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rongest soldier chose to survive RAW novel - Chapter 216
제216화
216화
지긋지긋하기는 했다.
본래대로라면 벌써 전역해서 군대에서 번 돈으로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했을 것이었다.
결혼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남들처럼 평범하게 적당한 여인과 결혼을 해서 아들딸 구분 없이 둘 정도 낳아 아파트 대출금을 갚아 가며 그럭저럭 먹고살려고 했다.
물론 이제는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불안하기만 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할 만큼 하긴 했는데.”
다시 명령이 떨어진다면 그곳이 사지이든 아니든 뛰어들 것 같았다.
그게 군인이고 군인인 자신이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부모님을 보며 확고해졌다.
비록 과거에 비해 더욱 열악해진 생활이었지만 이미 붕괴되어 버린 외국의 국가들과 비교한다면 한국 정부는 정말이지 사력을 다하고 있는 중이었다.
돈이 있어도 이제는 가치가 없어졌다.
군인이든 공무원이든 쌀 한 봉지 살 수 없는 종이돈 따위는 받지도 않고 있었다.
사실상 무료 봉사에 가까운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자신들의 일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창수도 신기해하고 있었지만 다들 그렇게 하고 있었다.
그런 국민과 국가가 이제는 생존이라는 목표를 두고 움직이고 있었다.
개인의 자유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던 절대 가치가 이제는 생존으로 바뀌었다.
집단의 생존을 위해 남녀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집단은 아이를 지키기 위해 똘똘 뭉친다.
마치 꿀벌이나 개미와 같았다.
이 절대적인 가치에 반발을 한다거나 거부를 한다는 것은 집단에서 추출된다는 의미였다.
누구 하나 집단에서 쫓겨난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다들 그렇게 인지하고 있었다.
생존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는 것을 다들 깨닫는 것이다.
그렇게 임무 수행으로 엔젤이나 강화 물약에 노출이 되어 변이가 될지 모르는 상태인 창수는 뒤로 물러나야 했다.
그 사실은 창수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인간인가 뮤턴트인가.’
뮤턴트처럼 눈에 띄는 변이가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미 뇌는 어지간한 감정에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것이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문득 동료의 죽음에도 무덤덤해지는 자신의 모습에서 깜짝 놀라고는 했다.
뮤턴트로 변이를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지켜야 하는 인간을 뮤턴트와 다를 바 없이 인식하게 된다면 최악의 뮤턴트가 되는 것일 터였다.
그렇게 창수는 당분간은 쉬어야 한다고 뇌와 몸이 말하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남들이 말하는 영웅이 아니야.’
믿기 어려운 결과들을 만들어 내었지만 그건 운도 무척이나 좋았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을 하고 사랑의 결실이라는 자식을 낳는 것은 이미 감정이 메말라 버린 창수에게는 사치였다.
그렇게 창수는 주민복지 센터에서 주선을 해 준 소개팅 장소로 향했다.
* * *
다소 빛바랜 원피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바로 버렸을 옷이었지만 과거처럼 의복도 쉽게 구할 수 없었다.
빛바랜 원피스도 여인에게는 가장 좋고 예쁜 옷인지도 몰랐다.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다.
얼굴의 잡티를 가려 주던 화장품도 머릿결을 비단처럼 만들어 주던 샴푸와 린스도 없었다.
치약도 부족해 소금으로 이를 닦아야 했다.
점점 부족해지는 것투성이였다.
나이 든 부모님은 자식을 감당할 여력이 없었고 어떻게든 여인은 홀로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한 시간은 족히 걸어 논과 밭으로 간 여인은 뜨거운 땡볕에 땀을 흘리며 농사를 지어야 했다.
윤기가 흐르던 손등은 푸석푸석해지고 갈라졌으며 피부는 자외선에 검게 변해 갔다.
그렇게 해서 얻은 생필품은 아껴 써도 부족하기만 했다.
남편 없는 여자는 보호받기 어려웠다.
성희롱을 당해도 성폭행을 당해도 과거와는 달리 아무도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렇게 임신이라도 하게 된다면 홀로 아이까지 키워야만 했다.
물론 낙태가 될 리가 없었기에 정 아이를 키우지 못한다면 정부의 탁아소로 보내겠지만 당연히 보급품은 혼자 살 때처럼 줄어들게 된다.
그나마 아이가 있으면 풍족하진 않아도 조금 나은 정도의 배급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 참혹한 현실이 눈앞에 있었기에 여인들은 자신을 지켜 줄 그리고 자신의 아이를 지켜 줄 남자를 찾아야만 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독신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당연한 것이었다.
젊은 인구의 절반 이상이 혼자 살았고 혼자 늙어 갈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었다.
더욱이 혼자 살아도 즐거울 수 있는 각종 놀이 문화와 여흥이 지금은 단 하나도 없었다.
오죽하면 라디오조차 결혼을 한 가정에게 우선 배급되었다.
혼자 사는 총각, 처녀들은 텅 빈 그리고 해가 지면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적막하고 무서운 방 안에서 홀로 떨어야만 했다.
‘남자의 직업. 벌이. 외모. 집안.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그리 크지 않은 원룸 방 안에서 본 든든한 남편과 함께 저녁 길거리를 산책하는 아이 엄마가 너무나도 부러워지면 결혼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 버린다.
남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여자보다는 조금 낫다고 여겨지겠지만 결혼하지 않은 노총각들은 최전방으로 가게 된다.
최전방이라는 것이 무조건 뮤턴트와의 전투 현장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막장이라 불리던 탄광이나 제철소나 공장과 같이 고된 노동을 해야 하는 곳으로 끌려간다.
주 4일제니 5일제니 하는 것은 사치였다.
그나마 하루는 쉴 수 있었지만 그 쉬는 날에도 어떻게든 결혼을 하기 위해 발악을 해야만 했다.
그래야 그나마 조금이라도 편한 작업장으로 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래도 못 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었다.
창수도 자신의 옷은 관사에 있었기에 군복을 입은 채로 맞선 장소로 향했다.
처음부터 목적이 결혼이었으니 소개팅도 아닌 맞선이었다.
그래도 남녀의 만남을 축복해 주려는 것인지 향기 그윽한 커피가 한 잔씩 나왔다.
결혼을 하게 된다면 먹기 힘든 과일이나 빵 그리고 고기도 먹을 수 있었다.
드레스를 입고 결혼사진도 찍을 수 있고 아기를 낳고 돌이 되면 아기 돌사진과 각종 선물도 정부에서 줬다.
몇 년 전이라면 헛웃음이 나올 일이었지만 지금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 때문에 결혼을 하는 남녀가 엄청나게 늘어났고 출생률도 높아졌다.
아무리 발악을 해도 올라가지 않던 출생률이 다시 상승을 하는 것이다.
물론 노인 인구의 감소와 뮤턴트에게 죽어 나가는 사람들로 인해 인구 자체는 줄어들고 있었지만, 학교나 지정 놀이터에는 어린아이들로 가득했다.
그런 학교와 지정 놀이터는 군인들이 철저하게 지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혜은라고 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최창수라고 합니다.”
이혜은은 무척이나 동안이지만 말투가 너무나도 딱딱한 창수에게 살짝 겁이 났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런 모습에서 자신을 지켜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인이세요? 직업?”
“예. 특전사령부 소속의 원사입니다.”
“원사면 높은 건가요?”
“부사관 중에서는 가장 높습니다.”
“아! 그렇구나. 그럼 나이가?”
거의 대부분의 남자들이 군인이 되었으니 직업 군인인지 징병 군인인지는 중요하지 않았지만 징병 군인이 병장에서 하사로 진급을 하는 일은 없었다.
물론 군 내에서 선발을 하고 시험을 봐서 간부가 되는 경우가 있었으나 대부분의 징병 군인들은 최대 계급이 병장이었다.
그리고 민방위 제한 나이가 되면 군대에서 나와 주민자치 센터에서 지정해 주는 직업을 가지게 된다.
정상적인 직업들이 거의 전부 사라져 버렸기에 어쩔 수 없었다.
물론 그런 직업을 거부한다면 배급이 최소한으로 줄어들어서 생존 자체가 힘들어졌다.
기존에 노숙을 하던 이들도 누군가에게 지원을 받는 것이 있거나 정부의 최소한의 지원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것도 없었다.
당장 소주를 사고 싶어도 파는 곳도 없었다.
담배도 담뱃잎을 심는 땅에 작물 하나라도 더 심어야 하니 없어지는 것이 당연했다.
도박이니 깡패니 하는 것도 강력한 군사 사회에서 존재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숨 막히는 세상이었지만 그래도 무질서가 질서가 되는 세계보다는 나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이는 32살입니다.”
“어머. 엄청 동안이시네요. 저는 이십 대 초반인 줄 알았어요.”
이혜은은 예상보다 나이가 있는 창수를 보며 화들짝 놀랐다.
“예. 조금 그렇습니다. 혜은 씨는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저는 스물한 살이요.”
“예?”
창수는 자신이 보았던 이혜은의 프로필을 떠올렸다.
하지만 나이는 적혀 있지도 않았다.
무려 열한 살이나 어린 여학생이 맞선에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감정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네.’
창수의 외모가 너무 어리다 보니 주민자치 센터의 담당자가 어린 여학생으로 붙여 준 듯했다.
물론 대학교도 사실상 없어지다 보니 대학생일 나이였지만 대학생은 아니었다.
“저는 병원에서 간호 일을 돕고 있어요. 아직 정식 간호사는 아니지만 다친 사람들을 돕고 있어요.”
“좋은 일 하시네요.”
“저보다 창수 님께서 더 좋은 일 하시는데요. 군인들이 아니었으면 무서운 뮤턴트들한테 죽었을 텐데요. 그런데 뮤턴트를 본 적 있으세요?”
“아. 예. 뮤턴트를 처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 무섭지 않으세요?”
“무섭지는 않아요.”
“위험하진 않구요?”
“위험하기는 합니다.”
호기심이 많은 혜은이었다.
창수에게 이것저것 종알거리며 질문을 하기에 창수는 단답이기는 하지만 열심히 대답을 해 주었다.
사실 창수도 자신이 사랑을 느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을 해서 주민자치 센터의 담당자가 준 여인들의 프로필 서류에서 가장 위에 있는 서류를 골랐을 뿐이었다.
그것이 이혜은이었고 이혜은은 창수가 마음에 들었다.
‘다시 언제 기회가 돌아올지 몰라. 더는 기다리고 싶지 않아.’
결혼을 할 사람은 거의 했다.
이제 남은 것은 현역 복무 중인 젊은 남자애들이었지만 의무 복무 10년이 지나야 휴가라고 고향으로 잠시 돌아온다.
더욱이 남자들이 엄청나게 죽어 나가고 있었기에 여자들이 넘쳐났다.
다음에 기회가 언제 올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이혜은은 어떻게든 창수와 결혼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창수도 누구든 상관이 없었다.
다만 이혜은의 나이가 너무 어려서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제가 나이가 너무 많아서 괜찮을까요?”
“예? 나이요? 괜찮아요! 아주 좋아요! 저 나이 많아도 좋아요!”
이혜은의 말에 창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좋은 남편이 될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군인이기도 해서 언제 죽을지도 모르고요.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예! 괜찮아요! 저 열심히 할게요!”
창수도 주민복지 센터의 담당자로부터 사회의 상황에 대해서 대충이나마 들었다.
‘결혼을 하면 일 년 동안의 휴가라.’
휴가라고는 하지만 도시나 마을의 치안 유지 업무에 투입되어 집으로 출퇴근을 해야 했다.
마냥 놀고 있으라고 일 년 동안이나 쉬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도 일 년 안에 아기를 가지지 못한다면 편한 업무는 사라질 것이었다.
그렇게 창수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이혜은과 결혼을 하기로 했다.
결혼식은 과거처럼 예식장에서 이루어졌지만 양가 가족들만이 모여 간단한 식사와 예식 행위만을 치렀다.
당연히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주민복지 센터의 직원들이 혼인 신고서에 서명을 받아서는 돌아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