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177
177. 백수
야구 선수가 사랑받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냥 야구를 잘하면 된다. 유행운이 터트린 극적인 역전 홈런은 펜웨이 파크를 뒤흔들었다.
아직도 아웃 카운트는 올라가지 않은 상황.
애틀랜타는 투수 교체를 진행했고 이제 1점 뒤처진 상황에서 타자를 상대해야 했다.
따아악!
따아아아악!
[YU가 지핀 불길이 꺼지지 않습니다! 연속 안타 끝에 1점을 더 달아나는 보스턴 레드삭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가 절망에 빠집니다!]사실 점수는 더 먹어야 한다. 이대로는 모자랐다. 불펜이 가동되면 실점할 위기가 늘어난다.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애틀랜타도 포기하지 않았다.
따아아아아악!
[와, 화끈하네요! 지금 이제 아웃카운트 하나만 올리면 이닝 끝이거든요. 마지막까지 홈런으로 달아납니다. 이제 점수 차는 4점입니다.]* * *
대전 호크스에 2라운드 11번으로 입단한 백유진은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군 면제까지 해결하며 승승장구했다.
최정환 감독의 철저한 관리 아래 평탄하게 프로 생활을 시작했던 백유진은 FA 자격을 달성했지만, 작년 시즌을 부상으로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다.
사실 백유진은 생각이 많았다. 구단에서는 계속 다년 계약을 들이밀었지만, 수락하지 않은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우선 해외에 대한 미련이었다.
유행운은 일찌감치 미국에 갈 거라 이야기했다. 그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유행운에게 한국은 나무나 좁은 무대였다. 게다가 고교 동기였던 민현웅은 이미 미국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그 영향이 조금씩 오고 있다.
윤규민은 내년 시즌에 단기 계약이 마무리되면 바로 일본이나 미국으로 떠날 거라 이야기했다. 강우성 역시도 미국에서 성공했던 투수인 만큼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넓은 곳으로 떠나라고 조언했다.
[백유진: 좋냐?] [백유진: 미국 좋아?]백유진은 짧게 1년 계약을 맺었다. 일단 부상에서 회복하고 완벽한 몸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했다.
최정환 감독은 아주 오랫동안 대전 호크스를 이끌었다. 그도 이제 대전 생활을 마무리 짓는 단계였기 때문의 그의 생각을 받아들였다. 물론 단장 포함 프런트는 탐탁지 않아 했다.
“새끼, 답장도 없네.”
백유진은 2군에서 불펜 투구를 하며 몸에 문제가 없는지 점검한 끝에 5월 초, 1군에 올라왔다.
현재 대전 호크스는 5위로 추락했다. 대전 왕조를 세웠던 지난날의 영광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일단 새로운 단장이 이영호보다 더 일을 못하는 존재였다. 늘 그랬던 것처럼 대전 호크스는 용병 농사에 실패하며 조금씩 추락하고 있었다.
“그래서 집으로 갔다고?”
“네, 새로운 용병 구해야 한다네요…….”
“미치겠네, 정말.”
최정환 감독 머리에 흰머리가 희끗희끗하다.
작년 시즌보다 폭삭 늙은 모습이었다. 어제부로 지독한 부진에 시달리던 용병이 지금 결국 웨이버 공시되었다. 그를 주워 갈 팀은 그 누구도 없을 것이다.
주축 선수이자 유격수였던 유행운이 없는 상황에서 제대로 한 방을 보여 줄 용병 타자가 없다는 건 대전 호크스에게는 위기였다. 아직도 문혁준은 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지만 예전만 못했고, 조석찬은 이제 거의 지명타자 외에는 활용도가 없는 선수가 되었다.
물론 여전히 좋은 모습을 보이는 부동의 4번 타자 지선호와 자길 닮은 아들을 낳아 열심히 양육과 야구를 병행하는 이정우가 있긴 했다.
따아아악!
따아아아아아악!
이제 대전 호크스에서 쓸만한 선발 투수는 딱 두 명이다.
윤규민과 용병 투수 한 명. 그 외 한 명은 어깨가 아프다며 드러누워서 시위를 하고 있다.
백유진은 멀리 날아가는 타구를 보며 이마를 짚었다. 1년 계약 연장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문제는.
“유진아, 안 되겠다.”
나갈 일이 없다는 점이었다.
등판은 윤규민이나 용병 투수가 선발일 때나 가능했고, 그마저도 불펜이 방화를 시작하면 기회가 사라진다.
결국 나흘 넘게 등판하지 못했던 백유진이.
[어, 여기서 백유진 선수가 불펜장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팀의 마무리 투수가 지금 지고 있는 상황에서 등판하나요?]그렇다.
계속 공을 던지지 않으면 감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가볍게 1이닝만 던지자.”
“네.”
현재 점수 차는 5점 차로 벌어졌다.
계속 더그아웃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는 것도 슬슬 질리던 참이었다. 불펜장에서 공을 던지며 몸 상태를 체크하던 백유진이 한숨을 쉬었다.
“아, 나 공 좋은데…….”
아쉬울 뿐이었다.
* * *
불펜이 한 점씩 내주면 열심히 타격을 한다.
애틀랜타는 기다렸다는 듯이 불펜을 두드렸고 1점 차에 몰린 순간도 있었다. 그럼에도 유행운이 타석에 서면 다시 뭔가 해 줄 거라 기대를 한다.
따아아악!
오늘 유행운의 타격감은 최상이었다.
타구가 쭉 뻗어 담장을 맞고 떨어진다. 급하게 좌익수가 수습했지만, 볼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튀어 올랐다.
[2루 주자 홈인! YU, 2루까지 걸어서 들어갑니다! 다시 1점 달아나는 레드삭스!] [지금 애틀랜타가 8회 초에 무려 석 점을 따냈거든요. 겨우 1점 차로 따라붙었는데, 이걸 다시 거리를 넓히네요. 오늘 경기 참 재밌습니다. 질질 끌려갈 줄 알았던 레드삭스가 역전을 이루고, 그 이후에 애틀랜타가 1점씩 따라붙고, 또다시 레드삭스가 도망가고 애틀랜타가 따라가는 타격전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현재 스코어 9: 11. 지금 사실 레드삭스 타선은 불꽃처럼 터졌거든요? 11점이나 득점을 해 주었으면 투수가 어느 정도 따라와야 하는데, 사실 이 점수 차도 안심이 되지 않습니다.] [부디 유리문 같은 클로저 애런 카슨이 잘 막아 주길 기도해야겠군요.]유행운은 사실 할 만큼 했다.
홈런도 두 개나 쏘아 올렸고 추가 타점을 올리는 귀중한 적시타까지 터트려 주었다. 그럼에도 마무리 투수가 불안한 건 유행운도 마찬가지였다.
슬슬 리드폭을 늘려 간다. 뒤를 돌아보며 계속 신경 쓰는 투수를 유행운이 씩 웃으며 도발했다.
[투수의 견제 모션에 YU가 재빠르게 2루로 돌아옵니다. 지금 현재 YU의 도루는 6개를 기록했어요. 발이 빠르고 눈치도 좋습니다. 성공률은 현재까지 100%! 말 그대로 가능한 도루만 시도하는 유형입니다.] [YU에게 집중해야 하는 건 단지 수비나 공격에서뿐만이 아니죠. 그는 한국에서 매 시즌 30개 이상의 도루를 기록했어요. 40개를 넘긴 해도 있을 정도로 주루 능력이 탁월한 선수입니다.] [세상에, 어디서 이런 선수를 구해 왔을까요. 최근 보스턴 레드삭스의 트레이드는 최악이었는데, 유행운 영입은 정말 탁월한 선택입니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정보를 이야기해 보자면 작년 겨울, YU의 영입에 박차를 가하는 도중에 기존 단장이 경질되었죠. 그 경질을 누가 진행했는가, 하면. 보스턴의 호랑이로 불리던 키런 메이슨입니다. 그가 새 단장을 앉혔고 YU에게 거액을 안기며 안전하게 영입을 했죠. 현재 보스턴의 에이스를 맡고 있는 캠린 하긴스도 그의 작품입니다.] [오. 이빨 빠진 호랑이로 느껴지던 키런 메이슨의 존재감이 여전히 대단하군요. 여름 이적 시장이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해집니다.]유행운이 뛴다.
포수가 도루를 의식하고 공을 뺐지만, 그보다 더 빠른 타이밍으로 3루를 향해 내달렸다. 3루수가 공을 받아 태그를 하려 했으나, 유행운은 뻗었던 손을 뒤로 빼고 몸을 비틀며 오른손으로 베이스를 터치했다.
“세이프!”
간발의 차.
투수의 슬라이드 스텝이 느린 것을 노린 도루였다.
흙투성이가 된 유니폼을 탈탈 털어 낸 유행운이 손을 들어 올린다. 이제 뜬 볼 하나면 다시 1점을 더할 수 있었다.
[값진 승리! 강팀을 상대로 보스턴 레드삭스가 1점 차 힘겨운 승리를 가져옵니다! 애틀랜타는 보스턴 레드삭스를 상대로 손쉽게 승수를 쌓으려 했지만, 그게 무산이 되네요.] [오늘 경기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어요. 지금 레드삭스의 불펜진은 말 그대로 최악입니다. 지금 가장 급한 건 역시 클로저예요. 석 점을 벌어 준 상황에서 볼질을 남발하다가 1점씩 차곡차곡 실점했습니다. 겨우 동점을 허용하지 않고 경기를 마쳤지만, 만약 여기서 동점이라도 됐다면 불리한 건 보스턴이에요.] [네, YU의 타순은 이미 지나갔으니까요.]유행운이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뛰게 된 이후 쉬운 승리는 단 하나도 없었다.
무실점으로 경기를 끝낸 적이 없었고, 선발이 잘 던져도 불안했다. 이건 현재의 대전 호크스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금은 시즌 초라 버틸 체력이 있지만, 무더운 여름이 된다면 보스턴 레드삭스는 반드시 내리막길을 걷게 될 것이다.
지금의 대전 호크스처럼.
– YU! YU! YU! YU! YU!!!!
물론 대전 호크스에는 유행운이 없지만, 레드삭스에는 유행운이 존재했다. 그게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 * *
[아메리칸리그 / 동부] [1] 탬파베이 레이스 [2] 볼티모어 오리올스아메리칸리그 동부 지구는 상위권 싸움이 깊어졌다.
탬파베이가 볼티모어를 두 경기 차로 물리치며 다시 1위에 올라왔고, 볼티모어는 호시탐탐 탬파베이의 뒤를 덮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밑으로 뉴욕 양키스가 3연승을 가져오며 중위권에 자리를 잡았고 토론토 블루제이스 역시도 서서히 자리를 잡아 가고 있었다.
최하위에 처진 보스턴 레드삭스는 간신히 승률 5할을 맞추면 다시 쭉 미끄러진다. 겨우 승리를 가져오면 그다음 날 참패를 한다.
1점 차 승부를 지키지 못해 패배를 가져오고 승리는 반드시 타선이 터져야만 가능했다.
메이슨의 한숨이 깊어지는 6월 1일이었다.
“럭키 보이, 얼굴이 좋아 보이는데?”
메이슨은 홈 경기장에 찾아 선수들을 둘러 보았다. 제일 먼저 찾은 선수는 역시 가장 애정하는 한국인 유행운이었다.
여전히 그는 유행운을 럭키 보이라는 애칭으로 부르고 있었다.
“어제 오랜만에 홈런 쳤으니까요.”
“벌써 19개야. 충분히 잘해 주고 있는데?”
“한국에는 아홉수라는 게 있습니다. 얼른 20개 채워야죠.”
“좋은 자세군.”
메이슨은 작년보다 더 주름이 많아졌다.
다시 보스턴 레드삭스의 중심부로 들어온 그는 잠을 제대로 못 잘 정도로 일에 매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타박을 듣는다. 늙어서 그렇게 일하다가 제명에 못 죽는다고…….
“커피 한잔하겠나?”
유행운이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네, 그러죠.”
커피를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메이슨은 유행운에게 좋은 사람이었다. 미국에 오는 데 모든 것을 맞춰 준 사람이 커피 한잔을 요청하니 거절하기는 쉽지 않았다.
“내가 커피를 좋아해. 그래서 여기 오는 사람들도 맛있는 커피를 마시길 원하지. 오자마자 여기부터 손봤네. 아, 아니군. 무능한 단장을 내쫓는 게 먼저였지.”
유행운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요즘 바쁘시죠?”
“아, 그렇지. 수급해야 할 포지션이 한둘이 아니라서 말이야.”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메이슨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유행운을 보았다.
“그래, 자네가 생각하기에 가장 급한 포지션이 어디라고 생각하나?”
“불펜이죠.”
유행운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여기서 승리를 지켜 줄 불펜 투수가 딱 두 명만 더 있다면 이 팀은 더 강해질 수 있다. 메이슨은 예상한 대답이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밑 작업 하고 있네. 여름 이적 시장을 여는 팀은 우리가 될 거야.”
“잘되었으면 좋겠네요.”
“자네가 생각했을 때 괜찮은 투수는 있었나?”
“음…….”
유행운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사실 LA 다저스의 선발진과 불펜진이 모두 탐났다. 확실히 다저스는 투수진이 탄탄했고 흔들림이 적었다.
“미국에서 뛰는 선수는 사장님이 잘 아실 테니, 말을 아끼겠습니다.”
“아, 그럼 다른 나라에는 있단 소린가?”
“네. 지금 백수 한 명 있거든요. 갑자기 그 친구가 생각났을 뿐이에요.”
“백수?”
그저 툭 던진 실없는 농담이었다.
“백유진이요.”
“아, 유진!”
메이슨도 기억하는 이름이었다.
“그 친구, 공이 괜찮은데. 팀이 없나?”
요즘 메이슨은 미국에서 일하느라 한국 경기를 챙겨 볼 여유가 없었다. 백유진이 지난해 FA였고 대전 호크스와 1년 단기 계약을 맺은 정도의 정보만 알았다.
“요즘 대전은 클로저가 등판할 일이 없으니까요.”
우스갯소리로 요즘 단톡방에서 백유진을 ‘백수’라고 부르고 있었다.
성도 마침 ‘백’이라 어감이 딱 맞아떨어지는 그 별명은 대전 호크스가 과거의 영광을 뒤로한 채 하위권에 처지면서 생긴 것이었다.
요즘 우승을 원하는 팀이 백유진을 트레이드하려고 물밑 작업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물론 내년에도 FA 자격을 얻기 때문에 팀에 눌러앉히기는 쉽지 않겠지만, 일단 백유진을 가지고 있다면 확실한 마무리 능력은 확보된다.
“대전 호크스의 클로저가 쉬고 있다…….”
메이슨이 무의식적으로 수염을 쓰다듬는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루트였다. 여름 이적 시장이 열리면 대부분 미국 내에서 뛰고 있는 선수를 대상으로 한다.
“요즘 호크스 사정은 어떤가?”
“최악이죠.”
유행운이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올해 용병 농사를 망쳤어요. 이미 투수를 교체한 걸로 아는데, 용병 타자도 1할에 머물고 있어서 시급하죠. 근데 지금 마이너리거들은 묶여 있잖아요. 좋은 매물은 없다고 봐야죠.”
당연히 매물이 없을 수밖에 없다.
여름 이적 시장이 끝난 후에야 매물이 하나둘 나올 것이다. KBO에서는 외국인 선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이었다.
메이슨의 머리가 휙휙 돌아가기 시작했다.
“고맙네.”
“네?”
“아주 좋은 대화였어.”
“그런가요.”
대전 호크스가 체계적으로 착착 무너지고 있는 게 좋은 대화였다는 뜻인가.
“자네의 말에서 힌트를 얻었네.”
“아, 대전 호크스를 보면서 리빌딩의 방향성을 잡은 거군요.”
“아니, 지금부터 방법을 찾아봐야겠지만…….”
“…….”
“어쩌면 프린스를 영입할 수도 있겠어.”
“프린스요?”
“백 말일세. 그는 마치 프린스 같은 얼굴을 갖고 있지.”
“아, 예…….”
메이슨이 뜨거운 커피를 단숨에 원샷한다.
나이가 들면 혀도 둔감해지는 걸까. 유행운이 그런 생각을 할 때, 메이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럭키 보이, 오늘 경기도 기대하겠네.”
그럼 난 바빠서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