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12)
◈ 12화. 해법
유대하는 좀처럼 현실을 믿을 수 없었다.
아군을 죽이라며 의뢰를 하는 자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그러거나 말거나 완전히 물러난 진무립은 한마디 더 던졌다.
“림주께 받은 돈과 서북로의 운영자금이 모두 네 목에 걸려있다. 잃으면 죽인다.”
유대하는 울화가 치밀었다.
‘돈을 잃는다는 건 내가 죽는다는 건데 무슨 수로 또 죽인단 말이오!’
며칠간 따라다니며 살짝이나마 생겼던 존경심이 비 맞은 숯불처럼 사그라들었다.
묵인표가 월도를 뽑아 들며 말했다.
“미안하네만 자네의 소공자께서 거액을 주고 일을 맡기셨는데 거절할 수는 없을 것 같네.”
낭인 세계의 정점에 선 흑사칠랑과 같은 고수도 있었지만 떠도는 이들 중 제대로 된 실력을 가진 무인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묵인표는 사천의 낭인 중 흑사칠랑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 알려진 무인.
온전한 상태의 유대하조차 결코 경시할 수 없는 상대인 것이다.
묵인표와 낭인들이 둥글게 포위를 갖추자, 진무립의 손이 소매 안으로 들어갔다.
‘벼랑 끝에 서 있다고 생각해라.’
벼랑 끝으로 몰아넣은 것은 다름 아닌 자신.
그러나 비무에서 멀쩡한 모습을 보였던 유대하였기에 진무립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뭐 안 되면 구해주면 되는 것이고.
진무립의 눈에 기대감이 번지는 순간, 먼저 낭인들이 움직였다.
“사귀진(四鬼陣)!”
묵인표의 명령과 동시에 낭인 넷이 사방을 점하더니 일제히 공격을 퍼부었다.
“칫!”
벼락같이 뽑혀 나온 유대하의 검이 따다당 하는 소리와 함께 세 자루 검을 쳐냈다.
거의 동시에 후방의 도가 유대하의 허리춤을 베어갔다.
반사적으로 배를 내민 유대하는 철판교의 수법으로 회피하며 검을 내질렀다.
“헛!”
그 자세에서 공격이 들어올 줄 몰랐던 낭인은 기겁하며 고개를 틀었다.
스걱 하는 소리와 함께 피륙이 살짝 갈라지며 피가 튀었다.
경악한 것은 낭인이 아닌 유대하였다.
‘거, 검이 나간다고?’
적 앞에만 서면 무력해지던 자신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공격을 성공시켰다.
진무립은 웃었다.
‘역시. 그간 칼을 잘못 쓰고 있었구나.’
잘못된 것은 유대하가 아니었다.
유대하라는 명검의 사용법을 누구도 몰랐던 것이다.
“집중해라! 식충이를 상대로 뭘 하는 거냐!”
묵인표의 불만 섞인 외침에 정신이 번쩍 든 낭인들은 다음 공격을 시작했다.
살벌한 공세가 펼쳐지는 가운데 진무립이 손을 흔들었다.
“어이, 묵가야.”
“이미 피를 봤소이다. 지금 와서 봐 달라고 해도 봐주지 않을 거요.”
“그게 아니야.”
눈살을 찌푸린 묵인표가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그럼 뭐요?”
진무립의 안면에 미소가 활짝 폈다.
“이쪽도 목을 걸었으니 죽여도 무방하지?”
광기 어린 미소와 마주한 순간, 묵인표는 전신의 솜털이 쭈뼛 서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무슨 미소가······.’
묵인표가 딱딱히 굳은 사이, 유대하의 싸움은 점점 치열한 양상으로 전개됐다.
‘역시 보통 낭인이 아니다.’
중경의 낭인들은 모두 묵인표가 공들여 키운 자들이다.
내일을 알 수 없는 낭인들이 단합해 진법까지 사용한다는 것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었다.
개개인의 실력은 유대하에 비할 바가 아니었으나 이들은 조직적인 움직임으로 단점을 상쇄하고 있었다.
하지만 묵검대의 대주까지 올랐던 유대하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한 번에 쏟아지는 공격의 숫자가 여덟 개로 늘어나자 전방으로 돌진하는 척 간격을 확보한 유대하는 적운마검(赤雲魔劍) 분검격쇄(分劍擊碎)의 초식을 전개했다.
내지르는 검신이 갑자기 잔영을 남기며 흔들리더니 순식간에 다섯 명의 어깨를 정교하게 꿰뚫었다.
“으윽!”
허공에 혈흔이 흩어지며 다섯 명이 무기를 떨구자 다른 낭인들이 그 자릴 채우려 움직였다.
순식간에 틈이 메워지나 싶었는데 유대하는 그 짧은 시간의 균열을 놓치지 않았다.
분검격쇄에서 이어지는 양하일섬(梁下一閃)의 초식.
엄청난 쾌검이 짓쳐 드는 낭인들의 다리를 순식간에 그어버렸다.
“아악!”
세 명이 공평하게 비명을 토해내며 쓰러지자 유대하는 쓰러지는 자의 머리통을 발로 내리찍었다.
“큭!”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낭인의 머리가 지면에 처박힐 때 등 뒤에서 세 자루 검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그것을 미리 예측한 유대하는 짓밟은 머리통을 밟고 도약했다.
훌쩍 뛰어 허공에 거꾸로 선 유대하는 머리 아래로 지나치는 낭인들에게 검초를 흩뿌렸다.
“크아아악!”
우아하면서도 아름다운 검초는 낭인들의 비명으로 보답 받았다.
병기를 들어 막는 자에겐 중검의 묘리를, 피하려는 자에겐 쾌검의 묘리를 변화무쌍하게 적용하자 진무립은 탄성을 자아냈다.
“우하하! 너 대단한 놈이었구나!”
자신과의 비무에서 보여준 모습은 빙산의 일각, 족쇄를 벗어던진 유대하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생기가 넘쳤다.
그 자신조차 놀랄 정도로.
순식간에 스무 명의 낭인들이 무기를 떨구고 쓰러지자 마침내 묵인표가 나섰다.
“전부 물러나라!”
진법이 깨진 이상 낭인들로는 당해낼 도리가 없다.
거리에 깃든 정적을 방해하는 것은 쓰러진 자들의 신음뿐, 유대하의 엄청난 신위에 누구 하나 입을 열지 못했다.
낭인들이 서둘러 부상자를 수습해 물러나자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묵인표는 유대하를 겨눈 월도를 어깨높이로 들어 올렸다.
“유대하. 세상을 속이고 있었나?”
“속이다니?”
“싸우지 못한다는 소문은 연막이었냐는 말이다.”
헛웃음이 나왔지만 애써 참았다.
“그 정도로 한가한 사람이 아니다.”
호흡을 고른 유대하가 기수식을 취하자 묵인표의 소매가 부풀기 시작했다.
‘저놈은 다르다.’
유대하의 짐작처럼 묵인표가 분출하는 살기는 다른 낭인과는 차원이 달랐다.
묵인표가 말했다.
“소공자. 아이들 치료비도 필요하니 전표는 내가 가져야겠소이다.”
진무립의 대답은 유대하를 향했다.
“야. 내 돈 가져와라.”
“제 몫도 있어야 할 겁니다.”
진무립은 헛웃음을 지었다.
“칼 좀 쓴다고 그새 대가리가 컸네.”
유대하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맺히는 순간, 지면을 박찬 묵인표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카앙!
선명한 쇳소리와 함께 불꽃이 피어올랐다.
‘쳇!’
유대하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무거운 월도가 워낙 날카롭게 쏟아진 탓에 무심코 검신을 맞댄 것이다.
휘청이는 유대하의 어깨로 재차 월도가 떨어졌다.
발끝으로 땅을 박찬 유대하는 앞으로 미끄러지며 묵인표의 다리를 노렸다.
“어딜!”
묵인표는 검을 피하며 뒤로 뺀 발로 지면을 박찼다.
묵인표를 지나쳐 지면과 거의 수평하게 날아가던 유대하는 왼손을 땅에 박아 방향을 돌렸다.
완전히 멈춘 유대하가 몸을 돌린 순간, 머리 위로 강맹한 기운이 뚝 떨어졌다.
이번에는 피하지 않았다. 양손으로 검을 움켜쥔 유대하는 검신을 비스듬히 틀어 월도를 흘려버렸다.
끼기기기기!
마치 손톱으로 철판을 긁는 듯 오싹한 소리와 함께 월도가 지면을 갈랐다.
유대하는 손목을 틀어 묵인표의 가슴을 노렸다.
하지만 묵인표 역시 만만치 않았다.
땅에 박힌 도극을 비틀어 발로 걷어차자 무거운 월도가 순식간에 치솟았다.
서걱!
묵인표의 월도는 유대하의 소매를, 유대하의 검극은 묵인표의 옷깃을 잘라냈다.
‘이놈이 이 정도로 강했단 말인가?’
놀란 묵인표였지만 도신이 흔들릴 만큼 공부가 서툴지는 않았다.
전신을 압박하는 날카로운 도풍에 정확히 반걸음 물러난 유대하는 묵인표가 회수하는 도를 따라 돌진했다.
카앙!
묵인표는 가까스로 손목을 틀어 검극을 튕겨냈다.
무거운 정적 속에 이어지는 일진일퇴의 접전.
낭인들은 물론이고 주변 건물의 창틈으로 지켜보는 이들까지 수준 높은 공방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유대하를 밀어내며 빠르게 주변을 훑은 묵인표는 가일층 내력을 끌어올렸다.
‘그걸 쓰지 않고는 제압할 수 없다.’
보는 눈이 많은 곳에서 쓰는 것은 내키지 않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끝을 볼 수밖에 없던 것이다.
각오를 다진 묵인표가 호표월풍도(浩票月風刀)의 절초를 꺼냈다.
네 갈래로 갈라진 도풍이 차원이 다른 기세로 사지를 노려오자 유대하는 눈을 부릅떴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절초를 꺼낸다고?’
전신을 집어삼킬 듯 날아드는 묵인표의 절초는 상상 이상으로 강맹했다.
그 순간, 둘 사이로 웬 사람이 날아들며 묵인표의 집중력을 흔들었다.
“그만!”
묵인표는 여기서 멈추고 싶지 않았으나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날아든 사람이 바로 자신을 따르는 낭인이었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순간 싸움이 끝나자 묵인표의 눈이 불길이 치솟았다.
“무슨 짓인가!”
천천히 걸어온 진무립이 둘 사이를 막아서며 말했다.
“약속했던 이각이 지났다. 의뢰는 실패로군.”
“······.”
묵인표의 얼굴이 천천히 일그러져갔다.
상대의 염장을 지르듯 씩 웃은 진무립이 손을 내밀었다.
“돈 가져와라.”
살심이 치솟았지만 의뢰인을 죽이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이를 바드득 간 묵인표는 전표 뭉치를 팽개치듯 던지고 몸을 돌렸다.
“꺼져라.”
처음처럼 존대를 해줄 만큼의 너그러움은 없었다.
전표를 주워든 진무립은 씩 웃으며 유대하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돌아가자.”
진무립과 유대하가 거리에서 사라지자 지켜보던 사람들은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후우! 엄청나구만.”
“그러게 말일세.”
“마도림의 식충이라더니 그건 다 거짓인 모양이야. 저렇게 강하다니.”
술렁이던 사람들이 흩어질 무렵, 객잔에 들어간 묵인표는 보이는 술병을 잡아 목에 들이부었다.
“제기랄! 이각이 그렇게 금방 지나다니.”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꺼낸 절초인 만큼 상대는 온전히 막을 여력이 없었을 것이다.
그때 묵인표를 따라온 낭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각은 한참 전에 지났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반시진은 됐을 겁니다.”
“반시진이라고?”
가만히 생각하던 묵인표의 표정이 한순간에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그 개새끼가!”
묵인표가 길길이 날뛰고 있을 때, 대검문의 영역을 벗어난 진무립이 말했다.
“잘 싸우더구나.”
넋 나간 사람처럼 걷던 유대하는 정신이 들었다.
“저도······. 그렇게 잘 싸울 줄은 몰랐습니다.”
사방을 포위한 적이 공격을 가하는 순간 몸이 먼저 반응하며 검이 나갔다.
진무립의 생각처럼 다칠 동료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마도림에 네가 있을 자리가 생긴 것 같냐?”
진무립은 머물 자리를 만들어주겠다던 약속을 결국 지켰다.
유대하는 나란히 걷는 진무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이런 방식으로 족쇄를 벗을 줄은 몰랐지만 말입니다.”
진무립은 피식 웃었다.
“어쨌든 방도를 찾았으니 된 거지. 그놈은 어땠지?”
“그 상황에서 절초를 꺼낼 줄은 몰랐습니다. 미리 대비했다면 모를까 그대로 진행됐다면 적잖이 다쳤을지도 모릅니다.”
“다음에는 이길 수 있겠어?”
“상대의 절초를 보았으니······.”
유대하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설마.”
진무립이 싸움을 끝낸 시점은 정확히 묵인표의 절초가 전개된 순간이었다.
유대하는 문득 하늘을 쳐다봤다.
해가 기운 것을 보아 이각은 한참 전에 지났을 것이다.
“우연······ 일 리가 없겠지요. 소공자.”
묘한 미소를 지은 진무립이 유대하의 어깨를 툭 치고 나아갔다.
“그놈은 네게 맡기마.”
우두커니 선 유대하는 오싹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저 사람은 대체 어디까지 보고 있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