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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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먼저 한 것은 루셀이 고개를 돌리기 전에 그의 머리 위로 담요를 뒤집어씌우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모닥불을 발로 차 꺼뜨리고서 납작 엎드렸다.
저 거인의 눈에 띄는 순간 우리는 전부 죽거나 미치광이가 될 운명이었다.
루셀의 머리를 누르자 그는 당황해서 내 손목을 잡았다.
“공작님!”
“조용히 해. 내가 됐다고 할 때까지.”
바람은 점점 더 거칠어졌고, 그에 따라 울부짖는 소리도 점점 더 커졌다.
손이 떨리고 식은땀이 났다.
분명 거인을 저 위에서 본 것 같은데, 지금은 거인이 내 귀에 대고 옆에 있노라고 속삭이는 기분마저 들었다.
동시에 공포에 압도당한 본능이 머릿속에서 소리치고 있었다.
도망가, 도망가라고!
지금 일어나서 뛰어!
아니면 고개를 들어! 저 괴물의 정체를 봐!
차라리 마음 편하게 죽어!
바닥의 눈은 얼어붙어 딱딱해졌다.
곁눈질을 해서 확인한 풍경 속 앙상한 나무들은 온통 새하얗게 얼어가고 있었다.
말 그대로 하얀 세상이 찾아오는 중이었다.
북부의 눈과 바람, 얼음이 저 공중에서 걷는 신을 향해 소리 없는 찬가를 부르고 있었다.
위대하신 ■■■여, 별 사이에 부는 바람을 타고 걷는 위대한 자여.
모든 얼음과 눈의 창조주여, 뜨거운 살과 피를 탐하는 방랑자여!
끔찍하리만치 두려운 울부짖음으로 생명 없는 신도들에게 화답하는 거인은 천천히 멀어져갔다.
살았나?
우리를 눈치채지 못하고 간 건가?
내 손에 힘이 풀리자, 루셀이 담요를 벗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방금 그 소리는 대체 무슨…… 공작님? 공작님, 괜찮으세요?”
“루셀 경.”
숨을 쉬려고 했지만, 가슴이 울렁거렸다.
겨울 나비를 마주했을 때와는 또 다른 경악과 공포.
이건, 아무래도.
“우리가 드디어 거인의 영역에 들어온 모양이야.”
긴장해야 할 시기가 온 거겠지.
* * *
겨울 나비를 봤을 때는 인간에서 우화하기까지의 과정을 전부 봐서 그런지, 특별히 더 무서워지지는 않았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에 이 신을 보고 나니 확실히 알겠다.
인간이 변한 신성과 원래부터 신이었던 존재 사이에는 격의 차이가 확실히 존재했다.
존재의 앞에서 머리를 들 수 있는지 없는지의 차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북부에서 활보하는 그 존재를, ‘옛것’을 그대가 죽일 수 있기라도 하나?
유릭은 북부에 강림한 것들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가 북부의 존재들을 ‘옛것’이라고 표현했다는 게 떠올랐다.
옛것.
옛것들의 존재와 출처에 대해 관심이 생겼지만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는 따로 있었다.
동화를 전승으로 해서 만들어진 신은 동화 속에서 등장하는 약점이나 습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본디 존재하던 옛 것에게 살을 붙인 동화라면, 그 이야기는 옛것을 얼마나 많이 반영하고 있는가?
“공작님, 듣고계신가요?”
“응? 아, 미안해. 잘 못 들었어.”
“그럼 확인차 다시 설명드리겠습니다.”
거인이 사라진 후, 우리는 자고 있던 막스와 요나스를 깨웠다.
거인의 영역에 들어왔다는 확신이 들었으니 이제는 거인을 추적하고 습성과 돌아다니는 영역을 관찰할 차례였다.
루셀이 눈 위에 그린 그림을 가리켰다.
“공작님이 말씀하신 대로 거인을 따라 추적합니다. 지금부터 이 영역 내의 지도와 함께 거인의 활동 범위를 측정하려 합니다. 요나스, 손은 어떤가요?”
요나스는 양손을 들어 보였다.
장갑을 끼고 있던 손은 멀쩡하게 움직였다.
루셀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사를 하면서 도보로 이동해야 할 때가 있을 겁니다. 그럴 때는 막스 씨가 요나스의 옆에서 경계해주세요.”
“알겠습니다.”
“활동 영역에 대한 정보가 쌓이면 큰 변동 없다는 가정하에 바로 성으로 귀환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신의 보살핌이 있길.”
자리를 정리하고, 다시 썰매로 거인의 뒤를 따라 이동했다.
어느 정도 이동하자 요나스가 여기부터는 지도 제작을 해야 한다고 알려줘서 요나스를 제외하고 다들 썰매에서 내렸다.
주변은 평화롭고, 이따금씩 차가운 눈바람이 부는 것만 제외하면 고요했다.
벌판에 앙상하게 마른 까만 나무들이 가끔 삐죽삐죽 솟아있었다.
요나스는 썰매에 걸터앉아 발을 달랑거리며 주변을 관찰했다.
지도 제작에 필요한 지형지물을 그리고, 막스가 일정한 걸음마다 작은 깃발을 땅에 꽂으면 그것을 기점으로 우리가 가는 길을 기록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걸음이 늦은 나와 일부러 수레 뒤를 따라가야 하는 막스가 함께 걷게 되었다.
“도와줄까? 허리 아플 텐데.”
“아이고, 아닙니다. 이런 것쯤이야. 가끔 숙여서 표시만 하면 됩니다. 그나저나 공작님, 저 실례지만 뭣 좀 하나 여쭈어봐도 됩니까?”
“뭐가 궁금한데?”
“저, 어제 저희는 못 봐서 그런데. 그 거인은 대체 어떻게 생겼습니까?”
“별로 안 보는 게 좋을걸. 마주치지도 말고. 보면 미쳐버린다는 이야기가 있거든. 내가 본 것도 번쩍거리는 눈 한 쌍뿐이야.”
“아이고, 그런데 거인을 어떻게 쫓아간답니까. 보면 큰일 나는 거 아닙니까?”
“보면 그렇겠지. 하지만 뒤를 쫓는 건 다른 방법이 있어.”
나는 저 멀리 나무들을 가리켰다.
“나무, 아까 봤던 건 검은색이었는데 저건 하얗게 보이지. 거인이 지나갔다는 흔적이야.”
“저게 말입니까? 봐도 영 모르겠는데.”
“거인이 지나간 자리에 있는 건 전부 얼어버리거든. 오면서 만났던 그 유령들처럼. 그러니 뒤를 따라가기가 쉽지.”
막스는 미심쩍은 눈으로 반쯤 얼어붙은 하얀 나무 몇 그루를 보다가 짧게 허, 하는 소리를 냈다.
“공작님께서는 하나도 안 무서워 보이십니다. 저는 오금이 다 저리는데도요.”
“그런가? 하지만 나도 아예 안 무서운 건 아니야. 거인을 봤을 때는 나도 죽을 것 같았어.”
“그래도 저 같은 것보다는 거인에 대해 잘 아시는 것 같습니다. 혹시 제가 귀담아들어야할 게 있을까요?”
뭐가 있더라.
나도 이 신에 대해서는 동화밖에 안 봐서 잘 모르는데.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마주치면 일단 눈부터 감고 귀를 막으라는 거?”
“그게 답니까?”
“이게 다지. 하지만 아주 중요한 철칙인걸. 그리고 몸을 숨기는 것도 해야 하고, 그것들이 당신을 보지 못하게 소리도 죽여야지.”
“동물들에게서 살아남는 방법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만 그려.”
“크게 다르지 않지 않을까.”
이 세계는 인간에 대해 아무런 감정도 없을 것이다.
애정이 없으니 개미가 홍수에 휩쓸려 죽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
증오가 없으니 가장 비참할 때에도, 가장 영광된 때에도 사람은 상관없이 죽는다.
그러니 우리는 세상을 포식자로 인식하고 영리한 초식동물처럼 살아가야 했다.
나를 짜부라뜨려 죽일 수 있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오직 이 목숨을 연장하기 위해서.
막스는 땅에 깃발을 하나 더 꽂았다.
그때 썰매에서 뛰어내린 요나스가 달려와 막스에게 매달렸다.
아이는 막스에게 수화로 뭐라고 말을 건넸다.
막스는 요나스를 안아 올리더니 어리둥절하게 답했다.
“길이 점점 고도가 높아지는 것 같다는데요?”
“고도가 높아져?”
그럴 리가 없는데.
오르막길이라면 숨이 차거나 힘이 들어야 하지 않아?
어리둥절한 우리에게 요나스는 보란 듯이 등 뒤를 손으로 가리켰다.
우리가 뒤를 돌아보자, 이제까지 걸어온 길과 점점이 꽂힌 붉은 깃발이 한눈에 보였다.
“아.”
평평한 길에서는 볼 수 없는 각도였다.
너무 완만해서 오르막이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뒤돌아보니까 확실히 우리가 올라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루셀이 잠시 썰매를 멈추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루셀, 이쪽에 산이 있었나?”
“잘 모르겠습니다. 눈안개나 폭풍으로 시야가 확보된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육안으로 분간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요.”
“갑자기 낭떠러지를 만나지 않도록 주의해서 가지. 검집으로 바닥을 잘 확인하면서 가도록 해.”
“네, 공작님.”
어쩐지 듬성듬성 나무가 보인다 싶었다.
아까는 하나도 없던 나무가 갑자기 나타나길래 지형이 바뀐 건지 생각하기는 했지만.
우리는 천천히 주의 깊게 길을 올랐다.
가끔 뒤를 보면 깃발은 계속해서 아래로 이어졌다.
나무들도 좀 더 많이 나타났고, 가끔은 군락지를 형성한 곳도 있었다.
얼마나 올랐을까,
깃발을 다 꽂은 막스가 외쳤다.
“깃발을 다 사용했습니다. 앞으로의 일정도 대비해야 하니 쉬는 게 좋겠습니다.”
“깃발은 총 몇 개였지?”
“500보마다 하나씩, 94개 정도 꽂았습니다.”
“그럼 쉬도록 하지.”
어우, 엄청 멀리 왔네. 어쩐지 나도 다리가 아파서 쓰러질 것 같더라.
우리는 검은 나무가 그나마 빽빽하게 들어선 곳을 골라 썰매를 멈췄다.
루셀은 불을 피우고 요나스는 동상 관리를 한 번 더 받았다.
허기를 때운 후, 다들 각자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루셀은 땔감을 주우러 갔고, 막스는 근처 정찰을, 그리고 나와 요나스는.
“그래서, 여기까지가 그 동화에 대한 이야기야. 북부의 이야기는 다른 지역에 비해 잔인한 게 많지.”
북부 민담집을 흥미롭게 듣던 요나스는 내 손을 가져가서 손바닥에 글씨를 써줬다.
-북부 이야기는 재미있어요.
“그래? 이런 이야기 듣는 건 좋아해?
-아빠가 젊었을 때 용병 이야기를 많이 해줬어요. 매일 밤 들려줘서 좋아해요.
“아빠랑 다니는 건 힘들지 않아?”
-힘들지만 재미있는 일이 더 많아요. 동상은 싫지만.
요나스는 생각보다 더 긍정적이었다.
낯을 많이 가리는 것 같아서 금세 우울해지면 어쩌나 싶었는데, 생각보다 나를 잘 따르기도 했고.
“나도 처음 북부에 왔을 때 엄청 추워서 놀랐어.”
-공작님은 기사님이랑 둘이 왔어요?
“원래는 더 있었는데, 이번은 둘만.
-기사님 무서워서.
“어디가?
루셀이 무섭다니.
걔만큼 머리가 꽃밭인 데다가 상냥한 애도 없는데.
물론 지금은 신앙에 과도하게 매진하기는 하지만, 그건 다 거인을 보고 충격을 받아 편집증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언젠가는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이라고 딱히 문제 되는 건 없잖아.
하지만 요나스는 내 손바닥에 꾹꾹 눌러 적었다.
-싸우고 나면, 눈이 마구 이상하게 보여요.
“눈이? 어떻게?”
-무섭게 변하고. 웃는 것도 무섭고.
나이가 어릴수록 주변 공기를 어른보다 민감하게 알아차린다더니, 그 말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전투할 때 루셀이 뿌린 살기가 남아있는 걸 감지한 게 아닐까.
요나스에게는 그런 말은 하지 않고, 대신 안심시켜주었다.
“그래도 좋은 사람이야. 친절하게 대해줘.”
-아빠는 언제 와요?
“정찰이 끝나면? 멀리 나가시진 않았을 거야. 안개가 짙어서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요나스는 아무래도 걱정이 되는지 목을 쭉 빼고 막스가 갔던 방향을 쳐다봤다.
-이따가 마중 나가도 돼요?
“안 될 건 없지만 위험하니까 안 그러는 게 좋을 것 같다. 막스가 늦게 올 것 같으면 나나 루셀이 나갈게.”
요나스가 비죽거려서 나는 요나스의 머리를 있는 힘껏 쓰다듬어줬다.
내가 요나스에게 다른 북부 이야기를 들려주는 와중에 루셀은 앙상한 나뭇가지를 잔뜩 안고 돌아왔다.
그러나 동화를 다 들려준 후에도 막스는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루셀이 막스를 찾으러 갔고, 나는 요나스와 함께 썰매에 남았다.
요나스는 불편한 듯 계속 썰매 밖을 내다보다가 일어났다.
“요나스. 앉아. 루셀이 곧 막스와 함께 올 거야.”
하지만 요나스는 고개를 저었다.
입을 벙긋벙긋하며 다리를 배배 꼬는 걸 보니 다른 용무가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요나스를 썰매와 가까운 나무 뒤까지 데려다 두고 조금 떨어져서 뒤를 돌았다.
뭐, 남자애니까 이럴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한참 망을 보다가 물었다.
“요나스, 볼일은 다 끝났어?”
대답은 없었다.
아, 얘는 말을 못 하지.
“미안, 까먹었다. 다 끝났으면 소리 내도 돼.”
그런데 소리도 없었다.
나는 요나스가 있던 나무 뒤로 돌아가 봤다.
하지만 거기에는 요나스도, 볼일을 본 흔적도 없었다.
다만 반대쪽으로 사라진 발자국만 남아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