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227
비무회까지의 한 달 동안, 김현성의 시간은 바쁘게 흘렀다. 서량 비무회는 발할라 세계에서 오 년에 한 번 열린다. 발할라가 오픈한지 이제 이 년이 넘었기에, 플레이어에게 있어서 서량 비무회는 이번이 처음이다. 사대 무술관의 제자 네 명밖에 나갈 수 없는 비무회라, 본래는 이렇게까지 주목을 받지 않겠지만,
라덴이 백호 무술관의 대표로 나간다. 그것만으로도 전 세계의 발할라 유저들이 주목하기에는 충분했다. 비록 루카스에게 한 번 죽었기는 했어도, 라덴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는 발할라 PVP의 일인자였다. 라덴 이전에는 랭킹 2위인 카란이 PVP의 일인자로 꼽혔었지만, 아직까지 카란과 라덴의 PVP는 성립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 라덴이 카란보다 보여준 것이 더 많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라덴을 발할라 PVP의 일인자로 여기고 있었다.
덕분에 주목도는 김현성의 상상 이상이었다. 현재 김현성의 발할라 레벨은 123. 한국 랭킹 20위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레벨이었지만, 김현성의 플레이어 아이디인 ‘라덴’의 인기는 한국 랭킹 1위인 루벡을 가뿐하게 넘어설 정도였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김현성, ‘라덴’에 열광하는 것은 한국인들뿐만이 아니다.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 것인지.”
인기가 많아서 좋은 것은 없다. 김현성은 최근 들어서 그것을 절감하고 있었다. 차라리 HS1123으로 활동하던 때가 좋았을 지도 모른다. 김현성은 한숨을 푹 내쉬면서 목까지 채운 셔츠의 단추를 어루만졌다.
“가끔은 이런 것도 해줘야 돼.”
“누구를 위해서요?”
“네 팬들을 위해서.”
투덜거리는 김현성을 향해서 이근성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팬들. 그 말에 김현성은 할 말을 잊고서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머리 만지지 마. 기껏 세팅한 머리인데.”
“…생각해 봤는데, 나는 왁스 바르는 것보다 그냥 막 헤집은 머리가 나은 것 같아요.”
“내가 보기에는 왁스 바른 것이 나아.”
이근성의 대답에 김현성은 힘없이 어깨를 늘어트렸다.
지금 김현성은 비무회 관련 공식 인터뷰를 앞두고 있었다. 여태까지 인터뷰 요청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들어왔지만, 단 한 번도 그런 요청에 응했던 적은 없다.
이번에도 당연하게 거절하려고 했는데, 이근성 측에서 이번에 거절해서는 안 된다고 붙잡았다.
넌 딱히 신비주의인 것도 아니잖아.
그것을 따지고 든다면 김현성은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신비주의는 무슨. 할 거 다 하고 다니는데. 공개 데이트도 하고, 공개 고백도 하고.
최근 일들도 있고. 이미지 관리라고는 안 할 테니까, 어느 정도는 매스컴에 호응해 주는 것이 좋아. 매스컴을 적으로 돌리면 좋을 것이 없으니까.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그냥 귀찮으니까 하기 싫었는데. 이근성은 연민서까지 데리고 와서 김현성을 설득했다. 그렇게 되니 김현성은 뭐라 반박하지 못하고 이근성의 말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는 모두 다 이근성이 해결해 주었다. 인터뷰를 받아들이고, 장소를 정하고. 그 외의 모든 일들.
“내가 네 소속사 사장도 아니고, 매니저인 것도 아니고.”
“누가 해달라고 했나…”
김현성이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근성은 그 말을 들었지만 못 들은 척 했다.
“이것만 알아둬. 정치적, 성차별적 발언은 하지 말 것. 욕하지 말 것. 모든 질문에 대답하지 않아도 상관은 없지만, 그렇다고 무시하지는 말 것. 그리고 이게 중요한건데.”
이근성이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반말하지 말 것.”
“…사람을 대체 뭐로 보는 거예요? 저 되게 예의바른 사람이거든요.”
“그런 거로 치자.”
이근성은 건성으로 대답하면서 손목에 채운 시계를 확인했다.
“슬슬 가자.”
“…저 조금 긴장되는데. 청심환 같은 것 없어요?”
“내가 너 먹을 청심환까지 챙겨줘야 하냐?”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이근성은 주머니에서 청심환을 꺼내 김현성에게 건네주었다.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민서가 너 먹이라고 챙겨주더라.”
“직접 주면 좋을 텐데.”
“갑자기 해외 화보 촬영 잡힌 거잖아. 나도 직접 받은 것은 아니야. 민서가 나보고 사놓으라고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기에 사둔 거지.”
연민서는 한국의 랭커이면서 잘나가는 모델이다. 최근 그녀는 갑자기 잡힌 해외 화보 촬영 때문에 외국으로 나가 있었다. 김현성은 이근성이 건넨 청심환을 낼름 입 안에 밀어넣었다.
“다 끝나면 전화라도 해야겠네요.”
“영상통화 해야 할 걸.”
“당연히 그래야죠.”
청심환 덕인지, 아니면 단순한 플라시보 효과 때문인지. 씁쓸한 청심환을 씹으니 떨리는 가슴이 조금 진정되었다. 많은 대중들 앞에 나가 인터뷰를 하는 경험은 처음이었기에 가슴이 쿵쾅거리면서 떨렸다.
“다녀오겠습니다.”
김현성은 그렇게 말하면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짧은 복도를 지나 인터뷰 장소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김현성이 본 것은, 팡팡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였다.
“…후우.”
기자들 쪽에서 뭐라고 외쳐대고 있었지만, 김현성은 당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직 인터뷰가 제대로 시작된 것도 아니다. 김현성은 침을 꿀꺽 삼키면서 자리로 향했다.
그곳에는 알케나. 정하란이 앉아 있었다. 한국에서 김현성과 정하란, 둘이 서량 비무회에 나가게 되었기에, 둘이 동시에 인터뷰를 하게 된 것이다. 김현성은 바로 옆에 앉은 정하란을 힐긋 보았다.
두 달이 다 되어가는 동안 정하란과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가끔 먼저 인사를 보내도 돌아오는 것은 짧은 단답. 김현성도 이어지지 않는 대화를 굳이 붙잡는 성격은 아니었기에, 그런 어색한 관계는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김현성이 입을 열었다. 정하란과 함께 인터뷰를 하게 되었지만, 오늘의 메인은 김현성이다. 김현성의 인사가 끝나자 다시 한 번 카메라 플래시가 터져나왔다.
모인 기자들의 인종은 제각각이었다. 한국인도 많았지만, 외국인도 많았다. 전 세계 발할라 유저들 중에서 서량 비무회에 출전하는 플레이어는 김현성과 정하란 둘 뿐. 애초에 비무회의 출전 인원이 넷밖에 되지 않고, 비무회는 플레이어의 이벤트라기보다는 서량 NPC들의 이벤트다. 김현성과 알케나가 출전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까지 이슈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번 비무회에서 백호 무술관의 대표로 출전하게 되셨는데, 소감은 어떠십니까?”
“떨립니다. 플레이어와 PVP를 하는 것과는 경우가 다르니까요. 제가 소속된 백호 무술관의 관주님의 성격이 워낙에 괴팍해서, 저보고 우승하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으시더라고요.”
마지막은 농담처럼 너스레를 떨었다. 반응은 제법 괜찮았다.
“백호 무술관의 관주라면, 지난번 서량에서 염화를 제압했던 그 NPC 아닙니까? 그 일을 통해서 염화가 백호의 제자가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발할라에 존재하는 다섯 괴물 중 하나를 사제로 둔 것인데, 그에 대한 소감은 어떻습니까?”
“사제라고 해도 제 쪽에서 염화를 어떻게 할 수는 없습니다. 으음… 그래도 굳이 말하자면. 염화는 막내로서 일을 열심히 하고 있기에, 사형으로서는 뿌듯하네요.”
“지난 번 루카스와 랭커들의 합공에 대해서 한 말씀 해주십시오.”
“어… 저는 비무회 관련 인터뷰를 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니, 그런 질문은 받지 않겠습니다.”
“이번 비무회에서 현무와 주작 무술관 출신의 NPC들과 싸우게 되었는데,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하고 있습니까?”
“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런 질문들이 멈추지 않고 나왔다. 김현성은 힘겹게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주면서, 정하란 쪽을 힐긋 보았다. 질문은 김현성에게 집중되어, 정하란에게 조금도 향하지 않고 있었다.
“알케나님은 라덴과 싸우게 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그런 라덴의 시선을 알아차린 것일까. 기자 중 한 명이 정하란에게 질문을 던졌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앞을 보고 있던 정하란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과거, 판타지아에서 알케나님은 라덴을 지지하던 한국의 랭커 중 하나였습니다. 그 시절 판타지아 투기장에서도 몇 번이나 PVP를 했었고, 단 한 번도 라덴을 상대로 승리하지 못했었지요. 이번에는 어떨 것이라 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무난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기자들은 짓궂었다. 정하란의 태도가 어색하고,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몰아붙인다면 기삿거리가 될 만한 발언을 할지도 모른다. 기자들은 본능적으로 그를 느끼고서 정하란에게 질문 공세를 퍼붓기 시작했다.
“알케나님의 레벨은 116. 라덴님과 레벨 차이가 꽤 있는데, 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최선을 다하겠…”
“상대는 라덴입니다. 발할라에서 1:1 PVP로 패배한 경험이 없는 라덴. 승리를 장담하고 계십니까?”
“…장담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최선을…”
“알케나님과 라덴님은 발할라 내에서 상당한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라덴이 스토리 퀘스트를 수행할 때에, 알케나님은 새턴을 비롯한 다른 플레이어들과 함께 라덴을 돕기 위해 키아미르로 갔었지요. 두 달 전에 라덴과 루아노스가 공식적으로 연인 관계를 인정하였는데, 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질문이 날아왔다. 가십에 대해 캐묻는 짓궂은 질문이었다. 김현성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질문을 던진 기자를 바라보았고,
정하란은 입을 다물었다. 아무렇지 않게 받아 넘기고 싶었지만, 그녀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머뭇거리는 정하란의 모습은 경험 많은 기자들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했다.
“라덴에게 호감을 갖고 있습니까?”
“라덴과 루아노스의 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둘은 동갑인 것으로 아는데, 사적으로 바깥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까?”
“현재 개인적으로 호감을 가진 상대가 있습니까?”
질문의 화제가 완전히 넘어왔다. 정하란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질문들 중에서 무엇 하나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기만 했다. 정하란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해갔고, 그녀는 역한 구토감을 느꼈다. 역시 이런 자리에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김현성이 인터뷰 요청을 받아들였다기에, 충동적으로 함께 나온 것뿐인데. 정하란은 아랫입술을 꽉 씹으면서 치솟는 구토감을 삼켰다.
“잠깐, 정도껏…”
보다 못한 김현성이 나서려는 참이었다. 쿠웅! 정하란의 손이 테이블을 두드렸다. 울린 소리는 가녀린 여자의 힘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랬고, 커다란 테이블이 휘청거리더니 무너져 버렸다. 정하란이 내리 찍은 힘이 테이블의 한쪽 다리를 박살내 버린 것이다.
“저는!”
정하란이 커다란 소리를 냈다. 박살난 테이블을 보고서 입을 반쯤 벌리고 있던 기자들은, 급히 마이크와 카메라를 돌리고서 정하란을 보았다.
“…저는…”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 사실 그에 대한 생각은 애초에 해두질 않았다. 그냥, 쏟아지는 질문 공세에 당황하여 뭐라도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 테이블은 대체 왜 부서진 거야? 알케나는 잔뜩 당황하여 무너진 테이블과 기자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 그러니까…”
마지막 질문이 뭐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머리가 어지러웠고 뱃속이 부글거리면서 끓었다. 헉, 하고 정하란이 숨을 삼켰다. 그녀는 급히 손을 들어 입을 틀어막았다.
“여, 여기까지!”
정하란의 몸이 사시나무 떨 듯이 떨리고 있었다. 김현성은 급히 그렇게 외치면서 정하란을 부축했다. 휘청거리던 정하란의 몸이 김현성에게 기대어졌다. 기다렸다는 듯이 카메라 플래시가 요란하게 터져나왔다.
“여기까지요!”
김현성은 다시 외치면서 정하란을 부축하고서 급히 걸음을 움직였다. 요란한 카메라 셔터 소리와 기자들의 외침이 김현성의 뒤를 따랐다. 정하란을 부축하고서 인터뷰 회장을 떠난 김현성은, 안쪽으로 이어지는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갔다.
“대체 무슨 일이야?!”
그쪽에서 상황을 보고 있던 이근성이 당황하여 물었다. 김현성은 대답하지 않고서 몸을 기대고 있는 정하란을 바라보았다. 덜덜 몸을 떨던 정하란은, 간신히 다리에 힘을 주어 제대로 일어섰다.
“괘, 괜찮아요.”“어디 아픈 것 아니에요…?”
“그냥… 긴장해서. 네. 긴장해서 그래요. 이런 경우는 오랜… 만이라서.”
구토감이 진정되었다. 정하란은 헐떡거리면서 벽에 등을 기대었다. 그녀는 자신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보는 김현성과 이근성을 향해 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제가 폐를 끼쳤네요.”
“아, 아니.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는거죠.”
그렇게 대답은 했지만 상황은 그리 좋게 풀리지 않을 것이다. 정하란이 보였던 반응은 기자들에게는 좋은 먹잇감이 될 테니까.
“…여러가지로 죄송합니다.”
정하란은 그렇게 말하며 김현성과 이근성에게 꾸벅 머리를 숙였다. 김현성은 몸을 돌려 멀어지는 정하란에게 뭐라고 말을 덧붙이기 위해 다가가려 했지만, 이근성이 김현성의 어깨를 붙잡았다.
“너는 안 돼.”
이근성이 힘을 주어 그렇게 말했다.
“네가 괜히 나선다면 가십거리를 더 만들어 줄 뿐이야.”
“하지만…”
“…어휴.”
이근성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는 아직 멀리 가지 못한 정하란의 등을 보면서 말했다.
“내가 갈 테니까. 너는… 일단 먼저 집에 가라. 가는 길에 민서한테 전화 꼭 하고. 이틀 뒤가 서량 비무회니까, 그 준비도 해야 할 것 아냐.”
“…알겠어요.”
김현성의 대답을 듣고서 이근성이 급히 정하란의 뒤를 따라갔다. 김현성은 멀어지는 이근성과 정하란을 보면서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처음부터 안한다고 할 걸.”
애초에 인터뷰를 하겠다고 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김현성은 그런 늦은 후회를 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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