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147
147. 필요한 순간에는
아시안게임.
대체로 아시안게임에 차출되는 국가대표는 나이가 어린 축에 속했다. 나이가 어리다는 건 아직 군대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뜻도 있다.
첫 훈련부터 비장함이 감돌았다. 일생일대의 기회는 아니지만, 이번 기회를 놓치면 4년을 기다려야 한다. 만약 폼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어쩌면 기회는 영영 없을 수도 있었다.
투수 같은 경우는 감독만 잘못 만나도 와르르 무너지는 경우가 있다. 어깨를 갈고 다음 해에 죽을 쑤고 그다음 해에는 수술대에 오르는 경우도 숱하게 있었다.
타자는 매년 잘하다가 아시안게임이 있는 해에 슬럼프를 겪고 부진하는 경우도 있다. 그도 아니라면 국제대회 직전에 부상을 입는다거나.
인생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 그렇기에 기회가 왔을 때 붙잡는 것도 실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얘는 또 왜 여기 오냐.”
인천 바이킹스에서 뛰고 있는 이주영도 간신히 턱걸이로 아시안게임에 합류했다. 확실히 작년보다는 나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데, 투구폼을 정리하고 경험도 쌓으며 인천 바이킹스의 새로운 클로저로 자리 잡고 있다.
이주영이 발탁된 이유는 투수를 선호하는 감독 성향도 있었고 사이드암이라는 희귀성도 있었다. 구속도 150km/h 이상 던질 수 있는 강속구 유형이었기에 감독 박성길 눈에 쏙 들었다.
“동갑끼리 있음 좀 안 되냐?”
“바이킹스 선배들 있잖아. 좀 가라.”
유행운이 구박한다.
사실 장난이다. 이주영은 툭 건드리면 열 배 이상으로 반응을 돌려주기 때문에 꽤 재밌는 유형이었다.
“여기가 더 재밌어.”
“우린 재미없어.”
“재수 없는 새끼.”
그것과 별개로 상기된 얼굴이었다.
아무래도 국제대회였고 재작년의 야구 월드컵이 생각나기도 했다. 물론 긴장감은 지금이 더 높다. 현실적인 군대 문제가 걸려 있어 무조건 우승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B조에 속한 한국은 홍콩, 일본, 필리핀에 이어서 예선을 통과한 태국과 조별리그를 치른다.
사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조 편성에 불만을 갖고 있었다. 하필 조 1위를 할 수 있는 국가가 한꺼번에 B조에 포함됐다.
조별리그에서는 무조건 1위를 차지하는 것이 유리하다. 상대 전적을 모두 고려하기 때문에 발목이 잡히지 않기 위해 반드시 일본을 잡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전승해야지.”
최근 국제 성적이 나쁜 한국이지만, 군 면제가 달린 문제에서는 또 달랐다.
물론 도쿄 올림픽에서 동메달만 따면 군대 면제임에도 빈손으로 돌아와 큰 비난을 받았지만, 미필 선수로 주로 구성된 현재는 느낌이 또 달랐다.
“A조 1위는 대만일 확률이 높아. 여기서 일본 잡고 대만이 슈퍼 라운드에서 일본 잡아 주면 최상이지.”
최고의 시나리오였다.
조별리그와 슈퍼 라운드의 성적을 합산하기 때문에 일본이 2패를 안게 된다면 결승에 오르지 못할 확률이 높아진다.
물론 대만도 까다로운 상대였다. 대만 역시도 의무 복무 기간이 있었고 근래 복무 기간이 늘어나면서 병역 혜택에 대한 열망을 선수들이 갖고 있었다.
자국 리그를 뛰는 프로 선수는 물론 미국 마이너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까지 포함하여 아시안게임에 임한다. 즉, 병역 혜택에 대한 투지가 살아 있다는 뜻이었다.
“자, 오늘은 다들 일찍 자고. 컨디션 조절 잘하고.”
감독 박성길이 버스에 내리기 전에 당부한다.
사흘 연속 경기를 펼친 후에 하루는 휴식을 취한다. 그 이후에 태국과 마지막 경기를 치렀고 내일 홍콩 첫 경기의 선발은 김명중이었다.
성적으로는 윤규민이 1선발로 나서야 하지만, 두 번째 경기가 일본이었다.
조별리그에서 가장 중요한 상대였기 때문에 김명중을 먼저 내세우고 그 이후에 일본과의 대결에서 윤규민을 기용하겠다는 생각이었다.
“뭐 먹어?”
“바나나.”
“밥 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좀 됐지.”
유행운은 짐을 풀자마자 바나나를 먹었다. 바나나를 먹고 난 후에는 헬스장에서 몸을 풀고 가볍게 배트를 휘두를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성인 첫 국제대회였고 군 문제가 걸린 터라 여러모로 긴장이 되긴 했다.
큰 경기에서 잘해야 진짜 실력이었다. 자국 리그에서 날아다니고 해외에 나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 반쪽짜리 선수일 뿐이었다.
“같이 가.”
유행운이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숙소를 나서자, 룸메이트 백유진이 뒤따라 왔다.
“야.”
“왜?”
“이제 호칭을 좀 바꿔야 하지 않냐?”
“뭔 개소리야.”
“매형이라 불러. 처남.”
백유진은 아시안게임에서 사용하는 공인구를 들고 있었다.
공인구가 공개된 후로 계속 들고 다니며 손에 익도록 노력하던 백유진인데, 지금 손에 들고 있는 이 공으로 유행운의 머리를 맞추고 싶은 충동이 격하게 느껴졌다.
“내가 왜 그렇게 불러야 하는데!”
사실 유행운이 이상한 말은 하지 않았다.
올해 올스타 경기에서도 스케치북에 ‘백유진 매형’이라고 써서 들고 다녔던 사람이 유행운이었다. 동기인 백유진을 자극하려는 그 행동을 멀리서 보며 부들부들 떨어야 했다.
“내가 유정이랑 결혼했으니까.”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너 백씨 가문이잖아.”
“으이씨!”
씩씩거리며 백유진이 앞서간다.
“같이 가, 처남!”
끝까지 놀리는 유행운이었다.
* * *
[아시안게임, 홍콩 13:0 콜드승! 쾌조의 스타트]└ 당연한 결과
└ 유행운 양민학살 지렸고요
└ ㅋㅋㅋㅋ 유행운 같은 팀이니까 이렇게 든든할 수 없다
└ 군 면제 가즈아~
└ 오늘 경기는 당연히 이겨야 하는 거고…… 내일이 문제
└ 내일 일본 ㄷㄷㄷㄷ
└ 솔직히 내일 이겨야 유리해짐 ㅇㅇ
└ 낼 윤규민 ㅇㅇ
└ 오늘 왜 땡중 일찍 내림???
└ 불펜진 짧게 투입하면서 공인구 익숙하게 한듯
└ ㅇㅇ 이거 맞는 듯 또 오래 안 던지면 감각 안 올라오니까
└ 땡중 일찍 내리고 여차하면 조기 투입하려고 그런 걸수도 잇음
└ 박갈갈 알잖아 믿을맨 어깨 존나 가는 거 ㅋ
└ 지금 박갈갈 땡중 윤규 존나 어깨 갈 생각할 듯
홍콩과의 경기는 당연히 이겨야 한다.
김명중 상대로 홍콩은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다. 박성길 감독은 김명중을 적당한 시기에 내리고 김준서를 시작으로 불펜진을 가동했다.
오래 공을 던지게 한 건 아니었고 제구가 괜찮은지, 공인구에 익숙해졌는지 확인하는 용도였다.
[박갈갈 첫겜부터 굳이 불펜 가동했어야 했냐?? 일본전 어케 될지 모르는데…….]└ 다른 감독이면 모를까 박갈갈이라 좀 걱정되긴 함 ㅋ
└ 컨디션 확인이 맞긴 한데…….
└ ㅋㅋㅋㅋ 박갈갈 신뢰도 0
└ 신뢰가 갈 수가 없다
└ 박갈갈 진심 선수 갈아서 우승하는 사람이지
└ 우승? 그 양반 준우승 전문이야 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 그것도 맞지
└ 준우승 전문 ㅇㅈ
└ 리그에서 준우승이면 나쁘지 않은데 아샨게임은 좀 다르지 않냐?
└ 아샨게임에서 준우승? 시발 목매달아야지 ㅗㅗ
└ 군면제 걸렸는데 준우승 하면 박갈갈 진심 갈아야함
군 면제는 KBO 10구단 팬들에게도 이슈였다.
아시안게임에 차출될 정도라면 인재였고 곱게 오래 써야 할 선수였다. 군 면제를 받지 못하면 1년 8개월을 소모해야 했고 나이도 자연스럽게 먹는다.
그 시간이 아까운 건 선수뿐만 아니라 일개 팬도 마찬가지였다. 군 면제. 그렇기에 아시안게임을 집중해서 지켜보는 이유였다.
[자, 오늘 제 예상으로는 치킨 배달이 폭주했을 것 같은데요. 오늘 한일전입니다. 조별리그부터 일본과 맞붙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늘 그렇죠. 흥미로운 대결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오늘 한국은 윤규민 선수를 선발로 내세웁니다. 요즘 윤규민 선수에게 관심을 보이는 국가가 있는데, 공교롭게도 일본이에요.] [아무래도 요즘 윤규민 선수의 성적이 좋지 않습니까. 1, 2년 바싹 잘하는 것도 아니고 꾸준해요. 이닝도 잘 먹어 주고 자책점도 낮습니다. 구위가 살아 있는데, 이미 군 면제를 받은 선수라 해외에서도 관심을 받고 있는 것 같아요.] [예, 윤규민 선수가 3년 후에는 해외 진출이 가능하다 보니, 일본이나 미국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자, 일본 선발 요시다 켄치. 유연한 투구폼이 인상적이고요, 강속구 투수입니다. 오늘 이 선수를 공략할 수 있을지가 관건일 텐데요.]다음 날, 서로 1승을 가진 채 두 팀이 맞붙는다.
말 그대로 숙적이었다. 윤규민의 얼굴이 진지하다. 포수는 진민형이었는데, 아무리 이제 군 면제와는 상관없다고 해도 그의 얼굴에는 진지함이 있었다.
계속 선배들에게 밀려 태극 마크를 달지 못했지만, 그에게는 첫 국제대회였다. 잘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파앙!
두 차례 연습 삼아 공을 던진 윤규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을 받은 진민형의 얼굴도 좋았다.
“공 괜찮다.”
“형, 내 공 처음 받아 보죠?”
“어어. 좋은데.”
포수는 좋은 투수의 공을 받으면 기분이 좋다.
제구가 안 돼서 이리저리 빠지는 공을 받는 것보다 제구도 잘 잡히고 구위도 남다른 공을 받을 때 가장 기분이 좋았다.
즉, 프레이밍을 하고 싶게 만드는 공이 좋다. 프레이밍 하는 보람이 생기는 공이었다.
“플레이볼.”
1회 초.
한국의 수비로 경기가 시작된다.
윤규민의 컨디션은 완벽했다. 작년 하위권만 전전하던 소속 팀이 우승을 거두며 자연스럽게 자신감이 붙은 윤규민은 강팀 상대로도 기죽지 않았다.
물론 애초에 기죽을 성격도 아니었지만, 더 잘하고 싶은 욕구를 요즘 느끼고 있다.
[스윙 삼진!]두 타자 연속 헛스윙을 이끌어 낸다. 슬라이더 각이 예리했고 상대 타자의 배트가 허공에 헛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투 아웃을 잡은 윤규민이 어깨를 풀고 마운드를 한 바퀴 돈다. 투수에게는 공인구 문제가 가장 크다.
윤규민 역시도 공인구에 적응하기 위해 매일 들고 다니며 만지고 굴리며 손 감각을 익혔다.
KBO에서 사용하는 공인구보다 살짝 가벼운 무게였고 조금은 미끄럽다. 해서, 로진백을 계속 손바닥에 문지르게 된다.
빡!
초구를 공략한 타자의 배트가 부러지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힘이 제대로 실리지 않은 타구가 유격수를 향해 느리게 굴러갔다.
코스 자체는 어렵지 않다. 유행운이 대시를 하는 동시에 맨손 캐치를 했다. 그 사이 윤규민은 송구하는 데 문제가 없도록 자리를 비켜 주었고 유행운이 러닝 스로우를 시도한다.
송구는 물 흐르듯이 부드럽고 매끄러웠다.
다리를 쭉 찢으며 공을 포구한 1루수 강진이 자세를 유지하며 심판의 콜을 기다린다.
“아웃!”
삼자범퇴.
쾌조의 스타트였다.
* * *
1사 1, 2루.
선취점의 중요성은 야구를 보는 사람이라면 아주 잘 알 것이다. 물론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 초반 앞서간다 해도 결말을 장담할 수는 없다.
점수를 최대한 많이 뽑아야 뒤탈이 덜하다. 그리고 점수는 낼 수 있을 때 내야만 한다.
[타석에 4번 타자 유행운이 들어섭니다. 소속팀에서는 주로 2번 타자로 기용되었던 유행운인데요. 어제 경기에서 콜드 승을 결정짓는 결정적인 홈런을 때렸습니다.] [강타자예요. 찬스에도 강하고요. 요즘 강한 2번이 대세인데, 박성길 감독도 유행운 타순을 두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아무래도 2번에 두면 더 타석에 많이 설 확률이 높아지니까요.]유행운이 타석에 서서 흙을 고른다.
1사 1, 2루. 루상에는 발 빠른 주자가 자리를 잡고 있었고 단타만 치더라도 2루 주자는 홈에 들어올 수 있다.
일본과의 경기는 숙적 이전에 반드시 잡아야 하는 상대였다.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국가 중에 강팀이라 할 수 있는 팀은 한국, 일본, 대만이 유일하다. 강팀을 잡아야 우승을 할 수 있기에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경기.
[초구 흘려보냅니다. 볼.] [요시다가 조심스럽게 승부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시작부터 1, 2번 타자에게 안타를 맞았거든요. 심지어 2번 타자 박선우에게는 내야 안타였어요. 지금 굉장히 찜찜할 텐데, 유행운 상대로는 승리를 하고 싶을 겁니다.]2구, 예리한 각의 슬라이더가 바깥 보더라인에 걸친다.
“스트라이크!”
고개를 끄덕이고 뒤로 물러나 배트를 가볍게 휘둘렀다.
다시 타석에 선 유행운이 승부를 이어 간다. 여기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안타나 홈런을 기대할 것이다.
그리고.
따아악!
유행운 역시도 같은 마음이었다.
[유행운 타격! 밀어친 타구! 1루수 키를 넘깁니다! 파울 라인 밖으로 빠져나가는 타구! 2루 주자 홈인! 1루 주자도 홈인! 유행운 2루에 안착합니다!]이왕이면 홈런이 좋겠지만, 상황에 맞는 타격이 필요한 순간에는 간결하게 배트를 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2루를 밟은 유행운이 두 손을 들어 올리며 팀의 분위기를 최대한 끌어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