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22
22. 안타 도둑
신우고등학교.
야구로 유명한 것 같으면서도 유명하지 않았고.
프로에 꾸준히 선수를 배출하지만, 정작 전국대회 우승은 머나먼 이야기였으며 그러다가도 10년에 한 번 정도는 괜찮은 선수를 배출하는 학교.
그러면서도 번번이 신우고는 우승에 도전한다.
올해도 같은 목표를 두고 출격한 신우고는 조 1위가 예상되는 북성고가 신생팀에게 나가떨어지자, 회심의 미소를 지었었다.
“또?”
신우고 감독 최정철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앞으로 나아갔다.
1사 1,2루.
선두타자의 안타를 또 다시 도둑이 나타나 낚아챘었다.
그리고.
현재는 2사 1,2루였다.
“또야?”
최정철 감독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글러브에서 공을 빼는 유격수를 보았다.
지금까지 최정철이 갖고 있던 희망을 앗아가고 절망을 주었던 그 도둑, 일명 안타도둑이 흙을 털며 웃고 있었다.
“감독님, 여기 찬물입니다······.”
선수도 선수였지만, 간신히 이성의 끈을 잡고 있었던 감독마저 정신줄을 놓으려 하자, 타격코치가 급하게 찬물을 가져왔다.
“냉수라도 마시고 정신 차리라고?”
최정철 입에서 날카로운 말이 쏟아진다.
물을 든 타격코치는 별 다른 대답 없이 뚜껑을 따서 감독의 손에 쥐여주었다.
날카로운 말이었지만, 사실 맞기는 했다.
지금 상대에게 끌려가고 있지만, 아직도 득점권에 주자가 나가 있었고 이럴 때일수록 지휘봉을 쥐고 있는 사람이 제정신이어야 했다.
“드시죠.”
물을 받아든 최정철이 벌컥벌컥 마시고 한숨을 크게 쉬며 말했다.
“여기서 1점.”
사실 이번 이닝을 시작할 때, 최소 2점을 내서 따라붙는 걸 목표로 했다. 하지만 경원상고의 도둑놈은 그 계획을 다시 망가뜨렸다.
직전 이닝을 생각하면 매번 그 도둑이 신우고의 계획을 방해하고 그림은 찢어버렸다.
“팀 안타가 경원상고보다 3개나 많아. 거기에 볼넷도 5개나 얻어냈는데, 왜 점수차이가······.”
한탄이다.
“홈런은 저기가 두 개 많습니다.”
그리고.
타격코치가 기다렸다는 듯 상대와의 차이점을 이야기했다.
“장난하나?”
“죄송합니다.”
타격코치가 했던 말의 의미는 경원상고의 홈런 두 개가 고영양가였다는 사실이었다.
유행운이 선취점으로 갈취한 투런 홈런.
민현웅이 천적을 짓밟고 터트린 그랜드슬램.
점수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최정철이 화가 나는 건, 더 따라붙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번번이 훼방을 놓는 한 존재 때문이었다.
“정신 차리자.”
올해 신우고의 목표는 우승이다.
그리고 북성고가 1패를 미리 적립했으니, 여기서 경원상고를 잡아내고 주말리그 전반기 1위를 가져와야 한다.
“이런 기회는 흔치 않아.”
최정철이 손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사인을 낸다.
그 사인을 확인한 3루 코치가 바로 선수에게 사인을 보냈고 대단한 작전은 아니었다.
2사 상황에서는 으레 하는 작전이다.
런 앤드 히트.
뛰고 쳐라 였다.
“아, 하나 더.”
유격수 방면으로 타구를 보내지 마라.
절대.
* * *
신월야구장.
주차장에 오래된 승용차 한 대가 들어왔다.
구석에 자리를 잡고 차에서 내린 여자는 작은 야구장을 바라보았다.
“······.”
미간을 좁히고 괜히 차키를 만지작거리던 여자가 결심한 듯, 차문을 잠갔다.
걸음을 옮긴다.
야구장에 가까워질수록 그녀의 눈에 푸른 잔디가 눈에 들어왔다.
“아들······.”
동시에 사랑하는 아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는 아이들이 많았음에도, 그녀는 단번에 사랑하는 아들을 찾아냈다.
그 순간, 그녀의 심장이 뛰었다.
* * *
“쉽지 않네.”
경원상고는 초반 대량 득점으로 가볍게 시작할 수 있었지만, 선발 박찬형의 부진이 뼈아팠다.
박찬형은 4회까지 질기게 버티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그 때 이미 점수를 석 점을 내준 상태였고 그 다음 투수도 가늘고 긴 투구를 했다.
그 이후, 불펜진도 갈대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수비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현재 점수는 9:4가 아니라 9:9이 되고도 남을 정도로 구위가 한없이 가벼웠다.
그리고 지금.
“날았다?”
또 다시 신우고의 득점권 상황.
앞서 6회 말에서도 선두 타자의 안타를 빼앗는 훌륭한 수비를 보여주었던 유행운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아웃 카운트 하나만 잡으면 이닝 종료.
그 다음은 경원상고의 역습이었다.
지금까지 경기의 진행은 그랬다. 경원상고가 넉넉하게 점수를 확보하고 그 이후에 신우고가 야금야금 따라붙는다.
점수 차가 좁혀지면 또 다시 경원상고 중심타선이 일을 하며 점수를 벌려 놓는다.
이제는 익숙해진 패턴.
“아웃!”
2사 1,2루.
유행운은 상대에게 또 다시 아웃카운트를 선물했다. 이번에는 머리 위로 넘어가는 타구를 점프하여 잡아냈다.
타구 판단을 빠르게 하여 뒤로 물러선 것도 탁월했지만, 점프 캐치를 할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점프력이 좋았기에 가능했다.
“유격수로 타구 보내지 말라 그랬잖아!”
그 순간, 신우고 더그아웃에서 격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몇번 째야? 저 도둑놈이 몇 개를······!”
도둑?
유행운이 글러브 속에 들어간 공을 품에 안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둑? 도둑놈?”
이상하게 귀가 간지러운 유행운이었다.
* * *
신우고는 지쳤다.
따라가다가 좋은 득점권 상황을 만들어내고도 몇 번이나 가로막히자, 이제는 무력감이 팀에 맴돌고 있었다.
게다가 감독마저 정신줄을 놓았고 그 상황에서 7회 초 경원상고 중심타선 공격이 시작되었다.
“아우, 지겨워.”
유행운은 배터박스에 서서 땅을 고르며 말했다.
“그냥 콜드패나 당하지, 왜 자꾸 용을 써.”
실제로 경원상고의 수비 시간은 꽤 길었다.
직전 이닝에서도 야수들은 오랫동안 서 있어야 했고 그 피로도가 누적된 상황이었다.
물론 상태가 나쁜 건 당연히 신우고 쪽이다.
그렇게 연속 안타를 치며 기회를 만들어도 유행운이 도둑처럼 적시타를 쏙 빼먹기 때문이었다.
“말이 없네.”
지금 상대 포수 최석윤은 혀가 그렇게 길더니, 이제는 입을 꾹 닫고 있었다.
뭔가 짜증이 난 얼굴이었고 이제는 묵묵히 사인을 보내며 포수로서의 할 일만 하고 있었다.
피식.
유행운이 짧게 웃고는 자세를 잡았다.
기억에는 좋게 남은 건 아니었지만, 최석윤의 스타일을 알고 있었다.
최석윤은 유행운처럼 육성 신분으로 프로 진출을 했다.
당연히 유행운보다 빠르게 드래곤즈에 입단했고 포수라는 포지션의 이점으로 꽤 오래 대구에 남아 있었다.
유행운과는 2군에서 만난 적이 있던 최석윤은 지금보다 더 교묘하고 날카로운 혀를 휘둘렀었다.
‘재수가 없어, 넌.’
그래서 오늘 굳이 그 긴 혀에 대응했던 유행운이었다.
과거 최석윤은 유행운을 ‘불행운’이나 ‘유불운’이라 불렀었다.
파앙!
초구는 몸쪽 깊숙이 박히는 직구.
“볼.”
볼 판정을 받고 최석윤이 눈살을 찌푸린다.
공을 받은 최석윤의 입장에서는 오늘은 존이 좁다거나, 주심 자체가 신우고에게는 불리한 판정만 한다거나, 그런 불만을 갖고 있었다.
물론 착각이었다.
그런 불만은 오히려 경원상고 포수 최태혁이 가지고 있어야 했다.
지금 경원상고의 투수가 죄다 제구가 날리다보니, 주심 자체가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이 팀 투수는 제구가 날리니, 비슷한 공은 볼이겠구나.
하여튼 지고 있으면 별 생각이 다 드는 법이었다.
“후우.”
투수가 로진백을 움켜 쥐며 심호흡을 한다.
툭, 로진백을 떨어뜨린 투수가 와인드업을 진행했다. 유행운 역시도 타격 자세를 취한다.
“후악!”
직전 이닝에서는 절반 정도 힘을 빼고 공을 던졌던 투수가 이번에는 유행운이 선두타자로 시작하면서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
유행운은 공을 보았다. 히팅 포인트를 뒤로 두고 공의 궤적을 최대한 오래 지켜본다.
‘떨공.’
배트를 참아낸 유행운이 블로킹을 하는 최석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볼!”
이제 투볼.
나름 각이 예리했다. 존에 박힐 듯 날아오다가 급격히 떨어지는, 보통 타자라면 이 공 참기 힘들다.
눈에 보이니까.
정직하게 날아오는 걸 보면 배트를 내고 싶어서 안달 나니까.
“공 좋다.”
유행운은 진심으로 칭찬했다.
한순간 배트를 내고 싶어서 유혹 당했고 아직 고등학생이라는 걸 감안하면 커브 완성도가 좋았다.
만약 프로 1군까지 끈질기게 올라갔었던 경험이 없었다면 유행운 역시도 이 공에 유혹 당했을 것이다.
‘더 노력해야 해.’
배팅장갑을 고쳐 끼며 유행운이 생각했다.
‘더 높이 올라가려면 여기서 머뭇거리면 안 돼.’
야구를 다시 시작하게 되면서 유행운은 항상 미래를 생각했었다.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환경에서 야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유행운이 갖고 있는 재능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그 귀중한 찬스를 한 순간의 실수로 날려버리고 싶지 않았다.
상대 투수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윽고 오른발을 박차며 들어올린 투수가 공을 힘차게 뿌렸다.
날아오는 공을 바라본다.
존 중앙에 몰리는 듯하지만, 직구에 비해 느린 것을 보아 이건.
‘슬라이더.’
판단을 빠르게 마친 유행운이 옆구리에 팔을 붙이고 히팅포인트를 앞으로 가져갔다.
손목에 힘을 주고 몸통을 부드럽게 돌리며 타격한다. 물론 부드럽게라고 표현했지만, 모자란 힘을 끌어 오기 위해 사정없이 비틀었다는 표현이 정확했다.
따아악!
좌완이 던지는 슬라이더를 그대로 받아친다.
존 중앙에 물리던 공의 궤적이 우타자 몸쪽으로 꺾이는 걸 계산해서 정타를 만들었다.
“도망가자.”
유행운은 중견수가 뒤로 급하게 물러서는 걸 지켜 보았다. 하지만 괜한 발걸음이다.
아직도 손이 저릿한 걸 보면 제대로 받아쳤고 중견수가 잡을 수 없는 위치까지 날아갈 테니까.
휘익.
가볍게 배트를 던지고 산보하듯이 베이스를 돌았다. 오늘 경기를 잡아 조 선두에 오르는 것이 작은 목표였다.
최대한 돋보일 수 있는 대회를 모두 나가는 것이 목표였고 그러려면 주말리그 1위를 가져와야 한다.
“어?”
생각하며 2루 베이스를 지나던 유행운의 발걸음이 우뚝 멈추었다.
누군가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굉장히 익숙한 얼굴이었고 지금 유행운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다.
“엄마······?”
지금까지 살면서 유행운에게 중요한 사람은 딱 두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이제 이 세상에는 없었고 남은 한 사람은 지독한 우울증에 걸려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유행운은 땅에 못 박힌 듯 그대로 멈춰섰다.
그의 모친이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난 과거, 부친이 죽은 후에는 단 한 번도 야구장을 찾지 않았던 여자가 그의 모친이었다.
“쟤 뭐해?”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터져나온다. 그리고 심판이 다가와 주의를 주려는 순간, 유행운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뒤늦게 발걸음을 뗀 유행운이 3루 베이스에 다다르자, 팔을 들어 머리 위로 하트를 만들었다.
그 모습에 긴장한 듯 굳어있던 모친의 얼굴이 한결 부드럽게 풀렸다.
“미쳤냐?”
“누구한테 하트를 하냐?”
“너 여친 있냐? 어?”
유행운은 홈을 밟고 더그아웃에 들어왔고 3루에서 하트를 한 것에 추궁을 받고 있었다.
“아이고, 야구에 집중할 나이에 하트나 하고 계십니다. 아이고오.”
저 멀리서 강수현이 우는 시늉을 하며 놀려대고 있었다.
“예쁘냐?”
눈치 없는 류진운은 옆에서 이상한 말이나 한다.
“예쁘냐고.”
“뭐가.”
“그 하트 주인공, 예뻐?”
“우리 엄마야.”
“엄마가 예쁘시- 아니, 뭐라고?”
유행운을 놀리려던 류진운이 당황해 되물었다.
“엄마라고.”
“그 하트 주인공이 어머니라서 엄청나게 미인이셨구나!”
류진운은 순식간에 탈룰라 상황에 놓였다.
“엄청 아름다우시더라! 네가 어머니를 닮아서 이렇게 예쁜거구나!”
에휴.
유행운이 한숨을 쉬며 류진운의 얼굴을 밀었다. 하지만 그의 입가에도 웃음이 번져 있었다.
항상 경기가 있으면 학부모들이 응원을 온다. 물론 언제나 그의 어머니는 자리에 없었다.
‘서른이나 먹고 이게 뭐하는 짓이람.’
멋쩍은 생각도 들었지만, 기분이 생각보다 좋았다. 그토록 야구를 싫어하던 사람이었으니까.
어쩌면 엄마와의 관계가 더 빨리 개선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이네.”
유행운은 과거 인생 1회차에서도 홈런을 친 적이 있지만, 엄마가 보는 앞에서는 홈런을 친 적이 없었다.
그럴 기회 자체가 없었다.
“앞으로 홈런 많이 쳐야겠다.”
유행운이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리던 순간.
“저 새끼는 진짜 눈치가 없어.”
빠아아악!
유행운과는 비교도 안되는 거대한 타격음을 자랑하며 민현웅이 백투백홈런을 날렸다.
“재수없어, 진짜.”
종잇장처럼 가벼운 멸치는.
미친듯이 벌크업을 해도 근육이 쉽게 붙지 않는 타고난 마른멸치는 근수저가 몹시 언짢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