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126)
◈ 126화. 당가의 혈투
치열했던 전투의 끝.
진무립은 광룡대를 돌아보며 말했다.
“모두 수고가 많았다.”
경상을 입은 이는 있었으나 큰 부상을 당한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예전의 광룡대라면 오늘처럼 싸울 수 없었을 것이다.
마음 같아선 한 명씩 손을 잡고 치하하고 싶었으나 그럴 여유가 없었다.
“조금 쉬고 사천맹의 동쪽 숲에 가서 기다려라.”
한경이 물었다.
“소공자는 같이 안 가십니까?”
“당가의 일을 해결하고 오마.”
돌아선 진무립과 단려화는 은무대와 함께 바람처럼 사라졌다.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광룡대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봤어?”
후영의 말에 한경이 대꾸했다.
“응.”
전투를 회상하는 풍연의 목소리가 그들의 귓속으로 스며들었다.
“소공자는…… 진짜 괴물이다.”
무혼광인을 단숨에 무력화시킨 패도적인 궁술, 적의 수장을 파괴한 엄청난 권각술에 겁화천살대를 도륙하는 무시무시한 검술까지.
협곡에서의 수련으로 제법 실력에 자신이 붙은 광룡대였으나 진무립의 끝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우리도 소공자처럼 될 수 있을까?”
한경의 질문에 후영이 실소를 흘렸다.
“땡중이 머리를 묶는 게 더 빠르겠다.”
전유의 얼굴이 형편없게 일그러졌다.
* * *
콰쾅!
우지끈하는 소리와 함께 굵은 기둥이 부러지며 전각이 기울어간다.
당가의 입장에서 다섯 구의 혈야광인과 스무 구의 무혼광인은 그야말로 피할 수 없는 재난과 같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독왕과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이는 가진천은 당가 무인들에게 강렬한 충격을 선사했다.
서장 최정예 부대인 수라대는 사천맹의 천무대조차 뛰어넘는 무용으로 거침없이 공격을 퍼붓는다.
거칠게 쏟아붓는 빗줄기에 독공이 반감되자 당가의 무인들은 좀처럼 타개책을 찾지 못하고 속절없이 쓰러져갔다.
당가의 대전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앞마당.
좌익이 무너질 기미를 보이자 자소의 신형이 질풍같이 쏘아진다.
“이쪽은 내가 막겠네!”
그녀와 함께 돌아온 당성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사태와 함께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버티기가 어려울 지경인데 그대로 사천맹에 갔다면 당가는 이미 무너지고 말았을 것이다.
우측으로 몸을 날린 당성이 노도와 같이 밀려드는 적에게 암기 다발을 쏘아낸다.
카카카캉!
당성과 부하들이 무혼광인을 앞세운 수라대를 상대하고 있을 때.
독왕 당조는 가진천을 향해 독장을 쏟아내고 있었다.
콰아아아!
시꺼먼 먹구름이 전신을 집어삼킬 듯 덮쳐온다.
전각의 기둥을 박찬 그는 좌측으로 쏘아지며 독장을 피해냈다.
콰아앙!
간발의 차이로 지축이 흔들리는 충격과 함께 기둥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간담이 서늘해지는 그 위력에 가진천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음. 비가 오지 않았더라면…….’
지금 같은 날씨에 독장이 이만한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그의 예상 밖이었다.
연이은 맹공으로 사방을 초토화하는 독왕 당조의 신위는 그야말로 천하십대고수에 걸맞은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 역시 서장에선 무천극을 제외하고 적수가 없는 고수.
패배는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
‘해볼까?’
지금의 당조라면, 약간의 위험을 감수한다면 목을 벨 수 있을 것 같다.
쾅! 콰쾅!
아슬아슬하게 비껴간 독장에 담장이 흔적도 없이 바스러진다.
뒤를 힐끔 쳐다본 가진천은 냉정하게 계산했다.
‘정면 승부는 피한다. 시간만 끌면 돼.’
승패와 상관없이 독공의 고수와 싸우다 일격을 허용한다면, 그의 목을 벨지라도 한동안 전투에 나서기 어려울 것이다.
전세는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무리할 것 없이 당조만 묶어두면 나머지는 실혼인과 수라대가 처리할 터.
당조는 그 뒤에 협공으로 처리하면 될 일이다.
“어딜 도망치느냐!”
일갈을 토해낸 당조의 전신에서 피부가 아려올 만큼 지독한 살기가 솟구친다.
좌우로 펼쳐진 당조의 소매가 터질 듯 부풀어 오르자 지면에 떨어져 있던 암기들이 일제히 허공으로 솟구쳤다.
허공섭물보다 고절한 귀접의 묘리.
수십 개의 암기가 역류하는 비처럼 떠오르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그 한 가운데 서 있던 가진천이 자세를 낮추는 순간, 주변을 휘몰아치던 암기들이 일제히 그의 전신으로 짓쳐 들었다.
당조의 독문무공인 구암환영공(究暗幻影功) 반월천비(半月千飛)의 초식.
암기가 지척까지 날아든 시점에 오른발로 지면을 찍은 가진천의 신형이 맹렬한 회전을 시작했다.
캉! 카카카캉!
빗살처럼 날아든 암기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간다.
일직선으로, 혹은 곡선을 그리며 사각을 노리는 암기조차 그의 방어를 뚫어낼 수는 없었다.
당조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보통 녀석이 아니로구나.’
만일 전투가 아닌 관전을 하고 있었더라면 탄성을 흘리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가문의 무인들이 쓰러지고 있는 이 상황에서 부릴 여유는 없다.
보법을 전개한 당조는 경이로운 속도로 그의 주변을 맴돌며 암기와 독장을 퍼붓기 시작했다.
차갑게 눈을 빛낸 가진천의 전신에서 피부가 따끔거릴 만큼 지독한 사기가 솟구친다.
쏴아아!
당조를 향한 그의 검극이 허공에 빼곡한 검영을 자아냈다.
해일처럼 밀려드는 독장과 수십 가닥 검광이 번뜩이며 충돌하는 순간.
쿠콰콰쾅!
경천동지할 폭음과 함께 비에 젖은 땅거죽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당조와 가진천의 전투가 격렬함의 극에 도달하고 있을 때, 팔백에 달하던 당가의 무인 중 살아남은 이는 사백에 미치지 못했다.
당성의 눈에 조급함이 떠올랐다.
‘이대로는 끝이다!’
그나마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가문의 장로들이 혈야광인을 묶어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무 명에 달하던 장로 중 살아남은 이는 고작 다섯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위태롭다.
반면 다섯 구의 혈야광인은 여전한 맹위를 떨친다.
혈야광인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수라대원들이 나타나 빈틈을 절묘하게 채웠기 때문이다.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이는 실혼인과 혈교도들은 당가의 입장에선 절망의 벽과도 같았다.
당조마저 정체 모를 고수에게 발이 잡힌 이상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비라도 내리지 않았더라면!’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성아!]당성의 귀를 파고드는 전음의 주인은 단신으로 혈야광인을 상대하던 대장로 당륭이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당장 가주를 데리고 피신해라!] [형님께서 그 말을 따르실 것 같습니까?] [소가주는 아직 만사비천도(萬死飛天刀)를 익히지 못했다. 가주가 당하면 그 맥이 끊기는 것이야!]구암환영공의 마지막 초식, 만사비천도는 대대로 가주에게만 전해지는 당가 무공의 정수.
구전으로만 전해지는 그것은 비급조차 없어 가주가 죽으면 실전되고 만다.
그때 전음을 보내던 당륭의 가슴에 검붉은 일장이 틀어박혔다.
콰앙!
“쿨럭!”
왈칵 피를 토해낸 당륭이 실 끊어진 연처럼 나가떨어졌다.
“숙부님!”
지체 없이 몸을 날린 당성이 당륭의 앞을 막아서고 독장을 쏟아냈다.
콰앙!
그의 매서운 일장을 몸으로 받아낸 혈야광인은 잠시 주춤했을 뿐 전혀 타격이 없어 보였다.
세 명의 수라대가 혈야광인과 함께 매섭게 짓쳐 든다.
‘정녕 하늘이 본가를 버린단 말인가!’
절망하는 당성의 눈동자에 어디선가 날아든 한 줄기 섬광이 번쩍였다.
쿠아아앙!
이어서 지축을 울리는 엄청난 폭음과 함께 달려들던 혈야광인이 오 장 밖으로 튕겨 나갔다.
그 엄청난 충격에 모두의 고개가 한곳으로 돌아갔다.
반파된 전각 위에 올라선 열두 명의 무인들.
“저…… 저자는…….”
상대를 알아본 누군가가 외쳤다.
“광룡이다! 광룡 진무립이다!”
“광룡이 이곳에 왔단 말인가?”
선두에 서서 손을 내뻗은 인물은 그들의 말대로 진무립이었다.
“당가를 돕는다.”
“명을 받듭니다!”
묵직한 내력이 깃든 복명 소리가 시산혈해의 당가에 퍼져 나간다.
지붕을 박찬 은무대가 비조처럼 하강하며 혈야광인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한 걸음 내디딘 진무립이 단려화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무리하지 마.”
은무대 역시 지친 상태였으나 조금 전 두 구의 혈야광인을 베어낸 그녀는 그들보다 훨씬 지쳐 보였다.
그녀는 애써 웃어 보이며 말했다.
“광룡이 가는 곳에는 항상 광녀가 있다면서요?”
“즐기는 수준에 도달한 건가?”
“전쟁이 끝나면 반드시 소문의 근원을 찾아낼 거예요.”
섬뜩한 경고를 남긴 그녀가 은무대의 뒤를 쫓아 몸을 날렸다.
치열한 전장을 눈앞에 둔 진무립이 실소를 흘렸다.
“무리하지 말라니까.”
훌쩍 뛰어내린 진무립은 땅에 발이 닿기 무섭게 전방으로 쏘아졌다.
혈야광인을 상대하는 은무대의 귀로 서진환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조금 전 소저의 싸움을 상기해라.”
단려화가 협공으로 혈야광인을 처치한 것을 떠올리란 말이다.
“예!”
은무대는 익숙하게 두 명씩 짝을 지었다.
혈야광인을 보조하려던 수라대를 진무립이 막아섰다.
“어딜 가려고?”
수라대 부대주 혈검(血劍) 금위상이 검파를 움켜쥐며 말했다.
“고작 열 명으로 혈야광인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으냐?”
“그렇게 허약하게 키우지는 않았다.”
다소 지쳤다곤 하나, 서진환이 있는 이상 은무대 둘이 혈야광인 하나를 상대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후방을 온전히 그들에게 맡긴 진무립은 전신의 내력을 끌어올렸다.
두두두두두!
그의 육신에서 태산 같은 기운이 쏟아져 나오며 대지의 진동과 함께 옷자락이 찢겨 나갈 듯 펄럭인다.
‘말도 안 돼!’
금위상의 얼굴에 불신의 빛이 떠오른다.
전신을 옥죄어오는 엄청난 기세는 진무립의 나이에 도달할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수라대의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본 진무립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마르지 않는 샘처럼 솟아오르는군. 내력보다 체력이 먼저 떨어지겠어.’
숲에서의 일전에도 불구하고 단전에는 아직도 막대한 내력이 남아 있었다.
봉인을 해제한 천음지체의 무서운 힘이었다.
[여긴 맡길게요!]진무립의 뒤를 스쳐 지난 단려화는 위기에 빠진 자소에게 달려갔다.
“시작하지.”
말이 끝나며 보폭이 앞뒤로 벌어지는 순간, 뒤로 향했던 장심이 전방으로 뻗어 나갔다.
콰아아아!
용암처럼 뜨거운 장력이 해일처럼 몰아친다.
선두에 선 금위상은 당황한 내심을 감추고 외쳤다.
“방검(防劍)!”
그의 곁으로 모여든 스무 명의 수라대원이 혼신을 다해 검을 내지른다.
콰아아앙!
고막을 강타하는 엄청난 굉음.
장력과 검극의 충돌로 파생된 날카로운 기파에 일진광풍이 몰아쳤다.
진무립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적잖은 힘이 실린 장력에도 그들은 한 걸음 물러선 게 전부였다.
‘이놈들은 많이 다르군.’
조금 전 상대하고 온 겁화천살대와 눈앞의 수라대는 생각 이상으로 엄청난 격차가 있었다.
은광검을 움켜쥔 진무립은 지면을 박차고 쇄도했다.
“큭큭큭. 어디 이것도 막아봐라.”
번뜩이며 날아드는 검광이 수라대의 눈앞에서 다섯 가닥으로 갈라진다.
금위상은 진무립의 움직임에 즉시 반응했다.
“산(散)!”
썰물처럼 흩어지는 수라대원의 등으로 벼락같은 검광이 쏘아진다.
그에 맞서 금위상의 검신이 잔상을 남기며 쇄도했다.
“어딜!”
두 자루 검신이 허공에서 교차하는 순간.
쾅!
“큭!”
폭음과 함께 금위상의 신형이 주르륵 미끄러진다.
그를 단숨에 뿌리친 진무립은 흩어진 수라대를 하나씩 공격하기 시작했다.
“쿨럭!”
울혈을 토해낸 금위상은 상황을 빠르게 파악했다.
어느새 두 구의 혈야광인이 목숨을 잃었고 나머지도 위태로워 보인다.
‘수라대를 여기서 잃어선 안 된다.’
물론 상대에게도 한계는 있겠지만 여기서 지나치게 무인을 소모하면 원대한 계획이 일그러진다.
그는 당조를 상대하는 가진천에게 전음을 보냈다.
[대주! 퇴각합시다!]가진천은 되묻지 않았다.
진무립이 발산하는 기운으로 인해 후방의 상황을 대강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달려드는 당조에게 강렬한 검초를 퍼부었다.
콰콰쾅!
세 줄기 섬광과 암기의 충돌.
그 여파에 두 사람이 반대 방향으로 튕겨 나갔다.
가진천은 그대로 몸을 돌려 지면을 박찼다.
“퇴각!”
그 한마디에 당가의 무인들을 몰아치던 수라대가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보내줄 것 같으냐!”
이를 바드득 간 당조가 벼락같이 몸을 날렸다.
그러나 그의 앞을 막아선 것은 혈야광인과 두 구의 무혼광인이었다.
진무립의 앞도 마찬가지였다.
남겨진 실혼인들은 수라대의 뒤를 지키며 마지막 명령에 복종했다.
진무립은 마치 들으라는 듯 외쳤다.
“쫓지 마라! 당가를 지키는 게 우선이다!”
멀어지는 수라대를 본 진무립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가서 무천극에게 전해라. 진무립이 당가에 나타났다고.’
살아남은 당가의 고수들과 은무대가 매섭게 실혼인을 공격하는 가운데, 사천맹의 하늘을 응시하는 진무립은 이미 다음 계획을 그려가고 있었다.