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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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에서는 물고기 떼의 집단 폐사 말고도 또 한 가지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바로 해안 마을과 도시를 덮칠 재앙에 대한 소문.
거대한 파도가 몰려와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무수한 괴물이 바다 밑에서 몸을 일으켜 뭍으로 올라온다는 이야기.
처음에 사람들을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바다에서 나는 악취가 심해지고, 배를 띄워도 수확이 없자 하나둘 진지하게 그 소문을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남부에 일어난 일들은 전부 앞으로 일어날 재앙의 전조증상이라고.
대비하지 않으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여태까지 계속되는 남부의 봉쇄에 거세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이미 남부를 몰래 이탈하는 사람도 속출하고 있다는 목격담도 들려왔다.
그에 대한 영주의 반응은 어떨까.
아른트가 어떻게 설득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이 모든 소란에 대해서 남부도시의 영주는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반응을 할 수 없는 걸지도 몰랐다.
이런 상황을 평범한 귀족이 어떻게 생각하겠어.
평화롭기만 했던 바다에서 갑자기 괴물이 올라오고 거대한 해일이 덮친다는데.
현실적으로 당장 군사를 파견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마땅한 대책을 바로 세우기도 힘들고.
해안지역을 덮칠 수 있는 재앙에 대해서 대비라곤 눈곱만큼도 해두지 않은 부분이 귀족적 태만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근데, 그건 그렇고.
“에리히 그 아저씨, 못한다고 울더니 엄청 현실성 있는 소문을 퍼뜨리고 있네.”
이 정도면 학자가 아니라 작가를 해야 하는 거 아냐?
남부를 종횡무진하며 사기꾼이 되었을 에리히를 떠올리니 웃음이 나왔다.
“아른트는 잘하고 있대? 소식은 있었나?”
“별다른 이야기는 없습니다. 다만, 남부 이탈자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처분이 아직 내려지지 않은 모양입니다.”
“잘하고 있네. 혹시 모르니까 다른 영지의 장원으로 편입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알아보면 좋겠다.”
“추후 확인해보겠습니다.”
남부의 끝에 얼마나 오랫동안 처박혀 있었는지.
나는 한동안 벗어둔 망토를 걸치고 머리카락을 대충 빗었다.
머리는 그사이에 꽤 자라서, 뿌리 부분에서부터 불그스름하게 원래 머리색이 올라오고 있었다,
안대의 끈을 단단히 매고, 망토를 여미고.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레안드로스가 나를 호위하며 집 밖으로 나왔다.
바람은 잔잔하고 고요하다.
문 앞에서 심호흡을 하는 나를 보던 레안드로스가 입을 열었다.
“관문까지 나가지 않으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직접 올 거야.”
그런 직감이 들었다.
유릭은 반드시 여기로, 지금 내가 있는 장소로 올 것이다.
내 옆에 나무처럼 우뚝 서 있는 레안드로스는 평소보다 말수가 적어진 것 같았다.
“너는 기억력이 좋다는 말을 자주 듣는 편이야?”
“……나쁘다는 말은 없었습니다만.”
“그렇군.”
“혹시 무언가 기억해두어야 할 일이 있습니까?”
“아니. 오늘은 너나 나에게도 인상 깊은 날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 그게 기억에 쭉 남았으면 싶거든.”
가능하면 다음 생까지 기억해주면 더 좋고.
레안드로스가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에 다시 질문하려 했으나, 내가 말을 막았다.
“온다.”
검은 말이 구릉 아래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결 좋은 백금발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찰랑이며, 소름끼치도록 듣기 좋은 목소리가 위압적인 흑마를 재촉하고 있었다.
유릭이 빌런이지만 않았다면 명화의 한 장면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그가 마치 친근한 사람을 만난 것마냥 손을 들어 흔들었다.
나와 레안드로스는 마땅히 갖추어야 할 예를 표시하며 허리를 숙였다.
“왕세자 전하.”
“보는 눈이 없으니 그렇게 격식을 갖추지 않아도 괜찮아.”
안 갖추면 뭐라고 할 거면서.
그는 말에서 뛰어내려 주변을 둘러봤다.
마치 관광을 온 것 같은 사람의 태도와 행색이었다.
“여기가 공작이 거처로 정한 장소인가? 생각보다는 소박한걸.”
“오래 머물지 않을 예정이었으니까요.”
“그래, 그래. 그런데 그 눈…….”
유릭은 내 눈을 빤히 보더니 갑자기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 하하하하! 아, 공작. 그대는 정말 재미있는 사람이야. 예전과 달라졌지만 나는 지금 이쪽이 더 마음에 드네.”
“과찬이십니다.”
“어인들에게 준 건가? 그들이 하고있는 제례에 좋은 촉진제가 되겠어. 그래서 바다가 지금 이 지경이 된 거로군.”
유릭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래, 여기까지는 예상했었다.
나는 태연하게 유릭에게 권했다.
“저는 잘 모르겠지만 전하께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좋은 거고요. 저희는 그럼 그만 하르트만 성으로 돌아가봐도 되겠습니까?”
“완벽한 건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용납은 할 수 있는 수준이로군. 허하네.”
됐다.
나는 레안드로스를 돌아봤지만 유릭이 빙글빙글 웃으며 끼어들었다.
넌 그만 좀 빠져.
“하지만 이왕 이리되었으니 공이 이룬 결과를 한 번 보고 가는 게 어떤가?”
“해구를 보자는 말씀이십니까?”
“겁은 먹지 말게. 어차피 바닷속에 있는 거, 물 위로만 보자고. 이상한 게 있다면 공이 문책을 받아야 하지 않겠나.”
완전히 벙찐 나를 보는 유릭은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그의 요구는 무리한 게 아니다.
또 어떻게 들으면 합당하기까지 하다.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처럼 망설이다가 나는 겨우 답을 내놓았다.
“……전하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신하 된 도리로 동행하겠습니다.”
“이렇게 되었으니, 공작의 호위기사가 고생을 좀 해줘야겠어. 저 마을에서 배를 하나 수배해보지 않겠나?”
배는 들어오지도 않은지 오래인데 무슨 배며 사공은 어쩔 건데.
나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레안드로스에게 말했다.
“부탁할게.”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마을로 향한 우리는 거기서 작은 배를 하나 빌렸다.
쓸데없이 묵히던 배를 돈을 받고 내어주려는 사람은 차고 넘쳤다.
그중 돛이 가장 크고 그나마 좋아 보이는 배를 고르자, 배의 소유주가 자신이 노를 저어주겠다며 선뜻 나섰다.
물 위에 둥둥 떠서 악취를 풍기는 고기떼에서 어렵게 벗어나 출항했다.
끼익끼익하고 사공이 노를 젓는 소리만 계속될 때 유릭이 물었다.
“눈을 준 이유가 뭐지?”
“전하의 어인에게 물어보시지 그러십니까.”
“그대도 이미 알겠지만 어인과 나는 심복과 주군의 관계가 아니라, 사업을 하는 거래처에 더 가깝거든.”
“그 어인이 눈을 원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좀 이상하단 말이지. 어인족을 전부 바쳐도 어려울 것 같았던 일이 그대의 눈알 하나로 이뤄진다는 점이.”
유릭은 뱃전에 기대고 있었다.
느슨하게 기울어진 자세마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 같이 계산된 미학을 품고 있었다.
“전하께서 하르트만에 기대하고 계신 바를 그들 역시 기대한 거겠죠.”
“전 공작부인은 그렇지 않았는데도.”
“무슨 답을 원하십니까?”
예나 지금이나 유릭의 말재간에 놀아나는 건 충분히 질려있는 상태였다.
유릭은 조금 웃었다.
“나는 다만 그대가 그대 스스로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 많은가 했지.”
“무슨 말씀이십니까.”
“공작은 자신에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가져본 적이 없나? 본인의 능력이나, 타고난 것에 대해서.”
“그런 적 없습니다. 철학적인 질문을 하시는군요.”
“아, 그래. 그럴 수 있지. 이쪽에서는 전혀 아니지만.”
붉은 눈이 나를 보고 있었다.
바로 다음에 나올 말이 뭔지도 모르는데도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왜지? 왜 불길하지?
“그쪽에서는 그럴 수 있지. 공작. 아니, 이 세상에 떨어진 이방인이라 해야 하나.”
끼익, 끼익.
노의 소음과 파도의 철썩거림이 유릭의 말을 덮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방인.
아렌하이트가 아니라 나를 가리키는 말.
뒤에서 진땀을 흘리던 사공이 외쳤다.
“더는 못 갑니다, 바람이 영 안 좋아요! 게다가 해류의 흐름이 이상하게 변해서 항구로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아, 벌써 여기까지 왔군.”
유릭은 흔들리는 배에서 일어나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 새에 꽤 멀리까지 나온 건지 물은 더 이상 푸르지 않았다.
유릭은 사공 쪽으로 넘어가며 태연하게 말했다.
“수고했네. 여기까지 잘 왔으니 돌아갈 필요는 없겠어.”
“네? 그게 무슨.”
-첨벙!
사공은 손쓸 틈도 없이 배에서 밀려났다.
배를 잡으려고 허우적거리던 그는 점점 아래로 가라앉았다.
마치 무언가가 그가 물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잡아당기는 모습이었다.
“살려, 사람, 살…….”
사공의 요청이 물과 거품에 막혀 사라지는 가운데에 유릭이 한쪽 장갑을 벗었다.
“이방인, 그대는 광기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나?”
“유릭 덴 메나디아!”
“지금부터 좋은 걸 알려주지.”
그는 허리춤에 찬 검을 뽑아 거침없이 제 손바닥을 그었다.
흘러나오는 검붉은 피가 소용돌이치는 암녹색 바다로 떨어졌다.
“사람은 저마다 고유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지. 정신력은 곧 인간을 인간으로 존재케 하는 이성의 척도. 하지만 이성이 어떠한 계기로 급격하게 소모될 때 사람은 광기에 잡아먹힌다.”
아무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바다는 유릭의 피를 탐욕스럽게 삼켰다.
여기저기에서 어인들의 노래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광기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최저한의 생존 수단. 존재를 침범하는 거대한 환상을 마주했을 때, 사람은 그나마 인간으로 남기 위해서 광기라는 방어 기제 속으로 숨지.”
“어떻게, 그걸.”
“그게 이 세상의 법칙이고 고대의 존재가 안배해둔 규칙이니까. ……어쩌면 누군가가 단순히 끄적이던 장난일지도 모르고.”
소설, 광기, 괴물, 장난, 동생, 웹소설, 이성, 방어 기제, 유릭.
어지럽게 떠오른 생각 가운데에 단 하나만이 진실을 내세웠다.
유릭은 알고 있었다.
그가 피를 흘리며 나를 보고 웃었다.
“책, 분실할 거면 잘 보관했어야지. ‘그분’이 하르트만 가문을 위해 써준 교리잖아?”
공작부인의 숨겨진 방에 있던 책.
그 책에서 분리된 페이지는 단 두 장.
거기서 내가 볼 수 있었던 것은.
[유예성은 두통과 함께 눈을 뜰 것이다.시간을 확인하려 하지만 소용이 없다.
그는 움직이는 마차에 있었고, 만들어진 세상 속에서 아렌하이트와 함께 있던 시종과 호위무사가 그를 반길 것이다.] [그분의 안배 속에 광기와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이 둥지를 튼, 비극 속에 만들어진 세상.
아렌하이트의 몸을 입은 이계의 이방인은 아렌하이트의 업을 대신 짊어질 것이다.]
“그 종이는 미끼였군. 나를, 여기까지 끌어내려고. 처음부터 들킬 작정으로……!!”
“안 들키려고 할 이유가 없었지.”
거대한 해류에 작은 배가 쓸려가고 있었다.
불길한 암운이 드리우며 태양을 가렸다.
해구에 잠든 존재의 기상을 축복하는 천사들의 날카로운 찬송가는 힘을 더해만 갔다.
검은 바다의 저 아래가 들여다보일 정도로 커진 소용돌이.
저 아래에서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었다.
단순한 괴물이 아니었다.
이 행성이 막 창조되었을 때.
물이 차오르고 지금은 가라앉은 대륙들이 어엿하게 모습을 드러냈을 때.
태어난 의의조차 모르는 태곳적의 신비와 공포가 지상을 활보할 때.
그때 잠들었던 고대의 불경한 신이 해저로부터 촉수를 뻗어 올리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폭우처럼 쏟아지는 바닷물 사이에서 유릭은 그 형체를 향해 외쳤다.
[야-르 리에후! 야-르 리에후!]그것은 거대한 외침으로 답했다.
소리도, 반향도, 음악도 아니었다.
다만 그 소리는 듣는 이의 격을 부정하고, 논리를 부정하고, 존재를 부정했다.
그런 부정의 끝에 뭔가를 할 수 있는 이는 없었다. 나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유릭의 웃음과, 그것의 대답과, 어인들의 찬송가 사이에서 오로지 레안드로스만이 견딜 수 없다는 듯 고통에 찬 소리를 내질렀다.
“그만……!”
다섯 개의 거대한 촉수와 그보다 작은 촉수들이 해역을 휘저었다.
광포한 그것은 하늘 끝에라도 닿을 것처럼 사방을 휘저었다가 모든 것을 부쉈다.
우리의 배도 조만간 끝장이 날 것 같았다.
유릭은 촉수들을 보다가 나를 돌아봤다.
“……이방인, 너는 이 광기의 세상에 속해있는 자가 아니야. 다만 그런 겉껍질을 쓰고 있을 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 이야기는 나와 그대의 호위기사에 대한 이야기이리니. 그대는 진작 퇴거해야 마땅한 배역이라는 소리다.”
아냐, 아니야.
속이 울렁거렸다.
유릭의 창백한 손이 마치 사신의 손처럼 나를 가리켰다.
“모든 이야기의 결말은 정해져 있겠지만.”
배가 크게 출렁거렸다.
그 바람에 나는 배에서 튕겨 나가 바다 소용돌이의 한가운데로 떨어졌다.
내 몸 아래로 새카만 해구의 바닥이 보였다.
지독하게 검고, 또 사악하게 이글거리는 빛을 스친 순간 얇은 촉수가 나를 허공에서 낚아챘다.
촉수는 폭풍 속의 낙엽처럼 위태로운 배의 앞까지 나를 데려갔다.
물이 가득한 배 위에는 혼란스러운 레안드로스와, 여전히 서 있는 유릭이 보였다.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리.
유릭은 내 얼굴을 뜯어먹을 듯이 관찰하더니, 거꾸로 매달린 나의 목에서 무언가를 가져갔다.
전 공작부인의 돌 목걸이었다.
그의 목에도 비슷한 것이 하나 걸려 있었다.
내 것보다는 조금 굵은, 검은색의 길쭉한 돌.
유릭은 내 것과 자신의 목걸이를 서로 하나로 합쳤다.
두 개는 원래부터 한 몸이었다는 듯 스스로 자리를 찾아 들어갔다.
손가락보다 조금 더 긴 형태의 호각.
그는 호각을 앗아간 후에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 결말에 다다르기까지, 나는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설령 이 세상이 누군가의 변덕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해도.”
그와 거의 동시에 온몸에서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코와 입으로 뜨거운 것이 역류하며 뺨과 이마로 흘러내렸다.
눈앞이 새빨갛고 새파랬다. 동시에 하얗고 까맸다.
시선을 조금만 돌리면, 저항할 도리 없이 스스로의 존재를 입증하기에도 벅찬 레안드로스가 보였다.
그와 내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되뇌었다.
기억해.
기억해, 레안드로스.
바닷물에 쫄딱 젖은 레안드로스의 눈이 커졌다.
유릭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지막, 쿨럭, 유언.”
“해봐.”
“너, 분명, 엿 돼.”
공작부인의 처형과 그 아들의 살해.
주인공에게 트라우마를 두 번이나 남겨주다니.
보통은 이러면 찐각성하거든?
내가 죽은 후 넌 진짜 새됐다.
유릭은 피식 웃더니 피범벅이 된 내 얼굴을 살짝 건드렸다.
“그만 잠들도록 해. 낯선 별의 이방인이여.”
레안드로스의 절규를 마지막으로, 나는 장기가 터지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