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11
(10)
“나 진짜 많이 먹는 것 같아.”
보르미 사냥을 다녀온 이후부터 내 식욕은 기하급수적으로 치솟았다.
레안드로스가 사냥한 고기?
여행용 식량 외의 식료품?
태반은 내 뱃속에 들어있을걸.
나중에는 비축을 위해 말려둔 고기까지 기웃거리는 내 모습에 아른트는 거의 울면서 그걸 구워줬다.
스스로도 왜 이렇게 식욕이 도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잘 드시는 편이 되신 겁니다.”
“아파서 못 먹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양쪽에서 아른트와 레안드로스가 각각 받아쳤다.
둘 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기는 한데.
【아른트는 생각했다. 오늘 내로 도착하지 못하면 이제는 먹을 게 없다. 어떻게 해서든 서둘러야만 해!】
【레안드로스는 드물게 염려했다. 여차하면 모자란 식량을 현지조달 해야 할지도 모른다.】
둘의 텍스트는 전혀 믿음직하지 않잖아.
하지만 나라도 그럴 것 같다.
아무래도 무한으로 음식을 먹어치우는 돼지를 데리고 다니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편이겠지.
나는 내 헐렁한 식량 보따리를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글렌피딕은 아직 멀었어?”
“거의 다 와 갑니다, 공작님. 오늘로 꼭 서른 날이 지났습니다.”
30일 동안 우리는 야영을 하고 또 걸었다.
이 세상에서 말하는 여행은 걷기와 식사, 휴식, 수면의 반복이었다.
아른트가 시시때때로 주물러줬지만 다리는 속절없이 탱탱 부었다.
가끔은 레안드로스가 업어주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지.
하다못해 스마트폰이라도 있었으면 심심하지 않았을 텐데.
우리가 목적지로 삼은 곳은 글렌피딕 벌판이었다.
동부에서 가장 넓은 벌판이자 ‘구덩이’가 생겨났다는 곳.
거기에 몰려있을 장인들과 상인이 우리의 목표였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보르미의 발톱과 이빨도 어디 가서 뒤지지는 않을 양이었다.
그러니 협상만 잘한다면 가망이 아예 없는 건 아닌 편이지.
‘물론 어떤 조건으로 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지만.’
마음만 같아서는 마수의 부산물 관련해서 정보를 캐내고 싶었다.
하지만 방법도 없고, 내가 기억하는 한 작품에서도 그렇게 상세한 정보가 언급되지는 않았다.
그러니 지금 당장은 부딪쳐보는 수밖에 없나.
“레안드로스, 그건 안 무거워?”
“괜찮습니다.”
“나랑 번갈아 가면서 들까?”
“아닙니다.”
레안드로스가 단호하게 답했다.
그가 보물처럼 안고 있는 궤짝에는 보르미 부산물이 고이 잠들어 있었다.
팔에 힘줄이 툭 솟은 걸 보니 여간 무거운 게 아닌 모양이다.
“내가 가장 많이 먹는데 할 수 있는 게 없네.”
“공작님께서는 이미 잘해주고 계십니다. 내내 이렇게 걷기가 쉬운 줄 아십니까?”
아른트가 툭 튀어나와 반박했다.
내가 ‘스스로 식충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무심코 말한 이후부터 내내 이 상태였다.
“이리 소탈한 여행을 즐기시는 것 역시 귀족의 덕목이겠지요.”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좀 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나도 펑펑 즐기고 싶었다고.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일단 두 사람에게 맛있는 걸 배부르게 먹이는 게 급선무였다.
이 세상에서 동생이 만든 캐릭터들을 굶길 수는 없잖아.
“어쨌든 서둘러 가자. 오늘 해가 지기 전까지 도착할 수 있는 마을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
“네, 아마 짐레트라고 부르는 마을인가봅니다.”
아른트가 누덕누덕한 중고 지도를 펼쳐 들었다.
이 시대에는 지도가 고급품은 아니지만 그래도 값이 꽤 나가는 물건이었다.
덕분에 중고로 구한 지도 위에는 메모가 덕지덕지 쓰여 있었다.
“짐레트?”
“그렇게 큰 마을은 아니지만, 글렌피딕으로 가기 전에 들러봄직합니다.”
“얼마나 작은데?”
“압생트보다 훨씬 더 작습니다만, 대신 여행자들이 많아 여관이야 더 많지 않을까요?”
관광특구 같은 곳인가?
내가 아는 한국의 관광특구는 호텔과 모텔이 많은 대신 하룻밤에 20만원을 부르는 곳인데.
아른트는 지도를 부스럭거리다가 갑자기 손뼉을 쳤다.
“그러고 보니 레안드로스 경께서는 나라의 여러 장소를 다니셨다고 들었습니다.”
아, 진짜?
레안드로스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닙니다. 견습기사들은 수련을 위해 방랑이라는 방식을 택하곤 하니까요.”
“그래서 동부에 와봤어?”
“짐레트에는 가보지 않았지만 동부의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나쁜 곳은 아니라더군요.”
“뭔가 특징은 없어?”
아른트와 내 시선을 부담스럽게 여겼는지, 레안드로스는 슬쩍 다른 곳을 바라봤다.
“동부에서는 용이 산다고 합니다. 전설이기는 합니다만.”
“용?”
아른트가 반문했다.
나는 놀란 것처럼 눈을 크게 뜨기만 했다.
동부의 용 이야기라면 소설 초반부에 언급된 적 있어서 이미 아는 이야기니까.
레안드로스는 기억을 더듬으며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동부에는 거대한 지네와 몸이 긴 용이 살았다고 합니다. 더 큰 영역을 위해 싸우던 둘에게 지나가던 사냥꾼이 놀라서 화살을 쐈습니다만, 불운하게 용에게 화살이 향했다고 합니다.”
“아, 저런. 지네가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아른트는 흥미진진한 모양이었다.
레안드로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 때문에 용은 결국 땅속으로 추락했고, 지네는 살아서 도망갔다고 합니다.”
“아, 그럼 지네는 사냥꾼에게 뭔가 좋은 걸 줬습니까?”
“지네에 관해서는 모르겠습니다만. 용은 동부의 깊은 곳에서 다시 깨어나면 자신을 사냥한 인간들에게 복수를 할 거라는 내용으로 마무리 됩니다.”
“……전설이 왜 그 모양입니까?”
아른트의 심정이 꼭 내 심정과 같았다.
가장 처음에 동부의 전설을 들었을 때 사냥꾼이 지네의 비호를 받을 거라 생각했는데.
하지만 보상은 개뿔.
용의 영원한 증오만 남아 있었다.
이게 바로 코즈믹 호러에서 주장하는 전설인가.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전 동부 출신이 아니니까요.”
“그럼 레안드로스 경은 어디 출신인데?”
“공작님, 경께서는 공작님께서 태어나시기 전부터 전 공작부인의 호위를 맡으셨답니다.”
아른트는 말머리를 돌렸고 레안드로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거 대단하긴 하다.”
갑작스럽게 궁금해졌다.
레안드로스의 출신 같이 원작에서 나오지 않은 정보를 습득할 수 있을까?
나는 레안드로스를 슬쩍 떠봤다.
“그럼 레안드로스 경의 고향에서는 어떤 전설이나 이야기가 있어? 동부 이야기는 꽤 재미있었는데.”
“저는 한미한 시골 마을 출신이라 말입니다. 그리 재미있지 않을 겁니다. 저기 마침 마을이 보이는군요.”
레안드로스의 말대로, 길이 이어진 능선의 저 끝에서 뭔가가 희끄무레하게 보였다.
그 위로 태양이 슬며시 기울어지고 있었다.
벌판과 작은 숲, 그리고 멀리 보이는 산맥으로 이루어진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걸음을 빨리 하면 저녁을 먹기 전에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지금은 상태가 괜찮으니까 뛸 수도 있어.”
역시 내내 건량만 먹다 보면 질리긴 하더라.
건조 고기를 띄운 묽은 수프 말고 제대로 된 식사를 해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활기차게 발걸음을 떼는 순간이었다.
꼬로로로록.
“……”
꾸르르르르르륵!
“……”
“빠, 빨리 가는 게 좋겠습니다. 뛰지는 마시고 천천히 걸어주십시오, 공작님.”
“응.”
이런 씨발.
그냥 여기서 코 박고 죽을까?
* * *
다행히 해가 지기 직전에 마을 입구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했다.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을 제시해주십시오.”
마을 입구에서는 횃불이 벌써부터 환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아직 해가 남아 있는데 벌써?
게다가 입구에 서 있는 사람들은 보초병 같았는데, 무장을 하고 있는 수준이 장난이 아니었다.
레안드로스는 궤짝을 아른트에게 맡기고 앞으로 나섰다.
“원래부터 검문을 시작했소? 언제부터지?”
“짐레트에 방문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몇 년 전 일이오. 당시에는 이렇게 엄격하지 않았는데.”
두 명의 보초병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레안드로스의 질문만으로 상당히 불안정한 눈빛이었다.
그들 중 하나가 목을 가다듬고 정중하게 말했다.
“최근 치안으로 인하여 검문을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여기 있소.”
레안드로스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게 뭔지 보려고 했지만 뒤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보초병은 그것을 보자마자 약간 누그러진 듯했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기사님.”
“궁금한 게 있소. 왜 검문을 시작하게 되었지? 여행객이 많긴 해도 범죄가 심심찮게 일어나는 곳은 아니었는데.”
레안드로스는 내가 궁금해하던 걸 정확히 짚었다.
원작에서 동부는 마수들의 땅이라 불리는 것치고는 평화롭게 묘사되었다.
마수를 사냥하는 것부터 그 시체를 가공하는 것부터 유통하는 것까지 업으로 삼은 자들이 모이기 때문이었다.
용병도, 마수 사냥꾼도, 기사와 상인도 몰려드는 동부.
그렇기 때문에 마수 상업이 활발해질수록 민간인은 역설적으로 더 안전해진다.
그런데 왜 갑자기 검문을 시작했지?
보초병은 의아한 표정이었다.
“아직 중앙까지 소문이 퍼지지는 않았습니까?”
“우리는 북부와 동부의 디켄터 산맥을 따라 내려왔소.”
“하지만 동부에 생긴 구덩이에 대한 이야기는 아시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와 관련되어 있소?”
그러자 그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어딘가 찜찜한 표정으로 레안드로스에게 속삭였다.
하지만 그 속삭임은 나에게도 들릴 정도였다.
“지금 동부는 발칵 뒤집히게 생겼습니다. 글렌피딕 뿐만 아니라 그 근처에 있는 모든 것들이요!”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기사님, 목숨이 두렵다면 여기서 다른 곳으로 가셔야 합니다. 저희도 이렇게까지 말씀을 드리고 싶지 않지만…….”
보초병의 얼굴은 서서히 경직되고 있었다.
그의 비탄에 찬 목소리가 내 귀에도 선명하게 틀어박혔다.
“다른 곳에서는 모르겠지만, 동부의 구덩이가 사실은 사람을 잡아먹는 악마의 구멍이었습니다! 그만 돌아가십시오, 기사님. 더 이상 동부는 사람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레안드로스와 아른트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 * *
달도 뜨지 않는 밤.
저 끝이 보이지 않는 드넓은 황야의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마치 땅이 하늘을 삼키겠다 입을 연 것처럼 보였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덩이의 가장자리에 드문드문 랜턴의 빛이 보였다.
밤에 일어날 수도 있는 사고를 막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런 장치가 무색하게 현장의 일꾼들은 해가 지면 일제히 구덩이 근처에서 물러났다.
그 덕분에 늘 밤의 황야는 침묵에 휩싸여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조용히 좀 걸어, 미친 새끼야! 여기서 들키면 우린 쫓겨난다고!”
“씨발… 꼭 이렇게 해야 하는 거냐?”
그림자 두 개가 살금살금 움직이고 있었다.
구덩이 근처에 널부러져 있는 곡괭이나 끈을 피해 걷던 두 명은 더러운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벌컥 화를 냈다.
“그럼 이대로 쥐꼬리만한 수당만 받고 돌아가라고? 어림도 없지. 동부 붙박이 새끼들, 이 구덩이가 용의 잠자리니 뭐니 겁을 주면서 목 좋은 자리를 알음알음 채가는 게 분명하다고!”
“그냥 땅 파는데 좋은 자리가 어디 있냐!”
“조용히 해, 멍청한 자식아!”
주변이 잠시 고요해졌다.
숨을 고르던 목소리는 다시 속삭이기 시작했다.
“땅 파다가 마물 뼛조각 하나 발견하면 당장 보름치 수당을 받을 수 있는 거 들었냐? 씨발, 그거 때문에 동부 촌뜨기들이 벽 쪽에 있는 거잖아. 박힌 거 없나 보려고! 개같은 새끼들. 지들끼리만 다 처먹으려고……”
“고향에 있을 때 땅만 파고 그만한 돈을 받는다고 좋아하던 건 너였어! 그냥 좀 돌아가자고!”
“그딴 부서진 뼛조각이 팔릴 줄 알았겠냐고! 오늘 인생 역전 한 번 한다, 어? 좆같은 동부 빨리 뜨고. 너도 나도 같이 돈 만지면 좋잖아!”
거친 말투에 진 건지, 다른 남자는 고개를 젓기만 했다.
결국 두 사람은 구덩이의 가장자리에 섰다.
랜턴 불빛만이 둘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려주었다.
둘은 함께 저 아래를 굽어다 내려봤다.
저 아래에서 소용돌이치는 바람과 공기의 울음이 음산하게 들렸다.
태양 외에는 빛도 한 점 들지 않는 검은 어둠.
어디선가 마른침 삼키는 소리가 났다.
“이제 어쩔건데? 저 아래로 장비 없이 내려갈 수는 있고?”
“기다려봐. 일단 어느 정도 얕은 곳까지는 걸어갈 수 있게 해뒀잖아. 그 임시 나무 계단 기억나?”
유독 거칠었던 말투의 남자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딱 한 발자국 앞.
끝을 알 수 없는 낭떠러지에서 축축한 공기가 훅 하고 얼굴로 불어왔다.
“그래, 기억나.”
“거기로 우선 내려가보자고. 동부 놈들이 있던 거기 말이야.”
“그래.”
“일단 그 계단으로 가려면 여기서 빙 돌아서…… 어.”
그가 돌아보는 순간, 함께 와준 친구의 손이 어깨 위에 얹혔다.
툭.
단 한 번의 가벼운 손짓이었다.
하지만 무릎을 꿇고 있던 남자는 앞으로 숙인 자세를 바꾸지 못하고 그대로 추락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악!!!
비명은 빠르게 꺼져갔다.
부딪히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까마득하게 멀어지는 목소리.
그 옆에 서 있던 남자는 흐린 시선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퍼뜩 주변을 둘러보더니 제 손과 구덩이를 번갈아 쳐다봤다.
“아, 아, 아아.”
내가 뭘 한거지?
방금 왜 그랬지?
왜?
투박한 손이 덜덜 떨렸다.
두려움에 가득찬 발이 어둠이 도사린 구덩이에서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그러다가 땅바닥에 널부러진 장비에 걸려 넘어졌지만, 남자는 엉덩이를 질질 끌며 도리질을 쳤다.
“아, 아……. 으아, 아, 아아……! 내가 아니야, 안 그랬어, 아냐!! 난, 나도 모르게, 뭔가 이상… 내가 안 했어, 내가 안 했다고!”
부정하는 고함이 황무지에 울렸으나, 답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 앞에서는 검은 구덩이가 요사스럽게 아가리를 쩍 벌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