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9
(08)
마음 같아서는 당장 달려가서 내 눈으로 수확물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아른트가 극구 만류했다.
지금은 정양이 먼저라고, 제발 쉬시라고.
그렇게 나는 침대 위에서 붕 뜬 것 같은 의식으로, 낮과 밤 할 것 없이 멋대로 자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잠에 들면 안심되는 동시에 두려웠고 깨어나면 뭔가를 잊은 듯한 감각이었다.
레안드로스와 아른트는 내게 부상에 대해 묻지 않았다.
나도 굳이 말하지 않았다.
그 숲에서의 일은 내 머릿속에서도 흐릿하기만 했으니까.
중요한 일이었을까? 아니,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중요하지 않은 일일지도.
수풀 위로 떨어져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거겠지.
그래, 역시 그렇지? 그건 충분히 있을 수도 있는 일이야……
귓가에서 누군가가 그렇게 속삭여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사흘 후.
“음흠흠.”
“기분 좋아 보이시네요, 공작님.”
“드디어 침실 밖으로 나가잖아.”
나는 겨우 아른트의 도움을 받아 일어날 수 있었다.
당연하겠지만 기껏 사냥한 보르미를 그대로 내버려 둘 생각은 없었다.
아른트와 레안드로스만 보내는 것도 안심이 되지 않는다.
아른트는 못마땅하게 물었다.
“정말로 가실 겁니까?”
“일곱 번째로 듣는 질문인 것 같은데.”
“공작님께서는 말 그대로 걷기만 하시잖습니까.”
【마치 갓 태어난 망아지처럼요. 하지만 아른트는 이 말을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현명한 시종이란 혀를 무겁게 하는 법이다.】
망아지는 너무 갔잖아.
하지만 아른트는 걱정이 된 모양이다.
옷을 가능한 많이 껴입고, 아른트가 어디선가 찾아다준 지팡이 역할의 나뭇가지를 들고 나서야 방을 나섰다.
레안드로스는 안뜰에 미리 나와있었다.
강건한 바위처럼 우뚝 서 있던 그는 나를 보자 아른트와 시선을 교환했다.
후들거리는 내 다리를 분명 봤기 때문이겠지.
나는 모른 체 하며 쾌활하게 말했다.
“낮이 짧으니 서두르는 게 좋겠어.”
그렇게 나는 두 사람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숲으로 들어갔다.
숲은 밤과 낮의 모습이 달랐다.
우거진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내리쬐는 모습이 여간 아름다운 게 아니었다.
어디선가 새가 지저귀며 풍류를 더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숲의 한 가운데.
악취가 나는 거대한 사체가 저들끼리 엉겨 붙어 있었다.
“으윽…….”
아른트가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이렇게 지독한 건 처음 본다는 투였다.
아른트의 걱정 어린 눈빛이 날 스쳤다.
“도련님, 잠시 뒤로…”
“괜찮아. 냄새가 지독하긴 한데.”
나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이런 건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내가 정신을 잃은 7일.
요양을 하게 되었던 3일.
총 10일간 썩은 사체에서 좋은 냄새가 나는 게 이상한 일이다.
“생각보다 엄청나게 크네. 수확이 늘어난 기분이야.”
저들끼리 싸운 것도 있는지 온몸이 난도질당해 형체도 잘 알아볼 수 없었다.
꼭 꺼멓게 물든 작은 동산 같았다.
레안드로스는 조용히 말했다.
“급한 상황인 듯하여 보르미를 처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정도면 그냥 경 혼자 사냥할 수 있던 거 아니야?”
“저들끼리 싸우고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방심한 적을 해치우는 건 쉽다는 말이겠지.
그나저나 보르미를 봐도 별다른 정신적 타격은 없다는 부분은 좋은데, 이걸 어떻게 하지?
“멀리 가져갈 수는 없겠네.”
“성으로 가져가시려고요? 자던 보르미도 벌떡 일어날 겁니다. 냄새가 지독해요.”
“아무래도 그렇겠지.”
장소를 옮겨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레안드로스가 제안했다.
“그렇다면 숲 안에서 해체한 후에 가져가는 건 어떻겠습니까?”
“나쁘지 않은 생각이네요. 어디서요?”
“어쩌면 보르미들이 잘 가지 않는 길목에서 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레안드로스가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냇가와 가까운 곳이라면 빨리 처리할 수 있을 겁니다.”
“거기는 전망대가 무너져서 위험한 곳인데. 차라리 그 반대쪽은 어때? 거기도 물길이 닿는 곳이잖아.”
굳이 장소를 바꾸자는 이야기에 아른트는 의아한 표정이었지만 레안드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혼자서 할 수 있겠어? 아른트와 함께하지, 그래.”
“도움을 주신다면야.”
외곽으로 다시 이동한 우리는 둘로 찢어졌다.
아른트는 내가 챙겨달라고 부탁한 꾸러미를 넘기고 레안드로스와 보르미를 해체하러 갔다.
나는 안전한 외곽에 홀로 남아있었다.
꾸러미를 찢자 그 안에는 마른 고기가 들어 있었다.
먹기에는 험상궂게 생긴 육포였지만 내 배는 이미 아우성을 치며 식사를 요구하고 있었다.
‘성에서 아침도 먹었는데.’
몸이 낫기 위해서 많이 먹으라고 하는 걸까.
10일 전에 당한 사고에 대한 기억은 뭔가 기분이 나쁘고 끔찍하다는 것 외에는 뚜렷하지 않았다.
악몽을 꾸고 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레안드로스와 아른트에게서 어떤 숫자와 글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게 소설 속에서 나올 법한 서술 방식이라니.
게다가 나한테만 보이는 것 같고.
그 텍스트와 숫자는 무슨 의미인지 궁리하면서 육포를 먹다 보니 어느새 꾸러미는 텅 비어 있었다.
한결 가벼워진 것을 갈무리하던 중, 아른트가 멀리서 뛰어왔다.
“공작님, 시간이 꽤 지체되었습니다. 혹시 그걸 다 드셨어요?”
“어? 다 먹으라고 한 거 아니야?”
그러고 보니 평소에 내가 몇 개나 먹었더라?
당황해서 아른트를 올려다보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저희야 돌아가서도 먹으면 되니까요. 그보다 거의 끝나가서 모시러 왔습니다.”
“많이 나왔어?”
아른트와 레안드로스가 가기 전에 이빨과 손발톱을 최우선으로 채취해달라 당부했는데.
아른트는 자신만만하게 답했다.
“네. 이빨이 저 깊은 곳까지 2열로 자라 있더군요. 정말 소름 끼치는 광경이었습니다.”
와. 그럼 이빨은 수확량이 두 배겠네.
아른트는 나를 해체 장소로 안내했다.
보르미를 최초 발견한 장소에서 약간 떨어진 곳.
나무가 둥글게 자라 있는 작은 터는 풀이 파릇파릇하게 돋아 있었다.
물론 지금은 보르미를 해체한 덕분인지 바닥이 거무죽죽하게 변해있기는 하지만.
레안드로스는 주변을 갈무리하던 중에 나를 보고 목례를 했다.
“이게 저희가 얻은 결과물인가요?”
그의 발치에 궤짝이 하나 있었다.
정강이 중간쯤 되는 높이의 상자 안에 무엇이 있는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레안드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득 찼습니다. 안을 들여다보지는 마십시오.”
수확은 내 상상 이상이었다.
좋은 조건에 거래를 성사했다고 가정할 때 거의 1년 정도는 생활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런데, 공작님께서는 이걸 판매하실 방법이 있으십니까?”
“판매?”
“다른 무기로 가공하실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말입니다. 생각해두신 방법이 있습니까?”
레안드로스가 내 고민을 정확히 말했다.
지금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어떻게 팔 것인가’였다.
마수의 부산물로 빚은 무기는 인기가 높다.
그러니 당연히 그 자재도 늘 공급이 벅찰 수밖에 없다.
마수의 부산물을 유통하는 상인과 거래를 하면 얼마간 큰돈을 쥘 수 있다.
어디까지나 우리가 이걸 ‘재료’로 가공할 수 있다면.
마수의 부산물은 경도가 다이아몬드 같거나, 혹은 기괴한 힘을 가지고 있어 특수한 처리를 필요로 했다.
그런 특수 처리는 상당한 실력을 가진 전문가만이 가능했고, 그런 전문가는 아무나 쉽게 만나주지 않았다.
문제는 하르트만 영지의 근처에는 괜찮은 특수처리 전문가가 없다는 것.
애초에 이 지방은 그렇게 마수 사냥에 특화된 지역이 아니었다.
마수의 서식지가 산맥 깊은 곳에 있다는 점부터 그렇지. 험준한 자연이 막아서는데 누가 무기며 식량이며 바리바리 싸 들고 올라가겠나.
그러니 여기에 마수와 관련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 전무 할 수밖에.
“아니. 우리가 직접 가공하거나 팔 수 없으니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게 나아.”
빨리 포기해야 한다면 미련을 버리는 게 낫다.
나는 부산물이 가득 담긴 상자를 눈짓했다.
“성과 장원을 벗어나서 가장 가까이 있는 마을로 가는 게 좋겠어. 얼마나 걸리지, 아른트?”
“걸어서 하루 이틀은 될 겁니다. 말이 있다면 더 빠르겠지만.”
“나쁘지 않네.”
다행히 일주일씩 걸리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나한테는 희소식이었다.
가능하면 최대한 빨리 야생 동물의 고기가 아닌 탄수화물을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축이 아닌데다가 어느 정도의 누린내도 제거하지 못한 고기는 오랫동안 먹을 게 못 됐다.
“채비를 해서 가는 게 좋겠다. 저것들은 아른트가 깨끗하게 씻도록 해.”
“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레안드로스 경은 여행 동안 먹을 것을 위해 사냥을 좀 해줘.”
“제가 알기로는 비축된 식량이 있을 겁니다. 하루 정도라면…….”
레안드로스의 설명에 아른트가 끼어들었다.
그는 레안드로스에게 뭔가를 들려주었다.
“공작님께서 아까 드신 양입니다.”
“……이건 성에서 가져온 게 아닌가?”
“그렇습니다만.”
아니, 그걸 지금 보여주면 어떡해!
아른트는 짧게 말했다.
“공작님께서는 지금 막 회복기에 드셔서요.”
“…….”
“더 많은 영양 보충이 필요할 듯합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레안드로스 경.”
레안드로스도 바보가 아닌 이상은 회복기 환자라고 해도 성인 남성 3명하고도 더한 분량을 먹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을 거다.
하지만 아른트가 강조한 한 음절, 한 음절에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아, 쪽팔려.
결국 레안드로스 경은 그날 저녁, 안전한 사냥터에서 사냥을 해야만 했다.
* * *
레안드로스가 장담한 대로 마을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온종일 걷는다면 밤에는 도착할 수도 있는 거리였으나, 내 컨디션의 문제로 그러지는 못했다.
결국 우리는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하루 묵은 후에야 압생트라 불리는 마을에 들어설 수 있었다.
“생각한 것보다는 크네.”
“압생트는 소도시에는 못 미치지만, 곧 도시령으로 속하는 게 아닌가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게나?”
“많은 여행자들이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서부의 론디아즈로 가기 위해 지나야 하는 길목에 위치하기도 합니다.”
론디아즈, 서부를 대표하는 서부 최대의 항구 도시.
동부에서 서부로 이동할 때 산맥을 지나지 않기 위해서는 평야 지대로 움직여야 했다.
하른트 공작가가 건재했을 때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압생트를 경유하는 것이 최선인 모양이었다.
“여기도 상인 길드가 있어?”
“조합에 속하지 않은 상인이 드물 겁니다.”
아른트의 조곤조곤한 설명에 뒤이어 레안드로스가 말했다.
“이렇게 작은 마을에는 마수를 전문으로 거래하는 곳은 없을 겁니다. 우선 지부에 찾아가 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지부라는 것도 있구나.”
무슨무슨 읍의 농협조합센터 같은 건가.
쓸데없는 생각을 애써 지우며 레안드로스가 안내하는 방향으로 향했다.
상인 길드의 압생트 지부는 작고 단출했다.
작은 1층짜리 건물이었는데, 기대했던 것보다는 작아서 약간 김이 샜다.
하긴, 시골 조합 센터인데 뭘 바라겠어.
그렇게 애써 위로하며 들어간 센터에서 마수 부산물 매매를 의뢰했다.
“얼마쯤 나올까?”
“글쎄요, 정확한 시세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빨이나 발톱은 검을 주조할 때 서너 개씩 넣기도 한다니까요.”
“그럼 제법 비싼 거 아냐?”
이게 들어간 검 한 자루에 얼마나 하려나.
잘은 몰라도, 이걸 다 팔면 금화 스무 닢은 거뜬할 것 같은데?
“84번 고객님,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이쪽으로 오시겠습니까?”
“아, 네.”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우리는 안으로 안내 받았다.
좁은 칸막이 방 여러 개를 지나, 마침내 들어선 곳에는 후덕한 아저씨가 일어나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제가 잡화 구매 담당인 로브스라고 합니다.”
잡화 구매?
“네, 안녕하세요.”
“여러분이 가져오신 게 마수의 부산물이라고 하셨습니까?”
“아, 예. 보시다시피 신경을 써서 제품에 손상 없도록 잘…….”
“네, 네. 그런데 말입니다.”
로브스라는 아저씨는 손을 들어 내 말을 막았다.
이건 뭐지?
그는 그 인심 좋은 얼굴에 안타깝다는 빛을 띠었다.
“안타깝게도 이번에 마수의 부산물 거래가 꽈악 막혀버려서 말입니다.”
“거래가요? 어떻게 그럽니까?”
“그렇게 되었습니다. 저희야 어쩔 수 있나요. 그래서 지난달보다 값이 떨어지긴 했네요.”
“그래서 결국 얼마쯤…….”
그는 손가락을 다섯 개 쫙 펼쳤다.
뭐야, 이 정도는 괜찮을 것 같은데.
“금화나 은화로?”
“동화.”
“……네?”
“동화 다섯 닢.”
“예?”
“발톱 두 개에, 동화 다섯 닢으로 합시다.”
“예에에에에에??”
이 무슨 날강도 같은 자식이 다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