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10
(09)
애초에 잡화 구매 담당이 마수의 발톱을 사러 나오는 것부터가 이상하다 싶었다.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후려치기라니?
“그 가격은 말이 안 됩니다.”
내가 딱 잘라서 말하자 로브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여기 말고 다른 곳에 가도 비슷할 겁니다.”
“마수 거래가 꽉 막혔다고 했는데, 그 뜻은 뭡니까?”
어디선가 압도적으로 물량을 내놓고 있어서 가치가 하락한 건지, 아니면 거래 루트가 아예 막힌 건지.
로브스는 얼마 나지도 않은 까슬까슬한 수염을 만지며 입을 열었다.
“원래라면 마수의 이빨이나 손발톱, 힘줄 같은 것들은 길드 내부에서 가공을 위탁하는 업체가 있었는데 말입니다. 이번에 동부에서 그 사건이 터지면서 위탁 하청 업체가 싹 빠져서 동부 물량 말고는 받지 않게 되었단 말이죠.”
“그 사건이라 함은?”
“아, 그 사건을 모르십니까?”
대체 그게 뭔데.
아른트와 레안드로스를 쳐다봤지만 그 둘도 영 짐작이 안 가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소식이 느려서야. 이미 북부까지 소문이 퍼졌을 텐데!”
“그래서 그게 뭡니까?”
“동부에, 거대한 ‘구덩이’가 나타났다는 말입니다.”
구덩이라면 분명히 원작에 언급된 부분이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 날 동부 황야에 갑자기 나타난 구덩이에서 수십 마리는 넘는 마수가 나타났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황야의 주인이 왕성과 계약을 맺어 구덩이의 탐사를 진행하게 되었다고 하죠.”
“그런데 그게 마수 부산물 거래와 무슨…….”
“구덩이 탐사 중에도 당연히 마물이 나오겠죠! 그러니 그 부산물을 처리하려고 가공 위탁 업체의 계약을 모조리 쓸어갔단 말입니다.”
“찾아보면 하나둘쯤은 남아 있을 텐데요?”
“없습니다, 하나도 없어요! 아이든 톨로비쉬가 톨로비쉬 상단의 이름을 내걸고 기가 막힌 보수를 내걸었으니 말입니다.”
이름을 듣자 순간 퍼뜩 떠오르는 게 있었다.
아이든 톨로비쉬.
재신財神이라고 불리며, 작중 톨로비쉬 상단을 이끄는 실세.
동부에 상단의 본부가 있다는 설정은 알고 있었지만, 갑자기 여기서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원래 동부 ‘구덩이’ 사건은 80편 즈음에나 나오는 사건이었다.
연중 시점이 95화였으니 굉장히 후반에 나온 이벤트인 셈이다.
그렇다 보니 동부의 구덩이 사건에 대해서 명확히 드러난 부분은 많지 않았다.
갑자기 생성된 싱크홀.
거기서 쏟아져 나오는 마수.
개인적으로는 무슨 던젼 같은 게 아닐까 싶었는데, 결국 동생한테는 못 물어봤었지.
【그런 걸 미리 알면 재미없을걸, 형.】
그건 이 세계에 내가 빙의하기 전까지의 문제고.
나는 뜨끈해지는 이마를 문질렀다.
“그렇다면 소규모 가공장인들도 있지 않겠습니까?”
“현재 상인 길드에서는 장인 개인에게 맡기지 않는다는 방침이라서 말입니다. 그러니 물건을 저희가 산다고 해도, 처리가 곤란하게 되는 겁니다. 재고만 나죠.”
그러더니 로브스는 살짝 숙여 은밀하게 속삭였다.
“하지만 뭐, 또 상인의 본업은 사고파는 게 아니겠습니까? 제가 아는 업자에게 개인적으로 연결해드릴 수 있습니다.”
“연결하면?”
“아, 그럼 이제 가공을 떡하니 해놓고 상품이 되는 겁니다. 단점은 의뢰 비용이 좀 많이 든다는 것뿐이죠.”
“그래서 발톱 두 개에 동화 다섯 닢?”
“아, 뭐. 이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거잖습니까.”
이제 보니 볼에 살이 붙은 게 후덕한 게 아니라 기름이었군.
“그렇게는 팔지 않겠습니다.”
“아니, 여기서 안 파시면 어쩌시려고요? 직접 동부까지 가서 뭐, 장인이라도 찾아보시겠습니까?”
이제는 아주 으름장까지.
더 이상 이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어 몸을 일으켰다.
“그래요.”
“예?”
“댁 말을 들어보니 동부로 가는 게 낫겠습니다. 좋은 의견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아, 배웅은 필요 없으니 나오지 마세요.”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내내 뒤에서 뭐라고 소리를 쳤지만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건물 밖은 여전히 사람들이 많이 다녔다.
그 와중에 과일을 늘어놓고 가격표를 거는 사람이 보였다.
뭔지 모르는 붉은 과일 하나에 동화 한 닢.
약간 상한 것들은 두 개에 동화 한 닢.
“미친 새끼.”
그렇게 고생해서 뽑은 보르미 발톱을 과일 몇 개랑 바꾼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로브스의 뒤에 희미하게 떠오르는 텍스트를 읽고 한 대 쥐어박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로브스는 속으로만 웃었다.
양옆의 사람들은 고용한 용병인가?
하지만 이 꼬마는, 로브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로브스는 머리를 핑핑 돌렸다.
일단 그럼 원가에서 의뢰비 은화 한 닢은 제외하고…….】
어찌나 가격을 후려치던지.
다시 만나면 대머리로 만들어버리겠어.
아른트는 안절부절못하면서 내 눈치를 보는 듯했다.
“공작님. 다른 상인을 찾아보시겠습니까? 조금 힘들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찾아 보면…….”
“아냐. 길드에 소속되지 않은 상인을 찾는 게 더 어려울 거야.”
“그렇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로브스와 이야기를 하면서 이것저것 계산기를 두드려봤다.
변수는 많고 우리가 지불할 수 있는 자원은 한정되어 있었다.
어느 선택지도 딱히 끌리지 않았는데 마침 로브스가 좋은 옵션을 던진 참이었다.
동부.
동부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마수 부산물 가공장인을 찾아봤자 거기서 거기일 뿐이다.
하지만 현재 왕국에서 가장 큰 마수 시장이 있는 동부로 직접 간다면 어떨까?
“가공장인의 수가 적더라도, 모든 장인이 단체로 활동하지는 않을 거야. 정답은 동부야.”
무엇을 하든, 로브스가 떼어먹으려던 금액보다는 더 싸게 먹힐 것이다.
하지만 레안드로스는 미심쩍은 듯했다.
“동부로 가시기에는 공작님의 건강이 염려됩니다.”
“하지만 너네 둘만 보내는 것도 걱정되는데. 그렇다고 한 사람만 보내기에는, 글쎄.”
아른트?
집안일에는 능숙하지만 은근히 마음이 약하다.
레안드로스?
사냥도 잘하고 무력으로는 원탑이지만, 상인간의 거래에서는 글쎄.
장사를 하는 레안드로스를 떠올리려고 해도 흥정을 하는 게 아니라 이 가격에 사라고 강요하는 모습밖에 생각이 안 났다.
게다가 두 사람의 꼬질꼬질한 모습에 가다가 거지로 오해받지나 않으면 다행일 것 같았다.
아, 그건 나도 마찬가지인가. 하여간.
“무리하지 않으면 괜찮아.”
“세 사람이 함께 이동하는 데에는 비용이 꽤 듭니다.”
“얼마나 들 것 같은데?”
“그런 말씀까지 드리기에는 상당히 외람되기에.”
당장 급전으로 마련하기 어려운 금액인가 보지.
“그럼 그 문제를 해결하면 되는 거지?”
“일단은 그렇게 보입니다만.”
“그래, 그럼 여기서 잠시 해야 할 일이 있는데, 두 사람이 도와줄 수 있을까?”
“하명하십시오.”
“동부 구덩이에 대한 소문과 또 보르미 손발톱의 정확한 시세를 알고 싶어서. 부탁할게.”
대충 해가 머리 위에 떠오르면 마을 입구 앞에서 만나는 것으로 정했다.
한 시의 지체없이 흩어지는 두 사람을 보다가, 나 역시 시장 쪽으로 향했다.
* * *
【레안드로스는 구덩이에 대한 소문을 수집했다.
엄청난 소득이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배경지식은 되리라.
소문을 수집하면서 레안드로스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옛날에는 곧잘 했지만, 공작부인의 호위기사를 자청하고 하르트만으로 귀속된 이후로 관둔 일이었기 때문이다.
밑바닥부터 시작한다는 건 얼마나 고된 일인지.
그리고 또 얼마나 지독한 향수를 안겨주는지.
문득 레안드로스는 이 사람들 사이로 뛰어들어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전처럼 자유롭게, 그리고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고 살아가는 삶.
‘공작부인께서 들으시면 웃으시겠군.’
레안드로스는 한숨을 삼키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하지만 멀리서부터 보이는 장면이 레안드로스의 쓸데없는 향수와 회한을 점점 밀어냈다.
사람들 사이에 있는 청년.
앳되고 하얀 얼굴과 뺨을 부드럽게 감싼 붉은 머리.
하지만 어딘가가 달랐다.
레안드로스는 눈썰미가 없는 사람이 결코 아니었기에 단번에 차이를 알 수 있었다.
좀 전과 완전히 달라진 아렌하이트의 모습에 그는 기함을 토했다.】
“대체, 그 머리는 어떻게 되신 겁니까!!”
* * *
“말도 안 됩니다! 제가 그 머리를 지키려고 얼마나…….”
아른트가 퀭한 얼굴로 몇 번씩이나 반복했던 말을 되풀이했다.
레안드로스는 묵묵히 길을 앞장서서 가고 있었지만, 그 역시 기분이 좋지 않은 건 마찬가지인 듯 했다.
하지만 고작 이런 거 가지고.
“머리카락 좀 잘랐다고 세상 무너지는 소리 하지 마.”
“그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제게 한마디 말씀 없이 싹둑 자르시다니요, 그리고 그걸 또 파시고!”
“다들 자리를 비웠으니까 그랬지.”
길게 치렁치렁하던 내 머리카락이 어깨에 간신히 닿을 정도로 짧아져 있었다.
난 머리가 한결 가벼워져서 좋았지만 아른트는 전혀 그렇지 않은 얼굴로 내 머리카락을 보고 있었다.
“사교계에서는 관리가 잘 된 긴 머리가 필수적인데, 어떻게 이렇게 거침없이 자르셨습니까?”
“내가 앞으로 3년 내에 사교계에 초청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긴 머리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품위의 상징입니다!”
“우리 성부터 품위를 되찾아보는 건 어때?”
아른트는 말문이 막힌 표정으로 입을 벙긋거리기만 했다.
그 와중에 레안드로스가 굳게 다물던 입을 열었다.
“전 공작부인께서 그 머리를 빗으시며 자랑스러워하셨습니다.”
그 말에 아른트가 옆에서 ‘맞아! 그렇지! 어떻게 그런 무도한 짓을 하십니까!’ 같은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내가 진짜 아렌하이트도 아닌데, 죽은 공작부인 따위가 무슨 상관이냐고.
“기억이 잘 안 나네. 그래도 나중에 자기 전에 죄송하다고 기도나 드리지 뭐.”
“공작님!”
“지금 나한테는 그깟 머리를 유지하면서 돈을 쓰는 것보다 머리카락을 팔아 두 사람을 먹여 살리는 게 더 급하거든.”
내가 안고 있던 봉투 안에는 빵이 가득 담겨 있었다.
한국에서 먹던 마가린과 하얀 밀가루, 우유의 맛은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퍽퍽한 게 먹을 만했다.
이 정도면 제법 오래 먹겠지.
“비용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되었으니까, 동부에 가는 걸 본격적으로 이야기해보자.”
동부까지 마차를 타고 10일이 넘게 걸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걸어가기에는 무리니까 다른 방법도 생각해봐야겠지.
야영을 할 거면 그게 맞는 준비도 필요하고.
아른트에게 맡긴 작은 주머니가 짤랑거리는 소리를 영롱하게 냈다.
은화 다섯 닢에 동화 열 닢.
이 정도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그런데, 공작님. 하나만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해봐.”
“그 빵, 아까 마을에서 나오신 이후로 네 조각째 아니신지, 아! 죄송합니다. 혹시 제가 여쭈어도 되는 문제입니까?”
나는 아른트의 말에 조용히 들고 있던 빵조각을 넣어두었다.
역시 식비 예산을 다시 생각 해봐야 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