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229
비무회의 룰은 간단하다. 모든 참가자들은, 다른 무술관의 참가자들과 한 번씩 싸운다.
백호의 대표인 라덴은 현무의 대표인 일성과 한 번 싸우고, 주작의 대표인 홍련과 한 번 싸우고, 청룡의 대표인 알케나와 한 번 싸운다.
거기서 전승을 거두지 못하고, 한 번이라도 패배하게 될 경우. 이승 일패를 거두고, 다른 무술관 측에서 똑같이 이승 일패를 거둔 출전자가 있다면. 둘이 최종적으로 한 번 더 싸우게 된다. 그렇게 삼승을 거둔다면 비무회의 우승자가 된다.
‘세 번 다 이겨야 돼.’
백설은 그렇게 말했고, 라덴도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단 한 번의 패배도 용납되지 않는다. 이기고, 이기고, 이기고. 그렇게 비무회에 우승한다.
제약은 많다. 장비의 모든 특수 스킬이 봉인되었다. 무의식으로 사용하던 무르시엘라고의 망토 변환도 봉인되었다. 이번에 새로 얻은 마갑 데모니스의 투기와 투혼도 사용할 수 없다.
사용할 수 있는 것은 가지고 있는 고유 특성과, 백설에게 배운 백호 류의 무술들 뿐.
충분하다.
비무의 순서는 제비뽑기로 정해졌다. 비무회의 첫날. 첫싸움. 라덴이 뽑은 제비는 그랬다. 라덴은 손을 쥐었다 펴면서 비무회의 무대로 올랐다.
ㅡ와아아아! 라덴이 무대로 오른 순간, 요란한 함성이 터져나왔다. 사실상 이 비무회의 무대는 라덴을 위해서 만들어 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래의 서량 비무회는 NPC의 축제지만, 라덴과 알케나가 참전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라덴의 싸움을 관전하기를 원했기에, 발할라의 운영진들은 그 많은 플레이어들을 수용하기 위한 무대를 만들어 주었다.
‘레이크와 싸웠을 때의 콜로세움보다 더 큰가.’
이전의 콜로세움이 플레이어를 위한 장소였다면, 이번에는 다르다. 서량의 축제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겠지. 관중 중에서는 NPC의 숫자가 훨씬 많아 보였다. 비무회의 무대 자체는 서량에 두었지만, 내부의 공간을 비틀어 확장시켜 놓았다.
이 무대가 수용할 수 있는 관중의 수는 무려 육만. 레이크와 싸웠을 때의 콜로세움이 수용했던 관중의 숫자가 삼만 이었으니, 그때의 두 배 규모다.
“너, 유명인이더라.”
홍련이 말을 걸었다. 그녀는 라덴과 같은 색의 제비를 뽑았고, 오늘 비무회의 첫날에서 라덴의 상대를 맡았다. 홍련은 짧게 자른 단발을 손으로 털면서 주변을 쓱 둘러 보았다.
“플레이어한테 말이야.”
홍련이 그렇게 덧붙였다. 머리카락을 털고 있던 손이 흔들리더니 아래로 내려온다. 언제 빼든 것인지. 홍련은 기다란 섭선을 쥐고 있었다. 촤악! 홍련의 손짓에 섭선이 활짝 펼쳐졌다.
“엄청 강하다던데.”
홍련은 섭선으로 입가를 가리면서 키득거리며 웃었다. 라덴은 그런 홍련을 빤히 보다가 물었다.
“근데. 왜 반말하는 겁니까?”
“내가 반말해서 기분 나빠?”
“별로. 나도 반말하면 되니까.”
뚜둑. 라덴의 머리가 옆으로 기울어졌다. 라덴을 보는 홍련의 눈동자가 빙글 휘어졌다. 언니인 홍월은 짙은 색조를 더한 눈화장을 하고 있었지만, 홍련의 눈가는 수수했다.
“이제 말은 그만하자.”
차악! 부채가 접힌다. 홍련은 접은 부채를 아래로 내리면서 천천히 팔을 흔들었다. 그녀가 팔을 흔들 때마다 기다란 소매가 함께 펄럭거렸다.
ㅡ두우우웅! 커다란 북소리가 울렸다. 비무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그 소리가 시작되었을 때, 홍련은 이미 섭선을 펼쳤다. 라덴은 가만히 서서 홍련이 어떻게 나오는지를 보았다.
먼저 움직이는 사람은 없었다. 홍련이 소속한 주작 무술관의 장기는 ‘암기.’ 그 외에도 활 같은 투척 병기를 사용한다고 들었지만, 지금 홍련은 활을 들고 있지 않다.
‘소매가 넓어. 아마 암기를 숨긴 것 같은데…’
라덴이 그런 생각을 했을 때, 섭선을 든 홍련의 손이 크게 움직였다. 파파팟! 부챗살에 숨겨 두었던 가느다란 침들이 라덴을 향해 쏘아졌다. 그것을 확인한 즉시 라덴은 앞으로 뛰어 나갔다.
쏘아진 침의 궤적을 피해 파고 들어 온 라덴은 홍련의 배를 향해 일장을 뻗어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홍련이 섭선을 아래로 내린다. 활짝 펼친 섭선과 라덴의 손바닥이 닿는다. ㅡ파앙! 뭔가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홍련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힘이 안 들어갔어.’
정면에서 흘려보냈다. 보기에는 단순한 부채인데. 아니, 이것은 무풍의 장기인 ‘유권’과 닮았다.
뒤로 빙글 넘어가면서 홍련은 다리를 휘둘렀다. 길게 뻗은 홍련의 발끝이 라덴의 턱으로 날아왔다. 라덴은 그것을 본 순간 마주 서서 상체를 뒤로 젖혔다.
포식감지가 찌릿하고 울린다. 라덴은 무언가를 직감하고서 급히 허리를 비틀었다. 몸을 비튼 순간, 라덴은 ‘달칵’하는 소리를 들었다.
“간파한 거야? 아니면 단순히 운?”
말은 그만하자더니. 손으로 땅을 짚고서 바로 선 홍련이 그렇게 물었다. 라덴은 턱을 어루만지면서 들어 올린 홍련의 발을 노려보았다. 라덴의 턱을 노리고 휘둘렀던 홍련의 발끝에는, 예리한 칼날이 튀어나와 있었다.
“투척 병기 전문이라더니.”
“그건 선입견이지. 그 틈을 찌르는 것이 ‘암기’야. 백호에서 안 가르쳐 줬나봐?”
홍련이 키득거리면서 물었다. 단순히 던지는 것뿐만은 아닌가. 라덴의 주먹을 흘려보내고, 그 상황에서 반격을 꾀했다. 홍련의 몸동작을 보면 그녀는 맨손 격투에도 상당히 능해보였다.
“말 많네.”
라덴은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무릎을 낮추었다. 홍련의 체술은 염두에 둔다.
‘그래도.’
내가 더 빠르다. 라덴의 발이 땅을 박찼다. 라덴은 본격적으로 자신의 고유특성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양자택일. 어마어마한 수치의 스탯이 움직인다. 힘 스탯이 민첩으로 바뀌고, 라덴의 몸이 가속했다.
‘빨…’
감상을 늘어놓을 틈도 없었다. 홍련은 급히 허리를 비틀면서 손을 휘둘렀다. 파바바박! 홍련의 손짓에 따라 소매 안에 숨겨두었던 암기들이 라덴을 향해 쏘아졌다.
느리다. 라덴의 가속은 암기가 쏘아지는 속도보다 빠르다. 가속하여 거리를 좁히는 라덴의 몸을 새하얀 강기가 뒤덮었다. 전신을 호신강기로 뒤덮고 하는 질주. 질주 자체가 공격이 되었다.
‘이건 못 흘려내.’
홍련은 빠르게 상황을 판단했다. 그녀는 발을 뒤로 밀어 끌더니 공중으로 뛰어 올랐다. 저 정도 속도로 가속한다면 제동조차 힘들겠지. 공중으로 도약한 홍련은 양 팔을 라덴을 향해 크게 떨쳤다.
수십 종류의 암기가 라덴을 향해 내리 꽂힌다. 저 널찍한 소매에 이리도 많은 암기가 담겨 있었는가 싶을 정도로, 그것은 무자비한 흉기의 폭우였다. 라덴의 몸을 덮고 있던 호신강기가 크게 부풀었다.
콰콰콰쾅! 폭음이 연달아 터졌다. 홍련이 쏘아낸 암기는 그 하나하나에 강기가 담겨 있었다. 라덴의 호신강기와 홍련의 암기가 충돌했다.
순간 무릎이 굽혀질 정도의 무게였다. 라덴은 무릎에 힘을 주어 버텨냈다. 아직까지 공중에 떠있던 홍련은 휘둘렀던 양 팔을 다시 역방향으로 휘둘렀다. 암기과 연결되어 있던 은사가 당겨진다. 수많은 암기가 다시 홍련의 손으로 돌아가고, 다른 궤적을 그리면서 라덴에게 내리 꽂혔다.
‘귀찮네.’
요리조리 도망가면서 암기를 날린다. 쏘아낸 암기는 은사를 통해 회수한다. 원거리 공격 수단이 적은 라덴으로서는 상대가 까다롭다.
‘너무 많은 것은 보여주고 싶지 않은데.’
오늘의 싸움이 끝나면 내일은 다른 상대와 싸워야 한다. 그런 식으로 앞으로 두 번. 첫 싸움에서 전력을 내고 싶지는 않았다. 보여준 수가 많을수록, 뒤에서 싸울 상대가 그를 대비할 테니까.
홍련 역시 그것에 대해서는 똑같이 생각하고 있었다. 첫 싸움은 이래서 안 좋다.
‘피차 똑같겠지만.’
가장 이상적인 것은, 적은 수를 보여주면서 승리하는 것. 운이 안 좋아. 홍련은 암기를 휘두르면서 혀를 찼다. 그런 승리를 따낼 정도로 상대가 쉽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차라리 수를 숨기고 일부러 패배하는 것도 나쁜 전략은 아니다. 자신의 승리에 확실한 자신이 있다면, 그래도 좋다. 이번 승부에서 수를 숨기고 패배하고, 다음의 싸움을 본다면 상대의 수를 알 수 있다. 한 번의 패배를 감수하고 연달아 세 번을 승리하면 될 일.
하지만 라덴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라덴에게는 단 한 번의 패배도 허용되지 않는다. 세 번 싸우고, 세 번 이긴다. 그것을 해내지 못한다면 백설이 라덴을 죽이려 들 것이다.
비단 백설 뿐만이 아니다. 라덴 본인이 패배를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패배한다고 해서 죽지는 않겠지만, 두 달 전에 겪었던 오랜만의 죽음은 불쾌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지. 조금 보여주는 수밖에.’
나중의 싸움에서의 불리함은 안고 간다. 라덴은 그렇게 판단했다. 라덴의 몸을 뒤덮고 있던 호신강기가 크게 부풀었다.
파바바박! 부푼 호신강기의 끝이 날카로운 바늘로 변한다. 다시 한 번 암기를 쏘아내려던 홍련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콰콰쾅! 공중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윽…?!”
홍련은 간신히 중심을 잡고 땅으로 떨어졌다. 저게 대체 뭐야? 그녀는 입을 반쯤 벌리고서 라덴을 바라보았다.
고슴도치 같았다. 전신을 뒤덮은 강기는 마치 고슴도치가 바늘을 세운 것처럼 그 끝을 날카롭게 하여 뻗어져 있었다. 라덴은 입맛을 다시면서 숙이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강기변환. 검왕에게 배웠던 스킬이다. 백설에게서 가혹한 수련을 받은 두 달. 라덴은 강기 변환 스킬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어지간해서는 사용하고 싶지 않았지만, 원거리 공격수단이 적은 라덴으로서는 강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이렇게.
바늘처럼 뻗어졌던 라덴의 강기가 돌아온다. 라덴은 천천히 홍련을 향해 다가갔다. 방금 도대체 뭐였지? 호신강기? 호신강기를 저렇게 변환할 수 있다고? 홍련도 주작 무술관에서는 천재라고 칭송받던 몸이다. 하지만 저런 식으로 호신강기를 응용할 수 있다는 것은 들어 본 적도 없고 본 적도 없다.
“놀랐어?”
홍련에게 다가가던 라덴이 그렇게 물었다. 홍련은 표독스런 표정을 짓더니 다가오는 라덴을 향해 크게 양 손을 휘둘렀다. 다시 한 번 암기들이 라덴을 향해 질주했다. 라덴은 걷는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서 강기를 움직였다.
라덴의 왼쪽 어깨에서 강기가 솟구쳤다. 길쭉하게 늘려나온 강기는 가래떡처럼 휘어지면서 전방을 휩쓸었다. 콰콰콰쾅! 충돌에 암기를 연결하고 있던 은사들이 끊어졌다.
이런 식으로 강기를 휘두르는 것은 체력 소모가 너무 크다. 아예 강기만으로 공격하는 것이기 때문에 위력도 그리 충분하지 않다. 무르시엘라고의 망토변환과 함께 사용한다면 물리력을 더해 충분한 데미지를 줄 수 있고, 체력의 소모도 크게 줄겠지만. 지금은 무르시엘라고를 사용할 수가 없다.
‘무슨 강기의 응용을 저렇게…?!’
홍련은 당황하면서도 공격을 계속했다. 아직 그녀는 충분히 암기를 비축해 둔 상태였다. 다가오는 라덴을 향해 암기가 쉼없이 쏘아진다. 라덴의 호신강기에서 솟구친 강기들이 전방을 휩쓸면서 홍련의 암기를 가로막았다.
그렇게 강기를 분할하면서, 라덴은 주먹을 들어 올렸다. ㅡ쿠르릉…! 거대한 힘이 라덴의 주먹에 모이기 시작했다. 용왕격이나 흑염룡은 아니다. 단순히, 라덴이 다루는 강기가 라덴의 주먹에 모이는 것뿐이었다. 압축, 압축.
출렁거리던 강기가 라덴의 주먹에 바짝 몰려든다.
이건 위험하다. 홍련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알았다. 흘려보내는 것은 불가능하고, 막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여기서 숨겨두었던 수를 꺼내야 하나? 하지만 여기서 꺼내기에는 너무… 아니, 생각할 틈이 없다.
결정이 느린 것이 홍련의 패인이었다. 라덴의 발이 땅을 박찼다.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진다. 홍련은 눈을 크게 뜨고서 다가오는 라덴의 주먹을 바라보았다.
‘맞으면 죽는다.’
이제 와서 방어나 회피를 하기에는 늦었다. 숨겨둔 수는 많았지만 그 중에서 지금 상황에 사용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이렇게 죽는다고? 어이가 없었다. 새하얀 구체에 휘감긴 라덴의 주먹이 홍련의 바로 앞에 와 있었다.
“커흑!”
홍련의 입에서 아픈 신음이 터져 나왔다. 주먹이 닿는 순간, 라덴은 허리를 비틀어 홍련의 배를 아래로 내렸던 왼 손으로 밀어 때렸다. 위력은 충분했다. 퍼어엉! 공기 터지는 소리와 함께 홍련의 몸이 크게 뒤로 날아갔다. 콰당탕! 비무회 바깥으로 떨어진 홍련은, 잠깐 멍하니 하늘을 올려보다가 허리를 튕겨 몸을 일으켰다.
“뭐, 뭐야?!”
“뭐긴.”
라덴은 투덜거리면서 쥐고 있던 주먹을 풀었다. 모여 들었던 강기가 희미하게 변해 사라졌다.
“장외패지.”
비무회의 첫 승리였다.
끝
ⓒ 목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