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rongest He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39
◈ 프로듀싱
어색한 분위기.
이지아와 한채아가 서로를 못 보고 멀뚱히 바닥만 바라봤다.
한 지붕 신세가 되기는 했지만, 아직 언니 동생하고 지낼 사이는 아니었다.
특히, 이지아는 한채아에게 크게 당한 기억이 있는 터라 지금 상황이 달갑지 않았다.
“……저기 채아 씨.”
“그냥 채아라고 해요. 우리 나이도 비슷한데.”
“몇 년 생?”
“99년 생인데……”
“난 00년 생인데.”
“밖에서 한 살 차이는 친구죠. 친구.”
괜히 분위기만 더 어색해졌다.
천마신교 입단 시기로는 이지아아가 선배.
하지만 나이로는 한채아가 한 살 더 많았다.
빠른 생 선배를 맞이하는 대학생이라 해야 할까.
서로가 민망한 입장이었다.
“끄응. 이거 너무 불편하네요. 확실하게 하죠. 나이는 채아 씨가 더 위지만 내가 먼저 들어왔어요. 그러니까 서로 말 놓는 거로.”
“그래요. 난 전혀 불만 없어요.”
“그럼 말 놓는……다?”
“으, 응. 그래, 지아야.”
손발이 오그라드는 걸 겨우 참으며 말 놓는 데 성공했다.
“그럼 저기 말 놓은 김에 사과할게. 저번에 그 일 말이야. 내가 너무 심했어.”
“아니 뭐……너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으니까. 아직 좀 찝찝하긴 하지만 이해하고는 있어.”
“고마워. 못내 불안했거든.”
“대신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될까?”
한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태상문주님 곁에서 모시고 싶다는 말. 혹시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지?”
“아, 아니야! 절대 그런 거 아니야. 물론, 문주님이 굉장히 멋있기는 하지만 감히 내가 그런 생각을 품을 수는 없지. 난 그저 은혜를 갚기 위해서 머무르겠다고 말 한 거야.”
“그래?”
“그럼. 나같이 천한 계집아이가 그럴 수는 없지.”
“뭐, 뭐야. 천하긴 뭐가 천해?”
“그렇잖아. 나는 오래전부터 그런 일을 해 왔는걸. 주제를 알고 살아야지.”
“야! 그런 말 하지 마!”
어두워지는 한채아의 모습에 이지아가 버럭 소리 질렀다.
“과거에 있던 일은 어쩔 수 없던 거잖아! 그거 가지고 천하다 아니다 말하면 안 되는 거라고!”
“하지만……”
“아! 됐어, 됐어! 절대로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태상문주님께서도 천마신교의 교도가 되었다면 절대로 나약함을 품지 말라 하셨어. 가슴 딱 펴고 당당해 져. 넌 이제 천마신교의 일원이야.”
“고마워.”
“크흠. 흠.”
민망함에 이지아가 헛기침을 했다.
어쩌다 보니 연적이 될 수 있는 상대를 응원해 준 꼴.
하지만 말에 후회는 없었다.
천마가 자신에게 그렇게 해 준 것처럼, 굴레를 벗는 건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그보다 회사는 어때?”
그래도 민망하기는 민망하다.
이지아가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전화로 통화는 했어. 대표부터 매니저까지 전부 궁의 사람들이야. 당연히 좋은 소리는 안 나오지.”
“계약으로 물고 늘어질까?”
“아니, 그러기는 힘들거야. 우리는 궁 소속으로 별도의 계약서 같은 건 없거든.”
“……진짜?”
“응. 회사가 수익을 모두 가져가고 그걸 궁에서 관리하는 방식이지. 상당히 불합리한 방법이지만, 이번만큼은 덕을 봤네.”
한채아가 씩 웃었다.
묶인 것이 없으니 홀가분했다.
“그럼 잘 됐다. 이참에 우리 회사로 옮기자.”
“청월루의?”
“응. 대표님은 루의 일을 모르지만.”
“모른다고?”
“나름대로 사연이 있거든. 하여튼, 네가 온다고 하면 거절은 안 할 거야. 쌍수 벌려서 환영해 주시겠지.”
잠시 고민했지만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몸담기로 한 이상 소속을 옮기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한채아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도 도움이 필요했거든.”
“도움? 무슨 도움?”
이지아가 어딘가 의뭉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몸을 낮게 숙이며 속삭였다.
“태상문주님 프로듀싱.”
“……?”
이건 뭔 소리.
한채아는 눈만 깜빡였다.
#
나른함에 햇볕을 받으며 늘어졌다.
담가 둔 술을 홀짝이며 뛰어노는 누아와 해도를 바라봤다.
화아 그 계집아이를 구한 지 보름이 지난 날이었다.
그 사이 뭔가 반응이라도 있을까 했는데 잠잠하기만 했다.
겁만 많은 것들 같으니.
“태상문주님.”
옆으로 다가오는 건 청아였다.
“흠. 가무의 일로 바쁘다 하지 않았더냐?”
“작업은 소화하고 왔어요. 그리고 겸사겸사 채아의 일도 마무리 지었어요. 소속도 옮겨 두었으니 앞으로 개입할 명분은 없을 겁니다.”
“날파리는 없더냐?”
“수상한 시선이 조금 있었기는 하나 적극적인 움직임은 없었어요.”
“간을 보는구나.”
일전의 크리스라는 아이도 그렇고.
선산의 선자라는 자들은 지나치게 신중하다.
뒤에서 병졸만 움직이고 자신은 최대한 감추고 있다.
“이리 반응이 미지근할 줄 알았다면 그때 그 당가 놈을 살려 보내는 것이 아니었는데.”
아쉬움에 혀를 찼다.
직계라고 하니 모가지를 떼어냈으면 반응이 왔을까?
나름대로 강자의 예우를 보여주었는데 반응이 썩 마땅하지가 않다.
“그래서 말인데요. 이왕 이렇게 된 거 공개적으로 도발해 보는 건 어떨까요?”
그렇게 아쉬움에 혀를 차고 있자, 청아가 넌지시 제시해 왔다.
“공개적으로? 어떻게 말이냐?”
“태상문주님께서도 티비는 알고 계시죠? 요즘은 인터넷이라는 걸 통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을 해요. 그 힘을 한 번 빌렸으면 싶습니다.”
“계집아이야. 엉뚱한 생각을 품고 있구나.”
“아, 아니에요! 이건 어디까지나 태상문주님께 도움이 될까 싶어서 생각한 거예요.”
신뇌 사마갈.
그놈도 뭔가 꿍꿍이가 있을 때면 저렇게 말을 돌리곤 했지.
귀찮음과 호기심에서 저울질했다.
“그래. 말이나 한 번 들어보자꾸나.”
“전에 누아를 구한 것처럼 멀지 않은 곳에서 미처치 괴이를 찾아가면 어떨까 싶어요. 해로운 존재면 사냥하고 아니면 도움을 주는 거죠.”
“그것뿐이면 이리 망설이지 않았겠지. 뭐가 더 필요한 거냐?”
“그 장면을 촬영했으면 해요. 편집해서 너튜브에도 올리고요.”
“너튜브?”
“그러니까 티비에서 나오는 모습 같은 걸 편집해서 여러 사람과 공유하는 기구에요. 아니, 기관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고 보니 적아가 하는 걸 본 기억이 있다.
손바닥만 한 핸드폰에 영상 하나를 띄워두고는 낄낄거리고 있었다.
신기하기는 하지만 그리 흥미가 동하진 않았었다.
“굳이 그리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더냐?”
“그때 그자들이 선산의 선자라고 했잖아요. 정말로 산속에 숨어 사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요즘은 다 인터넷이 되거든요. 너튜브로 태상문주님께서 모습을 보이면 반응이 오지 않을까 싶어요.”
“흐음. 어째 널 보니 예전 미향각 계집들이 떠오르는구나. 그때도 부채를 만들어 판다고 온갖 요란을 떨곤 했지.”
“아……아하하. 그렇게 요란한 일은 아니에요.”
요 영악한 계집아이가 무언가를 꾸미고 있구나.
아마 이대로 두면 귀찮은 일이 우르르 쏟아질 터.
안된다는 말 한마디면 그걸로 끝이다.
“어디 재주껏 한번 해 보거라.”
하지만 애쓰는 아이들을 격려하는 것도 어른의 몫.
나른함을 쫓아낼 겸 잠시 어울려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게다가.
예전에 만들었던 그 부채.
제법 마음에 들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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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아는 물끄러미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이걸로 부족하다는 거냐?”
마마가 황당함에 되물었다.
지금 그녀 앞에 준비된 방송 장비들은 못 해도 수 만 원이 넘는 고가의 물건이었다.
“태상문주님께서 방송에 나가시는데 어중간한 장비로 찍으면 안 되죠. 최고급으로 다시 준비해 주세요.”
“이정도면 1인 방송용으로는 차고 넘쳐.”
“마마. 태상문주님이세요. 그냥 평범한 1인 방송으로 생각하시면 안 되죠. 최소한 할리우드 스타급 방송 시설은 준비하고 움직일 겁니다.”
“아니, 얼마를 쓸 셈이냐?”
“돈은 중요하지 않아요. 반드시 최고로 준비해야 합니다.”
수천만원이 부족하면 수억?
아니면 수십억?
마마가 숫자를 머리에서 그리다 포기했다.
이렇게 된 거 모든 인맥을 동원해서 최고급으로 뽑아오는 수밖에.
천마에 대한 거라면 이지아를 막을 수 없었다.
“아, 그리고 방송용 헬기도 하나 준비해 주세요.”
“헤, 헬기?”
“네. 태상문주님이 활약하는 모습을 넓게 잡아야죠. 지상 앵글로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으니까요.”
“허. 이러다가 위성도 빌리겠구나.”
“돼요?”
“아, 아니다. 위성은 무리지.”
“아쉽네요. 천도 남은 거로 한 번 거래해볼까?”
진지한 얼굴에 마마가 마른 침을 삼켰다.
아무리 그래도 개인방송 하나 찍자고 너무 과하게 투자하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촉박하니 그건 무르겠네요. 그보다 제가 준비하라고 한 의상들은 어떻게 됐어요?”
“아, 양복 말이니? 그건 이미 준비를 해 뒀지.”
“제가 언급한 브랜드대로 전부 준비한 거죠?”
“그래. 부족할까 봐 여유분 포함해서 브랜드별로 세 벌씩 뽑았다.”
단벌에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양복이 십 수 벌이다.
내로라하는 브랜드는 전부 동원했다.
“근데, 지아야. 태상문주님이 이런 옷을 입어 주실까? 항상 품 넓은 도포만 입고 다니시는데.”
“걱정마세요. 그 문제에 대해서라면 이미 해결책이 있으니까요.”
“해결책?”
이지아가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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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스럽다?”
화아 계집아이가 들고 온 핸드폰이란 물건이었다.
일전에 찍은 사진 아래로 단문이 나열되어 있었다.
설명하기로 댓글이라 하는데, 그 내용이 가히 방자하기 짝이 없었다.
“그건 신경 쓰지 마세요. 그냥 작업 결과물만 확인시켜 드리려고 온 건데……”
“지금 이 글귀들이 누군가의 서명이라 이건가?”
“인터넷을 통해서 자기 의견을 남기는 거예요. 근데, 요즘 애들은 생각 없이 글 남기는 일이 많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어울리지 않게 무슨 한복 차림이냐. 꼴 보기 싫다. 이런 글들이 모두 말이냐?”
화아가 어색한 얼굴로 웃었다.
이 계집아이가 따로 속셈이 있음은 알고 있지만, 그냥 넘어가기 힘든 글귀였다.
천산에 살 적에도 풍류에 있어서는 첫 손에 꼽힌 것이 나다.
청월도 천하제일이라 치켜세우지 않았던가.
인정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주제에 멋진 척하는 꼴이 우습다. 이 글을 남기는 자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알고 있느냐?”
“차, 참으세요 문주님. 그냥 어린애들일 뿐입니다.”
“지금도 계속 쓰고 있지 않더냐.”
“그럼 뭐 저나 지아의 팬일겁니다. 개의치 마세요.”
명문정파 늙은이들의 도발도 이렇진 않았다.
고작 몇 줄 글귀일 뿐인데 이리도 거슬리다니.
천년의 시간 동안 속 긁는 법만 배운 건가.
“허면, 문주님. 의복을 바꿔보심은 어떨까요?”
“그건 무슨 소리냐?”
“의견의 대부분이 옷차림을 지적하고 있어서요.”
“의복을 바꾸라?”
“네. 문주님의 도포도 멋이 있지만, 현대의 의상도 나름의 품격이 있답니다.”
이런 속셈이었구나.
어쩐지 장황하게 늘어놓더니.
“준비해 둔 물건이 있더냐?”
“네. 말씀하시면 바로 가져올게요.”
어디 한번 어울려 보자.
천년 후의 옷차림이 과연 얼마나 멋스러울지.
글귀를 남긴 놈.
각오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