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82
(81)
“레안드로스.”
“말씀하십시오.”
“옛날의 하르트만이었다면 뮬러 경이 이렇게 잘해주지 않았겠지?”
“옛날이나 지금이나 공작님은 다를 게 없으십니다.”
“그런 이야기는 아니었는데.”
뮬러는 내 기대보다 일을 더 잘 해줬다.
사람 없는 성에서 불이라도 잔뜩 쬐게 해줬더니 원기 충전한 슬레이프니르처럼 성을 떠났다.
내가 시킨 대로 하르트만 공작저도 들렀고, 거기서 대기하고 있던 아른트와 루셀도 만난 모양이었다.
내가 루셀을 슬레이에 처음 태워 보낼 때 당부한 말이 있었다.
-우선 목표는 왕성에서 보낸 사람들이 북부에 도착하는 거야. 아른트를 데리고 가. 그리고 이제까지 일어난 일을 전부 말해. 사소한 것까지 빠짐없이. 왕성에 가기 전에 신전에 먼저 들르도록 해.
-신전에도 이 소식을 전달하나요?
-아니. 하지만 들렀다는 걸 보여주는 게 중요한 거지.
-그다음은요?
-왕성에서 나오면 아른트는 공작저로 가서 손님맞이 준비를 해두라고 해. 너는 따로 용병을 미리 모집해서 대기시켜둬. 그 다음은 신전으로 가서…….
유릭은 보여지는 것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니 이번에 ‘왕세자’로서 결단을 내리게 하려면 제삼자, 다시 말해 유릭이나 나와는 관계가 없던 사람이 중요했다.
일부러 이물을 끼어들게 해서 공적으로 보이게끔 하기 위한 장치였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제삼자 역할을 하는 필립 뮬러는 권력을 추앙하는 타입이었다.
누구나 손에 닿지 않는 태양보다는 활활 타오르는 횃불을 더 손에 넣고 싶어 하는 법이지.
그리고 그 결과,
내 손 안에는 유릭 왕세자가 직접 서명한 임명장이 들려 있었다.
[상황이 위중함을 참작한바, 하르트만 공작에게 북부 자치령으로 사병을 이동시킬 수 있는 권한을 임시로 양위한다.]임시라고는 명기되어 있지만 명확하게 지정한 시일이 없었다.
다시 말해서 적당히 봐줄 때 놀고 돌아오라는 이야기였다.
물론 나에게는 그럴 마음이 없지만.
공작저를 중간 보급지로 정한 후, 뮬러는 자신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기 시작했다.
수도와 공작저, 북부를 오가며 전령을 자처한 것이다.
전령뿐이랴. 공작저에서 전달하는 물품이나 식량도 함께 운송해줬다.
물론 만일을 대비해 레안드로스가 북부까지 마중을 나가기는 해야 했지만, 역시 필립의 존재가 큰 도움이 되었다.
임명장을 까닥이고 있으려니 필립이 사삭 다가와 손을 비비며 말했다.
“이번에 공작저에 들렀을 때 용병이 이미 준비되어 있는 걸 확인 했습니다. 아마 지금쯤 출발했겠지요.”
“며칠 후 레안드로스를 경계까지 보내면 되겠군. 경의 공이 커.”
“아닙니다. 공작님의 말씀에 따른 것뿐입니다. 제가 한 일은 그저 그게 빨리 실현될 수 있도록 한 거죠.”
그리고 지금에서야 다시금 깨달았다.
필립 뮬러의 처세술은 대단하다.
기분 나쁘지 않을 정도로 살살 굽히면서 사근사근하게 말하는 건 쉽지 않은데.
물론 레안드로스는 필립을 노려보고 있긴 하지만.
“그럼 당분간 나는 여기에 있을 테니. 레안드로스 경이 용병을 맞이해줘. 필립 경은 피곤할 텐데 다른 방에서 쉬고 있고.”
“네, 공작님.”
“예.”
뮬러가 먼저 침실을 나섰다.
레안드로스는 그 뒤를 따라가려다가 멈췄다.
“공작님.”
“왜?”
“제가 없는 시간에는 무엇을 하십니까?”
“누워있지. 환자잖아.”
“…….”
레안드로스는 대답하지 않고 방을 벗어났다.
나는 다시 얌전하게 누워서 죽은 것처럼 잠을 잤다.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용병단이 북부로 들어왔다.
워낙 알려진 게 없는 북부다 보니, 용병 의뢰를 받은 사람들 말고도 탐험가나 지도 제작가도 더러 섞여 있었다.
내 몸은 용병 출신의 약사에게 치료를 받을 수 있었는데, 약사는 상처를 보자마자 얼굴을 찌푸렸다.
“여기가 조금만 더 더웠다면 다친 부분이 전부 썩었을 건데요. 추워서 다행인 줄 아세요.”
“아니, 내 기사가 응급처치해 준 걸 그렇게 매도하면 쓰나.”
“응급처치는 어디까지나 응급용이라는 사실을 새삼 알려드려야 해요? 부러진 뼈가 제자리에서 붙기 시작한 게 기적인데요.”
피와 고름에 절은 붕대 대신 하얗고 깨끗한 붕대와 고약한 냄새의 연고가 칠해졌다.
알 수 없는 액체를 상처 위에 떨어뜨리며 약사가 경고했다.
“말린 양귀비 잎을 씹으셨다고 들었어요.”
“내 기사가 준 거야.”
“진통 효과가 있기는 하지만, 지금 같은 경우에는 중독성이 덜 한 민간요법을 취하시는 게 나아요. 따로 약을 드릴게요.”
아멜리아를 중독자에서 벗어나게 했더니 이제 내가 그 업보를 이어받는 건가.
치료가 대강 끝나면 다음은 북부의 일이었다.
“우선 북부까지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게는 됐는데, 아직까지 사용할 수 있는 길은 한정적이야.”
“맞습니다. 또 괴물들이 나타나면 호위가 없는 행렬은 큰 피해를 볼 겁니다. 저만 해도 공작님께서 호위 기사의 동행을 명하지 않으셨더라면 큰일을 당할 뻔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 괴물들을 전부 없애기는 불가능해.”
“어째서입니까? 이 성의 괴물을 격퇴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럼 다른 괴물들이야 가뿐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필립이 이러쿵저러쿵하는 사이에 레안드로스가 예의 그 민담에 대한 책을 들고 왔다.
본래 북부에 강림한 것은 총 다섯 존재.
하지만 다들 ‘겨울 나비’와 비슷한 수준은 아니었다.
변경백이 겨울 나비로 화하는 장면은 지금 생각해보면 좀 이상했다.
겨울 나비와 함께 불려온 아품 자, 극권의 군주는 인간에게서 유래되지 않았다.
극권의 군주는 명실상부한 신적 존재.
그러니 겨울 나비가 극권의 군주보다 훨씬 더 약한 개체일 지도 몰랐다.
‘물론 보면 정신이 나갈 것 같다는 건 비슷하지만.’
그렇게 보면 북부에는 신적 존재 외에도 인간에게서 유래한 존재가 더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존재는 어느 정도 물리칠 가능성이 있다고 봐도 좋을 것 같았다.
한 번 시도해볼까?
그런 생각이 든 순간 마음을 접었다.
원작에서는 나오지 않는 괴물들이라 파훼법도 모르는 주제에.
레안드로스가 겨울 나비를 죽일 수 있었던 건 그야말로 천운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그런 존재들 말고 잡다한 소형 괴물들을 먼저 처리하는 게 우선이었다.
신적 존재는 만나기 어려워도 소형 괴물들은 어딜 가나 왕왕 만나니까.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답을 낼 때까지는 그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필립을 물리고 레안드로스를 가까이 오게 했다.
“북부에 얼마나 많은 게 있는지 알고 있지? 우리가 만났던 괴조며, 불타는 사람이며, 아멜리아 처리했던 그 야수 같은 놈들 말이야.”
“알고 있습니다.”
“그걸 다 해치우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 하지만 너는 하르트만에게 있어서 소중한 전력이야. 둘밖에 없는 호위 기사 중 하나이기도 하고.”
“예.”
“나도 네가 괜히 고생하는 건 싫어. 사지로 내모는 것도 별로 좋아하진 않거든,”
“예.”
“하지만 북부에는 미스릴 광석부터, 유릭 왕세자에 대한 것까지 많은 게 걸려있으니까 내가 포기하기 어려운 것도 이해하지?”
“예.”
레안드로스는 고개를 숙였다.
여기서 당장 신들을 죽이고 오라는 명령을 내려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일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에게 그런 걸 시킬 생각은 없었다.
대신.
“나와 함께 가자.”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몸, 재활용이나 하지 뭐.
레안드로스가 내 말에 고개를 들었다.
그로부터 2개월.
북부의 다섯 지역 중앙을 포함해 경계선 쪽의 두 지역이 해방되었다.
그리고 나는,
북부에 도사린 자잘한 괴물들을 공략하는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총 17번의 죽음을 맞이했다.
* * *
수도에는 드물게 용병가와 모험가의 품귀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유는 단 하나뿐이었다.
하르트만 공작가.
공작가에서 용병단을 대거 고용했는데, 의뢰지가 하나같이 북부였다.
사람들이 공작가와 북부의 관련성을 두고 웅성거릴 무렵.
소문 하나가 어디선가 은밀히 흘러나왔다.
‘하르트만 공작가가 북부 자치령에 대한 권한을 양위 받았다.’
이에 대한 진위 여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왕성을 출입하던 이들은 하르트만 공작의 시종과 그의 호위 기사가 유릭 왕세자를 접견하는 것을 목격한 바가 있었다.
목격담을 양분 삼은 소문은 급속히 확산되었다.
“……그래서 그런 소문은 대체 어디서 난 걸까 생각했는데, 다 공작님이 염두에 두신 것 같아서 굳이 해명하진 않았죠. 제가 눈치 하나는 빨라서.”
“대체 귀족의 시종은 뭘 하면 그런 눈치를 얻게 되는 건데?”
“말씀만 하시죠, 어떻게 획득했는지 밤새 이야기를 풀어드릴 수 있습니다.”
용병단의 선발대와 함께 변경백의 성을 베이스캠프로 삼고 북부에서 버틴 두 달.
그 기간은 북부로 향하는 최소한의 길을 만드는 동시에 북부의 일부 지역의 세부 지도를 그리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지도도 있겠다, 이상한 괴물이나 마수도 덜 보이겠다.
일꾼의 파견도, 물자의 이동도 어느 정도 수월해지자마자 나는 변경백 성에 있던 미스릴 광석을 옮기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써주는 사람도 없는데 나라도 써줘야지.
이렇게 미스릴 광석은 성공적으로 확보.
아놀드 남작가의 주문에 겨우 착수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런데.
“북부에서 레안드로스 경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말 말씀 안 하셔도 괜찮으세요?”
“별일 없었어.”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레안드로스 경의 얼굴이 너무 험악합니다.”
“단순한 히스테리야.”
북부에서 공작저로 돌아온 이후, 레안드로스는 내 앞에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호위 기사라는 임무를 그만두지는 않았다.
집무실에 있으면 문밖에서 소리 없는 인기척이 느껴졌으니.
그렇지만 내가 그의 얼굴을 본 적은 없었다.
이유는 충분히 알 수 있지만.
그걸 지금 여기서 말할 순 없지.
걱정하느라 얼굴이 반쪽이 된 아른트를 안심시키며 말을 돌렸다.
“루셀 경도 그렇고, 아멜리아 양도 그렇고 다들 자리를 비웠네.”
“그러고 보니 아멜리아 양은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맡겨야 할 일이 많은데.”
“잠시 다른 곳에 보냈어. 혹시 보고 싶어?”
“아뇨, 제가 왜요?”
아른트는 즉답하며 내가 처리해야 할 일들을 잔뜩 건네주었다.
“다들 뿔뿔이 흩어졌네요. 조용하니까 왠지 기분이 이상해요. 하지만 이건 이거 나름대로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왜?”
“옛날 생각이 나서?”
……혹시 우리가 풀떼기만 쑤어먹던 그 시절 이야기하는 거니?
그게 추억으로 남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거냐?
떨떠름하게 아른트를 보고 있으려니,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공작님, 서신이 도착했습니다.”
호리호리한 하인이 들어와 작은 종잇조각을 건넸다.
거기에 쓰인 것은 단 하나의 문장.
하지만 그걸 읽자마자 저절로 입매가 굳었다.
하인을 내보내고 아른트가 물었다.
“어떤 내용인지 여쭈어도 될까요? 좋은 소식입니까, 공작님?”
“별 건 아니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아른트가 실내용 망토를 내게 둘러주었다.
“귀한 손님이 오신다고 하더라고.”
“손님이라면…….”
“네가 상상하는 그 사람이 맞을걸.”
[왕성에서 그분이 움직인다고 해요.]종잇조각이 손안에서 구겨졌다.
유릭이 왕성을 떠나 여기로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