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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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처를 응급처치하고 나서 사정을 들은 아른트는 거의 실신할 뻔했다.
수배령이 내릴 가능성이 높다는 레안드로스의 말에 따라 우리는 날이 밝기도 전에 미리 짐을 뺐다.
그리고 지금, 현재.
“역시 수배 공고가 붙었습니다. 인상착의를 제법 상세하게 적어두었더군요.”
“이럴 순 없어요! 공작님께서 수배범이라니!”
“미안한데 아른트, 하나 더 전해줄 게 있어. 사라진 약사 때문에 너도 곧 수배 당할지도 몰라.”
“노예 계약을 벗어났더니 이제 현상수배범인가요?”
여기서 세 명이 있기에는 아무래도 무리겠지.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여기서 갈라지자. 너는 하르트만 성으로 돌아가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짐을 뒤지니 금화와 미처 바꾸지 못한 어음, 그리고 약간의 식량과 여벌 옷가지가 나왔다.
그중에서 금화만 챙기고 나머지는 아른트에게 되돌려줬다.
“너도 괘씸한 평민 약사를 찾는 척하면서 화난 남작가에게 설설 기는 게 좋을지도 몰라. 아니면 숨어 다니던가.”
“둘 다 싫은데요. 저도 같이 가면 안 되는 겁니까?”
“그쪽도 유력한 용의자거든. 남작가가 눈에 불을 키고 찾을텐데. 아니면 하나 방법이 있긴 해.”
“무, 무슨 방법이요?”
“동부로 가 있어. 에이슬링에게 내 부탁이라고 하고 잠시 몸을 의탁하는 것도 좋지. 어차피 아이든과 약속한 것도 있고.”
아이든이 나와 있던 아른트를 푸대접할 리는 없었다.
오히려 내 환심을 사려고 잘 잘 해 준다면 잘 해 주겠지.
“하지만 동부는 좀.”
“상단을 통하면 더 빠르게 전보를 부칠 수 있으니까. 그게 제일 안전해. 황무지 개발구역만 가지마.”
아른트는 결국 아이든이 있는 동부로 향하기로 했다.
혼자서 관문으로 향하는 아른트를 보며 사업 좀 도와달라고 애걸복걸하던 아이든이 생각났다.
아이든 에이슬링, 아직까지 나한테 러브콜 보내고 있는 거 맞지?
“이제 공작님께서는 어쩌시겠습니까?”
“지체할 겨를이 없어. 로타어를 만나러 가야지. 장소는 조사했어?”
“유력한 후보가 하나 있습니다.”
“가능한 빨리 가지. 관문을 통과하지 않는 방향으로 돌아서 가야겠네.”
레안드로스는 묘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붕대에 둘둘 감긴 내 배 쪽을.
“괜찮으시겠습니까? 길이 험합니다.”
“괜찮아.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시간이니까.”
유릭이 움직이기 전에 살아있는 로타어를 만나야 한다.
검은 말에 호기롭게 올라탄 내 앞으로 레안드로스가 훌쩍 올라왔다.
그는 몇 번이고 나를 돌아보다가, 결국 말고삐를 잡았다.
* * *
나의 삶이 계시든 꿈이든 분명한 사실은 이거 하나 뿐이다.
전생도 지금도 모든 감각이 생생하게 느껴진다는 것.
나는 속으로 피눈물을 삼키며 레안드로스에게 매달려 있었다.
처음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성인 남성 두 명을 태우면 지칠 법도 한데, 검은 말은 오히려 기운이 넘쳤다.
레안드로스도 워낙 말을 다루는 데 능숙해 전혀 문제가 없었다.
맞다. 둘은 멀쩡했다.
정작 문제가 있는 건 나였다.
허리 아래로 다 부서진 것 같았다.
좋게 말하면 산산조각난 기분이고, 나쁘게 말하면 유릭이 하반신만 잘라간 기분이고.
배의 통증과 더불어 온 몸이 너덜거렸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달리고 최소한의 휴식만 취하는 전략.
근육통으로 후들거리는 몸을 이끌고 누우면 거의 기절하다시피 잠들었다.
그리고 새벽별을 보며 일어나서 다시 지옥의 여행을 시작했지.
글자 그대로 강행군.
목적했던 곳에 도착했을 즈음에는 나 혼자만 거지꼴이 되어 있었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건 우리 다 똑같은데.
마을 근처에서 말을 멈추고 짧게 정비하던 레안드로스는 나를 보고 한 소리 하고 싶다는 표정이었다.
공작이라는 사람이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서 땅에 무릎을 꿇고 있으면 아무래도 그렇겠지.
“이게 무슨 추태입니까?”
“나한테는 생존의 문제야.”
“아른트가 보면 제법 좋아하겠군요.”
-푸르르륵.
말까지 나를 비웃었다.
이 자식은 그토록 달렸는데도 지친 기색 하나 없었다.
오히려 털이 반질반질해지고 붉은 눈에는 만족감까지 엿보였다.
괴물 같은 놈.
사실 이 놈한테 내 체력을 뻿긴 건 아닐까.
“아른트한테는 비밀이야.”
‘가능하겠냐’고 눈으로 묻는 레안드로스를 내버려 두고 겨우 일어났다.
밑으로 완만하게 꺾인 길.
언덕 아래로 작은 마을이 보였다.
바로 여기가 두 번째 목적지.
겉보기에는 수도에서 서부로 가다보면 나오는 작은 마을이다.
어디에나 흔하게 있는 마을일 뿐이다.
하지만 이 마을에는 특별한 비밀이 있다.
첫 번째는, 여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리히트 자작가의 장원이 나온다는 거고.
두 번째는 여기에서 매일 밤 재미있는 일이 펼쳐진다는 거.
“그럼 쉴 곳을 좀 찾아볼까.”
정보 길드의 정보에 따르면 리히트 자작가 역시 중앙에 진출하지 못한 지방 귀족에 불과했다.
다만 서부에서는 작위에 비해서 영향력이 꽤 컸다.
게다가 선대에서 물려받은 재산이 좀 있어서 그걸 운용하는 데에 탁월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로타어 리히트.
그는 리히트 자작가의 장남으로, 아래로 남동생이 하나 더 있다고 한다.
그의 이력에는 특이한 구석이 있었다.
이 세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장남이 작위를 세습한다.
다른 가문의 집사가 되거나 왕궁에서 일자리를 찾는 등, 스스로의 미래를 개척해야하는 건 차남부터다.
하지만 로타어 리히트는 작위를 논하기도 전에 공작가로 추천서를 들고 왔다.
그리고 그의 동생이 리히트 자작가의 후계 교육을 받고 있었다.
뒤바뀐 장남과 차남.
현 리히트 자작이 중요한 계승 문제에서 이런 결정을 내릴 정도로 로타어 리히트가 볼품 없었나?
그건 아니다.
로타어는 공작가에서 집사장을 할 만큼 머리가 나쁘지 않았을 테니까.
로타어가 가문에서 나간 이유는…….
“방 있어요? 창문이 달린 방이요.”
“다락이 있기는 한데. 거기도 괜찮겠소?”
“예에.”
여관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농가였다.
지푸라기로 지붕을 만들고 1층에 커다란 식탁을 놓은 게 전부였다.
이런 마을에 여행객이 자주 찾아오지는 않으니 효율적인 선택인가.
여관 주인은 구석에 있는 자그마한 사다리를 가리켰다.
“저기로 가시오.”
동화로 값을 치른 우리는 삐걱이는 사다리를 올라갔다.
다락으로 얼굴을 들이밀자 짚이 썩는 희미한 곰팡내와 먼지 냄새가 났다.
지붕 바로 아래에 있는 작은 공간.
두 사람이 눕기에는 약간 비좁은 단칸방이었다.
레안드로스는 이런 환경에 익숙한지 별 말 하지 않고 발로 먼지를 슥 밀었다.
“바라시던 풍경입니까?”
“어느 정도는. 저기 봐, 저거 보여? 커다란 건물 말이야.”
열린 덧창의 너머로 농가보다는 작은 집 몇 채가 보였다.
그리고 마을의 배경처럼 존재하는 커다란 회색 벽.
나는 그 벽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기도원이래.”
“리히트 가문에서 원조했다는 기도원 말입니까?”
“그런 것 같은데. 뭐 아는 거 있어?”
“몇 대 전 리히트 자작가가 건물 건설에 돈을 댔다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신앙심이 깊었나보네.”
“말이 기도원이지, 성례聖禮를 거행할 수 있는 구조도 아니고 수도원의 기능과도 동떨어져 있었습니다. 이 근방에 성소가 있는 것도 아니니……. 결국 보수가 어려워져 폐쇄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돈만 펑펑 쓰고 얻은 건 없는 꼴이로군.
“모처럼 여기 왔으니까 밤에 기도라도 드리러 가는 건 어때?”
“악취미이십니다. 자작가에 대해서 호기심이 크신 듯한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오해는 하지 말고. 어디까지나 로타어에게 빚진 게 있을 뿐이야.”
아멜리아의 일만 아니라면 자작가를 들쑤시는 것도 생각 해봤겠지만.
아멜리아와 남작가를 떠올리자 입맛이 씁쓸했다.
뭐, 그런 건 제쳐두고 지금 당장 해야할 건.
“그전까지는 좀 쉬기로 하자.”
“근육통이 여전하십니까?”
“……온몸이 해파리가 된 것 같아.”
해파리 상태부터 탈출하고 보자.
비극적이게도 아른트가 없는 상황에서는 레안드로스가 내 시중을 들어줘야 했다.
내가 요구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야 한다는 강박이라도 있는 건지.
방을 정리하고, 죽어가는 내 팔다리를 주무르고.
내 팔을 안마해주는 레안드로스의 눈이 점점 죽어가는 게 분명히 보였지만 내 알 바는 아니었다.
꼬우면 네가 공작을 했어야지.
레안드로스의 눈물겨운 헌신 덕분에 나는 저녁이 되자 제법 기운을 차렸다.
그가 저녁 식사를 간단하게 하는 사이에 나는 말을 잠시 돌봤다.
“식사는 괜찮으십니까?”
“내내 달려서 그런지 식욕이 없네.”
어두워지자 사람들이 자취를 감췄다.
집에서만 덧창 틈새로 희미하게 불빛이 새어나올 뿐이었다.
따뜻한 저녁시간을 보내는 집 사이를 지나, 기도원의 벽으로 향했다.
기도원 근처에는 민가도 밭도 아무것도 없었다.
레안드로스의 키보다 훨씬 더 높은 벽을 따라 쭉 나아가니 겨우 출입구가 보였다.
그걸 출입구라고 해야할까.
두꺼운 벽의 한가운데가 난데없이 뻥 뚫려 있었다.
아치형으로 난 문은 두 짝의 문으로 막혀 있었다.
게다가 문은 안에서 뭔가로 막아두었는지 덜걱거리기만 하고 도통 열리지 않았다.
문 틈 사이로 얼굴을 바짝 댔다.
그리 정교하게 이어지지 않은 나무판 사이로 뭔가 어른어른거렸다.
“빛이 보이는데.”
하지만 통 들어갈 곳이 없네.
내가 문을 더듬거리는 사이에 바로 옆에서 갑자기 퍽 하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리자 레안드로스가 벽을 쌓아 올린 돌 틈 사이로 검 끝을 박아 넣고 있었다.
몇 번 두드려 확실히 꽂힌 걸 체크한 그는 내게 말했다.
“밟고 올라가십시오.”
“……기사가 검을 그렇게 써도 돼?”
“당연히 안 됩니다. 올라가면 내려가지 말고 위에 앉아 계십시오.”
나 때문에 그런 건가.
갑자기 쓰레기가 된 기분이 드는데.
검도 어지간히 높은 곳에 꽂아 넣어서 바로 올라갈 수가 없었다.
결국 레안드로스가 자신의 허벅지까지 내줬고, 나는 허벅지를 딛고 박힌 검을 밟고 올라갔다.
레안드로스가 손으로 검을 잡아준 덕분에 흔들리지도 않았다.
체감상 더 높게 느껴져서 벌벌 떨며 엉거주춤하게 벽 위에 앉아 있으려니 레안드로스가 아래에서 검을 도로 뽑아내는 게 보였다.
설마 배신이냐!
나 혼자만 안에 보내려고!
이대로 두고 어쩔 셈이냐!
“너 이……!”
내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레안드로스는 벽을 타고 올라왔다.
어떤 장비도 없이.
돌 틈 사이로 손가락을 밀어넣고.
손아귀 힘으로만.
그걸 위에서 보자니 호러 영화가 따로 없었다.
난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이렇게 도망가고 싶지.
왜 이렇게 무서운 거지?
남작저에서 본 인간-거미 트라우마인가?!
레안드로스가 무표정으로 올라오는 걸 보니 왜 슬래터 영화에서 살인마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효과를 즐겨 사용하는지 알 것 같았다.
레안드로스는 순식간에 벽 위에 올라왔다.
“……아까 안마해줄 때 살려줘서 고마워.”
“? 예.”
그는 잠시 손목을 돌리며 벽 안쪽을 내려다봤다.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그는 내게 말했다.
“실례하겠습니다.”
“뭘, 악!”
그는 내 뒷덜미를 잡고 그대로 낙하했다.
비명을 지를 틈도 없었다.
정신을 차리니 레안드로스는 나를 태연하게 땅 위에 내려놓고 있었다.
별일 아니라는 것처럼 망토를 탁탁 턴 그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말을 걸었다.
“성공적으로 들어왔으니, 아까 빛이 보인다는 곳으로…… 공작님?”
그는 멈춰 서 있는 나를 의아하게 쳐다봤다.
뻣뻣하게 굳은 내 얼굴 앞으로 커다란 손이 몇 번 휘적거렸다.
그런데도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솔직히 지릴 뻔 했다…….
여기서 움직이면 백퍼센트 일이 터질 것 같았다.
그것도 몹시, 몹시 추한 꼴로.
남자로서의 허세와 인간의 존엄성 사이에서 고민하던 찰나.
기도원 건물의 뒤편에서 몇 사람이 걸어나오는 게 보였다.
한눈에 봐도 신실한 신자나 관계인은 아닌 것 같았다.
많이 쳐줘 봐야 중세 시대 건달 정도.
“레안드로스.”
“예.”
“가서 칼등으로 한 대씩 쳐줘.”
“?”
미안하다, 얘들아.
하지만 이건 목격자가 있으면 안 되니까 그런 거야.
절대 내 사사로운 존엄성을 위해서가 아니라고.
이해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