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250
‘환룡’이라는 별명은 알고 있다. 이름만 들어봤을 뿐, 직접 본 적은 없다. 환룡을 보았다는 소문도 들어본 적이 없다. 제국 유일의 공작이 환룡이라는 것도, 플레이어가 아닌 NPC, 알크레토 후작에 의해 알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라덴은 환룡과 독대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환룡을 제외한 다른 괴물들은 모조리 만나 보았지만, 그들과의 만남은 항상 갑작스러웠다. 이번에는 다르다. 라덴은 상대가 괴물 중 하나, 환룡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단순한 괴물도 아니고, 몇 백 년 동안 제국에서 유일하게 공작을 지내 온 인물이란다. 그걸로 끝이냐? 그것도 아니다.
라덴은 드루고라 공작과의 만남으로 무언가를 얻어야 한다. 드루고라 공작이 라덴이 귀족이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라덴은 귀족이 될 수 없다. 황제가 깨어나지 않는 지금, 공작은 제국 제일의 권력가이고 황제의 대리를 수행한다.
‘부담스러라.’
라덴은 괜히 어깨를 주물렀다. 어깨가 무겁다. 제노미아 영지. 억지로 떠맡아 영주가 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영주가 되고 나서 영지를 신경 쓴 적은 많지 않다. 아하베스에게서 받은 레전드 아이템, ‘풍작신의 보옥’으로 제노미아 토지에 가호를 내리고, 대주교인 로만에게 영주 대리를 맡기고서 영지를 떠났다. 그 이후로 자잘한 아이템을 구입하기 위해 제노미아 영지에 몇 번 방문했을 뿐. 영주다운 일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외면하면서 지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렸다. 라덴이 계속해서 제노미아 영지를 외면하였다가는… 영지 감찰 때에 제노미아의 쿠데타가 수도로 전해져 버린다. 그 후에는? 알크레토 후작이 말했다. 새로운 영주를 보낸다고 해도, 주모자 몇몇은 목이 베일 것이라고.
로만의 목이 베일 지도 모른다. 데미안의 목이 베일 지도 모른다. 아니. 대주교인 로만은 몰라도, 제노미아 영지의 기사들은 틀림없이 목이 베일 것이다.
“제기랄.”
라덴은 닫힌 문을 노려보면서 욕설을 내뱉었다. 플레이어라면 상관없다. 플레이어라면. 죽어도 다시 부활하니까. 하지만 NPC는 아니다. NPC에게 있어서 죽음은 ‘끝’이다. 다시 부활하지 않는다.
그런 현실이 무겁다. 플레이어인 라덴과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어찌 모른 척 할 수 있겠는가.
“언제까지 문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텐가?”
뒤쪽에 선 알크레토 후작이 물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드루고라 공작이 있을 것이다.
“…진짜로 저 혼자 가야 되는겁니까?”
“드루고라 공작은 자네와의 독대를 원하고 있네.”
“아니, 진짜. 내가 뭐 그리 대단한 사람이라고.”
“딱히 자네가 대단한 사람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야.”
“크흠!”
라덴은 노골적으로 헛기침 소리를 내면서 알크레토 후작에게 싫은 시선을 보냈다. 알크레토 후작은 무표정한 얼굴로 라덴의 시선을 받아 넘겼다. 결국, 라덴은 크게 한숨을 내쉬면서 손을 들어 올렸다.
“거, 자꾸 팩트로 사람 패고 그러시네.”
라덴은 투덜거리면서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게.”
안 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라덴은 꿀꺽 침을 삼키면서 알크레토 후작을 돌아보았다. 알크레토 후작은 턱을 까닥거리면서 문을 가리켰고, 라덴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안 들어오려는 줄 알았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을 때. 앞에서 그런 목소리가 들렸다. 라덴은 살짝 시선을 들어 소리가 난 앞을 바라보았다. 널찍한 책상 너머에 중년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체격은 건장했고, 눈동자는 금색으로 빛난다.
“…생각을 정리하느라.”
라덴은 마주친 시선을 살짝 아래로 내리면서 대답했다. 압도 되었다기보다는, 공작을 대하는 예의였다.
“가까이 오도록.”
드루고라 공작이 말했다. 라덴이 가까이 다가 올수록, 드루고라 공작의 눈은 가늘어졌다. 그만큼 시선이 거세어진다. 다섯 걸음을 걸었을 때, 라덴은 몸이 무거움을 느꼈다. 거기서 두 걸음을 더 걸었을 때, 전신을 칼로 찌르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열 걸음을 모두 채웠을 때. 라덴은 자신의 죽음을 느꼈다.
“…나를 시험하고 싶으신 겁니까?”
라덴이 내리 깔았던 시선을 들어 올리면서 물었다. 그 질문에 드루고라 공작이 낮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로얄 나이트를 쓰러트렸다고 하기에, 조금 호기심이 일었을 뿐일세.”
“…그래서. 그 호기심은 채우셨습니까?”
“플레이어가 이렇게나 강해졌다니. 솔직히 놀랍군.”
앉게. 드루고라 공작이 자신의 앞의 자리를 권하면서 말했다. 하지만 시선은 거두어지지 않는다. 전신을 압박하는 기운도 사라지지 않는다. 라덴은 낮게 헛기침을 하면서 다시 발을 뻗었다.
찌릿.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내장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물론, 실제로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이다. 드루고라 공작이 발하는 기세는 그 정도로 거세었다.
“…후우.”
라덴은 심호흡을 하면서 다시 걸음을 이어 나갔다. 푹, 푹, 푹. 시선이 칼날과 창끝이 되어 라덴의 몸을 꿰뚫는다. 라덴은 멈추지 않았다.
“훌륭하군.”
라덴이 드루고라 공작의 앞에 섰다. 고작해야 몇 걸음을 걸었을 뿐인데, 라덴의 손바닥 안은 땀으로 축축했다. 라덴은 손바닥에 고인 땀을 바짓단에 비벼 닦으면서 드루고라 공작의 앞에 앉았다.
“귀족이 되고 싶다고.”
“네.”
드루고라 공작이 물었고, 라덴은 대답했다. 드루고라 공작은 턱을 어루만지면서 라덴을 바라보았다. 걷기 조차 힘들게 하던 그 매서운 시선은 사라졌지만, 그와는 다른 시선이 라덴을 훑었다.
“알크레토 후작은 자네를 이용하여 상황을 바꾸고 싶은 모양이야.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말이지.”
“알고 있습니다.”
“자네는 진심으로 알크레토 후작의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인가?”
“후작님과 지내면서 딱히 불만을 느낀 적은 없었습니다. 후작님은 친절하셨고, 저한테도 잘 해주셨죠.”
“그래서 목숨을 줄 수 있다?”
“플레이어니까요.”
“플레이어는 좋겠군. 목숨을 쉽게 걸 수 있을 테니까.”
드루고라 공작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피식 웃었다.
“알크레토 후작은 좋은 사람일세. 부정부패하지도 않고, 귀족의 권위의식에 찌들어 있지도 않아.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마음도 없고. 그는 내가 인정하는 몇 안 되는 귀족 중 하나일세. 진심으로 제국을 위하려 하지.”
드루고라 공작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앞에 놓였던 찻잔을 라덴 쪽으로 밀어 주었다.
“그의 사람이 되어서 나쁜 것을 없을 거야.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귀찮은 일은 많겠지만.”
“…그렇습니까?”
“그 상황에서. 자네가 귀족으로 있을 것인가, 아니면 알크레토 후작의 기사로 있을 것인가. 그를 가르는 것이 바로 나고.”
드루고라 공작의 시선과 라덴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드루고라 공작은 피하지 않는 라덴을 보면서 낮게 웃었다.
“플레이어를 보는 것은 처음일세. 하지만… 그를 떠나서, 자네는 굉장히 흥미롭군. 플레이어면서 플레이어답지 않아.”
“…무슨 뜻입니까?”
“자네의 생각.”
툭. 알크레토 후작이 말을 던졌다.
“자네는 플레이어면서 NPC를 위하려 드는 군. 제노미아… 그래. 제노미아 영지. 그곳의 영지민들이 자네를 영주로 올렸나?”
그 말에 라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에 대해서는 말 한 마디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알크레토 후작이 미리 말했던 것일까? 아니, 만약 그런 것이라면 알크레토 후작이 미리 언질을 주었을 것이다.
“너무 놀라하지 말게. 간단한 재주일 뿐이니까. 몇 백 년을 살다보면 이런 재주도 얻게 되는 법이지.”
드루고라 공작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손을 들어 자신의 눈가를 어루만졌다.
“용안龍眼이라는 것일세.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고, 사람의 마음을 읽게 하지. 불쾌한가?”
“마음이 읽혀 유쾌한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렇겠지. 그로 인해 불쾌하였다면 사과하겠네.”
드루고라 공작이 살짝 머리를 숙여 보였다. 제국에서 가장 높은 귀족인 공작이 직접 머리를 숙여 사과한 것이다. 설마 드루고라 공작이 직접 머리를 숙일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라덴은 놀란 얼굴을 하고서 공작을 볼 수밖에 없었다.
“제노미아 영지민들이 자네를 영주로 만들었군. 제노미아의 토착신인 아하베스가 그를 원했고. 신이 직접 개입하였다는 건가. 아, 그래. 자네가 제노미아를 장악한 황혼을 쫒아내고, 아하베스를 해방시켜주었군. 흐음.”
드루고라 공작이 턱을 어루만지면서 생각에 잠겼다. 라덴은 잠깐 동안 입을 다물고서 드루고라 공작을 보았다.
“검왕, 흑성, 악희, 염화… 하하! 모두 만나 보았나. 염화, 그 아이에 대한 소문은 많이 들었지. 직접 만나 보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다행이라 생각되는 군. 날뛰는 망아지에게 고삐가 물린 격이니까.”
“…전부 읽고 있는 겁니까?”
“말하지 않았나. 그런 눈이라고. 자네가 귀족이 되고자 하는 이유도 잘 알았네. 제노미아의 영지민들을 죽게 두고 싶지 않다. 좋은 동기야.”
공작에게는 거짓을 말할 수 없다. 알크레토 후작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공작은 거짓을 싫어한다… 당연한 것이다. 이렇게 마음을 읽고, 진실과 거짓을 판가름할 수 있는데. 바로 앞에서 내뱉는 거짓말을 달갑게 여길 리가 있나.
“자네를 귀족으로 만들어주지.”
드루고라 공작이 머리를 끄덕거렸다.
“자격은 충분한 듯 싶군. 이교도에 점령된 영지를 해방했고, 붙잡혔던 풍작의 신 아하베스를 해방하였네. 작위를 내리기에 충분해.”
“그렇다면…?”
“하지만 쿠데타는 안 돼.”
여기서 발목이 잡힌다. 영주를 쫒아낸 것은 라덴이다. 그냥 쫒아낸 것도 아니고, 실컷 두들겨 패서 쫒아냈다. 영주 뿐만이 아니다. 제노미아의 유지들도 그렇게 쫒아냈다.
“죄일세. 하지만 삭감해 주지. 영주와 유지들의 재산을 자네가 독점한 것이 아니라, 영지민들을 위해 사용하였으니까. 쿠데타 자체도… 동기는 다를 지언정, 결국 영지민들을 위한 것 아니었나?”
“그건… 그렇죠.”
“하지만 쿠데타는 쿠데타일세. 플레이어라고는 해도 결국은 평민. 평민이 귀족을 두들겨 패고 쫒아낸 것이야. 쉬이 넘길 수는 없는 일이지.”
드루고라 공작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라덴의 얼굴을 지그시 보았다. 가시 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라덴은 괜히 앉은 자세를 바꾸고서 드루고라 공작을 바라보았다.
“간단한 임무를 내려주지.”
띠링, 라덴의 머릿속에 그런 알림이 울렸다.
“아스가르드의 성벽 밖으로 조금만 나가면 작은 마을이 있네. 최근 그 마을의 주민들은 몬스터의 습격 때문에 골치를 안고 있는 모양이야. 그러니, 자네가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도록 하게. 기사와 병사들은 지원해 주지.”
“…그게 끝입니까?”
“끝일세. 쉽게 생각하지는 말게. 이미 몇 번이나 토벌대를 보냈지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거든. 자네가 이 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한다면, 자네에게 귀족 작위를 내려 주겠네. 그리고 정식 절차를 밟아 자네가 제노미아의 영주가 될 수 있도록 해주지.”
-루그 마을의 골칫거리.
-특수 퀘스트.
수도 아스가르드의 성벽 바깥에 있는 자그마한 루그 마을. 몬스터들이 두 달 전부터 루그 마을을 습격하고 있습니다. 기사단과 함께 루그 마을을 괴롭히는 몬스터를 토벌하십시오.
퀘스트 보상:
귀족 작위.
드루고라 공작의 신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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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가 발생했다. 보상으로 귀족 작위가 걸렸다는 것은, 이 퀘스트를 클리어한다면 ‘반드시’ 귀족 작위가 주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드루고라 공작의 신뢰.’
다섯 괴물 중 하나인 환룡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아라포니아에게서 신뢰를 얻어 요긴하게 사용했던 것을 보면, 사실상 이 퀘스트의 보상은 드루고라 공작의 신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음표까지 떴으니… 뭔가 더 주겠지. 게다가 공작이 직접 준 거야. 경험치도 많이 줄 테고.’
상황이 상황이라 이벤트 타워의 던전에서 꿀을 빨 수 없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다른 꿀을 빨 수밖에 없다.
‘지금의 나는 어디를 가도 업적 달성이야.’
수도 아스가르드에 처음 들어온 플레이어는 라덴이다. 앞으로 몇 달 동안, 수도 아스가르드에 플레이어는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업적과 퀘스트를 독점할 수 있다는 말이다.
끝
ⓒ 목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