야 삼 년, 빠르게는 두어 달 만에 한쪽이 사망하고 다른 한쪽이 뒤따르게 된다. 만에 하나 둘이 함께 무사히 살아남는다더라도.
잘랑, 잘랑. 방울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이 하늘을 올려다본다. 대낮인 나라에도 한밤중인 나라에도 달빛이 내리비친다. 나와 유현이도 그 달빛을 바라보았다. 헌터로서 홀로 낡은 집에 있는 나도 각성하지 않고 유현이의 보호를 받고 동생의 집에 함께 있던 나도.
전 세계의 상급 헌터들이 불길함을 느꼈다. 던전이 일시에 사라졌다. 유현이가 내게 달려왔다.
“형!”
그리고.
쩌-억
세계가 부서졌다. 차오른 성현제를 수거하기 위해 내려온 초승달의 달빛이 세상을 부순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나와 유현이 또한 그 속에 휩쓸렸다.
-멸망은 피할 수 없다.
적막 속에서 하얀새가 말했다.
-월식의 유산을 쥔 작은 달은 실패하고 그 유산으로 말미암아 결국 만월이 되었을 것이다.
송 실장님의 약탈로 스스로를 제어하려던 게 실패하여… 오히려 새로운 경험이 되어 성현제를 채웠을 거란 소린가.
-더는 기다릴 필요 없어진 초승달은 네 세상을 부수고 만월을 손에 넣었겠지.
나와 유현이가 어떻게든 살아남았더라도 끝은 종말이었다. 하얀새가 날갯짓 쳤다. 회귀 전의 시간들이 밀려 나간다. 이어.
“형. 던전 브로커들은─.”
“미안.”
시간을 되돌린 나였다. 내가 유현이에게 사과하고 끌어안는다. 함께 저녁을 먹고 유현이의 집에 머물렀다.
-한유진은 다시 한번 시작하게 되었다.
나와 유현이의 모습이 사라지고 설원이 나타났다. 스물다섯 살의 유현이가 하얀새를 바라보았다.
“방금 그게… 형의 현재 모습입니까.”
-그렇다. 한유진의 불꽃.
하얀새가 입을 열었다.
-너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한유진이 살아남기를, 살아가기를 바라는가.
“형이 살기를 원합니다.”
망설임 하나 없이 유현이가 대답했다.
-향하는 길이 괴롭고 험하여도, 그 마지막에 네가 없다 하여도.
“저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형은…….”
유현이의 눈매가 일순 힘겹게 일그러졌다.
“…충분히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제 세계를 지키고 싶습니다.”
-네게 이후의 갈림길을 보여 주겠다.
눈과 깃털이 휘몰아쳤다. 배구공이, 신입이 통 튀었다.
[허니의 동생은 살아 있어요! 이 세상 밖에요.]나도 그리고 미래의 환영 속의 나도 굳었다. 만약을 보여 주는 것일 뿐이다. 그럼에도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무, 무슨 소리야!”
[회귀 전의 허니 동생은 별개의 존재로 나뉘었거든요. 죽어서 세상 밖으로 나가긴 했는데, 갓 죽은 S급은 살려 내기 어렵지 않아요. 허니 세상으로 돌아올 수는 없지만요.]신입의 자세한 설명이 이어졌다. 그것을 듣는 나의 얼굴이 혼란으로 가득 찼다가 기쁨이 깃들었다가 단단한 각오로 굳어진다.
“유현이를 되찾겠어.”
무슨 수를 쓰든, 어떻게든. 죽은 유현이가 아닌 살아 있는 유현이가 세상 밖에 붙잡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나는.
-네가 살아 있다면 한유진은 더욱 필사적이게 될 것이다. 스스로는 물론 주위를 돌볼 여유조차 잃고서.
그럴 것이다.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은 물론 심지어 현재의 유현이마저 뒤로한 채 회귀 전의 동생을 되찾으려 발버둥 쳤겠지. 스무 살의 유현이를 순수하게 품에 안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형! 대체 왜 그래!”
스무 살의 유현이가 소리쳤다.
“나를 봐! 날 제대로 보라고!”
내가 동생의 눈을 피한다. 스물다섯 살의 유현이가 죽었다고 여겼으면 그래도 일단 산 사람부터 챙겼겠지. 하지만 둘 다 살아 있다면… 나를 위해 죽은 동생을, 홀로 붙잡혀 있는 동생을 더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혹여 잘못되기라도 할까봐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은.
병실 침대 위에 초췌해진 내가 누워 있었다. 무리하고 무리하여 더는 버티지 못할 상태가 되어 버린 한유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