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rongest He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9
◈ 상처입은 아이
역시 셋 중에서는 청아가 가장 영민하다.
남은 둘은 세맥을 느끼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그 이상으로는 올라가지 못했다.
무공은 새길 수 있지만 심득은 자신의 것.
이런 부분에서는 결국 재능의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 정도면 되었다.”
더 이상 몸으로 부딪치는 건 의미가 없었다.
헐떡이는 셋을 뒤로 물리고 내기를 끌어올렸다.
꿈틀거리는 넝쿨은 여전히 산만큼 있었지만 그래 봐야 타기 좋은 풀떼기에 불과하다.
화르륵―!
홍염궁(紅炎宮)의 염화공(炎火功)을 사용했다.
너른 면적을 태우기에는 적합한 무공이다.
불길이 능선을 타고 번지며 넝쿨을 태웠다.
저들끼리 뭉치며 견뎌보려 했지만 의미 없었다.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아니 무슨 대마법사세요?”
“잔재주일 뿐이다.”
아이들 눈에는 화려한 것이 대단해 보이나 보다.
멍한 흑아의 이마를 튕기며 잿더미를 걷어냈다.
바람이 사람 두엇 너비의 길을 내고, 그 안으로 천천히 걸었다.
그제야 주변이 좀 뚜렷하게 보였다.
“어디까지 뻗어있는 걸까요?”
“멀지 않다. 뿌리를 내리고 우리를 살피고 있구나.”
“넝쿨 말이죠?”
“겉으로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 말거라. 진짜는 항상 그 안에 숨어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기운을 분산해도 근원은 존재하는 법.
살아 움직이는 넝쿨은 그저 곁가지에 불과하다.
땅을 타고 이어져, 깊고 깊은 곳에서 그 힘의 약동이 느껴진다.
“이거 재미있구나.”
“왜 그러세요?”
“이 섬은 사람의 출입이 끊겼다고 하지 않았느냐?”
“네. 확실해요.”
“허면, 이 기척은 누구의 것이지?”
힘을 주어 바닥을 밟았다.
우르릉, 소리를 내며 땅이 흔들렸다.
놀란 개미새끼들마냥 허둥대는 기척들이 수십이었다.
그것도 넝쿨을 따라 도착한 근원의 근처.
“직접 눈으로 보자꾸나.”
천마신공 칠단공 – 천마등천(天魔登天)
천마진기가 순식간에 사방 공간을 장악했다.
수십, 수백 족장이 넘는 땅이 그대로 솟구쳤다.
바위가 갈라지고 건물은 으깨졌다.
산마저 들어 올릴 수 있는 이 힘 앞에 무른 지면 따위는 우스웠다.
순식간에 넝쿨 뿌리가 여실히 드러났다.
“마, 맙소사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염동력이야?”
“대체 얼마를 들어 올리는 거지? 수백 톤은 우습게 넘어갈 거 같은데……”
“이게 태상문주님의 힘……”
감탄하기 바쁜 아이들을 스쳐 앞으로 나아갔다.
허공으로 떠버린 넝쿨 뿌리는 한 곳으로 이어져 있었다.
부상한 흙더미 사이에서도 뚜렷하게 보였다.
“……어? 문주님, 저기 저거!”
그리고 그 아래에 감춰져 있던 시설도 드러났다.
들어 올린 흙더미 아래에는 철로 만든 지붕이 뚜렷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뿌리는 그 지붕의 관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는 형태였다.
“섬에 이런 시설이 있다는 얘긴 들어 본 적이 없는데. 안 중령님은 들어 본 적 있어요?”
“군 정보에도 이런 건 없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상부에서 막아놓은 정보일지도 모르겠군요.”
“상부에서요?”
“저 규격은 군에서 사용하는 겁니다.”
흑아가 가리킨 건 철제 틀이었다.
상당히 단단해 보이는 것이 보통 물건은 아니었다.
“그, 그럼 어떻게 하죠? 우리가 군 시설에 침투한 건가요?”
“군의 비밀 실험장이라면……”
“태상문주님, 어떻게 하죠?”
나란히 돌아보는 모양새가 겁먹은 강아지 같다.
천마라는 이름을 앞에 달고 있으면서 이런 모양새라니.
앞으로 가르칠 게 많아 보인다.
“하늘 아래 본좌가 두려워하는 건 없다.”
천마등천으로 들어 올린 흙더미들을 옆으로 치워버린 뒤, 철제 건물에 내기를 집중했다.
드득드득, 강한 반발력이 느껴졌다.
천 년 전의 철제 도구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단단함이었다.
하지만 그래 봐야 신외기물에 불과하다.
콰드득―!
철제 지붕이 통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듣기 싫은 굉음과 함께 내부의 모습이 천천히 드러났다.
당황으로 부산스러운 인간이 여럿이었다.
“손님 받거라.”
보무도 당당하게 걸어 들어갔다.
#
“……저게 사람이냐?”
유인서가 혀를 내둘렀다.
고성능 망원경으로 관찰한 천마라는 인물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톤 단위의 중량을 공깃돌처럼 가지고 노는 힘은 정면에서 어떻게 할 수준이 아니었다.
“포기하시죠. 저도 저 천마라는 인물을 압니다. 상식선에서 싸울 상대가 아닙니다.”
“한 대령님도 한동안 같이 다니셨죠?”
“임무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것 치고는 꽤 신경 써주는 것 같은데.”
한서휘가 입술을 달싹이다 그만두었다.
개인이기에 앞서서 군인이었다.
“뭐, 어쨌든 저런 걸 보면 싸울 마음은 싹 가시네요. 어지간해야 비벼보지. 저런 괴물을 나 혼자 어떻게 하라고.”
“그럼 여기서 물러나시는 겁니까?”
“아뇨. 아쉽게도 가문의 요청과는 별개로 저 나름의 목적이 있거든요.”
“무슨 소리입니까?”
한서휘가 미간을 좁혔다.
그가 이곳까지 따라온 건 어디까지나 임무.
유인서 역시 마찬가지의 생각으로 움직인 거라 여겼다.
헌데, 아니다?
“사람은 저마다의 목적이 있잖아요. 한 대령님이 군에 충성하는 것처럼. 저도 개인적인 목적이 있어서 이곳까지 온 거랍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겁니까?”
“말했잖아요, 개인적인 거라고.”
유인서가 가볍게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허공의 일부가 일그러지며 상이한 공간을 투영했다.
그건 그녀가 조금 전까지 망원경으로 보던 공간의 일부였다.
“그럼 호위는 여기까지만 받을게요.”
“인서 씨!”
한서휘가 다급히 손을 뻗어 봤지만 늦었다.
일그러진 공간이 다시 펴지는 것과 동시에 유인서가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희귀하기 그지 없는 특상의 능력.
공간이동이었다.
#
흰 가운을 입은 이들이 다섯.
총을 든 채 경계하는 경비가 다섯이었다.
공간은 격자 형태였고, 각 구역마다 단단한 물건들로 채워져 있었다.
무언가를 실험하는 장소.
당문이나 제갈가 심처에서 유사한 장소를 본 적이 있다.
“우, 움직이지 마! 여긴 군 시설이다!”
“당신들 지금 범법 행위를 저지르고 있는 거야!”
총 든 아이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나름의 반항이겠지만 큰 의미는 없었다.
가볍게 고갯짓을 하자 흑아가 먼저 나서서 이들을 제압했다.
“난 특무대 소속이었던 안기남이다. 여긴 뭐 하는 시설이지? 이런 곳이 있다는 보고 따위는 듣지 못했다.”
“아, 안기남? 아니, 왜 당신이 우리를 공격하는 겁니까? 우리 다 군 소속입니다.”
“과거형이다. 난 지금 군을 나왔어. 그보다, 묻는 말에나 답을 해라. 어째서 이런 시설이 금지 구역에 자리하고 있는 거지?”
흑아의 물음에 눈만 데굴데굴 굴러갔다.
섭공으로 기억을 뽑아올까 싶었지만, 또 터지면 곤란하다.
잡힌 이들을 슥 훑어 머리를 찾았다.
“네가 이들의 수장인가?”
“……저, 전 그냥 연구원일 뿐입니다.”
“무엇을 연구하는 거지?”
“그건 극비입니다. 절대 말할 수 없어요!”
무거워 봐야 입이다.
손끝에 내기를 모아 연구원 놈의 머리 옆을 그었다.
철제 상자 하나가 대각선으로 잘린 채 무너졌다.
쿵, 소리에 얼굴이 하얗게 물들었다.
“무엇을 연구하는 거지?”
“……괴, 괴이를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괴이 연구라고!? 괴이 연구는 국제 협약 위반이다!”
연구원의 답에 흑아가 불같이 화를 냈다.
어르신 말하는데 끼어들기는.
“조용히 하거라. 연구한다는 괴이는 어디에 있느냐?”
“통제 시설 아래에 있습니다. 설마 그 괴이를 어쩌려는 생각은 아니겠죠?”
“네놈은 본좌의 생각을 알 자격이 없다.”
손짓으로 묶인 이들을 밀어내고 바닥을 봤다.
밖에서 보던 넝쿨의 통로가 아래로 이어지고 있었다.
뭔가 복잡한 기운이 느껴졌다.
괴이 특유의 독기도 있지만 다른 것도 존재했다.
드드드득.
단단한 바닥을 억지로 뜯어내자 커다란 유리벽이 나왔다.
밖에서 들어오는 넝쿨은 통로를 거쳐 유리벽 안으로 이어지는 형태였다.
청색 액체 사이로 희뿌연 형태 하나가 엿보였다.
“저, 저건?”
“인간형 괴이!?”
“말도 안 돼! 인간형 괴이를 잡아두고 있다고!?”
유리벽 안쪽으로 잠들어 있는 건 아이였다.
10세 전후 정도로 보면 될까.
몸을 웅크린 채 액체 안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통을 넘어 이어진 넝쿨은 아이의 등에 연결된 상태였다.
“말해. 어떻게 인간형 괴이를 포획한 거지?”
흑아가 연구원의 멱살을 쥐었다.
끼어들지 말라니까 그놈 성격 참.
한소리 할까 하다 이번에는 그냥 두고 보았다.
“저, 저도 잘 모릅니다. 저흰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연구만 했을 뿐입니다.”
“헛소리하지 말고. 인간형 괴이가 포획됐던 전적은 없어. 무슨 수로 잡았다는 거냐!?”
“진짜입니다. 누군가 제압해서 연구를 의뢰했다는 이야기는 있지만……알다시피 상부에서 쉬쉬하면 알 도리가 없습니다.”
“누군가 제압했다고? 인간형 괴이를?”
흑아의 놀란 목소리를 뒤로 한 채 아이를 봤다.
기묘하게 느껴지던 기운의 정체를 이해할 수 있었다.
굉장한 고등 수법으로 아이의 힘을 분산해서 제압한 것이었다.
“일양지(一陽指)의 기운이군. 단가의 맥이 지금껏 이어졌던 건가?”
“일양지요? 무공인가요?”
“단가에서 전해지던 상승 무공이다. 저 아이의 기맥마다 일양지의 기운이 남아 있어. 독기를 억제하고 행동을 제약하는 거지. 이걸 사용한 자는 보통 고수가 아니다.”
천년전 단가의 최고수보다 월등히 높은 경지.
일전에 크리스라는 놈 너머로 엿보였던 양강지기의 고수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한 놈의 소림의 맥이고, 다른 한 놈은 단가의 맥이라.
점점 흥미로워진다.
“일단 물러나거라.”
유리벽을 깨뜨리고 액체 속에서 아이를 꺼냈다.
축 늘어진 몸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상처가 심하군.”
갇혀 있었을 때는 몰랐는데, 꺼내고 보니 몸 이곳저곳이 전부 상처였다.
복부는 개복했다 닫은 흔적이 여럿이고, 등 쪽은 멀쩡한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예전 해도의 모습과 비슷했다.
“네놈들이 이리한 것이냐?”
“그, 그저 연구의 일환이었을 뿐입니다.”
“연구라. 이리 제압당해 반항조차 하지 못하는 아이를 베고 자르는 것이 연구라는 거냐?”
“괴이일 뿐입니다. 괴이를 연구하는 일에……컥!”
대꾸하는 연구원을 당겨와 움켜쥐었다.
놈은 당황과 억울함이 뒤섞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승자가 패자를 죽이고, 인간이 동물을 해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섭리다. 본좌 역시 덤벼드는 숱한 이들을 이 손으로 죽여왔다. 하지만 저항조차 하지 못하는 아이를 희롱하고 괴롭히는 짓 따위는 하지 않는다.”
“저, 저희는 그저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
“편리한 변명이구나.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를 않았어.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하는 위선자들.”
언제나 구역질 나는 놈들은 차고 넘쳤다.
정파라는 간판을 달고 뒤에서 온갖 위선을 행하는 놈들.
천마신교를 발촉하고 중원을 정벌한 건 그에 대한 반발이기도 했다.
강함을 숭상하되, 저열해지지 않는 것.
그게 내가 바라는 마도(魔道)다.
“사라져라.”
천마신공 오단공 – 천마영월(天魔影月)
발밑으로 퍼진 그림자가 놈들을 삼켰다.
비명도 없고 피와 고통도 없었다.
나타났던 그림자가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놈들도 모습을 감췄다.
“전부……죽이신 건가요?”
그 모습에 적아가 떠듬떠듬 물었다.
“본좌가 과하다고 보느냐?”
“잘 모르겠어요.”
“그럼 생각하거라. 무조건 적인 복종은 어리석다. 내 곁에 서는 것이 너의 삶과 같은가. 항상 생각하고 항상 판단하거라.”
“……네.”
언제나 옳은 것 따위는 없다.
옳다고 생각하기에 걷고, 그것을 관철할 뿐이다.
적아가 이를 따르지 못한다면 갈라지면 그만.
마도는 자유롭기에 누군가를 구속하지 않는다.
“그럼 이 아이를……”
이젠 상처 입은 아이를 풀어 줄 때다.
몸을 옥죈 일양지를 해제하기 위해서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찰나.
“함부로 만지면 안 됩니다!”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공간의 왜곡이 나타났다.
그리고 기감의 틈바구니에서 튀어나오는 계집 하나.
아이와 내 사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