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115
(114)
아래로 내려가는 길은 정말 끔찍했다.
내 뒤로 오는 수레야 없겠지만, 머리 위며 바로 옆을 이따금 지나쳐가는 수레들이 무시무시했다.
귀 바로 옆에서 공기가 찢기는 소리가 들리더라.
꼭 4cm 옆에서 5t 트럭이 지나가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도 어떻게든 잘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중간부터 갑자기 아래로 80도 꺾이는 길이 나와서 타고 내려가다가……
결국 떨어졌다.
무사히 건너가니 마니를 이야기하기 전에 여기서 몸을 수복할 수 있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된 것이다.
저 아래로 땅 같은 게 보이기 직전 눈을 꽉 감았다.
아무리 나라도 죽는 순간까지 눈을 뜰 자신은 없었다.
그런데,
“와아악!”
딱딱한 땅에 온몸이 부딪히는 대신 먼저 깔린 오른손 어깨와 팔목에서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한 번 부딪힌 몸이 퉁, 하고 튀어서 아래로 몇 번이고 굴러떨어졌다.
그사이에 알 수 없는 것들이 얼굴이나 다리를 할퀴어댔다.
사정없이 구르던 몸이 멈추고 나서야 나는 고개를 들 수 있었다.
고여있던 눈물이 한쪽 눈에서 주르륵 흘렀다.
안 그래도 아까 수레에 떨어질 때 굴러서 온몸이 작살날 것 같은데!
이 나이 먹고 무슨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씨발, 내 팔…… 으아아아악!”
끙끙거리며 오른쪽 팔을 건드리는 순간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골절이다. 최소한 골절일 거다.
이렇게 아픈데 멀쩡할 리가 없잖아!
꼴사납게 코를 훌쩍거리며 간신히 일어나자, 볼품없이 축 늘어진 오른팔과 오른쪽 어깨가 비명을 질렀다.
그 바람에 다시 주저앉고 싶었지만, 간신히 견뎠다.
눈물은 줄줄 흐르고, 머리는 핑 돌고, 온몸이 아프고, 팔은 더 아프고.
게다가 여기는 지독하게 추웠다.
바닥은 얼음이 없었지만, 꽝꽝 얼어붙어서 단단했다.
광산에 들어온 이후, 바깥에서 부는 바람을 차단해서 그런지 망토가 찢겨나갔어도 그럭저럭 버틸 만은 했다.
하지만 지금은 망토가 열 겹이 있어도 모자랄 만큼 추웠다.
게다가 내가 방금 굴러떨어진 저 위에서는…….
“……뭐야. 이건.”
건축물의 기둥에 박혀있는 희미한 불빛이 주변을 비췄다.
나는 방금 굴러떨어진 곳이 폐기물이나, 광산 인부들의 쓰레기장 같은 곳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내 생각이 틀렸다.
‘쓰레기장’이었던 것에는 사람들이 누워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사람은 아니었다.
개의 얼굴에, 염소의 다리에, 길고 날카로운 손톱을 한 게 사람일 리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것이 쌓이고, 또 쌓여서 작은 언덕을 이루고 있다면.
나를 긁은 게 삐죽삐죽 튀어나온 손이고, 나를 받쳐준 게 저들의 몸뚱이라면.
얼어붙은 채 공허하게 쌓인 시체의 산.
그들에게서 수천 년 동안 고여 있었던 것 같은 악취가 스물스물 흘러나왔다.
“우욱.”
뒤로 몇 발짝 물러나자마자 강렬한 토기가 치밀었다.
왜 이런 것들이 여기 있는 거지?
갱도 안에서 울던 마수가 이것들이었나?
하지만 왜 다들 죽어있는 거지?
설마 유릭이 여기에 찾아와서……
그 생각이 들자마자 참지 못하고 속에 든 걸 전부 게워냈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때까지 토하고 또 토해냈다.
콜록거리며 전부 뱉어낸 후 진이 빠져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춥고, 냄새나고, 정신없고, 아프고, 힘들고,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스스로를 끌어안고 싶어도 덜렁거리는 팔로는 불가능했다.
결국 무릎을 세워 앉은 채 공포에 빠지지 않으려 숨을 고르고 있을 때였다.
[나를 보았느냐?]선뜩한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여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놀라서 숨을 토하자 입김이 새하얗게 얼어붙어서 허공으로 사라졌다.
“누구?”
[나를 보았느냐?]“거기 누가 있습니까?”
올라와?
나는 시체들의 언덕을 바라봤다.
현실감이 너무 생생하게 느껴져서 역겨운데도, 나는 목소리가 이끄는 대로 얼어붙은 몸 위를 기어올랐다.
[나를 보아라.]올라갈수록 추워졌다.
아니, 춥다기보다 이제 아프기 시작했다.
이마를 덮은 앞머리에 하얀 서리가 타고 올라오는 게 보였다.
한 손만으로 몸을 이끌고 시신들의 언덕을 겨우 올라가니,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를 보아라.]“아무것도 없는데.”
[나를 보아라. 네 앞에 영원한 불꽃이 타오를지어다.]앞?
눈을 한 번 깜박였다.
얼어붙은 벽이 있었고, 이 근방의 벽과 비슷하게 전부 하얗게 뒤덮여 있었다.
하지만…… 이 벽은 뭔가 달랐다.
하얗게 된 벽은 울퉁불퉁하지 않고 매끄러웠다.
마치 잘 세공된 크리스털이나 유리를 벽으로 둔갑시킨 것 같았다.
그 너머로 무언가가 물결치고 있었다.
푸르고, 창백하고, 회색의 어른거리는 물결.
그것을 목도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그게 물결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차디찬 빛.
하얗고 어스름하게 타오르는 불꽃.
주먹만 한 구체형 불길의 형태는 반투명한 벽 너머로 반사되어 사방에서 어른거렸다.
그것과 눈이 마주친 순간,
나는 어떤 불쾌한 감각을 느꼈다.
인간의 깊은 어딘가를 강제로 침범당하는 기분.
그런데도 눈을 돌릴 수가 없어 억지로 붙들린 것처럼 시선을 고정하고 있자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나를 보았지만, 나는 닿지 못했다. 나를 이해하고 있구나……. 차가움을, 얼음과 서리를, 냉기와 적막의 불길을.]냉기의 불길.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묻기 직전에 지난 삶에서 읽었던 북부의 동화가 떠올랐다.
여름이 와도 사그라지지 않는 하얀 빛.
극권의 군주, 아품 자.
그 신이 광산의 아래에 있었구나.
시린 광휘가 내 눈에 파고드는 것처럼 박혔다.
옛날 옛적 어느 마을에는 게으름뱅이가 살았습니다. 그 사람은 너무 게을러서 집 안에만 있기를 좋아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보다못해 가끔 그를 도와주곤 했습니다. 하지만 게으름뱅이는 그것을 당연하다는 듯이 받으며 고맙다는 말조차 하지 않고 늘 빈둥거리기만 했습니다.
여기에 질린 마을 사람들은 앞으로 게으름뱅이를 도와주지 않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게으름뱅이는 이웃이 가져다주던 음식이 끊겨도 여전히 게을렀습니다. 이웃들이 그를 외면할 리 없다 믿은 것이지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북부에는 가혹한 혹한이 닥쳤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열심히 모아둔 땔감과 음식으로 혹한기를 잘 버틸 수 있었지만, 게으름뱅이는 모아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장작도 전부 떨어지고, 음식도 없어지자 게으름뱅이는 겨우 집을 나섰습니다. 이웃들에게 음식이든 불을 구걸하러 다녔지만, 이웃들은 그를 매몰차게 밀어냈습니다.
-너는 늘 우리 음식과 장작을 받아 가며 아무것도 돌려주지 않았어. 이제 우리 가족이 먹을 것도 없어!
게으름뱅이는 너무너무 추워서 곁불이라도 쬐게 해달라고 했지만, 온 마을이 게으름뱅이를 외면했습니다.
눈보라를 맞으며 돌아다니던 게으름뱅이는 결국 눈밭에 쓰러졌습니다.
그런 게으름뱅이를 가엾게 여긴 것일까요? 죽어가는 게으름뱅이의 불을 쬐고 싶다는 소원을 들은 하늘에서 불꽃이 내려왔습니다.
하지만 그 불꽃은 산꼭대기의 얼음만큼이나 차가웠습니다. 불꽃은 게으름뱅이의 몸을 연료 삼아 차갑게 활활 타올랐습니다. 불길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게으름뱅이를 내쫓은 마을을 덮쳤습니다.
이 모든 일은 게으름뱅이가 게을렀기 때문에 일어난 비극이었습니다.]
동화에 따르면 아품 자의 전승은 시체를 연료로 타오르는 신격체.
인간의 몸을 빌리지 않고 나타난 존재, 한 마디로 유릭이 말했던 옛것이라는 거다.
그래서 처음에는 눈보라 거인처럼 마주치자마자 기절하거나 이상한 일이 일어날 줄 알았는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벽 너머의 불꽃을 좀 더 살펴봤을 때 알 수 있었다.
불꽃의 크기가 형편없이 작았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하얀 불길은 위협적이었지만, 내가 생각하던 크기와는 상당히 달랐다.
이 불이 조금만 더 컸더라면 저 아래에 있었을 때부터 살과 근육이 얼어서 굳었겠지.
조심스럽게 불길에게 말을 건넸다.
“내가…… 아니, 제가 이해하고 있다는 뜻은 뭡니까?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데도요.”
뭘 봤다는 거지.
음산한 목소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너는 나의 권속이 아니다. 너는 그 누구의 권속도 아니고, 아니었고, 아니게 될 것이다. 그러나 너는 나를 섬길 수 있다.]“섬기다뇨?”
[나를 섬기고 숭배하라. 나의 축복을 받고 극지방의 너머로 나의 씨앗을 퍼뜨려라. 이 세상의 너머 꿈의 영역에서…….]옛것의 축복.
원작에서는 이런 신들을 위해 봉사하게 된다면 신은 신도를 위해 특별한 축복을 내린다는 구절이 있었다.
하지만 축복에 대해서 정확히 언급한 부분은 없었다.
“축복이라면 어떤 것을 말씀하십니까?”
[얼음과 냉기, 나의 권한 아래 있는 모든 것이 네 손발과 다름없이 움직일 것이다.]순간 놀라서 소리를 지를 뻔했지만, 꾹 참았다.
얼음과 눈을 조종하는 능력!
북부에서 얼마나 유용하게 쓰일까.
북부가 아니더라도, 아주 더운 곳만 아니라면 엄청난 효과가 있을 텐데.
“당신은 어떻게 섬겨야 합니까? 혹시 제물을 바쳐야 합니까?”
[꿈에서 나를 만나라. 나를 숭배하고, 나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며, 내게 꿈이 아닌 것들의 이야기를 들려다오. 너는 우주의 비밀과 행성의 운행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꿈을 벗어나면 너는 나의 첫 번째 신도로 거듭날지니.]거의 폭거라고 볼 수 있는 거래 내용에 정신이 아찔했다.
꿈에서 신을 본다니.
심각한 수준의 정신 간섭이 아닌가.
안 그래도 시시때때로 잠자리가 사나운데 꿈에서까지 시달린다고?
얼음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은 확실히 유혹적이었지만, 내가 이만한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아. 그러고 보니.
“혹시 다른 신도를 들일 생각은 없으실까요? 저보다 훨씬 건강하고 강한데. 그, 그리고 잘생겼고.”
나보다 레안드로스가 얼음을 다룰 수 있게 되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
하지만 불꽃은 침묵했다.
아품 자는 레안드로스를 신도로 삼기는 싫은 모양이었다.
왠지 아끼던 물건을 당근에 내놨더니 아무도 안 사가는 기분이 들었다.
제기랄.
“아니면, 조건을 조금 다르게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꿈에서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건 제가 하겠습니다. 하지만 능력만은 제가 지정한 상대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해주세요.”
하얀 불빛이 일렁거렸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속삭임이 들렸다.
[나를 섬기지 않고 나를 믿지 않는 나의 종이여. 드림랜드로 오거라. 나의 휘광 속에서 타오를지어다. 그대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지어다. 가까이 오거라, 나를 믿지 않는 자여. 나의 유일한 신도여…….]머리카락이 바작바작 소리를 내며 부서지고 손끝이 둔해지다 못해 하얀 서리가 생겼다.
반투명한 벽에 입김이 닿자 습기가 벽을 타고 올라갔다.
나는 뺨에 그려지는 하얀 눈꽃을 견디며, 벽 너머로 속삭이는 소리에 한참이나 귀를 기울였다.
눈을 감은 채로 듣는 먼 옛날의 이야기였다.
* * *
“……님!”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손안에 딱딱한 조각이 들려 있었다.
언제부터 쥐고 있던 건지도 모르는 물건이었다.
내가 어디로 가려고 했더라.
내가 뭘 하려고 했더라.
뇌가 곤죽이 된 것처럼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해야만 하는 일 하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손을 눈앞에 있는 그림자에게 내밀었다.
얼어서 곱은 손가락이 하나씩 펼쳐지며 딱딱한 조각을 드러냈다.
네가 가져, 네가 먹어.
너를 위해 가져왔어.
그렇게 중얼거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림자는 멈칫하다가 조각을 가져갔다.
손안이 가벼워지자 겨우 웃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난 퓨즈가 나간 것처럼, 바로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