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age member of the mandol has returned RAW novel - Chapter (118)
118화 국내 최초 무전취식 아이돌
“형, 그게 무슨 소리예요? 지갑이 사라지다뇨?”
“이상하다. 아까까지만 해도 분명히 있었는데…….”
“가방에선 꺼내지도 않았잖아요.”
“음, 아무래도 소매치기당한 것 같지?”
아, 그렇구나. 소매치기당한 거구나.
어휴, 난 또 길바닥에 흘린 줄 알았네.
“……태연하게 이야기할 때가 아니잖아요! 우리 지금 엿 된 거라고요!”
국내 최초, 타국에서 무전취식으로 체포당한 아이돌.
내일 아침 기사에 실릴 헤드 라인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계산서를 들고서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가게 주인에게 딱 들켜 버렸다.
나는 황급히 《한 권으로 끝내는 프랑스어》를 뒤적였다.
고민 끝에 내뱉은 말은…….
[잘못했습니다.]입안에서 굴려지는 발음이 비굴하게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이겠지?
무작정 용서를 빌자, 가게 주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형, 당황할 필요 없어. 우린 21세기 사람이잖아.”
남병철이 자신의 휴대 전화를 쓱 들이밀었다.
실시간 번역기 앱이 실행되고 있었다.
“휴대 전화에 대고 말하면, 자동으로 번역이 되나 봐.”
“남병철 너 이 자식, 진짜 천재잖아!”
나는 곧장 휴대 전화에 대고 이야기했다.
“저희가 지갑을 잃어버려서요. 호스트에게 연락해서 돈을 가지고 오라고 전할게요.”
그러곤 번역 버튼을 꾹 눌렀다.
[우리는 지갑이 없다. 주인의 돈을 갈취하겠다.]프랑스어로 번역된 음성이 가게 내부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어찌 된 영문인지 가게 주인의 얼굴은 점점 더 험악해졌다.
“……야, 양해 부탁드립니다.”
[야, 네가 이해해라.]식당 단골로 보이는 한 남성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당장 주먹이 날아와도 이상할 거 하나 없는 분위기였다.
“……얘들아, 우리 뭔가 실수한 것 같지?”
멤버들은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건장한 체구의 남성이 뚜벅뚜벅 걸어온다.
이내 매니저의 어깨를 으스러뜨릴 기세로 꽉 쥐었다.
[당신네들 어느 나라 사람이야?]“뭐, 뭐라고 말씀하시는 거야?”
“Where are you from?”
때마침 가게 구석에 놓인 티브이에서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케이팝 아이돌 중에선 드물게 서양권 진출에 성공한 보이 그룹 ‘MOC’였다.
최하준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손끝으로 티브이 화면을 가리켰다.
“We are K-pop idols like them!”
살아서 돌아가기 위한 발악이었다.
[저 녀석들 케이팝 아이돌이라는데?] [넌 그걸 믿냐? 지난주에 버스 정류장에서 구걸하던 녀석은 자기가 일본 배우라고 했어.] [거짓말인지 아닌지 확인해 볼까? 진짜면 밥값 정도는 대신 내줄 의향이 있어. 근데 만약 가짜라면…….]일행과 무어라 대화를 나누던 남성이 찌릿 눈을 흘겼다.
이윽고 피에르에게 SOS 신호를 보내던 매니저의 휴대 전화를 빼앗아 들었다.
“Sing.”
네? 노래요? 여기서요?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들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가 한층 더 암울해진다는 점이다.
등을 떠밀려 피아노 앞에 앉은 문지호가 사색이 되어 물었다.
“내가 왜 반주야? 그것보다 이 상황에서 무슨 노래를 불러야 하는데?”
“지호 형, 프랑스 노래도 연주할 수 있어요?”
“있겠냐? 연주를 떠나서 부르지도 못하는데!”
큰일이다. 여기서 우리 데뷔곡을 불러봤자 싸늘한 반응만 돌아올 테고.
그렇다고 해서 MOC의 히트곡을 커버하기엔 아류 그룹 취급받을 게 뻔했다.
그렇다면.
“진우재 선배님의 《파리의 연인》은 어때?”
내가 말했다.
“그 왜, 프랑스어 추임새도 간간이 들어가 있으니까. 호응 유도도 비교적 수월하지 않겠어?”
“오, 나쁘지 않은데요? 피아노도 있겠다, 재즈풍으로 편곡해서 부르는 건 어때요?”
“재즈풍이라…… 괜찮은데?”
“나도 찬성. 형, 근데 나는 그 곡 후렴구밖에 몰라.”
잠자코 대화를 듣고 있던 문지호가 와락 얼굴을 구겼다.
“내 허락 없이 멋대로 정하지 마! 즉석 편곡이 뉘 집 개 이름인 줄 알아?”
“……편곡 못 해?”
문지호는 대답 대신 빠드득 이를 갈며 피아노 건반 위로 손을 얹었다.
“선창은 나, 후렴구는 다 같이.”
일방적인 통보였다.
얼마 안 가, 희고 기다란 손가락이 춤을 추듯 건반 위를 오르내렸다.
요구했던 대로 재즈풍 멜로디였다.
– 낯선 땅 낯선 공기
방금 눈이 마주친 그대
이름을 물어도 될까요
노래가 시작됐다. 부지런히 포크와 나이프를 움직이던 손님들의 손이 멈칫했다.
기교 없는 깨끗한 미성이 피아노 선율에 녹아들었다.
의심 가득한 눈길을 보내 오던 남성도 턱짓으로 가볍게 박자를 타고 있었다.
– 오해할까 봐 미리 말하는데
나 가벼운 남자 아니에요
어쩌면 그대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달려왔는지 몰라
원곡은 카사노바처럼 끈적한 창법으로 노래를 부르는 게 특징이지만.
문지호는 낯선 땅에서 첫사랑을 마주한 소년처럼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리고 대망의 후렴구. 우리는 입을 모았다.
– Oui Oui Oui
그대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나를 사용해요
이런 기회는 흔치 않죠
어디선가 손뼉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짝, 짝, 짝.
물결처럼 번진 박수는 어느덧 가게 안을 가득 메웠다.
– Non Non Non
불순한 의돈 아냐
얼마든지 나를 사용해요
이런 기회는 흔치 않죠
그러고 보니 관객과 이토록 가까운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도 참 오랜만이었다.
– 잠깐 걸을까요 샹젤리제 거리를
잔을 맞댈까요 마르스 광장에서
관객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고, 마음을 전한다.
다음으로는 다시금 지호의 독창이 이어졌다.
– 오해할까 봐 미리 말하는데
나 가벼운 남자 아니에요
어쩌면 그대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달려왔는지 몰라
건반을 두들기던 문지호가 나를 올려다봤다.
마지막 파트를 내게 넘기려는 것 같았다.
나는 고갯짓으로 답하며 크게 숨을 들이켰다.
– Alors, mademoiselle
작별의 키스 대신
그대의 이름을 들려주세요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한 거리에 백발의 노파가 앉아 있었다.
시선이 얽히자, 그녀는 소녀처럼 입을 가리고서 수줍게 미소 지었다.
– Oui Oui Oui
그대의 이름을 들려주세요
나에게
노파에게 사랑을 속삭이듯 노래를 끝마쳤다.
그 후 우리는 관객, 아니 손님들의 눈치를 슬금슬금 살폈다.
“Bravo!”
“Encore, Encore!”
다행히도 뜨거운 환호가 돌아왔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자니, 아까 그 건장한 체구의 남성이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설마 공연이 성에 차지 않았던 걸까.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함께 사진 찍어요! 인별그램에 올려도 되죠?]“예?”
“Picture together!”
“예, 예에…….”
얼떨결에 사진을 찍게 된 우리는 굳은 얼굴로 카메라 렌즈를 응시했다.
“What’s the name of your group?”
“BLACK SEASON.”
“Oh, BLACK SEASON. I’ll be your fan.”
그는 우리의 식삿값을 대신 내주는 건 물론이고, 해가 저물면 샤토까지 데려다주겠다고 약속했다.
호의는 감사하지만, 매니저의 연락을 받고 달려온 할아버님의 등장으로 무산이 되었다.
[지갑을 두고 갔더군요.]소매치기는 무슨. 할아버님이 말씀하시길 캐리어 위에 아주 얌전히 놓여 있었다고 한다.
멤버들은 눈을 가늘게 뜨고서 매니저를 응시했다.
“……이런 사람이 우리 매니저라니.”
매니저는 보란 듯이 아래턱을 쭉 내밀었다.
“왜, 너희도 내가 한심해?”
“네!”
굳센 대답을 끝으로 멤버들은 빠른 속도로 매니저에게서 멀어졌다.
매니저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상점가에 울려 퍼졌다.
멤버들을 뒤쫓던 중 작은 소품 숍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잠깐만, 나 여기 들렀다 가도 돼? 윈 씨한테 줄 선물 사야 하거든.”
멤버들이 괴상한 골동품을 구경하는 동안, 나는 소품 숍 구석에 마련된 기념품 판매대를 둘러보았다.
‘무난한 게 좋겠지?’
에펠탑 열쇠고리를 집어 들자, 옆을 지나던 최하준이 대놓고 질색했다.
“켁, 구려요. 차라리 이게 나아요.”
하준이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육식 공룡이 에펠탑을 뜯어 먹고 있는 열쇠고리가 걸려 있었다.
“……이게 맞아?”
“형, 저만 믿어요. 그거 완전 힙해요.”
도겸이 형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귀엽네. 우리도 하나씩 맞출까?”
“헉, 너무 좋아요! 뭐로 할까요?”
“어디 보자, 난 이게 좋겠는데?”
형의 원픽은 다름 아닌, ‘I LOVE FRANCE’라 적힌 열쇠고리였다.
뭐야, 그 도를 넘은 촌스러움은. 입고 이래 그 누구도 손대지 않은 듯 먼지만 수북이 쌓여 있었다.
“너희 생각에도 이게 제일 귀엽지? 이거로 다섯 개 사자.”
“쓰읍…….”
한발 늦게 도착한 지호와 병철이가 격하게 도리질 쳤다.
“그, 도겸이 형? 여기 다른 것도 많은데요?”
“자, 형이 결제까지 끝내고 왔어.”
“더헉, 이렇게 빨리?”
결국, 우리는 소품 숍에서 가장 촌스러운 열쇠고리를 손에 쥐게 되었다.
“그윽…….”
“하하, 다 같이 물건 맞춘 건 이번이 처음이지? 다들 잃어버리지 말고 소중히 간직해야 해.”
자그마치 7년 하고도 반년 만에 갖게 된 우정템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촌스러운 열쇠고리도 달리 보였다.
“……아무도 안 샀다는 건, 이걸 달고 다니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다는 거잖아. 오히려 좋아!”
나는 곧장 열쇠고리를 크로스백에 매달았다.
들뜬 기색을 감추지 못하자, 멤버들도 나를 따라 하나둘 열쇠고리를 매달았다.
“뭐, 흔해 빠진 것보단 나으니까.”
“자세히 보면 나름대로 정감이 가.”
“아저씨 같지만, 형들 뜻이 그렇다면야…….”
그런 우리를 보며 도겸이 형은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 * *
파리 근교에 밤이 찾아왔다.
외출을 나섰던 우리는 서둘러 샤토로 돌아왔다.
멤버들이 각자의 방에서 휴식을 취할 때, 나는 디렉터로서 피에르와 대화를 나눴다.
“마음이 무겁습니다. 전에도 말했지만, 난 살아 있는 사람은 한 번도 찍어 본 적이 없습니다.”
피에르의 작업물을 살펴보자면, 영상은 모두 자연 광경을 담고 있었다.
반면 사진은 주로 폐허에 굴러다니는 소품을 위주로 촬영을 진행했다.
“저도 고민을 해 봤는데요. 《IDENTITY》는 서로 다른 두 곡을 섞은 하이브리드 리믹스곡이라서 전환점이 존재해요. 여기까진 전에 말씀드렸죠?”
“그때 선우 군이 말했습니다. 전환점을 기준으로 앞부분은 그림자, 뒷부분은 빛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이해 못 했습니다. 한국말 어렵습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앞부분은 저희를 폐허의 소품처럼 찍어 주셨으면 좋겠어요.”
“소품처럼? 생명이 없는 것처럼 찍으란 말입니까?”
“정확해요. 그리고 뒷부분은 밤하늘의 오로라처럼. 또 설원의 눈보라처럼. 자연 일부라고 생각하고 촬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하면 피에르의 장점을 살린 결과물이 나올 것 같았다.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그 전에 한번 촬영해 봐도 되겠습니까?”
“저를요? 도움이 된다면야…….”
“기왕이면 그때 그 영상 속 모습처럼 부탁합니다.”
돌라이브 첫 방송 때 보여 줬던 모습을 말하는 건가?
피에르가 말을 이었다.
“수십, 수백 번씩 돌려봤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서 있으면 될까요? 그래 봤자 그때 그 느낌은 잘 안 날 거예요.”
“아무 생각 없이……? 아닙니다. 영상 속 선우 군, 무척 외로워 보였습니다.”
“제가요? 마네킹처럼 보이는 게 아니라요?”
어떤 포즈를 취해야 할지 모르겠다.
피에르는 머뭇거리는 내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파인더를 통해서 들여다보면, 이따금 생명이 없는 사물에서도 감정이 느껴지곤 합니다. 내가 느낀 감정은 외로움이었습니다.”
“……제가 좀 울상인가 봐요.”
“피사체로 쓰기엔 딱 좋은 얼굴입니다. 방금 찍은 사진도 꽤 마음에 듭니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요.”
“나는 좀 더 준비하다 잘 테니, 선우 군은 이만 들어가서 쉬는 게 좋겠습니다.”
“네, 피에르 씨도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길게 뻗은 복도를 지나, 배정받은 방으로 향했다.
“뭐야, 여기 내 방 아니야?”
어찌 된 일인지, 멤버들이 방 안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한선우, 빨리 문 안 닫아?”
“프랑스의 밤은 춥구나. 하하…….”
“건물이 낡아서 방풍이 하나도 안 돼요. 차라리 바깥이 더 따뜻하겠어요.”
“샤토 주변이 숲속이라서 더 춥나 봐. 뜨끈뜨끈한 K-보일러가 그리워.”
그런 이유로 멤버들은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살을 맞대고 있었다.
“근데 왜 하필 내 방이냐.”
……내가 외로워 보인다고?
그렇다고 해도 이런 관심은 사양하고 싶다.
투정도 얼마 가지 않았다.
나는 멤버들과 턱을 달달 떨며 온기를 나눴다.
“추, 추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